아이디가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비밀번호가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602 |
[역사] 지도로 읽는다 삼국지 100년 도감
바운드 | 이다미디어 | 2018-01-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602 |
[역사] 지도로 읽는다 삼국지 100년 도감
바운드 | 이다미디어 | 2018-01-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184년 ‘황건의 난’부터 280년 오나라의 멸망까지 약 100년의 역사를 다룬다!
우리에게는 중국 역사 가운데 삼국시대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는 조조가 이끄는 위(魏), 유비가 이끄는 촉한(蜀漢), 손권이 이끄는 오(吳)의 삼국이 중국 대륙을 삼등분하여 천하의 패권을 놓고 명승부를 펼치는 시기를 일컫는다. 이 책에서는 한제국이 멸망하는 계기가 된 황건의 난(184년)부터, 진나라의 사마염이 주도한 오나라 멸망(280년)까지 약 100년(실제 96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삼국시대를 만나는 방식은 소설, 역사, 영화, 게임, 만화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한편 삼국시대를 주로 접한 것은 대부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본으로 하는 소설 《삼국지》일 것이다. 그래서 소설과 역사를 혼동하거나, 아니면 아예 소설을 역사로 믿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역사를 소설로 만들 수는 있지만, 소설을 역사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왜 당시의 전쟁은 황하, 장강 유역 등 항상 일어난 곳에서 일어나는가?
이 책은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기본으로 해서 ‘삼국지 100년’의 추이를 연대별 순서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넓은 중국 대륙에서 같은 시기에 일어난 주요 인물의 동향과 역사적 사건을 비교하며 통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개인과 나라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쟁과 외교전을 3D 입체지도 위에다 그려놓아 삼국의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나 소설 가릴 것 없이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어도 역사적 사실과 흐름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당시 중국의 지명과 지리적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곧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지리를 아는 것이다. 땅의 형세, 기후, 문화, 산물, 인접 국가와의 관계 등 지리적 조건은 바로 지정학으로 연결된다.
왜 전쟁은 항상 일어난 곳에서 일어나는가? 왜 당시 중요한 전쟁은 황하와 장강 등 강 유역에서 일어났는가? 왜 삼국이 서로 형주 땅을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는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의 지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책의 내용과 특징
‘삼국지 100년’을 130장의 실사 입체지도로 한눈에 꿰뚫는다!
역사는 인물과 사건과 지리의 결합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삼국시대의 역사는 바로 영웅들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숱한 전쟁을 컬러 실사지도 위에다 상세하게 옮겨놓았다. 그래서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삼국지》의 영웅들이 펼치는 신출귀몰한 전략과 명승부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본문에 나오는 지도와 도판의 몇 가지 특징을 설명한다.
1. 당시에 활약하던 군웅의 세력 범위를 시기별로 색으로 구분하여 표시했다.
2. 삼국의 국력 비교와 인물의 계보도 등 본문과 관련된 도판을 풍부하게 실었다.
3. ‘삼국지 100년’ 동안 일어난 주요 전쟁과 외교전을 빠짐없이 지도로 만들었다.
4. 전쟁 당시 영웅들의 움직임을 대략적이긴 하지만 지도에다 국경과 진로로 표시했다.
5. 관도 전투, 적벽대전, 이릉 전투, 오장원 전투 등 삼국의 명운을 가른 명승부를 가상도로 그렸다.
조조, 유비, 손권 등 삼국지의 영웅들이 펼치는 ‘삼국지 100년’의 大드라마!
1장 184~206년/ 후한의 붕괴와 군웅할거 시대
장각이 주도한 ‘황건의 난’을 진압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후한의 군웅들이 각지에서 궐기한다. 반란군을 진압한 장수들이 앞 다투어 후한의 수도 낙양으로 집결한다. 낙양의 조정을 장악한 폭군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조조와 손견이 앞장선다.
손견과 동탁의 낙양 공방전, 조조의 서주 침공, 조조와 여포의 하비 전투, 관우가 안량의 목을 벤 백마 전투, 조조와 원소의 관도 전투 등 삼국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영웅들의 명승부가 숨 막히게 펼쳐진다.
2장 207~220년/ 적벽대전과 삼국시대의 개막
삼국지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적벽대전이 발발하고, 유비·손권 연합군이 조조군을 패퇴시키고 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삼국시대의 최대 요충지인 형주를 차지하기 위한 삼국 영웅의 계책과 전략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조조가 유비를 격파한 장판 전투, 주유가 조인을 물리친 강릉 전투, 유비가 유장을 정벌한 성도 전투, 관우가 전사한 번성 전투 등 천하삼분지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크고 작은 전투들이 줄을 잇는다. 《삼국지연의》와 달리 정사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이 등장하지 않고, 주유가 적벽대전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3장 221~280년/ 제갈량의 북벌과 진나라의 삼국 통일
촉한을 건국하고 황제에 오른 유비가 맨 먼저 한 일은 손권 토벌과 함께 형주 땅의 탈환이었다. 관우가 전사한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도 있었다. 이에 손권은 조비에게 신하를 맹세하는 동맹을 맺고, 유비군 토벌에 나선다. 유비가 이릉 전투에서 손권에 패배하고, 백제성에서 죽는다. 이후 출사표를 던진 제갈량이 북벌을 개시한다.
5차 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오장원 전투에서 사망, 손권이 위나라에 대대적인 침공, 위나라와 오나라에서 황족과 권신 간의 치열한 내부 권력투쟁, 사마의의 쿠데타에 이은 사마소의 촉한 정벌, 사마염의 오나라 정벌로 마침내 ‘삼국지 100년’의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601 |
[역사] 지도로 읽는다 지리와 지명의 세계사 도감 1
미야자키 마사카츠 | 이다미디어 | 2018-04-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601 |
[역사] 지도로 읽는다 지리와 지명의 세계사 도감 1
미야자키 마사카츠 | 이다미디어 | 2018-04-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와 ‘지리’와 ‘지명’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
“지도 하나로 세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그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역사와 지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지도에 표시된 지명에도 숨겨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세계사와는 읽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생생한 지구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역사’와 ‘지리’와 ‘지명’을 알맞게 조리해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유사 이래 인류사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도 땅에 새겨진 생생한 역사 읽기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리와 지명을 중심으로 지도 위에다 세계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인물 중심의 세계사를 탈피해 인류의 역사가 새겨진 땅의 세계사를 다루고 있다. 인류 사회와 문명의 확대를 ‘지리적’, ‘공간적’으로 해설함으로써 기존의 세계사와는 다른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리와 지명이 새겨진 지도를 통한 세계사 읽기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세계지도 위에서 입체적으로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
역사의 움직임과 흐름은 지리적 조건이나 지정학적 환경에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곧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쟁, 문명의 조우와 충돌, 영웅의 탄생과 소멸은 모두 지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쟁이 언제나 일어난 곳에서 일어나듯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바뀌지만 땅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리, 지형과 함께 지명에 관한 역사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지명은 인간과 땅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지역적 특징에 대한 오랜 기록이기도 하다. 지명의 유래와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대한 식견과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명이 어떤 민족과 언어에서 유래되었는지, 또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 어디서 어떻게 역사의 변곡점이 만들어지는가, 현대까지 이어지는 민족의 분쟁과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등등 역사적 사건들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세계지도를 펼치고 지리와 지명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어느 새 역사적 진실과 실체에 다가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역사는 지리, 지형, 기후, 민족, 정치, 전쟁, 문화 등 여러 요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세계사를 공부할 때는 땅을 중심으로 자기 나름의 지리적 공간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세계지도 위에서 입체적으로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각 지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을 교차시키면서 입체적으로 해설하는 세계사
이 책의 지도에 표시된 지리와 지명에는 각 지역의 역사와 언어적 특성이 반영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세계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지도를 중심으로 세계의 여러 지역을 살펴보고 있으며, 지명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생부터 출발해 세계사를 지역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각 지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을 교차시키면서 입체적으로 해설하며 세계사의 움직임과 흐름을 개관하는 방식이다. 예들 들면, 1단계는 4대 문명의 탄생과 확대하는 지중해 문명의 시기, 2단계는 지중해를 제패한 이슬람 세계를 다룬다. 3단계는 세계로 진출하는 유럽의 팽창 시대, 4단계는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변화를 설명한다.
1단계 - 4대 문명의 탄생과 지중해로 확대되는 문명
사막 주변의 초원(스텝)에서 농업이 시작되며, 5000년 전에 유라시아 5대 하천 유역의 충적평야에서 4대 문명이 형성되었다.
1)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 지중해 동부로 확대
2)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 소아시아, 시리아, 이란 고원으로 확대
3) 인더스 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 갠지스 강 유역과 남인도, 동남아시아로 확대
4) 황하 유역의 ‘황하 문명’ → 몽골 고원, 한반도, 일본, 베트남으로 확대
2단계 - 이슬람과 몽골이 주도한 유라시아의 대변동
서아시아와 지중해 남쪽 절반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의 ‘대정복운동’(민족이동)에 의해 무너진다. 이에 따라 서아시아와 지중해 대부분은 이슬람제국이 지배했고, 지중해 북부만이 기독교의 세계가 되었다. 즉, 서아시아와 지중해 남부의 이슬람 세계와, 지중해 북부의 유럽 세계로 ‘분열’된 것이다.
이후 11세기에 이슬람제국을 정복한 셀주크 왕조와 13세기에 등장한 몽골제국 등 기마 유목민이 동서양에 걸친 광대한 유라시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3단계 - 세계를 압도한 유럽의 팽창과 아메리카의 유럽화
유럽 세계는 한 때 이슬람 세계에 압도당했지만 대개간 운동과 십자군 운동 등을 통해 세계사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대항해 시대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제2의 유럽’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해양을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19세기가 되면서 유럽 세계는 산업혁명으로 형성된 합리적인 사회시스템, 철도와 증기선의 발달, 그리고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
4단계 - 중국과 인도 등 변화하는 동아시아 세계
중국과 인도, 한국, 일본 등 전통적인 세계를 유지해 온 아시아 세계는 이곳으로 진출한 유럽 세력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한 20세기 전반의 심한 변혁기를 거쳐 이제는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 세력으로 성장했다. 또 동남아시아 등의 세계도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세계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
600 |
[역사] 지도로 읽는다 지리와 지명의 세계사 도감 2
미야자키 마사카츠 | 이다미디어 | 2018-04-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600 |
[역사] 지도로 읽는다 지리와 지명의 세계사 도감 2
미야자키 마사카츠 | 이다미디어 | 2018-04-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와 ‘지리’와 ‘지명’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
“지도 하나로 세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그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역사와 지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지도에 표시된 지명에도 숨겨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세계사와는 읽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생생한 지구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역사’와 ‘지리’와 ‘지명’을 알맞게 조리해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유사 이래 인류사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도 땅에 새겨진 생생한 역사 읽기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리와 지명을 중심으로 지도 위에다 세계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인물 중심의 세계사를 탈피해 인류의 역사가 새겨진 땅의 세계사를 다루고 있다. 인류 사회와 문명의 확대를 ‘지리적’, ‘공간적’으로 해설함으로써 기존의 세계사와는 다른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리와 지명이 새겨진 지도를 통한 세계사 읽기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세계지도 위에서 입체적으로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
역사의 움직임과 흐름은 지리적 조건이나 지정학적 환경에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곧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쟁, 문명의 조우와 충돌, 영웅의 탄생과 소멸은 모두 지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쟁이 언제나 일어난 곳에서 일어나듯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바뀌지만 땅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리, 지형과 함께 지명에 관한 역사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지명은 인간과 땅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지역적 특징에 대한 오랜 기록이기도 하다. 지명의 유래와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대한 식견과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명이 어떤 민족과 언어에서 유래되었는지, 또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 어디서 어떻게 역사의 변곡점이 만들어지는가, 현대까지 이어지는 민족의 분쟁과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등등 역사적 사건들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세계지도를 펼치고 지리와 지명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어느 새 역사적 진실과 실체에 다가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역사는 지리, 지형, 기후, 민족, 정치, 전쟁, 문화 등 여러 요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세계사를 공부할 때는 땅을 중심으로 자기 나름의 지리적 공간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세계지도 위에서 입체적으로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각 지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을 교차시키면서 입체적으로 해설하는 세계사
이 책의 지도에 표시된 지리와 지명에는 각 지역의 역사와 언어적 특성이 반영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세계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지도를 중심으로 세계의 여러 지역을 살펴보고 있으며, 지명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생부터 출발해 세계사를 지역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각 지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을 교차시키면서 입체적으로 해설하며 세계사의 움직임과 흐름을 개관하는 방식이다. 예들 들면, 1단계는 4대 문명의 탄생과 확대하는 지중해 문명의 시기, 2단계는 지중해를 제패한 이슬람 세계를 다룬다. 3단계는 세계로 진출하는 유럽의 팽창 시대, 4단계는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변화를 설명한다.
