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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배한철 | 생각정거장 | 2016-10-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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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배한철 | 생각정거장 | 2016-10-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화폭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꽃
옛 얼굴이 들려주는 우리 역사
우리가 몰랐던 역사와 사라진 위인들의 얼굴을 찾아
역사를 담은 옛 얼굴, 초상화로 만나는 한국사
박문수가 실제로는 암행어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적을 것이다. 퇴계 이황을 떠올렸을 때 연상하는 천 원 권 지폐 속 이황이 작가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는 초상화를 통해 교과서에는 없는 흥미로운 역사를 살펴보고, 초상화가 현전하지 않는 위인들의 얼굴을 추적해보는 책으로서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넓혀준다. 문화재 기자가 찍은 우리 초상화, 우리 한국사의 한 컷!
- 조선 최고의 재상은 사팔눈?
- 임진왜란 최고 영웅은 중국인?
-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천재 화가 정선의 숨겨진 자화상
- 사도세자를 그리워한 ‘역적의 아들’ 정조의 얼굴은?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
사진 한 장은 열 마디 말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이 없던 과거에는 초상화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텍스트 위주의 우리 사학에서 초상화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넓혀 주는 소중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초상화를 통해 조상들의 사상을 살펴보고, 초상화가 남아있지 않는 위인들의 실제 용모를 추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조선후기 최고의 재상으로 탕평책을 성공적으로 이끈 채제공의 경우 많은 초상화를 남겼는데 모두 ‘사시’다. 심지어 철종의 경우 어진임에도 불구하고 사시로 표현했다. 선조대에서 인조대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실무능력을 보여준 장만의 경우 안대를 찬 ‘애꾸’ 모습이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천연두 자국이나 사마귀도 그대로 표현했다. ‘일호불사 편시타인(一毫不似 便時他人, 터럭 한 올이라도 같지 않다면 곧 다른 사람이다)’이라는 조상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위인들의 사라진 얼굴을 찾아서
초상화가 현전하지 않는 인물들의 얼굴을 추적하는 것도 흥미롭다. 우리가 천원 권 지폐에서 보는 퇴계 이황의 초상이 작가가 창조한 상상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황뿐 아니라 충무공 이순신, 김유신, 장보고 등 많은 유명 위인들의 초상화가 전해지지 않는다. 사료가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 왕조도 마찬가지다. 조선왕조 초상화의 경우 1954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국악원으로 옮겨졌다 화재로 인해 대부분 불타버리고 말았다. 고려왕조의 초상도 왕릉에서 청동상이 발굴된 태조 왕건, 고구려 역시 대동강 지역에서 발견된 고분에 그려진 인물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15대 미천왕 정도가 전부다. 이러한 위인들의 초상이 어째서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지 살펴보고, 다양한 문헌과 후손들의 초상을 통해 생김새를 추론하는 과정은 굉장히 인상 깊다.
이순신이 언급된 문헌의 내용과 일본에 남아있는 이순신의 고손자 이봉상의 초상을 바탕으로 충무공의 얼굴을 추론하는 과정은 자못 눈길을 끈다. 천재적인 그림 솜씨로 다수의 명화를 남긴 김홍도와 신윤복의 ‘숨겨진 자화상’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황희 정승이 마냥 청렴하지만은 않았으며 박문수가 알려진 것과 달리 단 한 번도 암행어사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사라진 정조의 초상화와 숨겨진 정조의 얼굴
기록에 따르면 8점의 초상화가 제작되었지만 단 한 점도 초상화가 현전하지 않는 정조의 얼굴에 대해 흥미로운 시각이 있다. 사도세자를 모신 경기도 화성 융릉에는 능을 지키는 문인석(文人石)이 있는데 여느 문인석과 다른 형상이다. 눈과 입술 등 굉장히 사실적인 안면묘사를 두고 유난히 효심이 깊었던 정조가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문인석에 형상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봉황이 새겨진 금관도 쓰고 있고 무엇보다 문인석의 이목구비가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 어진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이 설득력을 더한다. 정조가 아버지를 모신 경모궁(현재 서울대 의대 자리에 있던 사당) 안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항상 부친의 사당을 바라보게 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과연 융릉의 문인석은 정조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이 맞을까?
이 책은 공개된 초상화, 그리고 공개되지 않았던 초상화를 총망라하며 위인들의 실제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이처럼 우리가 몰랐던 역사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초상화를 통해 살펴보는 역사는 역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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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으로 산다는 것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17-03-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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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으로 산다는 것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17-03-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한 비결은 바로
국가의 성패를 결정지었던 왕의 리더십에 있다! 조선의 왕들을 통해 본 현재의 리더십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자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자! 한 나라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예나 지금이나 공통점이 있다 조선의 왕들을 통해 바라본 오늘날 리더의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비선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시점이다. 현재의 정치적 충격으로 인해 역사 속 리더십은 어떠했을지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가까운 시대인 조선 왕조에서 최고의 지위를 갖고 있던 왕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다. 조선왕조는 500년 이상 장수한 왕조고, 27명의 왕이 재위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왕들은 체제의 정비가 요구되던 시기를 살기도 했고, 강력한 개혁이 요구되던 시기를 살기도 했다. 태종이나 세조처럼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강력한 왕권을 확립해야 했던 왕, 세종이나 성종처럼 체제와 문물의 정비에 총력을 쏟았던 왕이 있었고, 광해군이나 선조처럼 개혁이 시대적 요구가 되던 시대를 살아간 왕도 있었다. 선조와 같이 전란을 겪고 수습해야 했던 왕, 인조처럼 적장에게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왕, 원인은 달랐지만 부왕의 복수와 명예회복을 위해 살아간 효종과 정조도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시대적으로 요구하는 바가 달랐고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즉위했지만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신하들과 학자, 그리고 왕의 통치력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국가를 합리적으로 이끌어 갈 임무를 부여받았다. 왕들은 때로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선보고, 때로는 왕권에 맞서는 신권에 대해 대응도 하고 조정자의 역할도 했다. 모두들 백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대동법과 균역법처럼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 정책들도 있었고, 무리한 토목 공사와 천도처럼 실패한 정책들도 있었다. 체제의 안정, 변화와 개혁의 중심에 왕의 리더십이 있었고, 왕의 리더십은 국가의 성패를 가름하는 주요한 기준이었기에 왕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매경이코노미〉에 연재한 ‘왕으로 산다는 것’ 칼럼의 전체 내용을 모은 것이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의 27명 왕 대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 왕의 가족, 왕이 된 후의 정책, 조언을 받은 참모, 왕의 라이벌 등 왕의 주변 인물이나 주요한 사건들의 면모를 모두 담으려고 노력했다. 조선의 왕은 고대나 고려의 왕들에 비해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지는 못했다. 제도가 정비되면서 왕을 견제하는 장치도 적절히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왕권과 신권의 문제는 결국 왕권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느냐에 따라 갈등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했다. 세종과 같은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뜻에 맞게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었던 측면이 크다. 조선왕조는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경험했다. 크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국제 전쟁에서부터 왕의 계승을 둘러싼 분쟁, 각종 역모 사건, 북벌과 같이 시대적 소명으로 떠오른 난제들이 조선의 왕 앞에 닥쳐왔다. 세종 시대에 추진된 공법과 광해군 시대의 대동법, 영조 시대의 균역법, 정조 시대의 신해통공과 같이 역사의 획을 그은 각종 경제정책들을 최종 결정하는 것도 왕의 몫이었다. 안정기에 국가 체제를 완성해갔던 왕, 보수와 개혁의 갈림길 에서 역사적 선택을 요구받았던 왕, 신하의 나라로 전락하는 조선을 막기 위해 왕권을 유지하려했던 왕, 전란의 소용돌이를 맞서거나 피해가야 했던 왕…. 이처럼 조선의 왕들은 안정기와 격동기를 막론하고 자신의 정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최고결정권을 가진 막중한 책임을 다하는 위치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을까? 왕조 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도래했다고는 하지만, 리더십의 측면에서는 과거나 현재나 한 나라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공통점이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처럼, 우린 역사에서 현 시대의 난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정책의 추진, 여론의 존중, 도덕과 청렴성,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 언론의 존중 등 전통사회 왕들에게 요구되었던 덕목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이 책을 통해 조선 왕들의 본받아야 할 업적과 태도, 반면교사 삼을 실패한 면모들을 역사 속으로 들어가 다양하게 살펴본다. KBS〈역사저널 그날〉KBS라디오〈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에 출연한 사학자 신병주 교수가 왕의 정치를 말하다! 조선 왕의 업적과 발자취를 통해 이 시대 참 리더십이 무엇인지 묻다 이 책은 정통 역사학자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가 500여년의 조선왕조 역사를 8개의 분류로 나누어 소개한다. 먼저 ‘제1장 창업과 수성, 나라를 세우고 지키다’에서는 조선 건국 초기 태조부터 성종까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태종이 청계천을 만들게 된 배경과 큰 업적을 쌓은 세종의 인간적 시련들, 성종이 왕비에게 사약을 내린 사연 등을 알 수 있다. ‘제2장 사화와 당쟁, 갈등과 반복의 시대’에서는 연산군부터 선조 시대 이야기를 소개하는데 연산군의 흥청망청한 독재정치부터 명종의 어머니이자 강력한 수렴청정을 했던 문정왕후, 선조가 즉위하자마자 시작된 당쟁에 대해 알아본다. ‘제3장 왜란과 호란의 시대’에서는 임진왜란 때 피난 간 선조부터 정통성 시비에 발목 잡힌 광해군의 빛과 그림자, 반정에 직접 참여한 인조 얘기와 두 차례 겪은 호란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제4장 북벌과 이념의 시대’에서는 효종의 즉위와 북벌, 하멜의 표류 이야기와 나선정벌에 대해, 그리고 존재감이 약했던 현종에 대해 살펴본다. ‘제5장 부국과 중흥의 시대’에서는 14세에 왕위에 올라 카리스마 리더십을 선보인 숙종과 상평통보의 유통, 영조의 즉위와 탕평책 실천한 이야기, 영조가 다시 펼친 청계천 준천 사업에 대해 알 수 있다. ‘제6장 개혁, 정치와 문화의 부흥’에서는 정조의 즉위와 규장각 이야기, 그리고 편찬 사업과 문화 중흥정책 이야기를 알아보고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까닭과 화성 행차 이야기, 경제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신해통공 이야기를 알아본다. ‘제7장 시련, 나라가 기울고 백성이 신음하다’에서는 개혁군주 정조의 승하 이후로 순조의 즉위와 세도정치의 시작, 헌종과 낙선재 이야기, 강화도령 철종이 왕이 된 이야기와 진주 민란 이야기를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제8장 개항과 근대’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이 왕이 된 배경과 고종과 명성황후 이야기, 대한제국을 세우게 된 배경과 강제 퇴위를 당한 고종, 그리고 마지막 황제 순종과 조선 왕실의 마지막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며 길고 긴 조선 역사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왕을 중심으로 소개한 조선의 500년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 시대와 너무나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결국 어느 시대나 뛰어난 리더십과 부족한 리더십, 충신과 간신, 세력을 잡고자 각종 비리와 음모를 꾸미는 모략가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업적과 너무나 수치스러운 치적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멀고도 가까운 조선 왕들의 정치와 리더십, 역사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갖고 있는 현시대를 향한 갈증에 대한 해답을 자연스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찬란하면서도 암담했던,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던 조선 왕들의 500년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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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여인들
차상찬 | 온이퍼브 | 2016-11-0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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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여인들
차상찬 | 온이퍼브 | 2016-11-0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동방의 해동염사(海東艶史)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역사 속 재자가인의 역사와 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그들 희로애락을 테마별로 서술한 것으로 사학자며 언론인이었던 차상찬의 ‘해동염사’를 편역한 것이다.
