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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눈에 꿰뚫는 세계지명 도감
21세기연구회 | 이다미디어 | 2019-01-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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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눈에 꿰뚫는 세계지명 도감
21세기연구회 | 이다미디어 | 2019-01-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세계의 지명은 세계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사람에게 인명이 있다면 땅에는 지명이 있다. 사람의 이름이 한 인간의 아이덴티티와 역사를 담보하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땅의 이름도 그 지역의 특수성과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의 시발점이 땅이기 때문에 지명 자체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기호이다.
지명은 한 번 정해지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물론 환경이 변화하거나 다른 문화가 유입되면 과거 지명은 변화 혹은 소멸되고, 새로운 형태의 지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명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고 말한다.
이 책은 어려운 지명의 유래와 역사를 입체 그래픽지도와 풍부한 컬러도판을 활용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지명은 편의상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일 뿐만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담아온 타임캡슐이다. 그러므로 각 지역의 지명에는 한 민족의 언어, 풍속, 종교,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 책은 지명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 땅에서 일어난 여러 민족의 흥망성쇠, 즉 영광과 비극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지명은 한 나라의 운명을 예언하는 지정학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동유럽의 중앙부에 자리한 폴란드의 국명은 옛 슬라브어로 ‘평평한 대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이것이 농경에 적합한 평탄한 대지를 가리키지만, 격변의 시기에는 주변의 여러 나라로부터 쉽게 침략을 당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를 의미한다. 폴란드는 이러한 지정학적인 환경 때문에 두 차례나 주변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책에는 부록으로 세계 각국의 국명과 수도명에 얽힌 5,000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11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일독하는 것만으로 세계 각 나라의 역사와 세계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명 공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즐거운 시간여행이다
이 책은 지명에 대한 언어적인 단순한 접근보다 지리적 환경과 민족, 문화 등 다양한 각도에서 지명의 유래와 역사를 풀어내 해설한다. 특히 풍부한 지도 자료를 활용하여 지명이 탄생한 유래와 변화를 추적하는 과정은 한 권의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이처럼 지도를 통해 지명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즐거운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한다.
1703년 러시아의 표트르 황제는 스웨덴으로부터 빼앗은 핀란드만의 네바 강 하구에 한 도시를 건설했다. 그는 자기 이름의 어원이 ‘성 베드로’라는 점을 착안해 이 도시의 이름을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명명했다. ‘성스러운’을 뜻하는 상트와 ‘베드로’를 뜻하는 페테르, ‘도시’라는 뜻의 부르크가 합쳐져서 이 도시는 ‘성 베드로의 도시’가 되었다. 참고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독일어인데, 이는 표토르 황제가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긴 다음 독일의 근대화를 모델로 삼아 러시아를 유럽 국가로 발전시키려는 야심을 표현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1914년 ‘페트로그라드’로 개칭, 레닌 사후에는 레닌의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를 거쳐 1991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지명의 탄생과 유래, 그리고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류 5,000년 역사를 통사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땅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지명의 역사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다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의 역사가 바로 인류 역사의 뿌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책의 내용과 특징
1장 고대 지중해와 지명의 탄생
페니키아와 그리스 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 도시들의 지명에 얽힌 탄생 비화와 유래를 설명한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올림포스의 12신’ 가운데 지혜와 예술의 여신인 아테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항해술이 발달했던 페니키아인이 그리스 에게해의 서쪽 지방을 에레브, 동쪽을 아수라고 구분해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지리적으로 에게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에레브는 유럽으로, 아수는 아시아로 바뀌었다.
2장 지명을 바꾼 게르만족의 대이동
기원 후 3세기에 로마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현대 유럽의 기본적인 민족의 판도가 정해졌다. 게르만족에 밀려난 켈트족이 유럽의 서쪽으로 이동을 거듭하면서 프랑스를 거쳐 영국까지 진출했다. 알프스산맥은 켈트어의 바위산을 뜻하는 ‘알프’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프랑스의 파리도 센강에 거점을 둔 켈트계 파리시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파리시는 ‘난동꾼, 촌놈’이라는 뜻이다. 러시아는 바이킹족인 ‘루시’의 나라라는 뜻이다.
3장 동유럽 일대는 슬라브족의 고향
슬라브족은 유럽 동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도 유럽 여러 민족 중 가장 많다. 슬라브계의 나라 이름들을 보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등은 모두 ‘슬라브족의 나라’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옛 유고슬라비아도 ‘남슬라브족의 나라’라는 뜻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가 광대한 영토의 동쪽 끝에 건설한 항만도시이며, 시베리아 철도의 동쪽 기점이다. ‘동방을 정복하라’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도시는 현재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4장 대항해 시대가 큰 세상을 열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의 선두에 서서 아프리카 서해안 항로를 개척하고, 희망봉을 거쳐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의 뭄바이라는 지명은 뭄바 여신에서 비롯했는데 원래 포르투갈이 봄바인이라 불렀고, 영국이 지배했을 때는 영어로 봄베이가 되었다. 콜럼부스가 처음 발견한 신대륙은 그보다 나중에 탐험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메리고를 라틴어로 표기하면 아메리쿠스가 된다는 이유로 ‘아메리쿠스의 나라’, 즉 아메리카로 부른 것이다.
5장 몽골제국과 유라시아
13세기 유라시아를 통일한 징기즈칸은 몽골제국을 세웠다. 기마민족인 몽골족이 유럽을 침략할 당시 잔혹한 통치를 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두려움에 떨었다. 몽골족을 ‘타타르’라고 부른 것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잔혹한 지옥의 사자인 타르타로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에서 인도라는 명칭은 동양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폭넓게 ‘인디아스’라고 불렸다. 그러다 각 나라를 구분하면서 중국을 지나라고 부르고, 인도와 중국 사이의 지역을 인도차이나라고 명명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의 섬들’이라는 뜻이다.
6장 유대인의 이산과 아랍인의 진격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이라고 불렸다. 가나안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저편’에서 왔다는 뜻으로 ‘헤브라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종교와 민족 분쟁의 상징인 예루살렘은 헤브라이어로 ‘도시’를 뜻하는 예루와 ‘평화’를 뜻하는 살렘이 합쳐진 말로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이슬람의 성지 메디나는 ‘예언자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무함마드와 신자가 박해를 받자 불심신자와 대결하기 위해 야스리브(후에 메디나)라는 오아시스로 이주했는데, 이 이주를 ‘히즈라(성전, 영어로 헤지라’라고 불렀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명에 붙은 ‘-스탄’은‘-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페르시아계 및 터키계 특유의 지명 접미사이다.
7장 신세계 아메리카의 지명은 어떻게 만들었나?
아메리카를 발견한 진정한 공로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주도인 컬럼비아, 오하이오 주의 주도인 콜럼버스 등 각 주의 도시 이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은 영어로 Washington D.C.라고 쓴다. 이 지명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과 ‘컬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의 약자를 합친 것이다. 선주민인 인디언의 언어가 기원인 지명으로는 ‘붉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오클라호마 주, 그리고 일이노이 주의 시카고도 인디언어로 ‘야생 양파가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8장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전설
일찍이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암흑대륙’이라고 불렀다. 이집트의 남쪽에 있는 수단은 아랍어로 ‘흑인’이라는 뜻이다. 당시 수단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대략 아프리카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할 정도로 넓었다. 때문에 사하라 사막의 남쪽은 모두 ‘흑인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에티오피아는 그리스어로 ‘볕에 그을린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에는 유독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의 나라가 많다. 유럽의 열강들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같은 민족이 서로 분단되기도 하고, 한편 적대적인 민족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국경선이 현재 민족과 부족의 끊임없는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9장 ‘자연’이 낳은 지명의 역사
고대 그리스인은 일찍부터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유역을 ‘강의 사이’라는 뜻인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렀다. 유프라테스 강은 강의 폭이 넓어서 ‘평온하게 흐르는’ 반면에 티그리스 강은 ‘화살과 같이 빠르게 흐르며’ 간혹 범람하기도 한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강을 뜻하는 ‘일’에 관사 ‘나’를 붙인 것이다. 마젤란이 발견한 ‘태평양’은 ‘평화로운 바다’라는 뜻인 라틴어 마레 파시피쿰에서 유래해 영어로 ‘Pacific Ocean'으로 불렀다. 아라비아는 ’아랍인의 땅‘이란 뜻으로, 아랍은 아랍어에서 ’유목민‘을 뜻한다.