1단계 - 4대 문명의 탄생과 지중해로 확대되는 문명
사막 주변의 초원(스텝)에서 농업이 시작되며, 5000년 전에 유라시아 5대 하천 유역의 충적평야에서 4대 문명이 형성되었다.
1)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 지중해 동부로 확대
2)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 소아시아, 시리아, 이란 고원으로 확대
3) 인더스 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 갠지스 강 유역과 남인도, 동남아시아로 확대
4) 황하 유역의 ‘황하 문명’ → 몽골 고원, 한반도, 일본, 베트남으로 확대
2단계 - 이슬람과 몽골이 주도한 유라시아의 대변동
서아시아와 지중해 남쪽 절반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의 ‘대정복운동’(민족이동)에 의해 무너진다. 이에 따라 서아시아와 지중해 대부분은 이슬람제국이 지배했고, 지중해 북부만이 기독교의 세계가 되었다. 즉, 서아시아와 지중해 남부의 이슬람 세계와, 지중해 북부의 유럽 세계로 ‘분열’된 것이다.
이후 11세기에 이슬람제국을 정복한 셀주크 왕조와 13세기에 등장한 몽골제국 등 기마 유목민이 동서양에 걸친 광대한 유라시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3단계 - 세계를 압도한 유럽의 팽창과 아메리카의 유럽화
유럽 세계는 한 때 이슬람 세계에 압도당했지만 대개간 운동과 십자군 운동 등을 통해 세계사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대항해 시대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제2의 유럽’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해양을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19세기가 되면서 유럽 세계는 산업혁명으로 형성된 합리적인 사회시스템, 철도와 증기선의 발달, 그리고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
4단계 - 중국과 인도 등 변화하는 동아시아 세계
중국과 인도, 한국, 일본 등 전통적인 세계를 유지해 온 아시아 세계는 이곳으로 진출한 유럽 세력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한 20세기 전반의 심한 변혁기를 거쳐 이제는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 세력으로 성장했다. 또 동남아시아 등의 세계도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세계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
599 |
[역사] 패권 쟁탈의 한국사
김종성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599 |
[역사] 패권 쟁탈의 한국사
김종성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무엇이 패권을 만들고, 지키고, 뒤집는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동반자였던 패권 쟁탈의 흐름을 한·중·일, 삼국 관계로 진단하다 동아시아 패권은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로 흘러갔는가? 패권의 향방으로 바라본 동북아 역사의 새로운 시각 중국 어선들이 우리 서해 앞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우리 해양 경찰들이 이를 막느라 골머리를 썩인다는 기사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히 중국과 한국의 사회적 현안만은 아니다. 이러한 사건의 밑바탕에는 동북아의 패권 질서와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우리는 국제질서가 이상과 도덕보다는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한 힘의 논리와 흐름이 바로 패권 쟁탈이다. 앞서 이야기한 중국 어선들의 서해 불법 조업은 우리 선조들이 본다면 개탄할지도 모를 사건이다. 적어도 저자가 보기에 신라인들은 작금의 현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비단길을 개척했던 중국인들은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바닷길에 약했다. 이는 일본 천황의 초청을 받은 당나라의 유명한 승려 ‘감진 대사’가 일본을 방문하는 데 무려 11년이나 걸린 사건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당나라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 가장 쉬운 해로는 산둥반도에서 서해를 가로질러 한반도 남해안과 대마도를 거치는 경로다. 하지만 신라인들은 이 해로를 감진대사 일행에게 내주지 않았다. 결국 감진대사는 상하이 쪽의 양자강 하구에서 출발해 동지나해를 가로질러 일본으로 가는 위험한 경로를 택해야만 했다. 그 결과 여행은 번번이 실패했고 여섯 번 만에야 겨우 성공하여 일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보고의 청해진이 서해를 주름잡은 것도 이러한 신라인의 해상권 장악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과거 패권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다툼이 오늘날에도 유사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이러한 패권 쟁탈의 과정을 통해 고조선부터 남북한 분단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1부 ‘무역로와 사상 혁신’에서는 초원길과 연결되어 있던 고조선이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행사하게 되고 이후 쇄락해 갔는가를 이야기한다. 2부 ‘왜곡과 정통성 논쟁’에서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우리 역사를 대륙 중심의 역사관에서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으로 바꾸면서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축소시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아울러 백제의 건국시조를 통해 고대 왕국에서 정통성 논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3부 ‘주변 정세와 전략’에서는 중국과 한반도의 3국(고구려, 신라, 백제)이 정세 변화에 따라 어떠한 전략을 운영했는가와 그에 따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4부 ‘위기관리와 정치력’에서는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는 원인과 배경 등을 이야기하고 아울러 신라와는 다른 정치력을 보였던 고려에 대해 이야기한다. 5부 ‘기후 변화와 정체 체제’는 원나라의 등장과 기후 변화에 따른 몰락, 공민왕의 정치 개혁과 신진사대부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정치 체제의 변화가 패권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한다. 6부 ‘외교와 안목’에서는 명나라와 조선과의 외교 관계, 바닷길 시대의 등장과 더불어 시대의 흐름을 볼 줄 알았던 일본의 안목과 이에 뒤처졌던 조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오늘날 분단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과 남북한의 패권 흐름을 분석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패권의 역사로 바라본 신개념 한국사 역사적 사건 밑에 숨어 있던 원동력을 분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다시 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대표적인 세계 무역로인 초원길, 비단길, 바닷길이 활성화되고 패권의 향방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무역로를 통해서 당시의 선진 문물이 교류되었기 때문에 이 무역로에 가까운 민족일수록 주변 민족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3대 무역로 중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되었던 초원길 시대에는 이 길과 인접해 있던 한민족이 초원길 아래, 황하 주변에 모여 있던 중국인들을 압도했다. 이러한 사실은 만리장성의 축조로도 나타난다. 만리장성은 흔히 생각하듯이 흉노족이나 다른 북방 유목 민족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한민족을 막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지금의 베이징에서 서북쪽 140킬로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부터 동쪽을 향해 뻗는 만리장성은 고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지은 것이었다. 당시 흉노족은 몽골 초원 쪽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다. 만약 만리장성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지어졌다면 현재 위치보다 좀 더 왼쪽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한다. 『사기』 「조선열전」에서도 연나라가 현재의 만리장성의 토대가 되는 장성을 쌓은 것은 고조선을 견제하기 위해서란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초원길에서는 한민족이 중국의 한족을 압박하거나 최소한 대등한 위치에서 패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비단길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동북아의 패권은 중국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초원길 다음에 국제 무역로로 성장한 비단길 시대에는 중국이 한반도의 여러 왕국을 압도해 나갔다. 저자는 비단길의 개척은 바닷길의 개척에 버금가는 ‘미친 짓’이었다고 말한다. 비단길은 사막을 관통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무모한 시도가 성공한 결과 중국은 비단길을 통해 로마와의 무역으로 막대한 은을 벌어들였고 곧 세계 패권의 강자로 우뚝 서게 된다. 반면 바닷길 시대에서는 이 국제 무역로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개방 정책으로 세계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중국과 한국을 압도하게 된다. 이외에도 한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굵직한 전쟁이나 외교사에 관해서도 저자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교를 통해 사상 혁신이 일어난 중국이 어떻게 급성장하게 되었는가를 따지기도 하고, 중국의 통일과 분열이 한반도 역사에 미친 영향, 기후 변화가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등을 논한다. 저자가 말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이 모든 패권 쟁탈의 역사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
598 |
[역사] 한 컷 한국 현대사
표학렬 | 인문서원 | 2018-01-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598 |
[역사] 한 컷 한국 현대사
표학렬 | 인문서원 | 2018-01-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찰칵! 순간이 찍혔다, 역사가 남았다!
열화되고 풍화된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위대한 패배자와 더러운 승리자의 역사!
영화 〈택시 운전사〉에는 5.18광주항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알리기 위해 독일인 기자가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주인공이 몇 십 년 전에 ‘위안부’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증거물은 옷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낡고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순간을 영원으로’. 사진이 갖는 특성을 가장 적확하고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일 것이다. 20세기는 일반 대중이 순간을 찍어 영원이 가능한 경험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된 세기이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종이 사진은 빛이 바래고 희미해지긴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는 빛이 바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00년의 말없는, 그러나 귀중한 증언자로 자리 잡았다. 『한 컷 한국 현대사』는 구한말에서 해방과 분단,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거쳐 전태일 열사의 분신까지, 카메라가 우연히 포착한 드라마틱한 한순간, 말하자면 ‘카메라가 포착한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모던 보이’의 마지막 함박웃음,
그리고 유리창에 뚫린 총알 자국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 말쑥한 더블 코트를 차려입고 환하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런데, 이 청년 왠지 낯이 익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두 손에 폭탄을 들고 찍은 사진 속 주인공으로 익숙한 이봉창 의사다. 단정한 코트를 입고 찍은 사진은 이봉창 의사가 거사를 위해 상하이 임정을 떠나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의사는 두 번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지 못하고 순국했다.
유리창에 선명하게 뚫린 총알 자국이 찍힌 사진이 있다. 유리창 너머 마당에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오열하는 수많은 군중들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이 사진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의 한 순간, 김구 암살 당일의 풍경을 포착한 것이다.