궁궐의 여성에서 평범한 여성, 이름난 기생까지 절개, 충절, 보은 등 온갖 에피소드 등 알려지지 않은 이야깃거리를 적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였으며 가장 추한 여자는 누구였는지~열녀와 효녀 등 수십 명의 아름다운 미인들의 흥미진진한 숨겨진 후일담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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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상고사 -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저/ 김종성 역 | 역사의아침 | 2015-02-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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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상고사 -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저/ 김종성 역 | 역사의아침 | 2015-02-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지난 1천 년간 역사가들이 감추고 축소한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다!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인 신채호가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으로, 신채호가 순국한 지 12년이 지난 1948년에 출간되었다. 단군시대부터 백제부흥운동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제1편 〈총론〉에서 제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까지 모두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설립했다. 훼손된 단군의 시대를 재조명함으로써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으며, 동부여와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두 나라를 우리 민족의 근원으로 포함시켰다. 우리 고대사의 참모습을 찾고자 노력한 신채호의 역작, 현대적 해설과 주석으로 새롭게 탄생하다! 지난 1천 년간 역사가들이 감추고 축소한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다! 신채호는 ‘역사는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상고사는 ‘작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라 규정한다. 특히 묘청이 유교도 김부식에 패배한 이후 이 땅에 유교도가 득세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중국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춰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이는 신채호가 ‘유교도 김부식’과 그가 서술한 《삼국사기》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또한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는 안정복의 의견에 대해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밝힌 까닭이기도 하다. 신채호는 그 당시 “현존하는 서적들을 갖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조”하여 1천 년 이상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삼국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군의 시대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서술하고, ‘대중국 투쟁’의 선봉에 선 고구려의 역사를 중요하게 기록한 것 등은 ‘작자의 의도로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한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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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시대 살아보기
반주원 | 제3의공간 | 2017-05-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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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시대 살아보기
반주원 | 제3의공간 | 2017-05-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서민들의 실질적인 일상을 똑 소리 나게 들려주는
한국사 고수 반주원의 진짜 조선시대 ‘역사 읽기’
그동안의 역사서는 궁중의 정치적 사건, 왕들의 행적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일반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왕조 중심의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사에 초점을 맞추어 시대별 구성이 아닌 주제별 구성으로 정치적 견해나 교과서적 정의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실질적인 풍경을 다루고자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궁중 난투극 대신 조선시대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주 사소한 일상사에 초점을 맞춘다. 실질적으로 생활의 영역에서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하여 선조들은 어떻게 씻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놀며 살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실질적으로 조선시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특징인 유교사상의 엄격함과는 또 다른 색다른 측면이 있었음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역사 하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고리타분한 왕조와 세력, 정치적 사항을 가급적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문화적 차원으로 접근하여 실생활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윽하고 친근해서 그리운 이의
살 냄새 같은 삶의 자취, 조선 생활 실록
할급휴서와 이혼의 기록, 화려한 사라능단과 관자와 풍잠, 태생이 다른 마을 이태원, 한류의 주역 김명국과 조선통신사, 낯선 이방인 하멜과 다블뤼의 시선에 이르기까지… 진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대중의 것인지 특별한 지배층의 것인지, 그 뜨거운 논쟁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쉼 없이 이루어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업적도 다수의 대중이 생활 속에 정착시켜 함께 할 때만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삶의 자취를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생활사라는 부분은 특별하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마치 숨 쉬는 공기처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정보를 담뿍 담고 있다. 진한 향수의 인위적인 향내는 아니어도 그윽하고 친근해서 그리운 이의 살 냄새 같은 분야가 생활사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가깝고도 먼 시대로 생각했던 그 시대, 남존여비사상에 묶인 고리타분한 성리학 국가라는 선입견으로 바라보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우리처럼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절망하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이혼과
결국은 성리학의 규범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던 열녀문
건국 당시만 해도 조선은 여자의 경우에도 이혼과 재혼을 금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민이 이혼을 원할 경우에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을 쓰곤 했는데 ‘사정파의’와 ‘할급휴서’가 그것이다. ‘사정파의’란 특별한 이유가 있어 더 이상 부부로 살 수 없다고 생각되면 두 부부가 마주 앉아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사정을 말하고 결별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정말 쿨하기 그지없다. ‘할급휴서’는 칼로 저고리 앞섶을 베어서 그 조각을 상대에게 이혼의 표시로 주고 상대방이 그것을 받으면 이혼을 수락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할급휴서’의 경우 잘라낸 옷자락이 날개를 편 나비 모양과 같다고 하여 “나비를 주고받았다”라는 말로 이혼에 동의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혼에 동의하는 표식이라면 이것 또한 일종의 이혼합의서와 같은 것인데 하늘하늘 자유롭고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나비를 떠올리는 조상들의 운치 있는 행동과 정서는 삶의 아픈 순간에도 멋들어지게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것이다. 일반민들은 이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혼을 선택한 후에도 경제적 이유로 집을 나누어 거주지를 분리하지 못하고 같은 집, 심지어 같은 방에서 구역을 정해 동거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조선이 점차 성리학의 도를 국가 차원의 정치 규범으로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여자라면 누구나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을 가면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고 나면 자식을 따르도록 강요했던 여성에 대한 삼종지도가 강조되었다.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점차 생활 전반의 규율로 확대해 나가던 조선이라는 국가 입장에서는 여성이 한번 혼인을 했다면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다시 시집가지 않고 수절을 하는 것은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절을 지키는 바른 아내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성리학의 대표적 규범과 도리가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시각화하여 입증하는 훌륭한 사례였다. 결국 생계로서의 재혼에서 보다 자유로운 양반 사회를 시작으로 여성이 재혼을 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와 장치가 만들어지며 강조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일반 양인 여인에 이르기까지 관습적으로 칭송받을 만한 일로 정착되어 갔다.
조선은 건국 이후 차츰 남녀의 재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분화되면서 여자의 재혼이나 삼혼을 공식적으로 막아줄 방법이 명확하게 없던 시절에 이를 부정하고 음탕한 행동으로 몰고 자식의 생업과 출세와 연루시켜 불이익을 주는 방법을 통해 우회적이지만 치명적인 제재를 가한 셈이다. 초기의 조선은 직접적으로 개가를 금지하기보다는 개가한 여인의 자녀에게 사회적 제약과 불이익을 준다는 족쇄를 채워 여인 스스로 재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인데, 이러한 제재는 아들이 관직에 등용되고 벼슬길에 들어서는 것이 최고의 영예이자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전부였던 양반가에 국한되어 실효성이 발휘될 수밖에 없는 한정적인 제재였다.
조선은 여자의 개가를 직접적으로 금지하기보다 사회적 제약과 불이익을 준다는 족쇄를 채워 여자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여자에게 ‘재가는 악행이고, 수절은 선행’이라는 논리가 제도적 장치와 어우러져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기록에 의하면 건국 이후 명종 때까지 국가가 공인한 열녀의 수가 272명인데 반해 선조 이후에 접어들면 845명으로 그 수가 매우 빠르게 늘었고 급기야는 남편의 병 수발을 위해 제 살을 잘라내어 먹이거나 남편이 죽자 슬픔과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고 죽었다는 식의 스토리가 가미되며 열녀를 추종하는 분위기는 날로 심화된다.
밤낮으로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던 조선시대 한류 바람과
이방인의 눈으로 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조선
‘한류’라는 낯선 말이 여기저기에서 폭죽 터지듯이 들려오기 시작하던 무렵, 텔레비전을 통해 중국과 일본 내에서 우리 드라마와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한류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취재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류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던 것일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조선의 역사 속에도 우리의 문화에 열광했던 주변 국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17세기 중반, 인조와 효종 시절을 거치며 조선 중기를 풍미한 이름난 도화서 화원 김명국은 출생이나 죽음에 대해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일본을 오가며 특색 있는 그림을 그려서 큰 인기를 누렸던 인물로 유명하다.
김명국은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과의 교류가 재개된 이후 총 12차례에 걸쳐 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왔지만 같은 화원이 두 번이나 통신사와 함께 한 경우는 김명국이 유일할 뿐만 아니라 이중 두 번째 일본 방문은 일본으로부터 김명국 같은 사람이 오기를 바란다는 특별한 요청이 있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일본의 특별한 요청은 김명국의 인기가 당시 일본에서 얼마나 컸을지 조금은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통신사에 김명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질 때마다 일본의 귀족과 관리들이 김명국의 그림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곤 했다. 통신사가 직접 적은 기행문인 《해사록》의 한 부분에는 1636년 김명국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김명국의 그림을 청하는 일본인들이 밤낮으로 구름 떼처럼 모여드는 바람에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던 김명국이 지친 나머지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한 외국인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하멜과 《하멜 표류기》를 떠올릴 것이다. 하멜뿐만 아니라 다블뤼, 쥐베르 등 그들에게는 낯선 나라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들 이 있었다. “갑곶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의 풍경은 특히 아름다웠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곧게 하늘로 올라가는 시간이면 아름다운 논과 밀밭, 옥수수밭, 무밭,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숲과 촌락들이 서서히 어둠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삐뚤빼뚤 이어가며 경계를 짓고 있는 논밭의 모습은 마치 아이들이 한 조각 한 조각 맞추어 놓은 퍼즐처럼 보여서 우리네 평야가 보여주는 직선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있다. … 그리고 더 멀리 겹겹이 포개진 산들의 명암과 안개 자욱한 그 사이의 계곡들은 따뜻하고 행복한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조선)에서 우리가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감탄하며 볼 수밖에 없는 사실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해도 어디든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앙리 쥐베르의 글에 드러난 조선의 모습은 우아하고 학구적이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독일의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가 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여행기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진솔하게 담아낸 책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뀐 후의 기록이긴 하지만 이 땅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1911년 2월 17일부터 6월 24일까지 129일간 직접 여행한 기록을 담아 1915년 펴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사람과 우리나라 자연을 가장 깊이 있게 파악한 외국인의 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인은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연을 꿈꾸듯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 산마루에 진달래꽃 불타는 봄이면,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진달래꽃을 응시할 줄 안다. 잘 자란 어린모가, 연둣빛 고운 비단 천을 펼친 듯 물 위로 고개를 살랑인다. 색이 나날이 짙어졌다. 한국인은 먼 산 엷은 푸른빛에 눈길을 멈추고 차마 딴 데로 돌리지 못한다. 그들이 길가에 핀 꽃을 주시하면 꽃과 하나가 된다. 한국인은 이 모든 것 앞에서 다만 고요할 뿐이다. 그들은 꽃을 꺾지 않는다. 차라리 내일 다시 자연에 들어 그 모든 것을 보고 또 볼지언정, 나뭇가지 꺾어 어두운 방 안에 꽂아두는 법이 없다. 그들이 마음 깊이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연에서 추상해낸 순수하고 청명한 색깔이다. 그들은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색상을 그대로 활용한다. 무늬를 그려 넣지 않고,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살린 옷을 아이들에게 입힌다. 따라서 이 소박한 색조의 민무늬 옷들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원숙하고 예술적이다.”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 글을 쓴 독일인 신부의 시선이 얼마나 따뜻하고 우호적인 것인지 가슴이 바닥부터 훈훈해지는 느낌이 절로 든다.
