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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박광일 | 생각정원 | 2019-02-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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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박광일 | 생각정원 | 2019-02-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왜 지금 임시정부 답사기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와 현장 답사를 제대로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이면 충분하다!
서울을 비롯해 특히 우리나라 전국의 역사 유적지를 20여 년간 답사한 저자는 201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답사를 하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 안팎에서 임시정부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정작 알려진 내용은 부족하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영역 밖에서 펼쳐진 역사라는 점에서 접근 방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특정 사건, 특정 인물 중심으로 답사할 경우 임시정부의 역사를 제한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또 현장 중심으로 답사를 할 경우 희생과 고난을 강조하는 답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것도 필요하겠지만 저자는 독립을 넘어 건국을 꿈꾸던 임시정부의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저자는 임시정부 답사단의 안내자가 되면서 그동안 고민한 부분을 여러 사람과 소통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역사는 한국사韓國史이되 한국의 범위를 넘는, 그러니까 공간의 역사로 이해하는 모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국사一國史의 영역은 근대 이후에 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그 영토적 경계가 상당 부분 무너지는데 임시정부를 답사할 때 그러한 시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이후 저자는 몇 차례 이어진 답사에서 이러한 고민을 정리해나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도 폭넓은 시야로 임시정부를 바라보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책을 쓰고자 했다.
더 먼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더 넓은 세계를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보는데도 중요한 안목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답사’를 통해 대표적인 선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생생하게 기록하고 뜨겁게 기억해야 할 궁극의 역사!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길을 따라 걷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쳤던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는가. 그해 여름, 우리나라 곳곳을 뒤덮었던 축구 열기는 그야말로 뜨겁다 못해 대단했다. 예선 통과도 힘들던 나라가 4강 신화를 꿈꿀 수 있게 되자 전 국민은 하나둘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때 붉은 물결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으니 곧 ‘대한민국’은 우리를 하나로 결속해준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언제, 누구에게서 나온 말일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910년 8월 29일 국권 피탈로 사라진 ‘대한제국’이 임시정부에 의해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1919년 3월 1일, 황제가 빼앗긴 나라를 국민의 힘으로 찾겠다고 선언한 3·1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목놓아 울며 독립을 애타게 부르짖었으니 어쩌면 오늘날 월드컵에 비견할 바 아니겠다. 이 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3·1운동을 계기로 제국의 시대에서 민국의 시대를 선포하며 출범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야기다.
역사의 큰 흐름은 왕으로부터 일반 국민, 시민으로 넘어왔다. 3·1운동은 이제까지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나라를 뺏긴 처지에 그저 슬퍼하지만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이제부터 나는 우리 민족, 우리 국민과 함께한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독립운동의 기지가 된 ‘상해’로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갖고 모여들었다. 남의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만들어야 했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다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으며,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았는지 함께 현장을 걸으며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이야기한다.
김구와 김원봉, 이봉창과 윤봉길, 조소앙과 박찬익, 곽낙원과 정정화까지
뜨거운 가슴으로 ‘대한민국’을 꿈꾸던 청년 투사들의 현장을 가다!
인터넷에서 이봉창을 검색해보면 양손에 수류탄을 든 채 웃고 있는 그림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봉창은 웃지 않았다. 31세에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태극기와 선언문 앞에서 진지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일본 천황을 저격했으나 ‘불행히도 명중하지 못한’ 이봉창 의거는 윤봉길 의거 때 완성되었다.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너희도 만약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이 책은 이처럼 이전 두 젊은 투사와의 만남에서 김구가 내렸던 결단들과, 이후 의열단·조선민족혁명당·조선의용대를 조직해 김구와 함께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김원봉의 계획들까지 ‘역사와 현장’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국을 위해 투신하기로 결심한 아들 김구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인내하고 믿어주었던 곽낙원, 임시정부의 자금을 구하기 위해 10여 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나 국내에 잠입해 돈을 빌려와 요인들의 살림을 책임졌던 정정화 등 빛도 없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여성운동가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고리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 외교의 리더 박찬익, 새로운 국가건설을 꿈꾼 거인 여운형, 삼균주의의 창시자 조소앙,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탱한 기둥 엄항섭까지 격변의 순간순간을 접할 때마다 뭉클함이 밀려올 것이다.
임시정부가 계속해서 옮겨 다녀야만 했던 이동 시기, 김구가 숨어 지냈다는 피난처를 오늘날 탐방하는 장면들을 읽을 때는 못내 같이 숙연해진다. 또한 불안정한 삶의 연속이었던 요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이나마 현장에 가서 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깊은 상상이 가능해진다. 이 책은 그저 묵직한 역사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감상을 더한 답사기에 그치지도 않는다. 왜 이곳을 꼭 들러야 하는지, 이곳에서는 우리의 어떤 역사가 숨 쉬고 있는지, 자국의 역사도 아닌 유적을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 보존한다는 것이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이 책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들려준다. 앞으로의 100년은 그들과 ‘영광’을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현장 사진과 사료 도판 200여 장 수록, 임시정부 이동 경로와 답사 지도 공개!
역사 공부와 생생한 답사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책
처음 임시정부 요인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낯선 상해에 착륙했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언젠간 다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꿈이라도 꿀 수 있었을까. 지금의 우리로서는 가늠하기조차 힘들지만 분명 타국의 화려한 외탄을 바라보며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더더욱 크게 느꼈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제치하를 벗어난 진정한 독립을 위해, 또 반드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고단한 여정을 끝내 선택했을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처럼 1919년 서울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을 외쳤던 ‘상해 시기’, 1932년부터 1940년까지 항주 등 여섯 군데를 옮겨다니며 물 위에 뜬 정부 상태였던 ‘이동 시기’, 그리고 1940년부터 1945년 마지막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중경 시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길을 함께 탐사한다. 또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나라 밖에서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요인들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며, 200여 장에 달하는 답사 사진과 사료 도판, 지도 일러스트 등에 담긴 임시정부의 ‘현장’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무엇보다 정확한 역사와 고증을 소개하기 위해 저자는 100년 전 임시정부 요인들이 걸었던 그때 그 장소 곳곳을 수회 답사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과 진심으로 만나기를 바란다”며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과 미래를 살펴보는 역사 공부는 물론, 역사 전문가의 시선에서 순례하는 진짜 답사 이야기를 한 권에 살펴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책이다.
■ 추천평
나의 조국, 대한민국. 과연 이 이름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었을까? 바로 3·1운동이 계기가 되어 제국의 시대에서 민국의 시대를 선포하며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다.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제 그 ‘기억’을 기록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임시정부의 고난과 영광의 여정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기억할 것이다. 기억해야 역사가 되기에.
-최태성(한국사 강사)
100년 전 이국땅 상해에서 피어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꿈을 좇는 열차가 플랫폼에서 기적을 울리고 있다.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는 아무데서나 멈추지 않는다. 기관사를 자처한 저자는 ‘역사의 정거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의 시공간을 온몸으로 누벼온 저자의 안목과 내공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을 들고 ‘임시정부행 100년 열차’에 얼른 올라타고 싶다 .
-정재환(방송인·문학박사)
이 책은 답사기에 멈추지 않는다. 100년 전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독립운동가들의 심장소리를 느끼게 해주며, 그들이 걸어간 발자국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빼앗긴 조국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맨바닥에서 역사를 만들어나간 청년 운동가들의 꿈과 설움과 미래를,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꼭 한 번은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역사가 없는 오늘은 없기 때문이다.
-박기태(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 책 속으로
아마 그 길은 고되고 힘들 것이다. 타는 듯한 햇빛과 뼛속으로 스며드는 스산한 기운,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버스와 기차 여행은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 뺏긴 사람들의 피난살이와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집을 이고 가는 달팽이는 무겁고 답답한 걸음을 한다. 하지만 이 여정의 끝에 독립과 새로운 나라가 있다는 희망을 가진 이들은 닥치는 고통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테다. 그러니 만약 지금 이 책을 들고 답사를 떠난다면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자. 그들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프고 화날 일을 겪을 때 같이 슬퍼하고 화내는 거다. 그렇게 100년의 시간을 좁혀보자.
-2부 물 위에 떠다니는 정부 〈대장정, 길에서 역사를 만들다〉
이봉창이 상해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김구는 본격적인 거사 준비를 했다. 1931년 11월, 하와이애국단에서 보내준 1천 달러를 거사 자금으로 쓰고 중국군 소속 김홍일(왕웅)과 김현을 시켜 폭탄 두 개를 준비하도록 했다. 하나는 일황 폭살용, 다른 하나는 이봉창의 자살용이었다. 그리고 이봉창에게 계획을 알려준 뒤 안공근의 집으로 가 선서식을 거행했다. (중략) 그러나 히로히토가 탄 마차는 지나가버렸고 뒤따르던 궁내부 대신의 마차만 뒤집어졌다. 실패였다. (중략) ‘불행히도 명중하지 못했다[不幸不中].’ 만주사변 직후 반일감정이 격해진 중국 정부와 중국인의 마음이었다. 이 말은 곧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만보산 사건 이후 멀어졌던 한국인, 그리고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인의 지지를 회복하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과 중국이 대일전선에 같이 설 가능성을 다시 만든 것이다.
-1부 상해에서 독립을 외치다 〈일본 천황을 저격한 이봉창의 결단〉
박물관 건물이 있는 마당에는 우리나라의 소녀와 중국의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슬프지만 의미 있는 조각이 있다. 조각의 이름은 〈한중 평화의 소녀상〉으로 2016년 제막식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이용수 할머니와 중국의 진련촌陣蓮村(천롄촌) 할머니가 참석했다. 두 소녀상의 그림자가 주는 메시지도 특별하다. 우리나라 소녀의 그림자는 깨져 있다. 꼭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꿈이 깨져버린 비참한 상태를 표시하는 것 같다. 그 옆에 중국 소녀가 걸어와 곁에 앉은 것처럼 발자국이 표시되어 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래도 나누면 나을까. (중략) 다시 보니 두 소녀상 옆에 빈 의자가 하나 더 있다. 소녀들과 함께할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앉을 자리다. 그리고 앞의 글에 덧붙인 한마디. “We can forgive, but we can never forget.” 그렇다. 잊지 않아야 용서할 수 있지 않은가. 잊어버린다면, 역사를 잊는다면 그들이 사죄를 해오더라도 용서할 방법이 없다.
-1부 상해에서 독립을 외치다 〈한국과 중국의 소녀가 나란히 앉은 풍경〉
마침내 11월 3일,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경 연화지 청사 계단에 모였다. 뒤편에 대형 태극기를 교차시켰다. 기나긴 임시정부를 마감하는 상징적 자리,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광복을 맞이한 벅참,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감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었으리라. 주석 김구를 가운데 두고 국무위원들이 중심에 섰다. 그리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동안 임시정부 요인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도 불러모았다. 맨 마지막에는 임시정부 경비를 하던 경위들도 불렀다. 한 명이라도 더 사진에 들어가야 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한 장 더 찍었다. 청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꼬마 심현석도 이때 사진에 잡혔다. (중략) 이렇게 꿈에도 그리던, 그리고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소중한 나라라고 알려주던 고국으로 귀국을 했다. 거창한 환영식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 고생을 알아주기만 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지 거의 1년이 다 지나 도착한 그들을 대하는 고국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3부 독립전쟁, 그리고 해방이 오다 〈아! 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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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 시크릿 파일
박영규 | 옥당북스 | 2019-03-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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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 시크릿 파일
박영규 | 옥당북스 | 2019-03-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저자 박영규가 열어젖힌 조선왕 시크릿 파일
지금까지 알던 조선왕은 잊어라!
조선시대 왕들은 우리에게 친근하다. ‘뿌리 깊은 나무’(세종대왕), ‘이산’(정조), ‘왕의 남자’(연산군), ‘광해’(광해군) 등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다뤄진 덕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 왕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 박영규는 신간 『조선 왕 시크릿 파일』에서 “지금까지 알던 조선 왕은 잊어라!”라고 외친다. 저자는 그들의 업적이 아니라 인성과 사생활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 왕들의 강인하고 포용적인 모습과는 다른 지극히 인간적이고 색다른 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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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참모로 산다는 것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19-01-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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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참모로 산다는 것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19-01-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5-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 신병주 교수가 참모의 정치를 말하다
건국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정도전에서 실록에 삼천 번 넘게 등장하는 송시열까지
역사 속 진정한 참모를 통해 현재의 답을 찾다
조선시대의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기보다 참모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정을 운영해왔다. ‘참모’라는 키워드는 ‘왕’과 함께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축이다. 저마다 다른 배경 속에서 즉위한 조선의 왕에게는 각각의 국정 목표와 방향이 있었고, 그 왕에게 발탁된 참모들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량을 발휘하면서 왕권을 견제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룬 치열했던 40명의 참모 인생은 전체로서의 조선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크고 작은 작품으로 접해왔던 조선시대 인물들의 단편적인 캐릭터가 스쳐 지나가면서 조선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큰 의미를 던져주는 조선시대 참모들의 삶
500년 전의 조선시대, 시간적 거리가 무색할 만큼 정치가 움직이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 정치를 닮아있다. 오늘날의 시대에도 여전히 리더와 그 참모들의 갈등은 당쟁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예법과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 드러나는 이권 다툼과 자신들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팽팽한 이해관계는 어느 시대에나 공통된 모습이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최측근에서 왕을 보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히 견제하기도 했던 조선시대 참모들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제공할 것이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조선의 탄핵 군주, 연산군과 광해군을 중심으로
왕권과 신권의 갈등을 다루었던 신병주 교수, 제대로 된 정통 조선사를 집필하다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신병주 교수가 2017년에 출간한 ≪왕으로 산다는 것≫에 이어 ≪참모로 산다는 것≫을 출간했다. 전작이 왕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살폈다면 ≪참모로 산다는 것≫은 왕을 도와 조선을 이끌어간 참모를 중심으로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본 조선의 역사다. 조선시대 굵직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총 7개의 파트로 나누어 대표적인 40명의 참모를 다루었다.
