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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5년 3
박시백 | 비아북 | 2018-02-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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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5년 3
박시백 | 비아북 | 2018-02-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믿고 읽는 박시백의 대하역사만화
박시백 화백의 신작 《35년》은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고,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집필이 강제로 멈춰버린 시기 이후의 역사에 주목했다. 식민지의 삶이라는 오욕의 역사가 우리의 ‘현재’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마치자마자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아 중국을 비롯한 전국을 답사했고, 각종 자료 수집과 공부에 매진한 지 5년여 만에 그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다. 박 화백은 전작에서 이성계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며 변발을 한 모습으로 그렸다. 이 한 컷은 독자들에게 그 당시 시대상과 인물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5년》 1권에서 이회영 6형제 일가 60여 명이 가산을 처분하고 망명길에 오르는 한 컷의 그림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여러 설명을 한 컷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만화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박 화백은 작업을 돕는 어시스턴트 한 명 두지 않고 자료 조사와 정리, 콘티와 밑그림, 펜 작업, 채색 등 모든 과정을 직접 도맡아 했기 때문에 일정은 더뎠지만 장인의 작품처럼 완성도는 높아졌다. 친일부역의 역사만이 아니라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로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35년’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35년!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 즉 근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통해 조선인은 근대인으로 변모했다. 일본의 폭압적인 통치하에서 내적 갈등을 거듭한 식민지인이자 근대화된 신분·토지제도를 경험한 세대, 무엇보다 독립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지속한 혁명가로서의 조선 민중들. 그들은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원형(原型)이다. 박시백의 《35년》은 이 원형의 시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생생히 복원한다. 단순히 박제된 정보를 전시하고 나열하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 호흡하는 소통으로서의 역사. 이처럼 원형으로서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를 비교하는 일은 곧 ‘왜 역사를 배우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가닿는다. 저자 박시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흔히 답한다.
하지만 나랏일을 하는 이가 아닌 평범한 우리에게는 좀 추상적인 답변이다.
혹자는 역사에서 살아갈 지혜를 얻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항일투쟁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던 반면
친일 부역의 길은 안락과 영화의 길이었다.
후자처럼 사는 게 역사에서 얻는 지혜가 되어버리고 만다면
역사를 배우는 건 너무 참담한 일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미래의 역사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배우는 일은 빛과 어둠, 그 명암의 흔적을 기억해내기 위함이다. 가장 밝게 빛나던 인물들뿐만 아니라 시대의 어둠 앞에서 자신의 안락과 영화만을 좇았던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일제강점기의 인물들과 시공간은 지금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상으로 기능한다. 역사를 배우는 동시에 만들어나가는 우리는, 그 거울상(이자 원형)이 가진 명암을 바탕으로 오늘의 역사를 더 정확하고 상세히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참담하지 않을’ 앞으로의 역사를 위한 길이므로.
인물과 사건이 살아 숨 쉬는 35년!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까지 전 7권 출간이 예정된 《35년》은, 가혹한 탄압으로 조선을 집어삼킨 조선총독부와 경찰들, 일신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나라와 동족을 팔아넘긴 친일파들, 민중의 들끓는 저항이 폭발했던 3·1혁명의 순간들과 그 이후의 대중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분열, 식민지 경성에서 벗어나 간도, 연해주, 상하이, 하와이를 넘나들며 해외에서 독립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이들,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으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 봉오동·청산리전투와 의열단의 의거,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등 수많은 인물과 단체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역사적 현실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박 화백은 만평작가 출신답게 촌척살인의 감각으로 당대의 사건과 인물들을 현재적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부록으로 수록된 연표를 통해 각 연도별로 국내와 세계의 사건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인명사전에서는 독립운동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등 《35년》(1~3권 기준)에 등장하는 인물 중 300여 인의 생애에 대한 촘촘한 정리를 곁들였다. 만화를 통해 스토리로 이해하고, 부록을 통해 다시 한 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만나보자.
세계사적 맥락에서 새롭게 바라본 35년!
《35년》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를 바라보는 민족주의적·국가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맥락을 고려했다는 점에 있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는 일제의 탄압과 우리의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수탈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한 전 지구적이며 유기적인 정세 속에서 흘러온 것이다. 이를테면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서자,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이에 발맞춰 이동휘가 한인사회당을 조직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창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내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국가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운형은 급변하는 정세를 주시하며 신한청년당을 조직해 대대적 독립운동을 준비한다. 이처럼 《35년》 각 권의 프롤로그에는 세계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전사(前史)를 소개하여, 우리의 일제강점기를 기존과 다른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 같은 세계사적 맥락은 그간 일제강점기를 다뤄 온 많은 역사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이를 그저 치욕의 역사로 기억하거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형태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떤 역사나 문명이든 태어나고 성장하며 소멸해가는 과정은 총체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비극적 역사일수록, 그 역사적 사실의 기원으로부터 정당한 교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세계사적 토대가 필수적이다.
사관과 관점이 균형 잡힌 35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보이는 앎’을 왜곡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능동적 태도가 우선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거치며,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균형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전작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사의 숨겨진 재미를 선사했던 박시백 화백은, 《35년》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흐름을 잇는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역사의 좌우 대립이라는 해묵은 논쟁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적극적인 사관(史官)’의 위치에서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 관조의 자세에서 벗어나 왜곡되지 않은 사관(史觀), 흔들리지 않는 관점, 그리고 충실한 역사 해석만이 우리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35년》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전 60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친일인명사전》(전 3권)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고, 그밖에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역사넷 등 인터넷 연구 자료와 단행본들도 참고해 공부하며 스토리를 짜는 준비 기간만 4년여가 걸렸다. 또한 7명의 현직 역사 교사(김종민, 남동현, 문인식, 박건형, 박래훈, 정윤택, 차경호)가 편집에 참여하여 역사적 사실관계를 바로잡았고, 밀도 있는 작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교정과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양한 쟁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35년!
