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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승철, 밥과 글
고승철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07-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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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승철, 밥과 글
고승철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07-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저널리스트들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재조명하는『한국의 저널리스트』시리즈. 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저널리스트들의 삶과 고민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널리스트들 스스로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평가한 것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새롭게 살펴본다. 우리 언론의 과거와 미래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시리즈이다.
<고승철: 밥과 글>에서는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고승철을 만날 수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경제기자로 삶과 재화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고 그가 털어놓은 나의 저널리즘, 나의 기사, 후회와 보람, 꼭 밝히고 싶었던 이야기 등을 전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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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굿모닝 니체
니체 | 휘닉스드림 | 2011-11-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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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굿모닝 니체
니체 | 휘닉스드림 | 2011-11-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새로운 니체가 나타났다
“인간은 아무리 자신을 외면한다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우리는 다시 한번 살아야 하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와같이 니체의 글은 내용이 곧 형식이고, 형식이 곧 내용이다. 이 책은 니체의 저서 중에서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잠언록의 형식을 빌어 엮었다. 그렇지만 《굿모닝 니체》는 그 내용의 기획이 기존 잠언록과는 완전히 다르다. 현대사상의 총아이자 이단아로 불리기도 한 니체는 시대를 조롱한 위대한 독설가이자 예술가적 철학자로 통했다. 니체는 시대가 민주주의를 외칠 때 반민주주의를 말하고, 모든 사람이 신을 숭배 할 때 신을 배척하면서 ‘신은 죽었다’라고 미치광이를 내 세워 외쳤다. 19세기까지 유럽의 절대가치와 진리는 그리스도적 도덕이었다. 그러나 니체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도덕은 있지도 않는 가치를 믿고 더불어 강요까지 하는 종교라고 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도덕은 진짜도 아니고 살아있는 인간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물질이나 돈, 그리고 이윤은 새로운 절대가치인 것일까? 니체는 이것을 신의 대체물로서의 가치라고 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우리들은 영원의 무의 속을 떠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썼다. 또한 《권력에의 의지》에서는 “지금의 도덕에 대한 의문이 세계를 석권하게 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렇게 현대의 상황을 예언하고 있는 듯한 니체의 철학은 현실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조금 읽다보면 흥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니체의 문장이 독자를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생함으로 인해 자극과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니체가 지니는 최고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19세기를 살다 20세기를 맞이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24세에 스위스의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지만 건강 때문에 10년 정도밖에 교직에 머물지 못했다. 대학을 그만 두고 요양을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폭넓은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니체는 많은 여행을 하면서 독특한 저술과 철학적 사색을 이어갔다. 니체에 있어 철학은 인생을 극복해 나가는데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니체는 난해하고 추상적인 내용을 사색해서 이론을 설명하는 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당시 그리스도교는 너무나 세속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선, 진리, 도덕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니체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위한 철학을 명확히 세운 것이다. 니체 철학이 가진 독특한 특징은 칸트나 헤겔 같이 거창한 학문을 지향해 정리된 것이 아니라, 정열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과 단편이 많다는 것이다. 단문, 단편이라고 하지만 그의 발상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인간에게는 육체라는 커다란 이성이 있고, 정신이라는 조그만 이성이 있다.”라는 식이다. 이렇게 대담한 발상에는 예술적인 매력이 숨어있다. 칸트 같은 철학자라면 그것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철학을 이용하지만, 니체는 그것을 무심하게 그냥 탁 하고 놔두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그는 철학자 니체보다는 예술가 니체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니체의 이름이 지금 다시 세계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은 현실을 직시한 날카로운 통찰력 때문이라 하겠다. 급소를 찌르는 직관력, 강력한 생기. 불굴의 혼, 그리고 높은 곳을 지향하는 의지는 그의 문장 속의 명구들이 사람들의 눈과 귀에 쏙쏙 들어와 마음에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 《굿모닝 니체》는 그것들 중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한 번 쯤 읽어야 할 내용과 필요한 것을 골라 정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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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정희의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정만섭, 서석구 |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 2012-08-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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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정희의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정만섭, 서석구 |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 2012-08-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대한민국 해방 이래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위기의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으로, 헐벗고 굶주린 국민들의 눈물을 기억하는 거듭난 박정희 대통령. 이제 무거운 신념과 의지로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빈곤과 부패를 걷어낸 위대한 그의 행보를 다시 되짚어본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라는 말은 박정희 대통령이 생전에 남겼던 수많은 명언들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 기억되고 회자되는 말이다. 거짓된 말은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허나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되새기고 있다는 현실은, 박정희 대통령의 삶이 진실로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대변한다. 이 책 『박정희의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는 제목 그대로의 숭고한 결의로 일생을 바친 박정희 대통령의 탄생 일화에서 시작하여 가난했던 유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격동의 시기를 보낸 전성기와 대통령으로 임하여 조국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인 모든 시간의 기록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일기에 이런 내용을 남겼다.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史家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의 말처럼 그가 떠난 후, 남은 이들은 그의 이름 위로 참으로 많은 평가가 던져졌다. 허나 애석하게도 그 평가들은 부정적인 시선과 긍정적인 시선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너무나 극단적인 평가들은 그 성향이 객관성을 잃은 무조건적인 매도와 이지를 상실한 찬양으로 갈렸다. 정작 박정희 대통령의 진의와 진실한 모습은 의미 없는 다툼과 부풀려지고 만들어진 비화 속에 가려져 버리고 말았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진실된 재조명을 위해서는 객관성의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요구된다.이 책을 집필한 정만섭 저자와 서석구 저자는 각각 교육계와 법조계에서 활동하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또 부정적으로 여겨왔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두 저자의 상호 대립되는 관점은 그간 훼손되어왔던 박정희 대통령을 재발견해내는 성취를 이뤘다. 공저를 통해 편향적 사고는 유연해지고, 오해는 풀려나갔다. 팽팽한 줄다리기를 연상케 하는 집필과정의 끝에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인간 박정희를 발굴해낸 것은 참으로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뺄 건 빼고, 더해야 하는 건 더했다. 어렵게 모은 균형 잡힌 시선으로 다시 조명한 박정희 대통령의 생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토플러,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위시한 세계 석학들과 지도자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구국의 리더 박정희. 이제 이 책 『박정희의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와 함께 그의 삶을 다시 한 번 제대로 되짚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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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김재익 평전
고승철, 이완배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 2013-11-1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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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김재익 평전