‘1부 새 왕조를 설계하다’에서는 건국의 최대 공로자였지만 신권 중심주의를 주장하다 결국 제거되는 운명의 정도전, 이방원이 왕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하륜, 세종과 함께 태평의 시대를 이끌었던 황희, 신분을 넘어 과학 조선을 이끈 장영실,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고자 한 사육신 성삼문, 성삼문과는 엇갈린 행보를 보이며 역사에 변절자로 남았지만 누구보다 유능했던 관료 신숙주를 다루었다. ‘2부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에서는 조선 초기 최고의 문장가이자 관중과 포숙의 관계였던 서거정과 강희맹을 참모이자 문장가의 관점에서 살폈고, 간신, 칠삭둥이 등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세조를 보좌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면모를 보인 한명회, 피비린내 나는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쓴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과 그의 제자 김일손, 《악학궤범》을 편찬한 대표적인 예술 분야의 참모 성현을 다루었다.
‘3부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에서는 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든 시세 참모 장녹수, 폭정에 기름을 부은 간신 임사홍과 〈대은암〉 속 익살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중종의 간신으로 기억되는 남곤, 중종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다가 ‘주초지왕’의 역모 혐의를 쓰고 나락으로 떨어진 조광조, 호남 사림의 자존심 김인후와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활약한 조식을 다루었다. ‘4부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다’에서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던 ‘십만양병설’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중심으로 선조 시대 최고의 참모 이이를 살폈고, 선조와 애증의 관계, 가사문학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 정철. 문신이자 돌격적인 의병장 조헌, 일본 장수 ‘사야가’에서 조선의 충신이 된 김충선, 7년에 걸친 임진왜란 과정을 《징비록》으로 남긴 유성룡을 다루었다.
‘5부 광해군의 그림자 속 참모들’에서는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을 유지했던 뛰어난 외교 참모 ‘오성과 한음’의 이덕형, 그 개혁적인 성향으로 실록에 매우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홍길동전》의 허균, 인조반정 이후 사라진 북인 세력의 중심 광해군의 남자 정인홍, 상궁의 신분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한 광해군의 참모 김개시, 조선의 관료로서 최고위 직책인 영의정을 여섯 번 지낸 이원익을 다루었다. ‘6부 명분과 실리 사이, 인조반정’에서는 광해군의 폭정에 반정을 일으켜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를 중심으로 명과 청의 갈등 속에서 조선이 처한 상황과 병자호란의 과정과 극복을 다루었다.
‘7부 왕권이냐, 신권이냐? 당쟁과 갈등’에서는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숙종시대 정치공작의 달인 김석주. 독특한 글씨풍으로도 알려져 있는 소신과 원칙의 학자 허목, 정치와 사상의 중심이자 신권의 핵심이었지만 숙종에게 사약을 받은 송시열. 현실적인 정치가이자 《구수략》을 쓴 조선시대 최고의 수학자 최석정. 개혁정치를 추구하던 정조의 참모이자 실학자로 이름을 남긴 정약용 등을 다루었다.
이 책에 소개된 참모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정치적, 학문적 능력을 발휘하거나 국난을 극복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왕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국정 농단의 주역이 된 참모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왕조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도래했지만, 조선시대 참모들이 갖추었던 덕목들은 반복이라는 역사의 속성 앞에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는 물론 조선을 공부해야 하는 목적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서도 쉽고 재미있고 정확하게 조선의 역사를 한눈에 알려주는 유용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 본문 속으로
정도전은 《시경》 〈주아〉 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미 술을 마셔서 취하고 큰 은덕으로 배가 부르니 군자께서는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리라”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으로 정했음을 아뢰었다. 정전인 근정전, 정무를 보는 사정전, 침전인 강녕전 등의 이름도 정도전의 구상에서 나왔다. 태조는 자신의 손과 발이 된 정도전을 깊이 신뢰하였고, 정도전은 태조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것이다. 태조는 경복궁으로 이름을 지은 지 약 3개월 후 점을 쳐서 길일로 잡은 12월 28일 마침내 이곳에 들어왔다. 길하다는 날을 골라서 만든, “군자 만년 큰 복을 누리리라”는 칭송으로 가득했던 경복궁은 태조가 들어가 산 지 채 3년도 못 가서 골육상쟁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비극의 공간이 되고 만다.
- ‘정도전, 혁명가에서 왕조의 설계자로’ 중에서
태종의 남자로서 하륜이 보여준 대표적인 능력은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전해 온다. 태종이 왕이 된 후, 아들에게 불만을 가진 태조는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갔고, 태종은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번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태조는 오히려 이들을 죽이는 것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함흥차사’ 고사의 유래다. 태조가 마음을 바꾸어 서울로 돌아오는 날 태종은 아버지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하륜은 태조의 분노가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을 의식하여 장막의 기둥을 크게 만들자고 했고, 놀랍게도 태조가 태종을 향해 쏜 화살은 하륜이 미리 대비한 나무 기둥에 박혔다. 태종을 구한 하륜의 기지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 ‘하륜, 태종의 킹메이커’ 중에서
몇몇 일화 때문에 황희에 대해서는 모든 의견을 수용하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기억하지만 실제 황희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태종이나 최고의 성군 세종 앞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았다. 황희에게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훨씬 더 많았고, 세종은 참모로서 황희의 이런 능력을 잘 활용하였다. 황희는 창업에서 수성으로 나아가는 태종과 세종 시기에 명참모로 활약했고 부드러우면서도 할 말은 다했기 때문에 명재상으로 남아 있다. 특히 오랜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적 균형 감각의 보유자였다는 점은 그의 최대 장점이었다. 황희는 사후에 세종의 묘정에 배향됨으로써 ‘세종의 남자’임을 확실히 했다.
- ‘황희와 태종, 그리고 세종’ 중에서
자신을 후원하고 배려한 세종에게 장영실이 최고의 보답을 한 성과물이 바로 자격루[自擊漏]다. 세종은 어떤 왕보다도 시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계 제작에 총력을 기울였다. 앙부일구라고 불리는 해시계에서 일단의 성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해시계는 해가 없는 밤이나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작동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세종과 장영실은 이러한 한계 극복을 위해 힘을 합했고, 이것은 마침내 자격루의 발명으로 이어졌
다. 자격루는 물을 넣은 항아리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나오게 만든 기계였다. 물을 보내는 그릇 넷과 물받이 두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떨어지는 물방울의 양을 이용해 시각에 따라 저절로 종이나 북, 징을 울리게 한 것으로, 일종의 자동 시간 알림 장치였다. 이름을 ‘자격루’라 한 것도 ‘스스로 쳐서 울리는 시계’라는 뜻이었다.
- ‘세종의 믿음에 보답한 과학자, 장영실’ 중에서
위훈삭제를 시도하며 노골적으로 훈구파의 기득권을 박탈하려는 조광조 세력의 움직임에 훈구세력들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왕실이나 정치권에 심어둔 정치세력을 적극 활용해 총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훈구파는 최고의 권력자 왕과의 만남을 자주 가지며 조광조의 위험성을 기회되는 대로 알렸다. 경연을 통해 왕을 압박하는 조광조가 왕권까지 넘보는 인물임을 거듭 강조했다. 남곤, 심정, 홍경주 등 훈구파들은 후궁인 경빈 박 씨와 희빈 홍 씨를 통해 중종에게 조광조를 모함하는 한편, 궁중 나인을 시켜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走와 肖를 합하면 趙가 되므로 조 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는 글씨를 유포시켰다. 나뭇잎에 새긴 글씨에 꿀을 발라 벌레가 갉아먹게 한 것이다. 한때는 최고의 참모였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조광조의 전횡(권세를 혼자 쥐고 제 마음대로 함)과 왕인 자신을 압박하는 조광조의 개혁 드라이브에 지친 중종은 이제 더 이상 조광조의 후원자가 될 수 없었다.
- ‘조광조, 개혁가의 꿈과 좌절’ 중에서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쓴 것은 초나라 회왕, 즉 의제의 죽음을 조문하기 위해서였는데, 숙부인 서초 패왕 항우에게 희생당한 어린 조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의제를 조문하는 내용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제자인 김일손은 스승의 이 글이 사림파 의식을 가장 잘 반영했다고 판단하여 사초(실록의 원고)에 실었다. 그러나 이 사초 문제는 1498년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었고, 결국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는 화를 입었다. 그러나 이 희생은 역설적으로 사림파 영수 김종직의 이름을 후대까지 널리 기억하게 하였다.
- ‘영남 사림파의 영수이자 문장가 · 관료, 김종직’ 중에서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에는 각각 유성룡의 졸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공로와 과실이 교차하고 있다. 유성룡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이외에 “왕의 신임을 얻은 것이 오래였지만 직간했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정사를 비록 전단專斷(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함)하였으나 나빠진 풍습을 구하지 못하였다”거나,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힘이 부족하고 지론이 넓지 못하여 붕당에 대한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는 등 부정적인 언급이 많은 것은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편찬이 유성룡에 대한 반대 세력에 의해 기록되어 있는 점도 간과할 수가 없다. 《선조실록》이 북인의 관점에서, 《선조수정실록》이 서인의 관점에서 기록되어, 남인의 영수인 유성룡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인색한 것이다. 피난을 간 선조를 대신하여 전시 정부 최고의 참모로 활약한 유성룡과 그가 남긴 임진왜란에 대한 반성의 기록, 《징비록》은 위기의 시기 참모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위기 극복의 참모, 유성룡과 《징비록》’ 중에서
허균에 대한 평가는 조선시대 내내 부정적인 흐름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오늘날에는 점차 그의 진보적인 사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대두하고 있다. 허균의 비극적인 생애는 무엇보다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불여세합’하는, 즉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강한 기질과 혁신적인 사상, 그리고 자유로운 행동가적인 면모에서 기인하였다.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허균은 그 세상을 자신에게 맞도록 바꾸려 했지만, 생각만 앞서갔던 무리한 시도는 역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때는 광해군의 큰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은 왕을 배신함으로써 처형으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러나 성리학 질서만이 지배되던 사회의 흐름을 바꾸어보려 했던 허균의 시도는 개혁의 불씨로 남아 진보적인 사상이 자리를 잡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불후의 명작 《홍길동전》의 유통과 보급은 그가 지향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어느 정도 실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 ‘허균과 광해군, 총애와 배신 사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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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당쟁의 한국사
김종성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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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당쟁의 한국사
김종성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의 상식을 깨트리는
흥미진진한 한국의 정치 권력사 이 책은 도구의 재료를 통해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역사를 구분하는 시대 구분법처럼 권력 투쟁의 방법에 따라 창검의 시대, 사약의 시대, 투표의 시대로 한국사 전체를 나눠 살펴보고 있다. 창검의 시대는 창검으로 대표되는 군사력으로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로, 고조선부터 조선 전기까지 해당한다. 이 시기는 또한 신선교와 불교로 대표되는 종교 간의 다툼이 치열한 시기이기도 했다. 고구려의 서진주의와 남진주의의 다툼 또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정치 투쟁이었다. 중국 쪽으로 진출하려던 서진주의를 파기하고 한반도로 진출을 꾀한 남진주의를 선택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좁은 땅에 갇히게 되었다. 서진주의는 후에 고려의 북진주의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으로 계승되고, 정도전의 요동 정벌론까지 이어지지만 결국 한국사에서 주도적인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정변을 통한 정권 교체는 조선 초기 왕자의 난까지 이어지다가 조선 중기부터 점차 사라지게 된다. 사약의 시대는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로, 무력 투쟁보다는 사약으로 대변되는 합법적인 정치 투쟁으로 정적을 제거하던 시기다. 고려 광종 때 과거제 실시 이후 등장한 문신들은 점점 더 힘을 키워 나가다가 고려 말에 신진사대부라는 새로운 지도층이 되어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이후 정권에 가담했던 신진사대부들은 훈구파가 되고, 정권에 가담하지 않고 지방에 은둔했던 신진사대부들은 사림파가 되어 서로 파벌 투쟁을 벌이게 된다. 이 투쟁에서 사림파가 승리한 이후, 다시 사림파는 여러 당파로 나뉘어 정쟁을 이어간다. 이후 영조와 정조가 탕평 정치를 펼치며 여러 당파들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되지만 정조 사후 왕권과 함께 신권 역시 몰락하면서 왕실의 외척들이 득세하는 세도정치로 이어지게 된다. 투표의 시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로 SNS나 인터넷상의 여론전을 주무기로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국민주권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고취되고 이어 광복과 더불어 여러 정당이 난립하게 된다. 성숙하지 못했던 민주주의 의식은 3·15 부정 선거로 이어지고 4·19 혁명을 통해 다시 자리를 잡아 가는가 싶었지만 5·16 쿠데타로 민주주의는 다시 후퇴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6월 항쟁에 이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시민들은 2016년 말과 2017년 초 촛불 집회를 통해 주권자로서의 힘을 제대로 보여 주게 된다. 한편 투표의 시대는 여러 온라인 매체에서 정치적 행위가 많이 이뤄진 시기이기도 하다. 노사모, 일베, 가짜 뉴스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여론전을 잘 보여 준다. 저자는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면서 그 전후에 일어났던 정치 파벌들 간의 다툼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한국의 정치 권력사를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역사는 왜 그들을 승자로 택했는가? 단군 신화 속 곰족과 호랑이족의 분쟁부터 촛불 집회까지 파벌로 본 한국사 저자는 고조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 권력사를 설명하면서 정사에 입각해 딱딱하게 서술하지만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을 깨트리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중간중간 소개하면서 좀 더 다각적으로 사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흔히 사약이라고 하면 먹는 즉시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연려실기술』의 기록을 보면 임형수라는 인물은 사약이 든 독주를 열여섯 잔이나 먹고도 죽질 않아 결국 교살당해야 했다. 그 밖에도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소호금천씨’의 행방을 쫓아 흉노족의 일부가 가야와 신라의 왕족으로 참여해 우리 고대사에서 정치 파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나 독립운동을 벌였던 삼한 최고의 명문가인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일화, 6월 항쟁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레이건 전 대통령의 친서 수령을 거부하자 청와대 우편함에 넣든지 아니면 대통령 집무실 문틈으로 밀어 넣으라고 미국 대사에 조언을 했다는 일화 등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또한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와 알자회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식으로 변천을 거듭했는지 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에 얽힌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한국의 정치 투쟁사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비선 실세들을 다루어 당시의 정치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에는 미실 말고도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비선 실세들이 여럿 있었다. 광해군 때 정치 막후에서 활약했던 김개시라는 궁녀 역시 미실 못지않은 힘을 휘둘렀다. 광해군은 국정 전반에 대해 김개시와 자주 의논을 했는데 심지어 정권의 2인자였던 이이첨마저도 그녀로부터 결재를 받아 일을 추진할 정도였다. 일개 궁녀가 대북파를 이끌었던 영수보다도 더 우위에 서서 권력을 전횡한 것이다. 조선 시대 때 왕자에게나 붙는 ‘군(君)’이라는 칭호를 받은 유일한 무당인 진령군 역시 비선 실세의 힘을 보여 준다. 임오군란 때 피신한 명성황후에게 찾아가 궁궐로 복귀하는 날짜를 정확히 예언하여 신임을 얻은 진령군은 이후 인사권에 관여할 정도로 승승장구한다. 고관대작들이 진령군을 어머니 혹은 누님이라 부르며 따를 정도였다. 유교 국가에서 선비들이 천한 존재로 무시했던 무당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다. 이러한 비선 실세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논할 때 미국이란 나라를 빼고서 말하긴 힘들다. 특히 제임스 릴리 전 미국 대사는 6월 항쟁을 성공시키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원래 제임스 릴리는 시위에 나선 야당과 국민을 다독이고 전두환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공작 정치를 펴려 했다. 하지만 중산층까지 참여한 시위대의 열기를 보고는 마음을 바꿔, 반대로 전두한 정권을 압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 릴리의 공작 정치가 빛을 발한다. 이처럼 고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한국의 정치적 사건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비선 실세 같은 여러 뒷이야기들까지 함께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국사의 새로운 시각을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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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역죄인 박열과 가네코
김세중 | 스타북스 | 2017-06-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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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역죄인 박열과 가네코
김세중 | 스타북스 | 2017-06-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조선 청년 ‘박열’과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의 열정적인 삶과 사랑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잡지 형태나 잡학사전식으로 정리하면서 그 당시 단가로 불리는 하이쿠 형식의 간결한 시를 여러 편 실었으며, 부족한 부분은 사진을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진평전의 성격을 가미했다. 따라서 이 책은 사진만 봐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생애와 사상을 읽을 수 있으며 그들의 문학적 능력과 소양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천황체제에 맞선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불령선인으로 말 안 듣는 조선놈 중 가장 버릇없는 조선놈
대역사건? 니들이 원한다면 영웅이 되어주마!
