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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의 전성기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4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2-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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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의 전성기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4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2-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내용 개요 파란만장, 한강의 주인은 바로 나 4세기 후반부터 한반도는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문구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역동적인 시기였다. 비단 삼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남?북조 국가들과 가야, 왜까지 모두 연결되어 화해와 반목을 거듭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동지는 언제든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었다. 점입가경의 경쟁 속에 천하를 쟁취하는 열쇠는 바로 한강. 그 한강을 차지하고 천하의 패권을 쥐는 자는 누가될까?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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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인은 가우디다
김희곤 | 오브제 | 2014-09-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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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인은 가우디다
김희곤 | 오브제 | 2014-09-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가우디 없는 스페인은 없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미완의 천재 가우디의 건축에서 열정을 배우다! “슬프게도 내 손으로 성가족 대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Antoni Gaudi 스페인 건축 전문가 김희곤의 신작 『스페인은 가우디다』가 출간됐다. 저자의 전작 『스페인은 건축이다』는 여행을 하듯 아름다운 스페인 건축을 소개하는 문화 답사기로 출간 즉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스페인은 가우디다』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삶을 연대순으로 보여주며, 그가 인류에게 선물한 건축물을 심도 있게 소개한다. 바르셀로나 곳곳의 가우디의 건축 사진을 보고 건축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결코 화려하지 않았던 인간 가우디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삶은 미완성일 때 가장 아름답고 빛난다 “건축은 아무 말 없이 군림한다.” _가우디 가우디가 남긴 건축물 중에 완성작은 없다. “가우디의 모든 작품 중에 유일하게 완성작으로 꼽히는 카사 밀라도 성모 조각상만은 끝끝내 옥상에 올려놓지 못하고 공사를 마쳤다.” 성가족 대성당, 구엘 공원, 카사 비센스 등 가우디가 남긴 작품들은 대부분 개축이나 공사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미완의 작품들이다. “인간의 삶처럼 가우디의 모든 작품들은 미완성인 채로 끝났다.” 그러나 “가우디의 꿈은 완성보다 더 값진 미완의 열정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195쪽) 그는 열정으로 지병을 이겨냈고 편견에 맞섰다. 성가족 대성당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를 진행 중이며,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의 성자로 불린다. 가우디 없는 스페인은 없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구사일생으로 참석한 졸업식에서 학장이 가우디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군들 우리는 천재 아니면 바보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무수한 시련과 비웃음을 이겨내고 가우디는 학교를 졸업한 지 5년째 되던 해인 1883년 11월, 성가족 대성당 총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가우디의 나이는 당시 31살이었다. 이듬해 3월 가우디는 전임 감독의 설계도면을 부정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가족 대성당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이때 가우디의 손을 들어준 사람을 졸업식장에서 가우디를 두고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비웃었던 로젠 학장이었다. _프롤로그 “가우디가 우리에게 전해준 삶의 교훈은 평생 가슴이 이끄는 방향으로 비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완의 작품으로 신화가 된 가우디는 우리에게 여전히 말하고 있다. 인생에서 완성은 없다. 삶은 미완성일 때 가장 아름답고 빛난다.”(에필로그) 가우디와 함께 떠나는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가우디는 건축의 신이다. 나는 가우디의 열정을 좋아한다.” _르 코르뷔지에(건축가, 1887~1965) 이 책은 가우디와 함께 건축 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가우디의 삶은 그의 건축물을 보다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가우디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건축 사무실을 열고 가장 처음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은 무엇인지, 그가 어떤 이유로 성가족 대성당 공사를 맡게 되었는지…… 그리고 가우디의 죽음이 얼마나 숭고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다양하고 화려한 건축물 사진과 자료를 실어 건축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이고 있다.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뉜다. 1장 ‘가우디의 탄생’은 가우디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다. 류머티즘, 폐병 등 고질병을 안고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대장간을 놀이터 삼아 놀고 주변의 숲과 유적을 스승 삼아 거닐던 가우디의 유년이 그려진다. 그리고 바쉬 캄(레우스와 타라고나를 둘러싼 넓은 평원) 지역의 자연과 유적을 모험하며 꿈을 키우던 가우디가 담겨 있다. 2장 ‘청년 가우디’에서는 바르셀로나 건축대학을 입학해서 간신히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건축가로서 발을 내민 청년 가우디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우디는 가난했고 고독했고, 그의 기발함을 누구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우디는 공방을 전전하며 학비를 벌었다. 이 장에서는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와 리베라 지구, 람블라스 거리 등 가우디가 고독한 청년 시절에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다. 3장 ‘가우디, 명성을 떨치다’에서는 건축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 가우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카사 비센스, 구엘 궁전, 성 테레사 학원, 카사 칼베트, 구엘 공원 등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와 인근 지역에 남긴 건축물을 산책하듯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청년 피카소에게 공격을 받고, 고집불통 예술가로서 놀림을 받던 가우디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4장 ‘가우디의 마지막 도전’에서는 가우디의 숭고한 마지막 삶과 마주친다.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를 짓고 가난한 자를 위한 집만을 짓겠다고 결심한 가우디.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성가족 대성당을 짓는데 헌신했다.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인 성가족 대성당을 설계하고, 영원히 바르셀로나의 성자로 남은 가우디의 숭고한 영혼과 마주칠 수 있다. “1909년 7월 산업화로 일자리를 잃은 바르셀로나 노동자들이 정부와 교회 권력에 항거하며 교회와 수도원을 불태웠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우디는 더 이상 부자들의 개인 건물을 짓지 않고 오로지 성가족 대성당 공사에 매진했다.”(프롤로그) “많은 교회와 종교기관이 무참히 파괴되고, 신부와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나서 마침내 비극의 주는 끝이 났다. 다행히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별다른 파괴 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공사를 함께하며 땀 흘렸던 노동자들이 파괴를 막아주었다. 이후 가우디는 더 이상 개인을 위한 건축물을 짓지 않기로 결심했다."-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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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의 통일전쟁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9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3-0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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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의 통일전쟁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9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3-0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의 터닝포인트 19 신라의 통일전쟁>
삼국이 통일 되었다. 혹자는 요동 땅을 잃어버린 반쪽자리 통일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빛나는 외교력과 치열한 투쟁이 낳은 진정한 의미의 민족 통일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삼국은 신라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 그리고 역사는 바뀌었다. 격동의 시대를 평정한 신라. 과연 삼국 통일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점을 시사하는가. <역사의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역사의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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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를 기억하라
하워드 진 | 오월의봄 | 2014-01-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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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를 기억하라
하워드 진 | 오월의봄 | 2014-01-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를 보라, 역사를 기억하라,
역사를 왜곡하는 대통령과 정치인에 맞서라! 불복종, 직접행동, 민권운동과 반전평화운동……. 역사가이자 희곡작가,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던 하워드 진. 그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배우고 기억할 때만이 기득권의 거짓과 기만에 속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누가, 왜 역사를 왜곡하는가 역사교과서 논란으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한편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좌편향 교과서’가, 다른 한편에서는 일제와 군사독재를 미화하는 ‘친일 교과서’가 문제라고 한다. 급기야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회귀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논란은 역사에 관한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논쟁이 아니다. 현재 권력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된 근현대사가 논란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특정 가치관과 관점을 통해 기득권을 옹호하고 낡은 체제를 지속시키려는 욕망과 거기서 비롯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역사와 그렇지 않는 역사 역사 왜곡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만의 일도 아니며,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하워드 진이 이 책을 통해 고발하고 있듯이 미국 건국 당시 인디언들에 대한 인종학살, 남북전쟁 직후의 농민반란, 19세기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 등은 미국 역사 교육에서 철저하게 지워졌다. 한국 또한 좌익계열의 독립운동, 해방 전후 우익에 의한 백색테러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등이 삭제된 채 오랜 기간 반쪽짜리 역사를 가르쳐왔다. 결국 어떤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인가는 언제나 기득권층,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왔던 것이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하워드 진의 일관된 주장이다. 어떤 부도덕한 정부나 특정한 집권 세력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상 그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중요하다. 역사를 알아야만 정부가 하는 거짓말에 속지 않을 수 있으며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다. 