본문은 33장의 사진이 들려주는 33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책장을 열면 첫 번째로 마주하는 사진은 칼을 찬 교사들과 나란히 서서 찍은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이다. ‘칼’을 차고 교단에 서는 교사들 뒤에는 일제의 ‘무단통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칼의 통치’에 저항하는 3.1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적막한 느낌이 손에 잡힐 듯 전해지는 고종 황제의 일본식 장례식 사진 뒤로는 망국의 왕족들이 겪어야 했던 을씨년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겹친다. 박정희의 3선 개선에 맞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40대 김대중의 ‘젊은 시절’ 모습에서는 그날 이후 그의 민주화 투사로서의 삶과 그 역경을 것을 딛고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흘러간다.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사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숨결까지 잡힐 듯한 순간들은 어쩌면 무심한 렌즈가 우연히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살아남은 이들의 눈동자는 무심할 수 없다. 사진이 품고 있는 순간순간의 ‘드라마’, 그 속 깊은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컷 한국 현대사』는 지난 100년 동안 대한민국이 겪어온 롤러코스터 같은 순간들, 지옥 같은 순간들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의 영욕의 한순간, 그리고 이제는 삶의 마침표가 찍혀버린 이들이 아직 살아 숨 쉬던 순간들의 궤적을 통해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풍성하게 넓히는 동시에 ‘삶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까지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597 |
[역사]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
임선우 | 지식과감성# | 2018-01-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597 |
[역사]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
임선우 | 지식과감성# | 2018-01-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는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중국인의 일상과 습관 문화 풍속 이야기다.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는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도 중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다. 내용에는 중국인들의 일상과 습관 문화 풍속을 키워드로 총 10장으로 구성하였으며, 주제에 따라 소제목을 달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핵심 키워드는 중국 음을 달아 일상에서 활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모두 현재 중국에서 존재하는 살아 있는 문화와 풍속을 작가의 경험과 함께 잘 풀어내고 있어 읽을 때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중국 사람들이 현시점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
596 |
[역사] 한국인이 알아야 할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
함규진 | 자음과모음 | 2017-02-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596 |
[역사] 한국인이 알아야 할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
함규진 | 자음과모음 | 2017-02-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근대국가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 한편
끝까지 사람의 길을 고민했던 조선 최후의 군주 고종
1863년 열두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에 눌려 지낸 끝에 겨우 홀로서기를 하자마자 격변의 시대에 휩쓸려버린 비운의 왕 고종. 그는 적들이 천지를 메운 상황에서 일신의 보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꼭 겁이 많아서라기보다, 먼저 자신이 버티고 있어야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끝내 망해버린 오백 년 종묘사직과 이태왕(李太王)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명칭을 받아 든 고종은 이미 모든 게 늦었다는 자책 속에서 번민하던 끝에,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반격을 준비한다.
〈저자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도 편안히 살기 힘든 격변의 시대에 한 나라의 군주로서 고종이 얼마나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쓰인 이 책은, 고종의 일대기를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결단에 중점을 두고 펼쳐간다. 책 속 이야기는 고종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과정, 대원군의 섭정, 명성황후와의 혼인, 친정(親政)을 하고부터의 개인적·역사적 정황 등이 차례로 서술된다.
고종의 인간적 고뇌와 결단을 만나다
조선 26대 왕, 대한제국 초대 황제, 그리고 사실상 한국사상 최후의 군주였던 고종.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많은 이들이 그를 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청나라·일본·러시아 등의 열강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다가 맥없이 망국을 당하고 만 평균 이하의 군주로 여긴다. 한편 그의 여러 개혁 정책과 반일 독립투쟁을 높이 평가하며, 존경해 마땅한 인물로 높이는 예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어느 쪽이든 고종이라는 한 인물을 바라보기보다 ‘고종 시대’를 바라보고 그 시대가 개탄스러운 쇠망의 시대였느냐, 야심찬 개혁의 안타까운 좌절의 시대였느냐로 긍정 또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시각이다. 고종이라는 인물은 다른 모든 인물과 마찬가지로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때로는 용감하고 때로는 비겁하며, 감정에 치우쳐 실수하는가 하면 냉철하게 판단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다만 그를 둘러싼 시대가 하도 특별했으며, 그 속에서 부대끼던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한심하게, 어떻게 보면 탁월해 보였을 뿐이다.
그저 우유부단한 왕으로만 그려졌던 고종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이 책은 특히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전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군주라고 할 수 있는 고종의 ‘고독’과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특히 정치적 동반자로서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시선, 일제와 열강의 침략 속에서 이완용과의 관계 등이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기존의 유교적 정치철학과는 반대로, 발전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東道西器) 부국강병하려는 생각, 꽉 막힌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열강의 침투를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술책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을사조약 이후 최익현, 허위 등에게 ‘밀칙’을 내려 의병을 일으키게 하여 그 뒷돈을 대거나, 자주독립을 위해 끊임없는 외교활동을 벌인 일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일국의 군주로서 난국을 타개하려던 시도만을 들어 무능한 왕이라는 이전의 평가를 무작정 쇄신하려 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객관적인 서술과 대외적인 비교를 통해서, 마지막 판단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이 이입된 대사가 곳곳에 등장해 결코 무겁거나 가볍게 읽히지 않도록 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학교에서는 그저 딱딱하게만 배웠던 역사교과서 속 내용,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적 사실 등을 결코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재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완용은 매국노다’라는 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무작정 주입하기보다는, 이완용이란 인물에 관해, 그가 나라와 임금을 저버리게 된 정황 등을 설명하여 이해를 돕는다. 또한, 당시의 상황을 한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를 갖는 도판 27컷을 실어, 그 옛날의 사건들을 실감나게 해준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고종의 죽음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으면서도 개화와 광복운동에 꾸준히 힘을 보탰다는 말에, 그 실제 성과가 무엇인가를 물으며 그런 긍정적 평가를 일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할 만큼 해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는 소극적인 변명 말고도, 고종은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생명을 이용해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뚜렷한 비전의 제시 없이 보신만 우선시했던 고종이 죽음을 각오하고 광복운동에 나선 것 자체가 그 증거다. 고종의 죽음에는 암살이라는 설과 자살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책은 자살과도 같은 암살로 고종의 마지막을 그린다. 오백 년 종사를 자신의 대에서 끝내게 됐다는 회환, 나라와 백성을 타국에 넘겼다는 죄책감이 그의 죽음을 각오하게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왕조’는 사라져도 ‘백성’은 남는다. 땅덩이나 ‘국가’라는 틀이 아닌 ‘사람’이 본위임을 깨달은 고종은, 일제가 보장하는 우리 안에서 여생을 안전히 보내기보다는 죽음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깨달음과 비전을 전하려 했다. 그리하여 고종의 시신을 능에 안장하는 노제(路祭)가 예정되어 있던 3월 3일을 이틀 앞둔 1919년 3월 1일, ‘민중이 황제의 메시지에 호응’하는 모습을 그리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
595 |
[역사]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조 지무쇼 | 시그마북스 | 2017-06-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95 |
[역사]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조 지무쇼 | 시그마북스 | 2017-06-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물건으로 알아보는 인류 역사 6000년
인류에게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 전화를 발명한 사람이 그레이엄 벨이 아니다? 장대한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제국이 도로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산업혁명을 뒷받침한 증기기관의 발명이 압력솥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은 기원전 6000년경에 등장한 술부터 43년 전에 일어난 디지털 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크게 변화시킨 발명품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여 현대에 이르게 된 이유와 과정을 정리한 책이다. 술, 바퀴, 고무, 시계부터 플라스틱, 반도체,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변화시킨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재미있는 세계사 “우리 주위의 모든 물건에는 역사가 있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맥락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 말이 될 것이다. 우리의 조상은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발휘해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발명하면서 생산력 증대와 생활의 풍요로움?편리함?쾌적함?효율성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다시 말해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불러온 생산력 혁명은 제1차 산업인 농업, 제2차 산업인 공업, 그리고 제3차 산업인 정보산업에까지 영향을 주며 시대를 크게 변화?발전시켰으며,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려 효과적으로 이용해온 결과 현대가 풍요로워진 것이다. 이 책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물건,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건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물건들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다. 즉 기원전 6000년경에 등장한 술을 비롯해 바퀴, 문자, 철기부터 플라스틱, 전화, 비행기, 반도체,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크게 변화시킨 발명품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여 현대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과정을 정리한 책이다. 우리 주위의 다양한 도구와 제품들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각각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더욱 편리하고 쓸모 있으며 안전한 것으로 개량되었다. 때로는 이러한 물건들에 새로운 원리를 도입해 기술혁신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러한 기술혁신은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 결과 일어났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세런디피티, 즉 우연한 발견이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유용한 페니실린의 발견이 배양액에 푸른곰팡이가 섞여 들어간 실수에서 초래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사건, 사고를 통한 아니면 여러 나라의 왕조사를 통해 보는 세계사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물건의 역사를 통해 인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30가지 일상 속 물건들의 역사를 통해 독자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물건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것이며, 세계사를 공부하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594 |
[역사] HISTORY 미래를 여는 열쇠
김현수 | 청아출판사 | 2015-11-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94 |
[역사] HISTORY 미래를 여는 열쇠
김현수 | 청아출판사 | 2015-11-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미래를 여는 역사 속 열쇠는 무엇일까?
인류가 자유와 평등 의식을 갖기 시작한 때는 언제였을까?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왜 아직도 완결되지 않는 걸까?
? 역사에서 미래를 살아갈 열쇠를 찾는다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늘 불안과 기대가 따라다닌다. 이럴 때일수록 역사는 도움이 된다. 역사는 우리의 현재와 맞닿아 있고, 그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가에 나와 있는 역사서들은 지식 전달에 집중한 나머지 삶과 역사를 직접 연결하고 풀어 가는 부분에서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이 책은 그런 안타까움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두고 쓴 글이다. 과거 사실들을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우리 스스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따라 중요한 사건이나 현상을 ‘미래를 여는 열쇠’로 지목하고, 그 열쇠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본다. 또한 역사의 객관적인 사실을 정리,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와 평등의 추구라는 핵심 주제 아래 일관된 흐름으로 역사를 풀어 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동시에 우리의 위치와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역사를 알아본다
《HISTORY 미래를 여는 열쇠》는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저자는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왜 아직도 완결되지 않는 걸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관된 흐름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러한 구성과 함께 이 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인간의 탄생과 초기 행적에 관해 명확하게 밝혀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구체적이고 연대기적으로 서술된 구약성경 〈창세기〉 편으로 책의 서두를 열었다. 둘째, 세계사의 보편적인 시대 구분이 아닌 각 시대마다 명확한 주제를 드러내 구성하였다. 제1장 ‘토지 중심의 고대’에서는 영토를 중심으로 권력의 정도가 판가름 나는 사회를, 제2장 ‘신 중심의 중세’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에 기독교가 중세의 주역으로 올라선 모습을 살펴본다. 제3장 ‘인간 중심의 근대’에서는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중심으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배경을, 제4장 ‘경제 중심의 현대’에서는 모든 것이 돈과 경제의 정도로 평가되는 사회를 들여다본다. 셋째, 서양사 위주의 세계사가 아닌 동아시아 역사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동서 문화 교류도 체계적으로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많은 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검증된 커다란 사건들을 요약한 후 이를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독자들 스스로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 Check It - 미래를 여는 열쇠!