그런대 니들이 날 감당할 수 있겠어!!
사형이 선고됐다.
“재판장 수고했네.”
박열은 그렇게 말했고 가네코 후미코는 만세를 불렀다.
그들은 그렇게 사형을 쟁취했던 것이다.
그때 박열의 나이 스물 둘, 가네코 후미코는 스물의 아나키스트였다.
〈조선청년〉에 실린 박열의 “개새끼”를 가네코 후미코기 읽으면서 이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시작된다.
조선 청년 ‘박열’과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의 불같은 사랑은 무정부주의 사상을 지닌 동지적 연대감으로, 천황제 제거의 사명감을 갖게 한다. 천황부자를 폭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폭탄을 구입하려는 과정에서 ‘관동대지진’이 터진다. 대지진으로 인해 폭동과 살인, 방화 등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는데 이 혼란을 틈타 일본 경찰과 민간조직인 자경단은 조선인들을 무더기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모든 책임을 조선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버렸다. 그 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체포되는데 조사과정에서 천황부자 폭살계획이 밝혀지고 대역사건으로 기소가 되면서 지루한 재판이 시작된다.
그리고 재판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가 발생하고 신문과 잡지가 대서특필하는 사건들이 전개되면서 일본 사회의 관심을 집중 시켰다. 이들의 재판 과정에서 일본 열도를 뒤흔든 사상 초유의 스캔들이 폭로된다. 또한 가네코 후미코의 자살에 대해서는 옥중 임신설이 터져 나와 타살의혹까지 더해져 야당 국회의원들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희대의 사건으로 남겨지게 된다. 박열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90% 실화라고 말할 정도로 재판 과정에서 희한하고 기묘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두 사람의 너무나 당당하고 냉철한 이성과 기개로 재판부와 맞서는 것을 보는 젊은이라면 피가 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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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안재성 | 인문서원 | 2017-07-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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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안재성 | 인문서원 | 2017-07-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길들여지지 않는 조선인 청년 혁명가,
제국주의 법정에서 격렬한 사상전쟁을 벌이다!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려거든 죽여라.
그러나 나의 정신이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
- 사형 선고를 받은 박열이 한 말
제국주의 법정을 뒤흔든, 그야말로 조선이 낳은 불온한 사상가다운 ‘사이다’ 발언이었다. 박열(朴烈). 압제와 억압, 그 어떤 것에도 순종하거나 굴종하지 않는 뜨거운 청년이었다.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월사금도 제대로 마련하기 힘든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학문을 향한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나 시대의 공기가 책만 파고들도록 허락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였던 조선의 청년이었다.
이름부터 이글이글 불타오르듯 뜨거운 이 남자는 일본 제국주의의 아이콘인 왕세자와 일왕을 폭살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일본 제국주의 법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선전하는 놀라운 기개로 식민지 조선 민중에게 희망을 심어준 열혈 항일투사였다. 재판을 맡은 판사가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그를 가두었던 형무소의 소장이 감화되어 훗날 참회하고 자신의 아들을 양자로 보내기까지 한 ‘무서운’ 조선인이었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는 패기만만한 청년 혁명가에서 북으로 간 항일투사로 마침표를 찍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록한 책이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재판장에게 제출한 논문의 한 구절이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해도 우리들은 이처럼 잔인한 운명에 대하여 순종할 수는 없다.”
역사는 박열의 삶을 일본 왕세자 결혼식에 폭탄을 던지려고 했다는 ‘대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장장 8,000일, 22년 2개월에 이르는 기나긴 옥살이를 한 불굴의 항일투사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최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삶을 마감한 곳이 북녘 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지 24년 만에 날아온 소식은 ‘부음’이었고, 대한민국은 뒤늦게 그의 공로를 재평가하여 추념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잔인한 운명에 대하여
순종할 수는 없다”
박열은 윤봉길 의사나 이봉창 의사처럼 폭탄을 실제로 던진 실행범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폭탄을 입수한 것도, 계획서가 발각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머릿속에 계획을 세웠다는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섰으나, 박열은 기다렸다는 듯이 판사를 사상논쟁의 상대로, 법정을 사상을 펼치는 선전의 장으로 삼는다. 총 21회의 예심, 2년여에 걸친 긴 재판기간 동안 그는 일왕으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주의를 마음껏 조롱하고, 정면으로 부정한다.
박열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함께 나오는 이름이 있다. 가네코 후미코. 한국명 박문자인 이 여성은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으로 함께 투쟁하다 옥중결혼식으로 정식 부인이 되었으나, 감옥에서 석연치 않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야말로 불꽃의 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23년의 짧지만 뜨겁고 치열한 삶을 산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고 “만세!”를 외치고, 무기징역으로 감한다는 은사장을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릴 정도로 두려움을 모르는 혁명가였다. 예심 재판정에서 판사를 향해 자신의 사상을 거침없이 전개하여 일왕 부자 폭살 계획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당찬 여성이었다.
“지상의 평등한 인간생활을 유린하고 있는 권력의 대표자는 천황이고 황태자이다. 내가 이제까지 황태자를 노린 이유는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열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카테고리에서는 ‘아나키스트’로 규정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박애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주의나 주장보다도 그들이 내세운 최고의 가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었다. 평생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꾸었던 혁명의 꿈과 재판정에서 함께 외쳤던 ‘자유와 평등’은 대한민국이 일구어낸 민주주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될 가치다. 그러므로 일제에 맞서 싸운 수많은 항일투사들 가운데 박열이라는 투사의 존재가치에 대한 작가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참으로 적절하다.
“박열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재판정에서 보여준 그의 기개 때문이다. 또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민의 깊이 때문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투쟁과 굴종 등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은 제 문제들을 고민하고 회의하고 또 질타하는 그의 연설문과 논문은 오늘의 현실에도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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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정진원 | 맑은소리맑은나라 | 2018-01-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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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정진원 | 맑은소리맑은나라 | 2018-01-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삼국유사에 현대적 해석과 스토리텔링을 담아 엮은 책이다. 삼국유사 속 다양한 인물에 성격과 개성을 부가시켜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삼국유사 곳곳에는 관세음보살이 동네 할머니나 섹시한 처녀 등 다양한 배역으로 출연하고 있는데, 우리의 친숙한 이웃으로 화현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모습에서 사소하고 시시하게 보는 우리 일상에 대한 마음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불교여성개발원 '우바이예찬'과 통도사 사보 '등불' 등의 연재분의 내용을 추가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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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18-03-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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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18-03-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는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500년 조선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조선시대에도 국민투표가 있었다”
현재를 되새기게 하는 역사 속 현장과 사건!
경국대전에 명시한 지역별 인재할당┃신분 제약을 완화해 인재를 등용한 정조
척화파와 주화파가 대립한 남한산성┃태종과 신덕왕후 악연의 현장 청계천
역사는 현재에 새로운 방향과 의미를 제시할 때 빛을 발한다. 민정을 살피지 않다가 반정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위한 연산군이나 인터넷도 없던 시절 ‘국민투표’를 통해 세법을 집행한 세종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은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이 현재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지,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역사의 현재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현장성’이다. 집현전이 세종 대 학문의 산실이었음은 모두가 알지만 어느 곳에 위치해 있었는지는 대부분 모른다. 이 책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이 옮겨진 연유와 흔적,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 배경과 8일간의 일정 등을 추적하며 과거와 현재의 마중물로서 역사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했다. 500년 조선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를 지금 만나보자.
국민투표에서 지역별 인재할당까지, 시대를 앞선 정책들
조선시대 다양한 정책은 현대사회에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민주사회와 전통시대를 구분하는 지표 중의 하나가 투표다. 그런데 1430년 세종이 이미 국민투표를 통해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공법’을 집행한 것은 놀라움을 준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은 과거시험의 지역별 합격자 수를 정해두었는데, 이는 오늘날 공공기관의 지역별 인재할당 정책을 떠오르게 한다. 한편 강직한 성품으로 반대파들에게까지 추천받은 영의정 이원익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공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민주사회가 도래했지만 여론, 도덕과 청렴,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처럼 왕조 시대에 요구되었던 덕목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은〉 민초의 생활상부터 왕실의 암투까지 미시사와 거시사를 아우르며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했다.
500년을 넘어 현재에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
단순히 이야기만 아는 것을 넘어, 사건이 벌어진 현장과 유물을 목격했을 때 역사는 훨씬 생생하게 와 닿는다. 현재 서울 정독도서관 근처에는 이곳이 조선시대 과수원인 장원서였음을 알리는 비석이 남아 있고, 반정의 출발점이었던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공신의 명단이 걸려 있다. 태종은 세자로 책봉되었던 배다른 동생 방석의 생모인 신덕왕후를 증오했다. 태조가 죽자 신덕왕후의 묘소인 정릉의 파괴와 이전을 지시했고, 청계천에 홍수가 나자 정릉의 병풍석과 신장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해 온 백성이 이를 밟고 지나가게 만들었다. 지금도 광통교에는 정릉의 돌을 다리에 석축으로 사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을 짚어가며 과거와 현재와의 거리를 좁히고자 했다.
세계적인 기록유산과 문화재를 통해 살펴보는 시대상
우리 선조들은 기록물을 편찬하고 보존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한국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16건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총 10건이 조선시대에 생산됐다.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이와 같은 기록물과 문화재를 통해 놓치기 쉬운 세밀한 부분도 살펴보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남성들은 육아에 무관심했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16세기 학자 이문건이 손자에 대한 감흥을 남긴 《양아록》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아버지들의 자식사랑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육아일기를 넘어서 13세의 손자가 술을 즐기는 이야기나 천연두로 자식을 잃은 얘기 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도 알 수 있다.
숨어 있는 이야기까지 깊게 바라볼수록, 역사와 현재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넓어진다. 〈화성능행도 병풍〉에도 기록되어 있는 정조의 화성행차는 표면적으론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 화성 공사의 현장 시찰이었지만 뜯어보면 정조의 속내가 더 많이 숨어 있다. 정조는 8일간 약 6,000명이 참석한 규모의 행사에서 왕위에 오른 지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한편, 대규모 군사동원과 훈련을 통해 수도권 방위 체계를 점검하고자 했다. 더불어 화성을 오가는 길에 백성들의 민원을 살피고 해결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역사는 현재에 되살아날 때 의미가 있다. 역사의 현장과 기록에 담겨 있는 사건들, 시대를 빛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역사가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지,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에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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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엔지니어 정약용
김평원 | 다산초당 | 2017-10-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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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엔지니어 정약용
김평원 | 다산초당 | 2017-10-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17년간의 연구 끝에 200여 개의 도판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낸 조선 근대 공학의 개척자
국내 최초 유네스코 선정 올해의 인물 ‘정약용’
조선 최고의 엔지니어로 재조명하다!
정약용을 실학자의 틀에 가두었던 시각에서 벗어나 조선의 엔지니어로 재조명한 책. 정약용은 세계가 인정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이지만 우리는 그를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한정지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는 청년 관리 시절 엔지니어로서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며 신도시 수원 화성을 설계했고 거중기를 비롯해 다양한 건설 기계를 발명했다. 수많은 저서를 남긴 것은 유배지로 물러난 뒤의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약용을 학자로 봐야 할까, 엔지니어로 봐야 할까?
이 책의 저자 김평원 교수는 정약용을 엔지니어로 재조명하기 위해 17년 동안 정약용이 직접 쓴 묘지명부터 『조선왕조실록』까지 방대한 사료를 연구하였다. 정약용의 설계와 가장 비슷한 한강 배다리를 추론해 내고, 거중기와 녹로의 모형을 제작하는 등 인문학과 공학을 넘나들며 치밀하게 연구한 결과를 이 책에 오롯이 담았다. 정약용의 업적을 토목·건축·도시·기계·자동차·조선 공학 등 여섯 개 분야로 나누어 200여 개의 도판과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정약용이 활동하던 시기에 태동하던 조선 근대 공학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짚어 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던 정약용의 공학 업적을 생생하게 접하고 세계가 인정한 조선 최고의 융합형 인재 ‘엔지니어 정약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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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보다 치열했던 전쟁 이후의 한국사
이상훈 | 추수밭 | 2018-11-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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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보다 치열했던 전쟁 이후의 한국사
이상훈 | 추수밭 | 2018-11-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장면 1: 1135년 2월
김부식이 서경을 공략함으로써 묘청의 난이 정리되었다. 난에서 가장 강하게 항거한 자는 ‘서경역적’이라는 네 글자를 이마에 새겨 해도로 보냈고, 그 다음에 해당하는 자는 ‘서경’ 두 글자를 새겨 향과 부곡으로 보냈다. 한국사에 ‘문신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후 문신을 받은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고려인들 사이에서 문신은 형벌이 아니라 일종의 유행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를 두고 송 시대 서긍은 ‘고려인들은 몸에 그림을 그리고 양반다리를 즐겨한다’고 회고했다.
