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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오카다 아츠시 | 이다미디어 | 2014-04-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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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오카다 아츠시 | 이다미디어 | 2014-04-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그랜드투어가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랜드투어’는 원래 영국의 귀족과 상류층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과정 중에 마무리 단계로 보냈던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물론 젊은이들만 떠난 여행은 아니었고, 대개 철학자나 작가들이 가정교사로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문과 예술의 소양을 기르기 위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이탈리아 곳곳을 다니며 고대 로마의 유적지와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현장학습이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이탈리아 여행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크게 붐을 이루었다. 그리고 볼테르, 몽테스키외, 스탕달, 괴테 등 당시 유럽 계몽주의의 대스타들까지 동참하면서 유행병처럼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결국 영국 상류층 자제의 ‘수학여행’이 유럽의 문화지도와 역사를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17~18세기 이탈리아 문화, 예술, 풍속, 역사를 이탈리아의 입장에서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그랜드투어에 나섰던 유명 지식인과 예술가의 기록을 재구성해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는지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그랜드투어를 통해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문명의 동질성을 자각 왜 유럽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탈리아로 그랜드투어를 떠났을까?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을 만났으며, 무엇을 가지고 귀국길에 올랐는가? 18세기 유럽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사조가 휩쓸고 있었고, 우연하게도 이탈리아에서는 폼페이를 비롯한 고대 로마 유적의 발굴 시기와 겹치게 되었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려고 하는 계몽정신과 폼페이 유적의 발굴도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이탈리아로 몰려가게 하는 하나의 충동으로 작용했다. 이 책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괴테도 이탈리아를 다녀온 뒤 유명한 《이탈이아 기행》을 출간했고, 스탕달과 안데르센도 자신의 경험을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18세기를 살았던 작가와 지식인들 가운데 이탈리아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특히 유럽 북부의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이탈리아의 기후와 풍습, 문화 등은 예술 창작의 원천이자 이상향이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라는 용광로 속으로 흘러들어온 이질적인 요소들이 전혀 새로운 것들을 발효시켜 다시 유럽의 여러 나라로 전파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랜드투어를 통해 유럽인들이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문명의 동질성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그리스에서 출발한 로마 문명이 결국 유럽 문명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인 셈이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영국에서 시작된 그랜드투어는 유럽인이 동일 의식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또 유럽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통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8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인적 교류와 대이동은 유럽의 역사와 문명의 지도를 바꾸는 역동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이 책은 당시 예술가와 지식인의 여행 기록과 시각적인 자료를 재구성해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그랜드투어의 실상을 보여준다. 여러 여행지와 각지의 살롱에서 그들이 주관한 문화, 예술, 사상 등 다양한 분야의 토론과 인적 교류의 실상도 엿볼 수 있다. 이들이 이탈리아에 와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으며, 또 무엇을 여행 선물로 가져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1장 사람을 만나다 그랜드투어 당시의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인을 구별하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가 남긴 찬란한 문명, 풍요로운 자연과 온화한 기후는 동경하지만, 비참한 삶을 꾸려가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당시 세계의 주역으로 떠오른 영국인은 자기들이야말로 고대 로마 문명의 구원자이자 참된 계승자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영국의 해밀턴 경이 나폴리에 열었던 살롱이 여행객들에게 가장 명성이 높았다. 이 호화로운 살롱은 괴테, 미술사가 빙켈만, 화가 필립 하케르트 등 당대의 명사들이 단골로 드나들며 새로운 학문과 예술을 소개하고 확산시키는 용광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살롱 중심으로 활동한 이탈리아의 여류 명사들과 작가들의 활약상도 다루고 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는 풍습으로 유럽인의 눈길을 끌었던 치치스베오와 카스트라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리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벌어지는 성의 향락과 도덕의 타락은 여행객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음을 설명한다. 2장 자연을 만나다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여행객들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바로 웅장한 알프스의 연봉들이다. 자연의 스펙터클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그린 로사의 풍경화는 영국의 컬렉터와 딜레탕트들이 손에 넣으려고 안달을 할 정도였다. 로사의 픽처레스크한 풍경화는 유럽인에게 이탈리아 여행을 자극하는 동시에 이탈리아 자연에 대한 환타지를 심어주었다. 이탈리아의 남쪽으로 내려오면 반도를 종단하는 아펜니노 산맥이 있고, 이 가운데 특히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폭포가 나온다. 로마에 도착하기 직전에 나르미 마을에서 보는 거대한 마르모레 폭포는 많은 여행객의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그곳은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촬영 장소가 될 만큼 옛날부터 유명했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이 폭포에서 신고전주의의 미학의 핵심이 되는 숭고미를 눈으로 재확인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3장 유적을 만나다 18세기 이탈리아 각지에서 폼페이를 비롯한 각종 고대 유적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폼페이와 함께 땅속에 묻힌 헤르쿨라네움, 이탈리아 남부의 파에스툼, 시칠리아 섬의 산 위에 세워진 그리스 신전의 유적인 아그리젠토 등이 모두 이때에 발견됐다. 그랜드투어는 이러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재인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18세기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는 근대적 시각의 미술사가 그랜드투어에서 발화한 것으로 소개한다.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근대 미술사의 아버지 빙켈만은 당시 로마에서 출토된 고대 조각인 〈벨베데르의 토르소〉의 균형미와 완벽한 조화에 크게 감명받았는데,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명저 《고대 예술사》의 집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와서는 나폴리 남쪽으로 내려가 시칠리아도 그랜드투어의 여정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때 시칠리아 여행의 목적은 호메로스로 상징되는 고대 그리스 세계로 향한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럽 여행객들에게 당시 터키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그리스는 갈 수 없는 먼 나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4장 예술을 만나다 이탈리아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의 박물관이자 미술관이다. 미술품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궁전이나 교회에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탈리아의 매력이다. 그랜드투어 당시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들의 작품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랜드투어 시대에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바로 자신의 초상화와 이탈리아 유적을 그린 풍경화였다. 20대부터 로마에서 활동한 피렌체 출신의 화가 폼페오 바토니는 당시 영국인 여행객들에게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바토니가 그린 초상화의 모델은 대부분 영국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이들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대개 집안의 작위를 계승해 정계로 진출했기 때문에 초상화도 자기과시의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활용되었다. 폼페오 바토니가 초상화로 인기를 끌었다면 화가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는 로마의 유적을 그린 풍경화로 명성을 떨쳤다. 이탈리아어로 ‘베두타’로 불린 풍경화는 요즘의 여행 엽서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여행 선물로도 인기가 높았다. 로마의 풍경화를 500점 이상 남긴 판니니의 그림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유적은 콜로세움과 판테온이다. 이들 유적은 그랜드투어 여행객들에 의해 유럽인들에게 로마를 상징하는 유적으로 각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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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건국지 - 혁명의 설계자 정도전의 꿈과 좌절