부록-국명과 수도명에 얽힌 5,000년 인류의 역사
세계 각국의 국명과 수도명이 생겨난 유래와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해두었다. 각 대륙별로 먼저 지도를 싣고, 그리고 국가별로 일목요연하게 분류해 설명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1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일독하는 것만으로 세계 각 나라의 역사와 세계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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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넛지 삼국지
강병국 | 진한엠앤비 | 2018-05-0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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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넛지 삼국지
강병국 | 진한엠앤비 | 2018-05-0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넛지 삼국지’는 넛지의 본래 뜻인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권유로 바른 선택을 돕는다. 바쁜 현대인들이 막대한 시간을 들여 열권의 삼국지를 읽도록 결심하게 하는 것은 결코 싶지 않는 일이다. 또 이미 읽은 독자들에게 다시 삼국지를 읽도록 권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넛지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았거나, 읽은 독자들의 옆구리를 쿡 찔러줌으로써 삼국지 독자가 되게 하고, 다시 명장면을 회상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물 30편(90명)과 배경 120편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과 당시의 배경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다는 점에서‘초간편 삼국지’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유비의 손자 유심은 부친 유선이 위의 등애에게 항복하는 것을 만류하다 듣지 않자 비분강개해 처와 자식의 목을 베어 할아버지인 유비의 무덤에 가지고 가서 대성통곡(大聲痛哭)하고 자결했다. 책은 수급 두 개를 그려 넣어 당시의 상황을 웅변해 준다. 관우와 황충, 허저와 마초의 용쟁호투,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거나 서서가 유비를 떠나는 모습,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천하를 놓고 다투는 적벽대전 등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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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정재정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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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정재정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여행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
한 권으로 읽는 한일 관계사 & 일본사 교토를 중심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일 관계사와 일본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됐다. 1천 년 이상 일본의 수도로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교토는 일본의 문화 중심지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 책 한 권이면 일본의 역사와 한일 관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훑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 서울과 교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한일 관계사 전문가가 들려주는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이야기가 당신의 시야를 넓혀 준다. 일본, 이제 알고 떠나자!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각 개성이 풍부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명의 교류는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침략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과 일본은 지구상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라는 명저에서 이런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로 비유했다.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라고 촉구하는 그의 경구(警句)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교토의 유적·유물에는 그런 충고를 뒷받침해 주는 사연이 너무나 많이 깃들어 있다. -저자의 말 중에서 일본인의 마음의 도시이자 1천 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문화 중심지 교토를 통해서 본 일본과 한국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두 나라가 육지로 연결돼 있던 약 6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가 호수였던 시절부터 이어진 사이니 보통 관계는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한일전만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앙숙 같은 사이가 돼 버렸을까. 곧바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가 떠오른다. 임진왜란은 역사상 최악의 침략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아무런 명분 없이 쳐들어와 조선의 문물을 마구 약탈했는데, 여섯 개의 특수 부대까지 편성한 조직적인 약탈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은 승리의 증거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본국으로 보냈기에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 일제강점기는 그 깊은 상처와 갈등이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해결되지 않고 있기에 더 말하지는 않겠다. 그런 일본이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가난에 쪼들릴 때 한국 전쟁 특수로 경제 회복을 넘어 경제 부흥을 이루게 됐으니 관계가 꽤나 복잡 미묘하긴 하다. 문명 전달의 관계 전환, 침략전쟁, 그럼에도 다시 시작한 교역……. 이러한 관계 변화의 한가운데에 교토가 있었다. 천 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곳곳에 유적과 유물이 있는,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파한 도래인(이주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조를 단행했던 곳이며, 윤동주와 정지용 등 우리 유학생들의 애환이 어린 곳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노동자로 동원된 뒤 일본에 잔류한 재일동포 집단 거주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한일관계사의 권위자인 정재정 교수가 교토의 곳곳을 다니며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더듬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고 그곳 학자들과 교류하며 한일 관계사를 연구한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은 받아들인 것을 한 번 쓰고 내버리는 ‘설사 문화’고, 일본은 받아들인 것을 꼭꼭 쌓아 두고 우려먹는 ‘변비 문화’다?! 이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나라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어떻게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됐는지 그 배경과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왜 교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을까? - 교토는 백제, 신라, 가야, 고구려 등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그들이 일본 문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 무가와 천황 간 정권 교체의 중심에 있었기에 이 정권 교체가 일본과 이웃 나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보여 준다. 또한 교토는 수도의 지위를 잃고도 거듭 변신을 꾀하며 발전해 왔는데, 이를 위한 교토시민의 다양한 노력을 볼 수 있다. - 역사적인 사건이 많이 벌어졌던 곳이며, 세력가들이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고 싶을 때 이곳에 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에 역사의 흔적이 담긴 유적·유물이 많다. ‘교토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 임진왜란의 시작점이기에 우리와는 악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다 묻은 이총과 고종황제를 황제 자리에서 쫓아낸 장본인인 메이지 천황의 묘가 있는 곳으로, 순종황제는 그 묘를 참배하는 능욕까지 겪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윤동주, 송몽규, 정지용 등이 유학했고, 많은 한국인 노동자가 일했던 곳이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활동과 행적을 읽을 수 있다. - 지금도 시내에 1,600여 개의 사원과 400여 개의 신사가 성업하고 있는 곳으로, 일본의 독특한 종교 문화를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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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인 이야기 1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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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인 이야기 1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스페인 이야기Ⅰ』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이베로 족과 피레네 산맥을 넘어와 반도 중앙과 서북부에 정착한 켈트 족이 서로 합쳐져 셀티베로 족이 되었고 이 종족이 스페인의 직계 조상이다.
스페인은 가톨릭과 이슬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다. 지금도 스페인 곳곳에 가톨릭과 이슬람 건축물이 남아있다.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칼을 든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지만 가톨릭에 의해 국토가 회복되었고 이것을 레콘키스타(Reconquista)라 부른다. 레콘키스타는 서기 718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영주가 이슬람에게 반기를 든 코바동가 전투가 그 시작이었다. 약 700년 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아닌 ‘국토회복운동’이라 부른다. 두 문화가 공존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다가 이웃끼리의 분쟁이 큰 싸움으로 번져 싸우고 화해를 반복한 세월이었다.
아무튼 780여 년 동안 지속된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이슬람 통치가 막을 내린 그 해 1492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 이것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이 태양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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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인 이야기 2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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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인 이야기 2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스페인 이야기Ⅱ』
스페인의 수호성인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다. 야고보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7년간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돌아간 예루살렘에서 헤로데에게 목을 잘려 죽었다. 그 야고보가 예수처럼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부활했다.
야고보 성인이 안치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전 세계 180여 개 국에서 일 년에 수십만 명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km를 걷는다. 오로지 야고보 성인을 알현하기 위해서.
같은 신을 다른 방식으로 믿는다는 이유로 구교와 신교 사이의 전쟁은 100년 동안 이어지면서 같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며 유럽의 인구 1/4을 잃고서야 끝이 났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했다. 신이 죽지 않고서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일까? 종교의 대체제로서 이성과 과학을 주장하는 계몽주의나 무신론이 널리 펴지면서 종교는 깊은 침묵에 빠져든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깊은 자성과 묵상 그리고 영적회복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된 곳이 바로 산티아고다. 산티아고는 예루살렘이나 로마와 다르게 자신의 신심을 온 몸으로 증명해보여야 야고보 성인을 알현할 수 없다. 누구의 인생이든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 있다. 이 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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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요와 거품의 역사
안재성 | (주)을유문화사 | 2018-10-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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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요와 거품의 역사
안재성 | (주)을유문화사 | 2018-10-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경제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재해석한 『풍요와 거품의 역사』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물질과 풍요를 숭배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 왔는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국채’ 활용 여부로 승부가 갈린 포에니 전쟁, 세계 최초의 버블인 튤립 버블 등 ‘돈 문제’로 비롯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세계사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 주는 독특한 시각이 돋보인다.
역사는 결코 ‘빚’을 잊지 않는다
튤립 버블을 지나 비트코인 열풍까지
‘돈 문제’를 통해 바라본 탐욕의 역사
역사를 움직이는 요소에는 전쟁, 정치, 사상, 철학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돈’은 역사 전면엔 덜 등장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대의명분이나 정치 철학 등으로 포장된 역사적 사건들 이면에는 언제나 ‘돈 문제’가 얽혀 있기 마련이었다. 이 책은 사실상 역사를 움직여 온 ‘돈’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해석한 독특한 책이다.