장면 2: 1637년 2월 24일.
조선 인조가 청 숭덕제에게 삼궤구고두례의 예를 표하면서 전란이 끝났다. 조선은 국력이 고갈되는 국제전을 연이어 거치면서도 왕조를 이어갔다. 조선 또한 왕조나 막부가 교체되던 주변국들 못지않게 큰 변화를 겪었지만, 그 종착지는 역설적이게도 기존 시스템에 대한 보수였다. 이를 위해 조선은 향촌을 기반으로 사회를 촘촘하게 재건해나갔다. 그 절정은 종갓집의 폭발적인 증가와 전통의 발명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있는 상당수 문화 가운데에는 왜란이나 호란 이후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장면 3: 1905년 5월 27일
러일전쟁 이후 일본과 미국 사이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조인되었고 이어서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한다.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일제가 이른바 다이쇼데모크라시의 분위기 아래에서 한반도를 문화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담배와 홍삼의 제조 전매였다. 1914년 11월 조선연초주식회사는 《매일신보》에 당당하게 흡연하는 신여성을 그린 광고를 게재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무릇 부녀자란 숨어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강요가 예절로 통용되는 시절이었다. 이후 조선은 양담배를 문 끽연가들의 세상이 되었다. 이후 담배와 인삼을 국가가 관리하던 일제강점기 시절의 방식은 2002년 12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민영화되기까지 이어졌다.
“전쟁이 끝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전쟁 이후, 결정적이지만 고요했던 순간들의 역사
· 신라는 전란 이후 위기의 시절을 어떻게 전성기로 바꿨을까?
· 귀주대첩 이후 살아남은 거란인들은 고려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 전란이 끝난 다음에 왜 종가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을까?
· 러일전쟁 이후 무엇이 조선 신여성들의 흡연율을 높였을까?
· 6.25전쟁 종전 즈음 일본은 한국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전략전술의 한국사》,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등 학자로서의 엄밀함을 견지하면서도 친절한 방식으로 전쟁의 역사를 대중에게 소개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역사의 변곡점 가운데 하나인 주요 전쟁이 아닌 종전 이후의 역사들로만 아우른 한국사 신간을 출간했다. 전쟁 이후의 시간들은 한국사에서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전쟁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전쟁 이후
인류의 역사는 갈등의 연속이며, 전쟁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갈등 해소 방식이다. 따라서 역사를 설명하면서 인간의 본성, 문화, 과학, 시대정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전쟁이 꼽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쟁의 목적은 환경과 상황을 전쟁 전과는 다르게 설정하는 데 있다. 다만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역사상 상당수 전쟁에서 그 결과란 이미 전쟁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승패를 가늠하는 것은 부차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전략이 엇갈리는 전쟁의 절정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난 뒤였다. 역사의 방향을 결정지은 전쟁의 의의란 전쟁 자체보다는 전쟁 이후의 역사들, 지리하고 미지근한 시간들을 살펴야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전쟁보다 치열했던 전쟁 이후의 한국사》는 종전 이후의 역사, 전쟁이 끝나고 난 뒤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후일담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사를 결정지은 주요 전쟁들이 어떻게 마무리되어 승자와 패자는 각각 어떤 미래를 선택했는지, 그 선택들이 어떤 역사를 불러왔는지 살핌으로써 전쟁 이후라는 고요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을 통해 한국사 전체를 꿰어 조망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에서 패배가 오히려 약이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승리가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또 패배라도 잘 마무리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사나, 좋은 기회를 내분으로 놓치는 역사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이 책에서는 고조선의 멸망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상 대표적인 전쟁들을 선별한 다음, 배신자들이 더 당당하게 살았다는 씁쓸한 후일담부터 전란 이후 종가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역사의 나비효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 전쟁 이후의 역사,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처음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전쟁 없이 이야기하는 전쟁의 역사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고조선 시기에서 시작해 통일신라(고대)와 고려, 그리고 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이 잠시 멈춘 현대 시기(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바꾼 주요 전쟁, 전투, 전란들과 그 이후의 역사들을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시기, 32가지 에피소드로 정리했다.
1. 고대, 전쟁 이후의 의문들
고대 시기 전쟁 이후의 역사들에서는 멸망 이후의 드라마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비롯해 고대사를 결정지은 주요 전투들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를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들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고구려 멸망 이후 잡음이 많았던 논공행상 과정과 같은 전쟁 이후 후일담부터,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언급한 이후 오늘날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김해병서》의 정체에 대한 가설, 김흠돌의 반란 이후 혼란의 시기를 전성기로 바꾼 성덕왕의 위기관리 등을 정리했다.
2. 고려, 전쟁 이후의 이야기들
고려는 오늘날 여러 나라들이 한국을 일컫는 이름인 코리아의 기원이지만 한국사에서 가장 소외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고려 시기 전쟁 이후의 역사들에서는 지금 여기와 겹칠 법한 이야기들을 주로 소개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문신형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종의 유행이 되었던 현상부터 침략자로 들어와 포로로 눌러앉게 된 외지인들이 고려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몽골에게 수탈당하는 고려인들에 대한 역사를 다뤘다.
3. 조선, 전쟁 이후의 드라마들
조선은 한국 근현대사와 맞닿아 있으며 사극이나 역사소설 등을 통해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시기다. 조선 시기 전쟁 이후의 역사들에서는 연이은 전란을 겪은 이후 화력에 집착하게 된 조선의 분위기부터 종갓집이나 장자상속, 제사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들이 사실은 왜란이나 호란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발명된 것이라는 지적 등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4. 근현대, 전쟁 이후의 역사들
근현대 시기는 그때를 경험했던 이들이 오늘날에도 남아 그 기억을 전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시간이다. 근현대 시기에서는 한반도 점령 이전 고구려의 역사에 주목했던 조선총독부의 역사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에 의해 조선총독부의 명칭이 ‘고려총독부’로 바뀔 뻔했던 사연부터, 러일전쟁의 결과가 오늘날 ‘담배로 잃은 건강, 인삼으로 되찾자’는 농담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나비효과, 그리고 태평양전쟁 이후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군함도’ 외의 사람들과 6.25전쟁이 정전된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독도를 둘러싸고 또 다른 소리 없는 전쟁을 벌였던 역사들을 소개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
여행을 많이 다녀온 이들이 흔하게 건네는 조언 가운데에는 낯선 곳을 빨리 파악하고 싶으면 그곳의 재래시장으로 가보라는 말이 있다. 서툰 셈과 욕심이 교차되는, 속되지만 그만큼 사람냄새가 진하게 나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역사에 대입하자면 전쟁 이후가 바로 시장과 같은 시간일 것이다.
전쟁 이후의 역사는 대체적으로 구질구질하고, 지루하며, 구차하고 물쩍지근하다. 전쟁이 인간의 하찮음과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영웅과 악마의 시공이라면, 전쟁 이후는 폐허에서 살아남는 상이용사, 배신자, 고아, 과부, 노인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전쟁의 연속이라고 거칠게 정의내린 격언을 받아들인다면, 전쟁 이후는 지옥과 같은 시간을 이겨내고 전쟁 이전으로 주변을 재건하고자 했던, 살아남은 자들의 시간이기도 하다. 과거로 복원시켜 미래를 대비했다는 의미에서 볼 때 전쟁 이후는 전쟁보다 더 치열했던 순간이며, 새로운 갈등이 싹 트고,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은원이 무겁게 가라앉아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는 무서운 시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냈던 이야기’로 살펴보는 한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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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 독살사건 1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1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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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 독살사건 1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1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출간 13주년, 110쇄, 30만 부!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 논쟁적인 대중 역사서
우리 시대의 역사가 이덕일의 대표작 『조선 왕 독살사건』
조선사 최고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대중 역사서의 새 지평을 연 『조선 왕 독살사건』이 출간 13주년, 110쇄, 30만 부 돌파를 기념하여 재출간됐다. 2005년 출간된 초판 『조선 왕 독살사건』의 모체가 되는 『누가 왕을 죽였는가』(1998)까지 고려하면 이 책의 역사성과 생명력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대중 역사서로는 이례적으로 20년 이상 살아남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독자들에게 현대적으로 다시 읽혔다는 얘기다. 그동안 이 책은 중년 남성 독자들만 역사서를 읽는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트리며, 2030 젊은 세대와 여성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남녀노소가 모두 읽는 최초의 블록버스터 대중 역사서이자,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역사 분야 최고의 스테디셀러다.
『조선 왕 독살사건』이 이렇게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으며 오래 읽힐 수 있었던 까닭은 독살설이 단순한 흥미나 호기심을 끄는 소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금과 신하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통해 조선사의 핵심은 물론, 오늘날의 정치구조까지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대체 누가, 왜 왕을 죽이려 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 우리 역사와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각은 180도 달라진다. 온갖 흥미로운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여전히 가장 날카롭고 논쟁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조선 왕 독살사건』이 또 한 번 새로운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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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 독살사건 2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1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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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 독살사건 2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1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출간 13주년, 110쇄, 30만 부!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 논쟁적인 대중 역사서
우리 시대의 역사가 이덕일의 대표작 『조선 왕 독살사건』
조선사 최고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대중 역사서의 새 지평을 연 『조선 왕 독살사건』이 출간 13주년, 110쇄, 30만 부 돌파를 기념하여 재출간됐다. 2005년 출간된 초판 『조선 왕 독살사건』의 모체가 되는 『누가 왕을 죽였는가』(1998)까지 고려하면 이 책의 역사성과 생명력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대중 역사서로는 이례적으로 20년 이상 살아남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독자들에게 현대적으로 다시 읽혔다는 얘기다. 그동안 이 책은 중년 남성 독자들만 역사서를 읽는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트리며, 2030 젊은 세대와 여성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남녀노소가 모두 읽는 최초의 블록버스터 대중 역사서이자,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역사 분야 최고의 스테디셀러다.
『조선 왕 독살사건』이 이렇게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으며 오래 읽힐 수 있었던 까닭은 독살설이 단순한 흥미나 호기심을 끄는 소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금과 신하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통해 조선사의 핵심은 물론, 오늘날의 정치구조까지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대체 누가, 왜 왕을 죽이려 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 우리 역사와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각은 180도 달라진다. 온갖 흥미로운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여전히 가장 날카롭고 논쟁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조선 왕 독살사건』이 또 한 번 새로운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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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소와 소고기로 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
김동진 | 위즈덤하우스 | 2018-04-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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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소와 소고기로 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
김동진 | 위즈덤하우스 | 2018-04-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한 소와 소고기 탐식의 역사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소는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신성의 대상인 동시에 가장 선호하는 탐식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라에서 신성시되고 농우(農牛)로 활용하며 귀한 대접을 받던 소는 어떻게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을까? 신성의 대상과 탐식의 대상 사이를 오가며 조선의 역사와 문화, 삶에 깊숙이 개입한 소와 소고기의 역사를 살펴보는 최초의 책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농업의 근간이던 소를 식욕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소를 통해 살펴보는 조선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삶 이야기
농업을 근본으로 하던 조선시대에 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소 한 마리의 노동력을 사람이 대신하려면 적게는 다섯에서 많게는 십여 명까지 달라붙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안에 소가 몇 마리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졌다. 이토록 소가 중요한 요소이기에 나라에서는 국용 소를 길러 백성에게 이바지하려 했고, 백성 스스로도 소를 기르는 데 최선을 다했다. 소의 수가 곧 국력인 시대였다. 동시에 조선에서 소는 탐식의 대상이었다. 귀한 가축인 소를 수시로 잡아 잔치를 벌이고, 인구가 약 1,500만 명밖에 안 되는 17세기 후반에도 하루에 1,000여 마리씩 도살했다고 한다. 나라에서 수시로 우금령(牛禁令)을 내려 소 도살을 엄격히 단속했음에도 조선 사람들의 소고기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이 책은 소를 번식시키기 위한 조선의 갖은 노력과 동시에 소의 고기를 향한 끊임없는 탐식을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살펴본다.
국왕과 엘리트의 뱃속부터 주머니까지 책임진 든든한 먹거리
조선을 움직인 동력은 바로 소고기였다!
소고기는 국왕부터 백성까지, 조선 사람들의 삶 속 어디에나 있었다. 임금이 되려는 자, 임금을 대리하는 자, 임금은 반드시 소고기를 먹었다. 소고기는 국왕 품격의 상징이기도 해서, 나라의 허락 없이 소고기를 먹는 자는 왕위 찬탈을 모의하는 반역자로 판단해 벌을 내리기도 했다. 명종(明宗) 때 사람인 박세번(朴世蕃)은 왕이 즉위한 초기에 사직동에 사는 무인들과 작당하고 소를 잡았다가 “반역의 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처단되었다. 조선 전기의 무신인 남이(南怡)는 병약한 몸을 보하기 위해 소고기를 먹다가 국상 중이라는 이유로 체포당했다. 당시 그의 집 부엌에는 소고기가 수십 근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소고기는 조선시대 엘리트 집단인 성균관 유생들에게 빠질 수 없는 일상의 먹을거리였다. 성균관 유생들은 공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소고기로 달랬다. 나라에서도 그들이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다. 서울 도성 내에 유일하게 소 도축을 허가한 장소가 바로 성균관이었던 것이다. 유생에게 제공하고 남은 소고기는 현방懸房이라는 소고기 판매시장을 통해 일반에게 판매되었다. 이렇게 판매된 소고기는 성균관 유생들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하고,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백성들도 소고기를 배불리 먹었을까?