이정근 | 책보세 | 2014-04-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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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건국지 - 혁명의 설계자 정도전의 꿈과 좌절
이정근 | 책보세 | 2014-04-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강추!!! 천하가 걸린 건곤일척의 혈전, ‘백성의 나라’ vs ‘임금의 나라’
역사 드라마(소설)를 역사 사실과 종종 동일시한 시청자(독자)들이 ‘역사 왜곡’이 심하다며 비판의 목청을 높인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역사가들마저 그런 비판에 가세한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특정 역사 인물을 선조로 둔 일부 문중(門中)의 몰지각한 행태다. 역사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국에, 역사소설을 펴낸 출판사에 항의를 넘어 협박까지 일삼는 일이 드물지 않다. 문제는 그 항의 내용이 얼토당토않다는 것이다. 해당 문중에서 그 문제의 인물을 역사 사실에 반하여 지나치게 미화하여 숭상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차라리 몇 줄짜리 사료에 근거하여 전체 스토리를 몽땅 허구로 꾸민 판타지 성격의 역사 드라마(소설)는 그런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에 비해 구체적인 사료를 토대로 역사의 큰 굽이(큰 전란이나 국가의 멸망 또는 건국)를 다룬 드라마(소설)에서는 어김없이 그런 논란과 항의와 협박이 따른다. 방영 중인 드라마 〈정도전〉도 그 한 예다. 초반부의 주요 인물이 우왕 즉위와 함께 정권을 장악한 이인임(성주이씨)이다. 그런데 이인임을 가히 성인(聖人)으로 떠받드는 성주이씨 문중에서 압력을 넣어 이인임에 대한 묘사가 사뭇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조선건국지》 원고를 작가로부터 넘겨받았을 때 ‘이인임’이 ‘이임인’으로 뒤집어져 있었다. 작가에게 문의했더니, 해당 문중의 성화(成火)가 염려되었다고 했다. ‘후문’이 헛소문만은 아닌 성싶었다. 물론 드라마나 소설이라도 실재인물을 사실(史實)과 다르게 ‘근거 없이’ 폄훼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문제다.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역사 사실을 토대로 한 상상력을 작품에서 형상화하는 것조차 간섭 받는다면 드라마나 문학이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사실(史實)이라고 해서 다 사실(事實)은 아니다. 사료는 편찬 과정에서 왜곡이나 오류가 적잖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백로가〉다. 1876년 박효관?안민영이 엮은《가곡원류(歌曲源流)》에는 정몽주의 어머니가 이 시조를 읊으며, 이성계 집으로 향하는 아들의 발길을 붙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정몽주가 이미 오래 전에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렀다는 사실로 보아 맞지 않다. 그래서 〈백로가〉는 여전히 작자미상이다. 그런데도 이 엄연한 오류가 사실로 회자되고 있고, 포은의 후손과 어머니 영천이씨의 후손인 양 문중에서는 ‘포은 선생 자당’을 작자로 하여 시비까지 세워놓고 있다. ‘역사’에 기댄 것들 하기의 어려움이 이렇다. 《조선건국지》는 이런 번다한 것들에 붙들리지 않고, 나라는 과연 백성에게 무엇인지를 묻는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이 그 중 가장 가볍다”고 한 맹자의 일갈을 정도전을 통해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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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의 힘
조관희 | 청아출판사 | 2015-08-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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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의 힘
조관희 | 청아출판사 | 2015-08-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13억 인구의 나라 중국, 8가지 키워드로 새롭게 만난다
우리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온 중국, 과연 우리는 중국을 잘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하여 상호 긴밀한 관계에 있다. 오랜 역사를 함께 걸어 온 중국이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중국을 잘 알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우리가 문화적으로 꽤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중국 문화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의 저자는 대중들에게 중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2009년, MBC 자회사인 MBC 라이프 채널 개국을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인 6부작 《인문기행 중국》 1, 2회에 ‘베이징’ 편을 진행했으며, 2014년에는 KBS 교양 프로그램 《인문강단 락(樂)》에서 ‘중국’이라는 키워드로 6차례 강의를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관련한 여러 저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중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을 그간의 강의와 저서 가운데 가려 뽑아 8가지 키워드로 선정하고, 중국을 색다르게 접근할 수 있게 구성했다. 중국을 이해하는 8가지 키워드 1 황색 중국인들은 왜 황색을 좋아할까? 2 역사 중국사에 숨겨진 온고지신 정신 3 전쟁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전쟁과 가장 부도덕한 전쟁 4 문화대혁명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광기의 역사 5 장성 장성에 갇혀 버린 중국 6 베이징 하늘 아래 유일한 수도 7 사합원 폐쇄적 세계관이 반영된 건축물 8 홍루몽 중국인을 열광하게 만든 소설의 등장 단숨에 알아 가는 중국 이야기 이 책은 기존의 통사적이고 연대기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황색, 역사, 전쟁, 문화대혁명, 장성, 베이징, 사합원, 홍루몽 등 8가지 키워드를 통해 중국을 새롭게 조명한 것이 큰 특징이다. 중국의 기원과 관련 있는 황색,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중국의 역사, 가장 의미 있는 전쟁인 페이수이 전투와 가장 부도덕한 전쟁인 아편전쟁을 살핀다. 또한 중국 대륙을 휩쓴 문화대혁명,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리장성에 얽힌 뒷이야기, 이상적인 계획 수도로 만들어진 베이징,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 사합원과 중국의 대표 소설 《홍루몽》까지 역사, 문화, 건축, 문학 등 중국의 여러 모습을 담아 흥미로움을 더했다. 뿐만 아니라 각 키워드마다 삽입되어 있는 풍부한 도판들은 다양한 모습의 중국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저자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직접 찍은 것으로, 단순한 여행객에 그치지 않고 직접 삶을 경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야 할 내용은 주석을 달아 풀이해 독자들이 쉽게 중국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을 뛰어넘어 중국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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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룻밤에 읽는 징비록
서애 류성룡 | 아인북스 | 2015-07-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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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룻밤에 읽는 징비록
서애 류성룡 | 아인북스 | 2015-07-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경위와 전황에 대한 충실한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에서 급박하게 펼쳐지는 외교전을 비롯하여, 전란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생활상, 전란 당시에 활약한 중요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인물평까지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대한 입체적인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지러운 난리를 겪을 때 책임을 맡아서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 잡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들지도 못하였다."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류성룡의 모습은 당시의 백성들에게 때늦은 후회로밖에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날의 근심거리를 그치게 한다.'는 <시경>의 구절로 자신의 책제목을 대신한 류성룡의 마음가짐만큼은 수백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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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에 감동하다
원유상 | 좋은날들 | 2015-05-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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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에 감동하다
원유상 | 좋은날들 | 2015-05-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우리 역사에 다시 한번 감동하다!