돈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릴 정도로 경제적 요인은 개인은 물론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고대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였던 포에니 전쟁은 흔히 군사력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하기 쉽다. 로마가 카르타고에 비해 우수한 병력과 훌륭한 지휘관을 많이 가졌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관점은 기존의 역사책에서 흔히 보이는 해석이다. 하지만 실제로 로마와 카르타고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원인은 긴 전쟁 기간 동안 쌓인 ‘빚’의 처리를 두고 보인 두 국가의 해결 방법 차이였다.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벌인 로마와 카르타고는 늘어난 전쟁 비용을 부담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결국 카르타고는 부족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속주의 세금을 늘리는 방안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증세는 속주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와 반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카르타고는 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기원전 249년, 카르타고는 드레파나 해전에서 처음으로 로마에 대승을 거두고도 제해권을 장악하기는커녕 오히려 해군을 감축시켰다. 늘어나는 전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증세 대신 국채 발행을 택한 로마는 ‘빌리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부유층의 반발을 억누르고 효과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해전에서 대패하고도 오히려 함대를 재건해 결국 1차 포에니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국가의 빚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카르타고는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그 승리를 이용하지 못한 반면, 카르타고보다 선진화된 ‘경제 개념’을 가지고 있던 로마는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한 덕분에 전투에서 패배했음에도 결국 전쟁의 승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채 발행이 모든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일까? 로마 제국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국채를 너무 남발해서 문제가 된 경우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를 거의 대부분 회복한 업적 덕분에 ‘대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러한 표면적인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유스티니아누스는 역사상 아주 뛰어난 위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결코 대제라 칭할 수 없는 인물이다. 오히려 역사가 프로코피우스가 자신의 저서인 『비잔틴 제국 비사』에서 칭한 것처럼 ‘하늘이 보낸 역병’이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제국에 그다지 도움도 안 되는 불모지를 정복하는 동안 동로마 제국은 막대한 빚을 져야 했다. 결국 유스티니아누스는 ‘대제’라는 불멸의 칭호를 얻고 죽었지만 그의 후임 황제들은 황실의 국고에 금은보화 대신 갚아야 할 국채 증서만 가득 쌓여 있는 걸 보고 망연자실해야 했다.
장밋빛 환상이 빚어낸 풍요와 거품들
종이로 금을 만들고, 꽃 한 송이로 저택을 구입하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움직이기는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나 귀족 등이 경제 논리에 따라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면 일반 시민들은 정책 방향을 틀게 만드는 여러 경제적 사건과 연관되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먹고사는 문제는 개개인에게 일순위에 해당하는 관심사다. 그러다 보니 과거 역사적으로 크게 문제를 일으켰던 경제 사건에 일반인들이 관계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튤립 버블과 미시시피 버블이다.
튤립 버블은 실론 섬 등을 정복한 뒤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면서 부국이 된 네덜란드에서 1630년대 불기 시작한 튤립 투기 열풍을 일컫는다. 당시 튤립은 유럽에 처음 소개되는 진귀한 꽃이어서 상당한 고가였다. 그러자 튤립 정원을 가꾸는 게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점점 더 좋은 품종의 희귀한 튤립을 찾기에 이르렀다. 한번 튤립에 명품 이미지가 생겨나자 잘 키운 튤립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졌고,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튤립 거래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고급 품종의 튤립인 경우, 저택 한 채 값에 맞먹기도 했다. 결국 유럽의 어떤 왕족이나 귀족도 튤립을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치솟자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던 거품이 순식간에 터졌다. 저택 한 채 값이었던 튤립의 가격이 양파 가격 정도로 곤두박질쳤고, 그 결과 무수히 많은 파산자가 생겨났다.
튤립 버블이 개인의 투기와 욕망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면 미시시피 버블은 좀 더 복합적인, 국가에서 주도한 일종의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루이 14세 이후 왕위에 오른 루이 15세는 막대한 국가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이때 존 로라는 인물이 어린 루이 15세와 섭정이었던 필리프 공 앞에 나타나 “종이로 금을 만들면 된다”고 설득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던 필리프는 존 로의 요청대로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프랑스 식민지인 루이지애나의 독점 개발권을 허가한다. 이 독점 개발권을 가지고 존 로는 미시시피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식민지를 개발할 것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벌인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프랑스의 국채를 미시시피 주식회사에 건네고 대신 주식회사의 주식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루이지애나는 기반 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고, 당연히 어떠한 수익도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미시시피 주식회사에 제대로 된 실적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는 파산했고 투자자들 역시 투자금을 몽땅 날려야 했다.
이 밖에도 나폴레옹 황제를 탄생시킨 아시냐 지폐의 발행,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한 경제적 배경,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등을 흥미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다루고 있다.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에서부터 대공황과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 유로존에 대한 전망까지 경제적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모두 다룬 이 책은 역사적 사건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해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세계사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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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히브리 민중사
문익환 | 도서출판 정한책방 | 2018-03-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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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히브리 민중사
문익환 | 도서출판 정한책방 | 2018-03-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8년 만에 복간된 늦봄 문익환 목사의 〈히브리 민중사〉. 통일운동가로 기억되는 문익환 목사가 사상가로서 시작한 출발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문익환 목사 특유의 입말을 통해 기독교가 히브리 민중의 해방을 이끄는 모습을 볼수록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뜨겁게 사랑하는 신 야훼를 만나 된다.
〈히브리 민중사〉를 펼치면 구약이 시작되는 '창세기'가 아니라 '출애굽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매우 이채롭다. 야훼를 이집트라는 제국에서 고통받던 히브리 민중이 의지하는 민중의 신으로 다시 불러보는 민중신학의 대표작다운 시각이다. 문익환 목사는 고통받는 히브리 민중을 이끄는 예언자들에 주목한다. 저항운동을 이끈 엘리야, 재야의 목소리를 터트린 아모스, 사랑을 토하는 호세아, 시온의 비극을 목도한 이사야, 들판에서 일어난 농민 예언자 미가, 마지막으로 시대의 풍운아이자 세계만방의 예언자가 된 예레미야를 차례차례 읽으면 이 예언자들의 모습과 문익환 목사의 모습에서 겹치는 면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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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서희석, 호세 안토니오 팔마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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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서희석, 호세 안토니오 팔마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현지 한국인이 보내온 낯설고도 묘하게 흥미로운 스페인 뒷이야기
여행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태양의 반도, 그 숨은 본모습 모스크와 대성당이 나란히 자리한 곳 역사와 이야기와 전설이 뒤섞여 있는 칵테일 같은 스페인사 대항해시대를 연 것을 비롯해서 유럽 역사, 나아가 세계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축을 담당했던 스페인은 그간 우리에게 그저 머나먼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의 나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나마 스페인을 소개한 책들도 가우디와 같은 건축에 관한 이야기나 여행 서적이 주를 이루고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을 다룬 책은 드문 편이다. 이 책은 단지 스페인이 좋아서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 한국인이 스페인 세비야대학 역사학부의 현지 친구를 만나 함께 역사적 유적지나 기념비적 장소 등을 방문하여 그곳에 얽힌 역사와 전설, 야사와 같은 뒷이야기를 함께 버무려 쓴 책이다. 서로 멀리 떨어진 유라시아 대륙의 두 끝, 이베리아 반도와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이 책에는 한국인이 바라본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이 바라본 또 하나의 스페인이 동시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스페인 사람조차 몰랐던, 한국인의 눈을 통해서 새롭게 조명된 스페인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스페인은 우리와 달리 여러 민족이 칵테일처럼 섞이면서 성장해 온 나라이다. 따라서 스페인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 땅을 거쳐 간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족, 무슬림의 역사를 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모스크와 대성당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이러한 스페인의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역사를 잘 보여 주는 상징물이다. 또한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를 열고, 역사상 처음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든 국가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약 4억 5천 만 명이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중국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이며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범위를 따져서는 사실상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가 바로 스페인어이다. 