‘들돌들기’, ‘손더듬’ 등 조선시대의 성인식과
그 시대에도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것이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매달이 청춘남녀들의‘데이’로 가득 차 바쁘게 돌아간다. 2월의 밸런타인데이와 3월의 화이트데이는 이젠 고전적인 기념일로 젊은이들에겐 전통의 명절 수준이고 이름도 다양한 기념일들이 자본주의 상술로 중무장한 채,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중에서도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성년의 날’이라 하여 본래는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주고, 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지만 실제로는 꽃다발, 향수, 키스라는 낭만적인 조합으로 포장되어 본연의 의미가 가려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도 발렌타인데이와 같이 사랑의 징표를 나누는 날과 성년의 날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념일이 있었을까? 오늘날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대부분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단지 모양과 형식과 사용하는 도구에서 차이가 날 뿐이었다.
조선시대 성년의 날에는 ‘관례’라는 이름의 성인식이 치러졌다. 사실 관례가 정확하게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삼국사기》에도 성인식이 치러졌음을 알려주는 구절이 보이고 《고려사》기록 속에도 고려 광종이 아들을 위해 관례를 치르고 연회를 베푼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전통의 뿌리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 관례는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정신과 육체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15~20세 전후에 행해지는데, 왕실과 양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혼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결혼하지 않은 자라도 관례를 마치면 성인 대우를 해주었다.
가진 것이 없으니 화려한 의식을 치르고 연회를 베풀지는 못했지만 일반민들은 ‘들돌들기’라는 의식으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음을 주변에 알리곤 했다. ‘들돌들기’는 마을 어귀 성황당 나무 아래에 크고 둥근 바위를 두고 그 돌을 들면 어른, 들지 못하면 아이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농업이 국가경제의 기반을 이루는 조선에서 제대로 된 성인 남자 한 명의 노동력으로 인정받느냐 아니냐는 생계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가정을 꾸려 가장의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의 여부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육체적인 힘을 인정받는 것이 곧 성인으로서의 인정을 받는 일이었다. 실제로‘들돌들기’를 해낸 자와 아닌 자는 품삯을 지급할 때에도 차등을 두었다.
일반민 여자의 경우는 ‘손더듬’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15세 전후의 딸을 동네 여인들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길쌈 두레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하고자 날을 잡아 음식을 준비해서 동네 어른들에게 대접하는 것으로 아직 어려서 손으로 하는 섬세한 길쌈에 서툰 딸이 이제 본격적으로 성인 여자처럼 일을 할 테니 잘 가르치고 이끌어 달라는 의미를 담은 행사였다. 남자의 ‘들돌들기’처럼 여자도 ‘손더듬’을 하고 나면 성인 여성 노동력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었다.
성인식인 관례를 치르고 본격적으로 몸도 마음도 한층 성숙해질 즈음의 젊은이들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사랑에 눈을 뜨기 마련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봄을 알리는 개구리의 몸짓이 선명한 ‘경칩’(양력 3월 5일경)은 조선시대의 밸런타인데이와 같은 역할을 하며 연심을 품은 상대방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특별한 날로 애용되곤 했다. 단단한 껍질 속에 씁쓸한 맛이 나는 은행열매가 땅에 떨어져 싹을 제대로 틔우기만 하면 천 년을 가는 은행나무로 성장하는 것처럼 헤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사랑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은행을 선물한 것이다. 은행의 한자 표기는 ‘銀杏’로 은빛 살구라는 뜻이다. 작고 소중한 ‘은빛 살구’는 사랑의 징표로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요즘 일부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몸에 문신으로 새기듯이 조선시대에도 문신으로 사랑을 증명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새기는 문신을 ‘연비’라고 불렀다. 《성종실록》을 보면 양반가의 유부녀임에도 여러 남자와 정을 통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어우동(어을우동)을 잡아들였는데 팔뚝에 정을 통한 사내들의 이름이 가득하게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고 그 이름이 넘쳐나서 등에도 문신이 있어서 그들을 잡아들이고 어우동은 교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렇듯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연비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조선시대에 문신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간통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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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조 스캔들
신명호 | 생각정거장 | 2016-10-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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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조 스캔들
신명호 | 생각정거장 | 2016-10-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우리가 몰랐던 조선왕조 500년 최악의 스캔들!
왕과 왕실 사람들이 감추고 싶었던 23가지 욕망과 암투
역사 기록을 왜곡한 정조, 무당에게 미혹된 명성황후…
욕망과 음모가 가득한 조선왕조 민낯의 역사 공개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 사람들의 일과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의 이야기도 지나면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자고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재미와 교훈을 얻곤 한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깊이 알게 되면 그를 이해하게 되고, 또 그 이해가 깊어지면 좋아하게 되고 심지어는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조선 시대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조선 왕실 사람들의 스캔들을 다루었다. 스캔들은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나쁜 이야기이다. 하필 스캔들을 다룬 이유는 그들의 스캔들을 통해 보고 듣는 이들에게 재미와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너나없이 실수하고 잘못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배움을 통해 그 실수와 잘못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비극을 부른 세종의 막내아들 편애, 기록 문화를 중시했지만 역사 기록을 왜곡한 정조, 세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영조의 금주령, 격한 질투심 때문에 성종에게 이혼당한 폐비 윤씨, 무당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기울게 한 명성황후……이는 우리가 흔히 알던 훌륭한 왕, 고고하고 품위 있는 왕실의 모습이 아니다. 적나라한 이런 모습은 감추고 싶어 했던 비화인 것이다. 비화를 통해 우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교훈을 타산지석 삼아 새롭게 살 수 있다. 이 책에서 주고자 하는 교훈과 메시지는 무엇일지 들여다보자.
조선왕실사 전문 학자가 풀어내는
감추고 싶던 왕실의 23가지 뒷이야기
《조선왕조 스캔들》에서는 조선의 어리석은 군주와 탐욕에 빠진 왕비, 어리석은 왕자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비화 23가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 비화를 바탕으로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깊은 뜻과 그 이치를 해설한 책《대학연의大學衍義》의 내용을 소개하며 메시지를 전한다. 제1장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인 군주들〉 편에서는 나라를 전쟁터로 만든 이성계의 어리석은 복수심, 주색에 빠져 사람의 도리를 잊고 한글을 금지한 연산군, 조상 무덤을 도굴당해 거짓으로 복수한 선조, 기록을 중시했지만 왕실 기록을 왜곡한 정조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제2장 〈왕과 세자, 그 지독한 부자의 악연〉 편에서는 조선 시대 최고의 바보 왕자 제안대군, 강제로 이혼 당한 겁쟁이 중종, 조카 인조의 왕권에 도전한 삼촌 흥안군, 세 형제의 비극을 불러온 효종의 우애, 왕이 되고 싶었던 고종의 이복형들, 여종을 권력의 실세로 만든 정희대비와 인수대비, 성종에게 이혼 당한 폐비 윤씨, 재물을 탐한 인목대비 김씨, 굶어 죽은 광해군의 왕비와 세자빈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지막 장은 제5장 〈외세 앞에 무기력했던 지도자들〉 편에서는 역술가에게 빠져든 결단력 약한 고종황제, 무당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기울게 한 명성황후, 친일 혁명가 박영효와 그가 일으킨 갑신정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처럼 조선왕조 500년 간 왕과 왕비, 왕자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실수와 잘못들을 반복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우리 또한 역사 속 왕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욕망과 모략 속에서 살고 있다. 다른 역사책에선 볼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들을 통해 타산지석 삼을 만한 중요한 교훈들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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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역사를 바꾼 왕들의 부부싸움
이성주 | 애플북스 | 2017-09-1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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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역사를 바꾼 왕들의 부부싸움
이성주 | 애플북스 | 2017-09-1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을 만나는 또 다른 시선! 최고 권력 앞에서 그들은 부부인가, 동반자인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부부생활은 평탄하기만 했을까?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와 그의 반려자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공식 기록 속에서 이들의 부부생활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밀한 부부간의 문제이기에 쉽게 그 기록을 확인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당대의 기록자들은 이 내밀한 부부생활을 가감 없이 기록했고, 조금 예민한 문제에 있어서도 충분한 힌트와 그 다음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들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았다.
하지만 왕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사생활을 이렇게 공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얼마나 숨 막혔을까? 사람이기에 ‘질투’나 ‘분노’, ‘애정’의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결혼이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란 의미보다는 가문대 가문의 결합이며, 남녀 간의 애정의 결합 이전에 남녀관계의 공식적인 선언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여기에 ‘왕’과 ‘왕비’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진다면, 이들의 부부생활은 어떠할까?
실록을 통해 확인한 결과 그들은 왕과 왕비이기 이전에 남편과 아내로서의 삶을 살았고, 남들이 보기에 ‘막장’이라 불릴 만한 상황을 그대로 노출했다. 다만 일반적인 부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케일’이 달랐다는 정도다. 부부싸움이 국가 단위의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고, 반대로 정치적 쟁점이 부부생활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 책은 조선의 일곱 왕의 역사를 부부의 싸움을 통해서 알아봄으로써 인간적인 왕과 왕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은 물론, 역사적 사건의 배경까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개념의 역사 대중서이다.
▶ 이 책은 2013년에 출간된 《조선의 운명을 결정한 왕들의 부부싸움》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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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청소년을 위한 주제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송영심 | 팜파스 | 2016-09-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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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청소년을 위한 주제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송영심 | 팜파스 | 2016-09-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실록 기사로 조선을 만나다
조선왕조실록이라 하면 방대한 내용과 어려운 한자와 고어체가 떠올라 접근하기 쉽지 않다. 배경 지식이 될 만한 한국사 공부가 되어있지 않으면 실록 기사를 접한다 해도 제대로 이해하긴 어렵다. 하지만 조선 왕조 500여 년의 기나긴 역사가 꼼꼼히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한번쯤은 꼭 읽어보아야 할 내용임엔 틀림없다. 자그마치 1707권으로 이루어진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순히 지배층에 대한 기록만 담긴 것이 아니라 조선을 살다간 민중들의 생생한 삶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읽기 어렵기에 이 책에서는 현직 역사교사인 저자가 방대한 실록 기사들 중에서 청소년이 알아두면 좋은 핵심 주제별로 직접 추려 소개하고 또 설명한다. 파란만장했던 정치사의 뒷이야기와 궁궐의 여성들의 이야기, 민중들의 사회사와 종교, 문학, 여성들의 출산, 반려동물, UFO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조선사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직접 해당 실록 기사를 읽어보며 선조들의 생각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역사 지식까지 쉽고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어 교과서에서는 얻을 수 없는 풍부한 역사 공부가 가능하다.