나라의 단속도 막을 수 없던 소고기 탐닉사(史)
흔히 임금과 사대부들은 소고기를 배불리 먹었어도, 가난한 백성들은 쉽게 즐기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식과 다르게 역사는 백성들 역시 소고기 잔치를 열기 바빴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세종 7년(1425) 실록에 따르면 “귀신에게 제사하고, 또 손님을 대접하는 데 쓰거나 먹기 위해 끊임없이 소를 잡는데, 1년 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던 제사에 언제나 소고기를 올렸고, 설, 단오, 추석, 동지 등 명절마다 소를 잡아 소고기를 마음껏 즐겼다. 영조 51년(1775)에는 명절에 도축한 소만 해도 2만에서 3만 마리에 이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소 도살이 줄지 않는 까닭은 당시에 항상 소고기 소비처가 있었고, 조선시대가 소고기를 먹고 접대하는 문화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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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사 아는 척하기
정구선 | 팬덤북스 | 2018-11-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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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사 아는 척하기
정구선 | 팬덤북스 | 2018-11-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하지만 흥미롭고 놀라운 사건들! * 태조 이성계는 조선판 창씨개명을 실시했다? * 무악재가 조선의 수도가 될 뻔했다? * 안타까운 조선판 세월호 참사! * 한양에도 운하가 건설될 뻔했다? * 조선 시대에도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 노비에게도 최저 임금과 육아 휴직이 주어졌다? * 지금의 삼심제는 조선 시대 판결제도에서 유래했다? * 조선에도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조선 시대라 하면 고루하고 답답한 시대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조선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야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정도의 역사가 가득하다. 《조선사 아는 척하기》는 실록 속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하고 황당한, 때로는 놀라운 역사를 정리하여 담아낸 이야기보따리다. 책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생생한 역사 속으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그동안 감추어진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아가 조선 시대, 조선 사람들특히 당시 일화들에는 현재와 비슷한 내용이 많으므로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제대로 몰랐던 조선 시대의 민낯들을 재미난 일화를 통해서 들려주면서, 복잡하고 따분하게 읽히는 조선왕조실록이 독자에게 편하게 아는 척할 수 있는 역사책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조선왕조실록》에 대하여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책의 기본 배경은 조선 건국 직후인 태조 때부터 3대 태종 때까지이다. 해당 시기의 국왕과 왕실, 관료, 백성, 명나라 사신과 관련된 역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대 왕의 연간에서 관련 일화를 첨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각 에피소드마다 재미나고 기발한 만화를 실어서 독자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했으며, 부록에는 조선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선 왕조 세계도와 조선사 연표를 담았다. 조선 왕실을 알면 조선이 보인다! *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족을 몰살하고, 고려 왕씨 성을 개명하게 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공신들은 고려 왕실의 후예인 왕씨들이 살아 있는 한 편히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모반을 도모했다는 허무맹랑한 구실을 꾸며 왕씨들을 일망타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씨 성을 일절 쓰지 못하도록 어명을 내렸다. 왕씨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거나 고려 왕조에서 왕씨 성을 하사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원래의 성을 따르게 했다. 고려 왕씨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몰살을 추진했던 것이다. * 태조는 무악재 아래 신촌을 조선의 수도로 생각했다? 조선은 태조 3년 9월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그 이전에는 계룡산 부근에 수도를 정하려다가 취소하였다. 다시 서울의 무악재 아래 신촌 일대로 옮기려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한양에 수도를 정한 조선은 ‘왕자의 난’ 이후 개성으로 잠시 옮겼다가 태종 때 한양으로 재천도하였다. 한양으로 재천도하는 결정은 종묘에서 동전으로 점을 쳐서 정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신하들의 갑론을박은 소모적인 정책논쟁을 불러왔다. * 조선 시대 임금은 부의금으로 얼마를 냈을까? 조선 시대에는 재상 등의 고위직을 역임한 신하들이 사망하면 임금이 부의금을 하사하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며, 시호를 내렸다. 부의로 1품은 쌀과 콩을 아울러 60?100석, 정2품은 40?50석, 종2품은 30석 이하를 주었다. 1석을 2가마로 치고, 1가마를 80kg으로 환산하면 100석은 약 200가마로 16,000㎏이다. 당시 재상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부의금을 하사받았던 것이다. 임금님의 지나친 부의금 때문에 나라 곳간이 거덜 날 정도였다. * 조선 시대 사관은 임금을 몰래 미행까지 했다? 사초는 사관이 임금이나 신하들의 언행을 날마다 기록한 것으로, 실록 편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였다. 사관들이 안심하고 직필하도록 실록을 편찬하기 전까지는 임금을 비롯한 그 누구도 사초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태조와 태종은 굳이 사초를 열람하려다가 신하들과 충돌을 빚었다. 기록에 대한 두려움은 조선 왕들도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조선 관리와 제도를 알면 조선이 보인다 * 조선시대에도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요즈음의 인사청문회와 비슷한 서경署經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관리 후보자들의 신분, 조상, 과거 합격 여부 등을 조사하여 관리로서의 적합도를 검증하는 제도로, 서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관리가 되지 못했다. 이 서경은 임금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였다.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어떨까? * 출근하지 않으면 관리도 매를 맞았다 조선 초기에는 관청에 출근하지 않고 결근하거나 조퇴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매를 쳐서 징계하였다. 결근한 자에게는 태형 10대, 무단 조퇴를 하는 자에게는 태형 50대를 부과할 정도로, 결근보다 무단 조퇴로 불성실한 자를 더 엄하게 벌했다. * 야간 통행금지를 어겼다고 대사헌도 파직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는 저녁 8시경부터 새벽 4시경까지 4대문을 통과하거나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야간 통행 금지령을 실시했는데, 영을 어겼다가 파직된 대사헌도 있었다. 대사헌은 지금으로 치면 감사원장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자의 기강을 바로잡으려 했던 조선 시대가 지금보다 더 나은지도 모를 일이다. * 조선 팔도에 황색 옷을 금하라! 예나 지금이나 옷은 부와 계급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조선 초기에는 황제의 색깔이라고 하여 황색과 황색 옷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 외에 흰색과 옥색, 회색의 옷도 입지 못하게 했다. 황색으로 보자기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다가 귀양을 간 사람이 있었다. 황색옷 입기를 금하였나, 정작 양반부터 천민까지 모두들 황색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거리를 마구 활보할 정도로 황색 옷은 대유행이었다. * 지금의 삼심제가 조선 시대 판결제도에서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도 인명 보호 차원에서 오늘날의 삼심제와 유사한 삼복법三覆法을 시행하였다. 지방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발생하면 수령이 먼저 심리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관찰사는 다시 심리하여 중앙의 의정부에 보고하며, 의정부에서는 세 번 심리하여 임금에게 세 번 아뢴 다음에 사형을 결정하도록 했다. 조선 시대는 법치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조선 백성을 알면 조선이 보인다! * 안타까운 조선판 세월호 참사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지방에서 조세로 거두어들인 곡식이나 베 등을 주로 배를 이용하여 한양까지 운반하였다. 이를 조운이라 하였고, 그 배를 조운선이라 불렀다. 조운선이 풍랑을 만나 난파하거나 침몰하여 곡식과 사람을 잃는 사고가 매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태종 3년에는 조운선 34척이 한꺼번에 바다에서 침몰하여 천여 명의 수군이 몰사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조운선의 침몰은 인명은 물론 국가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재난이었다. * 노비에게도 최저 임금을 허하라? 조선 시대에는 사노비들이 비참한 대접을 받은 반면, 공노비들은 봉급을 받고 휴가를 가기도 했다. 관청에서 일하는 여자 노비에게는 출산 휴가도 주었으며, 산기가 임박하여 복무하다가 미처 집에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출산 1개월 전부터 공노비의 복무를 면제토록 했다. 세종 때에는 공로에 따라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 조선은 무당에게도 세금을 거두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는 무당에게도 세금을 거두었다. 국가에서 3년마다 한 번씩 무당의 명부를 작성하여 무세巫稅를 징수했다. 무세는 원래 매년 두 번 징수하였는데, 세종 5년부터는 매년 한 차례만 거두도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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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에 놀러간 고양이
아녕 저, 김종성 해제 | 위즈덤하우스 | 2018-07-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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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에 놀러간 고양이
아녕 저, 김종성 해제 | 위즈덤하우스 | 2018-07-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생기발랄 고양이와 함께하는 오! 묘한 조선 견문록
친절한 고양이들이 안내해주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 조선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떻게 놀고, 누구와 사랑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갔는지 고양이 일러스트를 통해 살펴본다. 귀엽고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조선의 풍류·오락·풍속·음식문화·사랑 풍경 등을 자연스럽게 섭렵하게 될 것이다.
귀여운 일러스트와 조선인 일생의 결합!
멀게만 느껴지던 역사마저 친숙하게 만들다
‘역사’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역사를 좀더 친절하게 소개하기 위해, 강아지와 더불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인 ‘고양이’를 등장시킨다. 고양이들이 그림 속 조선시대 주인공이 되어, 노비와 백성의 삶의 현장부터 진수성찬인 왕의 수라상, 흥겨운 왕실의 궁중연회, 북적거리는 평민들의 저잣거리 풍경 등 다양한 일상 위를 종횡무진 섭렵한다. 정밀하고 생생한 고양이 그림들이 소장욕구를 자극할 뿐 아니라, 각 그림마다 그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설명을 추가해 지적 욕구까지 충족시키는 역사 일러스트 책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또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의 로맨스부터 여가, 음식문화, 관혼상제까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는 약 500년이라는 장대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길고 긴 역사 가운데 ‘로맨스, 여가놀이, 음식문화, 신분제도, 종교’라는 조선시대 문화를 대표할 만한 키워드 다섯 가지를 선정해 서른다섯 장의 그림으로 재현해냈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 〈로맨스의 조선〉에서는 조선시대 남녀의 정분, 혼례풍경, 궁중암투 등 사랑에 얽힌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제2장 〈풍류의 조선〉에서는 판소리, 연극, 민속놀이, 투호 등 흥 많은 우리 조상들이 어떤 놀이로 유흥과 오락을 즐겼는지 살펴본다. 제3장 〈미각의 조선〉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즐겼는지를 담았으며, 제4장 〈사농공상의 조선〉에서는 노비부터 평민, 양반, 국왕까지 신분에 따라 다른 일을 하던 조선시대 노동의 풍경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제5장 〈믿음의 조선〉에서는 고려시대 종교인 불교와 조선시대의 유교문화, 그리고 토착신앙이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만들어낸 조선의 종교문화를 살핀다.
신윤복의 〈월하정인〉부터 김홍도의 〈대장간〉까지
고양이에 민속화를 접목시킨 패러디를 보는 즐거움
이 책은 철저한 문헌 고증을 통해 옛 시대를 완벽히 재현한 그림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여러 민속화와 박물관 유물자료 등을 최대한 그림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친숙한 조선시대 그림들, 예컨대 화가 신윤복의 〈월하정인〉, 〈단오풍정〉, 〈쌍검대무〉, 〈무녀신무(무무도)〉, 김홍도의 〈설후야연〉, 〈대장간〉, 〈서당도〉 등을 고양이로 의인화해 당시 서민들의 문화를 최대한 그림에 담았다. 조선시대 민속화 원본과 이를 변형한 책 속의 고양이 그림을 비교해보는 것은 이 책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재미다.
또한 고전문학 《춘향전》 속 춘향과 몽룡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숙종을 사이에 두고 궁중암투를 벌이는 장면, 황진이가 가야금을 뜯으며 폭포수 아래에 앉아 〈청산리 벽계수야〉를 읊는 현장, 여성 최초의 명창으로 이름을 날린 진채선의 판소리 무대 등 상상만으로 떠올렸던 조선시대 당시의 역사적 장면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구현했다.
그림 속 고양이들의 생생함, 어떻게 탄생했을까?
길고양이, 역사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다
이 책은 분명 사람을 고양이로 의인화해 상상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표정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그 이유는 본문 속 고양이들이 실제 저자가 직접 밥을 챙기는 동네 길고양이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고양이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접했던 특유의 표정과 행동들을 그림에 그대로 재현했다. 본문 속 고양이들은, 고양이와 늘 함께하며 우정을 나눈 사람만 마주할 수 있는 천의 표정을 하고 있다. 이처럼 디테일이 살아 있는 고양이들의 생생한 모습은 독자들이 고양이를 좀더 깊이 사랑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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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찌라시 한국사
김재완 | 쌤앤파커스 | 2018-10-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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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찌라시 한국사
김재완 | 쌤앤파커스 | 2018-10-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관점을 바꾸면 ‘다른’ 역사가 보이고,
관심을 가지면 ‘진짜’ 역사가 보인다!
‘한국사 보부상’ 김재완의 뒤집어 쓴 우리 역사 이야기!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문반문’까지, 우리 모두 읽어야 할 역사 교양서!
[딴지일보], [오마이뉴스] 역사 분야 ‘화제의 연재물!’
- ‘공부’하고 ‘외우는’ 역사에서 벗어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소통’하고 ‘즐기는’ 교양 한국사!
- 권력자, 승리자, 남성 중심의 역사 속 이면에서 발견한 ‘은폐’와 ‘왜곡’의 뒷이야기들.
-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고, 어렵게만 여겼던 역사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문반문까지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맛깔난 ‘진퉁’ 한국사 이야기. 승리자, 지배자, 남자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난 비범하고 유쾌한 역사 이야기 한 마당이 펼쳐진다. 실력으로 기득권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성들, 패배자로 기록되었지만 정의로써 시대정신을 이끌었던 영웅들, 모두가 외면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시대를 위해 헌신한 의인들, 그리고 한낱 ‘백성’이라고 표현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를 지탱할 수 있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는 가면을 쓰고 양반 사회를 조롱했던 마당놀이의 이야기꾼 초랭이가 되어 ‘한국사’라는 맛깔난 상을 차려놓고 한 편의 질펀한 마당극을 펼친다. 자긍심 넘치는 역동의 고구려에서 즐거울 일이라곤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망국의 구한말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고 너무 어렵게만 바라봤던 ‘역사’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로 엮어냈다. ‘딴지일보’ 독자투고로 시작해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강제 연재’를 이어가야만 했던 『찌라시 한국사』, 지금 당장 시작해보자.