문명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하나의 주제로 담아내다 보니 세세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커다란 흐름을 중심으로 집필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 속 열쇠를 놓칠 수 없는 법! 《HISTORY 미래를 여는 열쇠》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를 만든 핵심 사건들이나 현상들을 ‘미래를 여는 열쇠’로 지목하고, 그 열쇠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간단히 언급했다. 이로써 우리의 위치와 나아갈 길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
593 |
[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 생각정원 | 2017-04-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93 |
[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 생각정원 | 2017-04-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얼마 전 외교부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부산의 지자체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독일에서 한일 양자회담이 열리기 불과 사흘 전의 일이었다. 회담 자리에서도 일본 측에게 공문 발송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는 한국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후 이듬해인 201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 민간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일제히 중단한 사실을 보도했다. 와중에 일본 고위층의 역사 부정 망언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이 달만 해도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고쳐 부르려 하고 자꾸 눈앞에서 치우려고 할까. 한국정부는 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지방정부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일본 눈치를 살피는 걸까. 한일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공언한 12?28 ‘위안부’ 합의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배 30년, 해방 후 70년…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군함도, 조세이 탄광, 하이난 섬, 파푸아뉴기니…
비극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다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군함도)는 면적 0.063제곱킬로미터(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이곳에 세웠다.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다. 마치 신분 계급을 상징하듯 방파제 끄트머리 가장 낮은 곳에 조선인·중국인 노동자의 숙소가, 그 위에 일본이 최초의 아파트라고 자랑하는 광부들의 주택이, 그 위에 관리인 아파트, 가장 높은 곳에 관리소장의 사택, 섬 꼭대기에는 신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故 서정우 씨는 16세에 하시마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인근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었다(책 65쪽에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가 찍은 높이 10미터의 방파제 위에 서 있는 서정우 씨의 사진이 실려 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시체 수거 작업에 동원되어 피폭되기도 했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2만 명의 조선인이 피폭을 당하고, 그중 절반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하시마 바로 옆에 있는 섬 다카시마에는 미쓰비시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거대한 동상과 석탄자료관이 자리하지만, 강제동원에 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한때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족히 100개는 넘게 들어 있었다는 납골당과 공양탑이 있다. 지금은 파괴되어 더는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책에는 원폭피해자 2, 3세와 시민단체 활동가로 꾸려진 평화기행단이 하시마와 다카시마를 직접 찾아가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의 처절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대만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이난 섬에는 ‘조선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1939년 하이난 섬을 점령한 일본은 이곳을 남방 진출의 거점으로 삼았다. 전황이 악화되어가던 1943년 조선총독부는 형무소에 있던 조선인 죄수들까지 동원해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섬에 보냈다. 일본은 하이난 섬의 토지와 가축, 각종 자원을 수탈하고, 군용시설을 짓기 위해 현지인과 아시아인을 강제노동시키고, 심지어 성노예로 삼고 학살했다. 1945년 당시 도로 건설에 동원되었던 푸아룽 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일본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조선인들을 두 사람씩 나무에 매달아 때렸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때리게 하면서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죽으면 다른 조선인에게 구덩이를 파서 묻게 했다.”
그해 8월 15일 패전한 일본군은 1,000여 명의 조선인에게 갱도를 파게하고 무기와 물자를 묻었다. 그리고 그 조선인들을 전부 살해해 한곳에 묻었다.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후 현지 주민들은 조선인이 묻힌 곳을 ‘천인갱’이라 부르고, 애도의 뜻을 담아 마을 이름을 ‘조선촌’으로 바꿔 불렀다.
하이난 섬의 이 같은 전쟁범죄는 기슈 광산을 운영했던 이시하라산업의 만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활동가, 연구자들이 모여 30차례에 걸쳐 하이난 섬 조선촌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수차례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2001년에는 한 달간 발굴 작업을 시도했는데, 땅을 파자마자 100여 구가 넘는 유골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 그리고 2004년 설치된 강제동원위원회에 차례로, 체계적인 유골 발굴, 관련 문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2006년 ‘기슈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은 일본인 고고학자, 발굴 전문가를 동반하고 독자적으로 발굴을 진행했다.
하이난 섬에 강제동원되었다가 가석방되어 귀향한 한국인들을 찾아 새로운 증언을 듣기도 했다. 모두가 열대기후 속 열악한 환경과 일본군의 폭력 속에서 기아, 질병, 가혹한 노동에 쓰러져간 동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했다. 조선촌은 현재 대규모 개발과 토지 강제수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인이 매장된 땅 절반이 이미 토사로 뒤덮였고 그 위에 도자기 공장이 세워졌다. 현지인은 말한다. “한국정부가 조선인이 묻힌 장소를 어떻게 해줄 수 없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라”고.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원폭피해자, 재일조선인…
증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귀담아듣다
1947년 싱가포르의 창이형무소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조선 청년 조문상은 개성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였다. 그는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이 되었고 교수형을 당했다. 17세 때 위험이 덜 하고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속아서 포로감시원이 된 이학래도 전범재판에 올랐다. 그는 포로감시원이 되자마자 욕설과 구타, 마주보고 뺨 때리기 등의 가혹 행위를 훈련 받았다.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에 젖어 있던 그는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호주정부가 자국의 전쟁포로에게 포로감시원들의 사진을 보이며 용의자를 가려낸 결과였다. 포로들은 실질적인 책임자보다 눈앞에 있는 말단 감시원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학래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
이학래처럼 살아남은 조선인 전범들은 일본 스가모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뒤에도 이들을 석방하지 않았다.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남은 형기를 마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막상 석방되더라도 가석방 신세라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 중에는 삶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재일한국인 전범자들은 ‘동진회’를 결성해 일본 내각이 바뀔 때마다 청원서를 내고 법적투쟁을 벌여 왔다. 17세 소년 이학래는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2004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합국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포로가 혹독하게 당한 것은 사실이고,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형편없었다 해도 연합국에게 불평하지는 않겠다. 정말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일본정부다. 징용해서 써먹어 놓고 필요가 없어지니 다 쓴 걸레처럼 버리고 모른 척한다. 인간다운 말 한마디라도 왜 건네지 않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24개국 417만 명의 전쟁포로를 억류하고 소련의 전후복구사업에 강제동원했다. 일본군에 징병되어 만주?사할린?쿠릴열도 등에 배치되었던 조선인들도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에 포함되어 시베리아 각지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8월에 종전을 맞은 조선인들은 여름 군복 차림으로 시베리아 삭풍을 버텨야 했다. 혹한, 기아, 중노동, 장티푸스·이질 등의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땅이 얼어 바로 묻지 못했다. 소련군은 사망자의 옷을 벗기고 가마니에 말아서 창고에 쌓아두었다가 이듬해 봄 한꺼번에 포로들을 시켜 시체를 매장하게 했다.
전쟁의 막바지에 징집되어 입대 날 바로 소련과의 전쟁이 개시되는 불운을 겪은 이규철의 수기 기록 《시베리아 한의 노래》는 시베리아 억류 피해를 살피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몸조심하고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하는 가족들의 말을 가슴에 새겨 떠나는 아들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누구를 위해 전쟁터로 가야 하나. 일본을 위해서 죽고 싶지 않다. _이규철, 《시베리아 한의 노래》
하바로스크에서 화물선을 타고 귀국한 조선인 포로 중에서 북한을 거쳐 고향 남한으로 내려온 포로들은 기총 사격을 받거나 공작원이나 간첩으로 오해받아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적성국가 체류 경험이 있다고 하여 최전방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들은 그 전쟁에서 희생되거나, 생존하더라도 내내 감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0년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 결성한 ‘시베리아삭풍회’는 일본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전억협)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중앙공문서보관소로부터 노동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시베리아삭풍회와 전억협의 공동 투쟁은 한일 피해자 단체가 함께 싸운 보기 드문 사례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총 55명의 노동증명서를 발급받는 성과를 거뒀다. 시베리아삭풍회는 이후 재한군인군속재판 제2차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고, 기각되자 재차 항소했다. 일본 법원의 기각 사유는 일본정부의 말과 다름없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전쟁으로 우리가 왜 싸우는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낸다는 의미로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것으로, 1951년 9월 8일 조인되었고 이듬해 4월 28일 발효됐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은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전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향유할 수 없게 됐다. ‘한일협정’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을 조인하고 수교에 이른 일이다. 일본의 침략과 가해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죄가 선행되지 않았고, 청구권, 어업, 문화재반환 등에서 한국 측의 지나친 양보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협정은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거의 모든 싸움에서 일본에게는 일종의 알리바이가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법원 판결의 근거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배상문제는 모두 매듭지었다” “한일청구권협정 및 조치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다”는 말이 되돌아오곤 한다.
이는 때때로 일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해석·적용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한 조선인 전범들은 석방을 기대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형기를 마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산 일본군 ‘위안부’?근로정신대 소송은 일본의 지방재판소에서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일본정부가 미국에 로비하여 “전쟁배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2국 간 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을 끌어내면서 흐지부지되었다. 한일협정도 사사건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1967년 원폭피해자협회 회원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인 항의 시위에서, 그리고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 후지코시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일본은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답했다.
2015년 12월 28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의 외교적 압승”이라고 평한다. 피해 당사자와 대다수 국민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1965년 한일협정을, 보상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크게 반발했던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연상시킨다. 지금 일본은 주한일본대사를 귀국시킨 후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서,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10억 엔의 보상금을 보냈다는 말과 “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말과 함께. 일본은 이제 뒤로 물러나 우리끼리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외교부가 지자체에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에 이어 노총이 추진해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건립도 외교부와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왜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리가,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가. 그토록 성급히 두 손을 부여잡고 ‘불가역’을 선언할 이유가 뭐였을까. 식민치하 30년, 해방 70년… 백 년을 하루 같이 싸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이 나라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장애물은 한국정부였다.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원고들은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정부의 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실 조회와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했지만 한국정부는 외교상의 문제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일본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한국정부와 법원의 태도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망각의 현장을 기억의 유산으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들은 잘못 꿰인 첫 단추로 ‘한일협정’을 꼽는다. 안보와 경제에 급급해 정치적 타결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작 먼저 해결해야 할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 청산과 극복 방안을 충분히 논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에 유리한 명분만 우리에게 족쇄로 남았다. 이것은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을 향해 취했던 전략과도 연관이 있다. 미국은 패전한 일본의 전후 개혁을 주도하면서 책임을 묻는 대신 재건을 도왔다.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를 위해 한일회담 타결을 재촉했고, 이 과정에서 과거청산이라는 숙제는 제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일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기는커녕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기에 이르렀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불행은 일본 경제부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은 전후보상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정부가 일본에게서 받은 청구권자금 대부분이 경제건설의 재원으로 쓰였다고 하니,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눈물과 지금의 경제성장을 맞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정부는 2005년에 와서야 한일협정문서를 전면 공개하고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새로 밝혔다. 피해자 구제를 방기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진상규명과 지원법을 제정해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결의가 없었다면, 일본 시민사회가 이에 호응해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조직적 시민운동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피해자와 유족, 한일 시민운동가들의 연대로, 길고긴 재판투쟁으로,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일본이 그토록 ‘근거 없음’이라고 부정하는 역사, 그러나 우리 곁에는 비록 하나둘 사라지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내온 역사의 산증인들이 계신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고, 그러나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걸 상기하고 싶다. 이 책과 함께 이전에는 다 알지 못했던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고, 그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섬세히 기록하고 영영히 유산으로 간직해야 한다.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써내야 한다.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길
나와 당신, 우리의 싸움으로
더불어 점점 더 우경화되는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돌아보자. 분노와 적대감, 반일감정만 높이는 것은 앞으로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각자 ‘책임질 몫을 다하기’ 위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피해자들이, 유족들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듯이, 이제 나와 당신도 무엇으로 각자의 책임을 다할지, 무엇으로 그들의 책임을 따져 물을지 결정할 때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더라도 잠시 이 말에 멈추어 서보길 권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들께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지만, 모든 일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를 도와 소송을 하는데, 좋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미워할 때는 자신이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차근차근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
592 |
[역사] 나는 조선의 처녀다
다니엘 최 | 행복우물 | 2016-05-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92 |
[역사] 나는 조선의 처녀다
다니엘 최 | 행복우물 | 2016-05-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 책은 저자가 지난 5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광복70주년에 맞추어 완성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정신대 위안부 관련 도서들이 대개가 그런 고통을 당한 분들을 인터뷰하여 만들은 대담형색의 책자(위안부 보고서 류)이거나, 또는 전문연구서인 논문 류, 아니면 현장에서 일본군 병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에 치우쳐서 너무 단편적인 내용에 한정된 작품(소설류)이었다면, 다니엘 최는 이러한 차원을 뛰어넘어서 그 스토리를 폭넓게 잡아 장장 528쪽의 소설로 만들었다는 데에 이 책의 특징이 있다.