하워드 진의 말처럼 역사를 모른다면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정부가 하는 말을 다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의 40여 년간의 연설들 하워드 진은 역사학자, 실천하는 지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정치적 비판이 담긴 촌철살인의 유머로 자신의 급진적 사상을 설득력 있게 전할 줄 알았던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이 책은 1963년부터 201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하워드 진이 했던 연설들 중 주요 연설 20개를 선별하여 묶은 연설집으로 2012년 미국에서 발간되었다.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전 반대운동,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기득권층을 위한 입법과 기만적인 사법시스템, 미국 예외주의와 정의로운 전쟁,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허구 등 이 연설들은 미국 사회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첨예한 쟁점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각 연설문마다 독자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주는 탁월한 논리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연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역사의 중요성이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 미국 정부든 한국 정부든, 정부가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가 ‘국익’이다. 국가의 이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우리 모두의 이익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하지만 국익은 언제나 특정 집단, 기득권층의 이익이었으며 국익을 추구한다고 했을 때 늘 그로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과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 국가와 정부를 일치시키는 것도 잘못이다. “정부가 옳은 일을 할 때는 나는 정부를 지지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내 나라를 지지할 것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애국심은 민주주의 국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지 불의를 일삼는 정부까지도 지지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다. 따라서 하워드 진은 국가와 정부를 구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정부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적혀 있으며 하기에 그런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는 “국민이 정부를 수정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시민불복종운동의 정당성이 재확인됨은 물론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세상을 바꾸는 지혜 하워드 진은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며 계급적 의식을 갖게 되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의 참전 경험은 그를 반전주의자로 만들었다. 이 두 가지 경험은 그가 역사학에 접근하는 주요한 관점이 되었다. 이후 그는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흑인들만 다니는 스펠맨 대학교 교수가 된 뒤, 학생들과 함께 흑인차별에 반대하는 민권운동에 가담하면서 201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민불복종운동, 반전평화운동, 인권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하워드 진은 자신의 삶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그것은 바로 아래로부터의 역사, 계급적인 역사, 유색인종과 여성 등 약자와 소수자들의 저항의 역사였다. 또한 그는 베트남전쟁에서부터 테러와의 전쟁까지 미국이 일으킨 무수한 전쟁에 직접행동으로 반대하는 한편 소위 ‘정당한 전쟁’이란 것에 어떤 기만과 거짓이 담겨 있는지 통렬하게 폭로했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라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했던 사코와 반제티, 무미아 아부자말 사건을 통해 기만적인 사법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이 바로 이 책에 담긴 연설들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사회운동은 영웅적인 행동 몇 개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회운동, 무언가를 이루는 거대한 사회운동은 수백만 명이 각자 작은 행동을 하고, 역사의 어느 시점에 그 작은 행동들이 하나로 뭉침으로써 일어납니다. 그럼으로써 뭔가 바람직한 일이 생기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워드 진의 연설들은 모두, 9·11 테러 직후 미국이 군국주의의 광풍에 휩싸였을 때조차 낙관주의에 근거한 유머가 깃들어져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무엇보다 역사를 잘 알고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역사에서 세상을 바꾸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고,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그러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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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아시아사 1
김상훈 | 다산에듀 | 2013-04-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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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아시아사 1
김상훈 | 다산에듀 | 2013-04-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방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를 한눈에 읽는다
국내 최초, 통으로 잡히는 아시아의 역사!!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동방의 문명이 열린다! 《통아시아사》에는 아시아 동서남북에서 호령하던 열강들의 이야기는 물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마이너 국가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까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이해하고 알아야 할 아시아의 모든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다. ‘통 역사 시리즈’ 전권에서 동일하게 다루는 ‘통박사의 역사 읽기’는 본문에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느라 잠시 빠뜨렸던 에피소드를 다시 한 번 뒤에서 짚어주는 코너다. 이번 《통아시아사》에도 대륙 곳곳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읽을거리를 구석구석 배치했음은 물론, 이전에는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통박사의 한반도 넓게 보기’를 통해 아시아 속 한국의 역사까지 통으로 살펴볼 수 있다. 독자와 좀더 가까워지기 위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듯 저자가 써왔던 특유의 친절하고도 명쾌한 문체 역시 여전히 이어진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등 대륙별 역사를 하나하나 정복하다 보면 ‘세계사’는 저절로 눈떠진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아시아 역사가 하나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시아 하면 보통 어느 나라를 떠올릴까? 중국? 일본? 아니면 인도? 따로따로 다뤘던 각국의 역사들을 한곳에 모아 거시적인 관점에서 아시아인의 삶을 보여줄 《통아시아사》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이 책은 기존의 ‘통 역사 시리즈’가 표방하듯, 일반적인 역사서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알던 딱딱하고 지루한 교양서가 결코 아니다. 억지로 쉬워 보이기 위해 컬러풀한 그림을 삽입해 시선을 뺏은 타서와도 절대 차별화를 꾀한다. 서양사, 동양사, 한국사까지 전 세계 역사의 큰 줄기를 통으로 보여줬던 《통세계사》처럼 그 맥을 같이하는 책이다. 이는 스토리의 중요성을 독자들이 더욱 크게 인식한다는 점을 깨닫고 본문 자체를 좀더 충실히 보강했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본격적인 아시아의 시작인 고대 문명의 발달부터 세계를 호령하던 중세 시대 열강을 지나 아시아 민중이 세계 인구의 절반으로 우뚝 서기까지 조각으로 나뉘었던 아시아의 역사가 완벽하게 재현된다. 이렇게 방대한 분량을 동주제별·동시대별로 한꺼번에 다룬 책이 그동안 없었을 만큼 《통아시아사》는 국내 유일한 교양역사서다. 워낙 대단한 규모의 역사가 등장하다 보니 다른 대륙사들처럼 단 한 권으로 싣기에 무리가 있어 고대부터 중세까지, 근대부터 현대까지 1, 2권으로 나눠 편집했다. 소위 중국의 역사가 아시아사의 전부일 거라는 편협한 해석을 떨쳐버리고, 외면받았지만 또 다른 민족색을 가졌던 작은 나라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눈에 낱낱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륙별로 이어지는 통시리즈, 그 마지막 ‘아시아’ 이야기!! 《통아시아사》는 한마디로 재미있다. 시대별로 나뉜 장이 끝날 즈음엔 그 시대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연계해 살펴볼 수 있어 마치 3D처럼 입체적으로 아시아의 역사가 다가온다. 고대부터 몽골 제국까지, 근대부터 현대까지 구체적인 사진이나 캡션과 함께 살펴보니 더더욱 쉽다. 그뿐만 아니다. 가장 넓은 대륙인 만큼 각 나라별로 지도를 세밀히 그려 현재 설명되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짚어주고자 했다. 그동안 진부하고 딱딱한 역사책에 익숙해 있다면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본 마지막 대륙사 《통아시아사》가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방대한 아시아의 역사를 흐름에 따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술술 읽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 《통아시아사》 한 권이면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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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아시아사 2
김상훈 | 다산에듀 | 2013-04-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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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아시아사 2
김상훈 | 다산에듀 | 2013-04-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방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를 한눈에 읽는다
국내 최초, 통으로 잡히는 아시아의 역사!!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동방의 문명이 열린다! 《통아시아사》에는 아시아 동서남북에서 호령하던 열강들의 이야기는 물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마이너 국가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까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이해하고 알아야 할 아시아의 모든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다. ‘통 역사 시리즈’ 전권에서 동일하게 다루는 ‘통박사의 역사 읽기’는 본문에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느라 잠시 빠뜨렸던 에피소드를 다시 한 번 뒤에서 짚어주는 코너다. 이번 《통아시아사》에도 대륙 곳곳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읽을거리를 구석구석 배치했음은 물론, 이전에는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통박사의 한반도 넓게 보기’를 통해 아시아 속 한국의 역사까지 통으로 살펴볼 수 있다. 독자와 좀더 가까워지기 위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듯 저자가 써왔던 특유의 친절하고도 명쾌한 문체 역시 여전히 이어진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등 대륙별 역사를 하나하나 정복하다 보면 ‘세계사’는 저절로 눈떠진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아시아 역사가 하나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시아 하면 보통 어느 나라를 떠올릴까? 중국? 일본? 아니면 인도? 따로따로 다뤘던 각국의 역사들을 한곳에 모아 거시적인 관점에서 아시아인의 삶을 보여줄 《통아시아사》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이 책은 기존의 ‘통 역사 시리즈’가 표방하듯, 일반적인 역사서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알던 딱딱하고 지루한 교양서가 결코 아니다. 억지로 쉬워 보이기 위해 컬러풀한 그림을 삽입해 시선을 뺏은 타서와도 절대 차별화를 꾀한다. 서양사, 동양사, 한국사까지 전 세계 역사의 큰 줄기를 통으로 보여줬던 《통세계사》처럼 그 맥을 같이하는 책이다. 이는 스토리의 중요성을 독자들이 더욱 크게 인식한다는 점을 깨닫고 본문 자체를 좀더 충실히 보강했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본격적인 아시아의 시작인 고대 문명의 발달부터 세계를 호령하던 중세 시대 열강을 지나 아시아 민중이 세계 인구의 절반으로 우뚝 서기까지 조각으로 나뉘었던 아시아의 역사가 완벽하게 재현된다. 이렇게 방대한 분량을 동주제별·동시대별로 한꺼번에 다룬 책이 그동안 없었을 만큼 《통아시아사》는 국내 유일한 교양역사서다. 워낙 대단한 규모의 역사가 등장하다 보니 다른 대륙사들처럼 단 한 권으로 싣기에 무리가 있어 고대부터 중세까지, 근대부터 현대까지 1, 2권으로 나눠 편집했다. 소위 중국의 역사가 아시아사의 전부일 거라는 편협한 해석을 떨쳐버리고, 외면받았지만 또 다른 민족색을 가졌던 작은 나라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눈에 낱낱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륙별로 이어지는 통시리즈, 그 마지막 ‘아시아’ 이야기!! 《통아시아사》는 한마디로 재미있다. 시대별로 나뉜 장이 끝날 즈음엔 그 시대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연계해 살펴볼 수 있어 마치 3D처럼 입체적으로 아시아의 역사가 다가온다. 고대부터 몽골 제국까지, 근대부터 현대까지 구체적인 사진이나 캡션과 함께 살펴보니 더더욱 쉽다. 그뿐만 아니다. 가장 넓은 대륙인 만큼 각 나라별로 지도를 세밀히 그려 현재 설명되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짚어주고자 했다. 그동안 진부하고 딱딱한 역사책에 익숙해 있다면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본 마지막 대륙사 《통아시아사》가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방대한 아시아의 역사를 흐름에 따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술술 읽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 《통아시아사》 한 권이면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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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유의 종을 난타하라