조선왕조 500년을 담은 1707권, 6400만 자의 가치
조선왕조실록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 왕조에 대한 관심은 꽤 꾸준하다. 이전 왕조들에 비해 사료나 유물, 유적을 자주 접하기도 하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된 조선 시대 배경 사극들의 인기도 높다.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책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으로 꼽는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의 방대한 분량과 빽빽하게 채워진 어려운 내용을 마음 편히 읽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정치사 위주의 내용보다는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진짜 조선 사람들의 삶과 사상, 문화를 풀어낸 책을 만들었다. 현직 중학교 역사교사인 저자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을 모두 살피며 조선을 나타내는 핵심 주제에 알맞은 기사들을 추려냈다. 특히 청소년들이 교과서로 배우는 암기식 공부로는 알기 어려운 조상들의 실제 삶과 관련한 주제들도 포함시켰다. 정치사, 문학, 여성, 종교, 사회사, 여성의 출산, 천문학 등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주제에 맞는 실제 실록 기사들을 읽어볼 수 있도록 했다. 기사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관련 조선사 지식까지 함께 알려주어 쉽고 재미있게 ‘조선 사회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조선 시대의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
살아있는 조선으로 떠나는 여행
조선을 떠올리면 텔레비전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근엄한 왕과 신하들, 전쟁, 암투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청소년들은 이런 드라마 외에는 조선사, 아니 한국사 자체를 접하거나 깊게 공부할 기회가 더욱이 없다. 역사라 하면 딱딱하고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마음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에도 오늘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삶이 존재했다. 조선 사람들에게도 먹고 사는 직업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으며, 반려동물도 키웠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살았다. 그런 조선 백성들의 일상을 왕조의 기록으로만 여겼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왕과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궁녀, 기녀, 무당, 노비 등 조선을 이루고 살아갔던 모든 이들의 삶이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담겨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방대한 분량과 어려운 고어체로 되어 있는 실록 기사들이기에 일반인들이나 청소년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에 저자는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국역 기사 내용을 일일이 살피어 주제에 맞는 기사들을 추려냈다. 기사와 더불어 그에 맞는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하고 그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생각거리들도 함께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직접 실록 기사를 읽으며 조선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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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통한국사 1 (개정판)
김상훈 | 다산에듀 | 2015-10-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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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통한국사 1 (개정판)
김상훈 | 다산에듀 | 2015-10-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한국사가 한 손에 잡히는
최고의 스토리텔링 역사 입문서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세대를 위한 살아 있는 역사 더욱 새로워지고 업그레이드된 2015년 개정판! 그동안 우리는 한국사를 암기하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한국사를 세계사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따로따로 이해했다. 역사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진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통한국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한 문장과 용어를 통해 한국사를 재미있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세계사와의 연계를 통해 한국사를 세계사 속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 한국사를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통합적으로 인식해야 역사 자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역사를 오롯이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5만 독자가 검증한 역사 분야 대표 스테디셀러 수능,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무원한국사를 위한 최적의 역사교양서 「통 역사」 시리즈는 2009년 『통세계사』의 출간으로 시작된 역사 입문서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따로따로 외우기만 하던 역사를 통으로 자연스레 이해하게 하는 서술방식에 모두가 매료된 것이다. 특히 2012년, 우리 역사를 다룬 『통한국사』를 펴내며 성인과 청소년 모두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역사 입문서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12년 교과과정 개정으로 청소년들에 대한 역사 교육이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역사 분쟁이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는 요즈음에는 일반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바로세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통한국사』는 시민들은 물론이고 청소년들도 반드시 알아야할 역사를 생생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중립적으로 서술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견해를 덧붙여 스스로 역사관을 기를 수 있도록 했다. 역사에 존재하는 원인과 결과를 따라가며 서술하여 한 번만 읽어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 구성되었다. 때로는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때로는 하나로 뭉치며 이어진 한반도의 역사에 인과의 룰을 적용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쌓아 온 시간을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통한국사』의 이러한 장점을 더욱 강화했다. 최근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는 근현대사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했으며, 청소년들과 교육 관계자들을 위해 중고교 역사 교과서와의 연계성을 강화했다. 또한 독자의 독서 편의성을 고려한 더욱 새로운 디자인으로 책 전체를 새롭게 했다. 시중에는 많은 역사책이 나와 있지만 실제로 역사를 처음 입문하는 시민들이나 청소년들이 역사를 생생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 『통한국사』는 방대한 분량과 어려운 용어를 최대한 쉽게 서술하여 청소년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에서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교양서로서 많은 독자들이 역사에 쉽게 입문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부드러운 스토리텔링 풍부한 지도, 사진 자료 『통한국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성으로 쓰였다. 이런 부드러운 스토리텔링은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하도록 도우면서, 우리 역사를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통박사의 역사읽기’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관점이나 야사, 더 나아가 ‘함흥차사’, ‘흥청망청’ 등 역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를 스토리를 담아 읽을거리를 풍성하게 했다. 또한 ‘가상 인터뷰’라는 장치를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을 현대로 불러냈다. 만주벌판을 달리던 광개토대왕은 어떤 야망을 품었는지, 고려 태조 왕건은 왜 결혼을 많이 했는지, 조선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렇게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의 속마음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현해 과거를 현재로 끌어낼 수 있게 한다. 『통한국사』는 시각자료도 풍부히 담았다. 흔히 보이던 틀에 박힌 자료가 아닌, 새로우면서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사진자료들을 전면 컬러로 실어 역사를 이미지로 연상할 수 있게 했다. 다양한 지도와 도표를 통해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정리하여 수험에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한 것도 장점이다. 한국사와 세계사, 이제 따로따로 하지 말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라 저자가 이 시리즈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독특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기자인 저자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역사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인데 언젠가 낭패를 당했다. 아들이 “고려가 세워졌을 때 외국에서는 어떤 나라가 세워졌어?”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황하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우리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따로따로 배웠다. 때문에 동시대에 각 대륙별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연계시킬 수 없었다. 국사와 세계사가 연계 된 문제는 시험에 출제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선생님도 달랐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계사를 공부하는 흐름은 바뀌어야 한다. 최근에는 통합교과적인 문제 출제와 논술시험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현재까지 발전해온 것을 통째로 통으로 한꺼번에 인식할 수는 없을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집필이 시작됐다. 저자는 출간 전 3년간 시중에 나와 있는 70여 권의 역사 서적의 콘텐츠를 분해한 뒤 다시 연대기 순으로 맞춰 재구성했다. 또 동양과 서양, 한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역사발전 법칙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어도 시간이 흐르며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들은 주변 사건들과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 이 책 이 안내하는 대로 그러한 법칙들의 흐름을 통째로 이해하면 누구나 쉽게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293 |
[역사] 통한국사 2 (개정판)
김상훈 | 다산에듀 | 2015-10-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293 |
[역사] 통한국사 2 (개정판)
김상훈 | 다산에듀 | 2015-10-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한국사가 한 손에 잡히는
최고의 스토리텔링 역사 입문서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세대를 위한 살아 있는 역사 더욱 새로워지고 업그레이드된 2015년 개정판! 그동안 우리는 한국사를 암기하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한국사를 세계사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따로따로 이해했다. 역사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진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통한국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한 문장과 용어를 통해 한국사를 재미있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세계사와의 연계를 통해 한국사를 세계사 속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 한국사를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통합적으로 인식해야 역사 자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역사를 오롯이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5만 독자가 검증한 역사 분야 대표 스테디셀러 수능,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무원한국사를 위한 최적의 역사교양서 「통 역사」 시리즈는 2009년 『통세계사』의 출간으로 시작된 역사 입문서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따로따로 외우기만 하던 역사를 통으로 자연스레 이해하게 하는 서술방식에 모두가 매료된 것이다. 특히 2012년, 우리 역사를 다룬 『통한국사』를 펴내며 성인과 청소년 모두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역사 입문서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12년 교과과정 개정으로 청소년들에 대한 역사 교육이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역사 분쟁이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는 요즈음에는 일반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바로세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통한국사』는 시민들은 물론이고 청소년들도 반드시 알아야할 역사를 생생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중립적으로 서술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견해를 덧붙여 스스로 역사관을 기를 수 있도록 했다. 역사에 존재하는 원인과 결과를 따라가며 서술하여 한 번만 읽어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 구성되었다. 때로는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때로는 하나로 뭉치며 이어진 한반도의 역사에 인과의 룰을 적용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쌓아 온 시간을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통한국사』의 이러한 장점을 더욱 강화했다. 최근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는 근현대사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했으며, 청소년들과 교육 관계자들을 위해 중고교 역사 교과서와의 연계성을 강화했다. 또한 독자의 독서 편의성을 고려한 더욱 새로운 디자인으로 책 전체를 새롭게 했다. 시중에는 많은 역사책이 나와 있지만 실제로 역사를 처음 입문하는 시민들이나 청소년들이 역사를 생생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 『통한국사』는 방대한 분량과 어려운 용어를 최대한 쉽게 서술하여 청소년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에서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교양서로서 많은 독자들이 역사에 쉽게 입문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부드러운 스토리텔링 풍부한 지도, 사진 자료 『통한국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성으로 쓰였다. 이런 부드러운 스토리텔링은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하도록 도우면서, 우리 역사를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통박사의 역사읽기’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관점이나 야사, 더 나아가 ‘함흥차사’, ‘흥청망청’ 등 역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를 스토리를 담아 읽을거리를 풍성하게 했다. 또한 ‘가상 인터뷰’라는 장치를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을 현대로 불러냈다. 만주벌판을 달리던 광개토대왕은 어떤 야망을 품었는지, 고려 태조 왕건은 왜 결혼을 많이 했는지, 조선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렇게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의 속마음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현해 과거를 현재로 끌어낼 수 있게 한다. 『통한국사』는 시각자료도 풍부히 담았다. 흔히 보이던 틀에 박힌 자료가 아닌, 새로우면서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사진자료들을 전면 컬러로 실어 역사를 이미지로 연상할 수 있게 했다. 다양한 지도와 도표를 통해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정리하여 수험에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한 것도 장점이다. 한국사와 세계사, 이제 따로따로 하지 말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라 저자가 이 시리즈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독특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기자인 저자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역사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인데 언젠가 낭패를 당했다. 아들이 “고려가 세워졌을 때 외국에서는 어떤 나라가 세워졌어?”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황하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우리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따로따로 배웠다. 때문에 동시대에 각 대륙별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연계시킬 수 없었다. 국사와 세계사가 연계 된 문제는 시험에 출제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선생님도 달랐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계사를 공부하는 흐름은 바뀌어야 한다. 최근에는 통합교과적인 문제 출제와 논술시험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현재까지 발전해온 것을 통째로 통으로 한꺼번에 인식할 수는 없을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집필이 시작됐다. 저자는 출간 전 3년간 시중에 나와 있는 70여 권의 역사 서적의 콘텐츠를 분해한 뒤 다시 연대기 순으로 맞춰 재구성했다. 또 동양과 서양, 한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역사발전 법칙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어도 시간이 흐르며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들은 주변 사건들과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 이 책이 안내하는 대로 그러한 법칙들의 흐름을 통째로 이해하면 누구나 쉽게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292 |