조선처녀들을 강제로 납치하거나 공출한 일제의 만행이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게 된 배경이나 원인을 제1부의 남경대학살이라는 테마를 통하여 자연스레 설명하였다. 특히 제2부와 제3부에서는 일제에 의하여 평화롭던 두 가정이 해체되는 비극을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으로 재미있게 꾸몄다.
우리의 할머니들이요, 어머니들이요, 누나들이었던 그분들의 아픈 과거를 흥미로운 소설로 쓴다는 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많은 독자들이 읽고 함께 분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정말 그분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분들을 지켜주지 못한 조선 남자의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쓴 작품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이틀, 또는 사흘 동안 만큼은 1930 ~ 40년대의 만주, 중국, 사이판으로 시간여행과 공간여행을 떠나는 행운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최대한 감동적인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그 당시에 사용하던 언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대표적인 단어들이 변소(화장실), 반공일(토요일), 월사금(수업료), 비율빈(필리핀), 여고보(여자고등학교) 등이다.
책의 전체적인 배경은 1930년대와 1940년대이지만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하여 2015년 8월 15일 주인공 수희의 양녀가 고별강연을 하는 형식을 빌려서 일제의 잔학상을 종합적으로 압축하여 고발한 대목과 같은 저자의 재치가 작품의 곳곳에 넘쳐흐른다.
이 책을 읽고서도 울분을 느끼지 못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에 의하면,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 말은 저자가 이 책에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
591 |
[역사] 나쁜 짓들의 역사
로버트 에반스 | 영인미디어 | 2017-08-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91 |
[역사] 나쁜 짓들의 역사
로버트 에반스 | 영인미디어 | 2017-08-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술 담배 매춘 마약… 인류의 문명을 세운 악덕! 소위 나쁜 짓들의 재조명 보고서
스스로를 ‘괴짜’라고 말하는 Cracked.com의 편집장이자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에반스는 술ㆍ담배ㆍ매춘ㆍ마약… 등 인류가 금기시 했던 나쁜 것들, 즉 악덕이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덕이 인간 역사를 바꾼 멋진 방식을 하나둘씩 찾아내고 직접 체험해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또 문명을 탄생시킨 것은 맥주의 힘만이 아니었음을 알아냈다. 더 크고 더 멋진 향연을 열려고 하는 욕망이 인간의 문명을 탄생시키고 역사를 바꾸었다고 이야기한다.
악덕이 대중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부활하고 덕후의 세계가 인정받는 요즘. AI가 인간의 많은 것을 대치할 시대에 ‘금지된 것’을 탐하는 도전과 창의적인 체험에 몰두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체험 덕후 저자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세상을 변화시킨 15가지의 악덕과 그것을 즐기는 방법은 남다른 호기심을 가진 독자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이드가 될 것이다.
|
590 |
[역사]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
로날트 D. 게르슈테 | 미래의창 | 2017-02-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90 |
[역사]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
로날트 D. 게르슈테 | 미래의창 | 2017-02-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황제를 처단한 폭우, 독재자를 위협한 안개!
그날의 날씨는 제국을 멸망시키고, 인류를 단련했다 로마제국이 황금기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 날씨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까지 오늘의 날씨는 내일의 역사가 된다 워털루 전투의 그날,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히틀러가 안개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맥주홀을 서둘러 떠나지 않았다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그날 해풍이 몰아쳤다면! 만약, 역사의 ‘그날’ 날씨가 맑고 쾌청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기원전 200년 로마로부터 시작해 2015년 현재 캘리포니아 가뭄까지. 날씨는 역사의 흐름을 차분하게, 혹은 격렬하게 만들어왔다. 따뜻한 날씨에 제국은 번성했고, 추운 날씨에는 침략과 전쟁이 일어났다. 비바람은 전쟁의 승패를 갈랐고, 쏟아지는 비는 대기근을 불러왔으며, 화산 폭발은 인류의 낮을 지우고 동시에 인류 최악의 전염병을 몰고 왔다. 이 책은 잘 알려진 역사의 ‘그날’ 이면에 작용한 날씨의 힘이 새로이 보여주는 것은 물론, 역사 전반에 날씨가 끼친 영향을 다시금 느끼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에 더해 날씨와 기후전문가들이 절대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온난화의 주범과 날씨의 변화에 제대로 도모해 지금의 역사를 제대로 써내려가는 방법까지 톺아볼 수 있다. 우리의 기분은 날씨에 의해 쉽게 좌우된다. 날씨가 좋으면 붕붕 날던 기분도, 날씨가 흐려지면 빗방울과 같은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이렇게 날씨는 인류에게 사소한 기분을 전하는 동시에 기근, 가뭄, 기나긴 장마와 어둠, 혹한, 버티기 힘든 질병으로 이어지며 인류사에 어마어마한 궤적을 그려냈다. 날씨는 인류에게 기회이자 전환점이었으며, 천벌이자 종착점이기도 했다. ‘그날’의 날씨는 인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제국과 문명마저 무너뜨리는 날씨의 힘 로마제국 전성기에는 매년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포근하고 변덕 없는 날씨 속에서 충분한 소출량을 기반으로 그들은 안정적인 정치를 다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혹한이 닥치면서 로마는 분열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어진 황제가 이어지던 평화는 깨지고, 황제의 자리는 1년이 채 가지 않는 피의 옥좌가 되었다. 잔혹한 권력 찬탈의 칼바람을 맞으며 제국의 땅은 쟁기를 댈 수 없을 만큼 굳게 얼어붙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땅이 얼며 날씨의 신이 완전히 그들을 저버렸을 때 로마는 멸망하고 말았다. 거대한 제국조차 하늘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제국의 멸망 이후, 날씨의 신은 더 무서운 기세로 고대 문명까지 뿌리 뽑아 버린다. 1,000년 이상 꽃을 피웠던 마야 문명은 오싹할 정도로 웅장한 문화유산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좁은 면적에 1,000만 명의 인구가 밀집해 살면서 잦은 벌목과 개발이 잇따랐고, 토양의 변화는 곧 날씨의 변화를 가져왔다. 기나긴 역사와 엄청난 인구는 가뭄과 기근을 마주하며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날씨의 신, 승자와 패자를 가르다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지형을 재치 있게 활용한 스파르타의 최정예부대에 휘둘린다. 하지만 결국 그들을 화살받이로 만들어 승리를 거두며 ‘신왕’의 위용을 뽐낸다. 그러나 이 위대한 왕조차 그리스 연합군을 맞아서는 참담한 패배를 거두고 말았다. 거센 입김을 내뿜는 바람의 신 때문이었다. 페르시아의 군선은 그리스 연합군의 4배에 달했지만, 거센 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선고가 높은 배들은 서로 부딪치며 부서져 내렸고, 그 틈을 타 연합군은 맹공을 퍼부었다. 이처럼 약소국에게 바람의 신은 유독 후한 면모를 보였다. ‘신풍’이라 불리는 신의 바람, 가미카제는 엄청난 부대를 이끌고 일본을 침략한 몽골군으로부터 일본을 지켜주었고 이후 가미카제는 일본의 신화가 되었다. 영국 또한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투에서 해풍의 도움을 받았다. 무적함대는 전투에서 50척의 배와 5,000여 명의 병사를 잃었지만 영국은 작전에 사용한 배 외에 한 척도 잃지 않았으며, 150명의 사상자만 냈을 뿐이었다. 영국은 이날의 전투를 기념하며 기념주화에 “신께서 바람을 보내시니 그들이 흩어지더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정녕 ‘신’이 승패를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투였다. 역사 속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한 날씨 날씨는 황제와 인류 역사상 가장 지독한 독재자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정복욕에 불타는 황제에게는 매서운 추위와 끈질긴 비가 따라붙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잔혹한 추위에 떨고, 워털루의 진흙 속에서 질척거리다가 결국 정치 생명을 마감하고 말았다. 인류에게 홀로코스트라는 재앙을 안겨준 독재자 히틀러는 안개에 울고 웃었다. 폭탄이 설치된 맥주홀에서 안개 덕분에 테러를 피한 그는, 본국에서 치러진 전투에서는 갑자기 안개가 걷혀 연합군에게 되레 당하고 만다. 직경 40센티미터가 넘는 우박이 프랑스 제3신분의 울분에 도화선을 그으며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이후, 수많은 이들을 단두대로 보내는 ‘공포정치’라는 참혹한 결과를 자아낸다.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참수는 한바탕 쏟아진 장대비로 막을 내린다. 공포정치의 수장인 로베스피에르가 마지막 변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의 변론을 듣기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쏟아지는 비에 뿔뿔이 흩어졌고, 그는 권총에 맞아 부서진 턱을 하고 단두대에 올라 마지막 대중연설을 장식하고 만다. |
589 |
[역사]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 (주)메디치미디어 | 2015-05-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89 |
[역사]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 (주)메디치미디어 | 2015-05-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사활이 걸린 한반도의 미래 전략을 짜는 필독서! _이어령
21세기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꿔놓은 임진왜란! 한국은 역사적으로 대륙이 아닌 해양 세력에 맞서면서 강성해졌다 해양과 대륙의 충돌로 해석하는 임진왜란은 한반도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이후 동아시아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이 책은 동아시아를 보는 일반적인 통념과 전혀 다른 결론을 보여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양과 대륙이라는 양대 세력이 다투면서 문명과 역사가 바뀌었다는 주장은 많았다. 다만 그 배경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이고,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이라는 해양 세력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는 것을 보면 생소함을 넘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도 말했듯이, 한국은 해양과 대륙 사이에 있는 반도 국가로서 그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21세기 한국에 걸맞은 역할이 필요하다. 대륙 일변의 역사에서 벗어나 해양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본다면, 당신은 오늘날까지 연속하는 해양과 대륙의 패권 대결을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해양 세력이 동아시아 500년 역사를 바꾸어놓았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화사상의 영향을 받아왔다. 조선시대까지 명?청과 조공관계를 맺으며 국제관을 형성했기에 ‘소중화(小中華)’의 시각에서도 벗어나기 어려웠다. 21세기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숙명처럼 여기며 기뻐하기도 한다. 저자는 대륙뿐 아니라 해양과도 접한 한반도를 주목한다면 이제 중심 시각을 해양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늙어서 과대망상’을 하는 바람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고 해도, 이 사건은 대륙, 한반도, 해양의 관계를 바꿔놓은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들어갔던 사람들(도래인)이 다시 대륙을 넘본 것이 당연할 수 있으나, 이전까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중앙집권화된 해양의 습격이었다. 한?중?일 삼국지적 관점을 넘어서-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을 포함한 열국지로 시야를 넓히다 임진왜란은 비단 조선과 일본만의 전쟁이었을까? 사실 해양의 부상과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를 바꿔버린 국제전쟁이었다. 조선과 명이 일본에 신경 쓰는 사이에 북방 만주인이 청을 세웠으며, 이는 명나라 멸망과 또 다른 동아시아 해양 중심지, 타이완의 탄생을 불러왔다. 여기에는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한 대항해시대의 유럽이 개입돼 있으며, 시베리아를 넘어온 러시아까지 동아시아와 접촉한다. 그러나 16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과거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짐에도 조선은 당대 굴지의 무역항 마카오가 어디에 있는지, ‘나선정벌’을 통해 군사적으로 부딪친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중국 대륙 너머의 세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대륙의 삼국(위·촉·오)으로 한정하고 비한인을 오랑캐로 보는 ≪삼국지연의≫적 세계관의 폐해다. 현재도 ‘한·미·일’, ‘한·미·중’ 등의 삼각 구도로 한정해서 보려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수많은 이해관계국이 얽혀 각축전을 벌이는 ≪열국지≫적 세계를 구상해야 한다. 고문서, 엽서, 팸플릿 등 180여 종의 시각자료를 담다 이 책은 각종 자료를 활용한 저자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중국, 일본, 러시아의 고문서를 비롯해 우표와 엽서, 사진, 팸플릿 등 여러 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가며, 새로운 해석과 상식을 덧붙여 흥미를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이를테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는 각각 불교와 가톨릭 신자였는데, 이들에게 임진왜란은 종교적 성전(聖戰)이었다. 일본인도 임진왜란에 대한 조선인의 복수를 두려워했고, 이 불안감을 연극과 소설로 표출했다. ‘인도는 한반도에는 악몽이었던 대동아공영권에 독립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등의 이야기는 낯설고 생소하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궁벽한 곳에서 애써 찾아낸 것이 아니다. 한국이 동아시아사를 대륙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놓치는 것들이다. 만주와 러시아, 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르는 더 넓은 지리적 범주와 다양한 이야깃거리 사이에서 해양 세력이 만들어낸 역사의 흐름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588 |
[역사] 레일웨이 맨
에릭 로맥스 | 황소자리 | 2017-08-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88 |
[역사] 레일웨이 맨
에릭 로맥스 | 황소자리 | 2017-08-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를 추적하고, 바로잡고, 속죄하게 하라!