손동우, 양권모 | 들녘 | 2014-12-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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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유의 종을 난타하라
손동우, 양권모 | 들녘 | 2014-12-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격동의 굽이마다
명문이 있었다 명문이란 무엇인가? 시공을 초월해 읽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그 울림의 여운이 진하고 오래 남아 정신의 푼푼한 자양분이 되는 글이 명문이다. 해서, 미문(美文)이 곧 명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정신이 녹아 있지 않다면 명문이 될 수 없다. 명문을 대하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결국 명문을 찾는 순례는 역사 속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를 비롯해 고대, 중세의 고전 명문들을 소개하는 작업은 그나마 근래 들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역사와 삶에 보다 직결될 뿐더러 한글이라는 모국어로 된 명문과 명연설문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근대 이후의 것을 제대로 소개해놓은 책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독립투쟁, 민족의 나아갈 바를 놓고 좌우의 이념대립이 불꽃을 튀긴 해방 공간, 분단과 한국전쟁, 경제개발과 독재, 그리고 가혹한 탄압과 희생 속에서 꽃핀 민주화.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근현대사의 굽이굽이에서 시대의 고뇌를 갈파하고, 역사의 물꼬를 바꾼 명문과 명연설문을 한 묶음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어쩌면 극히 평이할 수 있는 이 같은 물음이 이 책을 쓰게 했다. 신문사 논설위원들의 현장감 넘치는 해설 이 책의 실린 명연설문의 태반은 우리 근현대사를 수놓은 위인, 혁명가들의 것이다. 1894년 동학혁명에서부터 1960년 제2공화국의 시작까지 아우르면서 글로서의 완성은 물론이고, 우리 역사의 고비에 굵은 궤적을 남긴 것들을 추린 결과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 연설문을 쓰게 된 배경과 인물 설명을 한 길라잡이 글을 매번 곁들였다. 길라잡이 글은 당시의 신문과 증언, 자서전과 회고록 등을 참고해 최대한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발표된(혹은 연설된) 현장과 시대를 보다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현장감을 살렸다. 연설문의 경우에는 미리 준비한 글 없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시도된 것이 많아 전해지는 판본도 여럿인데다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연설문을 읽으며,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앞뒤 정황을 살펴 임의로 오자를 수정하고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전하려고 노력했다. 또 1940년대 이전의 글만 해도 한자 표현이 많아 지금 읽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중간중간 번역글을 달았다. 1894년부터 1960년의 격동기를 총 4개의 장으로 나눠 27개의 연설문을 실었다. 좌우의 이념적인 잣대를 최대한 배제하여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해방정국에서의 김일성, 박헌영의 연설문도 포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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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선비들의 행복 콘서트
김봉규 | 행복한미래 | 2014-11-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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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선비들의 행복 콘서트
김봉규 | 행복한미래 | 2014-11-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의 선비들, 행복한 삶을 말하다
일시적인 즐거움이나 쾌락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 행복한 일상의 삶을 누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 행복은 로또 당첨되듯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옛 선비들은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며 실천하는 삶을 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국가와 사회가 행복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심신을 수양하며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본성을 밝혀 언제나 깨어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수양한 주인공들이다. 유학(성리학)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나 철학에 비해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래서 유학을 공부한 선비들의 삶은 특히 올바른 삶,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 방도를 어느 부류의 지식인들보다 잘 제시하고 있다. 그런 삶을 추구한 선비들이 남긴 글들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를 돌아보는 일은 참된 행복의 길을 가는데 각별한 가르침을 줄 것이다. 그들의 행복관을 비롯해 부부관계, 자녀교육, 풍류와 멋, 직장(공직)생활, 음주, 음식과 건강, 마음수행, 죽음 등 삶의 여러 분야에 대한 글들을 가려 뽑아 정리했다. 글의 주인공들은 널리 알려진 이황, 이이, 조식, 정약용, 류성룡, 김성일, 이규보, 박지원, 김홍도, 이광사, 정철, 김굉필, 이익, 김상헌, 이산해, 채제공, 허목, 기대승, 최한기, 이원조, 정구, 송시열, 장흥효, 권벌, 허균, 주세붕 등 50명 정도에 이른다. 선비들은 때로는 근본적인 가르침을, 때로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실천 지침을 남기고 있다. 선비들이 남긴 옛 글, 그들이 가꾼 '지혜의 숲'을 거닐어 보자. 진정한 행복은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때 '부자 되세요' 라는 인사가 유행이었다. 이 말은 부자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생각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자가 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주고 받았을 것이다.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까. 아닌 것 같다. 최근에는 '웰빙' '힐링'이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행복하세요' 라는 말을 수없이 주고받는다. 행복에 대한 갈증이 그 만큼 심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옛날보다 돈을 더 벌고 물질적인 부분이 충족되어도 '행복'은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져도 만족을 모르고 경쟁은 더욱 심해지는 사회가 되고 있으니, 행복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더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복'을 얻기 위한 아우성이 도처에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행복을 강요하는 듯하기도 한데, 이렇게 아우성을 친다고 행복이 찾아올까? 죽기 살기로 헬스를 하고, 성형을 하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로또에 당첨이 된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일시적인 쾌락이나 만족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달려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진정한 행복은 그렇게 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삶,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선비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옛 선비들의 다양한 글들을 통해 행복을 길을 제시하다 네 잎 크로버는 ‘행운’을 상징하고, 세 잎 크로버는 ‘행복’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 없이 널려 있는 세 잎 크로버(행복)를 밟으며, 네 잎 크로버(행운)를 찾아 헤맨다. 사람들은 왜 어리석게 이렇게 널려 있는 ‘행복’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얻기도 어려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는 '행운'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일상의 행복, 진정한 행복을 언제나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도하고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이 관건이다. 온 세상이 달콤한 맛을 내세우며 유혹하고 광분하더라도 거기에 현혹되지 않는, 맑은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청정한 마음’을 잘 보존하며 길러가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이치다. 마음도 육체와 마찬가지다. 건강한 마음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헛된 욕심을 없애야 하고, 맑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해야 한다. 이 마음을 되찾아 보존해가면 삶은 행복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이것이 행복의 길이다. 하지만 실제 이렇게 사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옛 선비들이 남긴 편지나 일기, 수필, 수행기록 등을 통해 우리가 행복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이 책이 제공할 것이다. 일상의 삶부터 본격적인 수행방법까지, 행복한 삶을 가는 다양한 길을 제시하다 이 책은 음주나 취미생활, 독서, 산행, 자녀교육, 직장(공직)생활 등 일상적인 삶에 대한 선비들의 글은 물론, 본격적인 수행방법에 관한 글들도 담고 있다. 한훤당 김굉필이 제자에게 써준 <한빙계(寒氷戒)>는 ‘욕심을 막고 분함을 참아라’ ‘사치를 버리고 검소하라’ ‘마음을 한결같이 하라’ 등 평범하지만 지극히 소중한 가르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퇴계 이황이 옛 성현들의 마음수행법을 엮은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에서 뽑은 글들 역시 언제나 곁에 두고 보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주옥같은 가르침들이다. 중국의 무왕, 주희, 정이, 진덕수 등 성군과 대학자들이 거울이나 세숫대야, 서재의 벽 등에 새기거나 써놓고 평생 심신수양의 좌우명으로 삼은 글들이다. 이런 글을 통해 조선의 선비의 행복한 삶을 알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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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엽기 스캔들 1
김성기 | 21세기북스 | 2013-09-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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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엽기 스캔들 1
김성기 | 21세기북스 | 2013-09-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판 스포츠서울! 조선 시대 속사정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왕과 궁전, 후궁의 삼각관계부터 내시들의 은밀한 이불 속 사정까지. 조선의 은밀한 실상을 재미있게 파헤치는 조선엽기스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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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엽기 스캔들 2
김성기 | 21세기북스 | 2013-10-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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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엽기 스캔들 2
김성기 | 21세기북스 | 2013-10-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판 스포츠서울! 조선 시대 속사정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왕과 궁전, 후궁의 삼각관계부터 내시들의 은밀한 이불 속 사정까지. 조선의 은밀한 실상을 재미있게 파헤치는 조선엽기스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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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정구선 | 팬덤북스 | 2014-05-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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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정구선 | 팬덤북스 | 2014-05-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주식동원酒食同源, 주약동원酒藥同源?