고승철, 이완배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 2013-11-1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 시장경제라는 든든한 반석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반석을 놓은 이의 이름을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에게 진 빚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그의 이름은 김재익. 대한민국에 진정한 자유 시장경제의 씨앗을 심어놓고 30년 전 버마 아웅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그 김재익이다. 김재익, 우리가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 30년 전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에서 우리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재를 잃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당시 유명을 달리한 인재들 중에서 우리는 지금 유난히 김재익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30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벌써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자유 시장경제라는 든든한 반석 위에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자유 시장경제의 토대가 허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일상화되었고, 경제의 전권은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이 아니라 위정자의 머리에 있었다. 물가는 급등했고, 저축률은 떨어졌으며, 내수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업 경쟁력은 바닥을 헤맸다. 김재익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경제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간파하고 이를 바로 잡은 인물이었다. 그는 ‘5공화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권한을 오로지 ‘시장을 바로 잡는 것’에만 쏟아 부었다.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임하던 시절 금융실명제가 추진됐고, 예산이 동결됐으며, 물가가 잡혔고, 개방 경제의 기틀이 닦였다. 강력한 개발독재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던 대한민국의 경제가 비로소 자유 시장경제라는 대해(大海)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30년이라는 세월 탓에 이제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잊고 지낸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가 남긴 족적을 그렇게 마치 아무 일도 아닌 양 넘어가는 것은 후세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재익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남긴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이 지금 올라서 있는 그 든든한 시장경제의 태동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먼 타지에서 유명을 달리한 그를 추모하며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30년 만에 출간되는 김재익의 일대기 그가 남긴 수많은 경제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김재익에 대한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유족들이 주도해 발간한 추모집과, 20주기를 맞아 발행됐던 추모기념집 단 두 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의 생과 업적을 온전히 기록하고 평가한 평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렸던 김재익의 겸손한 성품 탓에 그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기록물도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되는 《김재익 평전-대한민국은 그를 여전히 그리워한다》는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평전은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은 물론 한국전쟁 때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소년 김재익’의 씩씩한 모습부터 45세로 요절하기까지 그의 온 생애를 온전히 담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한국 역사에 독재정권으로 기록된 5공화국의 핵심 관료였지만, 그가 경제 민주화를 통해 얼마나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고자 했던 인물이었는지도 생생히 기록돼 있다. 그 장엄한 기록들을 추적하며 작가들이 느낀 것은 한 가지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인사의 다음과 같은 김재익에 대한 평가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김재익, 그 이름 앞에 세인트(Saint·聖人)를 붙일 수 없겠소? 그는 한국 경제를 살리려고 순교(殉敎)한 분 아니겠소? 평생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하는 삶을 산 분이오.” 평전이라고 불러도 좋고, 대한민국의 현대사라고 불러도 좋다. 이 책은 평전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경제 기적을 이뤄낸 1970~80년대 한국의 현대사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만큼 격동의 그 시기에 김재익이 남긴 그림자는 짙고 넓다. 1970년대에 김재익이 주도한 부가가치세 제도의 도입, ‘사회 개발’ 개념의 도입, 그리고 1980년대에 그가 이룩했거나 이룩하고자 했던 물가 안정, 수입 자유화, 예산 동결, 통신혁명, 금융실명제 등의 단어는 지금 한국 경제를 든든히 지탱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한국은 그가 주도했던 안정과 질적 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철학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건국 이후 최고의 호황기를 누린다. 이는 진보와 보수 모든 진영을 망라한 공통된 평가다. 이 평전은 그가 5공화국에 몸을 담았다는 이유로 그를 보수의 한 축으로 평가하는 것을 거부한다. 1980년대 초반 김재익이 추진했던 정책은 당시로서는 실로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것들이었다. 지금도 여러 진보적 매체와 진보 인사들이 김재익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민주정부 시기라고 불렸던 1998~2007년, 그 시기의 경제 정책이 과연 5공화국 경제 관료였던 김재익의 그것보다 뛰어났던가?”라고. 김재익이 걸어온 길 1938년 11월 26일 김응묵과 강병주 사이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남 1956년 경기고등학교 2학년 수료 1960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60년 한국은행 입행 1964년 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취득(국제관계 전공) 1968년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교 석사 학위 취득(경제학) 1968~1973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통계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 취득 1973년 한국은행 복직(조사1부 근무) 1973년 9월~1974년 9월 대통령 비서실 파견 근무 1974년 10월 남덕우 경제기획원 장관 비서실장 1976년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1977년 7월 정부, 부가가치세 제도 실시 1979년 4월 정부, 4·17 경제안정화 시책 발표 1980년 6월 국보위 경제과학분과위원장 1980년 9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1980년 9월 정부, ‘독과점 규제 및 공정거래법’ 발표 1981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1981년 7월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2~1986년) 발표 1982년 7월 정부, 금융실명제 실시 계획 발표 1983년 5월 경제기획원, 수입자유화 추진 계획 발표 1983년 5월 정부, 1984년 예산 동결 방침 발표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순직(향년 4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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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스 (Jobs)
휴먼스토리 | 미르북스 | 2013-10-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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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스 (Jobs)
휴먼스토리 | 미르북스 | 2013-10-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누구나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몰랐던 스티브 잡스의 숨겨진 이야기 8월 29일 대개봉〈잡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티브 잡스 일대기를 담은 책 스티브 잡스가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한국 시각으로 2011년 10월 6일 새벽, 애플사는 IT의 신화,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네티즌들은 SNS를 통해 생전 그의 활약상이 담긴 동영상과 사진, 어록 등을 퍼뜨리며 충격과 아쉬움을 달랬다. 그가 떠나고 나서 지금까지, “항상 갈망하라”,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라”, “진정으로 일에 만족하는 길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직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라. 포기하지 마라.” 등 그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는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며 귀한 어록으로 남았다. 또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온갖 부정을 긍정으로, 좌절을 희망으로, 고통을 인내로, 실패를 성공으로 뒤바꾼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는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고 교훈을 주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지지 않은 별이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킨 무한 혁신 창의력 천재로 기억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스티브 잡스를 잊지 않고자 하는 노력은 여전하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떠난 지 1년 여 만인 2012년에 ‘미래를 읽는 천재’를 부제로 건 〈스티브 잡스〉가 개봉됐었고, 2013년 8월 14일에는 ‘17년 만에 발견된 그의 힐링 인터뷰’라는 부제로 다큐〈스티브 잡스 : 더 로스트 인터뷰〉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화 〈잡스〉다. 다가오는 8월 29일에 개봉하는 영화 〈잡스〉는 ‘우리가 몰랐던, 그의 진짜 이야기’라는 부제를 내걸고 잡스의 일대기를 새롭게 조명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잡스를 기리는 이 시기에 발맞추어 도서출판 미르북스에서는 신간 《잡스》를 출간한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을 재조명한 이 책은 ‘누구나 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몰랐던 잡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처럼 담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티브 잡스의 삶을 차근차근 보여 주는 책이다. 세상을 바꾼 천재였지만 대학 자퇴생이기도 했던 잡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명상을 즐긴 불교신자였던 잡스, 애플의 창립자였으면서 연봉 1달러의 CEO였던 잡스의 모습 등을 빠짐없이 되새겼다. IT계의 신화를 이룬 스티브 잡스의 인생에는 꿈, 도전, 열정, 인내의 정신이 가득 담겼다. 잡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인생의 의미와 성공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별로 남은 잡스를 다시 만나 보자. 《잡스》 안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스티브 잡스가 죽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다. 세상을 뒤흔든 혁신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마지막 조언 우리는 우주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곳에 있다. _스티브 잡스의 어록 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불안정하게 태어나 유년기 때까지 세상과 융화하지 못한 채 상처받으며 살았다. 청년기 이후에는 밉상일 만큼 거만하고 교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승승장구로 발전한 애플의 성공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기에 급급했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직원들을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을 시켰던 악독한 CEO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매우 신중하고 철저하며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과거의 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는 스티브 잡스처럼 부끄럽고 아픈 구석이 있다. 완벽하게 즐거운 인생, 평안한 인생은 드물다. 괴롭고 불편한 인생이라고 하더라고 자신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겨 나가느냐에 따라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인생이 결정된다. 자신의 출생이 불행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여기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미리 속단하며 포기하지만 않으면 희망은 반드시 얼굴을 내민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천성적으로 자신감이 넘치고 매우 긍정적이었다. 단 한 번도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주눅 들지 않았다. 언제나 당당했고 배짱이 두둑했기에 사람들은 결국 그의 수완을 믿고 인정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스티브 잡스는 소중한 진리 하나를 남겼다. 과거에 발목이 묶여 끙끙거리지 말라는 것이다. 순간순간 아프고 괴로울 때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고 성공적인 미래를 꿈꾸라는 조언을 전했다. 이 책이 보여 주는 스티브 잡스의 삶은 희망을 붙잡는 용기를 어떻게 잡을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방법을 일러 준다. 잘할 수 있다고 믿어라. 과거는 돌아보지 말고 성공적인 미래를 꿈꾸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 혁신과 창조의 바람은 스티브 잡스 같은 위인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의 삶을 기억하고 본받는다면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내 인생을 뒤바꾸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마음가짐을 이 책을 통해 얻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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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파지아 쿠피
파지아 쿠피 | 애플북스 | 2012-02-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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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파지아 쿠피