일제강점기는 대개 유관순의 3·1만세운동과 안중근의 의거, 김좌진의 청산리전투 등 일부 영웅적 인물과 사건에만 치중해 각인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식민지를 살아가며 독립을 위해 애쓴 수많은 민중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은 훨씬 광범위하다. 《35년》은 그 수많은 역사적 쟁점 중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예컨대 임시정부의 활동과 분열, 사회주의 운동의 분화 등 비교적 소외되었던 복잡한 쟁점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정리했다.
각 장의 첫머리에는 지도와 함께 대표적 사건이나 인물이 인포그래픽으로 소개된다. 지리적 정보와 함께 제시되는 사진 자료와 간략한 내용 정리를 통해, 독자가 텍스트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만화와 교과서(역사 부도) 구성과의 결합으로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교육 현장에도 실질적인 연계와 활용이 가능하며, 수업을 통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었던 쟁점들을 보완하는 보조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다.
만화로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는 언제나 3차원적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언제나 1차원적 텍스트를 통해서였지만, 식민지 조선을 뛰어다니며 만세를 외쳤던 이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시공간 안에서 숨 쉬던 이들이다. 만화는 그런 현실의 시공간과 가장 가깝고, 그들이 살았던 삶을 생동감 있게 기록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체다. 박시백 화백은 만화를 프로덕션 분업 체제로 제작하는 최근의 추세와 달리 콘티 작업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담당한다. 작업일정은 더디지만 일반 학습만화처럼 정보와 그림이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완성도 높은 교양만화를 선보인다. 또한 만화 속 인물의 대사도 작가의 손글씨로 직접 그려 글과 그림의 전달력을 높였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한, 그리고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더불어 “가급적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부역자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고 밝힌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다룬 많은 책들이 이와 비슷한 무게감을 가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35년》이 만화라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만화로 기록한다는 것은, 사료의 텍스트가 가진 딱딱함을 부드러운 선으로 바꾸고, 독립운동가들의 피 끓는 외침을 컷과 컷의 간극으로 표현하며, 그들이 흘린 피로 색을 칠하는 작업이 아닐까.
줄거리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식민지의 그늘로 몰아넣는다. 일본은 대륙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단통치와 동화주의로 조선을 통제하고, 경제 영역까지 장악하며 식민지 경영의 기반을 구축한다. 작위를 받으며 친일에 앞장선 이완용뿐만 아니라 중추원 의관을 맡은 관리들, 그리고 지역 지주들은 대다수 부역자의 길을 택한다.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이 늘어나고 삶이 팍팍해진 조선인들은 간도, 하와이 등지로 이민을 떠난다. 1900년대 초기 연해주로 망명한 이들을 비롯해, 강제 병합이 가시화되자 신민회는 기획 망명을 통해 항전을 준비한다. 뜻있는 청년들은 독립운동의 무대로 상하이를 선택하고, 대종교는 북간도를 중심으로 항일 지사를 불러 모아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는다.
1910년 안악사건 이후 일본은 신민회의 해체를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105인사건)을 조작하며 계몽운동가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의병 세력이 약화되면서 계몽운동가들은 운동의 방식을 비밀결사로 변경하고 대한광복회 등을 조직한다. 연해주의 독립운동이 러·일의 관계 변화로 와해되자 독립군 진영은 북간도로 거점을 옮긴다. 미국 하와이에서는 대한인국민회 출범 이후, 박용만과 이승만이 자리를 잡으며 각자 다른 노선을 선택하여 갈등이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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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
윤내현 | 만권당 | 2017-10-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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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
윤내현 | 만권당 | 2017-10-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민족의 시원, 신화를 벗고 역사를 입다!
한 권으로 읽는 5,000년 전 고대왕국의 모든 것!
고조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고조선은 곰과 호랑이, 마늘과 쑥, 환웅과 웅녀, 단군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 아스라이 먼 고대왕국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달달 외우도록 읽으면서 한민족의 시원(始原)인 고조선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정보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역사 교과서에서도 근현대에 비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고조선을 문헌사료와 고고학을 통해 연구하여 고조선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명저 『고조선 연구』로 우리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윤내현 교수가 청년들에게 바치는 고조선 이야기,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으로 돌아왔다.
다이제스트 ‘고조선 연구’,
청년에게 들려주는 알기 쉬운 고조선 이야기!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은 14개의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신화’가 아닌 ‘역사’로서 고조선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질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하고도 당연한 의문들, 즉 단군은 누구인가, 단군사화는 무엇을 말해주나,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무슨 뜻인가, 고조선은 언제 건국되었나, 고조선은 얼마나 넓은 나라였나, 고조선 사람들의 경제 활동과 생활 모습, 과학기술과 문학, 예술, 종교는 어떠했나, 고조선의 대외관계는 어떠했나, 그리고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나 등의 의문을 찬찬히 풀어준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단군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따라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태어난 이, 고조선의 건국자 등의 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단군이 개인이라면 2,300여 년이라는 오랜 기간 존속한 고조선을 한 사람이 다스렸다는 말이 되니, 단군이 ‘삼천갑자 동방삭’이 아닌 이상은 수긍하기 힘들다.