국상 중에 술을 마셔 파면된 관리들, 임금에게 술 마시라고 강권하는 신하들, 소주에 산초를 타서 마신 세자의 스승, 술에 취하여 임금을 ‘너’라고 부른 정승까지…… 조선 시대의 천태만상 음주 풍습을 들여다보다! 술 마시기를 늘 하지 말고, 덕으로써 몸을 가지도록 하라. 어찌 해로우랴 말하지 말라. 그 해로움이 날로 심해지리라. - 숙종 요절한 왕자들, 임금의 옥좌에 올라간 관리, 임금의 명을 잊은 내시, 왕이 부탁한 점을 무시한 점쟁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재상 등의 공통점은 모두 술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 임금들이 내린 금주령은 여러 제약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한양에 크고 작은 술집이 가득 차고 넘쳤고, 어떤 이는 온 나라가 미친 듯이 술 마시기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 시대의 술 문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점잖고 엄숙한 유교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술은 만악의 근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력 사건의 대부분은 술이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는 조선 시대를 살다간 선조들의 음주 실태를 살펴봄으로써 현대인들에게 술의 해악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기본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이며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조선의 국왕과 술의 관계를, 제2부는 조선 시대 대표적 주당들의 행태와 술의 폐해를 살펴보았다. 조선의 국왕과 술 조선 시대에는 대궐에서 아침에 열리는 조회를 마치고 나면 국왕이 수고한 신하들에게 술을 내려 위로의 자리를 마련하곤 하였다. 국왕은 신하들만이 아니라 백성들은 물론, 심지어 죄수들에게 술을 하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술을 내려 주는 것은 국왕의 중요한 통치 행위의 하나였다. 술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이다. 조선의 왕들 중 술을 좋아한 애주가를 꼽는다면 태종, 세조 ,영조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술을 자주 마시다 보니 자연히 주량도 강했다. 아무래도 즉위 전이나 재위 중 어려운 일을 많이 겪은 왕들이 술을 좋아했다. 태종은 ‘왕자의 난’이라는 골육상잔의 아픔을 겪었고, 세조는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조카를 몰아냈다.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고초를 겪었고, 재위 중에도 소론이 일으킨 무신란戊申亂 등의 변란과 치열한 당쟁을 치러야 했다. 임금의 주량은 당대의 정국 동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술을 가장 싫어했던 왕은 아마 세종일 것이다. 그는 본래 주량이 약하여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왕인 태종과 신하들이 술을 강권하는 바람에 거절하느라 큰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식동원酒食同源, 주약동원酒藥同源 조선 시대에 술은 바로 약이요, 음식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허약할 때 약으로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을 때 술을 함께 마셨다. 술은 곧 약주藥酒요, 음주는 복약服藥, 즉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당시에 자주 쓰인 주식酒食이라는 말도 술이 일종의 음식으로 여겨졌음을 보여 준다. 술과 약, 술과 밥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처럼 주식동원酒食同源이자 주약동원酒藥同源이었다. 조선인들에게 술은 몸이 좋지 않을 때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먹는 약이요, 약을 먹을 때도 반드시 같이 마셔야 하는 일종의 음식이었다. 술은 오곡의 정기가 들어 있으므로 적당하게만 마시면 참으로 좋은 약이었다. 신하들은 임금이 매일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을 상할까 염려하여 술을 드시라고 강권하였다. 술을 즐기는 임금들에게는 괜찮았겠지만, 세종처럼 술을 싫어한 임금에게는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그렇다 보니 조선 시대에는 고위 관료들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술을 마시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술을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음崇飮이라고까지 일컬었다. 숭음 풍조는 건국 직후부터 나타나 나라의 큰 문제가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숭음 풍조가 더욱 확산되어 신분이나 지역을 막론하고 음주가 거의 생활화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한양 도성 안에 큰 술집이 골목에 꽉 차고 작은 술집이 처마를 잇대어 있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마치 미친 듯이 오로지 음주만 일삼고 있다는 개탄이 나올 정도였다. 금주령의 허와 실 나라에서는 수시로 금주령을 내려서 술을 마시는 자와 빚는 자들을 엄히 단속하고자 했다. 금주령을 어겨 체포되거나 처벌받는 자들은 대부분 힘없는 백성이었다. 현장에서 집행하는 하급 관리들은 고위 관료들과 권세가들은 건드리지 못하거나 눈감아 주고 일반 백성들만 엄하게 단속하였다. 단속을 기화로 뇌물을 챙기는 일도 있었다. 금주령을 내리면서 사람들이 술병을 들고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병행하기도 했다. 집에서 마시는 술은 단속이 어렵자 대신 밖에서 술병을 가지고 다니며 마시는 것을 막아 보려는 궁여지책이었다. 물론 혼인, 장례, 제사 때와 노병老病에 약으로 마시거나 활쏘기를 할 때는 술병을 지니는 것이 허용되었다. 금주령은 조선 초기부터 시행했으나 예외 조항이 많아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우선 임금이 베푸는 연회, 종묘 등에서의 국가 제사, 외국 사신 접대 때는 금주령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했다. 늙고 병들어서 약으로 먹는 경우, 친지를 영접하고 환송하는 경우, 과거 합격자의 유가遊街 시에도 예외적으로 술을 허용하였다. 집안의 혼인, 장례, 제사, 환갑 등의 행사에도 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구나 솔선수범해야 할 관료와 양반들이 잘 지키지 않았다. 금주령이 뜻대로 되지 않자 조선 후기에는 위반자를 처형하기도 하고, 단지 술에 만취하여 주정하는 짓만을 금지하는 선으로 후퇴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으나,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금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각종 폐해가 잇따르자 임금들은 계주교서戒酒敎書 등을 내려 술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지나친 음주를 훈계하고 경계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세종이 가장 적극적으로 술을 경계하였고, 선조와 영조 등의 왕들도 음주를 삼가라는 교서를 잇달아 반포하였다. 임금들에 의하면 술은 재물을 허비하고, 인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명을 잃게 하고, 가정과 나라를 멸망시키는 원흉이었다. 특히 영조는 술이 사람을 미치게 하고 착한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어 각종 범죄에 빠져들게 하는 광약狂藥이라고까지 하면서 술을 함부로 마시지 말고 절주하라고 당부하였다. 조선의 술꾼들 세종 때 이조 판서를 지낸 허지, 병조 참판을 역임한 우승범, 세조 시절 좌의정이었던 이사철은 술이 무척 센 두주불사의 관료들이었다. 세조의 공신인 홍달손도 술을 매우 좋아한 대신이었다.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윤회는 세종이 술을 자제하라고 여러 번 당부하였으나 끝내 술을 끊지 못하였다. 태조의 우대를 받았던 재상인 홍영통은 태조의 탄신일 잔치에서 만취하여 집에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직후 소현 세자와 봉림대군을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모셨던 한형길은 소주가 싱겁다며 독한 산초를 타서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조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영의정까지 오른 정인지는 술을 마시고 임금을 ‘너’라고 부른 적도 있다. 세조 8년에는 영의정 정창손이 어전에서 술을 마시고 실수하여 임금이 선위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하였다. 예조 정랑 우계번이 술을 마시고 취하여 양반 부인을 모욕한 일이 있었다. 사헌부 관리인 이예는 술이 취하여 무엄하게도 임금이 앉는 평상에 올라가 술주정을 하기도 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 무장인 어유소는 성균관에서 공자에게 지낸 제사 후 음복을 하고 취해 궁녀를 희롱하면서 술을 따르도록 하였다. 사헌부에서 처벌을 주청하였으나, 임금은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취중에 한 일이라면서 특별히 용서하여 주었다. 임금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내시 중에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시 최습은 술에 취하여 승정원에 전할 임금의 교지를 잃어버렸다가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내시 박인손은 대궐 밖으로 임금의 심부름을 갔다가 술에 취하여 곧바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는 결국 곤장 60대를 맞아야 했다. 임금을 비방했다가 참형에 처해질 뻔했던 안동 부사 이전, 정승 조준을 저주했다가 참형을 당한 사헌부 감찰 김부도 술이 원인을 제공하였다. 세종 때의 이조 판서 홍여방은 동료 판서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과음하여 이튿날 갑자기 죽고 말았다. 효종 때의 병조 판서 박서는 연일 과음하다가 급사하였다. 개국 공신으로 오랜 기간 도승지로 재임한 박석명은 술병이 들어 36세에 요절하였다. 명재상 하윤의 아들인 하구도 술병이 걸려 37세에 죽었으며, 성종 때에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최경지도 술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하였다. 조선 시대의 주폭과 벌주 풍습 조선 시대에도 주폭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건국 직후에 안말건이 술에 취하여 거리에서 사람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말리는 사람을 구타하였다. 그는 곤장을 맞고 수군으로 강제 편입되었다. 자기 할머니의 상중에 풍악을 울리며 술을 마시고 남의 집에 들어가 행패를 부린 최선, 최굉 형제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성종 때는 그야말로 주폭 삼 형제라고 할 이들이 나타나 갖은 행패를 부렸다. 평양에 살던 생원 김하, 김거, 김석 삼 형제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함께 이모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이웃집의 여종을 불러다가 술을 따르게 하고 노래를 시키며 희롱하였다. 이것도 모자라 자신들을 제지하고 항의하는 여종의 남편을 심하게 때렸고, 남편의 여동생도 구타하여 업고 있던 아이를 죽게 만들기까지 하였다. 사헌부에서는 김거를 주범으로 보아 교수형에, 김하와 김석은 거든 자라 하여 곤장 1백 대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으나, 이미 모두 도망쳐 처벌하지는 못했다. 그러자 영구히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는 처분을 내렸다. 조선 초기에는 조선으로 귀화하거나 귀순한 여진인, 즉 야인野人들을 위무하기 위해 재물을 넉넉하게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선지 밤낮으로 모여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야인들이 많았다. 여진인만이 아니라 조선에 오는 일본인들도 술을 많이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폐해를 끼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무언가 잘못을 하면 벌로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벌주 풍습이 널리 행해졌다. 