[역사] 한국의 레지스탕스
조한성 | 생각정원 | 2013-06-0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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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의 레지스탕스
조한성 | 생각정원 | 2013-06-0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 멸망, 1945년 8월 15일 해방, 그 후
끝나지 않은 한?일 갈등;신사 참배 갈등은 이미 1929년에도 있었다 #1. 2013년 4월 2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아소 다로 부총리를 포함한 여야 의원 168명은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를 문제 삼자 24일 아베 총리는 “국가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영령에 대해 존경과 숭배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참배를 대놓고 두둔하고 나섰다. - 『연합뉴스』 #2. 2013년 4월 28일,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61주년을 맞아 도쿄의 헌정기념관에서 ‘주권 회복·국제사회 복귀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1952년 샌프란시코 조약을 통해 2차 대전이 끝난 지 6년 8개월 만에 일본이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통치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자는 취지다. 이날 아베 총리는 참석자들과 함께 양팔을 들어 올리며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아키히토 일왕은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연합뉴스』 2013년 4월 21일과 22일,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을 비롯한 각료와 국회의원들이 대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태평양전쟁 등에서 목숨을 잃은 전몰자 246만 명의 위패를 보관한 곳. 일제 강점기 때 국내 곳곳에도 신사가 세워졌다. 일제는 한국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다.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의 한국인 학생들은 ‘메이지 천황 탄생 기념식’에 동원됐다. 이날은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기도 했다. 한국인 학생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더욱 크게 느꼈다. 행사를 마치고 착잡한 심정으로 귀가하던 한국인 학생들을 일본인 중학생들이 흉기로 시비를 걸며 방해를 했다. 결국 시내 곳곳에서 난투극이 벌어졌고, 이후 동맹휴학운동 대중시위로 번졌다. 그 중심에 성진회醒進會가 있었다. 전라남도 광주의 사회과학 독서 모임이자 비밀결사 성진회 소속의 학생 15인. 〈/b. 성진회는 신사상, 특히 사회주의 사상이 활발하게 유입됐던 1926년 11월, 광주의 청년?학생들이 사회과학 학습을 위해 조직한 독서 모임이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통해 현실을 재인식하고, 현실의 별을 뛰어넘기 위한 요구를 구체화했다. 전라남도 구례 출신의 광주고보생 왕재일이 모임을 제안했고,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고 의식이 있는 학생들의 추천을 받아 성진회를 조직했다. 성진회가 비밀 조직이었던 이유는 당시 일제가 한국인 학생들에게 학생자치기구 조직과 활동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식민통치를 위협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진회원들은 독서 모임 조직 결성 직후 사진관으로 달려가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교복을 입은 열다섯 명의 앳된 얼굴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사진 제공 : 독립기념관) 신사 참배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다. 아소 다로 부총리 등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통해 한?일 간의 끝나지 않은 갈등을 재확인한다. 일본의 신사 참배 문제는 1978년 도조 히데키 등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을 극비리에 합사하면서부터 국제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한국과 중국은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행태에 강력히 반발하지만 일본은 완강한 입장을 고수한다. 왜 일본은 역사 앞에 사죄하지 않고 역사 분쟁을 이어가려 하는가? 이는 일제의 패망의 순간에도 그러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의 ‘대동아전쟁 종결의 조서’, 즉 항복 선언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됐다. 하지만 일본 천황은 끝까지 ‘항복’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고 단지 연합국의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고만 밝힘으로써 마치 일본이 피해자인양 진실을 호도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이 멸망된 이후 35년 만에 찾아온 민족해방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날아들었다. 가파르게 진행되는 국내외 정세에 대해 한국은 본질에 다가가기보다 수습에 급급했다. 결국 ‘도둑처럼 다가온 해방’의 결과는 오늘까지 청산하지 못한 한?일 관계사로 남았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분쟁?역사 교과서 왜곡?각료 야스쿠니 신사 참배다. 일본은 여전히 정권을 유지하고 우익을 결집하기 위해 역사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 속 최후의 항일 혁명가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했던 게 아닐까. 한국 근대 지식인들은 시대의 야만과 광기, 절망에 맞서 목숨 건 결전을 강행했다. 그들은 민족해방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제와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던 여운형을 중심으로 뭉친 조선건국동맹은 끝내 싸움을 하지 못한 아쉬움의 탄식을 흘려야만 했다.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그들의 저항과 투쟁이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오늘까지 유효한 역사임을 거듭 강조한다. 시대의 광기, 절망과 ‘맞짱’ 뜬 강심장의 레지스탕스들 야만의 시대와 맞선 근대 지식인의 비밀결사와 결전, 《한국의 레지스탕스》.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과 광기, 절망에 맞서 투쟁한 항일 혁명가들의 고뇌와 투쟁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 조한성은 특히 비밀결사에 매료됐다. 합법적인 저항운동은 소극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청년 안창호의 신민회부터 만년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까지, 민족해방과 새 조국 건설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던진 7개 비밀결사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저자는 ‘레지스탕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강했고 그들에 항거하는 비밀결사는 한계가 많았다. 위험한 도전이었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기록으로 만난 그들은 비록 질식할 듯한 극도의 긴장감을 습관처럼 호흡하며 살았지만 살아 있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명랑하고 치열했다. 폭탄 테러 작전에 서로 투입되겠다고 다투는 레지스탕스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비장하고 엄숙한 결기와 짜릿한 흥분을 함께 읽었다고 고백한다. 시대의 모순과 인간적 한계를 정면 돌파하며 성장해가는 레지스탕스들을 통해 암울하고 참담한 역사로 기록돼온 한국 근대사를 전혀 새롭게 만나도록 안내한다. “의열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했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했다. 매일같이 저격 연습도 했다. 이 젊은이들은 독서도 했고, 쾌활함을 유지하고 자기들의 특별한 임무에 알맞은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오락도 했다.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했던 것이다.” _ 김산의 증언, 님 웨일스, 『아리랑』, 1984년 “그때 젊은 사람들은 서로 내가 먼저 죽으러 국내로 들어가겠다는 자세였으니까. 폭탄을 들고 먼저 나가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국내로 한 번 나가려면 여비도 있어야 되고 돈이 많이 들어야 되지 않아요? 그러니 나가겠다는 사람을 모두 내보낼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제비를 뽑기도 했어요. 먼저 죽으러 가겠다고 제비까지 뽑았으니, 지금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_ 김성숙의 회고, 김학준 편,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1988년 저자 조한성은 2006년부터 3년 반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다. 친일 반민족 행위 조사 대상자를 선정하고, 조사 대상자가 행한 친일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국내외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반대편에 섰던 근대 지식인들의 활동과 고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진지한 호기심에서 비롯한 물음들을 좇아 한·일 양국의 기록을 조사하고 관련자들의 회고록과 최근까지 발표된 연구 성과들을 두루 검토했다. 당시 긴박했던 현장을 누빈 레지스탕스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사투의 현장에서도 붓을 들어 긴장되고 장엄한 순간을 남긴 기록들은 오늘까지 남아 당대 진실을 들려주었다. 각종 신문 보도자료?선언문?취지서?연설문 등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바로 그 순간’의 현장 기록을 읽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청년 안창호의 신민회부터 만년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까지 “개인적 영웅주의는 버리고 일사불란의 집단 단결로 나아가자!” - 여운형 《한국의 레지스탕스》에 등장하는 비밀결사들은 다음과 같다. 대한제국 말기 재미 한인 지도자로 성공하여 귀국한 청년 안창호를 중심으로 뭉친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 망국의 시대에 전도유망한 유교 지식인으로서 일제의 판사가 되고자 했다가 현실을 통감한 박상진을 중심으로 모여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의 접점에서 의협 투쟁을 열었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3?1만세운동 후 전국에서 벌어진 일제의 폭력을 목격하고 직접적인 무장?폭력 전술만이 최선의 투쟁 방법이라 확신하여 정의의 이름으로 암살 테러 전술을 본격화했던 의열단義烈團, 민족해방으로 계급해방을, 정치적 해방으로 경제적 해방을 함께 도모하자는 혁명의 기치 아래 공산주의국가 실현을 꿈꿨던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당시 지식인 사이에 유행하던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선도하며 동맹 휴학 대중시위 운동으로 일제를 긴장시킨 전라남도 광주 학생들의 비밀결사 성진회와 독서회 중앙부, 만저우와 국내를 종회무진하며 무장투쟁과 인민전선 결정으로 맞섰던 조국광복회祖國光復會, 일제의 패망을 예견한 만년의 여운형을 중심으로 광범한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 최후의 결전으로 민족해방을 앞당기고 새로운 자주국가 건설을 준비하고자 했던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 그리고 민족을 대표하는 정부로서 국내외 항일 혁명가들을 두루 섭렵하여 독립운동 최고기관이 되고자 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그들이다.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1910년 대한제국 말기부터 1945년 해방까지 내달리며 국내외에서 활약한 안창호?신채호?이동휘?박상진?김상옥?여운형?박헌영 등 수많은 혁명가들을 생생하게 되살렸지만, 저자 조한성이 정의하는 레지스탕스는 개인이 아닌 비밀결사를 가리킨다. 시대의 요구는 ‘영웅’이 아닌 ‘집단적 결합’, 즉 연대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이 탄핵되고 나자 상하이 『독립신문』은 “어떤 영웅의 위대한 수단도 바라지 않는다. (……) 독립운동의 최후 성공은 각자의 노력에 집단적 결합에 있다”고 기사를 썼다. 침략 세력에 협력했던 친일파와 달리 레지스탕스들은 자각한 ‘대중’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혁명을 성공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영웅주의가 아닌 대의를 위한 ‘일사불란의 집단적 단결’이 성공적인 혁명의 핵심이었다. 항일 혁명가들이 직접 투쟁 못지않게 민중 교육과 경제적 자립에 힘쓴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는 동화주의를 앞세워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지만 집단적 결합으로 투쟁한 혁명의 기억 앞에 번번이 좌절됐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기억은 6?10만세운동을 촉구했고, 동맹 휴학 운동의 기억은 학생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며 1930년대 노동?농민운동을 확장됐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_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1923년 청산리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 1919년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일본의 한국인 유학생들 충칭 임시정부 요인들과 직원들. 앞줄 중앙이 김구다. 투쟁은 비장하고 장엄하게, 혁명은 명랑하고 치열하게!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가?” “우리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면 그 나라의 국민은 자동적으로 세 부류가 된다. 한 쪽에는 저항세력(레지스탕스), 다른 쪽에는 협력자가 있고, 그 사이에 머뭇거리는 대중이 있다. 그 나라의 국민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온갖 부富가 약탈되는 것을 참게 하려면, 머뭇거리는 대중이 레지스탕스 무리에 가담하지 않고 콜라보 편에 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_ 파울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을 둘러싼 관심이 높아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괴벨스의 말을 빌려 ‘콜라보’, 즉 침략 세력에 협력하여 이후 한국 현대사에 영향을 미쳤던 대표 인물들의 행적을 파헤친다. 반면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협력 세력과 달리 목숨 걸고 침략 세력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의 고뇌와 투쟁을 이해하고자 했다.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제국의 멸망을 무너지는 가슴으로 지켜보며 지식인들이 열망했던 두 가지 꿈, 바로 민족해방과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의 실체를 추적했다. 한국의 레지스탕스 가운데는 민족주의자도 있고 공산주의자도 있고 아나키스트도 있었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과 반목하기를 거듭했다. 하지만 사상과 상관없이 공통된 꿈이 하나 있었다. 자유! 그들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의 대열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입헌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를 배우며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평등 이념을 학습했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바랐다. 누구는 서방의 자유민주주의국가를, 다른 누구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산주의국가를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되게 꿈꾸던 나라는 하나였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입헌주의와 근대 민주주의의 가치가 지켜지는 나라였다.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근대 지식인들이 일제의 억압에 대항하여 어떻게 싸웠는지, 어떻게 싸우려 했는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꿈과 이상을 발견하고,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과 지키고자 했던 것, 그들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의 모습들을 펼쳐 보여준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의 삶이 현재의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꿈꾸던 많은 것들은 경쟁과 합의,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우리를 규정하는 요소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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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0인의 조선 명 장군
해밀출판사 편집부 | 해밀 | 2017-01-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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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0인의 조선 명 장군
해밀출판사 편집부 | 해밀 | 2017-01-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사람들과 두루 친교가 두터운 사람을 흔히 마당발이라고 한다. 마당발이라고 하면 마당처럼 발이 넓다는 뜻이고, 즉 요소요소에 인맥이 두터운 사람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사회성은 사회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더욱 절실해진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자꾸만 좁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당발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특히 사업이나 정치 등 활동적이고 대인관계가 넓을 필요가 있는 업종에 종사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절실한 것이 마당발이다.