파지아 쿠피 | 애플북스 | 2012-02-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정치는 오로지
국민을 위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부의장이자 차기 대선의 강력한 후보, 파지아 쿠피의 목숨을 건 기록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이 여인을 보라! 죽음의 문턱에서 4번 살아난 신이 선택한 여인 “아이들과 헤어질 때, 나는 내가 살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나라 최빈민 지역의 대표로서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사명과 사랑스런 딸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내게 의지하고 있는 그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 결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여인이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꾼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폭력의 35년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아이들의 교육과 여성의 인권을 위한 투쟁을 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파지아 쿠피이다. 그녀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 주 하원의원이자 최초 여성 부의장으로 여러 정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고 있다. 아프간의 현대사만큼이나 지독했던 그녀의 인생을 담은 기록이 이 책 『파지아 쿠피』(애플북스)이다. 이 책에는 그녀가 수차례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정치를 계속 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의 이야기 파지아 쿠피는 태어나던 날부터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방치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때조차 그녀는 침묵할 수 없었다. 남편 하나에 아내가 일곱이던 전통 무슬림 집안에서 스물세 명의 아이 중 열아홉 번째로 태어난 그녀는 지독한 화상을 입고 살아남았으며 그 흉터는 십대 시절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쿠피 집안에서 최초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받은 여자였으며, 나중에는 아프간 의회의 일원이자 여성 및 아동의 권리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대변인이 되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놀라운 인생사를 이야기하며 조국을 향상시키는 데 헌신할 것임을 단호하게 천명한다. 그녀는 정부의 부패와 무능력함을 거침없이 비판하면서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하루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녀는 두 딸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날 아프간의 사회, 정치, 인권(특히 여성의 인권)에 대한 그녀의 견해와 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아프간의 격변하는 정세가 꼼꼼히 기록된 이 편지는 각 장의 앞부분에 실려 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자라는 한계를 깨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정치인이 된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폭력의 잔혹함과 그 앞에 짓밟히는 여성의 인권,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당당히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어본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아닌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장을 만날 수 있다. 가족과 믿음, 정의와 존엄 등 당연한 가치가 사라진 땅에서 온 희망의 편지 파지아의 믿음이 형성된 밑바탕은 그녀가 35년간 경험했던 부당함이었다. 쌀알들이 고슬고슬하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국자로 얻어맞는 어머니, 로켓포가 쌩쌩 날아다니던 길고 긴 내전의 세월, 시장에서 고무관으로 여자를 무참하게 매질하던 탈레반 대원들. 파지아는 정부의 부패상과 한심한 지도력을 거침없이 비판한 것 때문에 수없이 암살 시도의 대상이 되었다. 언제 어느 순간 목숨을 잃어 사랑하는 딸들을 볼 수 없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아프간 여인들의 대단한 용기와 회복력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딸들에게 믿음과 가족과 정의와 존엄성에 대해 자신이 배운 지혜를 나눠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믿음과 가족과 정의와 존엄성은 그녀가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30여 년간 이어진 나라의 갈등이 아프간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역경이 변화에 대한 결의와 용기를 얼마나 강하게 벼려낼 수 있는지 감명 깊게 설명하고 있다. “원컨대 그런 자유 천국의 아버지시여, 내 나라가 깨어나게 하소서, 내 나라가 깨어나게 하소서.” - 타고르, <기탄잘리> 중에서 2011년 한 해, 소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거대한 시위의 물결이 중동 전체를 강타하였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의 성공으로 인해 중동의 여러 국가에서 기존의 지배 체제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권위와 인습에 반기를 든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제약해온 남성중심의 국가를 향해 투쟁을 시작했고 그 정신은 세계 곳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아내를 살해하고, 강간을 당한 부인에게 간통죄를 물어 고발하고,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여성의 코를 자르는 등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폭력의 현장에서 그녀가 보내온 메시지는 막내딸인 동시에 두 딸의 엄마로서 세상의 모든 딸에게 보내는 희망의 편지이자, 직업적인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나라가 다시 깨어나길 바라며 써내려간 선언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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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 레디앙 | 2010-01-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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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 레디앙 | 2010-01-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민주노동당 전 의원)가 처음으로 쓴 책이다. 정치인들의 책 내기가 통상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일종의 홍보 전략으로 전락해 날림, 졸속, 대필 출판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지난 4월 18대 선거(덕양갑)에서 떨어진 후 자신과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수차례 거듭된 탈고를 거치면서 저자의 생각이 온전하게 육필로 쓰인 책으로 지은이와 책 내용 사이에 거리도 괴리도 없다는 점이 이 책의 주요 특징이자 미덕이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 양쪽으로부터 관심과 칭찬을 듣는 심상정은 누구인가. 그의 지금이 있게 한 뿌리는 어디이며, 그의 줄기와 이파리는 어디로 뻗어나갈 것인가. 정치인 심상정에게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대목을 가끔 궁금해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답변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치고는 저자가 별로 잘난 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만큼, 신뢰할 만한 답변서가 될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저자는 자신이 처해 있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각 시기 자신의 고민과 선택 등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이 책이 ‘자기 자랑 책’으로 매몰되는 것을 막고, 시대의 기록이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동지’이나, 향후 정치적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짧지만 추천사를 ‘써줬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강 전 장관은 추천사를 통해 “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심상정은 꼭 있어야 할 소중한 리더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대 의원 활동 기간을 정치인 심상정에 대한 본편 상영을 앞둔 ‘예고편’으로 생각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미래를 함께 전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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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무현 평전
김삼웅 | 책보세 | 2012-05-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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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무현 평전
김삼웅 | 책보세 | 2012-05-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세상
그 희망의 증거로 남고자 모든 것을 바친 격렬한 영혼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 “노무현은 ‘패배자’일까?” 이 평전은 이 두 가지 관점에 주안점을 두고 기술되었다. 최종 결론은 ‘역사’가 내리겠지만 먼저 ‘민심’이 말해준다는 데에 저자의 방점이 찍힌다. ‘잘나가는’ 변호사 노무현이 세속의 영달을 뒤로하고 ‘노동자의 벗’ ‘거리의 변호사’ ‘아스팔트 위의 전사’가 된 것은 암울한 시대의 부름이었고, 그를 정치로 이끈 것 또한 시대의 모순이었다. 정치판에 뛰어든 그는 청문회 스타로 떴지만 ‘3당 야합’을 거부함으로써 강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막혀 가시밭길을 걷게 되었다. 시민은 그런 그의 고행에서 정치의 희망을 보게 되었고 마침내 ‘노무현 구하기’에 나섰으니 ‘노사모’다. 정치의 변방이요 소수파인 그가 민의에 힘입어 마침내 민주진보의 독자 진영만으로 처음 대통령이 됨으로써 한국정치사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래서 그의 책무는 더욱 막중했고,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자 신명을 다했다. 그러나 수구기득세력의 집요한 발목잡기와 악의적인 왜곡에다 그 자신의 몇 가지 실책이 겹쳐 그의 정권은 파란을 겪어야 했으며 그는 끝내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는 듯싶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우리 역사상 한번도 ‘시민’으로서 ‘민주적 리더십’을 경험해보지 못한 국민의 오해였고, 진보의 성공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족벌언론의 프로파간다였다. 그가 퇴임하고 나서 “그 후임을 겪어보고, 수구언론에 의해 자행된 ‘실패의 덧칠’을 벗겨놓고 보니” 비로소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 노무현’은 “정치적 소수파로서 우리 사회의 뒤틀린 권력구조 안에서 정치보복성 ‘토끼몰이’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패배자였다”고 결론 내린다. 백범이나 여운형, 링컨이나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볼프 슈나이더가 바친 헌사대로 “승리자로 가득한 세상보다 나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 곧 ‘위대한 패배자들’이었다. 일찍이《적과 흑》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두고 ‘위인’을 말한 바가 있는데, 저자는 이 헌사를 ‘바보 노무현’에게 바치면서 “진정한 위인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고 고금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진정한 위인은 자유롭고 온화하고 친근하고 대중적이다. 그는 사람들이 만지거나 주무르도록 자신을 내버려둔다.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 들여다봐도 잃을 것 하나 없다. 또는 그를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감동하게 된다. 그는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에게도 공손히 몸을 숙이며 힘들이지 않고도 자신의 본성으로 쉽게 되돌아온다. 이따금씩 그는 자신을 포기하고 등한시하며 자신의 장점을 간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항상 제자리를 찾아 장점들의 가치를 드러나게 할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사는 세상’ 꿈을 남긴 채 떠난 우리 시대의 ‘위인’에 대한 이 ‘평전’으로 그를 기리고 반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노무현盧武鉉(1946~2009) 김해 진영 대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금이 없어 외상 입학한” 진영중학교 1학년 때는 이승만 생일 기념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백지동맹’을 선동하는 결기를 보였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막노동판을 떠돌면서 사법고시의 꿈을 키우던 중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1973년 결혼하고 1975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77년 대전지법 판사로 부임했으나 이듬해에 법복을 벗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쌓으며 잘나가던 1981년, 부림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사회현실에 눈뜬 이후 ‘노동자의 벗’이 되고 ‘거리의 변호사’ ‘아스팔트 위의 전사’가 되었다. 1988년 제13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그해 11월 ‘청문회 스타’로 떴으나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하고 김영삼과 결별함으로써 가시밭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지역주의 청산을 위한 그의 헌신적 노력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승리했으나 2000년 총선에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낙선했다. 