시련이 많았기에 더욱 자랑스러운 한국사 이야기
한국사의 고비마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감동스러운 역사가 있었다. 세계적 수준의 문화유산 이면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염원이 일궈낸 감동이, 위인들의 업적 속에는 역경의 삶이 자리하고 있어 더더욱 감동을 자아낸다. 저자는 그 같은 감동의 한국사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왔음을, 그 역사를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한국인의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세계에 자랑해도 좋을 문화유산과 숱한 고난에도 감동의 삶을 살아낸 위인들을 조명한다. 아파트 30층 높이의 황룡사 9층목탑, 전 세계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한반도의 고인돌 등의 문화유산을 비롯하여 독립을 위해 6형제 중 5명이 순국한 이회영 일가, 일본 성리학의 뿌리를 내려준 강항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여기에 어느 한때, 우연히 만들어진 문화유산 혹은 위인들의 업적이란 없다. 시련이 많았기에 더욱 자랑스러운 문화유산과 위인들의 삶, 우리는 우리 역사에 다시금 감동하게 된다.
찬란한 문화유산부터 감동의 삶을 살아낸 위인까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다시 보다!!
역사의 진실은 겉으로 드러난 업적에 가려진 경우가 많아서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역사 인물뿐 아니라 잘 알려진 문화유산에도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사실 이면에는 그 깊이를 달리 하는 역사적 진실과 감동이 숨어있다. 그런 이유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 특히 위대한 역사 인물들의 업적에 가려진 감동적인 삶에 주목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역사 교과서 등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고, 우리 또한 눈여겨보지 않았던 역사의 감동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과 위인들이 왜 위대하고 칭송되어야 마땅한지 그 감동의 세월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고인돌과 온돌 문화 이야기를 비롯해 16년에 걸쳐 제작되고 8백년 동안 보존된 팔만대장경, 기록문화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조선왕조실록 같은 문화유산 그리고 장보고, 최무선, 파미르 고원을 넘어 대원정에 나선 고선지 장군,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 박병선 박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 난봉꾼이라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은 독립운동가 김용환 같은 역사 인물들의 삶을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문화유산의 가치를 오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마주보는 세계사> 칼럼을 부연한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인데, 물론 우리 역사라서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차원이 아니다. 예컨대 저자는 고려청자에 대해 영국의 도자기 전문가인 윌리엄 허니의 평을 이렇게 덧붙인다.
“최상급의 한국 도자기는 세계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우아하고 진실하다. 도자기가 가지는 모든 장점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행복한 민족의 소산임을 첫눈에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감동적인 삶을 되새기다
: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위인들의 삶 이야기
고인돌과 석굴암, 조선 왕릉, 해인사장경판전처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 외에도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온돌 문화와 천문과학의 우수성, 고려청자와 직지심체요절, 한글 등이 그러한데, 이처럼 널리 알려진 문화유산이라도 우리가 그 깊이와 역사적 진실을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놓치기 쉽고, 평소 보지 않았던 문화유산의 가치와 역사적 배경 설명을 통해 그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욱이 이 같은 접근은 역사 인물의 삶을 소개하는 장에서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팔만대장경을 소실의 위기에서 구해낸 김영환 대령, 죽음을 앞두고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편지를 남겨야 했던 윤봉길, 가문의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고 6형제 중 5명이 순국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회영 일가 그리고 국난에 맞서 헌신했으되 이름조차 생소한 의병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감동적인 삶을 되새기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책 말미에서 저자는 지금의 우리 또한 그 감동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당부한다.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시련과 고통이 있었을지언정 한 번도 퇴보하지 않고 발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역사는 그렇게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의 후손도 그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한국사에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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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건국신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화들
이경덕 | 21세기북스 | 2013-07-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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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건국신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화들
이경덕 | 21세기북스 | 2013-07-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경덕의 <세계 신화 라이브러리> 시리즈
한국 1 : 창세가와 천지왕본풀이 대한민국 최고의 신화학자 이경덕이 집필한 세계의 정통 신화를 쉽고 재미있게 읽어보자. <신화 라이브러리>는 시리즈 각 권마다 해당 신에 대한 개별적인 에피소드를 담고 있어 우리가 알고 싶은 신화에 대한 모든 것을 섭렵할 수 있다. 또한 원하는 주제를 골라 읽을 수 있어 짧은 이동 시간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풍부한 고전 명화와 현대적인 일러스트도 신화를 만나는 재미를 한껏 더해준다. 다양한 신화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보는 넓은 시각을 가졌음을 뜻한다. 세상 모든 신화를 담은 <신화 라이브러리>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상과 만나보자. 한국 신화의 특징 한국 신화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삶과 죽음의 의미와 믿음 등을 이야기로 풀어 놓은 것이다. 신화는 우리말로 하면 본풀이가 된다. 본풀이는 본 또는 근본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본풀이의 표면적인 의미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내력을 풀어낸다는 뜻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신화가 담고 있는 모든 것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한국 신화는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매우 친숙한 느낌이지만, 낯익은 이미지라서 더 깊고 진하게 공감할 수 있고, 진정한 의미의 신화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우리 신화는 우리의 끝나지 않는 삶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건국 신화의 의미 여기서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신화가 아니라 기록된 신화들, 특히 고려의 국사였던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화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신화들은 주로 건국 시조들의 이야기이다. 건국 신화는 대부분 국가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다른 신화와 차이가 나지만, 그 이면에 당시의 생활상이나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한편 지금도 건국 신화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나 기업과 같은 큰 공동체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이때 신화의 겉모습, 즉 줄거리는 각각 다르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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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와 수ㆍ당의전쟁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7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3-0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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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와 수ㆍ당의전쟁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7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3-0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의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역사의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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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이상각 | 들녘 | 2014-05-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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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이상각 | 들녘 | 2014-05-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불굴의 민족혼을 떨쳐 일으키다