화해나 용서는 그 너머에서 고려할 문제다.
“대단한 책, 대단한 인물.” -〈데일리 메일〉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이 걸출한 자서전을 반드시 일독하길!” -〈인디펜던트〉
“한 전쟁포로의 가슴 저린 이야기를 담은,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책. 자서전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가디언〉
“역사에 짓눌린 가슴 아픈 개인사를 품위 있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들려준다.” -〈선데이 타임스〉
“비통하지만 강직하고, 그야말로 사려 깊은 회고록이다.” -〈헤럴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질의 회고록은 논외로 치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수십억 마디 말보다 이 책 한 권을 읽는 편이 더 낫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문학성과 역사성을 겸비한 명작.” -톰 펙
“증오스럽던 적이 피를 나눈 형제가 되기까지, 담담하고 절제된 목소리로 전하는 감동 실화.” -〈퍼블리셔스 위클리〉
◈ 책의 개요
콜린 퍼스, 니콜 키드먼 주연,, 영화 〈레일웨이 맨〉 원작!!
에릭 로맥스는 1919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탔으나 그리 유별날 것 없는 외동아이였다. 기계문명이 인류에게 신세계를 선사할 거라는 믿음이 팽배하던 그 시절, 소년 로맥스는 주변 여러 친구들처럼 ‘철도광’이 되었다. 예측가능성과 정확성을 중시하는 그의 성향은 거대한 기차의 동력과 거미줄처럼 얽힌 철도망 탐색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취미가 훗날 최악의 철도에서 그를 후려쳐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비통하되 강직하고, 사려 깊은 회고록
이 책 《레일웨이 맨The Railway Man》은 기차를 향한 열정과 전쟁 고문이 남긴 상처, 두 가지 치유 불가한 병이 얽히고설켜 결코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만 했던 한 남자의 특별한 회고록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수십억 마디 말보다 이 책 한 권을 읽는 편이 더 낫다”는 상찬을 들은 《레일웨이 맨》에서 70대에 접어든 에릭 로맥스는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관통한 태평양전쟁과 그 과정에서 자행한 일본군의 패륜적 만행을 냉정하고 통렬하게 고발한다. 아울러 전쟁과 고문이 남긴 상처로 인해 순수성과 안정성을 탐미하던 세계로부터 영원히 격리된 채 절뚝발이처럼 살아오면서도 반세기에 걸친 집요한 추적으로 가해자를 찾아내고 마침내 그와 대면하기까지, 가슴 저린 이야기를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들려준다.
대영제국이 무너졌다. 에릭 로맥스는 일본군 전쟁포로가 되었다
1939년, 우체국에 다니던 에릭 로맥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건 바다 건너 먼 곳의 이야기였다. 스무 살 나던 해에 영국 육군 통신장교로 자원한 것도, 순전히 재미없는 직장생활의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먼 바다에서 폭풍이 몰려오듯이 전쟁은 소리 없이 성큼성큼 다가왔고, 로맥스가 속한 노스 시그널 국왕 수비대는 1941년 3월 중순 대영제국 동쪽 국경을 수비한다는 임무 아래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영국은 영원하리〉를 들으며 승리감에 취했던 것도 잠시. 야맹증에 근시까지 있다던 일본군의 무차별적 공격 앞에서 대영제국 육군과 해군은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이제 에릭 로맥스 소위는 이름조차 생소한 극동지역 밀림 속에 버려진 전쟁포로였다.
일본군은 동아시아 패권을 영구화할 목적으로 착공한 버마-시암(미얀마-태국) 간 철도 건설현장에 연합군 전쟁포로들을 투입했다. 역사상 최악의 토목공학 참사이자 침목 하나 꼴로 한 명의 인명이 희생된, 이른바 ‘죽음의 철도’ 공사판이었다. 장소와 시간 소유권을 박탈당하고, 굶주림과 중노동에 시달리며 이미 죽음의 아가리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심함을 가장한 저들에게 더 음험한 계략이 숨어 있다는 걸 간파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라디오를 제작하고 철도지도를 그려 소지했다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를 씌웠다
1943년 8월 29일 동틀 무렵, 기술 인력이 따로 머무는 칸차나부리 포로 막사에 일단의 일본군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로맥스와 동료들이 조립한 라디오를 찾아냈고 오래지 않아 ‘철도광’ 로맥스가 열정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그린 현지 지도를 손에 넣었다. 도리깨질 하듯 무차별로 쏟아지는 폭행이 며칠 밤새 이어졌다. 아무리 주님을 부르고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소용없는 철저한 고독과 절망 속에서 매질을 당하는 동안 갈비뼈가 부러지고, 엉치뼈와 팔목이 으스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었다.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동료 두 명의 시신을, 일본군은 변소에 던져버렸다. 설상가상! 에릭 로맥스는 철도 루트가 표기된 지도를 그려 소지한 영국군 통신장교 출신이었다.
홀로 불려간 켐페이타이(일본 군경찰인 헌병대) 건물에서 그 끔찍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꽤 상세한 지도다. 철도 루트는 어떻게 알았나? 지도는 어디서 구했나? 누구와 내통했나? 어디로 도주하려 했나? 배후를 대라.” 어린시절부터 ‘철도광’이었다고, 기차와 철도시스템을 관찰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매혹적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휴식도 잠도 없는 심문이 줄기차게 이어지던 어느 순간부터 고문이 동원됐다. 물이 콸콸 뿜어져 나오는 파이프가 로맥스의 입과 코로 향했다. 물줄기는 기관지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폐와 위장까지 가득 채웠다. 그리고 또다시 심문과 폭행, 고문…. 숨을 쉴 수도, 견뎌낼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차라리 무의식 상태가 되고 싶어 애를 썼지만 노련한 고문기술자였던 헌병대 하사관은 로맥스가 완전히 까무러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장이 뒤집힐 듯한 구토와 함께 자존감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게워내던 순간, 짐승처럼 널브러져 “엄마”를 찾아 울부짖던 기억, 섬망과 코마에 빠져 생과 사를 오가던 장면들, 그리고 “로맥스 말해.”라고 끊임없이 다그치던 키 작은 통역관의 목소리, 문득 자신의 맥을 짚던 그의 손길….
형언할 수 없는 폭력과 야만 속에 내린 한 줄기 은총 덕에 로맥스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나를 폭행하고 심문하고 고문한 놈들을 찾기까지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전쟁이 끝나고 조국으로 돌아온 직후 영국 육군센터에서 짧은 의료검진을 받았다. 제대로 걸을 수 있고 정상 체온에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다. “이제 당신 삶을 사세요.” 인간적 존엄성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지옥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로맥스에게,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은 전쟁 이전의 세계, 정연하고 아름다웠던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만 잊고 털어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잊을 수도, 용서할 마음도 없다.” 종전 후 영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과오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로맥스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시시때때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복수심을 무기 삼아 그는 그때 그곳에서 왜 그렇게 치욕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자신을 때리고 감금하고 고문한 자는 누구인지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마침내 50년이 지난 후, 단 한순간도 잊을 수 없던 일본군 통역관 나가세 다카시(그는 “1942년 싱가포르에 도착한 조선인 위안부들은 모두 군용선으로 실려왔다. 그녀들은 애초 일본군 식당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착한 후 일본군이 위안부를 할 것을 강요했다.”라며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징용을 증언하기도 했다)를 찾아내고, 비극이 자행된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나 진정한 속죄와 용서를 이루어내기까지….
진정한 속죄와 화해를 이끌어내는 특별하고 올곧은 방식!
참혹한 개인사를 정밀하고 품격 있는 문장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1995년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충격적인 화제를 불러왔고 그해 Waterstone’s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이후 NCR Book Award, Esquire 논픽션상, JR Ackerley Prize를 연거푸 수상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2013년에는 조너선 테플리츠키가 감독하고 콜린 퍼스,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로 제작되었다.