거듭된 ‘아름다운 실패‘는 민중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펴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를 탄생시켰다.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에 뛰어들어 '이인제 대세론'을 뒤엎는 파란을 일으킨 그는 내친 김에 본선에서 ‘이회창 대세론’까지 뒤엎으며 첫 ‘시민’ 대통령이 되었다. ‘권위’를 벗어던지고 모든 국가권력을 헌법정신에 맞춰 제자리에 돌려놓고자 했던 그는, 기득세력의 완강한 저항 가운데서도 혁신과 소신의 정치를 펼쳤고,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10·4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는 국민을 벗으로 대했고, 국민이 벗으로 대할 수 있었던 첫 대통령이었지만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으로 비판을 받는 등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 채 2008년 2월 퇴임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진보주의를 연구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수구기득세력의 집요하고 교활한 ‘마녀사냥’에 포위된 그는 ‘사람사는 세상’ 꿈을 남긴 채 2009년 5월 23일 이 세상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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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루이 델랑드
안병호 | 미다스북스 | 2011-11-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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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루이 델랑드
안병호 | 미다스북스 | 2011-11-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35년 동안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꽃동네를 설립한 오웅진 신부!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지킨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 49년 동안 수많은 고아와 노인들의 보호자였던 루이 델랑드 신부! 가장 낮은 곳에서 위대한 종교적 사랑을 실천한 분들입니다!!! 이 책 [아름다운 사람 루이델랑드]는 한국에서 선교와 봉사로 삶을 마친 프랑스 출신 가톨릭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루이 델랑드 신부는 사제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선교사의 무덤이라 불렸던 식민지 조선에 선교사로 왔다. 이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주는 동시에 불우한 이웃을 돌보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계몽활동에 앞장섰다. 이는 조선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델랑드 신부는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조선인 스스로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으며, 사목회를 설립, 연극 공연, 수도자 양성 등의 활동을 통해 조선인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이는 자유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동시에 자율과 책임이라는 민주적 질서를 스스로 깨닫게 한 것이다. 노동자의 집, 야간 학교, 무료진료소, 무료급식소, 보육원, 양로원 등을 운영하는 등 평생 사회복지사업에도 힘썼다. 루이 델랑드 신부(한국명; 남대영)는 가톨릭 신부이기에 앞서 지난 세기 굴욕과 고통의 시기를 한국인과 함께 했던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의 이야기는 앞만 보고 달려 온 우리에게 잊고 살았던 한국근현대사 뒤안의 소중한 역사를 성찰하게 한다. 루이 델랑드(한국 이름: 남대영) 신부ㆍ1895년 6월 13일 프랑스 노르망디 연안에 있는 망쉬 빠리니Parigny에서 목수인 아버지 레옹 앙리 델랑드와 유아원을 운영하던 어머니 빅토린느 프랑스와즈 르꾸띠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전통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델랑드 신부는 특히 신앙이 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꾸땅스 대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 수업을 받던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살상과 만행이 자행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왜 필요한지 깨달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세계 각지에서 전교활동을 벌이던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 12월 23일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1923년 6월 5일 조선에 첫 발을 내 딘 루이 델랑드 신부는 대구대교구와 부산교구의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모두가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던 당시, 루이 델랑드 신부는 남다른 믿음과 사랑으로 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품에 안았다. 부산진성당에서 시작된 노동자의 집과 야간학교 등의 복지사업은 경북 영천의 용평성당에서 무료진료소, 보육원, 양로원 등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렸고, 성모자애원을 설립하면서 꽃을 피웠다. 1935년에는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리에 예수성심시녀회의 모체인 삼덕당(三德堂)을 설립하였다. 예수성심시녀회는 신부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실 수 있도록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65년 모든 직에서 물러난 루이 델랑드 신부는 경북 포항시 갈평리로 거처를 옮겨 마을 주민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을 계속 하였다. 루이 델랑드 신부는 당시 조선의 전통적인 유교 문화의 저항과 박해, 일제 식민지하의 감시과 왜곡, 해방 이후 좌우익이 극렬 대립하는 혼란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한국인과 함께 몸소 체험하면서도 가장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의 봉사에 헌신하였다. 1972년 10월 24일 사제 서품 50주년인 금경축을 지낸 루이 델랑드 신부는 그해 11월 17일 새벽, 77세의 생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셨다. 한국 정부에서는 1962년 8월 15일 대한민국 문화 훈장을 수여하였고, 1969년 11월 3일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Legiond’Honneur 프랑스 최고 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주요 약력 1895. 6. 13 프랑스 노르망디 빠리니 출생 1914. 9. 29 꾸땅스 대신학교 입학 1915. 2 제1차 세계대전 참전 1919. 9 전역, 꾸땅스 대신학교 복학 1921. 12 파리외방전교회 입회 1922. 12. 23 사제서품 1923. 6. 5 부산도착 1923. 12 가실성당 보좌신부 1924. 10. 5 부산진 성당 주임신부 1928. 4. 28 대구 성요셉 성당 주임신부 1934. 4. 21 경상북도 영천 용평성당 주임신부 1936. 10. 2 드망드주교 삼덕당 축성 1941. 7. 16 삼덕당 정녀들 투옥 1941. 12. 8 루이 델랑드 신부 투옥 1941. 12. 24 출옥 1969. 11. 3. 레지옹 도뢰르 훈장 수여 1972. 10. 24.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 1972. 11. 17. 갈평에서 선종 주요 업적 부산에서 ’성 가정의 집‘ 설립 부산에서 야간학교 ‘장미나무’ 설립 경북 영천 용평에서 무료진료소, 무료급식소 설립 경북 영천 용평에서 야간학교 설립 경북 영천 용평에서 현재 ‘예수성심시녀회’의 모체인 ‘삼덕당’ 설립 포항에서 ‘송정원’ 설립 - 성모자애원 등을 포함하는 종합복지센터 운영 가장 낮은 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사람ㆍ엘리트로서의 삶을 버리고 고달픈 선교사의 삶을 선택한 루이 델랑드 신부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평생을 살아온 분이다. 외국인 선교사로서 일제와 타협하여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지만, 그는 편안한 삶을 버리고 기꺼이 조선인의 독립과 조선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헌신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좌우의 대립에서 피해를 당하는 국민의 편이 되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수많은 고아와 노인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는 봉사와 헌신을 필요로 하는 ‘그들’ 안에서 사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정했고, 그것을 실천하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산 것이다. 루이 델랑드 신부 vs 오웅진 신부 vs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ㆍ오웅진 신부는 1976년 가정과 사회에서 외면 받은 이들을 위한 공동체인 꽃마을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가평에 두 번째 꽃마을을 설립하였다. 소록도 병원에서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한국에 온 20세 초반의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는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의 지킴이로서의 삶을 마치고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나이가 들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다른 분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한국을 떠난 이유이다. 루이 델랑드 신부는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서 백성의 어버이로, 해방 이후 불우한 이들의 보호자로 살다가 1972년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다. 믿음을 사랑으로 승화한 한국인의 아버지ㆍ델랑드 신부에게는 사랑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오고 있다. 애써 알려하지 않아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향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사랑의 향기 말이다. 델랑드 신부가 부산진성당에 재직할 당시 신학교에 보냈던 서정길 전 대주교는 ‘델랑드 신부님은 평생 겸손한 사랑 실천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겸손한 사랑’이란 자신을 최대한 낮추어 타인을 배려한다는 의미이다. 루이 델랑드 신부가 보여준 ‘가장 불우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타인을 배려해주고, 타인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타인의 미래까지 염두에 둔 그의 사랑은 가장 낮은 위치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다. 이런 그의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봉사가 삶의 전부였던 하느님의 아들ㆍ1923년 조선에 온 이후 그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봉사’이다. 선교를 목적으로 조선에 왔지만, 그의 삶은 조선인을 위한 봉사자였다. 동료 선교사들은 ‘복지는 선교와 무관하다’며 그의 태도를 비판했지만, 델랑드 신부는 주위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았다. 『사랑의 선교사 루이 델랑드』의 저자인 시브로 올리비에 님은 델랑드 신부는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가장 큰 영광을 구현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봉사와 헌신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들의 삶을 통째로 이해하면서 몸으로 느껴야 진정한 의미의 봉사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ㆍ‘사랑의 선교사’ ‘가난 이들의 수호자’, ‘고아들의 아버지’ 이는 루이 델랑드 신부를 칭하는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표현은 ‘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가 아닐까? 아름답다는 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말이다. 가톨릭 사제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소명을 실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하느님의 백성들 앞에 닥친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 소명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았고, 실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에 루이 델랑드 신부에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말은 오히려 부족한 표현이 아닐까?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전하는 그의 메시지ㆍ1972년에 영면하신 루이 델랑드 신부가 살아있다면 오늘의 한국인에게 무슨 말을 할까?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밥은 먹었니?”와 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을 목전에 둔 한국과 한국인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의 한국인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까 생각된다. “욕심보다는 배려가 더 필요한 세상입니다.” “간절히 원하던 독립을 쟁취한 것은 여러분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통일을 간절히 원할 때입니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의 뜻을 두려 하지 마십시오.” 프랑스 출신으로 한국에 왔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한국인으로 살았던 분이었기에 아마도 지금의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를 읽으면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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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리영희 평전