저자는 고려와 원 제국의 관계에 주목한다. 약소국 고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원 제국의 강대한 무력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오랜 항쟁과 타협, 조정 과정을 거쳐 백여 년 동안의 평화를 구가했다는 것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그늘 아래 안주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원 제국과 고려의 밀월 관계가 가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릇 난세에 평화를 향유하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희생을 침소봉대하여 더 큰 가치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받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민족은 동서냉전의 여파로 분단된 남과 북의 불화, 북쪽의 교조주의와 일방주의, 남쪽의 보수와 진보의 대결, 지역 간 갈등을 비롯한 각종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고려인들이 보여주었던 민족 통합 정책과 자주 정신, 민활한 외교정책, 외적에 대한 끈질긴 투쟁의지 등은 우리들에게 최상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국가 고려는 잦은 외세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끈질긴 항쟁을 통해 국체를 보존했던 열정과 자존의 제국이었다. 하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관련 사료가 드물거니와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은 후대의 기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사료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저간의 오류가 많이 시정되었다. 이상각의 『고려사』는 기존의 자료에 연구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역동적인 고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고려의 건국과 국가 체제의 정비 병산전투는 그동안 후백제에 밀리던 고려가 통일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은 계기가 되었다. 후백제군이 물러나자 태조는 김선필의 주선으로 서라벌에 가서 신라의 경순왕과 신하들을 위로했다. 그와 같은 왕건의 신라에 대한 배려는 왕족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고려에 적대적이었던 호족들까지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궁예의 축출 이후 태조에 반기를 들었던 강릉의 김순식, 의성의 홍술, 포천의 성달 등이 고려에 귀순하고 울산과 주변 110여 성까지 항복해 왔다.(p.44)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가 점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신라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각지에서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고 마침내 고려, 후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후삼국 시대가 정립되었다. 당시 신라는 이미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후백제와 고려는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상황이었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삼한일통을 이뤘다. 이는 단순히 무력에만 의지한 결과가 아니었다. 왕건이 통합과 안정을 희구하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태조 왕건에 관련된 설화를 비롯하여 혼인정책, 사성정책 등 다양한 사실을 통해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 주목한다. 연합체적인 성격으로 시작한 고려의 초기 과제는 호족들을 통합하여 중앙집권체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광종대를 거쳐 성종대에 이르면서 고려의 정치체제는 비로소 안정되었다. 그리고 실리외교를 추구함으로써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은 가급적 피하였다. 성종이 고려의 체제 정비와 문화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동안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985년 요가 여진을 정벌하고 발해의 후신인 정안국까지 점령하자 북송은 사신 한국화를 고려에 보내 요를 양면에서 협공하자고 제안했다. 요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북송은 전쟁 중에 노획한 포로나 재화, 병기 등을 모두 고려에게 넘겨주겠다고 유혹했지만 성종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출병하지 않았다.(p.107) 그 무렵 요와 고려는 뜨뜻미지근한 형식적 사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려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된 사실을 알게 된 요는 더 이상 침략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문종은 요가 강제 점유하고 있는 압록강 동쪽 영토를 되찾고자 했다. 당시 요에서는 흥종 사망 이후 도종 야율홍기(耶律洪基)가 즉위하면서 황실의 내분이 벌어져 문종의 요구에 즉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문종은 새로운 황제의 즉위축하사절단에 항의문을 함께 보내는 등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1057년에는 중서성을 통해 궁구문 바깥에 있는 우정을 없애고 송령 동북지대에 토지 개간사업을 하는 자들과 이미 설치한 암자들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같은 문종의 강수는 요와 일전을 겨루어도 꿀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문화강국 북송에 대하여 문종은 매우 친밀하게 대했다. 요의 압력으로 인해 양국은 오래전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지만 문종은 북송 상인들의 국내 출입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선진문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 무렵 왕안석의 신법을 통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북송에서는 매년 주조하는 동전과 철전이 600만 관을 넘었고 남양, 인도양, 아프리카 동해안의 등지에서도 사용되었다.(p.164∼165) 열정과 자존의 불꽃이 지다 요와 금이 등장하자 동아시아의 정세는 급변했다. 이에 고려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군사력을 강화했고 그들의 발전된 문화를 수용하는 등 민첩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갈등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려는 초기에 문벌귀족사회를 형성했고 권력에서 배제된 무신들은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넘쳐나는 무신들의 불만은 결국 무신정변으로 표출되었고 그 후 100여 년동안 무신집권체제가 유지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는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민중의 사회의식은 성장해 나갔다. 만적은 보잘것없는 벼슬아치였던 주인 최충헌이 정변을 통해 당대의 최고 권력자가 된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자신도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거사에 한번 성공하면 권좌에 오를 수 있다는 망상을 품게 되었다. “정중부와 김보당 이래 고관 중에 천출이 한둘이 아니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p.272) 본래 고려는 사족과 서인을 구별하는 사서제(士庶制)와 양인과 천민을 구별하는 양천제(良賤制)를 두 축으로 유학자 중심의 귀족사회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신정권시대와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평민과 노비의 신분 상승에 따라 사서제 기능이 상실되었고, 양천제도 원의 영향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돈의 노비개혁정책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졌지만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제도의 벽과 수구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p.448) 원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 고려는 과감한 개혁정치를 시도한다. 특히 공민왕대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개혁이 이루어졌고 더불어 사회체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정방의 폐지나 토지, 노비에 관한 개혁정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고려의 역사는 이성계의 등장과 함께 종말을 고한다. 당시 이성계는 요동 정벌 당시 4불가론을 내세우며 정벌의 부당성을 설파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옳지 않다. 셋째, 왜구들에게 빈틈을 보이게 된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에 입힌 아교가 풀어지고 전염병이 번질 우려가 있다.(p.478)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고 쿠데타는 성공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조민수 등 군부 세력은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보위에 올렸다. 개혁파의 독주에 제동을 건 이색, 정몽주 등은 고려의 국체를 보존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정몽주의 죽음과 함께 반 이성계파의 모든 저항은 끝났고 고려도 함께 멸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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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조선의 탄생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1-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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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조선의 탄생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1-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고조선의 탄생
1993년 10월 북한은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에서 단군릉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북한 사회과학원의 ‘단군릉발굴보고’에 따르면 단군릉에서는 두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신화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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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 올림픽의 탄생
김재홍 | 21세기북스 | 2012-11-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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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 올림픽의 탄생
김재홍 | 21세기북스 | 2012-11-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근대 올림픽의 탄생
2012 런던 올림픽의 해. 그러나 올림픽 그 탄생의 비화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늘날 세계인의 축제가 된 올림픽 이면에는 한 남자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으니. 올림픽의 탄생을 통해 그 진정한 의미를 알아본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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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조선의 총구다
이상국 | 세창미디어 | 2014-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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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조선의 총구다