지은이는 단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말해준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단군은 고조선의 통치자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군주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칭호인 왕이라는 말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통치자를 단군 또는 한이라 불렀다. 단군은 고조선의 최고신인 하느님의 아들 또는 하느님을 받드는 종교의 지도자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단군왕검 한 사람 이름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군을 단군왕검과 동일시하나, 사실 단군왕검은 여러 명의 단군 가운데 한 명이었다.
고조선이라는 국명에 대한 설명도 우리의 무지(?)와 편견을 깨뜨린다. 고조선은 흔히 이성계의 조선 이전의 ‘옛 조선’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무려 2천 년 전에 이성계의 조선이 세워질 것을 미리 알고 ‘고조선’이라고 국명을 정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한자의 뜻으로 풀이하면 ‘옛날의 조선’이라는 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사용되는 동안 고유명사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위만조선과 같이 나중에 출현한 조선보다 더 오래된 조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고조선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오만과 편견’을 깨부수는 책
그런데, 잠깐. 글로벌화된 21세기의 젊은이들에게 신화와 역사의 경계선상쯤에 존재하는 5천 년 전의 ‘케케묵은’ 고대왕국 이야기가 왜 중요할까? 지은이는 “고조선 사회와 문화의 성격은 우리 민족 사회와 문화 특성의 원형”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외래문화의 교류가 활발한 오늘날 같은 개방화의 시대일수록 민족의 가치관 정립이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고조선 사람들의 가치관을 알지 못하고는 우리 자신을 바르게 알 수가 없다”고 본다. 세계화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을 알 필요가 있듯이, 우리나라가 세계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 H. 카의 말에 동의하는 독자, 그리고 기꺼이 과거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들에게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은 고조선에 대한 오랜 ‘오만과 편견’을 깨주는 훌륭한 ‘고조선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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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궁금해서 밤새 읽는 한국사
이근호 | 청아출판사 | 2017-09-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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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궁금해서 밤새 읽는 한국사
이근호 | 청아출판사 | 2017-09-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주는 한국사!
꼭 알아야 할 핵심만 정리해 압축한 한국사!
한국사 책은 많다. 아주 많다. 너무 많아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 책이 봇물 터지듯 계속해서 출간되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한국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인간의 시간과 공간이 종합된 경험의 축적이다. 그래서 단숨에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수년간 공부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류가 정착해 살면서 부딪혔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존에 나와 있는 다른 한국사 책과 비교해 특별한 책이 아니다. 그 특별함이란 것이 이야기식 서술, 혹은 인기 강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서술, 풍성한 볼거리 등이기에 더 이상 한국사를 읽으면서 특별한 재미를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수없이 읽고 공부해 왔던 한국사를 다시 한 번 재정리해 볼 수 있는 책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시작부터 제18대 대통령 선거까지 한국사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해 거대한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았다. 각 시대별 개괄과 마무리 정리를 통해 흐름으로 꼭 알아야 할 핵심만 짚어 놓았고, 텍스트가 읽기 힘들어질 때쯤 사건과 관련 있는 이미지를 배치해 지루함을 보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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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
김명옥, 이주한, 홍순대, 황순종 | 만권당 | 2017-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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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
김명옥, 이주한, 홍순대, 황순종 | 만권당 | 2017-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학계의 친일파들은 어떻게
이설(異說)을 이단(異端)으로 몰아갔는가?
관학은 무조건 옳고 비판은 무조건 사악하다고 몰아붙이는 ‘그들만의 비겁한 리그’를 낱낱이 까발린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라고 시인 민태원은 청춘을 예찬했다. 구태여 시구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젊음’은 그것 자체로 빛나는 단어다. 젊다는 것은 그들이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을 지금 막 통과하며 삶의 한가운데를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젊은이는 특유의 패기로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고 구습을 파괴하며 발랄하고 신선한 의제를 던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지지와 격려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 이상한 젊음이, 이상한 젊은이들이 있다. ‘젊은역사학자모임’이라는 집단에 속한 이들이다. 얼마 전에 이상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의 저자는 개인이 아니라 ‘젊은역사학자모임’이라는 단체였다. 책은 한국사를 전공하고 이제 갓 박사 학위를 받거나 강단에 선 ‘젊은’ 역사학자들이 계간지 「역사비평」에 기고했던 글을 엮은 것이었다. 문제는 이 ‘젊은’ 학자들이 쓴 글이 전혀 새롭거나 도전적이거나 발랄한 내용이 아닐 뿐 아니라, 시급히 청산해야 마땅할 역사학계의 낡은 적폐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시사 현안에 대해서는 극과 극의 입장차를 보이는 보수매체인 「조선일보」와 진보매체인 「경향신문」, 「한겨레」, 그리고 중도로 분류되는 「한국일보」가 일제히 이들에 관해 대서특필하며 이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사며 인터뷰를 쏟아낸 것이다. 우리 언론사상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언론의 좌우 합작”이 벌어진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매체라면 어떤 사안이든 커다란 논쟁이나 논란이 일어난다면 양쪽의 주장을 비슷한 지면을 할애하여 쟁점과 논란을 싣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그들 매체는 이들 ‘젊은’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대대적으로 다루었지만, 그들이 ‘유사, 사이비’라고 매도한 민족사학계에는 취재 요청 한 번 하지 않았고, 심지어 기사가 나간 다음의 해명과 사과 요구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은 이처럼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 사태의 이면에는 ‘학피아’라 일컬어지는, 해방 이후 청산되지 않은 역사학계의 ‘학맥’이라는 무시무시한 힘이 음지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이들의 행태를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통렬하게 고발한다.