김삼웅 | 책보세 | 2011-03-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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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리영희 평전
김삼웅 | 책보세 | 2011-03-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야만의 시대, 우상의 칼에 맞선 이성의 펜 우선 이 평전의 저자 김삼웅부터가 평생을 언론인으로서 비판의 책무를 다하고자 한 대표적인 비판언론인으로 통한다. 그런 저자에게 선배 언론인 리영희는 일찍이 경외의 대상이자 사숙의 스승이었다. 1996년 삼인출판사 개업식에서 리영희와 저자는 나란히 축사를 했다. 개업식에 나온 막걸리를 서너 잔이나 마신 리영희는 얼굴에 표도 나지 않았고 저자는 한 잔만 했는데도 혼자 다 마신 양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저자는 이를 빗대어 리영희에게 “선생님, 진실이란 뭘까요?” 하는 화두를 꺼내어 한참 ‘진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1998년이 저물어갈 무렵《서울신문》주필로 있던 저자는 리영희에게 원고 청탁을 하는데, “《서울신문》에는 안 쓴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에 저자는 “내년부터 제호를《대한매일》로 바꿔 면모를 일신하려 한다”고 설득하여 이후 1999년 ‘리영희와의 신년 대담’을 성사시키고 그 사회를 보게 되면서 각별한 인연을 쌓아갔다. 저자가 독립기념관장으로 있던 2006년 리영희는 저자의 초청으로 독립기념관에서 강연하는 등 두 사람의 교감이 더욱 깊어졌다. 이듬해 저자는 리영희의 자택을 방문하여 주 2회씩 6개월에 걸쳐 장장 150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리영희 전문가’가 되고 말았다. 2006년 리영희가 자서전《대화》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하자 저자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한 신문에 <리영희 생제문生祭文>을 쓰기도 했다. 리영희는 그동안 저자가 쓴 10여 권의 평전을 모두 꼼꼼히 읽고 잘못된 부분까지 지적하여 편지를 보낼 정도로 자신의 성정을 닮은 이 후배 언론인(저자)을 각별히 아꼈다. 이 평전은 저자와 리영희와의 이런 깊고도 오랜 교감과 저자의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잘 익은 된장”이다. 숱한 평전을 써온 저자의 지론대로 “평전은 시비是非를 치우침 없이 다루는 것”이지만 “실명비판으로 악명(?)을 떨친 강준만의 필하筆下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온전한” 리영희인지라 역시 이 평전에서도 비非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있다면 아들, 남편, 아버지로서 가족에게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 엄혹했던 야만의 시대에 지식인으로서 ‘일인분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던 리영희로서는 가족을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었겠지만 1989년 화갑을 맞아 그 ‘잘못’을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비로소 “가족의 사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김훤주(경남도민일보 기자)가 정의한 대로 “언론인 리영희는 진정한 특종 기자다. 세계 정치의 맥을 잡아 혈을 찔렀다. 그런 특종 기사가 부지기수다. 국내 질서는 휘어잡았으나 국제 질서에서 비루했던 이 땅의 권력자들을 끝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언론인 리영희는 참된 지식을 궁구했고 또한 기꺼이 나누었다. 독서의 넓음과 깊음은 현대사를 통틀어 따를 자가 별로 없고, 그에 바탕을 둔 글쓰기는 비겁한 삶을 각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글은 방황하는 지식인에게 양심을, 주린 민중에게 밥을 주었다. 밥이 되는 양심을 나눠주었다.” 리영희의 그런 진면목을 조목조목 그리고 종합적으로 그려낸 김삼웅의 이 평전은 “평생을 우상 타파에 바친 이성의 파수꾼”의 바이러스를 다시 퍼뜨리는 데 손색이 없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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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재인 스타일
휴먼스토리 | 미르에듀 | 2011-11-0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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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재인 스타일
휴먼스토리 | 미르에듀 | 2011-11-0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이 시대 혁신과 통합의 새 이름
“문재인” 원칙맨, 결백주의자, 긍정 이미지, 최고의 참모 지금 우리가 문재인에게 열광하는 20가지 이유 최근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하는 대신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한 안철수 원장이 이슈로 떠올랐다. 그들이 하나가 된 배경에 중심인물 문재인이 있었다. “야권 대통합의 목적은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정권 교체를 통해 진보 개혁 진영의 공동ㆍ연합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문재인의 뜻이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뜻이 융화될 수 있게 한 장본인. 혁신과 통합이라는 비전을 세우고 공동체 안에서 화합을 이룩한 리더, 문재인. 그의 삶 이야기를 담은 자기계발서 《문재인 스타일》이 도서출판 미르북스에서 출간됐다. 원칙맨, 결백주의자, 긍정적이고 비범한 이미지, 참모의 길을 선택했으나 1인자보다 더 빛난 사람, 소명 의식을 가지고 목적을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무소 같은 남자, 참된 지식인이자 행동력을 가진 정치인. 문재인, 그는 누구인가. 이 시대, 왜 우리는 그의 리더십에 열광하는가. 표면에 드러난 그가 아닌 숨겨진 인간 문재인의 진가와 강점, 현시점에서 문재인식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를 날카롭게 짚었다. 대한민국이 주목하고 있는 새 이름, 문재인을 돌아보자. 옳은 말만 하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직함과 주변의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 그가 결코 평탄치 않은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터득한 리더십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자신만의 애티튜드로 ‘운명’과 맞선 문재인의 이야기가 지금 펼쳐진다.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낸 성공 리더 9월 초, 서울시장 보선에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이 출마를 검토한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 소식은 정치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당 등 야4당이 추진하는 야권 통합후보를 염두에 두고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 보선 출마 선언을 한 터라 더욱더 반향이 컸다. 박원순 변호사, 안철수 원장 모두 여권보다 야권과 가까운 정치적 성향이라서 두 사람이 동시에 나오면 비슷한 지지 세력의 표가 나뉘어 여권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컸다. 이때, 문재인은 자신을 낮춰 안철수 원장에게 화합을 청했다. 또한 단일화 후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인 야권 통합도 신속히 진행했다. 이는 안 원장에게 야권 통합이 헛된 꿈이 아니며 함께 힘을 모아 자유, 평등, 인권, 복지, 평화의 체제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문재인은 한명숙 전 총리와 박원순 변호사의 자리를 주선하고 범야권 승리를 위해 협력하는 데 뜻을 모았다. 그는 서울시장 보선 단일화 후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형식적인 자리를 넘어 서로 간의 합의까지 이끌어 냈다. 문재인의 중재로 이루어진 만남은 통합과 혁신, 화합의 메시지를 선사했다. 문재인식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그는 서로 정책 지향이나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차이를 용인하는 자세를 지녔다. 날 선 비판을 앞세우기보다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고 진심으로 다가가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상대방과 자신의 공통점을 파악하고 그것에 근거해 손을 잡아 아군의 힘을 확대, 강화하는 성공 리더로 활약했다. 지금 우리가 문재인식 리더십에 열광하는 20가지 이유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문재인이 야권주자 1위를 차지했다. 문재인은 내년 대선 출마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데도, 국민은 그에게 큰 지지를 보냈다. 미르북스에서 출간된 《문재인 스타일》에는 문재인의 삶과 정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운명처럼 정계에 들어서게 된 사연, 매 순간 그를 단련시켰던 역사적 사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표면에 드러난 정치인 문재인이 아니라 인간 문재인을 다뤘고, 더불어 그의 강점인 남다른 리더십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있기에 더욱 돋보인다. 원칙, 청렴, 열정, 겸손, 애티튜드, 가치관, 소명 등 문재인을 이야기할 때 통용되는 20가지 키워드는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리더의 조건이자 그가 가장 중시했던 면모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조건과 면모를 갖춘 리더를 원하고 있다. 통합과 혁신의 새 이름 문재인, 시대를 포용할 운명이다! 굴곡진 인생을 이기고 살아남았기 때문일까. 노무현과 동행한 까닭일까. 문재인은 삶에 이끌리고 이끌려 정계에 발을 디뎠다. 무엇이 그를 이 자리까지 끌어당겼을까. ‘운명이다!’ 문재인과 반평생을 함께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유언에 담긴 말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쉽지 않은 인생을 겪은 것이나 노무현을 만나고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을 문재인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겼다. 떠난 노무현 대통령이 가졌던 신념, 정의, 사랑과 희망을 이제 살아남은 자신이 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문재인은 사심 없이 한 가지에 집중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사람을 설득해 협력하도록 유도했다. 서로의 의견 차이를 극복하고 그들을 등지게 한 갈등을 넘어서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열정을 다했다. 문재인은 지금도 공동체 안에서 비전을 세우고 있다. 그는 정치 못지않게 시민, 사회, 문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이런 운동이야말로 더디지만 사회를 바닥부터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며, 그가 꿈꾸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른 길을 제시한다. 이제 문재인은 참여정부의 책무를 남기고 떠난 노무현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이제부터는 노무현을 넘어선 자신만의 애티튜드로 승부한다. 문재인만의 스타일로 운명과 맞서 누구보다 유연하게 활약하는 리더로 거듭난 리더. 이 시대의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문재인식 리더십에 주목하자. 운명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 자신이 운명을 무겁게 짊어지기도 하고 가볍게 짊어지기도 할 뿐이다. 운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약한 것이다. 내가 약하면 운명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비겁한 자는 운명이라는 갈퀴에 걸리고 만다. - 세네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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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송건호 평전
김삼웅 | 책보세 | 2011-12-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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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송건호 평전
김삼웅 | 책보세 | 2011-12-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오는 12월 21일은 ‘언론인의 사표’로 존경받는 청암 송건호 서거 10주기다. 그가 생전에 주장하고 몸소 실천했던 언론인으로서의 ‘정신’과 ‘자세’는 그의 시대에도 절실했지만, 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난 오늘날에 더욱 절실하다. 청암의 전기이자 평전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한국현대언론사이자 한국현대정치사이기도 한 이 책은, ‘조심스런 언론인’이 어떻게 ‘역사의 사람’으로 되어 가는지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김삼웅의 한국근현대인물평전 열네 번째다.