스페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럽의 여는 국가 못지않게 역동적이면서도 신비롭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세비야 사람들은 헤라클레스와 자신의 지역이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 중 열 번째 과업은 에리테이아 섬에서 게리온의 황소 떼를 몰고 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세상의 끝에 있다고 믿어지던 에리테이아 섬이 바로 오늘날의 세비야 지방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스페인에서는 카람볼로 지역에서 기원전의 고대 보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스페인 지역에서 재무관으로 근무하던 카이사르와 얽힌 전설도 남아 있다. 카이사르는 성벽이 적에게 침범당하지 않고 영원히 굳건하길 바라며 마카레나 성벽 밑에 자신의 애인에게서 낳은 쌍둥이 중 한 명을 죽여서 묻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서고트 왕국의 최후와 관련된 금지된 방과 횃불을 입에 문 독수리에 관한 전설, 스페인 세비야의 상징인 NO&DO에 얽힌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원전의 카람볼로 왕국이나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작되었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서고트 왕국의 성립과 이슬람 세력의 침입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과 아울러 소개되고 있어 정사와 야사가 적절히 뒤섞인 흥미진진한 스페인 역사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스페인 역사 속 미스터리한 사건·사고》 촛불의 저녁 식사 - 스페인의 서고트 왕국은 왕의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귀족들의 투표로 왕을 선출했다. 다만 왕을 죽인 자는 왕을 선출하는 선거에 후보자로 나갈 수 없었다. 서고트 왕국에서는 왕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 왕을 암살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고 싶었던 아힐라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페드로 왕의 머리 전설 - 잔혹왕 또는 정의왕이라고 알려진 페드로 왕은 어느 날 구스만 가문의 한 청년과 결투를 벌이고 그를 죽이게 된다. 그런데 가문의 힘이 세던 구스만 가문은 페드로 왕에게 범인을 잡아서 죽여 달라고 청한다. 페드로 왕은 차마 자신이 죽였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신 살인자의 목을 잘라 범죄 현장에 걸어 놓겠다고 말한다. 왕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헤라클레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아 숨 쉬는 땅 신화시대부터 대항해시대까지 스페인은 역사 이전에 이미 역사였다 대항해시대를 열며 유럽의 첫 번째 태양이라 부를 만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스페인은 역사 이전에 이미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졌던 장소였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갈랐다고 평가받던 제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이 이베리아 반도의 로마 도시에 속하던 사군툼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신의 정적인 폼페이우스 잔당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황제와 다름없는 권력을 지니게 된 문다 전투가 벌어진 곳도 스페인이었다. 유럽으로 세력을 뻗치던 이슬람 세력들과 가톨릭 세력들이 충돌한 지역 역시 스페인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한때 이베리아 반도 북부 지역을 제외한 거의 전역을 석권했으나 나중에는 스페인의 가톨릭 왕국들로부터 보호비인 파리아를 내는 신세로 전락했다. 스페인이 유럽사, 나아가 세계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대항해시대를 연 것이다. 스페인은 그동안 외면 받아 오던 대서양 루트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사실상 오늘날의 세계를 만드는 초석을 놓았다. 유럽의 역사를 뒤바꾼 대항해시대를 연 스페인의 역사는 곧 유럽의 성장사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스페인의 고대 문명인 타르테소스 왕국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반도에 정착한 서고트 왕국, 이슬람 지배 시대를 거쳐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으로 결실을 맺은 스페인 통일, 나아가 해가 지지 않는 스페인의 전성 시기를 구가한 펠리페 2세와 그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와 닮은 듯하지만 닮지 않은 스페인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유럽을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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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 그들이 기억하는 100년의 역사
홍윤표 | 렛츠북 | 2017-11-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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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 그들이 기억하는 100년의 역사
홍윤표 | 렛츠북 | 2017-11-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중국인의 기억’으로 중국 최근 100년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으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DNA를 해석해서 중국의 오늘을 이해하고 그들의 내일을 조금이라도 예측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중국의 DNA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오늘의 나를 생각해보자. 오늘 나의 행동은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나오고, 오늘의 나는 과거와 오늘의 모습을 되새김한 끝에 나온 미래 꿈을 이루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즉,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나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오늘과 내일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중국인들 스스로가 그들의 역사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수천 년 중국의 역사 중에서 최근 100년의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아편전쟁부터 시작된 청 왕조의 몰락 그리고 중화민국에 이은 중화인민공화국…. 이 시기는 중국 유사 이래 가장 비참한 역사 그리고 이 비극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드라마틱한 서사가 쓰여졌던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의 역사는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낸 가장 최근의 과거였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본격화된 서구 열강의 침략.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 의해 반식민지화되고 ‘아시아의 병자’로 조소를 받던 말기의 청나라.
신해혁명은 성공했으나 왕조만 멸망했을 뿐 격변하는 20세기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군벌의 시대를 시작한 중화민국.
모두 새로운 중국 건설을 간절히 원했으나 수단과 지향점이 너무나 달랐던 두 젊은 영웅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등장.
20년 만에 승패가 엇갈린 두 영웅의 운명.
가장 자본주의적 인간형이라고 평가되는 중국인들의 세상에 세워진 사회주의 국가 중화인민공화국.
사회주의 이상 건설을 위한 실험들과 시행착오.
마오쩌둥과 4인방 외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문화대혁명의 광풍과 중국의 잃어버린 10년.
덩샤오핑에 의해 개혁 개방으로 새롭게 리셋된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이후 30여 년간의 비약적인 발전과 세계 최강국으로의 부상….
중국인들이 지난 100여 년간 온몸으로 겪어낸 역사를 그들의 기억을 빌려 이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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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
임선우 | 지식과감성# | 2018-01-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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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
임선우 | 지식과감성# | 2018-01-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는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중국인의 일상과 습관 문화 풍속 이야기다.
『한국인 중국 민속학자가 쓴 재미있는 중국 풍속 이야기』는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도 중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다. 내용에는 중국인들의 일상과 습관 문화 풍속을 키워드로 총 10장으로 구성하였으며, 주제에 따라 소제목을 달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핵심 키워드는 중국 음을 달아 일상에서 활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모두 현재 중국에서 존재하는 살아 있는 문화와 풍속을 작가의 경험과 함께 잘 풀어내고 있어 읽을 때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중국 사람들이 현시점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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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레일웨이 맨
에릭 로맥스 | 황소자리 | 2017-08-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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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레일웨이 맨
에릭 로맥스 | 황소자리 | 2017-08-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를 추적하고, 바로잡고, 속죄하게 하라!
화해나 용서는 그 너머에서 고려할 문제다.
“대단한 책, 대단한 인물.” -〈데일리 메일〉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이 걸출한 자서전을 반드시 일독하길!” -〈인디펜던트〉
“한 전쟁포로의 가슴 저린 이야기를 담은,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책. 자서전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가디언〉
“역사에 짓눌린 가슴 아픈 개인사를 품위 있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들려준다.” -〈선데이 타임스〉
“비통하지만 강직하고, 그야말로 사려 깊은 회고록이다.” -〈헤럴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질의 회고록은 논외로 치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수십억 마디 말보다 이 책 한 권을 읽는 편이 더 낫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문학성과 역사성을 겸비한 명작.” -톰 펙
“증오스럽던 적이 피를 나눈 형제가 되기까지, 담담하고 절제된 목소리로 전하는 감동 실화.” -〈퍼블리셔스 위클리〉
◈ 책의 개요
콜린 퍼스, 니콜 키드먼 주연,, 영화 〈레일웨이 맨〉 원작!!
에릭 로맥스는 1919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탔으나 그리 유별날 것 없는 외동아이였다. 기계문명이 인류에게 신세계를 선사할 거라는 믿음이 팽배하던 그 시절, 소년 로맥스는 주변 여러 친구들처럼 ‘철도광’이 되었다. 예측가능성과 정확성을 중시하는 그의 성향은 거대한 기차의 동력과 거미줄처럼 얽힌 철도망 탐색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취미가 훗날 최악의 철도에서 그를 후려쳐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비통하되 강직하고, 사려 깊은 회고록
이 책 《레일웨이 맨The Railway Man》은 기차를 향한 열정과 전쟁 고문이 남긴 상처, 두 가지 치유 불가한 병이 얽히고설켜 결코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만 했던 한 남자의 특별한 회고록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수십억 마디 말보다 이 책 한 권을 읽는 편이 더 낫다”는 상찬을 들은 《레일웨이 맨》에서 70대에 접어든 에릭 로맥스는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관통한 태평양전쟁과 그 과정에서 자행한 일본군의 패륜적 만행을 냉정하고 통렬하게 고발한다. 아울러 전쟁과 고문이 남긴 상처로 인해 순수성과 안정성을 탐미하던 세계로부터 영원히 격리된 채 절뚝발이처럼 살아오면서도 반세기에 걸친 집요한 추적으로 가해자를 찾아내고 마침내 그와 대면하기까지, 가슴 저린 이야기를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들려준다.