이상국 | 세창미디어 | 2014-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신채호, 이봉창 열사와 함께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은 여성운동가 남자현. 이 책은 남자현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 행적과 삶의 의미를 기리고자 했다. 겨레의 기억 속에 잊히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그녀의 자취와 기억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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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폴레옹 전쟁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8
김재홍 | 21세기북스 | 2013-0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351 |
[역사] 나폴레옹 전쟁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8
김재홍 | 21세기북스 | 2013-0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의 터닝포인트 18 나폴레옹 전쟁>
한 번도 통일되지 않았던 서유럽. 그러나 19세기 들어 카를 대제와 비견되는 한 정복자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 정복자는 바로 작은 거인이라고도 불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프랑스령의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한때 유럽 전역을 호령했으나 남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한 나폴레옹. 과연 그가 유럽에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역사의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역사의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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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날씨가 바꾼 익사이팅 세계사
반기성 | 플래닛미디어 | 2014-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350 |
[역사] 날씨가 바꾼 익사이팅 세계사
반기성 | 플래닛미디어 | 2014-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인류의 역사를 만들고 지배하는 히든 팩터 날씨
세계사 속에 숨은 놀라운 비밀을 벗긴다! 한때 고구려를 위협하던 강국 부여는 어째서 무너진 것일까? 오렌지 공 윌리엄이 영국에 상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의 문명은 어떻게 멸망했나? 이 모든 역사적 사실 뒤에는 날씨가 숨어 있었다!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최근 몇 년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재난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더욱 심각한 점은 강력한 가뭄이 지구촌을 덮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중?남부는 극심한 가뭄으로 10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었고, 이와 함께 러시아?호주?중국?스페인?인도네시아 등 식량수출국가에서 가뭄이 들어 식량 수출을 중단하자 식량가격이 폭등했다. 지구촌의 기근과 테러 위협은 많은 부분이 날씨와 기후의 변화 때문이다. 미 국방성은 미래보고서에서 가장 먼저 핵전쟁이 벌어질 나라로 인도와 파키스탄을 꼽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아 물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핵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2009년에는 미 중앙정보국(CIA) 내에 기후변화센터가 설립되었다. 이제 미국은 테러보다 기후변화가 국가안보에 더 위험하다고 믿고 있다.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에서 발간한 『날씨가 바꾼 익사이팅 세계사』는 『날씨가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2010년)와 『날씨가 바꾼 서프라이징 세계사』(2012년)의 속편으로, 전작에 이어서 문명의 흥망, 전쟁의 승패, 역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날씨와 기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오랜 시간 기상전문가이자 군인으로서 길을 걸어온 저자는 섣부른 역사 해석을 절제하면서도 날씨와 전쟁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전쟁에서 날씨가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였다면 기후는 문명을, 나아가 역사를 바꾸는 큰 요소이다. 마야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대가뭄으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걸었다. 소빙하기가 닥쳤을 때 그린란드에 살던 바이킹들은 생존하지 못했으나 기후변화에 적응한 이누이트족은 살아남았다. 핏케언 섬과 이스터 섬의 문명은 사라졌지만 티코피아 섬은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옥한 땅으로 남아 있다. 기후변화는 대책이 없는 민족에게는 엄청난 위기지만, 잘 준비하고 적응하는 민족에게는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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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1 - 삼국열전과 대륙의 격랑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349 |
[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1 - 삼국열전과 대륙의 격랑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우리 역사 바로 알기
구한말 서양 열강과 일제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가운데 자강(自彊)에 실패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식민지가 되었던 많은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였다. 우리도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으나 주체적으로 일제를 몰아내지 못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결국 1948년 두 개의 국가가 탄생했다. 반면 서양 열강과 일제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병든 돼지’로 경멸받던 중국은 공산당 집권 이후 강대국으로 인정받았고 일본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경제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성공하였다. 구한말 러시아, 청, 일본, 미국 등 4대 열강에 둘러싸였던 국제정세는 오늘날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하지만 구한말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군 1개 연대조차 당해내지 못할 수준의 국력을 가졌던 대한제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비록 주변 4대 강국에 비해 현격한 약세를 보이고는 있어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력이 미약해 전혀 외교 교섭 상대가 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중요한 외교 파트너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국가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교섭한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가 현재의 국제정세와 더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오호십육국으로 불리는 북방 유목민족이 중국으로 남하함에 따라 동아시아 세계는 격랑에 휩쓸렸고, 이에 맞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국의 실정에 맞추어 주체적으로 대응하여 성장해나갔다. 6세기 말 통일된 중국이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려고 대외 침략 전쟁을 남발하자 고구려는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대응을 적절히 병행하며 이에 철저히 맞섰다. 돌궐과의 연합, 거란?말갈 등 여러 종족을 회유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켜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져 당에 복속되었던 돌궐, 거란 등 여러 민족이 자립하였고, 고구려 유민도 국가 재건에 성공하니 그것이 발해였다.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응한 삼국시대 한민족의 분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잘 살려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또 삼국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술하였을 뿐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 역사 틀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적잖이 기존의 학설과 다르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백제 개로왕의 부왕인 비유왕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둘째, 을지문덕은 조상이 중국에서 고구려로 귀화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연개소문의 관직인 막리지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다. 셋째, 원효대사의 조상은 신라 소지 마립간이다. 넷째,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패배는 안시성 함락 실패로 인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구려의 전략에 말렸기 때문이다. 다섯째, 당이 줄기차게 고구려를 침략한 이유는 도교의 기원과 관계가 있다. 여섯째, 백제의 요서 경략설은 부여인의 활동이 와전된 것이다. 일곱째, 신라 진흥왕과 진평왕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나중의 일이다. 여덟째, 장보고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5년이 빠르다.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절대 부족하여 상세한 내용을 연구할 수 없어 많은 제약이 따른데,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중국 사료를 좀더 폭넓게 이용하여 관련 내용을 해석하고 입체적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전에 나왔던 연구서들 대부분이 고대 한국을 간략하게 서술한 여러 중국 역사서의 <동이전(東夷傳)> 부문만 활용해 단편적인 내용만 전했다면, 이 책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晉書》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사서 전체를 꼼꼼히 참조하고 비교하였다. 또 우리의 삼국시대뿐 아니라 한족과 유목민족의 왕조 가계도, 동아시아 각국 나라의 세력을 지도로 나타내는 것은 물론, 주요 전쟁 등도 여러 연구서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정리하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한국사는 ‘올바른 역사상’과 심각한 괴리를 초래하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현재에 있어서도 한국사의 좌표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이 책은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삼국시대를 바로 보는 역사적 시각은 물론 오늘날 우리의 미래 지향적이고 열린 사회의식을 함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