‘역사의 사람’으로 살다간 ‘조심스런 언론인’ 송건호, ‘육당의 길’을 마다하고 ‘단재의 길’을 걷다! “(기성) 정치는 죽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 앞에서 제도정치권이 내지른 이 비명은 “니들(기성 정치인들)은 이제 다 죽었다!”는 유권자들의 선언으로도 환치된다. 어떤 영역이든 거기에 ‘전문’으로 복무하는 자들이 직무를 유기하면 대중은 언제고 그들을 ‘제외’시켜버림으로써 ‘대리인’ 자격을 회수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제도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자 마침내 시민들이 저마다 스스로 ‘언론’이 됨으로써 제도언론을 공론의 장에서 시나브로 ‘제외’시켜가고 있다. 그러나 사이비 언론(인)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늘날 이런 언론현실에서, ‘참 언론(인)’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 ‘참 언론인’의 표상이 바로 청암 송건호다. 청암 서거 10주기에 맞춰 나온 《송건호 평전》은 그의 정론정신을 기리는 헌사이자 현직 언론인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저자 김삼웅도 줄곧 정론직필의 길을 걸어온 언론인으로서 일찍이 청암을 사숙하여 곡필언론 연구의 일가를 이뤘다. 김삼웅은 이 평전을 쓰기 위해 청암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했다. 청암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이고 그가 남긴 중요한 글과 저서는 거의 모두 그 핵심을 짚어 논평했다. 청암은 일제강점기 식민체제가 안착된 시기(1926년)에 충북 옥천(<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기도 하다) 산골에서 태어나 ‘황국신민화’ 교육을 받으며 자란 탓에 전쟁에서도 ‘우리나라’(일본)가 이기기를 바랐던 ‘제국의 국민’일 수밖에 없었다. 즉, 민족의식의 세례를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청암은 15세에 서울로 유학(한성상업학교)을 온 이후에야 헌책방을 순례하며 왕성한 독서를 통해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상처럼 이어진 그의 헌책방 독서는 한국현대사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청암은 정론직필을 선두에서 이끌었고 새로운 언론 창달을 주도한 언론계의 거목이기도 하려니와 한국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이자 대가이기도 하다. 8.15해방 이후 이승만의 백색독재, 박정희의 군부독재 아래서 친일파들이 득세하자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들이 현대사 연구를 기피하여 현대사 연구가 불모지로 남아 있을 때 언론인 송건호는 홀로 현대사 연구에 매진하여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그는 특히 ‘민족지성’ 문제(친일청산 문제)에 천착하여 민족의 양심을 바로세우고자 노심초사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의 역사 기술은 ‘과학으로서 역사’라기보다 ‘가치로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자기가 사는 시대의 연구와 서술에 대한 역사가들의 책무가 그 역사적 권능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금석”이라는 게르비누스의 주장은 ‘불행한’ 한국현대사를 끌어안고 고심참담하던 청암에게 절실한 울림이었다. 그는 평생을 그 ‘울림’에 충실했다. 청암은 ‘길’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진정한 ‘지사’였고, 불의에 맞서서는 어떤 핍박도 마다하지 않았던 불굴의 ‘투사’였다. 시인 고은의 표현대로 “시대가 착실한 세대주, 조심스러운 언론인을 투사로 만들고 역사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송건호(宋建鎬) 호는 청암靑巖. 1926년 9월 27일(음)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서울로 올라와 한성상업학교에 다니면서부터 헌책방 순례 취미를 갖게 되었으며,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1946년 경성법학전문학교(1948년 국립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편입)에 진학하여 다니다가 6.25전쟁으로 낙향했다. 1953년 복교(서울법대)한 그해 대한통신사 외신기자로 들어가 처음 언론과 인연을 맺었으며, 1954년 《조선일보》 외신부로 옮긴 때부터 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56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세계일보》《민국일보》《경향신문》 등 주요 일간지 기자 및 논설위원을 거쳐 1965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1966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196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 직후에 언론자유수호운동에 참여하여 일선 기자들과 함께 ‘10.24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1975년 사주가 자유언론실천 기자들을 대거 해고하자 편집국장을 사임하고 언론 현장을 떠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현대사 탐구와 왕성한 필력으로 《민족지성의 탐구》를 비롯하여 주요 저작들을 출간하기 시작했으며, 《씨?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인권위원, 3.1민주구국선언 등으로 현실참여의 폭을 넓혀갔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 의장에 선임되어 언론자유수호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말》지를 창간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대표이사에 선임되어 언론독립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93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회장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갔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1996년 애장도서 1만 5000여 권을 한겨레신문사에 기증하여 ‘청암문고’를 개설했다.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받고, ‘20세기 최고언론인’으로 선정(기자협회보)되었다.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21일 오전 8시 영면에 들어 사회장으로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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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철수의 선택
휴먼스토리 | 미르북스 | 2012-09-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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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철수의 선택
휴먼스토리 | 미르북스 | 2012-09-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012 대선 주자 안철수의 선택
대한민국 미래를 진단한 탁월한 처방전 안철수 현상, 안철수 열풍! 안철수의 선택! 대한민국 미래 주치의로 나서다! 존경받는 CEO에서 국민 멘토이자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안철수. 안철수가 정치인으로서 대중 앞에 나선 것은 두 번이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 자리를 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선뜻 양보한 것과 올해 재단을 만들어 1500억 원을 기부한 것. 이 일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그를 닮아 성공하고 싶다.’는 안철수 열풍은 ‘그를 리더로 삼고 싶다.’는 안철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안철수는 이미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브랜드이다. 의사에서 프로그래머로, 다시 경영인에서 교수로 자리와 이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가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성공한 이후에는 청춘을 상대로 수백 회 강연을 펼치며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거침없이 잘못된 경제 구조를 비판하는 등 멘토로서 사회에 활력과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 ‘정치인’ 안철수는 이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에게는 어떤 직위를 차지하느냐보다 정치를 통해 사회의 시스템과 구조를 바꾸려는 비전이 우선이다. 비전이 있으면 ‘대통령’도 일종의 도구일 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공동체를 꿈꾸고 상식적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환호하며 그의 다음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안철수는 정직한 성공, 원칙과 상식, 혁신, 도전, 공익, 소통, 나눔 등 사람들이 바라는 가치를 행동으로 실천해온 이 시대의 아이콘이다. 이 책은 멘토로서 그리고 시대정신으로서 안철수라는 개인이 살아온 삶, 이야기가 품고 있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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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회영 평전
김삼옹 | 책보세 | 2011-06-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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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회영 평전
김삼옹 | 책보세 | 2011-06-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삼한갑족 부귀영화를 박차고 항일투쟁의 전사가 된
‘아나키스트’ 이회영의 파란만장한 ‘망국노’ 일대기 2011년 6월 10일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이자 요람이었다. 독립투쟁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청산리?봉오동 대첩의 주역들도 대부분 신흥무관학교가 길러낸 전사들이었다. 1911년 설립하여 1920년 폐교하기까지 10년 동안 항일전사 3500여 명을 길러냈으니 가히 ‘독립군 사관학교’였다. 그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주역이 바로 우당 이회영을 비롯한 신민회 동지들이고, 그 설립자금은 이회영 형제 일가의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마련한 40만 원이었다. 현재 가치로 600억 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과 그 형제들 그리고 동지들이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고 만들어 운영한 독립군기지다. 이회영은 여기서 배출된 전사들과 더불어 항일무장투쟁의 ‘전위前衛’에서 자유와 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일제를 경악케 한 항일투쟁의 배후에는 대개 이회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회영은 어떤 ‘자리’나 ‘지위’에도 이름을 걸지 않고 그야말로 ‘백의白衣’로써 투쟁의 전위에서 종군하였다. 당시 내로라하는 아나키스트 독립투사들은 대개 신흥무관학교를 거쳤으며,《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은 최연소(15세) 입학생이었다. 우당에 관한 ‘본격 평전’으로는 최초라 할 김삼웅의《이회영 평전》은 우당 개인의 일대기에 국한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당시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심층적?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보재 이상설,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백야 김좌진 등과의 관계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씨줄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노블레스들은 권리만 있고 책임과 의무는 없었다. 그래서 왕권의 그늘에서 온갖 이권과 호사를 누리던 자들이 막상 나라가 망하자 일제에 빌붙어 일왕이 주는 작위와 거액의 은사금을 받고 조국과 겨레를 배신했다. 이런 축에도 못 끼는 자들은 친일파가 되고 부일협력자가 되어 일제에 충성하면서 호의호식했다.” 그런 참담한 역사 가운데서도 이회영 일가와 같은 오블리주를 온몸으로 실천한 노블레스가 있어 오늘날 우리가 반이나마 ‘독립된’ 나라에 살고 있진 않을까. 이회영은 “역사가 무엇인지를 묻지 말고,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데 대한 답을 온몸으로 실천한 행동가이다.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지나간 미래상’으로서의 우당의 생애를 탐구하고 조명한 이 책은 그대로 ‘아나키스트 항일독립운동사’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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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주영 리더십
전도근 | 북오션 | 2012-07-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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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주영 리더십
전도근 | 북오션 | 2012-07-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대한민국 3無 무식, 무계획, 무모의 대표 거장, 정주영