낡고 뒤틀린 그들만의 역사학,
이른바 ‘무서운 아이들’의 매국사관을 매섭게 비판한다!
현재 우리 역사학계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 고대사와 관련해서 ‘펜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학문적 논쟁을 벌이는 대신에 법정싸움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은 말하자면 강단사학계의 ‘총알받이’로 내세워진 ‘젊은’ 역사학자들의 ‘낡은’ 주장에 대한 학문적 답변이자 매국사학계에 보내는 준엄한 경고다. 동시에 강단사학계에 맞서 외로운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민족사학계가 국민께 바치는 ‘대국민 역사전쟁 보고서’이기도 하다.
본문은 2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역사전쟁의 상황에 대한 정리 및 경과보고이며, 2부는 단군과 한사군, 임나일본부 등 고대사의 쟁점에 관한 반론이다. 4명의 필자가 ‘젊은’ 그들의 ‘젊지 않은’ 주장에 사료를 근거로 반박하면서 비판하는 글을 모았으며, 한국 고대사와 관련해서 보이는 언론의 편향된 보도 행태를 비판하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한다. 지은이들은 머리말에서 역사학계의 적폐 세력과 언론의 행태에 다음과 같은 말로 포문을 연다.
“한때는 진보를 표방했으나 이제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한 「역사비평」에서 아직 학문계에 첫발을 떼지도 못한 젊은 학자들을 동원해 민족사학계를 ‘사이비·유사 역사학’으로 폄훼하고 나섰다. 그러자 좌우 언론 카르텔이 일제히 이들의 덜떨어진 주장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조선일보」는 이들에게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주었고,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는 그들이 노벨상이라도 탄 듯이 다투어 전면에 걸친 인터뷰 기사로 거듭 띄워주었다. 생물학적 나이만 ‘젊은’ 역사학자들이 스승과 선배들을 대신해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의 총알받이로 나선 것이 이들 언론이 그토록 고대하던 일이었던가?”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역사학의 진실 또한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역사학계가 반민특위의 강제 해체로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으며,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와 신석호 ‘라인’이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주류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상식’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소속 조선사편수회에서 황국사관, 식민사관을 만들어내는 데 충성을 다했던 ‘황국신민’이었던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강단을 장악하고 역사학계의 유일무이한 학문 권력으로 군림하며 ‘충성스러운’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자료 독점, 학문권력 독점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을 통해 사료와 문헌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다수 대중이 진실을 알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견고해보이던 그들만의 세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민 세금을 수십억을 들여서 제작한 ‘하버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한국 고대사 영문 책자 발간 사업)’의 고조선 죽이고 한사군 강조하기, 동북아역사지도에서 독도 삭제하고 고대사 강역 축소하기 등의 사태가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논란 끝에 하버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은 폐기처분되었다. 역사학계의 작은 ‘다윗’들이 던진 작지만 힘찬 돌팔매에 강단사학계라는 썩어빠진 ‘골리앗’이 비틀거리기 시작한 셈이다.
과학이든 역사든, 학문의 발전에는 토론과 논쟁이 필수다. 세상에 영원한 진리는 없고, 소수설이 다수설이 되어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듯이, 우리 역사가 바로서기 위해서도 그리고 진정한 역사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열린 토론과 논쟁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계급장 떼고, 공개적으로 한판 논쟁을 붙어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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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
이성주 | 애플북스 | 2017-11-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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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
이성주 | 애플북스 | 2017-11-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를 드라마로 배운 당신을 위한 책!
우리는 흔히 드라마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만큼 드라마 속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그리고 재미있다. 사극은 우리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각 인물의 행동에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가 쉽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사극은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듣는 지식보다 더 사실적이고, 더 입체적이며, 더 극적이다.
역사 칼럼니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이 책의 저자가 역사와 사극을 접목하여 집필한 도서인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뤘던 내용에 고문서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자료를 더하여 좀 더 깊이 있고 풍부하게 역사를 이해하게 해주고, 잘못된 정보는 하나하나 증거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교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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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추리 조선사
김종성 | 인문서원 | 2018-03-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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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추리 조선사
김종성 | 인문서원 | 2018-03-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에 상상을 허하라?
일어나지 않은 사건으로 읽는 ‘만약에’ 역사 이야기!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지 않았다면? 영조가 왕좌에 오르지 않았다면?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했다면? 아관파천이 없었다면?
삶은 수많은 사건과 사고로 이루어진다. 거기에 우연과 우발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수많은 개인의 삶의 응축체인 역사도 마찬가지다. 삶도 역사도, 마음먹은 대로, 정해진 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우연과 우발이 거듭된다. 개인의 삶은 상상이 허락된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역사는 기본적으로 일어나버린 일, 과거지사를 다루는 분야다. 그렇다면 역사에는 상상이 필요 없을까? 지나간버린 일은 돌이키거나 바꿀 수 없으니 상상 자체가 불필요할까? 하지만 일어난 역사도 흥미롭지만, 일어나지 않은 역사도 흥미로운 법. ‘만약에 ~했다면’이라는 추론이나 상상은 역사적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는 위무 작용과 더불어 어떤 시기에 ‘그렇게만 되었다면’, 또는 ‘그렇게 되지만 않았다면’이라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정해봄으로써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게도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 추리 조선사』는 그런 발상에서 출발한, ‘역사에 추리를 보태 상상을 허락한’ 독특한 콘셉트의 역사책이다. 조선의 개국에서 멸망까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바뀐 극적인 순간 30장면을 엄선하여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을 대범하게 상상해본다. 역사서에서 주어진 힌트를 토대로 가정을 세우고 추론에 상상을 더해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것이다.