348 |
[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2 - 고구려와 수ㆍ당의 전쟁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348 |
[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2 - 고구려와 수ㆍ당의 전쟁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우리 역사 바로 알기
구한말 서양 열강과 일제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가운데 자강(自彊)에 실패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식민지가 되었던 많은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였다. 우리도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으나 주체적으로 일제를 몰아내지 못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결국 1948년 두 개의 국가가 탄생했다. 반면 서양 열강과 일제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병든 돼지’로 경멸받던 중국은 공산당 집권 이후 강대국으로 인정받았고 일본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경제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성공하였다. 구한말 러시아, 청, 일본, 미국 등 4대 열강에 둘러싸였던 국제정세는 오늘날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하지만 구한말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군 1개 연대조차 당해내지 못할 수준의 국력을 가졌던 대한제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비록 주변 4대 강국에 비해 현격한 약세를 보이고는 있어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력이 미약해 전혀 외교 교섭 상대가 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중요한 외교 파트너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국가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교섭한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가 현재의 국제정세와 더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오호십육국으로 불리는 북방 유목민족이 중국으로 남하함에 따라 동아시아 세계는 격랑에 휩쓸렸고, 이에 맞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국의 실정에 맞추어 주체적으로 대응하여 성장해나갔다. 6세기 말 통일된 중국이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려고 대외 침략 전쟁을 남발하자 고구려는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대응을 적절히 병행하며 이에 철저히 맞섰다. 돌궐과의 연합, 거란?말갈 등 여러 종족을 회유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켜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져 당에 복속되었던 돌궐, 거란 등 여러 민족이 자립하였고, 고구려 유민도 국가 재건에 성공하니 그것이 발해였다.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응한 삼국시대 한민족의 분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잘 살려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또 삼국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술하였을 뿐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 역사 틀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적잖이 기존의 학설과 다르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백제 개로왕의 부왕인 비유왕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둘째, 을지문덕은 조상이 중국에서 고구려로 귀화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연개소문의 관직인 막리지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다. 셋째, 원효대사의 조상은 신라 소지 마립간이다. 넷째,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패배는 안시성 함락 실패로 인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구려의 전략에 말렸기 때문이다. 다섯째, 당이 줄기차게 고구려를 침략한 이유는 도교의 기원과 관계가 있다. 여섯째, 백제의 요서 경략설은 부여인의 활동이 와전된 것이다. 일곱째, 신라 진흥왕과 진평왕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나중의 일이다. 여덟째, 장보고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5년이 빠르다.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절대 부족하여 상세한 내용을 연구할 수 없어 많은 제약이 따른데,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중국 사료를 좀더 폭넓게 이용하여 관련 내용을 해석하고 입체적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전에 나왔던 연구서들 대부분이 고대 한국을 간략하게 서술한 여러 중국 역사서의 <동이전(東夷傳)> 부문만 활용해 단편적인 내용만 전했다면, 이 책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晉書》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사서 전체를 꼼꼼히 참조하고 비교하였다. 또 우리의 삼국시대뿐 아니라 한족과 유목민족의 왕조 가계도, 동아시아 각국 나라의 세력을 지도로 나타내는 것은 물론, 주요 전쟁 등도 여러 연구서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정리하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한국사는 ‘올바른 역사상’과 심각한 괴리를 초래하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현재에 있어서도 한국사의 좌표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이 책은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삼국시대를 바로 보는 역사적 시각은 물론 오늘날 우리의 미래 지향적이고 열린 사회의식을 함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
347 |
[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3 - 나당연합과 발해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347 |
[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3 - 나당연합과 발해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우리 역사 바로 알기
구한말 서양 열강과 일제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가운데 자강(自彊)에 실패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식민지가 되었던 많은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였다. 우리도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으나 주체적으로 일제를 몰아내지 못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결국 1948년 두 개의 국가가 탄생했다. 반면 서양 열강과 일제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병든 돼지’로 경멸받던 중국은 공산당 집권 이후 강대국으로 인정받았고 일본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경제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성공하였다. 구한말 러시아, 청, 일본, 미국 등 4대 열강에 둘러싸였던 국제정세는 오늘날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하지만 구한말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군 1개 연대조차 당해내지 못할 수준의 국력을 가졌던 대한제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비록 주변 4대 강국에 비해 현격한 약세를 보이고는 있어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력이 미약해 전혀 외교 교섭 상대가 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중요한 외교 파트너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국가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교섭한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가 현재의 국제정세와 더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오호십육국으로 불리는 북방 유목민족이 중국으로 남하함에 따라 동아시아 세계는 격랑에 휩쓸렸고, 이에 맞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국의 실정에 맞추어 주체적으로 대응하여 성장해나갔다. 6세기 말 통일된 중국이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려고 대외 침략 전쟁을 남발하자 고구려는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대응을 적절히 병행하며 이에 철저히 맞섰다. 돌궐과의 연합, 거란?말갈 등 여러 종족을 회유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켜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져 당에 복속되었던 돌궐, 거란 등 여러 민족이 자립하였고, 고구려 유민도 국가 재건에 성공하니 그것이 발해였다.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응한 삼국시대 한민족의 분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잘 살려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또 삼국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술하였을 뿐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 역사 틀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적잖이 기존의 학설과 다르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백제 개로왕의 부왕인 비유왕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둘째, 을지문덕은 조상이 중국에서 고구려로 귀화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연개소문의 관직인 막리지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다. 셋째, 원효대사의 조상은 신라 소지 마립간이다. 넷째,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패배는 안시성 함락 실패로 인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구려의 전략에 말렸기 때문이다. 다섯째, 당이 줄기차게 고구려를 침략한 이유는 도교의 기원과 관계가 있다. 여섯째, 백제의 요서 경략설은 부여인의 활동이 와전된 것이다. 일곱째, 신라 진흥왕과 진평왕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나중의 일이다. 여덟째, 장보고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5년이 빠르다.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절대 부족하여 상세한 내용을 연구할 수 없어 많은 제약이 따른데,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중국 사료를 좀더 폭넓게 이용하여 관련 내용을 해석하고 입체적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전에 나왔던 연구서들 대부분이 고대 한국을 간략하게 서술한 여러 중국 역사서의 <동이전(東夷傳)> 부문만 활용해 단편적인 내용만 전했다면, 이 책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晉書》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사서 전체를 꼼꼼히 참조하고 비교하였다. 또 우리의 삼국시대뿐 아니라 한족과 유목민족의 왕조 가계도, 동아시아 각국 나라의 세력을 지도로 나타내는 것은 물론, 주요 전쟁 등도 여러 연구서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정리하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한국사는 ‘올바른 역사상’과 심각한 괴리를 초래하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현재에 있어서도 한국사의 좌표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이 책은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삼국시대를 바로 보는 역사적 시각은 물론 오늘날 우리의 미래 지향적이고 열린 사회의식을 함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