대영제국이 무너졌다. 에릭 로맥스는 일본군 전쟁포로가 되었다
1939년, 우체국에 다니던 에릭 로맥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건 바다 건너 먼 곳의 이야기였다. 스무 살 나던 해에 영국 육군 통신장교로 자원한 것도, 순전히 재미없는 직장생활의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먼 바다에서 폭풍이 몰려오듯이 전쟁은 소리 없이 성큼성큼 다가왔고, 로맥스가 속한 노스 시그널 국왕 수비대는 1941년 3월 중순 대영제국 동쪽 국경을 수비한다는 임무 아래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영국은 영원하리〉를 들으며 승리감에 취했던 것도 잠시. 야맹증에 근시까지 있다던 일본군의 무차별적 공격 앞에서 대영제국 육군과 해군은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이제 에릭 로맥스 소위는 이름조차 생소한 극동지역 밀림 속에 버려진 전쟁포로였다.
일본군은 동아시아 패권을 영구화할 목적으로 착공한 버마-시암(미얀마-태국) 간 철도 건설현장에 연합군 전쟁포로들을 투입했다. 역사상 최악의 토목공학 참사이자 침목 하나 꼴로 한 명의 인명이 희생된, 이른바 ‘죽음의 철도’ 공사판이었다. 장소와 시간 소유권을 박탈당하고, 굶주림과 중노동에 시달리며 이미 죽음의 아가리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심함을 가장한 저들에게 더 음험한 계략이 숨어 있다는 걸 간파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라디오를 제작하고 철도지도를 그려 소지했다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를 씌웠다
1943년 8월 29일 동틀 무렵, 기술 인력이 따로 머무는 칸차나부리 포로 막사에 일단의 일본군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로맥스와 동료들이 조립한 라디오를 찾아냈고 오래지 않아 ‘철도광’ 로맥스가 열정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그린 현지 지도를 손에 넣었다. 도리깨질 하듯 무차별로 쏟아지는 폭행이 며칠 밤새 이어졌다. 아무리 주님을 부르고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소용없는 철저한 고독과 절망 속에서 매질을 당하는 동안 갈비뼈가 부러지고, 엉치뼈와 팔목이 으스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었다.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동료 두 명의 시신을, 일본군은 변소에 던져버렸다. 설상가상! 에릭 로맥스는 철도 루트가 표기된 지도를 그려 소지한 영국군 통신장교 출신이었다.
홀로 불려간 켐페이타이(일본 군경찰인 헌병대) 건물에서 그 끔찍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꽤 상세한 지도다. 철도 루트는 어떻게 알았나? 지도는 어디서 구했나? 누구와 내통했나? 어디로 도주하려 했나? 배후를 대라.” 어린시절부터 ‘철도광’이었다고, 기차와 철도시스템을 관찰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매혹적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휴식도 잠도 없는 심문이 줄기차게 이어지던 어느 순간부터 고문이 동원됐다. 물이 콸콸 뿜어져 나오는 파이프가 로맥스의 입과 코로 향했다. 물줄기는 기관지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폐와 위장까지 가득 채웠다. 그리고 또다시 심문과 폭행, 고문…. 숨을 쉴 수도, 견뎌낼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차라리 무의식 상태가 되고 싶어 애를 썼지만 노련한 고문기술자였던 헌병대 하사관은 로맥스가 완전히 까무러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장이 뒤집힐 듯한 구토와 함께 자존감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게워내던 순간, 짐승처럼 널브러져 “엄마”를 찾아 울부짖던 기억, 섬망과 코마에 빠져 생과 사를 오가던 장면들, 그리고 “로맥스 말해.”라고 끊임없이 다그치던 키 작은 통역관의 목소리, 문득 자신의 맥을 짚던 그의 손길….
형언할 수 없는 폭력과 야만 속에 내린 한 줄기 은총 덕에 로맥스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나를 폭행하고 심문하고 고문한 놈들을 찾기까지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전쟁이 끝나고 조국으로 돌아온 직후 영국 육군센터에서 짧은 의료검진을 받았다. 제대로 걸을 수 있고 정상 체온에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다. “이제 당신 삶을 사세요.” 인간적 존엄성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지옥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로맥스에게,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은 전쟁 이전의 세계, 정연하고 아름다웠던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만 잊고 털어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잊을 수도, 용서할 마음도 없다.” 종전 후 영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과오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로맥스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시시때때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복수심을 무기 삼아 그는 그때 그곳에서 왜 그렇게 치욕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자신을 때리고 감금하고 고문한 자는 누구인지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마침내 50년이 지난 후, 단 한순간도 잊을 수 없던 일본군 통역관 나가세 다카시(그는 “1942년 싱가포르에 도착한 조선인 위안부들은 모두 군용선으로 실려왔다. 그녀들은 애초 일본군 식당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착한 후 일본군이 위안부를 할 것을 강요했다.”라며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징용을 증언하기도 했다)를 찾아내고, 비극이 자행된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나 진정한 속죄와 용서를 이루어내기까지….
진정한 속죄와 화해를 이끌어내는 특별하고 올곧은 방식!
참혹한 개인사를 정밀하고 품격 있는 문장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1995년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충격적인 화제를 불러왔고 그해 Waterstone’s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이후 NCR Book Award, Esquire 논픽션상, JR Ackerley Prize를 연거푸 수상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2013년에는 조너선 테플리츠키가 감독하고 콜린 퍼스,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로 제작되었다.
우리는,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로 인해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런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 《레일웨이 맨》은 눈물겨운 감동을 넘어 여러 겹의 울림과 각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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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
후촨안 | 애플북스 | 2016-12-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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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
후촨안 | 애플북스 | 2016-12-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은 일본의 음식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문서로, 역사ㆍ사회ㆍ문화ㆍ문학의 관점에서 일본 음식을 깊이 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일본의 기후와 풍토, 그리고 식재료를 대하는 일본 사람들의 정성과 종교ㆍ사상ㆍ문화 등도 함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대만의 인문학자가 실제로 일본을 여행하고 문화를 관찰하면서 쓴 책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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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1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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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1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015 ‘전쟁 가능 국가’로 향하는 일본
참혹한 학살의 역사를 잊었는가
대한민국 광복 70주년과 중국 전승 7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이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로 인해 바쁜 가운데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경우, 자위대의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허용하는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의결했다. 주변국들에게 지울 수 없는 폭력을 자행했던 전범국으로서 역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거부한 채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아베 정권의 행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종전 70년을 맞아 ‘전후 70년 담화’ 발표를 앞두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내용을 계승할지 여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은 일본이 가진 야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가상과 허구로 기발하게 승리를 조작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사건은 역사를 부정하고 싶었던 일본 우익단체의 꿈을 여실히 보여준다. 1995년 5월 26일, 독일 전 총리 슈미트는 도쿄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지금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시기 한반도와 중국에서 벌인 수많은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면, 이웃 국가는 일본을 더욱 신뢰할 것이고 미래의 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일본국회가 가능한 한 빨리 반성을 하고 사죄의 부전결의를 통과시켜 이웃 국가들의 정치적인 우려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일부 우익단체가 조성한 ‘종전 50주년 국민위원회’는 1995년 5월 29일 도쿄 부도칸에서 이른바 ‘아시아 공생제전’을 개최하여 국회의 부전결의 통과를 공공연하게 반대했다. 이 대회는 침략전쟁에 대한 가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회장인 가세 도시카즈는 국회에서 식민지 통치나 침략행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사죄문건 통과를 반대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영혼을 모독하고 아시아의 독립을 위한 전쟁을 침략으로 정의하는 것은 잔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난징함락과 대학살: 난징대학살을 불러온 결정적 장면』(전4권)은 20세기 중일전쟁(1937~1945) 당시, 중국이 겪은 난징함락에서 대학살까지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긴박하고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삽화를 바탕으로 난징대학살 당시의 현장사진과 생존자 회고록을 함께 엮어 전쟁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야만적 학살로 이어진 역사의 진실을 직접 마주하며 오늘의 현실과 과거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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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2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92 |
[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2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015 ‘전쟁 가능 국가’로 향하는 일본
참혹한 학살의 역사를 잊었는가
대한민국 광복 70주년과 중국 전승 7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이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로 인해 바쁜 가운데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경우, 자위대의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허용하는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의결했다. 주변국들에게 지울 수 없는 폭력을 자행했던 전범국으로서 역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거부한 채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아베 정권의 행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종전 70년을 맞아 ‘전후 70년 담화’ 발표를 앞두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내용을 계승할지 여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은 일본이 가진 야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가상과 허구로 기발하게 승리를 조작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사건은 역사를 부정하고 싶었던 일본 우익단체의 꿈을 여실히 보여준다. 1995년 5월 26일, 독일 전 총리 슈미트는 도쿄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지금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시기 한반도와 중국에서 벌인 수많은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면, 이웃 국가는 일본을 더욱 신뢰할 것이고 미래의 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일본국회가 가능한 한 빨리 반성을 하고 사죄의 부전결의를 통과시켜 이웃 국가들의 정치적인 우려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일부 우익단체가 조성한 ‘종전 50주년 국민위원회’는 1995년 5월 29일 도쿄 부도칸에서 이른바 ‘아시아 공생제전’을 개최하여 국회의 부전결의 통과를 공공연하게 반대했다. 이 대회는 침략전쟁에 대한 가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회장인 가세 도시카즈는 국회에서 식민지 통치나 침략행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사죄문건 통과를 반대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영혼을 모독하고 아시아의 독립을 위한 전쟁을 침략으로 정의하는 것은 잔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난징함락과 대학살: 난징대학살을 불러온 결정적 장면』(전4권)은 20세기 중일전쟁(1937~1945) 당시, 중국이 겪은 난징함락에서 대학살까지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긴박하고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삽화를 바탕으로 난징대학살 당시의 현장사진과 생존자 회고록을 함께 엮어 전쟁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야만적 학살로 이어진 역사의 진실을 직접 마주하며 오늘의 현실과 과거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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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3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91 |