우리는,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로 인해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런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 《레일웨이 맨》은 눈물겨운 감동을 넘어 여러 겹의 울림과 각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587 |
[역사] 류성룡, 7년의 전쟁
이종수 | 생각정원 | 2015-03-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87 |
[역사] 류성룡, 7년의 전쟁
이종수 | 생각정원 | 2015-03-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1. 류성룡,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말하다
- 《징비록》이 말하는 또 하나의 뼈아픈 전쟁사, 임진왜란 《징비록》은 류성룡이 1592년부터 7년에 걸쳐 진행된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기록한 전란사다.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라면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을 비롯해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당대 문집들에 실린 기록 등 여럿이 존재한다. 그중 징비록은 몇 가지 큰 가치를 담고 있다. 첫째, 《징비록》의 기록 범위가 대단히 폭넓다. 류성룡은 영의정이자 도체찰사로서 전란의 급박한 사정과 실체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했다. 당시 조정 내부의 움직임은 물론 이산해, 정철, 이덕형, 이항복, 이순신, 원균, 이일, 신립, 김성일 등 주요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인물평까지, 나아가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의 외교전과 일반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생활상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국내는 물론 국외 정세까지, 기록문학으로 《징비록》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둘째, 극적 구성력이다. 미술사가이자 《류성룡, 7년의 전쟁》의 저자 이종수는 ‘침략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으로 시작해서 국가적 ‘영웅’이자 ‘헌신’의 대명사인 이순신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구성을 높이 평가한다. 이 시작과 끝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려는 위정자들의 위선과 혹독한 전란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곤궁을 또렷하게 서술했다. 무엇보다 《징비록》이 의미있는 것은 이 책의 집필 의도에 있다. 《징비록》은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말하는 책이다. 조선의 수상인 류성룡은 전란의 책임을 지고 지난 일을 반성함과 동시에 후세들에게 다시는 이렇게 처참한 전쟁을 물려주지 않고자 임진왜란이라는 뼈아픈 전쟁사를 기록했다. ‘징비懲毖’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대비하라’는 뜻으로, 《시경》의 말을 인용하여 류성룡의 집필 의도를 담고 있다. 류성룡은 집필 과정은 물론 참혹한 전란 과정에서 국가의 수상으로 ‘책임’있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왔다. 전쟁이 시작되기 한 해 전인 1591년, 좌의정 류성룡은 진관제 복구, 이일의 경상병사 파견 등 전란에 대비할 것을 건의했으며,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했다. 전란 후, 임금인 선조와 도승지 이항복이 명나라로 건너가고자 할 때, 류성룡은 ‘어가가 한 걸음이라도 조선 땅을 벗어난다면, 이미 조선은 조선의 것이 아니다’라며 임금의 내부를 막아냈다. 이 와중에서도 류성룡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에게 찾아가 서울로 진군할 것을 독촉하며, 무릎을 꿇고 눈문을 흘리기도 했다. 더불어 전쟁으로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 나라의 살림을 돌보기 위해 작미법을 건의했고, 새로운 군 조직을 만들기 위해 공을 세운 자는 면천과 면역을 통해 노비에게도 양민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건의했다. 《류성룡, 7년의 전쟁》은 혹독한 전쟁 앞에서 온몸으로 국가와 백성을 책임지려 했던 류성룡의 평전이다. 실록과 류성룡이 남긴 《징비록》, 그리고 문집들을 중심으로 저자 이종수는 임진년부터 무술년까지, 7년간의 전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또 하나의 임진왜란사다. 혹독한 전쟁과 죽음을 온몸으로 방어한 한 인간의 고뇌와 결단을 비장하게 담았다. 2. 미술사가 이종수가 주목한 ‘조금 느슨한’ 류성룡 평전 - 《징비록》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류성룡을 읽다 미술사가 이종수는 역사 속 인물의 내적 고뇌와 미학적 승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다. 그에게 류성룡은 퇴계 이황의 큰 제자이자 당파 간 다툼이 예사롭지 않았던 선조 대에 남인南人의 영수로 거론되는 고위 관료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저자는 《그림문답》을 집필할 때도 「독서당계회도」 내용을 구상하며 류성룡을 업급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징비록》 앞에서 그만 생각이 흔들렸다고 고백한다. 가장 매력을 느꼈던 지점은 류성룡의 작가적 기획력이었다. 사료적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을 시작으로 이순신의 죽음에서 마무리한 탁월한 구성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징비록》을 반복해 읽으며 다시 감탄한 것은 목격자로서의 냉철하고 치열한 증언이었다. 그는 영의정이자 도체찰사로서 전란의 책임을 지고 전국을 누빈 7년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란 후에 다시 시간을 거슬러 비극을 되새기며 오롯이 혼자서 뼈아픈 전쟁을 더 아프게, 더 구체적으로 한 자 한 자 기록해냈다. 저자 이종수는 임진왜란과 자신의 전쟁을 견뎌낸 류성룡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사료에 기대되 그 사이 사이에 숨은 류성룡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조금 느슨한’ 평전을 기록하고자 했다. 《징비록》을 집필했던 안동의 옥연정사를 방문해 그의 시선과 마음이 머물렀던 자리를 더듬었고,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 속에서 그의 진심을 읽으려 애썼다. 이종수는 류성룡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전 생애가 아닌, 그를 ‘류성룡’으로 기억하게 해준 임진왜란에 집중했다. 선조를 대할 때마다 가슴 아파했던 마음의 거리, 당파가 달랐지만 이덕형을 향한 깊은 신뢰, ‘그의 바다’를 지킨 이순신을 향한 마음, 무엇보다 전란을 가장 고통스럽게 견디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 《류성룡, 7년의 전쟁》은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의 전쟁을 따라간 기록이다. 역사 속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혹 열망하는 까닭은 이 가난한 시대의 무기력함 때문일 것이다. 전쟁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 않는 오늘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그 7년의 전쟁을 치러낸 누군가를, 종사와 백성을 지키고자 오직 제자리에 충실했던 누군가를, 그리고 책임진 자로서의 부끄러움까지 솔직하게 고백했던 누군가를 떠올려본다. (…)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지난 일을 돌아보며 앞일을 헤아리라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덜하지 않은 울림이다. - 서문 중에서 3. 국가와 백성을 온몸으로 지키려 했던 류성룡의 ‘책임’ - 류성룡의 주요 기록 장면1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 전쟁을 대비하는 류성룡 (본문 제1장 〈첫 장계〉 38쪽) 일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던, 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591년. 좌의정 류성룡은 진관제 복구, 이일의 경상병사 파견 등 전란에 대비할 것을 건의한다. 이 가운데서도 그의 ‘안목’이 빛을 발한 순간은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성사시킨 일이다. 이후 전쟁의 흐름을 생각해볼 때, 이야말로 조선의 운명을 좌우했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장면2 선조의 내부를 막아서는 류성룡 (본문 제3장 〈도강〉 73쪽.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1일 참조) 파천을 단행한 선조는 동파에 이르러 장차 자신이 어디로 피난해야하겠는가, 대신들에게 묻는다. 속마음은 이미 명나라로 망명하고자 했던 것. 이에 도승지 이항복은 의주로 올라가, 만약의 경우에 명나라로 건너가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내자, 류성룡은 그에 대한 강한 반대로 맞서게 된다. 조급해진 선조는 명나라에 내부를 청하는 것이 자신의 본래 뜻이었음을 밝히게 되지만, 류성룡은 ‘어가가 한 걸음이라도 이 땅을 벗어난다면, 이미 조선은 조선의 것이 아니다’라며 임금의 내부를 막아낸다. 장면3 동파에 머물며 이여송의 참전을 독촉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는 류성룡 (본문 제6장 〈진퇴〉 186쪽) 벽제관 전투의 패배로 후퇴, 평양에서 시간만 끌며 전쟁을 방기하는 명군 제독 이여송. 류성룡은 동파의 임진강 전선을 지키며, 끊임없이 이여송에게 서울로 진군할 것을 독촉한다. 서울 주변의 조선군들의 진영을 살피고, 동파로 모여든 조선 난민들을 보살피는 등 서울 수복을 위해 전선에서 ‘도체찰사’로서의 책임에 온 힘을 쏟는다. 장면4 전쟁을 견뎌내고 백성의 삶을 회복시킬 방안을 고민하는 류성룡 (본문 제8장 〈재조〉 240쪽, 260쪽) 훗날 대동법으로 시행된 ‘작미법’은 류성룡의 생각과 실천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으로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 나라의 살림을 돌아본 조치였다. 전쟁 중 현장의 생생한 실정을 알고 있던 영의정으로서 누구보다도 나라와 백성의 ‘삶’을 고민했던 그였기에 개혁적인 조치를 건의하고 실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함께 훈련도감과 진관제 복구를 건의하여 새로운 군 조직으로 자주적인 군사력 확보를 실행하고자 했다.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으로, 공에 따라서 면천과 면역을 통해 노비에게도 양민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건의하였다. ‘사노비 또한 조선의 백성이다’는 주장으로 노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4. 류성룡, 그는 누구인가? - 《징비록》의 저자 서애 류성룡를 말하다 류성룡은 1542년 10월 1일, 부친 류중영柳仲?과 모친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4세 때 글을 읽을 줄 알았고 6세에 《대학》을, 8세에 《맹자》를 읽었다. 13세 때 서울의 동학東學에서 《중용》 《대학》을 강독했으며, 17세에 전주 이씨를 배필로 맞았다. 1561년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춘추》를 읽고, 21세에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몇 달 간 《근사록》 등을 수업했다. 가르침의 기간은 길지 않았으나 스승의 칭찬을 받는 큰 제자로서, 이후 퇴계학파의 한 줄기를 이루었다. 1566년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르고, 28세에는 성절사聖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을 다녀왔다. 29세에 경연 검토관으로 경연에 들어가 제일의 강관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으며, 같은 해 가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이후 대사간?대사헌을 비롯해 대제학과 판서에 오르는 등 청요직을 두루 겸했으나 당파 간의 갈등으로 여러 차례 사직을 청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머물기도 했다. 좌의정 재임 중인 임진년(1592) 전쟁이 일어났다. 1593년 10월에 영의정에 임명돼 전쟁이 끝나가는 1598년 10월까지 도체찰사를 겸하면서 정치와 군사의 최고책임자로서 전쟁을 지휘하고 국난을 수습하는 데 온힘을 다했다. 1598년 10월, 주화오국主和誤國의 죄인이라는 북인들의 탄핵으로 영의정에서 체임된 후 11월 19일 파직과 함께 낙향, 12월 6일 삭탈관작을 당했다. 1600년 직첩을 돌려받고 1602년에는 청백리로 뽑히는 등 이름이 회복됐다. 하지만 거듭된 소명에 모두 응하지 않고 칩거한 채 《징비록》 등의 집필과 학문에 전념했다. 1607년 5월 6일, 66세로 졸했다.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
586 |
[역사] 미국, 어디까지 알고있니?
홍세훈 | 웅진지식하우스 | 2014-07-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86 |
[역사] 미국, 어디까지 알고있니?