346 |
[역사]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 2013-06-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346 |
[역사]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 2013-06-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애는 망국 시대에 모든 것을 바쳐 일제와 싸운 처절한 혁명가의 삶이었으며, 오로지 일제 타도와 조국 해방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선생은 일제 타도를 위해 언론·문학·사학·대종교·아나키즘·의열단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싸웠으며 오늘날 각 분야의 큰 업적을 남겨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동북공정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한민족의 울분을 자아내고 있는 지금, 선생은 이미 민족사학의 이름으로 찬란한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고 복원하였다. 오늘 우리가 선생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다시 더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아와 비아의 투쟁적 삶을 살다간 고결한 혁명가” 독립운동사에서 단재 선생만큼 남북한 공히 존경받는 인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해방 후 극심한 이념대결의 장에서 독립투사들의 이념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선생만은 자신이 남긴 업적만큼이나 위대한 혁명가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한이 전쟁을 치룰 만큼 한쪽의 역사를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린 아직도 선생의 국적조차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책 『단재 신채호 평전』은 단재 선생의 생애를 연구하고 선생의 발자취를 끊임없이 찾아 새로운 자료를 발굴했던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발로 쓴 역작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실제 저자가 몇 차례 뤼순 감옥을 방문해 입수하게 된 선생의 감옥 입소 때 찍은 사진을 게재했으며, 잡지 『천고』의 2권을 연변에서 입수해 최초로 국내 언론에 소개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선생의 국적회복은 물론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 흩어진 단재 선생의 자료들을 모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단재 신채호 전집』을 출간하자고 호소한다. 단재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자신이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일컬었던 역사의 정의만큼이나 치열하게, 또는 고뇌하며, 고결하게, 한점 흐트러짐 없는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또 그 삶의 무게만큼이나 선생이 남긴 업적 또한 오늘날의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단재는 사학자로서 민족사학의 골격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국 고대사 복원은 물론 잘못된 역사의 과오와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이러한 단재사학의 가장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낭가사상’은 민족사상의 기원, 전승, 기능을 구명하면서 국권회복을 위한 근대적 자주독립정신을 세워 민족의 진로와 시대정식을 밝히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선생이 남긴 『조선상고사』 등 수많은 저작물들은 오늘날 역사 연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단재는 결기 그 자체라 말할 수 있겠다. 선생은 일찍이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을 뿐 아니라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의 후반부 원고 집필을 도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방에 알리기도 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서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 행위를 통렬히 비판하는 논설과 사설들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이 시기 애국심과 자강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해외 역사 서적을 번역(『이태리 건국 삼걸전』)하고 한국 사상의 영웅전(『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선생은 망명길에 올라서도 『대동공보』에 관여하고 『권업신문』 주필로도 활약했다.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항일신문 『신대한』을 창간하기도 했으며, 개인잡지 『천고』를 발행, 중국인과 한국인을 결속하는 항일투쟁과 한국 고대사 연구에 열정을 불태웠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단재는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한 혁명가였다. 「의열단선언문」으로 불리는 「조선혁명선언」은 일제 시대 수많은 독립 선언문 중에서 내용과 문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생은 이 선언문에서 폭력에 의한 민중의 직접혁명을 부르짖었다. 또한 고급 밀정 김달하를 처단했던 다물단의 선언문도 집필했으며, 단원들과 함께 기거하며 조선사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스트로서의 단재는 “지배계급이 민중들을 억압하거나 민중들을 속여 자신들의 지배에 복종시키고 혁명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이용하는 지배계급의 일체의 지배기관이나 수단은 파괴되고, 지배계급이 제정한 일체의 사회제도도 철폐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사유재산제도 부정되고 모든 재화의 공유제가 실시되어 일체의 착취가 없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선생의 이러한 사상적 변화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지만 민족주의의 발전된 단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책에서는 선생에 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과 비판들을 실어 아나키스트 신채호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단재 선생이 서거한 지 70여 년이 지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친일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늦은 감은 없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역사를 청산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은 “죽어라 독립운동해서 나라 찾았더니 친일파에게 진상한 꼴”이 되었다고 통탄한 바 있다. 자칫 이번 청산 작업에서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엉뚱한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란다. 이것은 선생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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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류성룡의 징비
박기현 | 가디언 | 2015-01-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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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류성룡의 징비
박기현 | 가디언 | 2015-01-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7년 임진왜란의 전시 수상 류성룡이 남긴 반성과 교훈!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도망가려는 선조를 붙잡고, 이순신·권율을 천거하여 왜적을 막아냈으며, 지원군으로 온 명군의 온갖 횡포와 조선 분할 획책을 저지하여 조선의 사직을 지켜낸 류성룡. 그럼에도 국정 책임자로서 처참한 전란을 막아내지 못한 죄인임을 자처하며 후세를 위해 《징비록》을 남긴 이 땅의 진정한 위정자 류성룡, 그의 뼈아픈 반성과 교훈이 400년이 지난 지금 더 크게 울리는 것은 왜일까? 역사의 홀대에도 묵묵히 빛나는 조선의 수호자 류성룡,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에 《징비록》을 남긴 진정한 위정자. 임진년(1592년) 4월 13일(음력),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를 내세우며 20만 정예 병력을 파병하여 조선을 파죽지세로 유린했다. 부산성과 동래성에서 잠깐 교전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이 막아섰지만 불과 반나절을 지체했을 뿐 왜군이 한양까지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20일도 안 되었다. 맨몸으로 걸어도 힘든 천 리 길을 무장한 병력이 이런 속도로 이동했다는 것은 불가사의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임금 선조는 평양성 어전회의에서 백성과 사직을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갈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신료가 선조의 말에 동조하던 그때 단 한 사람, 류성룡만이 막아선다.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이 땅은 우리 땅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선조와 달리 민심 이반까지 염려해 이 같은 고언을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7년, 조선의 국토와 백성이 처절하게 유린당하는 현장에는 영의정이자 도체찰사이며 훈련도감 제조이기도 했던 류성룡이 있었다. 전시 행정 수반으로, 군 최고사령관으로, 국방부 장관으로 전쟁과 행정 그리고 외교까지 1인 3역을 해낸 것이다. 《류성룡의 징비》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조명한 책으로 역사적 사실과 함께 류성룡의 활약상, 즉 초유의 국난을 온몸으로 치러야 했던 치열한 세 가지 전쟁을 여실히 보여준다. 건국 후 200년 동안 전쟁이 없어 해이해진 조정과 무너진 군을 추스르며, 한편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여 16세기 당시 세계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침략자 왜군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한 것이 첫 번째 전쟁이다. 