[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3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015 ‘전쟁 가능 국가’로 향하는 일본
참혹한 학살의 역사를 잊었는가
대한민국 광복 70주년과 중국 전승 7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이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로 인해 바쁜 가운데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경우, 자위대의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허용하는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의결했다. 주변국들에게 지울 수 없는 폭력을 자행했던 전범국으로서 역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거부한 채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아베 정권의 행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종전 70년을 맞아 ‘전후 70년 담화’ 발표를 앞두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내용을 계승할지 여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은 일본이 가진 야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가상과 허구로 기발하게 승리를 조작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사건은 역사를 부정하고 싶었던 일본 우익단체의 꿈을 여실히 보여준다. 1995년 5월 26일, 독일 전 총리 슈미트는 도쿄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지금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시기 한반도와 중국에서 벌인 수많은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면, 이웃 국가는 일본을 더욱 신뢰할 것이고 미래의 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일본국회가 가능한 한 빨리 반성을 하고 사죄의 부전결의를 통과시켜 이웃 국가들의 정치적인 우려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일부 우익단체가 조성한 ‘종전 50주년 국민위원회’는 1995년 5월 29일 도쿄 부도칸에서 이른바 ‘아시아 공생제전’을 개최하여 국회의 부전결의 통과를 공공연하게 반대했다. 이 대회는 침략전쟁에 대한 가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회장인 가세 도시카즈는 국회에서 식민지 통치나 침략행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사죄문건 통과를 반대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영혼을 모독하고 아시아의 독립을 위한 전쟁을 침략으로 정의하는 것은 잔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난징함락과 대학살: 난징대학살을 불러온 결정적 장면』(전4권)은 20세기 중일전쟁(1937~1945) 당시, 중국이 겪은 난징함락에서 대학살까지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긴박하고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삽화를 바탕으로 난징대학살 당시의 현장사진과 생존자 회고록을 함께 엮어 전쟁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야만적 학살로 이어진 역사의 진실을 직접 마주하며 오늘의 현실과 과거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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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4 (완결)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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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난징함락과 대학살 4 (완결)
저우얼푸 | 이담Books | 2015-11-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015 ‘전쟁 가능 국가’로 향하는 일본
참혹한 학살의 역사를 잊었는가
대한민국 광복 70주년과 중국 전승 7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이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로 인해 바쁜 가운데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경우, 자위대의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허용하는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의결했다. 주변국들에게 지울 수 없는 폭력을 자행했던 전범국으로서 역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거부한 채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아베 정권의 행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종전 70년을 맞아 ‘전후 70년 담화’ 발표를 앞두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내용을 계승할지 여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은 일본이 가진 야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가상과 허구로 기발하게 승리를 조작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사건은 역사를 부정하고 싶었던 일본 우익단체의 꿈을 여실히 보여준다. 1995년 5월 26일, 독일 전 총리 슈미트는 도쿄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지금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시기 한반도와 중국에서 벌인 수많은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면, 이웃 국가는 일본을 더욱 신뢰할 것이고 미래의 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일본국회가 가능한 한 빨리 반성을 하고 사죄의 부전결의를 통과시켜 이웃 국가들의 정치적인 우려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일부 우익단체가 조성한 ‘종전 50주년 국민위원회’는 1995년 5월 29일 도쿄 부도칸에서 이른바 ‘아시아 공생제전’을 개최하여 국회의 부전결의 통과를 공공연하게 반대했다. 이 대회는 침략전쟁에 대한 가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회장인 가세 도시카즈는 국회에서 식민지 통치나 침략행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사죄문건 통과를 반대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영혼을 모독하고 아시아의 독립을 위한 전쟁을 침략으로 정의하는 것은 잔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난징함락과 대학살: 난징대학살을 불러온 결정적 장면』(전4권)은 20세기 중일전쟁(1937~1945) 당시, 중국이 겪은 난징함락에서 대학살까지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긴박하고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삽화를 바탕으로 난징대학살 당시의 현장사진과 생존자 회고록을 함께 엮어 전쟁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야만적 학살로 이어진 역사의 진실을 직접 마주하며 오늘의 현실과 과거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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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
[역사]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이성주 | 생각비행 | 2016-04-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89 |
[역사]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이성주 | 생각비행 | 2016-04-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국제정치로 보는 전쟁의 본질”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금언을 꺼내지 않더라도 전쟁이 군인들에 한정된 폭력 행위가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곧 그 나라의 주권을 의미한다. 이 주권이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그 자체로 한 나라의 정치 행위이며 최후의 외교 정책이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라는 기획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다. 전쟁을 전쟁 자체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전쟁의 막후에 있었던 수많은 이해관계와 정치적 결정을 더듬어보며 전쟁의 본질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그 시작을 일본으로 잡은 데에도 이유가 있다. 20세기 가장 역동적인 전쟁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존재 자체가 한민족의 운명과 긴밀히 연관된 일본의 전쟁 기록은 우리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설명해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머리말 중에서
“열강에 의한 열강을 위한 러일전쟁”
국제정치사에서 말하는 ‘그레이트 게임’은 1813년부터 1907년 영국과 러시아의 협상까지 거의 100년 동안 러시아의 확장과 이를 막아서는 영국의 싸움을 말한다. 이 싸움은 영국의 농간에 놀아난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만주와 한반도를 놓고 벌인 러일전쟁으로 결말을 맞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동아시아 패권과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는 영국의 절박함은 대륙 진출을 노리던 일본과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맞았다. 결국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미국의 지원 속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엄청난 인적 손실과 전비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러일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아니라 영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은 영국이 벌인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체스판에서 ‘말’에 불과했다.
“러일전쟁, 러시아의 몰락과 일본의 부상”
19세기 러시아는 영국과 쌍벽을 이루는 대제국이었다. 하지만 1905년 1월 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진 유혈 행진인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노동자와 민중 시위가 러시아 전역의 대도시로 퍼졌고 경제 지표도 국정이 마비될 정도로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러시아 내부의 문제들로 차르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을 통해 국내의 불안을 외부로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에 패하면서 차르 체제는 더욱 흔들리게 되고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비록 러시아 내부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나 서구 제국들이 세계를 식민지화하던 시기에 일본이 국력의 10배 이상 격차가 나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모해보였다. 하지만 일본은 보란듯이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승리했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러일전쟁은 20세기 초 세계의 90퍼센트를 지배하던 백인 제국주의 국가에 커다란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으며 그들에게 일본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20세기 전쟁 국가 일본, 피로 물든 한반도”
20세기 일본은 ‘전쟁 국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다. 국가의 탄생 자체가 일본 최후의 내전이라는 세이난 전쟁에서 비롯되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을 통해 제국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제국으로 성장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전쟁으로 부활했다. 이 같은 전쟁 국가 일본이 최우선으로 확보하려고 애쓴 땅이 바로 ‘한반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러일전쟁에서 대한제국이 편을 든 나라는 일본이었다. 당시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이 승리해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러일전쟁을 만주의 문제로 생각했고 같은 인종인 일본을 더 우호적으로 여겼다. 안일하고 국제 정세에 둔감한 지도자들 때문에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대책 없이 비참한 꼴을 당했다. 러일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영토가 전쟁터로 변한 대한제국이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전쟁터로 변한 대한제국을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의 승자가 전리품으로 가져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예비 식민지”라며 무기력한 대한제국을 경멸했다.