하지만 마당발이라는 것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자신의 경쟁력이 일단 어느 경지에 올라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성격일 것이다. 원만하고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면 아무리 많은 스펙이나 워치나 금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교적인 성격은 어느 정도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자기희생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는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사교성을 떠나 소극적이고 활동성이 약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마당발을 극복하고 사회생활을 풍족하게 영위해 갈 수 있을까?
필자는 위인들을 통해 마당발을 극복하라고 권유를 드리고 싶다. 한 사람의 위인에 대해 그의 삶을 심층적으로 알게 되면 현실에서 한 사람 이상을 아는 것보다도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위인에 대한 사교는 결국 경쟁력이 된다. 왜냐하면 자신감과 철학이라는 훌륭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 자산은 소리만 요란한 마당발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결국 벗들이 원하는 것은 실속이기 때문이리라.
비록 작지만 위인들을 알릴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일단 접근하기 쉽고 익숙한 인물들부터 선별해 보았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익숙한 인물이지만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는 인물들. 그런 인물들에 대하여 조금씩 접근해 보기로 하자. 반드시 여러분의 벗이 되어 주리라고 믿는다. 훌륭한 벗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새 당신 또한 마당발이 되어 있으리라.
해밀출판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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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 | 미지북스 | 2016-05-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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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 | 미지북스 | 2016-05-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현대사를 증언하는 강남 개발의 역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형제 중 공부 잘하는 아들이 있으면 온 집안이 그를 위해 희생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역으로 치면 아마 강남이 그런 ‘잘난 아들’에 해당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명문 학교와 국가기관이 옮겨 갔고 각종 특혜가 퍼부어졌기에 지금의 강남이 존재할 수 있었다. 강남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던 꿈틀대는 힘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은 새로운 화해의 시대를 예감하며 여유로운 시선으로, 질시와 지탄의 강박을 벗고서 숨 가쁘게 달려 온 강남 개발의 역사를 돌아본다. 강남은 한국 현대사의 얼굴이다. 강남을 안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안다는 것과 같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서울, 어디를 개발할 것인가?
1960년대에 서울은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포화 상태였다. 인구 급증은 주택난 등 각종 도시 문제를 낳았는데, 특히 수도 방위 차원에서 심각한 안보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휴전선에서 불과 4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강북에 지나치게 많은 인구와 중요 시설이 집중되는 형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서울의 도심 기능을 분산시켜 안보상의 부담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어디를 개발할 것인가?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국가가 아니었다면 국토의 전통적인 중심축인 서울-개성-평양 축에 있는 은평, 고양, 파주 쪽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먼저 개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한강을 건너지 못한 1백만 명가량의 시민이 공산 치하에 남겨져 고초를 당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때였고 1960년대 후반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던 시기였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한강 남쪽, 강남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 ‘강남’이란 말조차 없던 시절
1963년 이전까지 오늘날 우리가 ‘강남’이라 부르는 곳은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에 속한, 논밭이 대부분이고 달구지나 지나다니는 소로(小路)들로 마을과 마을이 이어진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지금은 이곳을 ‘강남’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영등포 동쪽’ 또는 ‘영등포와 성동(城東) 중간’이라는 뜻의 ‘영동(永東)’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실제로 1970년대에 시작된 개발 계획의 정식 명칭도 ‘강남 개발’이 아닌 ‘영동 개발’이었다. 다시 말해 ‘강북’이 곧 서울이었고, 한강 이남의 사람들은 강 건너를 ‘서울’이라고 불렀다.
커지는 강남 개발 규모
1963년 1월 1일 서울시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드디어 오늘날 강남에 해당하는 지역들이 대거 서울에 편입되었다. 1966년 9월 서울시는 반포에서 삼성동에 이르는 800만 평을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해 달라고 건설부에 요청해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강남 개발이 시작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강남 개발을 밀어붙일 힘과 속도가 제대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린 다음 날, 영동구획정리지구 시행 공고가 났다. 맨 처음 영동구획정리지구는 313만 평 규모였다. 하지만 정부가 지시한 고속도로용 부지 9만 평과 공공용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구획정리지구는 520만 평으로 늘어났고 1970년 후반에는 무려 937만 평에 이르게 되었다. 사대문 안 면적이 500만 평에 불과함을 떠올리면 강남의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되자 서울시는 적당한 면적 단위로 점진적으로 개발한다는 당초 계획을 바꿔 이 엄청난 공간을 시가지화할 필요가 생겼다. 정부와 서울시는 강남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많은 정책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불과 10여 년 만에 강남은 완벽하게 현대 도시로 탈바꿈한다.
강남과 강북을 이어준 제3한강교
강남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이었고 그것만으로도 개발 잠재력이 엄청났다. 하지만 한강이 큰 장벽이었다. 오늘날에야 한강 다리가 흔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한강에 다리를 놓는 일은 국가적 대역사였다. 1917년 건설된 최초의 한강 다리인 제1한강교(한강대교) 이후 두 번째 다리인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건설되기까지는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그렇지만 한강에 다리를 놓을 수만 있다면 강남은 기존 도심에서 지척이었다. 1969년 12월 25일 마침내 제3한강교가 준공되었다. 이 다리는 한강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강북’과 ‘강남’을 이어준 첫 번째 다리였다. 훗날 ‘말죽거리 신화’로 불리는 땅값 폭등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보다 먼저 착공한 경부고속도로와도 이어져 그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제3한강교는 ‘강북’으로부터 ‘강남’이라는 지역을 잉태하는 탯줄이 되었다.
거대한 개발 부지로 재탄생하다
강남의 또 다른 약점은 지대가 낮아서 자주 물에 잠긴다는 것이었다. “남편이나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정도로 강남은 대대적인 수방(水防) 대책 없이는 도시로서 기능할 수 없는 땅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고 나서 일제가 쌓은 제방이 있었지만 그것은 원효로와 영등포, 노량진 일대만 겨우 지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마포, 뚝섬, 광진, 강남, 여의도, 잠실 일대는 홍수가 나면 모두 물에 잠겼다. 한강을 서울의 중심 생활권으로 만들기 위한 한강 개발이 1967년부터 시작되었다. 강변1로를 제방도로 형태로 건설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제방도 제방이지만 한강의 수량과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댐이 필요했는데 마침 소양강댐이 1973년에 완공되었다. 이러한 수방 사업을 거쳐 서울 시민들은 홍수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가장 큰 혜택을 본 지역은 물론 강남이었다. 이어서 ‘공유수면’ 매립을 통한 택지 조성이 뒤따랐고 강남은 진정한 의미에서 거대한 개발 부지로 거듭났다. 동시에 강남에는 폭 40~90미터의 광로(廣路)와 대로 등 무려 37개의 간선도로가 격자형으로 깔렸다. 이런 식의 도로망은 한국에서는 처음이었는데, 특히 제대로 된 건물과 시설들이 들어서기도 전, 허허벌판에 시원스레 뚫린 도로는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넓은 도로가 왜 필요한 걸까?”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강남의 도로들은 자동차들로 가득 찼고 휑하던 거대 블록마다에는 근사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며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물과 기업들이 이야기를 남겼고 랜드마크가 될 건물들이 속속 등장했다.
아파트 지구가 만들어지다
수방 사업과 공유수면 매립을 마쳤지만 한강변에서 좀 안쪽의 반포, 서초동 일대는 여전히 강변도로보다 지대가 낮았다. 원칙대로라면 제대로 매립을 해서 지대를 높여야 했지만 서울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심한 홍수가 나거나 벼락이 쳐서 배수펌프장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저지대는 꼼짝없이 물이 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서울시장 양택식은 저지대 지역은 모두 3층 이상으로 집을 짓게 하는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최악의 경우 주민들이 3층 이상으로 대피하면 인명 피해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이리 하여 침수되는 지역까지 전부 아우르는 엄청난 규모의 ‘아파트 지구’가 강남에서 공식 탄생하게 된다.
한편 순조로운 개발을 위해선 아주 많은 주민들이 필요했다. 초기에 강남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논현동 공무원아파트가 지어졌고 영동 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성공리에 분양을 마쳤지만 이것들은 규모가 너무 작았다. 그 정도로는 강남의 넓은 공간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6년 8월 공식적으로 ‘아파트 지구’가 고시된다. 반포 지구 167만 평, 압구정 지구 36만 평, 청담 지구 11만 평, 도곡 지구 22만 평, 잠실 지구 74만 5천 평 등 강남에 설정된 아파트 지구는 다른 지역과 비교를 불허하는 단연 압도적인 규모였다. 이곳에 오늘날 강남을 대표하는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대문 안 구도심과 영등포를 따라잡다
원래 정부는 영동 개발을 시작하면서 서울시청을 비롯한 112개 국가기관을 모조리 옮기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기관이 강남으로 이전했다.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검찰청, 국정원, 한국은행 전산본부 등이 강남에 자리 잡았다. 한편, 1974년에 서울시장에 부임한 구자춘은 ‘3핵 도시론’에 미쳐 있었다. ‘3핵 도시론’이란 사대문 안 기존 도심을 첫 번째 핵으로, 여의도와 영등포 산업 지대를 두 번째 핵으로 삼고, 세 번째 핵으로 강남을 건설한다는 도시계획안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지하철 2호선의 노선을 강남을 관통하는 순환선으로 바꿔 버리는 한편, 적극적으로 명문고의 강남 이전을 추진했다. 그에 따라 경기고, 서울고, 숙명여고 등 이른바 강북의 명문고들이 옮겨간 강남구와 서초구는 유명한 ‘강남 8학군’과 ‘강남 교육특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 강남은 점점 대형 병원의 메카로 변해갔다. 건설회사들에 이어 백화점 기업들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커가는 곳이 되었으며, 고급 음식점과 카페가 생기고 외국 외식 문화가 도입되며 한국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공간이 되어 갔다. 강남에 자리 잡은 대형 교회와 성당 또한 신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또 강북에서 신설 및 이전이 금지된 유흥업소들이 몰려들어 신사, 압구정, 논현동 일대는 화려한 유흥가로 변해 갔다.