왕실에서도 널리 행해져서 태조가 태종에게 벌주를 내린 적도 있고, 세조가 어떤 일을 자책하며 스스로 벌주를 마시려고 한 일도 있다. 세조는 신하들에게도 벌주를 자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전기에는 새로 임명된 육조의 정랑과 좌랑에게 선임자들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맡겼다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술을 큰 잔으로 두세 잔 마시게 하는 벌주 풍습이 있었다. 만약 끝까지 사양하면 배척하여 동렬에 끼어 주지 않았다. 조광조와 함께 대표적인 사림파인 김식은 벌주를 무척 싫어한 인물이었다. 그는 벌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일이 있다. 술을 멀리한 사람들 사실 술을 싫어하고 멀리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개국 직후 태조의 우대를 받았던 조운흘은 세상일에 아무런 욕심 없이 초연하게 살다간 사람이다. 고려 말에 전법총랑으로 있다가 관직을 버리고 물러가 경상도 상주의 노음산 아래에 살면서 일부러 미친 척하기도 하였고, 출입할 때는 반드시 소를 타고 다녔다. 그러면서 술과 풍악을 멀리하고 세속을 희롱하며 고고하게 살았다. 단종 때의 재상 최부는 사람됨이 편안하고 조용하며 맑아서 음주와 장기, 바둑을 좋아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예문관 대제학이었던 윤형은 성격이 온순하고 인정이 많았으며, 음악과 여색을 즐기지 않았다. 특히 사람들이 가진 술을 보면 반드시 “이름을 더럽히고 일을 망치는 것으로는 이것보다 심한 것이 없다.”면서 음주를 경계하였다. 세조 때 의정부 좌참찬을 지낸 박중손은 스스로 계주명戒酒銘을 지어서 자신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세조 6년에 중추원사로 있다가 죽은 기건은 성품이 맑고 검소하고 곧았으며, 작은 행실도 반드시 조심하고 글 읽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특히 지방 수령으로 부임한 뒤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술을 마시지 않을 정도로 모범적인 청백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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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비운의 공주들
김학민 | 21세기북스 | 2012-12-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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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비운의 공주들
김학민 | 21세기북스 | 2012-12-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비극으로 얼룩졌으나, 베일에 가려졌던 왕실 속 여성들.
조선의 공주, 가장 고귀한 여성이자 가장 천대받았던 그녀들의 삶 속 비극의 그림자를 엿보다. 공주에서 노비로 전락했던 경혜공주, 남편과 시어머니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했던 정선공주, 조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비운의 덕혜옹주까지. 조선의 공주, 시대에 따라 울고 웃었던 그녀들의 파란만장한 열세 가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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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이우상 | 다할미디어 | 2014-0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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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이우상 | 다할미디어 | 2014-0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조선왕릉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와 그 역사의 뒷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다. 조선왕릉은 조선왕조 27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추존 왕비의 능으로 총 42기에 이른다. 한 왕조의 능이 모두 보존되어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저자와 사진작가는 조선왕릉 곳곳을 누비며, 왕릉의 이모저모를 담았다.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는 조선왕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조선왕조 518년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죽음은 최상의 법문이며, 그것은 곧 자비라는 조용한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은 조선왕조 시대를 다룬 충실한 역사서이다. 더불어 숨겨진 야사를 이끌어와 진실의 양면을 흥미롭게 재조명하는 하며, 왕릉답사 가이드 코너를 마련하여 가이드북으로의 활용도 또한 높였다. 조선왕실의 무덤이면서 문화유산인 왕릉을 답사하면서 조선왕조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조선왕조 518년, 27대 역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왕비가 있다. 이들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며, 현재 조선 왕릉은 42기가 있다. 왕의 사친과 왕세자, 그 비의 무덤은 13기가 있으며, 원(園)이라 부른다. 묘(墓)는 대군과 공주, 옹주, 후궁, 귀인 등의 무덤으로 64기가 있다. 통틀어 119기가 있는 것이다. 조선왕릉, 영원한 안식을 꿈꾸고 있는가 만백성 위에 군림하던 최고 권력자들, 내명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온갖 모략을 서슴지 않던 여인들, 왕가의 발치에서 숨죽여 살아가던 내시와 궁녀들. 한때 화려하고 찬란한 왕가를 이루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들이다. 그들은 과연 영원한 안식을 꿈꾸며 깊은 잠에 빠져 있을까? 진보한 시대를 향한 발걸음은 갈등과 분열의 저항에 끊임없이 맞서야만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 지난 시대의 비극이 숱하게 재생된다. 저자는 직접 조선왕릉터를 누비며 옛 왕조가 넌지시 전해주는 ‘서늘한 교훈’을 체험한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의친왕의 의왕묘까지 이 책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의친왕의 의왕묘까지 조선왕릉으로 조선왕조 518년을 정리했다. 조선왕조 27대 왕과 그 일가들의 삶은 곧 조선의 역사이다. 어린 조카의 목숨을 빼앗고 왕위에 오른 냉혈한 세조는 어린 자식을 잃고 비극에 잠긴 슬픈 아비였다.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 순간 훗날 왕의 자리에 오를 세자를 저주했다.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알려진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이면에 맞닥뜨리게 된다. 더불어 조선왕가를 이루었으나 소리 없이 살아간 왕의 후손들과 내시궁녀의 삶도 빠뜨리지 않았다. 죽음은 곧 최상의 법문 빛과 어둠은 실존을 위해 서로를 위협하나 변증을 이루며 세계 안에 공존한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살았는가’ 라는 물음은 ‘어떠한 생을 마감했는가’와 다르지 않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며, 죽음을 통해 인생은 완성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죽음을 떠맡기고, 스스로도 죽음의 주인공이 된 그들의 삶을 돌아보며 저자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며 결국 죽음이 최상의 법문임을 우리에게 전한다. 역사 기행과 도심 산책을 한꺼번에 왕릉 순례는 ‘죽음과 역사’라는 두 가지 화두와의 만남이다. 사색과 성찰, 휴식과 운동이란 부가가치도 뒤따른다. 조선 왕릉은 왕조 500년 역사의 타입캡슐이다. 대부분 경복궁을 중심으로 100리 안에 있다. 즐거운 소풍놀이다. 후손들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삶과 죽음으로 풀어본 조선왕조 500년 사를 통해 옛 왕조의 혼을 느끼고, 왕릉답사 가이드를 따라 왕릉터로 발걸음을 옮기면 역사 기행과 도심 산책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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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 사건들
정구선 | 팬덤북스 | 2014-10-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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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 사건들
정구선 | 팬덤북스 | 2014-10-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점을 쳐서 수도를 결정하다, 임금을 몰래 미행한 사관,
젖비린내 나는 아이가 관리가 되다, 판서가 졸병과 함께 보초를 서다, 코끼리에게 밟혀 죽은 판서, 서울에 운하를 건설하려고 하다, 노비에게도 봉급과 휴가를 주다, 화폐 위조범을 찾아라, 외국 사신을 놀라게 한 불꽃놀이…….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조선에서 일어난 흥미롭고 놀라운 사건들! 조선 시대라 하면 고루하고 답답한 시대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조선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야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정도의 역사가 가득하다. 《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 사건들》은 실록 속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하고 황당한, 때로는 놀라운 역사를 정리하여 담아낸 이야기보따리다. 책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생생한 역사 속으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그동안 감추어진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아가 조선 시대, 조선 사람들에 대하여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책의 기본 배경은 조선 건국 직후인 태조 때부터 3대 태종 때까지이다. 해당 시기의 국왕과 왕실, 관료, 백성, 명나라 사신과 관련된 역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대 왕의 연간에서 관련 일화를 첨부하기도 했다. 왕실에 그런 황당한 일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공신들은 고려 왕실의 후예인 왕씨들이 살아 있는 한 편히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모반을 도모했다는 허무맹랑한 구실을 꾸며 왕씨들을 일망타진하였다. 조선은 태조 3년 9월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그 이전에는 계룡산 부근에 수도를 정하려다가 취소하였다. 다시 서울의 무악재 아래 신촌 일대로 옮기려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한양에 수도를 정한 조선은 ‘왕자의 난’ 이후 개성으로 잠시 옮겼다가 태종 때 한양으로 재천도하였다. 한양으로 재천도하는 결정은 종묘에서 동전으로 점을 쳐서 정했다고 한다. 덕수궁이란 이름을 가진 궁궐은 엄연히 조선 건국 직후부터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1398년 10월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그가 머물던 궁궐을 태상궁이라고 불렀다. 정종 2년 6월에 당시 세자로 있던 이방원의 청에 따라 태상궁의 이름을 덕수궁이라고 고친 것이다. 신생 왕조를 안정시키고 기틀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콧대가 한껏 높아진 무신들을 억누르고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문신들을 다독여 주어야 했다. 무관 출신인 태조 이성계와는 달리 과거에 급제한 문관 출신인 태종은 무관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태종은 무예를 한갓 미친 짓이라고 하기도 했다. 문무의 균형을 맞추려는 태종의 현명하고 원대한 정치적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에는 재상 등의 고위직을 역임한 신하들이 사망하면 임금이 부의금을 하사하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며, 시호를 내렸다. 