‘찌라시’만큼 흥미진진하고,
‘드라마’보다 쫄깃한 한국史 ‘마당놀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반정을 통해 왕좌를 차지한 인조가 선왕 광해군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쓸 이유가 없던 것도, 의자왕이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삼천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이 되어야만 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몇백 년, 몇천 년 전의 역사 기록이라고 해서 아무 의심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런 의심 없이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역사 이면에 다른 사실이 숨어 있지는 않은 걸까?
이 책은 역사 이면에 감춰진 수많은 흔적들, 그것들에 대한 진면목을 과거가 아닌 ‘내일의 관점’에서 흥미진진한 필체로 풀어낸다. 실력으로 기득권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성들, 패배자로 기록되었지만 정의로써 시대정신을 이끌었던 영웅들, 모두가 외면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시대를 위해 헌신한 의인들, 그리고 한낱 ‘백성’이라고 표현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를 지탱할 수 있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딴지일보], [오마이뉴스] 등에 소개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저자는 양반 사회를 조롱했던 마당놀이의 이야기꾼 초랭이가 되어 ‘한국사’라는 맛깔난 상을 차려놓고 한 편의 질펀한 마당극을 펼친다. 자부심 가득한 역동의 고구려에서 슬픈 망국의 구한말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고 너무 어렵게만 바라봤던 ‘역사’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로 엮어냈다.
‘백성’의 눈으로 다시 풀어 쓴,
역사 보부상 김재완의 우리 역사 이야기
“나름 한국사에 관심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자격증을 위한 겉핥기뿐이었네요. TV특강은 수능에 나올 만한 분들만 중요하게 다루지만, 교과서 한 귀퉁이에 이름 석 자뿐인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라는 말에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_네이버 rnrt****님
이 책의 강점은 쉽고 쏙쏙 읽히는 것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맥락’으로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역사책이라는 역사는 ‘과거’라는 맥락 속에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다. 단지 기록을 남긴 자들이 어떤 상황과 입장이었는지에 따라 그 이야기가 각색되고, 변형되는 것뿐이다. 따라서 역사는 ‘공부’하고, ‘암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인물과 사건을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기만 하면 된다. 욕망을 가진 인간, 즉 권력을 가지려는 욕망,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욕망, 부조리를 깨고자 하는 욕망 등, 역사 속 인간의 욕망이 오늘날의 사람들의 욕망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도 평범한 인간이다.’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읽으면, 오히려 보이지 않던 역사적 ‘진실’과 ‘행간’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왜 단종과 광해가 폐위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서에 단 한 줄 나온 을지문덕이 우리가 기억하는 대장군이 되었는지, ‘영토왕’으로만 기억되던 광개토대왕이 어떻게 ‘대왕’ 칭호를 얻었는지, 연산군이라는 괴물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역사 속 여성들은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보이지 않는지… 등등 우리가 궁금해하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저자의 손에 의해 새로이 재탄생한다. 어쩌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거나, 역사책에서는 흘려보냈던 인물과 사건들이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맥락’에서 다시 탄생하는 것이다.
역사 무식자는 물론,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문반문까지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역사 교양서!
시쳇말로 “역사책은 ‘권위’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팔릴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방송에 빈번하게 출연하는 유명인이거나, 아니면 저명한 교수여야만 역사책으로서 시장성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는 유명인도, 교수도, 더욱이 전공자도 아니다. 그냥 ‘17년 노예로 살아온’ 평범한 ‘역사 덕후’가 쓴 ‘뜨내기’ 책쯤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권위자’도 ‘교수’도 아니어서 오히려 더 자유롭고, 흥미로우며,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짙게 반영되어 있다. 엉뚱하고도 발랄한 문체만큼 더 진지하게 고증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쩌면 전문가들이 기술하는 ‘역사’여서 독자들의 관심을 잃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고의 시대지만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면서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 믿음의 시대이면서 불신의 시대였다. 우리 모두 천국을 향했고, 우리 모두 정반대 방향의 지옥을 향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런던과 파리를 배경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유명한 구절이자, 시대를 초월하는 탁월한 문장이다. 지역 간 분열을 넘어 세대 간 분열에, 그리고 젠더 간 분열까지…. 우리 시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유독 우리 세대가 어리석고, 서로를 불신하여,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다른 한 손에는 지혜와 믿음을 이미 움켜쥐고 있다. 최고의 시대와 지혜의 시대를 만들어 모두가 천국을 향할 수 있는 방법은 오래된 미래인 역사를 이해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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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의 발견
최정운 | 미지북스 | 2017-01-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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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의 발견
최정운 | 미지북스 | 2017-01-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12-0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문학으로 본 한국인 굴기의 대서사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본격적인 시작
『한국인의 탄생』, 『오월의 사회과학』 저자
최정운 서울대 교수가 완성한 20세기 한국인들의 근대로의 여정
이 책은 우리 한국인이 해방 이후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시대정신을 소개하며, 나아가 한국인들이 20세기를 통해 형성한 ‘힘’, 즉 ‘사상’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역사를 이야기한다. 한국인들의 사상과 정체성에 접근하기 위해 저자 최정운 교수가 찾아낸 중요한 경로는 한국 현대 소설이었다. 현대 소설에 담긴 ‘픽션’은 소설가들이 당대 현실과 조응하며 기록한 가장 온전한 ‘사상’의 모습이고, ‘픽션’의 밑바닥에는 늘 시대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일주하며 그 과정에서 발견된 우리 역사는 ‘예술 작품’의 연속이다. 이리하여 저자 최정운 교수는 전작 『한국인의 탄생』과 이 책 『한국인의 발견』을 통해 20세기 한국인들이 걸어온 근대로의 여정을 하나의 대서사로 완성했고, 이로써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발굴과 정립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20세기 한국인들의 근대로의 여정
우리의 비틀거린 반세기 현대사는 원치 않았던 거칠고 넓은 세상을 두루 여행한 역사였다. 우리 민족은, 좌우의 이데올로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아와 죽음의 공포에서부터, 전쟁도, 어두운 죽음의 세계도, 부활도, 혁명도, 쿠데타도, 희망의 세상도, 내전도, 계급 갈등도,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죽음을 넘어선 투쟁도, 군사독재도, 민주주의도 경험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시련을 두루 겪었다. 그렇다고 모든 시련을 섭렵했다고 안도할 수도, 자만할 수도 없다. 자랑스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피와 눈물이 흘렀고, 부끄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영웅적인 투쟁의 연속이었다.
이 책의 부제에서 ‘힘의 정체’란 일차적으로 20세기 역사의 주인공 한국인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힘의 정체’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현실에 균열을 내고 사건을 만든 근본적인 힘으로서 한국인의 시대정신을 뜻하며, 나아가 시대정신을 담고 그것을 끊임없이 갱신해온 한국인의 내면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힘의 정체’는 ‘사상’이라는 범주로 합류한다. 그런데 그 ‘힘’이란 당대 현실에 반응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책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지만 사실 ‘사상’의 변화가 가장 심대하게 일어나는 때는 세상을 뒤바꾸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의 전후 시기였다. 결국 이 책은 사상의 탐사 과정에서 발견된 역사적 현실, 주요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도 그 어느 역사서보다 근본적인 이해를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해방 직후의 분위기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의 분위기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환희와 축제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해방 후 남한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해방 공간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마음대로 편안하게 자기 생각을 펴지 못하고, 일제가 물러가는데도 서로 눈치를 보며 자유를 느끼는 게 아니라 더욱 무시무시한 시대를 예감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그들은 당시 정치 문제, 즉 건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당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주변의 조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믿을 수 없었다. 한편 해방 공간의 한국인들은 ‘국가’나 ‘나라’, ‘관(官)’에 대해 전혀 신용하지 않았고, 그런 그들에게서 ‘우리가 대한민국을 만든다’라는 뚜렷한 의식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오늘날 현실 인식에 기대어 우리는 종종 한국인들이 ‘강한 국가’를 원하는 ‘국가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때 한국인들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로크적 자연상태와 유사했던 해방 공간
일제가 물러간 해방 공간에는 권력 공백이 생겼고 ‘자연상태’가 돌아왔다. 그러나 해방 공간의 자연상태는 구한말의 ‘홉스적 자연상태’는 아니었고 ‘로크적 자연상태’에 가까웠다. 그 속에서 한국인들은 앞다퉈 수많은 정치 단체와 정당들을 만들어냈다. 해방 공간의 자연상태와 그로 인한 혼란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홉스적 사회 계약’이 필요했고 이는 자연스레 미국에 대한 의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군정은 홉스적 사회계약에 의거한 전제군주로서 남한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법치주의로 남한을 다스렸고 따라서 한국인들끼리 정치가 가능한 하위 정치 공간이 열렸다. 한국인 정치 집단들은 한편으로는 미군정의 지배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하위 정치 공간에서 자기 보호를 위한 단체 결성과 테러 등 권력 투쟁을 벌였다. 해방 공간은 이러한 이중적인 정치 행위가 구조화된 공간이었다.
취약국가로 태어난 민족국가 대한민국
신생 대한민국은 분명 민족국가로 만들어진 나라였다. 하지만 건국 과정에서 자원의 부족을 급박하게 보충하기 위해 취한 초기 조치들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국가 전체에 광범위한 결과를 야기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취약국가’로 태어났다. 우선 대한민국은 ‘친일파’를 대거 재등용했고 이 때문에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채 역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능력도 형편없었다. 재정이 없어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고 모든 정부 사업은 싸구려로 부실하게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부분은 ‘부실과 부패의 온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또 폭력 수단의 보유라는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의 상황은 너무나 열악했다. 대한민국이 폭력적 행위를 저지르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무력, 폭력적 능력이 많고 넘쳐서가 아니라 폭력 수단과 국가로서의 능력이 모자란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주체가 되지 못한 한국인들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국에서 꾸어 오는 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바로 민족적 주체 의식이었다. 대한민국은 시작에서 민족주의가 부족한 나라였지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오히려 민족, 대중을 두려워했다. 민족적 주체 의식의 결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주체 의식의 부족은 국민의 생명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고, 거창 양민 학살, 보도연맹원 학살, 국방경비군 아사 사건 등은 모두 이로 인해 저질러진 역사였다. 대한민국은 모든 젊은이들의 생명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휴전선을 다시 긋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존재는 생존자들의 경우에도 긍정되지 못했다.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여러 층위의 온갖 악몽을 심어놓았다. 우리는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였고, 형제를 학살한 살인자들이었다. 열심히 싸워 나라를 지켰지만 영웅도 없었다. 한국전쟁은 흡사 패전이었다.
아프레게르와 한국인의 부활
전후 한국은 공동묘지 같은 을씨년스런 폐허였다. ‘재건’의 구호도 들리지 않았다. 한국이 겪은 아프레게르(apr?s guerre)는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죽음만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1950년대 전반 손창섭, 황순원, 김동리 등이 그린 우리의 모습은 죽음이었고 한국은 죽음이 편재하는 세상이었다. 이 시기 손창섭과 장용학 등이 수행한 문학적 실천의 핵심은 괴롭고 암울한 현실을 더욱 괴롭고 무겁게, 도망갈 곳 없이 끝없이 반복될 현실로 만들어 한국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현실을 대안이 없는 무게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문학적 실천은 죽은 시체 같은 한국인들을 되살리는 부활의 마법이 되었다. 한 문학가는 1950년대를 단순히 서양 문학을 모방하는 데 그쳤을 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 한심한 시대였다고 회고했지만 손창섭을 위시한 이 시대의 작가들이야말로 우리 현대사 최고의 영웅들이었다.
부활을 넘어서―욕망하고 분노하는 한국인
1950년대 후반부터 출간된 대부분의 소설들에서 한국인은 욕망의 주체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1950년대 말이 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야말로 욕망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욕망하는 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욕망은 좌절의 계기였고 계속된 좌절은 분노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여 선우휘의 「불꽃」, 장용학의 「역성서설」 같은 작품이 발표되었고 1958년 9월에는 드디어 손창섭의 「잉여인간」이 나왔다. 「잉여인간」의 채익준은 한국 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한 ‘분노하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낼 인물이었다. ‘영겁회귀’의 사상적 결과로 한국인은 부활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절대 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영겁회귀’가 가능했던 사상적 조건과 본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한국인은 부활을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했다.
먼저 당도한 혁명 4·19
1950년대의 비참함을 자각한 우리 민족은, 한편에서는 민중의 분노가 무르익어감을 통해, 또 한편에서는 민족을 이끌고 나갈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혁명에 다가갔다. 먼저 당도한 혁명은 4·19였다. 그런데 4·19는 민중의 폭발을 두려워한 언론계 지식인들(특히 『사상계』)에 의해 ‘대학생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일으킨 의거이자 혁명’이라는 해석을 부여받았고, 이 해석이 요지부동으로 모든 교과서와 담론에서 공식 정론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 정론은 4·19의 힘을 두 단계에 걸쳐 거세한 것이었다. 첫 단계에서 언론계 지식인들은 대학생들을 긴급하게 무대에 투입하여 그동안 시위의 주된 참가자였던 고등학생과 도시 빈민들의 존재를 지우는 한편, 대학생들로 하여금 ‘민주주의’ 구호를 외치게 함으로써 시위의 성격을 바꾸었다. 다음 단계에서 그들은 권력을 기성 정치인들의 손에 넘겼고, 그렇게 사태는 종결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입은 의도치 않은 정치적, 역사적 왜곡을 가져왔다. 권력을 넘겨받은 민주당과 제2공화국은 4.19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식인들의 각본에 따라 외쳐진 ‘민주주의’를 위한 ‘놀이’를 벌였다. 그들은 고등학생과 민중들의 좌절과 분노가 폭발한 원인, 이승만 시대를 통해 쌓이고 쌓인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제2공화국은 역사를 4·19 이전,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었고, 혁명은 다시 시작되어야 했다.
‘붉은 심장의 설레임’을 가진 세대의 등장
4·19의 가장 의미심장한 결과는 바로 4·19세대의 출현이었다. 4·19와 5·16 사이의 일 년 남짓한 기간에 최인훈은 「가면고」와 『광장』을 발표했는데 두 작품은 최근 민족적 영웅에서, 스타로, 그리고 한낱 배우로, 꼭두각시로 전락한 ‘4·19세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다루고 있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4·19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4·19에서 그의 세대는 혁명을 목전에 앞두고 무대에서 끌어내려졌다. ‘혁명’ 후에 발표된 『광장』에서 이명준은 미리 포기하지 않고 직접 제 발로 계시 받은 특별한 운명을 찾아 ‘광장’을 찾아가봐야 했다. 그러나 4·19세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붉은 심장의 설레임’을 느낀 세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꿈과 희망에 찬 젊은 세대’였다. ‘붉은 심장의 설레임’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고, 4·19는 혁명임에 틀림없었다.