더 커지는 강남: 잠실, 수서, 분당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던 영동 개발은 놀랍게도 10여 년 만에 완료되었다. 하지만 개발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강남은 계속 확장되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잠실을 개발했다. 이때 지어진 아시안선수촌아파트와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아파트 문화를 진일보시켰고 무엇보다 잠실이 강남권에 묶이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외에도 잠실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예술의전당과 코엑스 등 오래도록 강남의 간판이 될 랜드마크들이 전두환 정권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노태우 정권 시기에 들어서도 강남 개발은 수서와 일원, 분당 등으로 확대되어 갔다.
개발의 그늘: 사라져버린 것들과 어두운 기억들
이 책은 강남 개발 시기를 거치며 사라져버린 옛 기억의 장소들을 차근차근 돌아본다. 수방 사업의 일환이었지만 한강변에 제방을 쌓고 강변도로를 만들면서 사라져버린 옛 한강변의 풍경에 대한 아쉬움이라든지, 1970년대 초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있던 저자도(楮子島)가 아파트 대단지 건설을 위해 골재로 채취되어 사라져버린 이야기, 여의도 개발 당시 저자도와 비슷한 운명을 맞았던 밤섬 이야기, 잠실 물막이 공사의 결과로 잠실섬 아래를 흐르던 송파강이 사라지고 석촌호수로만 남게 된 이야기 등을 빠짐없이 소개한다. 그 외에도 강남 개발 장면마다 수많은 뒷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정부 유력 인사가 주도한 부동산 투기,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일으킨 수서 사건, 끊어진 성수대교와 무너진 삼풍백화점에 얽힌 사연 등 강남 곳곳에 남겨진, 이제는 역사가 된 에피소드들 또한 강남 개발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에 남겼다.
가장 서울다운 서울은 강남이다
조선 시대 이래 서울은 조금씩 영역이 확장되어 왔다. 조선의 수도가 ‘사대문 안’ 한양이었다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명동을 중심으로 한 신시가 형성을 주도했다. 그리고 현대에 강남이 새로이 편입되어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보면 가장 서울다운 서울은 어쩌면 조선 시대의 한양도 아니고, 일본이 만든 경성도 아니며, 강남이다. 하지만 강남의 성공은 우리나라 도시사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한때 서울을 강타한 뉴타운 광풍은 강남에 역전당한 강북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언젠가부터 부산과 대구 등 광역시는 물론이고 소도시들조차 모두 마치 비법이라도 배운 것처럼 강남 개발 과정을 본 따 신도심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지방 도시들은 구도심이 죽어 버리고 특징이 없는 그저 그런 붕어빵 도시들이 되어 갔다. 최근에 와서는 어떤 개발론자도 63빌딩과 올림픽도로, 잠실 주경기장을 서울의 자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은 강남의 역사를 말하는 데서 조금 더 나아가 강남에 끌려가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며 우리 도시들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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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산자 김정호
우일문 | 인문서원 | 2016-1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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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산자 김정호
우일문 | 인문서원 | 2016-1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이 무모한 신예작가는 그 흔한 상업적 소재를 거부하고, 역사에 겨우 이름이나 남았던, 그러나 만고에 길이 남을 엄청난 업적을 이룩한, 작지만 위대한 한 지리학자의 삶을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강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 고(故) 최인호(소설가)
조선이 낳은 위대한 지리학자,
역사가 지워버린 그 남자의 삶을 다시 판각한다!
여기, 한 장의 지도로 남은 남자가 있다. 김정호. 우리는 조선 후기인 1861년에 그가 만들었다는 조선 팔도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알지 못한다. 그가 만든 뚜렷한 지도는 전하되, 지도를 만든 그의 모습은 희미하다.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고산자(古山子)라는 호가 전할 뿐, ‘조선이 낳은 위대한 지리학자’ 김정호의 자취는 야속할 정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용후생의 학문으로서 ‘여지학(지리학)을 택하고 필생의 역작인 ’대동여지도‘를 만듦으로써 조선 팔도의 정확한 생김새를 목판에 뚜렷이 새긴 김정호. 그는 어떻게 이런 걸작 지도를 남겼을까? 어떤 생각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평생 동안 묵묵히 했을까?
한 권의 책과 하나의 의문,
‘김정호는 정말 옥사했는가?’
『고산자 김정호』는 한 권의 책과 한 가지 의문에서 시작된 역사소설이다. 지은이는 어느 날 일제 강점기 국어 교과서격인 『조선어독본』을 본다. 거기에는 ‘대동여지도’가 적국에 누설될 것을 우려한 대원군이 ‘대동여지도’를 압수하고 김정호와 그의 딸을 옥에 가두어 두 사람이 옥사했고, ‘대동여지도’는 1904년(메이지 38년)에 일어난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에도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로서 역할을 다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문헌이나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김정호는 정말 옥사했을까?’ 지은이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조선어독본』 내용에 깊은 의문을 품었고, 이렇게 해서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세운 장편역사소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고산자 김정호』는 역사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한 남자의 삶과 그의 업적을 소설적으로 복원하며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조선 후기의 가감 없는 사회상을 굵고 담백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작가가 묘사한 김정호는 굳은 뜻을 세우고 오로지 앞만 보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우직한 남자다. 여지학에 뜻을 둔 소년 시절부터, 머리와 수염이 허옇게 센 장년이 되어 마침내 필생의 역작 ‘대동여지도’를 판각하게 되기까지 집요하게 한 우물을 파는 남자로 그려진다.
‘바람짚신을 신은 남자’,
역사가 지워버린 그의 삶을 굵은 필치로 판각하다!
하지만 『고산자 김정호』는 김정호라는 주인공에만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담담하게, 부유하는 카메라처럼 주변 인물들에게도 골고루 시선을 돌린다. “김정호가 속한 1800년대는 근대화의 전 시대로 매우 혼란했다. 서학(천주교)의 박해가 어느 때보다 심했으며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큰 줄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런 어지러운 사회상을 담아보려 애썼다.”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동문수학한 벗이자 평생지기인 실학자 최한기, 이웃집 소금장수 배소금과 그의 딸 이화, 정호의 서울살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모 영감네, 바람처럼 나타나 벗이 되어버린 ‘이야기보따리 장수’ 오랑이 등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우리네 이웃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의 결을 한껏 풍성하게 만든다.
‘바람구두’가 아니라 ‘바람짚신’을 신은 남자라고 부를 만한 조선의 지리학자 김정호. 불과 150여 년 전을 살아갔던 그 남자의 흔적을 따라간 『고산자 김정호』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롯이 허구”다. 그러나 작가가 따뜻하고 해학적인 시선으로 직조해낸, 평생을 바쳐 위대한 한 가지를 이룩한 대가의 우직한 삶과 조선 후기 민초들의 정겹고 살가운 풍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 가슴에도 잔잔한 울림을 줄 것이다.
줄거리 /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소년 정호는 이웃집 소금장수 딸 이화와 오누이처럼 자라난다. 정호의 아버지는 ‘장교’ 노릇을 하던 이였는데 작은 민란에 연루되어 누명을 쓰고 죽는다. 천애고아가 된 정호는 고향을 떠나 개성으로 간다. 거기서 월천이라는 스승을 만나고 ‘지도’라는 것을 난생처음 본다. 조선 후기인 19세기,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한편으로 이용후생의 학문인 실학의 시대이기도 했던 당시, 정호 역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에 지도가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지학에 뜻을 둔다. 월천의 집에서 사숙하면서 정호는 평생의 지기가 될 최한기를 만나고, 전국 팔도를 메주 밟듯 다니며 역사와 지지학 공부에 매진하면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 한편 이화는 ‘봄이 되면 오겠다’는 약속을 믿고 정호를 기다리지만 정호는 스승 월천의 유언에 따라 스승이 미리 짝을 지워준 작은년이와 혼인하고 만다. 그리고 서울에 자리를 잡는다. 녹록하지 않은 서울살이를 하면서도 정호는 틈만 나면 전국 팔도를 돌며 자료를 만들어가며 조선 팔도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할 수 있는 정확하고 과학적인 지도를 꿈꾼다. 한편 관상감에서는 지도가 부정확한 것이 들통 나서 지도를 전면 개작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관상감에서 일하는 최도원은 정호의 지도를 몰래 베껴그려서 기한 안에 제출하고, 덕분에 벼슬도 높아진다. 문호 개방의 거센 바람과 더불어 점점 지도가 ‘힘’이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정호에게 지도를 그려달라는 은밀한 제안이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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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섯궁궐 이야기
김경복 | 니케북스 | 2016-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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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섯궁궐 이야기
김경복 | 니케북스 | 2016-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의 다섯 궁궐에 얽히 흥미진진한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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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 위즈덤하우스 | 2016-09-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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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 위즈덤하우스 | 2016-09-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반도에서 만주 벌판을 넘어 유럽대륙, 미국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풀어 쓴 전방위 역사책!
학계를 비롯한 반대 여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국정화 교과서로 한 가지 역사관만을 주입하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한국사 전반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다. 이는 왜곡된 역사가 아닌 올바른 역사를 알고자 하는 욕구의 반증이라 할 만하다.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 잘못된 정보가 SNS를 통해 퍼져나갈 때 ‘카톡 유언비어 반박문’으로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려 화제가 됐던 심용환 선생이 이번에는 쉽고 재밌는 올바른 역사책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단박에 한국사≫를 펴냈다. ≪단박에 한국사≫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 나열에 그치지 않고 조선 말기부터 해방을 맞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격동의 한국사를 입체적으로 풀어 쓴 전방위 역사책이다.