정몽주가 죽지 않았다면 조선의 탄생은 없었다?
‘금삼의 피’와 연산군의 폭정은 크게 상관없다?
이야기는 조선 왕조의 개창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정몽주와 정도전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정몽주는 선죽교에 붉은 피를 흩뿌리며 죽었고,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1등공신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정몽주가 그때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은이는 정도전이 죽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선의 개국이라는 ‘큰 그림’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실제로 정몽주가 죽기 전에 정도전은 탄핵을 받아 유배 길에 올랐으며, 정몽주는 그를 죽이기 위해 암살 밀명까지 내렸다. 그러나 정몽주가 먼저 죽음으로써 정도전은 극적으로 살아났고 조선은 무사히 개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정몽주가 먼저 죽지 않았다면 정도전이 암살당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랬다면 고려 왕조는 1392년에 막을 내리지 않고 이어지다가 고려가 임진왜란을 당했을 수도 있다. 정몽주가 죽었느냐 정도전이 죽었느냐에 따라 역사의 나비효과는 엄청났던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보자. 흔히들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고 비참하게 죽었기 때문에 연산군이 폭군이 되었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은이는 전혀 다른 가정을 제시하면서 역사를 추리한다. 폐비 윤씨의 사약은 연산군의 폭정과 상관관계가 약하며, 오히려 중요한 것은 ‘텅 빈 국고’, 흔히 말하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는 것이다. 연산군이 즉위했을 때 조선 왕실에는 돈이 없었다. 세금도 잘 걷히지 않았다. 그리고 훈구파에 대항하여 새롭게 성장한 사림이 기존 정치 시스템을 뒤흔들려 하고 있었다. 기존 체제가 흔들리면 권력자들은 겁을 먹고 그들을 탄압하려 한다. 연산군도 그러했다. 가뜩이나 재정 문제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기 힘든 판에 기존의 정치 시스템이 교란되니 그들에게 불똥이 튀었고, 그래서 발생한 것이 두 차례의 ‘사화’였다는 것이다. 결국 연산군의 선비 탄압으로 폭발한 폭정은 ‘금삼의 피’ 때문이 아니라 국정을 운영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추론이다.
그때, 만약에, 그러했다면……,
과거를 상상하라, 역사인식의 폭을 넓혀라!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접하면서 저지르기 쉬운 오류 가운데 하나가 공적인 문제를 사적인 문제로 축소해서 인식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좋은 예가 숙종 때 ‘인현왕후 대 장희빈’의 이른바 ‘여인천하’ 구도인데, 실제로는 여자들이 머리채 잡고 싸운 이야기가 아니라 왕권 대 신권(臣權), 그리고 신권 대 신권이 권력을 다투는 피 터지는 정쟁에서 ‘주연배우’쯤으로 내세워진 이들이 ‘궁중의 여성’이었을 뿐이다. ‘미인계’를 통한 공작정치인데 사가(私家)의 치정 사건처럼 흥미 본위로만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역사 추리 조선사』는 일어나지 않은 역사를 추리해본다는 콘셉트도 흥미롭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추리를 통해 장희빈 사건처럼 미시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역사를 확장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에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다. 칭다오맥주와 조선 멸망의 관계, 서양의 ‘바닷길 개척’이 조선에 미친 영향 등, 국내 정세만이 아니라 동북아와 유럽을 포함한 국제 정세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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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예술을 사랑한 신사임당
강석진 | 레몬북스 | 2017-02-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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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예술을 사랑한 신사임당
강석진 | 레몬북스 | 2017-02-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눈에 보는 신사임당의 생애와 예술 이야기
신사임당이 탄생한 1504년은 바로 갑자사화가 벌어진 해였다. 뿐만 아니라 유년시절 내내 정치적으로 불안한 정국이었으며 결혼한 이후에도 당쟁의 소용돌이를 직간접적으로 몸소 겪었다. 오랫동안 정치와 학문으로 다져진 사대부들이 혼란기의 격랑을 넘지 못하고 당쟁의 제물로 바쳐지거나 유배지의 낭인으로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 어려운 시기에 은근히 천시되던 여성의 지위를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뒤바꿔 놓았는가 하면, 역사의 뒤안길에 나앉아 있던 여류 학자나 문인, 여류 예술가의 이미지를 단숨에 당당한 반열 위에 올려놓은 인물이 바로 신사임당이다. 이 책에서는 1500년대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조선사회와 그 속에서 꽃피운 신사임당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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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조실록 1 태조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07-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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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조실록 1 태조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07-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구상 및 자료조사 10년, 집필 5년!