또 하나의 혁명 5·16
5·16 주체 세력은 제2공화국의 무능과 실패를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5·16 쿠데타는 제2공화국의 실패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5·16의 음모는 이미 1950년대 중반, 거의 1956년쯤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4·19와 5·16은 프랑스 혁명기의 혁명들처럼 반동으로 이어진 사건들이 아니었다. 즉 4·19의 실패가 5·16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4·19와 5·16은 이미 1956년경에 따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중간에서 엮이지 않고 준비되고 이뤄진 이란성 쌍둥이였다. 5·16은 물론 불법 쿠데타였다. 하지만 5·16은 분명히 ‘혁명’이었다. ‘산업 혁명’이 혁명이었다면 5·16은 분명히 혁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혁명을 못 겪은’ 나라가 아니었다. 독특한 방법으로, ‘두 개의 혁명’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겪었다. 프랑스 혁명, 중국 혁명, 러시아 혁명처럼 많은 사람이 죽지도 않았고 역사적으로 떠들썩하지도 않았지만 ‘두 개의 혁명’으로 야기된 사회적 변혁의 정도는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할 규모였다. 5·16의 성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시대를 열었다. 5·16은 구경꾼이었던 한국인들에게 ‘붉은 심장의 설레임’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노란 욕망’의 시대를 열었다.
욕망의 시대가 열리다
1960년대에 지식인들은 한국의 후진성을 의식했고 서둘러 근대화시킬 수 있는 성마른 인물들을 만들어 나갔다. 1960년대의 한국인들은 분명 전과는 전혀 다른 활기찬 모습이었다. 혁명 과정에서 욕망을 발산하기 시작했고 역사와 현재의 발견을 통해 희망을 얻었으며, 이 희망을 지키기 위한 한국인들의 결의는 진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독했고, 그들의 정서를 품어줄 공동체는 거부되었다. 한국인들은 모두 가족도, 공동체도, 윤리도, 도덕도, 심지어는 민족도 벗어버린 가벼운 군장으로 욕망을 향해 잠시의 휴식도 거부하고 달려 나갔다. 이것이 1960년대 ‘한국주식회사’라 불렸던 ‘민족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가벼운 군장으로 너무나 빠르게 달려 나갔기에 ‘타임머신’에서 빨리 늙어버렸다.
한국 사회의 분열
1970년대에 한국 사회는 ‘세대’, ‘성(性)’, ‘지방’, ‘계급’ 등 다양한 이름의 정체성과 계급으로 분열되었다. 무엇보다 1970년대에는 노동자, 빈민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이 독자적인 문화, 생활양식을 드러내며 등장했다. 노동자, 빈민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은 분명히 적대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 빈민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는 수많은 계급들, 수많은 종류의 ‘쁘띠부르주아’들이 서로 직접 충돌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계급의 등장은 사회의 분열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국인들의 고통과 고뇌가 깊어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한편으로 1970년대는 순수와 참회의 시대였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사랑’이 분열되어 가는 사회를 통합하는 기제로서 부각되었다. 그간 강하고 거칠어져만 가던 한국인들은 이때부터 순수하고 부드럽고,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되어 갔다. 한편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들」 같은 작품은 한 가족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과거에 내다버린 ‘아베’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였다. 1970년대에 한국인들은 순수하고 싶어 했고 ‘참회’하고 죄악을 씻고 싶어 했다.
인간을 위한 싸움의 다른 시작들
유신 체제에 대한 저항이 가시화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 황석영의 『장길산』과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훠이」 같은 작품들은 유신 이후에도 한국인들이 당분간 정치적, 조직적 저항 운동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분열된 계급들을 연합하고 저항을 조직하는 움직임이 느리지만 뚜렷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77년에 발표된 윤흥길의 연작 소설 네 편은 당시 계급 분화의 모습과 계급들 간의 연합과 동맹이 형성되는 모습, 노동자들의 정체성 형성과 투쟁의 연원을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말 ‘운동권’의 등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1970년대 한국인들의 고통과 고뇌에 찬 여정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귀결되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인들은 그들이 대적해야 할 권력의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깊고 넓은 속성을 이해하는 인식 수준에 다다랐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서 좀처럼 형용하기 어려웠던 인간 존재와 존엄성의 가치를 발견했다. 그들이 발견한 인간이란 자신의 존재 가치와 존엄을 위해 생명까지 내던질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폭력적 죽음의 공포로 스스로를 유지하던 권력은 이제 목숨을 건, 경악할 만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투쟁의 시대
오공은 폭력과 금력에 매료된 괴물이었다. 1980년 5월 광주 시에서는 현대 민족국가의 군대가 군복을 입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시내 번화가의 대로에서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패고 찌르는 엽기적인 폭력 극장을 만들고, ‘우리는 너희들 씨를 말리러 왔다!’고 외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5·18은 열흘 후 5월 27일에 끝났지만 그 경험은 끝날 수 없는 것이었고, 잊을 수도 없었다. 5·18의 힘은 광주 시민들의 죽음을 뛰어넘은 투쟁에 있었고, 그들의 ‘피의 값’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였다. 그 후 출범한 오공은 5·18에 대해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도록 온갖 폭력을 동원하여 정적을 강요했다. 그러나 5·18이 초자연적 경험이었던 만큼 5·18의 진실은 장벽을 뚫고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공은 결국 5·18의 진실과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한국인들, 대학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시민들의 저항에 의해 붕괴되었다.
한국인들의 정체성 위기
1980년대 투쟁의 시대는 한편으로 한국인들이 극도의 의식 혼란 속에 정체성 위기를 겪은 시대였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는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1980년대 한국 사회가 모든 이념과 가치가 붕괴되고 말과 사물이 따로 놀며 세상이 의미를 잃는 이른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임을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이 시대에 한국 지식인들은 헤테로토피아를 극복하고자 수많은 최신의 이론들과 이념들을 전 세계에서 게걸스레 수입하는 마구잡이 ‘르네상스’를 열었고 한국 사회는 더욱 심각한 이념의 혼란을 겪었다. 영화 《고래사냥》은 1980년대 중반 운동권 대학생들의 충동이 세속화되는 흐름의 중요한 계기를 포착하고 있었다. ‘대체물’을 대량으로 제공하는 일은 오공이 줄기차게 시도한 전략이었고 이는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저항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결국 1980년대를 통한 한국인들의 정체성 위기는 이문열의 『변경』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식했지만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증오하고 정체성을 잃어가는 가운데 물질적 풍요, 쾌락은 마약일 뿐이었다.
근대로의 진입―정체성 만들기와 민족 공동체의 복원
1990년대는 우리에게 근대화(modernization)의 결정적 단계였다. 서구의 근대성을 흉내 낸 짝퉁 근대화를 넘어서 근대성의 근본 문제의식이 내화되어 ‘근대’라는 시대의 문턱을 넘어 진입하는 시대였다. ‘근대’로의 완전한 진입을 위해서는 정체성 만들기를 위한 수단이 마련되어야 했고 한편으로 민족 공동체가 복원되어야 했다. 우리 문학에서는 이를 위한 사상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편 저자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문학가들의 실천에 기대어 사상적 전진을 이루어왔다면 1990년대부터는 지성과 학문이 필요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반지성주의’가 우리의 거친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박힌 현실을 깨우쳐주며 이를 극복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지성을 세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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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1개국 언어로 말하는 독도의 진실
정윤성 | 어문학사 | 2017-07-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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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1개국 언어로 말하는 독도의 진실
정윤성 | 어문학사 | 2017-07-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일본외무성은 '독도(다케시마)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포인트'라는 주제를 10개 국어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문부과학성은 일본 역사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양영디지털고등학교의 교장 정윤성 저자는 일본의 이와 같은 거짓 증거 자료에 대항하고자 〈독도의 진실〉이라는 11개국 언어로 기록된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독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사실상 기록 자료를 구체적으로 접하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 독도 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세계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취지가 담겨 있다.
일본 외무성이 제시한 거짓 증거의 실체 공개!
11개국 언어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린다
독도는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주민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이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외무성은 「독도(다케시마)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포인트」라는 주제를 10개 국어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문부과학성은 일본 역사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밝히는 일본 국가의 공문서인 공적 자료는 오히려 누락시키고, 대신 신뢰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개인의 편지, 보고서 등 사적 자료를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를 정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일본의 허위 주장을 우리가 간과한다면, 앞으로 자라나는 일본 학생들은 왜곡된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런 그들이 한국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심히 걱정이 되며, 여기에 한·일 관계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이에 일관성과 신뢰성이 없는 자료에 근거한 일본외무성의 부당한 논리와 왜곡된 일본 역사교과서를 조속히 시정하기를 촉구한다. 나아가 과거 한·일 역사에 대해 일본이 반성하고,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여 올바른 한·일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다.
필자는 일본외무성의 부당한 논리에 대응하고자 베트남어를 추가하여 『11개국 언어로 말하는 독도의 진실』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함께 뜻을 같이하는 번역자들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에 참여한 번역자들의 한마디
민병필(독일어 번역자, 신흥대학교 외래교수 및 독일어 강사)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기에 기꺼이 참여하였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날까지 힘이 되겠습니다.
박진형(프랑스어 번역자,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용인외국어고등학교 교사)
독도를 세계인들에게 바로 알리기 위한 노력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경(독일어 번역자, 서강대학교 2학년 재학중이며 번역 프리랜서로 활동)
한국과 일본의 독도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하며, 더불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지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민규(아랍어 번역자, 킹사우디대학 재학)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독도 영토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독도의 수호는 국민과 국가가 함께 해야 합니다.
조경호(스페인어 번역 및 지도교사, 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 영재원 부원장)
용인외고 스페인어 동아리 ‘Spanish Honor Society’ 멤버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독도의 진실이 세계로 뻗어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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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5년 1
박시백 | 비아북 | 2018-02-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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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5년 1
박시백 | 비아북 | 2018-02-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믿고 읽는 박시백의 대하역사만화
박시백 화백의 신작 《35년》은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고,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집필이 강제로 멈춰버린 시기 이후의 역사에 주목했다. 식민지의 삶이라는 오욕의 역사가 우리의 ‘현재’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마치자마자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아 중국을 비롯한 전국을 답사했고, 각종 자료 수집과 공부에 매진한 지 5년여 만에 그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다. 박 화백은 전작에서 이성계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며 변발을 한 모습으로 그렸다. 이 한 컷은 독자들에게 그 당시 시대상과 인물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5년》 1권에서 이회영 6형제 일가 60여 명이 가산을 처분하고 망명길에 오르는 한 컷의 그림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여러 설명을 한 컷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만화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박 화백은 작업을 돕는 어시스턴트 한 명 두지 않고 자료 조사와 정리, 콘티와 밑그림, 펜 작업, 채색 등 모든 과정을 직접 도맡아 했기 때문에 일정은 더뎠지만 장인의 작품처럼 완성도는 높아졌다. 친일부역의 역사만이 아니라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로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35년’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35년!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 즉 근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통해 조선인은 근대인으로 변모했다. 일본의 폭압적인 통치하에서 내적 갈등을 거듭한 식민지인이자 근대화된 신분·토지제도를 경험한 세대, 무엇보다 독립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지속한 혁명가로서의 조선 민중들. 그들은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원형(原型)이다. 박시백의 《35년》은 이 원형의 시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생생히 복원한다. 단순히 박제된 정보를 전시하고 나열하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 호흡하는 소통으로서의 역사. 이처럼 원형으로서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를 비교하는 일은 곧 ‘왜 역사를 배우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가닿는다. 저자 박시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흔히 답한다. 하지만 나랏일을 하는 이가 아닌 평범한 우리에게는 좀 추상적인 답변이다. 혹자는 역사에서 살아갈 지혜를 얻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항일투쟁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던 반면 친일 부역의 길은 안락과 영화의 길이었다. 후자처럼 사는 게 역사에서 얻는 지혜가 되어버리고 만다면 역사를 배우는 건 너무 참담한 일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미래의 역사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배우는 일은 빛과 어둠, 그 명암의 흔적을 기억해내기 위함이다. 가장 밝게 빛나던 인물들뿐만 아니라 시대의 어둠 앞에서 자신의 안락과 영화만을 좇았던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일제강점기의 인물들과 시공간은 지금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상으로 기능한다. 역사를 배우는 동시에 만들어나가는 우리는, 그 거울상(이자 원형)이 가진 명암을 바탕으로 오늘의 역사를 더 정확하고 상세히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참담하지 않을’ 앞으로의 역사를 위한 길이므로. 인물과 사건이 살아 숨 쉬는 35년!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까지 전 7권 출간이 예정된 《35년》은, 가혹한 탄압으로 조선을 집어삼킨 조선총독부와 경찰들, 일신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나라와 동족을 팔아넘긴 친일파들, 민중의 들끓는 저항이 폭발했던 3·1혁명의 순간들과 그 이후의 대중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분열, 식민지 경성에서 벗어나 간도, 연해주, 상하이, 하와이를 넘나들며 해외에서 독립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이들,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으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 봉오동·청산리전투와 의열단의 의거,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등 수많은 인물과 단체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역사적 현실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박 화백은 만평작가 출신답게 촌척살인의 감각으로 당대의 사건과 인물들을 현재적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부록으로 수록된 연표를 통해 각 연도별로 국내와 세계의 사건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인명사전에서는 독립운동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등 《35년》(1~3권 기준)에 등장하는 인물 중 300여 인의 생애에 대한 촘촘한 정리를 곁들였다. 만화를 통해 스토리로 이해하고, 부록을 통해 다시 한 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만나보자. 세계사적 맥락에서 새롭게 바라본 35년! 《35년》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를 바라보는 민족주의적·국가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맥락을 고려했다는 점에 있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는 일제의 탄압과 우리의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수탈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한 전 지구적이며 유기적인 정세 속에서 흘러온 것이다. 이를테면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서자,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이에 발맞춰 이동휘가 한인사회당을 조직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창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내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국가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운형은 급변하는 정세를 주시하며 신한청년당을 조직해 대대적 독립운동을 준비한다. 