그 속에 숨어 있었던 치밀하고 계획적인 컴퓨터 불도저 이 책은 넘치는 자원을 가지고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 있어 위축되어 있는 사람, 꿈을 잃어버려 새로운 비전을 갖고 싶은 사람, 창조력을 배우고 싶은 사람, 자신감을 상실하여 암울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정주영 리더십을 통해 한국인의 ‘끝없는 도전’과 ‘마르지 않는 열정’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기 위해 집필되었다. 왜 다시 정주영인가? 국가의 장기적인 철학의 부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있고 있는 시점에 국가발전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높이 설정하고 묵묵히 나아갔던 정주영과 ‘현대’의 정신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무엇을 남겼나? 정주영의 고정관념 깨기는 86년 생애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정주영이 만약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었다면 그는 지금 한국 현대사에서 거론되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한 농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자신의 생활에 안주했다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기 매김하고 있는 ‘현대’라는 이름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자고 일해 쌀가게 주인이 되었고, 정신없이 달려 건설회사를 만들었으며, 결국 현대그룹의 창시자라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황량한 UN군 묘지를 초록의 풀밭으로 바꾼 기지, 한국의 농사법에 착안해 ‘비닐하우스 공법’으로 끝마친 공사, 290일 만에 만든 경부고속도로, 자동차를 만들지 말라는 스나이더 미국 대사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우리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도정정신, 젊은 시절 몸소 깨달은 ‘빈대철학’과 “이봐, 해봤어?”라는 말 한 마디로 직원들을 독려했던 리더십,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찾아간 영국, 일본을 물리치고 88년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던 기쁨, 생애 마지막까지 열정을 쏟은 사업은 바로 대북사업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유명한 일화 뒤에 숨은 철저한 경영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주영의 리더십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유산임에 틀림없다. 그 유산을 잘 보존하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봐, 해보기나 해봤어?” 항간에 현대와 삼성을 비교하는 말들이 떠돈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삼성은 100여 장의 보고서를 만들고, 현대는 1장의 보고서만 만든다고 한다. 이 말은 두 기업의 장단점을 꼬집는 말이 아니라, 단편적인 경영 스타일을 꼬집는 말이다. 현대의 경우, 많은 생각과 연구 끝에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우선시 하고 일단 계획을 세우면 밀고나가는 경영방식의 우회적인 설명인 듯하다. 이는 ‘하면 된다’를 뛰어넘어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주영의 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간혹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 섣불리 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빨리’에는 여러 가지 노력과 땀이 배여 있다. 정주영이 단지 빨리하기에만 몰두했다면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빨리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했으며 일을 완수하기 위해 잠도 자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을 ‘하면 되는 일’로 바꾸었으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국형 리더십으로 승부하라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장점을 생각하기보다는 일본이나 미국의 장점을 이용해 우리 것으로 흉내 냈을 뿐이다. 그래서 도요타 경영, 두바이 경영, 스타벅스 경영을 배웠고, 잭 웰치, 스티븐 코비, 피터 드러커의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어왔다. 물론 그것들에서 얻은 것들을 애써 부인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보다는 우리만의 경영과 리더십이 더 큰 역할을 했으며, 거기서 비롯된 한국형 리더십을 다시 한 번 돌아볼 때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능력,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도전정신과 무서운 실천력, 신속 정확한 결단력이 생겨나면 이미 절반은 성공에 이른 것이다. 이와 함께 성실과 신용, 긍정적 사고, 명확한 비전, 지칠 줄 모르는 승부근성을 통해 신화를 만든 정주영 리더십은 다음 다섯 가지 경영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정주영 리더십의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1 창조정신 정해진 틀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2 도전정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한다. 3 진보정신 진정한 리더는 힘든 상황에서 공동의 비전을 만들어 에너지를 발산한다. 4 성공정신 인생을 낙담하기보다는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로 미래를 향해 달린다. 5 기업가정신 신용은 기업인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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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주영 리더십 노트
편집부 | 북오션 | 2012-06-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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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주영 리더십 노트
편집부 | 북오션 | 2012-06-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정주영의 리더십을 그대로 따라하자
『정주영 리더십 노트』는 고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의 리더십 특징을 바탕으로 100일간의 리더십 계획을 통해 그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한 실전 노트다. 정주영의 리더십을 ‘창조정신’ ‘도전정신’ ‘진보정신’ ‘성공정신’ ‘기업가정신’ 총 5가지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단계별로 적절하게 기간을 배분하고, 그 날 주제와 관련한 3가지 질문을 제시함으로서 내면에 있는 리더십 요소를 깨울 수 있도록 했다. 질문에 답하고 써보면서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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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빌 게이츠
하지혜 | 김앤정 | 2010-10-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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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빌 게이츠
하지혜 | 김앤정 | 2010-10-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21세기를 움직이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굼으로써,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빌 게이츠의 성공 비결을 담아냈다. 저자는 빌 게이츠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실천이 가능한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용하고, 모든 것을 고객의 처지에서 생각함으로써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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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삶, 그 이상
이치범 | (주)넥스페이퍼 | 2012-01-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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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삶, 그 이상
이치범 | (주)넥스페이퍼 | 2012-01-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림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이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담은 책 <삶, 그 이상>이 온라인을 통해 소개된다. ‘출판기념회도 온라인 시대’ 이치범 전 장관, 새로운 선거문화 앞장서 노무현정부에서 환경부장관을 지낸 고양시 덕양(을) 선거구 이치범 예비후보가 이달 10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온라인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 지금까지 선거 출마자들의 출판기념회는 출판되는 책의 내용을 알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출마자의 세를 과시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고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출마자의 지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어 왔던 게 사실. 이 전 장관은 “저간의 출판기념회가 가지는 폐해를 극복하고, 시간과 돈,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선거문화를 창출하고자 북콘서트 형식의 온라인 출판기념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치범 전 장관의 책제목 ‘삶, 그 이상’을 따 같은 제목으로 진행되는 이번 북콘서트에는 ‘영화감독 여균동씨가 사회자로 참여하고, 이 예비후보를 비롯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등 우리 사회 저명인사들이 출연해 대담을 진행한다. 이번 온라인 출판기념회는 이달 3일 인터넷방송국 ‘라디오 21’에서 녹화돼 이달 10일 오후 2시부터 이치범 예비후보 홈페이지, 오마이뉴스 등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어떻게 진행되나? 이번 북 콘서트는 이치범 전 장관의 책 ‘삶, 그 이상’을 단순히 소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출연진들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얘기를 함께 나누는, ‘책 ,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함께 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전 장관은 환경운동가로서의 삶, 장관 재직시의 성공과 실패뿐만 아니라 10여년을 살아온 고양시 덕양을 지역에서의 삶, 세 아이를 키운 아버지로서의 교육관 등에 대해 진솔하게 고백할 예정이다. 이해찬 전 총리, 김종남 총장 등도 이 전 장관과의 인연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에서 의미 있었던 순간 순간들을 솔직 담백하게 털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널리 알려진 여균동 감독의 입담이 한 몫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편 고양시민들로 구성된 관객들과의 대화는 그동안의 출판기념회가 보여준 칭찬 일변도의 이야기나 천편일률적인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라 저자와 독자가 진한 교감을 나누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출마자 출판기념회의 새로운 장 열어 총선 대선이 실시 되는 2012년은 대한민국이 정치로 요동치는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여기저기서 열리는 총선 대선 출마자의 출판기념회가 2012년이 격동의 시절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를 과시하고 허울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지역주민들과 직접 소통해 내용을 전하고자 하는 이치범 전 장관의 온라인 출판기념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선거문화의 하나의 전범으로 자리 잡아 갈 것으로 예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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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전의 검은 리더 오바마
박성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01-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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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전의 검은 리더 오바마
박성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01-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는 KBS의 베테랑 정치부 기자가 미국 대선 현장을 발로 뛰면서, 오바마를 밀착취재하고 조사하여 쓴 책이다. 기자 특유의 생동감있는 문체와 내용압축, 다큐멘터리적 구성이 웬만한 추리소설 못지않은 가독성을 불어넣고 있다.