우리 시대 최고의 역사가 이덕일의 국내 최초 정통 조선왕조실록
“조선 500년 역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드라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사극만 78편! 그만큼 조선의 역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드라마다. 이 모든 건 조선 왕조의 모든 것을 기록한 실록이 있었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조선왕조실록을 제대로 읽은 독자는 별로 없다. 그 방대함 탓에 지식 전달 위주의 다이제스트 역사서만 출간됐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역사가 이덕일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인사이트로 전 10권 정통 조선왕조실록을 펴낸다. 무려 10년간의 구상과 자료조사, 그리고 5년간의 집필 끝에 탄생한 역사서다. 입문서만 많았던 출판시장에 마침내 ‘정통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한 것이다. 그동안 역사 교양서의 스타일을 새롭게 창조해온 이덕일은 이번 책에서도 특유의 날카롭고 단단한 문체로 기존 해석에 질문을 던지고 현대적인 의미를 찾는다. 특히 조선을 이끈 주요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평가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과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도 굉장히 크다. 삼국지나 로마사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우리의 역사가 이제 당신의 가슴을 뛰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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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조실록 2 정종 태종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07-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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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왕조실록 2 정종 태종
이덕일 | 다산초당 | 2018-07-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구상 및 자료조사 10년, 집필 5년!
우리 시대 최고의 역사가 이덕일의 국내 최초 정통 조선왕조실록
“조선 500년 역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드라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사극만 78편! 그만큼 조선의 역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드라마다. 이 모든 건 조선 왕조의 모든 것을 기록한 실록이 있었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조선왕조실록을 제대로 읽은 독자는 별로 없다. 그 방대함 탓에 지식 전달 위주의 다이제스트 역사서만 출간됐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역사가 이덕일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인사이트로 전 10권 정통 조선왕조실록을 펴낸다. 무려 10년간의 구상과 자료조사, 그리고 5년간의 집필 끝에 탄생한 역사서다. 입문서만 많았던 출판시장에 마침내 ‘정통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한 것이다. 그동안 역사 교양서의 스타일을 새롭게 창조해온 이덕일은 이번 책에서도 특유의 날카롭고 단단한 문체로 기존 해석에 질문을 던지고 현대적인 의미를 찾는다. 특히 조선을 이끈 주요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평가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과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도 굉장히 크다. 삼국지나 로마사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우리의 역사가 이제 당신의 가슴을 뛰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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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법이야기
류승훈 | 이담Books | 2017-01-1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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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법이야기
류승훈 | 이담Books | 2017-01-1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를 가리지 않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원통하고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정한 재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울러 형벌권이 남용되는 것을 경계하였고, 죄를 지은 자라 할지라도 최대한 인권을 존중해 주려는 노력이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법관이 오판을 하였거나 진정과 거짓을 잘못 판단하여 재판하였다면 과연 해당 법관에게 그 공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또한 제도적으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함에 있어 소홀한 점은 없는지 다시금 되짚어보아야 한다. 법조비리 문제로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있는 즈음, 법조비리의 근절이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우리 조상들의 공정한 재판을 추구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삶의 지혜로부터 법조비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지.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소송제도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 법의식의 단면을 소개하고 현대에서는 이를 거울로 삼아 분쟁 발생 시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고자 함에 그 취지가 있다. 현대생활은 분쟁의 홍수라 할 만큼 엄청난 분쟁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분쟁이 소송으로 화할 경우에는 과거 ‘소송은 패가망신’이라 여겼던 우리 조상들의 인식과 “재판 3년이면 기둥뿌리 빠진다.”는 오늘날의 자조가 그대로 맞아떨어지게 된다.
과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조상들 삶의 지혜로부터 어떠한 노하우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조상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는 결국 진정한 분쟁해결의 올바른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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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패권 쟁탈의 한국사
김종성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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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패권 쟁탈의 한국사
김종성 | (주)을유문화사 | 2018-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무엇이 패권을 만들고, 지키고, 뒤집는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동반자였던 패권 쟁탈의 흐름을 한·중·일, 삼국 관계로 진단하다 동아시아 패권은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로 흘러갔는가? 패권의 향방으로 바라본 동북아 역사의 새로운 시각 중국 어선들이 우리 서해 앞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우리 해양 경찰들이 이를 막느라 골머리를 썩인다는 기사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히 중국과 한국의 사회적 현안만은 아니다. 이러한 사건의 밑바탕에는 동북아의 패권 질서와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우리는 국제질서가 이상과 도덕보다는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한 힘의 논리와 흐름이 바로 패권 쟁탈이다. 앞서 이야기한 중국 어선들의 서해 불법 조업은 우리 선조들이 본다면 개탄할지도 모를 사건이다. 적어도 저자가 보기에 신라인들은 작금의 현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비단길을 개척했던 중국인들은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바닷길에 약했다. 이는 일본 천황의 초청을 받은 당나라의 유명한 승려 ‘감진 대사’가 일본을 방문하는 데 무려 11년이나 걸린 사건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당나라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 가장 쉬운 해로는 산둥반도에서 서해를 가로질러 한반도 남해안과 대마도를 거치는 경로다. 하지만 신라인들은 이 해로를 감진대사 일행에게 내주지 않았다. 결국 감진대사는 상하이 쪽의 양자강 하구에서 출발해 동지나해를 가로질러 일본으로 가는 위험한 경로를 택해야만 했다. 