부의로 1품은 쌀과 콩을 아울러 60?100석, 정2품은 40?50석, 종2품은 30석 이하를 주었다. 1석을 2가마로 치고, 1가마를 80kg으로 환산하면 100석은 약 200가마로 16,000㎏이다. 당시 재상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부의금을 하사받았던 것이다. 임금님의 지나친 부의금 때문에 나라 곳간이 거덜 날 정도였다. 사초는 사관이 임금이나 신하들의 언행을 날마다 기록한 것으로, 실록 편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였다. 사관들이 안심하고 직필하도록 실록을 편찬하기 전까지는 임금을 비롯한 그 누구도 사초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태조와 태종은 굳이 사초를 열람하려다가 신하들과 충돌을 빚었다. 고려 32대 왕으로 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폐위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다. 우왕에게는 모두 9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대부분 궁궐에서 쫓겨나 본가로 돌아갔다. 본가로 쫓겨난 왕비 중에는 우왕의 제8비였던 선비 왕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비는 본가로 쫓겨난 뒤 조선이 들어서자 판통례문사를 지낸 유은지와 재혼하였다. 한때 자기가 섬기던 왕의 부인을 아내로 삼은 것은 군신의 예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삼강오륜을 어지럽히는 짓이라는 여론이 거셌다. 태종이 어느 날 포천군에서 사냥을 하였다. 수행하던 사람들 가운데 6명이 숙소에서 쑥갓과 거여목처럼 생긴 독초를 잘못 먹고 갑자기 죽는 일이 벌어졌다. 소식을 들은 임금은 앞으로 자기의 식탁에 쑥갓과 거여목을 올리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관리들이 감히 이런 일을! 조선 초기에는 나이 어린 사람들이 관리가 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젖비린내 나는 아이가 관리가 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도 요즈음의 인사 청문회와 비슷한 서경署經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관리 후보자들의 신분, 조상, 과거 합격 여부 등을 조사하여 관리로서의 적합도를 검증하는 제도로, 서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관리가 되지 못했다. 조선 초기에는 관청에 출근하지 않고 결근하거나 조퇴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매를 쳐서 징계하였다. 지방으로 전출되면 부모의 병을 핑계로 관직을 내던지고 내려가지 않는 관리들이 많아 큰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임금의 부름에 항상 응할 수 있도록 2품 이상의 재상들은 지방에 머물지 말고 한양에 거주하도록 하였다. 조선의 대간들은 한 가지 문제가 생기면 수없이 간언을 올리거나 상소를 올려 임금을 괴롭혔다. 태종은 참다못해 신하들이 세 번 이상 간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어이없는 일로 처벌을 받은 관리들이 많았다. 임금에게 올리는 글에서 본인 이름 앞에 신臣 자를 붙이지 않았다고 하여 파직된 관리가 있었다. 시호를 잘못 정했다가 교수형을 당할 뻔한 관리도 있었다. 문서나 본인 이름에 임금과 세자의 이름을 쓸 수 없어 이름을 두 번 바꾸어야 했던 공신도 있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는 저녁 8시경부터 새벽 4시경까지 4대문을 통과하거나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야간 통행 금지령을 실시했는데, 영을 어겼다가 파직된 대사헌도 있었다. 심지어 비가 많이 내려 농민들이 기르는 벼를 떠내려가게 했다는 죄로 수령을 파직하기까지 하였다. 태종 때 공조 전서를 지낸 이우가 일본에서 보낸 코끼리에게 침을 뱉었다가 밟혀 죽었다. 고려 후기의 대학자인 이제현의 증손자 이담이 미친개에게 물려 죽었다. 태종의 딸과 자기 아들과의 결혼을 단호하게 반대했다가 역적으로 몰려 노비로 강등된 전직 군수가 있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 문신인 변계량은 20여 년 동안이나 대제학을 맡으면서 크게 존경을 받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후처를 방에 가두어 두고 창구멍을 내어 음식을 주거나, 소변도 자유롭게 보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박대를 하여 탄핵을 받았다. 궁녀는 일단 궁에 들어가면 왕의 여인이었다. 혹시 궁에서 나가더라도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왕자의 난’을 치른 공신으로 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조영무가 궁녀를 첩으로 삼았다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조선 왕조는 신분 제도를 엄격히 하기 위하여 노비, 기생 등의 천인과 양인 간의 결혼을 건국 초기부터 강력하게 금지하였다. 그럼에도 첨절제사를 지낸 정복주가 본처를 버리고 기생의 딸과 혼인하여 후처로 맞았다가 관직을 잃고 평민으로 강등된 일이 있었다. 조선 군대에는 돌을 던지며 싸우는 척석군이 있었다. 수군에서는 왜구를 추격하기 위해 쾌선 내지 경쾌선이라 불린 작고 빠른 쾌속선을 만들어 실전에 투입하기도 하였다. 백성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재판에 불만을 품은 여인이 임금이 어가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호위병과 부딪힌 여인은 임금 앞에서 크게 부르짖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임금이 격노하여 곤장을 때리고 지방의 관노비로 삼도록 했다. 조선 초기에는 황제의 색깔이라고 하여 황색과 황색 옷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 외에 흰색과 옥색, 회색의 옷도 입지 못하게 했다. 황색으로 보자기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다가 귀양을 간 사람이 있었다. 국가 소속의 공노비들은 봉급을 받고 휴가를 가기도 했다. 태종 때 처음 만들어 사용한 지폐인 ‘저화’를 위조하는 사람들이 많아 유통이 부진을 면치 못한 일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는 무당에게도 세금을 거두었다. 국가에서 3년마다 한 번씩 무당의 명부를 작성하여 무세巫稅를 징수했다. 무세는 원래 매년 두 번 징수하였는데, 세종 5년부터는 매년 한 차례만 거두도록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지방에서 조세로 거두어들인 곡식이나 베 등을 주로 배를 이용하여 한양까지 운반하였다. 이를 조운이라 하였고, 그 배를 조운선이라 불렀다. 조운선이 풍랑을 만나 난파하거나 침몰하여 곡식과 사람을 잃는 사고가 매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태종 3년에는 조운선 34척이 한꺼번에 바다에서 침몰하여 천여 명의 수군이 몰사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조운선의 침몰은 인명은 물론 국가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재난이었다. 조선 시대에 중요한 재산은 토지와 노비였다. 태종 때 남양군에 봉해지고 상의중추원사를 역임한 홍길민은 노비를 무려 천여 명이나 소유하였다고 한다. 노비로만 따지면 그는 아마도 조선 초기 최대의 거부가 아니었을까. 죽은 사람의 생식기를 잘라 가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태종 3년 5월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던 날, 황해도 봉산에서 어떤 남자가 소를 끌고 가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이때 죽은 사람의 손가락과 생식기인 음경을 잘라 간 사건이 일어났다. 조선 시대에도 인명 보호 차원에서 오늘날의 삼심제와 유사한 삼복법三覆法을 시행하였다. 지방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발생하면 수령이 먼저 심리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관찰사는 다시 심리하여 중앙의 의정부에 보고하며, 의정부에서는 세 번 심리하여 임금에게 세 번 아뢴 다음에 사형을 결정하도록 했다. 비록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지었더라도 죄인이 독자면 살려 주는, 이른바 독자존류양친법獨子存留養親法이라는 법규가 있었다. 외아들이 죽으면 늙은 부모를 봉양할 사람이 없어지기에 살려 준 것이다. 조선 시대의 형벌 중에는 곤장으로 죄인을 때리는 장형이 있었다. 장형은 죄의 경중에 따라 최하 60대에서 최고 100대까지 치도록 했다. 때로는 곤장을 60~70대 맞고도 죽는 사람이 있었으며, 100대를 맞으면 대개 사망에 이르렀다. 곤장 100대는 치사율이 거의 100%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라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이 많았다. 몸을 여러 조각으로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 외에도 중국 고대에 행해진 오형 중 얼굴 등에 문신을 하는 묵형墨刑, 즉 자자刺字와 발꿈치를 베는 비형?刑이 행하여졌다. 중국 사신이 어떻게 그런 짓을! 전라도 장성의 길가에 큰 나무가 있었다. 사람들은 가지가 많다는 뜻의 ‘백지수百枝樹’라고 불렀다. 태종 때 명나라 사신 황엄이 지나다가 그 나무에 비밀스럽게 구리 못을 박아 놓았으나, 고을의 현감 허규가 못을 뽑아 버렸다. 황엄이 나무에 못을 박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압승술을 썼다고 생각하였다. 원래 중국 사신이 오면 연회를 끝내고 기생으로 하여금 수청을 들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국 사신들은 가까이했던 기생을 못 잊어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급기야는 기생을 중국으로 데리고 가려 하기도 했다. 금강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강산의 명성은 예전부터 중국에까지 퍼져서 조선에 오는 명나라 사신들마다 모두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안달을 하였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중국에 막대한 공물을 보냈다. 물품 외에도 처녀와 환관 등의 사람들도 보내야 했다. 조선 초기에 명나라에서는 환관으로 쓰기 위해 화자, 즉 고자를 보내라고 요구하였다. 태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15회에 걸쳐 모두 200여 명의 화자를 바쳤다. 화자 외에 처녀도 보냈다. 중국에 보낸 처녀를 이른바 공녀라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 때까지 80년간 모두 50차례에 걸쳐 수천 명 이상의 처녀들이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 조선 시대에는 태종 때부터 세종 때까지 20여 년간 7회에 걸쳐 100여 명의 처녀들이 명나라에 바쳐졌다. 후기에는 인조~효종 때 20여 명의 처녀들이 청나라에 끌려가야 했다. 명나라에 보내는 공물에는 말과 소도 있었다. 태종 4년에는 명나라에서 농삿소 1만 마리를 요구하여 여러 차례로 나누어 보내야만 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숭불 풍조가 남아 궁중에도 부처의 진신 사리 같은 사리가 많았다. 명의 3대 황제 영락제가 이것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였다. 태종과 세종이 궁궐과 각지의 사찰에 보관되어 있던 사리를 모아 모두 1,300여 과를 보냈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들이 전국의 연안에 출몰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가는 일이 잦았다. 조정에서는 일본에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여러 가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태종 16년에 돌아온 전언충이라는 사람은 무려 21년 만에 귀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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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 로컬로 읽다
이은상 | 한국학술정보(주) | 2015-01-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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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 로컬로 읽다
이은상 | 한국학술정보(주) | 2015-01-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중국을 하나의 중국으로 바라보던 시대는 지났다.