홍세훈 | 웅진지식하우스 | 2014-07-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려는 모든 이를 위한 단 하나의 아이템
이 정도는 알고 가야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나라 미국. 그러나 정작 미국에 가보면 우리는 그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걸 절감하곤 한다. 미국 여행이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고, 해마다 미국 유학생과 어학연수생이 증가하고 있다. 또 해외 경험이 풍부한 요즘 청년세대는 영미권 국가로 바로 취업을 시도하기도 하며, 비즈니스 출장으로 왕래하는 인구도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그저 영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미국의 문화와 역사 전반의 이해 없이는 매순간 보이지 않는 벽에 좌절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독자를 위해 만들어졌다. 영문학을 배우고 듀크대에서 미국종교사를 전공한 저자는 직접 체험한 그들의 문화, 그리고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미국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으로 흡수했다. 그리고 풀브라이트 장학금까지 받고 유학을 다녀와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살았지만 만화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우리가 알아야 할 미국에 대한 상식과 교양을 쉽고 친근한 만화로 풀어냈다. 이 책은 미국의 수많은 인종과 넓은 대륙, 그리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쉽고 빠르게,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겪은 생생한 에피소드를 통해 살아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담배와 대학과의 상관관계부터 미국이 세계 대통령을 자처하게 된 배경, 미국의 기독교가 때론 광기를 드러내게 된 이유, 그들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 다문화 사회에서 발생한 언어 습관, 그리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탄생과 재임 이후의 평가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의 장면들과 그 배경을 유쾌한 유머를 곁들여 유익한 정보로 전달하고 있다. 기존의 미국사를 다룬 책들은 너무 어렵거나 너무 시사적이거나 정치사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앎의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그 벽이 높고 험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구나 ‘쉽고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미국사 교양만화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
585 |
[역사] 선조들의 사생활
이선학 | 휘닉스드림 | 2011-11-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85 |
[역사] 선조들의 사생활
이선학 | 휘닉스드림 | 2011-11-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선조들의 사랑과 절개는 꽃보다 아름다웠다”
우리 선조들이 외세의 침입에도 5천 년 역사를 지켜올 수 있었던 힘이 민족의 단결의식, 사람 사이의 정, 그리고 정신력이었음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식의 순간적인 가치에 의미를 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선조들이 전해주는 뿌리 깊은 인간에 대한 존중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신토불이의 지혜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반만 년 역사 속에서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설화를 통해 드러나고,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진 재미있는 후일담은 또다른 즐거움을 전해줄 것이다. 또 생생하게 손에 잡히는 영웅들의 활약을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에도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이 책에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배우면서도 조금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위인들이 바로 우리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은 단순히 스쳐가는 한 토막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인물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 수 있는 친절한 이야기꾼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우리와는 다른 뛰어난 인물이라고 알았던 영웅들이 때로는 사소한 일에 아파하고, 고민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는, 사람 냄새 팍팍 나는 똑같은 인간적 약점을 가진 것을 볼 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 책상 위의 친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단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바로 나와 피가 통하고 뿌리가 같은 선조들이라는 사실은 정서적 동질감을 듬뿍 느끼게 하고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 때문에 선조들의 이야기들은 오래오래 끓인 설렁탕처럼 구수하고, 진한 맛을 가진 지식의 영양분이고, 미래를 향한 훌륭한 나침반 구실도 하며, 때로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많은 상황들에 대한 판단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올 수 있는 비결을 담고 있다. 우리가 겪는 인생의 고비마다 선조들이 세상을 살아갔던 임기응변의 재치와 삶의 여유를 배워야 한다. 이제 독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인생 백년의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선조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도 ‘다빈치 코드’ 같은 비밀 코드가 존재한다! - 당나라 태종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 그림’의 비밀 당나라 태종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하나 보냈다. 그 그림은 삼색 모란꽃이 활짝 피어있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하는 말, “이 꽃은 향기가 나지 않겠구나!” 그림만 보고 그 꽃의 향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는 선덕여왕의 이 말에 주위의 신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중에 실제로 당나라 태종이 보내온 꽃씨로 모란꽃이 피고 나서 정말 향기가 나지 않았다. “여왕님, 이 꽃에 향기가 나지 않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신하들과 나인들은 선덕여왕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 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닮은 꼴 역사 속으로!’ - 진정한 리더는 국민이 ‘NO’라고 해도 행진한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쯤에 온조왕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사람의 신하와 많은 백성들과 더불어 나라를 세우고 백제라 일컬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고, 더구나 새로 나라의 기틀을 잡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를 온조왕은 깊이 깨달아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게 된다. 온후하고 너그럽고 다정한 자기 인품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을 거느리자면 때로는 눈물과 인정을 버려야 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가혹하다고 할 만한 일을 시켜야 할 경우도 있고, 죄를 지은 자에겐 가차 없는 벌을 내려 법도를 세워야 하기도 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선조들의 ‘숨겨진 2%’ 이야기 - 김유신은 부모의 연애 스타일을 물려받았다(?) 신라 진골의 명문인 김서현의 부친은 유명한 장군으로서 백제와 싸웠는데, 그는 장수 1 명을 사로잡고, 군사 1만여 명을 몰살시킨 큰 공을 세웠다. 김서현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쟁의 공로가 많았다. 서현은 젊은 시절에 유명한 연애사건을 일으켰는데, 갈문왕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의 사랑이었다. 서현은 만명을 사모하는 여러 귀공자들을 물리치고 사랑의 승리자가 된 행운아였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정열이 지나친 서현과 만명은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 전에 몸을 허락하는 깊은 관계에 빠졌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불장난은 용서 못한다.” 그들의 집안에서는 다 같이 그들의 방종한 연애를 야합이라고 분개하며 용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집을 뛰쳐나와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채 완전한 부부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김유신을 잉태하게 된다. 특이하게도 20달 동안 애써서 낳은 김유신은 유명한 기생 천관에게 마음을 뺏기고, 자기 부모가 허락 없이 부부가 된 연애사건을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연애문제에 대해 관대한 처사를 보일 것을 막연히 기대하다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된서리를 맞았다. 선조들의 절개를 가진 사랑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 7살 때 만난 사랑을 26살에 회포를 풀다 조선의 영조 시절, 이광덕은 벼슬이 대제학까지 이르렀던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거지복색을 하고 함경도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수령들을 감시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암행어사라는 것이 소문이 다 나버린 사연이 있었다. 아기 기생인 가련이가 퍼뜨린 것이다. 이광덕은 물었다. “내가 암행어사로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저희 집이 함흥거리에 있사온데, 어느 날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까 두 걸인이 나란히 앉아 있더군요. 그런데 한 걸인은 행색이 다른 걸인과 다름없었지만, 두 손은 옥 같이 희었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정말 걸인일 것 같으면 손이 저렇게 옥 같이 흴 수가 없을 것인데 하고 의심하고 있을 즈음에 또 그 걸인이 옷을 벗고 이를 잡았어요. 이를 다 잡았는지 다시 옷을 입으려 하니까 곁에 있던 걸인이 공손하게 거들어 입혀주더군요. 저는 이것을 보고 그들이 보통 걸인과 걸인 사이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흰 손의 주인을 암행어사로 확신하고 집안 사람에게 말했더니 집안 사람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해서 함흥 읍내가 모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가련이 이와 같이 차근차근 대답하자 이광덕은 놀라면서 가련을 몹시 칭찬했다. “너 정말 신통하다! 정말 영리하고 총명하도다.” 결국 이 만남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두 사람의 ‘지독한 사랑’의 전주곡이었다. |
584 |
[역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 추수밭 | 2017-07-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84 |
[역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 추수밭 | 2017-07-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너무 거대하고 너무 사소한 인간의 모든 역사를 진지한 듯 농담처럼 말하는 법
빌 브라이슨보다 유쾌하고, 움베르토 에코보다 우아하며 닐 게이먼보다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46억 년의 모든 것
어떻게 멸종 직전의 인류가 지구 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전 세계가 하나 같이 서구식 문화를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여전히 악당, 또라이, 미치광이들에게 끌리는 것일까? 기원전 5세기 제자백가부터 20세기 맨해튼 프로젝트까지 특정 시기마다 천재들이 폭발하듯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기술은 점점 발전하는데 우리는 더 행복해지지 않는 것일까?
우리의 아버지들은 보다 나아진 세상일 것이라고 기대하며 100년 후를 즐겁게 내다봤다. 그러나 우리는 고작 10년 후를 전망할 때에도 두려움을 느낀다.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성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그러나 빅뱅을 거쳐 “그리고 인간이 등장했다”는 오만한 선언으로 시작된 인류의 성공담이 정점을 찍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파국의 조짐들이다. 인류는 어느덧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나아가 스스로마저 위협하고 있다.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인류가 지나온 길을 재조명해야 하는 까닭이다.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
583 |
[역사]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
이종호 | 포북 | 2017-03-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583 |
[역사]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
이종호 | 포북 | 2017-03-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인문 교양과 역사 지식이 가득 담긴 ‘힐링 한국사’
역사학을 전공한 현직 언론인이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이야기 한국사.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우리 역사를 7가지 주제로 나눠 설명함으로써 우리 역사에 대한 맥락을 잡아 주고, 동시에 자부심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를 맞아 지구촌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우리 역사의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시하고 무관심했던 우리 역사의 많은 장면들이 세계인들도 놀라워하는 위대한 역사의 일부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시험을 위해 교실 안에서 배우는 역사가 아니라, 혼돈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역사와 대화하고 소통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사를 바로 세우는 ‘긍정의 한국사’
우리 역사에 대한 불편한 진실
몇 년 전, 지은이는 국내 한 공기업의 의뢰를 받아 입사시험 문제 출제 및 평가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1차 합격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2차 논술시험이었는데, 그때 출제한 문제는 ‘세계인이 놀랄만한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였다. 지은이는 답안지를 채점하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응시자의 3분의 1 정도가 김연아 선수와 박태환 선수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어진 답안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신사임당과 이율곡, 유관순, 박정희, 그리고 6.25 전쟁 등이었다.
이는 그 당시의 사회 ? 문화적 현실의 반영인 탓도 있겠지만, 스포츠 스타나 TV 드라마, 영화에서 만난 역사가 우리 역사의 전부인 것으로 아는 요즘 젊은이들의 역사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지은이는 성인부터 자라나는 젊은 세대까지 우리 역사에 대해 무엇인가 자랑스러운 것을 하나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 중·고등학생들,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과 안목을 갖춘 사람들을 뽑으려 하는 기업체 입사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한국사 이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때
“한국 사람들 도무지 질서를 몰라. 역사가 그 모양이니까 그렇지.”
“모이기만 하면 싸운다니까. 엽전들은 어쩔 수 없어.”
“천 날 만 날 당파 싸움만 해댔으니 나라꼴이 그 모양이었지.”
“약자에겐 군림하고 강자에게 굽실거리던 사대주의 근성이 어딜 가겠어?”
우리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우리 역사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툭하면 내뱉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일제 식민사관의 폐해이다. 지금도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속상해 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일본이 한반도 통치를 위해 교묘히 짜 맞춰 놓은 역사관을 떨치지 못한 채 답습하고 되풀이하고 있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역사에도 안타깝고 속상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다. 세계 어느 나라 역사를 보든지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과거를 너무 미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낮춰 보는 것도 피해야 한다. 긍정이 지나치면 국수주의로 흐르고, 부정이 과하면 자기비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것은 우리 주변에는 자식, 손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이야기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왕이면 긍정의 우리 역사를 알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집필되었다.
한국인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이 책에서 다룬 7장면은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비교적 적은 근대 이전 시대에서 주로 뽑았다. 물론 특별한 기준을 두고 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은이가 오랫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오면서 한국인이라면 이 정도는 꼭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항목들을 뽑은 것이다.
각 장면은 단순 나열보다는 우리 역사의 앞뒤 맥락을 짚어 가면서 왜 그것이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인지 그 시대적 의미를 찾아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남다른 역할을 감당한 인물이나 사건은 별도의 박스로 정리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그리고 전체 우리 역사의 흐름을 먼저 알았으면 하는 이들을 위해 전체 한국사를 개괄한 ‘한국사 10분 정리’를 부록으로 수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