그 결과 여행은 번번이 실패했고 여섯 번 만에야 겨우 성공하여 일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보고의 청해진이 서해를 주름잡은 것도 이러한 신라인의 해상권 장악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과거 패권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다툼이 오늘날에도 유사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이러한 패권 쟁탈의 과정을 통해 고조선부터 남북한 분단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1부 ‘무역로와 사상 혁신’에서는 초원길과 연결되어 있던 고조선이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행사하게 되고 이후 쇄락해 갔는가를 이야기한다. 2부 ‘왜곡과 정통성 논쟁’에서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우리 역사를 대륙 중심의 역사관에서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으로 바꾸면서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축소시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아울러 백제의 건국시조를 통해 고대 왕국에서 정통성 논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3부 ‘주변 정세와 전략’에서는 중국과 한반도의 3국(고구려, 신라, 백제)이 정세 변화에 따라 어떠한 전략을 운영했는가와 그에 따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4부 ‘위기관리와 정치력’에서는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는 원인과 배경 등을 이야기하고 아울러 신라와는 다른 정치력을 보였던 고려에 대해 이야기한다. 5부 ‘기후 변화와 정체 체제’는 원나라의 등장과 기후 변화에 따른 몰락, 공민왕의 정치 개혁과 신진사대부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정치 체제의 변화가 패권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한다. 6부 ‘외교와 안목’에서는 명나라와 조선과의 외교 관계, 바닷길 시대의 등장과 더불어 시대의 흐름을 볼 줄 알았던 일본의 안목과 이에 뒤처졌던 조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오늘날 분단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과 남북한의 패권 흐름을 분석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패권의 역사로 바라본 신개념 한국사 역사적 사건 밑에 숨어 있던 원동력을 분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다시 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대표적인 세계 무역로인 초원길, 비단길, 바닷길이 활성화되고 패권의 향방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무역로를 통해서 당시의 선진 문물이 교류되었기 때문에 이 무역로에 가까운 민족일수록 주변 민족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3대 무역로 중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되었던 초원길 시대에는 이 길과 인접해 있던 한민족이 초원길 아래, 황하 주변에 모여 있던 중국인들을 압도했다. 이러한 사실은 만리장성의 축조로도 나타난다. 만리장성은 흔히 생각하듯이 흉노족이나 다른 북방 유목 민족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한민족을 막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지금의 베이징에서 서북쪽 140킬로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부터 동쪽을 향해 뻗는 만리장성은 고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지은 것이었다. 당시 흉노족은 몽골 초원 쪽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다. 만약 만리장성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지어졌다면 현재 위치보다 좀 더 왼쪽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한다. 『사기』 「조선열전」에서도 연나라가 현재의 만리장성의 토대가 되는 장성을 쌓은 것은 고조선을 견제하기 위해서란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초원길에서는 한민족이 중국의 한족을 압박하거나 최소한 대등한 위치에서 패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비단길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동북아의 패권은 중국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초원길 다음에 국제 무역로로 성장한 비단길 시대에는 중국이 한반도의 여러 왕국을 압도해 나갔다. 저자는 비단길의 개척은 바닷길의 개척에 버금가는 ‘미친 짓’이었다고 말한다. 비단길은 사막을 관통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무모한 시도가 성공한 결과 중국은 비단길을 통해 로마와의 무역으로 막대한 은을 벌어들였고 곧 세계 패권의 강자로 우뚝 서게 된다. 반면 바닷길 시대에서는 이 국제 무역로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개방 정책으로 세계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중국과 한국을 압도하게 된다. 이외에도 한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굵직한 전쟁이나 외교사에 관해서도 저자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교를 통해 사상 혁신이 일어난 중국이 어떻게 급성장하게 되었는가를 따지기도 하고, 중국의 통일과 분열이 한반도 역사에 미친 영향, 기후 변화가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등을 논한다. 저자가 말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이 모든 패권 쟁탈의 역사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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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컷 한국 현대사
표학렬 | 인문서원 | 2018-01-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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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컷 한국 현대사
표학렬 | 인문서원 | 2018-01-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1,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찰칵! 순간이 찍혔다, 역사가 남았다!
열화되고 풍화된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위대한 패배자와 더러운 승리자의 역사!
영화 〈택시 운전사〉에는 5.18광주항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알리기 위해 독일인 기자가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주인공이 몇 십 년 전에 ‘위안부’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증거물은 옷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낡고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순간을 영원으로’. 사진이 갖는 특성을 가장 적확하고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일 것이다. 20세기는 일반 대중이 순간을 찍어 영원이 가능한 경험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된 세기이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종이 사진은 빛이 바래고 희미해지긴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는 빛이 바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00년의 말없는, 그러나 귀중한 증언자로 자리 잡았다. 『한 컷 한국 현대사』는 구한말에서 해방과 분단,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거쳐 전태일 열사의 분신까지, 카메라가 우연히 포착한 드라마틱한 한순간, 말하자면 ‘카메라가 포착한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모던 보이’의 마지막 함박웃음,
그리고 유리창에 뚫린 총알 자국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 말쑥한 더블 코트를 차려입고 환하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런데, 이 청년 왠지 낯이 익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두 손에 폭탄을 들고 찍은 사진 속 주인공으로 익숙한 이봉창 의사다. 단정한 코트를 입고 찍은 사진은 이봉창 의사가 거사를 위해 상하이 임정을 떠나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의사는 두 번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지 못하고 순국했다.
유리창에 선명하게 뚫린 총알 자국이 찍힌 사진이 있다. 유리창 너머 마당에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오열하는 수많은 군중들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이 사진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의 한 순간, 김구 암살 당일의 풍경을 포착한 것이다.