중국은 56개 민족들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다. 민족마다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수많은 지역에 나뉘어 살아가고 있다. 이런 다양한 민족들이 자치주를 이루며 살고 있는 중국은 각 성이 독립된 하나의 국가와도 같다. 사용하는 언어도 차이가 심한데 광둥성 사람들이 사용하는 중국어는 베이징 표준말을 사용하는 중국인들에게 마치 이탈리아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듣는 것처럼 다르게 들린다. 또한 중국의 면적은 유럽 전체 크기와 맞먹을 만큼 넓다. 성 하나의 면적이 유럽에 있는 한 국가의 면적과 비슷할 정도로 큰데, 예를 들어 쓰촨성은 독일만큼이나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청해성은 프랑스보다 총면적이 넓다. 이렇게 중국은 다양한 인종과 개성이 넘치는 저마다의 문화가 넓은 땅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중국을 단순히 하나의 국가로 이해하기 보단 지역별로 봐야 한다. 중국을 지역별로 이해했을 때, 중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중국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좀 더 중국이란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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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크라임 이펙트 - 세계사를 바뀐 결정적 범죄들
이창무 | 위즈덤하우스 | 2015-01-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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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크라임 이펙트 - 세계사를 바뀐 결정적 범죄들
이창무 | 위즈덤하우스 | 2015-01-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 책의 제목인 ‘크라임 이펙트Crime Effect’는 역사의 순간에 충격을 가해 그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범죄를 강조하는 의미로 만든 조어다. 형사사법학을 전공한 저자는 범죄는 단순히 역사의 부속물이 아니라, 세계사의 주요 전환점에는 항상 범죄가 존재했고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고 강조한다. 정치학자가 역사 변화의 주원인으로 정치를 내세우고, 경제학자가 역사의 동력을 경제로 설명하듯이, 저자는 ‘범죄’가 역사와 인류 문명의 변화에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 16가지를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범죄’라는 렌즈를 통해 신화의 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범죄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1부에서는 고대 재판 기록에서 시작하여 고대 정치범의 탄생과 희생양 만들기의 표본이 된 마녀사냥과 인신 공양 등을 통해 ‘범죄의 탄생’을 다룬다. 2부에서는 십자군 전쟁과 아편전쟁을 통해 탐욕에 찬 명분 없는 전쟁범죄를 다루고, 공권력과 근대 경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통해 국가와 범죄의 관계를 살펴본다. 3부에서는 경찰의 불법 수사를 종식시킨 미란다 혁명, 개인이 벌인 암살과 테러 등을 통해 과연 실제 ‘공공의 적은 누구인지’를 묻는다. 4부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벌어지는 명예 살인은 명백한 범죄임을 밝히고, 자본주의 시대 기술과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이 만들어지는 금융 범죄와 사이버 범죄에 대해 살펴본다. “인류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다” 인류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다. 신화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와 신화를 대신할 국가와 법을 만들었어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역사의 많은 굴곡이 범죄와 함께 해왔다. 이 책의 제목인 ‘크라임 이펙트Crime Effect’는 역사의 순간에 충격을 가해 그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범죄를 강조하는 의미로 만든 조어다. 형사사법학을 전공한 저자는 범죄는 단순히 역사의 부속물이 아니라, 세계사의 주요 전환점에는 항상 범죄가 존재했고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역사를 정치, 경제, 예술 등의 관점에서 연구한 책들은 많지만, 정작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범죄’를 창窓으로 역사를 설명한 것은 거의 없다. 정치학자가 역사 변화의 주원인으로 정치를 내세우고, 경제학자가 역사의 동력을 경제로 설명하듯이, 저자는 ‘범죄’가 역사와 인류 문명의 변화에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 16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범죄들 범죄라고 하면 살인이나 강도 같은 개인 범죄를 주로 떠올린다. 물론 역사적으로 암살이나 테러, 살인 같은 개인 범죄도 역사의 발전과 퇴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은 1차 대전을 촉발했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베트남전 확전을 불러왔다. 9.11 테러는 감시와 검색 강화로 일상 활동의 변화는 물론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은 전쟁이나 학살, 정복, 독재 같은 거시 범죄들이다. 그것들은 주로 국가나 그 시대의 기득권층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범죄’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을 뿐더러 역사에서 영웅으로 대접받아왔다. 거시 범죄들은 인류를 고통에 빠뜨려왔지만 막상 범죄로 역사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범죄를 없애는 것이 정의인데, 오히려 정의가 범죄를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어 온 것이다. 이 책은 ‘범죄’라는 렌즈를 통해 신화의 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범죄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1부에서는 고대 재판 기록에서 시작하여 고대 정치범의 탄생과 희생양 만들기의 표본이 된 마녀사냥과 인신 공양 등을 통해 ‘범죄의 탄생’을 다룬다. 2부에서는 십자군 전쟁과 아편전쟁을 통해 탐욕에 찬 명분 없는 전쟁범죄를 다루고, 공권력과 근대 경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통해 국가와 범죄의 관계를 살펴본다. 3부에서는 경찰의 불법 수사를 종식시킨 미란다 혁명, 개인이 벌인 암살과 테러 등을 통해 과연 실제 ‘공공의 적은 누구인지’를 묻는다. 4부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벌어지는 명예 살인은 명백한 범죄임을 밝히고, 자본주의 시대 기술과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이 만들어지는 금융 범죄와 사이버 범죄에 대해 살펴본다. 역사적 범죄도 동기와 기회가 만나야 일어난다 역사의 변화를 추동해온 것이 범죄라면, ‘세상을 바꾸는 열쇠’도 범죄일 것이다. 모든 범죄는 동기가 기회를 만날 때 발생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범죄 동기가 있어도 기회가 제공되지 않으면 범죄는 일어나기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반인륜적 행위들도 동기와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범죄는 코딩에 의한 범행 동기와 범행 기회가 만나서 발생하는 것이니만큼 범행 기회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면 범행 동기를 줄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신화의 시대부터 시작해 문자와 법이 만들어지고 고대, 중세, 근대로 문명이 발전해오면서 왜 인류는 불행해졌는지를 ‘범죄’라는 잣대로 찾고자 한다. 범죄가 역사와 문명의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해왔고, 어떻게 변화를 추동했는지를 살핌으로써, 인류의 고통과 불행의 근원인 범죄를 해결하는 것이 인류의 난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부 범죄의 탄생 : 1장 ?죄와 벌, 최초의 살인 범죄 재판 기록?에서는 최초의 살인 범죄 재판 기록을 통해 물증 없이 단순한 심증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증거 제시를 강조한 니푸르 민회의 재판을 소개한다. 2장 ?정치범의 탄생?에서는 기존 질서에 저항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히고 결국 범죄자가 된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통해 정치범의 탄생을 살펴본다. 3장 ?전쟁범죄?에서는 죄 없는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도 역사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칭기즈칸 등의 인물을 통해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비롯되어 또 다른 전쟁의 씨앗으로 작용함을 강조한다. 4장 ?공공의 적?에서는 마녀사냥과 인신공양 등의 사례를 다루면서 범죄에 대한 대응 방식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쪽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똑같다는 사실을 밝힌다. 2부 국가와 범죄 : 5장 ?신이 사라진 신의 전쟁?에서는 성지를 회복하고 구원을 받겠다는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과 탐욕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인 십자군 전쟁을 살펴본다. 6장 ?공권력과 경찰의 탄생?에서는 세계 경찰의 모범 교과서라는 영국 경찰의 탄생 배경과 경찰 부패의 상징이었던 뉴욕 경찰을 살펴본다. 7장 ?범죄자는 결정되어 있다??에서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우생학과 골상학 같은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은 과학에 기반을 둔 어설픈 이론이 어떻게 인류 문명에 위협이 됐는지를 알아본다. 8장 ?명분 없는 추악한 전쟁?에서는 영국이 ‘자유무역’이라는 이름뿐인 명분을 내세웠던 아편전쟁을 다룬다. 아편전쟁은 영국 제국주의의 탐욕이 청나라 정부의 부패와 무능이라는 기회를 틈타 저지른 범죄였다. 9장 ?조직범죄의 탄생?에서는 미국 금주법의 시행이 부추긴 조직범죄의 확대와 금주법 폐지 이후 갱단과 FBI가 모두가 필요에 의해 마약에 주목하게 되었음을 살펴본다. 3부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 10장 ?불법 수사에 대한 경종?에서는 인권 보호와 불법 수사 방지를 위한 ‘미란다 원칙’이 만들어진 배경인 미란다 판결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아본다. 11장 ?역사를 바꾼 한 발의 총성?에서는 비용 대비 효과가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크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암살’에 대해 살펴본다. 케네디 암살 사건을 통해 동기가 어떻든 간에 암살은 명백한 범죄임을 확인한다. 12장 ?폭동과 혁명 사이?에서는 프랑스 6·8혁명과 영국 노조 파업 등을 통해, 역사 속 혁명이 모두 당시의 법적 기준으로는 불법 폭력 시위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상기한다. 13장 ?테러의 방정식?에서는 오클라호마 테러와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범행 기회를 막는 데만 급급했으나 보스턴 폭탄 테러를 통해 범행 기회는 완벽하게 막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4부 자본의 시대, 만들어진 범죄 : 14장 ?명예로운 살인은 없다?에서는 주류 사회의 문화와 규범을 강요하고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명예 살인과 부르카 금지법을 다룬다. 15장 ?제도와 탐욕 사이에서?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금융 범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금융 범죄 수사가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를 살펴본다. 16장 ?가면을 쓴 사이버 테러리스트?에서는 ‘디지털 로빈후드’의 가면을 쓴 어나니머스를 사이버 테러리스트, 사이버 범죄라는 측면에서 다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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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ㆍ중ㆍ일 삼국지 문화