역사는 반복되며 전쟁의 비극도 반복된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내세운 명분은 ‘자위自衛’였다. 이러한 명분으로 시작한 침략 행위는 아시아의 많은 국가에 엄청난 고통을 야기했다. 식민지로 삼아 경제적 수탈은 물론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으며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에 몰아넣었다. 이런 역사를 부정하기라도 하듯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만약 평화헌법을 개정한다면 일본은 법적으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명분으로 전쟁 국가 일본이 내세웠던 논리와 똑같은 ‘자위’를 내세우고 있다. 과거 러일전쟁 때의 영국처럼 오늘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러일전쟁 당시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전쟁의 참상은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도 끝나지 않는 진행형이다. 어느 나라나 평화를 외치지만 크고 작은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전쟁의 불꽃이 언제 세계대전으로 번질지도 알 수 없다. 러일전쟁 당시처럼 우리가 국제 정세에 둔감할 때, 나라를 지킬 힘이 없을 때, 자국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의지할 때,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자국의 이익과 권리가 보장될 때는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며 떠든다. 하지만 언제 등을 돌리고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러일전쟁에서 영국, 일본, 러시아,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열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속에서 짓밟히고 피 흘리는 건 힘없는 나라의 국민들이다.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는 20세기 초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러일전쟁이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의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정치적 결정이 힘 있는 국가의 이익만 철저하게 대변했다는 사실을 더불어 알려준다. 러일전쟁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철저하게 외면받고 고통받은 한반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 러일전쟁은 일제 식민지를 지나 한국전쟁과 분단의 시발점이 된 전쟁이기도하다. 이 책을 통해 전쟁 이면에 있는 정치적 결정과 그 결정에 의해 수행된 전쟁의 인과관계를 확인해본다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금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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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말하지 않는 세계사
최성락 | 페이퍼로드 | 2016-09-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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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말하지 않는 세계사
최성락 | 페이퍼로드 | 2016-09-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놀랍고, 당혹스러운, 거침없는 세계사 이야기!
당신이 아는 세계사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1789년 대흉년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성군으로 칭해지기 위한 조건은 덕과 능력이 아니라 온화한 기후?
조선의 영조와 정조, 청나라의 강희제와 옹정제와 건륭제, 프랑스의 루이14세와 루이15세,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각 나라의 번영을 이끈 통치자였다는 것. 그리고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재위했다는 것. 세 나라 모두, 그것도 거의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누린 건 단순한 우연일까? 우연의 일치로 비슷한 시기에 성군이 등장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 세 나라의 중흥기는 18세기 말에 접어들어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조선은 세도정치와 민란으로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을 기점으로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해 19세기까지 이어지는 전쟁과 혁명으로 혼란이 거듭된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서양 국가 모두에서 같은 시기에 흥망성쇠가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국가의 번영과 안정은 농업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해의 작황에 따라 경제와 민심이 달라졌다. 농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바로 날씨다. 농사가 주산업이었던 시절, 날씨가 좋으면 농사가 잘되어 경제가 성장했고, 날씨가 추워 농사가 잘 안되면 경제가 어려워졌다.
지구의 온도는 16세기 말부터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해 18세기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농사짓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농산물 수확량이 늘어나고 사회 전체의 소득이 증가했다. 이 시기는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 옹정제, 루이14세 등의 재위 기간과 일치한다. 한편 18세기 말에 들어 지구의 평균 온도가 떨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흉년이 잦았다. 이 시기는 각 나라의 혼란기와 일치한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에는 대흉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였는데, 이는 프랑스혁명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어쩌면 국가의 흥망성쇠는 왕의 덕과 역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의 발전을 위해 힘썼던 영조와 정조에게는 다소 불쾌할지도 모를 이야기다. 국가와 민심을 잘 다스리지 못해 곳곳에서 원망을 샀던 왕이라면 이 이야기를 빌려 당시 국가의 혼란이 자신만의 탓만은 아니었다고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 책은 단선적인 역사, 단일한 원인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관계, 사회의 변화, 상황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의 ‘다시 쓴 세계사’를 통해 독자는 ‘새롭게 보이는 세계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별다른 功도 없던 맥아더가 왜 미국의 대표로 항복문서를 받았을까?
1945년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호에서 일본 외무장관 시게미쓰 마모루는 항복 문서에 서명한다. 이때 더글라스 맥아더는 미국을 대표해서 그 자리에 섰다. 이 장면은 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그 후 맥아더는 태평양전쟁의 승리의 상징이 돼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미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은 맥아더가 아니라 해군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였다. 니미츠가 구사한 섬에서 섬으로 이동하는 아일랜드 호핑(Island Hopping)전략의 성공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가 가능했던 것도 미 해군의 전략에 의해 일본이 점령했던 ‘티니안 섬’을 탈환하고, 공습기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맥아더가 미군의 대표 자격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맥아더는 필리핀을 일본군에게 빼앗기고 호주로 도망가기까지 했다. 그 후 필리핀 탈환에만 매달렸다. 필리핀은 태평양전쟁의 주전장이 아닌데도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정치적 쇼맨십에 능했던 맥아더가 강력히 주장해 항복문서 서명식의 주인공이 됐던 것이라고 한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 전세를 뒤집었지만 중공군의 참전가능성을 무시해 다시금 후퇴하게 되자 아예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확전을 불사하고자 했던 것도 맥아더 특유의 오기였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말하지 않는 세계사』는 이처럼 역사에서 웬만큼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잘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모았다. 역사와 관련해 흔히 통용되는 이야기, 혹은 상식 속에는 사실과 다른 것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비주류의 견해는 묻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대사나 역사기록 이전의 역사,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에는 현대의 지식체계에서 설명하기 어렵거나 기존에 상식을 뒤엎는 사례가 다수 있다. 그리스 문명이 고대 이집트 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부정하는 서양의 주류 역사학자들, 단 한 번도 외적을 막아내지 못했던 만리장성의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중국의 주류 역사학자들. 자신이 보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들만 일반화하려는 모습이다.
일반인들은 역사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 이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재미있게 가공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다. 이런 사실의 가공과 뒤틀림을 아는 것도 역사 공부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지식에 맞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퍼즐에 끼워 맞출 수 없는 비밀이야기가 펼쳐진다.
○ 1장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야기한다. 특히, 농업에 의존하면 살아가던 근대 이전에는 당시의 기후가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일 년 전에 프랑스에는 대흉년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프랑스혁명의 원인을 프랑스의 재정 적자, 귀족의 횡포, 시민계급의 성장으로만 알고 있다.
○ 2장은 동양의 역사에서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꽌시’라는 중국인들의 문화가 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중국의 정치와 국민들의 삶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오늘날 중국의 부정과 비리가 척결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꽌시’를 말하지만 사실 ‘꽌시’는 정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중국 국민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 이 책의 3장은 세계사 중에서도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지리상의 발견과 맞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이 흥미롭다. 인류가 남극을 최초로 발견하기 이전에 이미 고대지도에 남극의 해안선이 정밀하게 묘사되어있고, 같은 시기에 살지 않았던 인간과 공룡이 발자국 화석으로는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주류를 이루는 이야기들과 맞지 않는 흥미로운 문화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 4장은 말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사 이야기. 흔히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끌고 왔다고 지탄받던 아메리카의 노예가 사실은 원래 아프리카에서 노예였다는 것, 히틀러의 인종차별보다 덜하지 않았던 미국의 유대인과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의 역사 등을 말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군인으로만 알려진 맥아더의 과오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밝힌다.
○ 5장은 경제적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6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사건들에 집중한다. 프랑스는 전쟁 후에 과거 청산을 잘한 나라로 꼽히지만 사실 그 과정에는 광기의 폭발이 있었다. 또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이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이 책의 마지막 7장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구체적으로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는 사치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작곡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의 기록물은 사실 다빈치만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학습 노트였다. 또 다윈 이전에 진화론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유명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가공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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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국, 알고 배우자!
최주천 | 북랩 | 2014-05-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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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국, 알고 배우자!