이처럼 《35년》 각 권의 프롤로그에는 세계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전사(前史)를 소개하여, 우리의 일제강점기를 기존과 다른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 같은 세계사적 맥락은 그간 일제강점기를 다뤄 온 많은 역사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이를 그저 치욕의 역사로 기억하거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형태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떤 역사나 문명이든 태어나고 성장하며 소멸해가는 과정은 총체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비극적 역사일수록, 그 역사적 사실의 기원으로부터 정당한 교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세계사적 토대가 필수적이다. 사관과 관점이 균형 잡힌 35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보이는 앎’을 왜곡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능동적 태도가 우선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거치며,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균형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전작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사의 숨겨진 재미를 선사했던 박시백 화백은, 《35년》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흐름을 잇는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역사의 좌우 대립이라는 해묵은 논쟁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적극적인 사관(史官)’의 위치에서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 관조의 자세에서 벗어나 왜곡되지 않은 사관(史觀), 흔들리지 않는 관점, 그리고 충실한 역사 해석만이 우리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35년》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전 60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친일인명사전》(전 3권)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고, 그밖에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역사넷 등 인터넷 연구 자료와 단행본들도 참고해 공부하며 스토리를 짜는 준비 기간만 4년여가 걸렸다. 또한 7명의 현직 역사 교사(김종민, 남동현, 문인식, 박건형, 박래훈, 정윤택, 차경호)가 편집에 참여하여 역사적 사실관계를 바로잡았고, 밀도 있는 작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교정과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양한 쟁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35년! 일제강점기는 대개 유관순의 3·1만세운동과 안중근의 의거, 김좌진의 청산리전투 등 일부 영웅적 인물과 사건에만 치중해 각인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식민지를 살아가며 독립을 위해 애쓴 수많은 민중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은 훨씬 광범위하다. 《35년》은 그 수많은 역사적 쟁점 중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예컨대 임시정부의 활동과 분열, 사회주의 운동의 분화 등 비교적 소외되었던 복잡한 쟁점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정리했다. 각 장의 첫머리에는 지도와 함께 대표적 사건이나 인물이 인포그래픽으로 소개된다. 지리적 정보와 함께 제시되는 사진 자료와 간략한 내용 정리를 통해, 독자가 텍스트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만화와 교과서(역사 부도) 구성과의 결합으로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교육 현장에도 실질적인 연계와 활용이 가능하며, 수업을 통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었던 쟁점들을 보완하는 보조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다. 만화로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는 언제나 3차원적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언제나 1차원적 텍스트를 통해서였지만, 식민지 조선을 뛰어다니며 만세를 외쳤던 이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시공간 안에서 숨 쉬던 이들이다. 만화는 그런 현실의 시공간과 가장 가깝고, 그들이 살았던 삶을 생동감 있게 기록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체다. 박시백 화백은 만화를 프로덕션 분업 체제로 제작하는 최근의 추세와 달리 콘티 작업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담당한다. 작업일정은 더디지만 일반 학습만화처럼 정보와 그림이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완성도 높은 교양만화를 선보인다. 또한 만화 속 인물의 대사도 작가의 손글씨로 직접 그려 글과 그림의 전달력을 높였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한, 그리고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더불어 “가급적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부역자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고 밝힌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다룬 많은 책들이 이와 비슷한 무게감을 가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35년》이 만화라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만화로 기록한다는 것은, 사료의 텍스트가 가진 딱딱함을 부드러운 선으로 바꾸고, 독립운동가들의 피 끓는 외침을 컷과 컷의 간극으로 표현하며, 그들이 흘린 피로 색을 칠하는 작업이 아닐까. 줄거리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식민지의 그늘로 몰아넣는다. 일본은 대륙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단통치와 동화주의로 조선을 통제하고, 경제 영역까지 장악하며 식민지 경영의 기반을 구축한다. 작위를 받으며 친일에 앞장선 이완용뿐만 아니라 중추원 의관을 맡은 관리들, 그리고 지역 지주들은 대다수 부역자의 길을 택한다.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이 늘어나고 삶이 팍팍해진 조선인들은 간도, 하와이 등지로 이민을 떠난다. 1900년대 초기 연해주로 망명한 이들을 비롯해, 강제 병합이 가시화되자 신민회는 기획 망명을 통해 항전을 준비한다. 뜻있는 청년들은 독립운동의 무대로 상하이를 선택하고, 대종교는 북간도를 중심으로 항일 지사를 불러 모아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는다. 1910년 안악사건 이후 일본은 신민회의 해체를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105인사건)을 조작하며 계몽운동가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의병 세력이 약화되면서 계몽운동가들은 운동의 방식을 비밀결사로 변경하고 대한광복회 등을 조직한다. 연해주의 독립운동이 러·일의 관계 변화로 와해되자 독립군 진영은 북간도로 거점을 옮긴다. 미국 하와이에서는 대한인국민회 출범 이후, 박용만과 이승만이 자리를 잡으며 각자 다른 노선을 선택하여 갈등이 고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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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5년 2
박시백 | 비아북 | 2018-02-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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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5년 2
박시백 | 비아북 | 2018-02-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믿고 읽는 박시백의 대하역사만화
박시백 화백의 신작 《35년》은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고,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집필이 강제로 멈춰버린 시기 이후의 역사에 주목했다. 식민지의 삶이라는 오욕의 역사가 우리의 ‘현재’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마치자마자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아 중국을 비롯한 전국을 답사했고, 각종 자료 수집과 공부에 매진한 지 5년여 만에 그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다. 박 화백은 전작에서 이성계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며 변발을 한 모습으로 그렸다. 이 한 컷은 독자들에게 그 당시 시대상과 인물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5년》 1권에서 이회영 6형제 일가 60여 명이 가산을 처분하고 망명길에 오르는 한 컷의 그림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여러 설명을 한 컷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만화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박 화백은 작업을 돕는 어시스턴트 한 명 두지 않고 자료 조사와 정리, 콘티와 밑그림, 펜 작업, 채색 등 모든 과정을 직접 도맡아 했기 때문에 일정은 더뎠지만 장인의 작품처럼 완성도는 높아졌다. 친일부역의 역사만이 아니라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로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35년’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35년!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 즉 근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통해 조선인은 근대인으로 변모했다. 일본의 폭압적인 통치하에서 내적 갈등을 거듭한 식민지인이자 근대화된 신분·토지제도를 경험한 세대, 무엇보다 독립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지속한 혁명가로서의 조선 민중들. 그들은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원형(原型)이다. 박시백의 《35년》은 이 원형의 시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생생히 복원한다. 단순히 박제된 정보를 전시하고 나열하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 호흡하는 소통으로서의 역사. 이처럼 원형으로서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를 비교하는 일은 곧 ‘왜 역사를 배우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가닿는다. 저자 박시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흔히 답한다. 하지만 나랏일을 하는 이가 아닌 평범한 우리에게는 좀 추상적인 답변이다. 혹자는 역사에서 살아갈 지혜를 얻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항일투쟁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던 반면 친일 부역의 길은 안락과 영화의 길이었다. 후자처럼 사는 게 역사에서 얻는 지혜가 되어버리고 만다면 역사를 배우는 건 너무 참담한 일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미래의 역사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배우는 일은 빛과 어둠, 그 명암의 흔적을 기억해내기 위함이다. 가장 밝게 빛나던 인물들뿐만 아니라 시대의 어둠 앞에서 자신의 안락과 영화만을 좇았던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일제강점기의 인물들과 시공간은 지금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상으로 기능한다. 역사를 배우는 동시에 만들어나가는 우리는, 그 거울상(이자 원형)이 가진 명암을 바탕으로 오늘의 역사를 더 정확하고 상세히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참담하지 않을’ 앞으로의 역사를 위한 길이므로. 인물과 사건이 살아 숨 쉬는 35년!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까지 전 7권 출간이 예정된 《35년》은, 가혹한 탄압으로 조선을 집어삼킨 조선총독부와 경찰들, 일신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나라와 동족을 팔아넘긴 친일파들, 민중의 들끓는 저항이 폭발했던 3·1혁명의 순간들과 그 이후의 대중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분열, 식민지 경성에서 벗어나 간도, 연해주, 상하이, 하와이를 넘나들며 해외에서 독립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이들,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으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 봉오동·청산리전투와 의열단의 의거,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등 수많은 인물과 단체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역사적 현실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박 화백은 만평작가 출신답게 촌척살인의 감각으로 당대의 사건과 인물들을 현재적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부록으로 수록된 연표를 통해 각 연도별로 국내와 세계의 사건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인명사전에서는 독립운동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등 《35년》(1~3권 기준)에 등장하는 인물 중 300여 인의 생애에 대한 촘촘한 정리를 곁들였다. 만화를 통해 스토리로 이해하고, 부록을 통해 다시 한 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만나보자. 세계사적 맥락에서 새롭게 바라본 35년! 《35년》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를 바라보는 민족주의적·국가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맥락을 고려했다는 점에 있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는 일제의 탄압과 우리의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수탈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한 전 지구적이며 유기적인 정세 속에서 흘러온 것이다. 이를테면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서자,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이에 발맞춰 이동휘가 한인사회당을 조직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창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내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국가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운형은 급변하는 정세를 주시하며 신한청년당을 조직해 대대적 독립운동을 준비한다. 이처럼 《35년》 각 권의 프롤로그에는 세계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전사(前史)를 소개하여, 우리의 일제강점기를 기존과 다른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 같은 세계사적 맥락은 그간 일제강점기를 다뤄 온 많은 역사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이를 그저 치욕의 역사로 기억하거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형태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떤 역사나 문명이든 태어나고 성장하며 소멸해가는 과정은 총체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비극적 역사일수록, 그 역사적 사실의 기원으로부터 정당한 교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세계사적 토대가 필수적이다. 사관과 관점이 균형 잡힌 35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보이는 앎’을 왜곡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능동적 태도가 우선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거치며,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균형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전작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사의 숨겨진 재미를 선사했던 박시백 화백은, 《35년》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흐름을 잇는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역사의 좌우 대립이라는 해묵은 논쟁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적극적인 사관(史官)’의 위치에서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 관조의 자세에서 벗어나 왜곡되지 않은 사관(史觀), 흔들리지 않는 관점, 그리고 충실한 역사 해석만이 우리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35년》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전 60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친일인명사전》(전 3권)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고, 그밖에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역사넷 등 인터넷 연구 자료와 단행본들도 참고해 공부하며 스토리를 짜는 준비 기간만 4년여가 걸렸다. 또한 7명의 현직 역사 교사(김종민, 남동현, 문인식, 박건형, 박래훈, 정윤택, 차경호)가 편집에 참여하여 역사적 사실관계를 바로잡았고, 밀도 있는 작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교정과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양한 쟁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35년! 일제강점기는 대개 유관순의 3·1만세운동과 안중근의 의거, 김좌진의 청산리전투 등 일부 영웅적 인물과 사건에만 치중해 각인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식민지를 살아가며 독립을 위해 애쓴 수많은 민중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은 훨씬 광범위하다. 《35년》은 그 수많은 역사적 쟁점 중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예컨대 임시정부의 활동과 분열, 사회주의 운동의 분화 등 비교적 소외되었던 복잡한 쟁점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정리했다. 각 장의 첫머리에는 지도와 함께 대표적 사건이나 인물이 인포그래픽으로 소개된다. 지리적 정보와 함께 제시되는 사진 자료와 간략한 내용 정리를 통해, 독자가 텍스트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만화와 교과서(역사 부도) 구성과의 결합으로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교육 현장에도 실질적인 연계와 활용이 가능하며, 수업을 통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었던 쟁점들을 보완하는 보조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다. 만화로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는 언제나 3차원적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언제나 1차원적 텍스트를 통해서였지만, 식민지 조선을 뛰어다니며 만세를 외쳤던 이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시공간 안에서 숨 쉬던 이들이다. 만화는 그런 현실의 시공간과 가장 가깝고, 그들이 살았던 삶을 생동감 있게 기록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체다. 박시백 화백은 만화를 프로덕션 분업 체제로 제작하는 최근의 추세와 달리 콘티 작업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담당한다. 작업일정은 더디지만 일반 학습만화처럼 정보와 그림이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완성도 높은 교양만화를 선보인다. 또한 만화 속 인물의 대사도 작가의 손글씨로 직접 그려 글과 그림의 전달력을 높였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한, 그리고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더불어 “가급적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부역자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고 밝힌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다룬 많은 책들이 이와 비슷한 무게감을 가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35년》이 만화라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만화로 기록한다는 것은, 사료의 텍스트가 가진 딱딱함을 부드러운 선으로 바꾸고, 독립운동가들의 피 끓는 외침을 컷과 컷의 간극으로 표현하며, 그들이 흘린 피로 색을 칠하는 작업이 아닐까. 줄거리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식민지의 그늘로 몰아넣는다. 일본은 대륙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단통치와 동화주의로 조선을 통제하고, 경제 영역까지 장악하며 식민지 경영의 기반을 구축한다. 작위를 받으며 친일에 앞장선 이완용뿐만 아니라 중추원 의관을 맡은 관리들, 그리고 지역 지주들은 대다수 부역자의 길을 택한다.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이 늘어나고 삶이 팍팍해진 조선인들은 간도, 하와이 등지로 이민을 떠난다. 1900년대 초기 연해주로 망명한 이들을 비롯해, 강제 병합이 가시화되자 신민회는 기획 망명을 통해 항전을 준비한다. 뜻있는 청년들은 독립운동의 무대로 상하이를 선택하고, 대종교는 북간도를 중심으로 항일 지사를 불러 모아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는다. 1910년 안악사건 이후 일본은 신민회의 해체를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105인사건)을 조작하며 계몽운동가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의병 세력이 약화되면서 계몽운동가들은 운동의 방식을 비밀결사로 변경하고 대한광복회 등을 조직한다. 연해주의 독립운동이 러·일의 관계 변화로 와해되자 독립군 진영은 북간도로 거점을 옮긴다. 미국 하와이에서는 대한인국민회 출범 이후, 박용만과 이승만이 자리를 잡으며 각자 다른 노선을 선택하여 갈등이 고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