유주열 | 현학사 | 2014-11-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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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ㆍ중ㆍ일 삼국지 문화
유주열 | 현학사 | 2014-11-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투탕카멘과 진시황, 청명상하도, 한류의 원조, 마카오 이야기, 중국과 시나, 니락소 컬렉션, 공자 문화공동체, 중국의 저출산 고령화, 한중일의 유학 이야기 등을 수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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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반도의 비밀
한철우 | 21세기북스 | 2012-12-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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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반도의 비밀
한철우 | 21세기북스 | 2012-12-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한반도의 비밀 : 풀리지 않는 한국사 미스터리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한반도 속 수수께끼를 파헤치다. 역사 속 깊이 얽혀있는 비밀스런 사건, 사고들 총망라. - 중국대륙의 지배자, 신라와 백제? - 불가리아를 지배했던 부여민족의 실체 - 이순신 죽음, 타살인가, 자살인가 - 조선을 발칵 뒤집은 괴생명체들의 대낮활보 - 조선시대 왕들의 의문스런 죽음 속 숨겨진 음모 - 조선시대 미확인물체 U.F.O의 출현 - 조선왕조를 멸망시킨 비법서의 행방 믿기 힘든,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는 한국사 미스터리의 실체를 밝힌다. 지금 한국사 미스터리, X파일 속으로 빠져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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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방화장품의 문화사
김남일 | 들녘 | 2014-06-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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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방화장품의 문화사
김남일 | 들녘 | 2014-06-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 책은 한방화장품과 관련된 콘텐츠들을 역사ㆍ문화적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현재 한방화장품이라는 개념은 이미 보편화된 하나의 중요 국가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 어떤 기업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미래를 밝혀줄 10대 상품 가운데 한방화장품이 꼽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에는 한방화장품의 역사에 대한 연구 역시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학계와 업계에서는 화장 문화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방화장품의 문화사≫는 이처럼 대중화된 관심과 연구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책이다. 저자는 한국 역사서와 의서 속에 숨겨진 화장 관련 사료들을 수년간에 걸쳐 찾아내었고, 오랜 시간 그 자료들을 분석 연구하여 한방화장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밝혀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방화장품의 정의와 기준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은 무척 흥미로운 연구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화장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의 문화를 애호하는 문화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한의학, 화장품을 만나다 한방 코드가 전례 없는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뿐만 아니라 목욕용품, 음료에 이르기까지 그 실용화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미 한의학을 대체의학으로 인정했고,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마케팅, 브랜드, 디자인 등 각 산업분야에 한방 코드를 영입 중이다. 특히 화장품에 관련된 연구는 이 분야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하다. 한방화장품에 대한 산업계와의 연계 활동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그 기반이 되는 한의학 분야의 연구도 약진하고 있다. 한의학 처방을 기반으로 하는 복합약물연구와 본초학을 기반으로 하는 단미약물 연구,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를 기반으로 하는 한방화장품의 피부미용 관련 연구 등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이 분야가 한의학에서 미래에 어떤 위치를 점하게 되는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이 된다. 한방화장품이 해외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함에 따라 중국, 일본 등 해외의 화장품이나 서양식 미의 가준 등을 비교하는 연구도 날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한의학은 일제 강점기를 기점으로 주변부로 밀려났던 오욕의 역사를 뒤로 하고 통합의학으로서 길을 개척 중이다. 특히 서양 의학이 간과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기)을 과학적 근거 아래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그 활용의 정점에 화장품이 있다. 현대인의 욕망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외모 가꾸기, 그 중에서도 얼굴 미용에 한의학이 집중하는 이유는 얼굴이야말로 인간의 건강과 아름다움의 척도인 탓이다. 한방화장품의 역사를 문화사의 입장에서 정리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방화장품의 역사를 문화사의 입장에서 정리하였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피부 미용에 대한 한국적 담론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수년간 진행된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한방화장품의 정의와 기준, 한국의 역사 속에 나오는 사료에 대한 한방화장품의 입장에서의 재해석, 한국적 피부 미용의 정의, 한의학과 피부 미용의 접목, 한국의 의서와 역사 속에 드러나는 한방화장품 관련 콘텐츠의 수집과 분석, 『동의보감』속에 보이는 피부 미용 자료의 발굴, 각종 역사 자료 속에 보이는 한방화장품의 원료에 대한 검토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저자의 노력으로 우리는 한방화장품이라는 분야가 유행을 타고 사라지는 일시적인 풍조가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움과 건강을 책임지는, 그리고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 아래 만들어진 지식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스토리들을 읽다 보면 한방화장품의 영역이 단순한 약물의 구조식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저변을 흐르는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무의식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왜 ≪한방화장품의 문화사≫라는 타이틀을 선택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역서와 의서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미용 이야기 이 책은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한방화장품 개괄에서는 한방화장품의 정의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하였다. 2장 우리 역사 속에 보이는 한방화장품과 피부 미용에서는 한국사 속에 보이는 한방화장품 관련 사료들을 찾아서 정리하였다. 3장 한국의 피부 미용과 문화에서는 한국의 피부 미용을 문화적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4장 한의학과 피부미용에서는 본격적으로 한의학적 입장에서 피부 미용을 조망해보았다. 5장 의서와 역사 기록 속에 보이는 한방화장품과 피부 미용에서는 한국의 의학서적과 역사 기록 속에 산재해 있는 한방화장품과 피부 미용에 대한 내용들을 발췌하여 정리하였다. 6장 『동의보감』과 한방화장품에서는 200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허준의 『동의보감』속에 나오는 한방화장품 콘텐츠들을 모아서 한방화장품의 세계화 방안을 모색하였다. 7장 한방화장품의 원료에서는 한방화장품의 원료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각종 자료들을 분석하여 새로운 한방화장품 개발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학제간 연구의 효시가 될 결과물인 ≪한방화장품의 문화사≫는 전문인들은 물론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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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 마이디팟 | 2014-02-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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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 마이디팟 | 2014-02-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10-3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강추!>세계의 중요 사건을 굵직하게 정리한 역사 교양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사회주의의 몰락과 베트남전,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일 통일에 이르기까지, 사건이 발생하게 된 필연적 이유를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서술한다. 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이분법적으로 나뉜 두 국가 간의 단순한 갈등이나 사상의 대립이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여러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에 주입식으로 교육 받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여 색다른 입장에서 근대사를 조명한다. 역사를 재조명하며 열린 사회로 나아가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해 분석하면서도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사실에 대해 서술하며,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답습하지 않아야 할 점과 본받아야 할 점을 시사한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역사적 토대를 정밀하게 분석한 글을 읽으며, 독자는 어느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떠올렸던 지난날을 잊고 열린 시각으로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한 발짝 다가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