이 책에는 흑인이라는 미국 사회 최대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삼아 성공한 오바마의 인생이야기와 함께 복잡한 미국 대선 관전 포인트가 소개되어 있고, 공화당 후보 매케인에 대한 남성적 매력도 담고 있다. 그리고 햇병아리 상원의원 시절의 오바마와 매케인 간 이메일 전쟁도 그대로 보여주어 미국 상류 사회의 고급한 블랙 유머와 해학을 만끽하게 한다. 2004년 7월 27일, 그해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존 케리 후보 출정식에서 흑인 영가 풍의 음악을 배경에 깔고 등장한 오바마가 행한 지원 연설은 지금도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출세 제1막 1장은 바로 그 명연설에서 열렸던 것. 그 연설 내용도 청중들의 반응과 함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히 실려 있다. 검은 오바마, 그의 인생 최대, 세계 최대의 역전 비결은 무엇인가 미국 사회에서 흑인, 그것도 ‘흑백혼혈’ 흑인은 흑인사회에서마저 ‘가짜 흑인’으로 낙인찍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미운오리새끼와도 같은 존재. 한 마디로 최악의 왕따 운명인 것이다. 오바마가 바로 그 운명을 타고 났다. 아프리카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혼혈’의 검은 오바마. 청소년기에는 농구장에서 방황도 하고 말콤엑스 등의 흑인 혁명가를 동경도 하며 행로조차 잡지 못하던 그. 어른이 되어서는 배리 Barry라는 미국식 이름을 버리고 ‘버락 Barack’이라는 아프리카 이름을 굳이 고집하면서 흑인임을 내세운다. 이슬람교도인 케냐의 할아버지에게 얻은 미들네임 ‘후세인 Hussein’은 미국인들이 제일 미워하는 바로 그 이름이다. 어느 것 하나 움치고 뛸 수 없는 그 태생적, 환경적, 사회적 나락에서 몸을 솟구쳐 대학 때는 세계 법학계 최고 권위의 학생 잡지 <하버드 로 리뷰 Harvard Law Review> 편집장에 오르고 마침내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그의 역전 비결은 무엇인가. 그를 키운 8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나 오바마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이 책을 통해 오바마에게 배울 수는 있다. 오바마 리더십의 핵심 오바마는 참모들과 회의를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 본다. “당신은 정말 조용하게 있네요.” 오바마는 회의 중에 말을 하지 않는 참모는 토론 진행에 뭔가 불만이 있거나 토론의 흐름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오바마는 자신의 주장을 야단스럽게 주장하는 참모보다는 반대 의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참모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한다. 성격이 소심해서 혹은 이런 말을 하면 왠지 바보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말을 참고 있는 참모들의 의견까지 모두 듣고 싶어한다. 조용한 반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바마는 참모들의 업무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편이다. 참모들의 의견을 들을 때는 세심하지만 일을 맡긴 사람에게는 영역을 존중해 준다. 세심해야 할 때와 내버려 둘 때를 잘 구분하는 것이 오바마 리더십의 핵심인 것이다. 재기를 꿈꾸는 세상 모든 패배자의 진정한 멘토 하원의원에도 당선되지 못한 일개 유색인종 정치꼬마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단 한 번의 연설로 전 미국인을 사로잡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조명받는 모습은 그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만큼 대단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냉소적 차별과 편견을 따뜻한 배려와 이해로 바꿔나가는 오바마야말로 재기를 꿈꾸는 세상 모든 패배자의 진정한 멘토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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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유시민, 진중권, 홍세화 | 책보세 | 2011-04-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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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유시민, 진중권, 홍세화 | 책보세 | 2011-04-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부끄러운 바보’들이 ‘살아서’ 바치는 통한의 헌사
슬픔이 벼락처럼 내리치고 산처럼 덮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참사람 노무현!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각계각층에서 추모의 물결이 전국을 휩쓸었다. 이 책은 서거 이후 <경향신문>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등의 일간지 및 월간 《말》, 그리고 각종 블로그에 발표된 글들 가운데 고인의 진면목을 밝히고 뜻을 잘 드러낸 글을 추려 모아 편집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집’이다. 박노해 시인의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를 서시로 시작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어버이날을 맞이해 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고인과 늘 함께했던 청와대 참모진들의 애석한 마음을 읊은 시와 추모사 그리고 각계 전문가들이 고인의 뜻을 어떻게 성찰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오롯이 전달하는 글들로 꾸몄다. 또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분들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탈하면서도 인간적 면을 느낄 수 있고, 《고시계》에 기고한 사법고시 합격 수기를 통해서는 권양숙 여사와 만나 결혼한 일화 등 청년 시절 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참고로 이 책에 실린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글은 유족 측의 허락을 받고 게재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유적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어디 문화유산뿐이겠는가. 음악도 아는 만큼 들리고, 하늘의 별도 아는 만큼 헤아리지 않겠는가. 하물며 사람 사는 세상이야 말해 무엇 할 것인가. 빈민의 삶을 알 리 없는 유럽의 어느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했다는데, 엠비 정권의 기획재정부 장관 윤 머시기가 그 왕비의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영리병원 설립 관련 국회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기막히게 패러디하여 “(병원비가) 비싸면 환자가 안 가면 될 것 아니냐 … 왜 그렇게 걱정이 많으냐?”는 명언을 남기셨단다. 그래서 이 양반 ‘성분’을 뒤져보니 서울대 나와서 미국 유학을 하고 금융권 노른자위를 두루 섭렵하시었으며, 재산도 돈 구애받지 않을 정도(21억 얼마)라고 자진 신고하셨다. 특정인을 비난하려고 윤 머시기를 들먹인 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런 ‘고귀하신’ 족속들이 엠비 정권을 도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이 ‘평민 떨거지’들의 삶을 알 리 있으며,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게 구현된 사회적?역사적 가치를 알 리 있겠는가 하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윤 머시기의 입놀림으로 보건대 알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도 바로 그런 심보와 정신머리를 가진 패거리의 무식하고 잔인한 폭력성이 빚은 비극이다. 웬 생뚱맞은 얘기냐고 할 법한데, 이 책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아니, 이미 이번 서거정국을 지켜보면서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순전히 일관된 소신으로 스스로 쌓아올린 정치적 자산만으로 대통령이 된 한국현대사 최초의 인물이다. 다시 말해 유구하게 이어온 정치판의 협잡이나 간계가 아닌 순전히 국민이 ‘감동’으로 뽑은 최초의 ‘국민 대통령’이다. 더구나 그 자신의 ‘성분’도 ‘그저 그런 평민’이었다. 하필 이런 ‘비천한’ 신분의 위험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고귀한 분들이 얼마나 가당찮아 하고 이를 갈았을지는 불문가지다. 그러나 그들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서슬이 얼마나 퍼런지 아는지라 처음에는 납작 엎드린 채 ‘저걸 어떻게 하수인으로 만들어 부려먹나?’ 짱구를 굴리고 있었겠다. 그런데 웬걸? 민주주의 흉내만 내던 전임자들과는 달리 생 촌뜨기가 진짜 민주주의를 하려고 설쳐대면서, 심기를 건드리고 밥그릇을 축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분들, 폼이고 뭐고 잡을 새도 없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노무현을 물어뜯었다, 내 밥그릇 건들지 말라고. 노무현은 쓰러질듯 하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반격을 가했다. 5년 내내 그 짓이 되풀이되었다. 그분들, ‘지긋지긋한’ 5년을 보내고 마침내 ‘청계천 신화’를 포장하여 자신들의 대리인을 대통령으로 세우는 데 성공하셨다. 근데 이건 뭐야? 자기들 대리인은 ‘촛불’에 데이면서 욕이나 직사하게 먹고 있는데, 그 촌뜨기는 퇴임한 후에 외려 인기가 올라 ‘노짱’을 구가하는 게 아닌가. 이런 환장할 노릇이 있나. 그래서 이분들, 사냥개들 총동원령을 내리고 현미경과 저인망을 기본 장비로 삼아 일사분란하게 ‘노무현 사냥’에 나섰다. 그 촌뜨기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포획한 후에 전시해놓고 자신들의 탐욕을 숨기고 죄악을 덮으려 하신 그 기막힌 작전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분들, 노무현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인간이 아닌 작자들 눈에 어디 인간이 보일 리 있겠는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퇴임 15개월 후에 이렇게 살해되었다. 그래서 슬픔이 온 국민의 가슴에 강으로 흐른 것이다. 절망이 바다처럼 일렁이고 죄스러움이 산처럼 내리누른 것이다. 이 책은 ‘노짱’ 살해에 관한 증언이고, 그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고, 속죄의 추도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