** 〈단박에 한국사〉 '심쿵비기'는 종이책에 포함된 부록으로 전자책에서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한 회 누적 다운로드 30만 팟캐스트 ‘진짜 역사 가짜 역사’ 책으로 출간
저자는 책을 펴내기 이전에 팟캐스트 ‘진짜 역사 가짜 역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재 한 회 누적 다운로드 수가 30만을 넘어선 ‘진짜 역사 가짜 역사’는 평소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성인은 물론, 청소년 자녀와 함께 가족이 즐겨 듣는 역사 팟캐스트로 자리 잡았다. 이번 책에는 방송으로는 미처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면밀한 사료 검토를 통한 역사적 사실 서술과 저자의 입담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를 표방하며 이 책을 썼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한국사, 그리고 한국사에 매몰되지 않고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살펴보는 한국사, 마지막으로 자극적인 흥미 위주의 역사서나 암기 위주의 참고서가 아닌 역사 교양서의 지적 수준을 높여주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한국사를 지향하며 썼다. 저자는 황제국이었던 중국이 청프전쟁, 청일전쟁에 패배함으로써 동아시아 국제 질서가 침몰하는 과정을 시작으로 한반도를 격랑에 몰아넣은 동아시아 주변국, 세계열강의 시대적 배경과 주요 사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지막까지 아우른다. 조선 말 개항을 둘러싼 논쟁을 벌일 때, 그 시간 중국과 일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지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상대국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 두려움을 넘어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단박에 흐름을 잡아줘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진다!
수능, 한국사 시험 대비부터 역사 지식을 채워주는 첫 번째 교양 역사책
역사에 문외한인 성인들, 또 역사라면 암기 과목으로 여겨 지루하게만 여겼던 수험생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단박에 흐름을 잡아주는’ 이야기를 본격 시작하기 전에 주요 역사적 사건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을 각 장의 전면에 배치하였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부터 일제시대, 치열했던 독립투쟁사, 해방을 맞기까지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숨 가쁘게 펼쳐지는 이야기와 시선을 잡아끄는 그림이 만나 역사적 주요 장면을 머릿속에 통째로 각인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실은 연표 역시 연도별 사건 나열이 아닌, 맥락으로 단박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실, 학창시절엔 사건을 외우는 데 급급하여 역사 전반을 공부할 여력이 없고, 또 성인이 되어서는 현실에 파묻혀 역사책을 곁에 두고 읽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에라도 파편척인 역사, 인물 중심의 역사가 아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단박에 한국사≫는 첫 번째 교양 역사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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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
이성무 | 아름다운날 | 2015-02-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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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
이성무 | 아름다운날 | 2015-02-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시대의 당쟁사를 아는 것은 조선의 역사 전반을 꿰뚫는 것일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정치의 심연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다소 전문적이고 광범위해서 일반 독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조선시대 당쟁사〉> 1, 2를 보다 쉽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권에 당쟁사의 굵은 줄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집약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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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비, 왕 위의 여자
김수지 | 인문서원 | 2016-1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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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비, 왕 위의 여자
김수지 | 인문서원 | 2016-1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 시대 대비는 ‘뒷방 늙은이’가 아니었다?
지아비를 잃고 아들 위에 군림한 조선 최고의 여성 권력자들,
그들의 치열한 삶과 정치 역정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여성의 눈으로 다시 쓰는 조선정치사.
아들 예종이 죽도록 방치한 비정한 어머니 정희왕후 윤씨,
성종을 즉위하게 만들고 성종이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던 인수대비 한씨,
법적 아들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법적 손자인
정조까지 죽게 한 노론 벽파의 수장 정순왕후 김씨,
손자 헌종을 수렴청정하고 헌종을 사망하게 만든 후 철종까지 수렴청정하면서
안동김씨 60년 세도 정치의 문을 연 순원왕후 김씨 등
조선의 왕권을 뒤흔들며 친정 가문과 당파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내달린
조선 최고의 여성 권력자 4인의 삶과 정치 행적을 치밀하게 추적, 복원한 역작!
왕의 어머니 ? 왕의 할머니, 그녀들의 무시무시한 정치력
조선 시대와 여성, 특히 정치라는 분야와 여성은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이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정통 사료의 행간을 추적하여 조선의 중앙 정치 한복판에 여성이 당당히 서 있었음을 밝힌 책 『대비, 왕 위의 여자』가 나왔다.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역사를 공부해온 지은이는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조선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여성들의 존재를 사료를 통해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 정통 사료의 자간과 행간에 스며 있는 그녀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복원해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대비’의 이미지는 사극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뒷방 늙은이, 무거운 가채를 뒤집어쓰고 화려한 스란치마를 입고 보료 위에 앉아 있는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다. 그러나 여기, 무시무시한 권력투쟁의 한가운데 서서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새파랗게 젊은 대비가 있다. 궁궐 안살림을 장악하고 전권을 휘둘렀을 뿐 아니라 바깥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신과 친정 가문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전력질주한 여인들이 있다.
4인의 대비, 4가지 색 정치 스타일
『대비, 왕 위의 여자』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권력자로 살아간 4명의 대비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첫 번째 대비는 정희왕후 윤씨이다. 세조의 왕비로, 남편 세조가 왕권을 탈취할 때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윤씨는 세조가 죽자 조선 최초의 대비가 된다. 그리고 아들 예종의 개혁 시도를 막으며 구 세력(훈구 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예종이 19살 젊은 나이에 급서하자 당일에 곧바로 다음 왕을 지명하는 ‘비정한 어머니’다.
두 번째는 인수대비 한씨다. 조선 시대 여성들의 수신교양서 『내훈』의 저자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녀는 세조의 맏며느리로 입궁했다가 남편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궐 밖으로 내쳐지고, 무려 12년의 세월을 와신상담한 끝에 결국 아들(성종)을 즉위시켜 대비가 된 여성이다. 인수대비 한씨는 언문, 한문, 범어(산스크리트어)에 능하고 알고 불경에도 조예가 깊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 여성이었고, 스물에 청상이 되어 아이 셋을 홀로 키운 생활력도 강한 여성이었다. 지은이는 이처럼 지성과 생활력을 겸비한 강인한 여성이었던 인수대비 한씨가 시어머니인 정희왕후 윤씨를 수렴청정의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아들(성종)의 친정을 선포하는 데에 음으로 양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인수대비 한씨는 국내 인사로 정치 세력을 형성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명나라를 등에 업음으로써 세력을 확대하는 등 대단한 정치력을 발휘한다.
세 번째는 영조의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 김씨다. 법적 손자인 정조와 7살 밖에 나이 차가 나지 않는, 그리고 며느리 혜경궁 홍씨보다 10살이나 젊은 그녀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익히 접했듯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숙이 관여하고, 친정 가문의 집권 유지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개혁군주 정조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전력투구했고, 그리고 개혁의 저지에 성공하고 원하는 바를 이룬 집념의 여인이다.
네 번째는 60년 안동김씨 독재의 서막을 열어젖힌 순원왕후 김씨다. 왕실의 재산인 궁방전을 김씨 가문의 재산으로 둔갑시키는 등 조선 왕실을 무력화하고 안동김씨 가문의 이익 추구에 앞장선 순원왕후 김씨는 헌종이 죽자 철종을 지명하여 수렴청정 기간을 연장시킨, 결과적으로 2명의 왕을 좌우하며 군림한 무시무시한 권력자였다.
극적인 성취, 정조 암살과 ‘연훈방’의 비밀을 추적하다
31살 할머니(정순왕후 김씨)와 24살 개혁군주(정조)의 날 선 대립과 갈등을 그린 영화 〈역린〉을 보면서 어떤 관객들은 말한다. “에이, 무슨 할머니가 이렇게 젊어.” 왜 할머니가 젊을 수밖에 없는지, 왜 할머니가 손자를 죽이려 하는지, 왜 손자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밤새 번민하는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면 훨씬 이해가 쉽다. 『대비, 왕 위의 여자』는 〈역린〉 등 영화나 드라마가 못다 한 역사 이야기, 영화 이면의 역사적 진실을 선명하게, 심층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대비, 왕 위의 여자』의 또 하나의 커다란 성취는 현대 의학 자료를 통한 정조 암살 의혹의 재조명이다. 지은이는 정조의 암살 가능성을 추정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현대의 유사한 의학적 예시를 발굴, 제시한다. 정조는 1800년에 급성 수은 증기 중독으로 사망했는데 지은이는 2010년에 아산병원에서 한 남자가 유사한 상황에서 똑같은 징후를 보인 끝에 죽음을 맞이한 의학적 사례를 찾아낸 것이다. 저자의 끈질긴 자료 수집과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열정이 일궈낸 가치 있는 성취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말대로 “한국사에 감춰진 또 하나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왕비에서 대비로, 정치가로 키워진 조선의 딸들
생각해보면 대비는 숙명적으로 대비 이전에 왕비였고, 그 이전에 세자빈이었다. 말하자면 10대 시절에 일찌감치 입궐하여 지은이의 말대로 “왕세자빈이나 왕비를 지나 대비가 되는 과정에서 일찌감치 정치판에 입문했다.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현장에서 학습했다. 그리고 각 정치 세력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자신과 자신의 친정 가문이 살아남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알고 있었고 고민했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말하자면 “권력 투쟁의 한복판에서 일생을” 보낸 것이다. “이것은 대비가 친정 가문의 남자 형제들의 조종을 받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허수아비처럼 친정 가문을 위해 대리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였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라는 지은이의 말대로, 대부분의 여성들이 유교의 속박에 얽매여 살아갈 때, 대비들은 권력을 휘두르는 무기로서 효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적극 활용하며 놀라운 정치력을 구사한 담대한 여성들이었다.
머리말을 통해 “이 여성들의 정치 권력에 대한 욕망들이 당시 조선 전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단지 이 책에 등장한 대비들은 후손인 왕들의 권력을 크게 제한하며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독자들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지은이는 대비들의 삶과 정치 역정을 발굴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가치평가는 유보한다. 그러나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선으로 조선 시대의 여성을,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조선의 정치가로서 여성이 오롯이 존재했고, 실권을 휘둘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발굴한 성과만으로도 『대비, 왕 위의 여자』는 충분히 값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하게 당대를 헤쳐나간 조선 여성 정치가들의 삶을 읽으면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들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21세기 독자의 몫이다.『대비, 왕 위의 여자』는 역사 이면의 역사 알기, 새로운 역사읽기의 즐거움이 함께하는 책이 되어줄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정희왕후 윤씨-인수대비 한씨, 그리고 정순왕후 김씨-순원왕후 김씨가 ‘짝을 이루어’ 대를 이어 수렴청정을 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시어머니, 또는 시증조할머니, 시할머니 등으로부터 정치력을 학습하고, 배운 대로 실전에서 써먹은 셈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고리타분한 속담과는 반대로 암탉이 울어서 집안과 가문을 일으켜세운 여성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 조선의 대비들과 함께하는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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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 우리의 민담1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6-01-0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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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 우리의 민담1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6-01-0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할 우리의 민담은 한국인의 정서와 애환이 잘 녹아 있는 민담들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 우리는 조상들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와 그들의 삶을 살펴보아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도 키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독자여러분의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인생의 교본이 되고 우울한 마음을 위로하는 생활의 청량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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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우리의 민담2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6-01-0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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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우리의 민담2
그림책편집부 | 도서출판 그림책 | 2016-01-0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4-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할 우리의 민담은 한국인의 정서와 애환이 잘 녹아 있는 민담들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 우리는 조상들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와 그들의 삶을 살펴보아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도 키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독자여러분의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인생의 교본이 되고 우울한 마음을 위로하는 생활의 청량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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