최주천 | 북랩 | 2014-05-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1세기 초강대국 美國,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美 대학교수이자 연방정부 공무원 출신인 최주천 박사가 긴급 진단한 미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
저자는 미국 유학 1세대로 6·25전쟁 직후 미국으로 떠나 미네소타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방정부 공무원(식품영양·복지정책)으로 일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이 없었기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미국의 실체를 빨리 깨닫게 되었고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교수이자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저자는 반세기를 훌쩍 넘는 미국생활을 통해 유학생, 여행자들에게 미국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어느 나라나 배울 것은 있지만 분별없이 본받는 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 또 그 밖의 여러 나라들의 현실을 꼬집어 이야기하면서 본받아야 할 것과 우리가 전해야 할 것 그리고 융합해야 할 것들을 제시한다. 또한 이를 통해 독자 역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자세를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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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드니 택시 기사의 문화 관찰기
지성수 | 생각비행 | 2016-07-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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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드니 택시 기사의 문화 관찰기
지성수 | 생각비행 | 2016-07-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시드니 택시 기사의 문화인류학 단상”
이 책의 저자는 호주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면서 백인 사회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택시 기사로서 다양한 인종, 수많은 사람들을 손님으로 만나면서 서구 사회의 밑바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드니 택시 기사의 문화 관찰기》는 “백인들은 왜 이럴까?”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 특유의 시각이 담긴 문화인류학적 단상집이라 할 수 있다.
택시 기사로서 만난 수많은 군상 중에 가려 뽑은 인물과 재미있는 에피소드 덕분에 일단 재미있다. 하지만 기저에 담긴 백인 문화에 대한 촌철살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동서양을 비교하는 유머가 담긴 통찰은 묵직함마저 남긴다. 서구 사회와 백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한국과 호주 양쪽 사회의 뒷골목을 샅샅이 누비며 백인 사회의 밑바닥을 관찰한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이유는 충분하다.
“호주 백인은 안 하는 직업”
세계적으로 택시 기사가 제일 되기 어려운 곳은 영국의 런던이다. 워낙 오래된 도시라 길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런던 출신의 토박이라도 택시 운전 자격을 따려면 보통 1년 정도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혀야 한다. 그러니 이민자가 택시 기사가 되기에는 문턱이 너무나 높다.
호주 시드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산 설고 물 설은 남의 나라로 온 이민자가 도전하기에 쉬운 직업은 아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말도 서툰 외국 사람이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한다고 상상해보면 될 듯하다. 풀타임으로 5주간 교육을 받고도 시드니의 지리, 거리 이름, 운행 코스는 물론 호텔, 병원, 공공시설 등을 1000개 가까이 외워야 택시 운전사 시험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호주의 택시 운전사는 모두 이민자들이다. 황량한 공항 주차장에서 아랍인 택시 운전자들이 구석에서 담요를 깔고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개 기복주의 기도다. 반면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와서 종교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중국인 운전자들한테서는 기복주의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대단히 종교적인 아랍인들이나 대체로 유물론적인 중국인들이나 택시의 시동을 걸고 나면 똑같다. 불티나는 경쟁뿐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불평등은 항상 존재해왔다. 호주의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밑바닥에서는 이민자들이 열심히 택시를 굴린다. 그 위에는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뜯어먹고 사는 앵글로·색슨들이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역시나 유대인들이 있다. 택시 업계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그들 앞에서 이민자 택시 운전사들은 약자로서 조련당하고 감시당하면서 각종 명목으로 돈을 바치는 와중에 그저 약간의 돈을 벌 뿐이다.
“죄수 18만 명으로 시작된 땅”
백인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못 받고의 차이는 인종의 차이보다도 크다. 저자는 똑같이 교육을 못 받았더라도 백인들이 동양인들보다 훨씬 더 짐승다워지는 것 같다고 본다. 즉 말이 통하지 않고 감각적인 욕망과 생존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얘기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스킨헤드 그룹의 주축은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 한 10~20대들이고 KKK나 신나치 활동을 하는 이들도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40~50대 노동자 계층으로 백인 중에서 소외된 자들이다.
백인 사회에도 나름대로 문제가 많은데 오랜 시간 한국인은 선진국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었다. 60대 이상은 스스로에 대해 ‘엽전이 별수 있나?’ 하는 자괴감에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는 선진국의 뛰어난 국민성을 믿어버렸고 그렇게 되고자 오랜 세월 스스로를 돌아보고 비판했다. 그 덕분에 이제 여러 방면에서 한국은 선진국보다 사회적 질서가 더 잘 잡힌 사회가 되었다. 윗사람들이 질서를 안 지켜서 걱정일 뿐.
서구 사회는 기독교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저자는 호주에 처음 왔을 때 한국보다 훨씬 질서정연하고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년간 택시 운전을 하면서 관찰한 끝에 서구 사회가 짜임새 있게 조직되고 효율적인 이유가 기독교와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푸코의 저작 《감시와 처벌》을 곁들여 풀어낸다. 한국 사회에는 삼청교육대가 전두환 시절에 생겼으나 푸코의 설명에 의하면 서구는 17세기에 이미 이런 체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호주는 원래 영국의 삼청교육대였다. 호주는 영국이 가장 잘나가던 빅토리아 여왕 시절,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 훔치다 잡혀도 이곳으로 보내졌던 죄수 18만 명으로 시작된 땅이다.
외국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보다 보면 전투 장면에서 적이 앞에서 총을 쏘는데도 일렬횡대로 총을 들고 전진하는 모습이 나온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를 리가 없는 인간들이 총알을 피하기는커녕 맞아가면서 마치 로봇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바로 조련 기술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서구는 동양보다 먼저 훈련을 시행해서 동양을 제압할 수 있었다.
서구 세계는 근대 이전부터 규율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도원을 시작으로 군대, 학교, 병원 등 꽉 짜인 일과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훈육하는 집단을 양성해왔다. 서구의 역사는 이런 과정을 빼놓고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어느 집단에서나 개인차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집단을 평가할 때에는 이를 무시하고 어느 정도 도매금으로 평가하게 된다. 두 집단 간의 차이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을 때는 양쪽 사회를 살아보고 피부로 느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15년간 택시 운전사로 수많은 백인을 만난 경험을 비추어 이 책의 저자는 동양 사회는 개인차가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서양 사회는 개인차가 엄청나다는 점을 파악했다.
“내면화된 식민주의”
역사적으로 백인 우월주의 혹은 ‘백인 인종주의’의 단초는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투갈 선박들이 이슬람 세력을 누르고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흑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기 시작하면서 백인들의 우월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피부 색깔이나 얼굴 형태’를 중심으로 한 인종주의가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이 비서구권을 강제 점령하는 과정에서 인종주의가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비서구인과 땅 그리고 자원을 구조적으로 수탈하는 과정에서 이를 정당화하는 매개로서 서구 인종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서구는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비서구 인종들의 삶의 양식, 역사와 문화를 자신들이 주조한 ‘유사과학’에 근거하여 다시 쓰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양심적 지식인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이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에 의하면 백인들은 유색인들이 저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창조해가던 고유의 문화를 ‘차이’와 ‘특징’으로 보지 않고 ‘야만성’과 ‘후진성’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서구의 진보적인 문화와 가치로 그들을 ‘계몽’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이는 유색인들을 근대성으로 계몽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manifest destiny) 같은 허위적인 강박관념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맥락에서 서구인들은 비서구인들을 야만인으로, 계몽되어야 할 무지한 존재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상 식민주의는 비서구 원주민을 계몽하려는 이타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알제리의 지식인이었던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은 식민주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 마노니(Octave Mannoni)의 연구를 소개한다. 식민관계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식민주의자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나오는 인물인 프로스페로와 같이 타자를 존중하지 못하며 지배하려는 병리적인 충동을 보이며, 자신의 딸이 열등한 존재에 의해 강간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인종차별주의적 경향마저 드러낸다. 마노니는 식민주의자를 ‘프로스페로 콤플렉스’(Prospero Complex)라 부르는 복합적인 충동의 소유자로 파악했다.
한편 프란츠 파농은 마노니의 식민관계에 대한 연구를 비판하면서 흑인들이 백인을 증오하면서도 그들을 닮아가기를 바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오랫동안 백인들의 지배를 당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문화에 동화된 의식 속에 잠재한 일종의 ‘내면화된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엽전이 별수 있나?” 하는 자학적인 감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또한 친일 교과서 논란을 일으킨 뉴라이트 학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도 아마도 이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불특정 다수 백인을 대상으로 택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인종차별 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흔히 받는다고 한다. 왜 없겠는가? 피부색이 다르고 자기네가 쓰는 언어도 제대로 못 하는 이방인을 무시하는 현상이. 가방끈 길이와 관계없이 무식하고 용감한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다만 호주 사회의 차별은 워낙 ‘세련되어서’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며 그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좌우, 위아래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있든 어떤 인종이든 간에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잘 지내려 노력하고 살아가는 것만이 평화를 이루는 방법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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