국정 책임자로서 지원군으로 참전한 명나라 대군에 군량을 조달하고, 그들의 온갖 횡포를 감내해야 했으며, 조선을 전쟁의 울타리로 삼으려는 저의를 간파하고 ‘조선 분할 획책’을 저지한 것이 그 두 번째 전쟁이다. 전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대부와 당쟁을 일삼으며 백성을 돌보지 않던 뿌리까지 썩은 조정과의 전쟁이 세 번째이다. 기실 왜나 명과의 전쟁보다 더 힘든 싸움이 바로 썩은 조선 조정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류성룡은 자신도 사대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면천법 제시, 사대부들도 군에 입대해야 하는 속오법 시행, 소금 전매법 완화 등 조선 사회를 지탱하던 사대부들의 경제적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개혁을 주저 없이 단행한다. 그 결과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실각하는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류성룡은 귀향 후에도 권력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에 매진한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해낸 영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각 이후 고향 안동 하회마을에서 전란을 막지 못한 위정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전쟁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교훈과 반성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었다. 《징비록》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전쟁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는 시대의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반복되어 그의 사후 양대 호란과 구한말 망국의 길을 걷다가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넘긴다. 치욕의 역사를 끊어내지 못한 우리에게 오늘 류성룡은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하늘이 내린 명재상’ 류성룡과 ‘백성을 사랑한 어버이 같은’ 류성룡을 한 권에서 만나다! 그동안 임진왜란을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순신 장군이나 권율 장군 정도를 떠올린다. 그들을 발탁해 적재적소에 기용하고, 7년 전쟁을 막아낼 수 있게 한 총지휘관이자 사령탑이었던 류성룡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징비록》의 저자라고 안다면 그래도 꽤 역사를 아는 사람쯤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그래서 《징비록》은 많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정작 류성룡을 연구하여 출간된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성룡이라는 인물 탐구와 그가 겪었을 당시 상황을 상상하는 과정 자체가 내게 참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난세에 스스로를 다잡으며, 헐벗은 백성을 위해, 유린당한 국토를 수복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던 진정한 참모이자, 거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자 서애 선생을 다시 한 번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고 술회한 저자는 류성룡을 더 깊이 만나기 위해 안동 하회마을을 직접 찾아 후손으로부터 기록된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도 꼼꼼히 챙겨 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모은 자료를 다듬어 각 장의 앞부분마다 생생히 살아있는 팩션으로 재구성했다. 뒤이어 앞에서 묘사한 일화의 역사적 현장 속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는 집요함을 보인다. 마치 정교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스토리는 독자에게 소설적 재미와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다. 또 임진왜란의 극적 구성을 위해 《징비록》을 연구한 저자는 맨 먼저 독자를 평양성에서 어디로 또 도망가야 할지 허둥대는 선조에게 이끌어준다. 그리고 전쟁을 감지한 류성룡의 예지력을 시작으로 임진왜란의 발발, 전쟁 중 명나라군의 군량 지원과 수많은 개혁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는 류성룡의 활약상과 전쟁이 끝나고 어이없는 모함으로 실각한 후 귀향하여 《징비록》을 집필하고 세상을 떠나는 류성룡을 마치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그려냈다.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의주까지 쫓겨 갔다가 한양에 돌아와 왜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힌 백성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어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해 군량을 푸는 어버이 같은 모습은 물론, 지방 말단직을 전전하던 이순신을 기용하여 바다를 막아내고, 천민 출신 신충원을 면천해 조령 일대의 방어를 맡기는 한편, 의병과 승병을 불러내어 전쟁을 이겨낸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명재상’ 류성룡을 만날 수 있다. 조선에 맞는 축성법을 연구해 쓴 《축성방략》을 보급하는 등 새로운 방어시스템을 구축하고, 소금 전매를 풀어 조선 경제를 활성화하고, 중강개시를 열어 국토 손실로 수급이 어려운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조처를 하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칠 정도이다. 무엇보다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내부하려는 선조와 조정 신료들을 막아 끝까지 싸우도록 한 류성룡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류성룡이 선조를 막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어느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을까. 류성룡은 당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명쾌하고 유용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한 실질적인 전시 수상이었다. 이렇듯 이 책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류성룡의 다양한 면모들을 《조선실록》과 《징비록》 등의 문헌을 통해 복원하고 세세하게 들려준다. 실록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임진왜란의 처참한 실상을 낱낱이 밝히며 백성과 국토가 유린당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위정자이자, 이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후대에는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징비록》을 쓴 깨어 있었던 지식인으로의 류성룡을 탁월하게 복원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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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화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3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2-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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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화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3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2-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사화 사화는 조선 중기 무려 네 번이나 벌어졌다. 연산군 4년인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혹은 戊午史禍), 연산군 10년인 1504년의 갑자사화(甲子士禍), 중종 14년인 1519년의 기묘사화(己卯士禍), 마지막으로 명종 즉위년인 1545년의 을사사화(乙巳士禍)가 그것이다. 연산군 13년의 재위 기간 중 두 번의 사화가 있었으니, 그 시기가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불안한 정국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마지막 사화인 을사사화 2년 뒤에는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또 한번 조정이 어수선했는데, 이 규모도 다른 사화에 못지않아 조선 시대 당시에는 ‘정미사화(丁未士禍)’라고 불렸다. 이런 사화가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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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의 성립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1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2-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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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의 성립 - 역사의 터닝 포인트 11
조한성 | 21세기북스 | 2012-12-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사건부터 바로 어제 일어난 일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이 바로 역사니까. 역사 속에는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 발명과 발견, 혁명과 개혁, 탐험과 무역 그리고 그밖의 사건들. 나비효과처럼 작은 사건이라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권을 가진 권력자가 바뀌기도 했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던 역사 속 터닝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몰랐고,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 그 터닝포인트 속으로 떠나보자. 삼국의 성립 부족 사회는 고대 국가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성립되어가는 과정이다. 혼란이 가득한 시절 한반도에 등장한 우리의 고대 국가. 삼국이 고대 국가로 탄생한 과정을 건국 설화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역사를 바꾼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읽으면 좋은 점 -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전후 상황까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을 골라 읽을 수 있다. - 짧은 글로 구성되어 이동 시간 중에 읽기에 적격이다. - 어려운 역사 암기는 이제 그만! 흐름으로 이해하는 역사 상식에 도전~!부족 사회는 고대 국가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성립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대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려면 역사적 자료들의 빈틈을 신화나 설화로 메꾸어야 하는데, 그 시작이 고구려의 주몽이었다. 우리도 삼국이 고대 국가로 탄생한 과정을 건국 설화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