본문은 33장의 사진이 들려주는 33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책장을 열면 첫 번째로 마주하는 사진은 칼을 찬 교사들과 나란히 서서 찍은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이다. ‘칼’을 차고 교단에 서는 교사들 뒤에는 일제의 ‘무단통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칼의 통치’에 저항하는 3.1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적막한 느낌이 손에 잡힐 듯 전해지는 고종 황제의 일본식 장례식 사진 뒤로는 망국의 왕족들이 겪어야 했던 을씨년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겹친다. 박정희의 3선 개선에 맞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40대 김대중의 ‘젊은 시절’ 모습에서는 그날 이후 그의 민주화 투사로서의 삶과 그 역경을 것을 딛고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흘러간다.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사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숨결까지 잡힐 듯한 순간들은 어쩌면 무심한 렌즈가 우연히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살아남은 이들의 눈동자는 무심할 수 없다. 사진이 품고 있는 순간순간의 ‘드라마’, 그 속 깊은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컷 한국 현대사』는 지난 100년 동안 대한민국이 겪어온 롤러코스터 같은 순간들, 지옥 같은 순간들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의 영욕의 한순간, 그리고 이제는 삶의 마침표가 찍혀버린 이들이 아직 살아 숨 쉬던 순간들의 궤적을 통해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풍성하게 넓히는 동시에 ‘삶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까지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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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이 알아야 할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
함규진 | 자음과모음 | 2017-02-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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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이 알아야 할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
함규진 | 자음과모음 | 2017-02-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9-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근대국가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 한편
끝까지 사람의 길을 고민했던 조선 최후의 군주 고종
1863년 열두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에 눌려 지낸 끝에 겨우 홀로서기를 하자마자 격변의 시대에 휩쓸려버린 비운의 왕 고종. 그는 적들이 천지를 메운 상황에서 일신의 보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꼭 겁이 많아서라기보다, 먼저 자신이 버티고 있어야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끝내 망해버린 오백 년 종묘사직과 이태왕(李太王)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명칭을 받아 든 고종은 이미 모든 게 늦었다는 자책 속에서 번민하던 끝에,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반격을 준비한다.
〈저자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도 편안히 살기 힘든 격변의 시대에 한 나라의 군주로서 고종이 얼마나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쓰인 이 책은, 고종의 일대기를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결단에 중점을 두고 펼쳐간다. 책 속 이야기는 고종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과정, 대원군의 섭정, 명성황후와의 혼인, 친정(親政)을 하고부터의 개인적·역사적 정황 등이 차례로 서술된다.
고종의 인간적 고뇌와 결단을 만나다
조선 26대 왕, 대한제국 초대 황제, 그리고 사실상 한국사상 최후의 군주였던 고종.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많은 이들이 그를 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청나라·일본·러시아 등의 열강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다가 맥없이 망국을 당하고 만 평균 이하의 군주로 여긴다. 한편 그의 여러 개혁 정책과 반일 독립투쟁을 높이 평가하며, 존경해 마땅한 인물로 높이는 예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어느 쪽이든 고종이라는 한 인물을 바라보기보다 ‘고종 시대’를 바라보고 그 시대가 개탄스러운 쇠망의 시대였느냐, 야심찬 개혁의 안타까운 좌절의 시대였느냐로 긍정 또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시각이다. 고종이라는 인물은 다른 모든 인물과 마찬가지로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때로는 용감하고 때로는 비겁하며, 감정에 치우쳐 실수하는가 하면 냉철하게 판단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다만 그를 둘러싼 시대가 하도 특별했으며, 그 속에서 부대끼던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한심하게, 어떻게 보면 탁월해 보였을 뿐이다.
그저 우유부단한 왕으로만 그려졌던 고종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이 책은 특히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전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군주라고 할 수 있는 고종의 ‘고독’과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특히 정치적 동반자로서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시선, 일제와 열강의 침략 속에서 이완용과의 관계 등이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기존의 유교적 정치철학과는 반대로, 발전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東道西器) 부국강병하려는 생각, 꽉 막힌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열강의 침투를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술책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을사조약 이후 최익현, 허위 등에게 ‘밀칙’을 내려 의병을 일으키게 하여 그 뒷돈을 대거나, 자주독립을 위해 끊임없는 외교활동을 벌인 일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일국의 군주로서 난국을 타개하려던 시도만을 들어 무능한 왕이라는 이전의 평가를 무작정 쇄신하려 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객관적인 서술과 대외적인 비교를 통해서, 마지막 판단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이 이입된 대사가 곳곳에 등장해 결코 무겁거나 가볍게 읽히지 않도록 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학교에서는 그저 딱딱하게만 배웠던 역사교과서 속 내용,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적 사실 등을 결코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재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완용은 매국노다’라는 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무작정 주입하기보다는, 이완용이란 인물에 관해, 그가 나라와 임금을 저버리게 된 정황 등을 설명하여 이해를 돕는다. 또한, 당시의 상황을 한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를 갖는 도판 27컷을 실어, 그 옛날의 사건들을 실감나게 해준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고종의 죽음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으면서도 개화와 광복운동에 꾸준히 힘을 보탰다는 말에, 그 실제 성과가 무엇인가를 물으며 그런 긍정적 평가를 일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할 만큼 해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는 소극적인 변명 말고도, 고종은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생명을 이용해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뚜렷한 비전의 제시 없이 보신만 우선시했던 고종이 죽음을 각오하고 광복운동에 나선 것 자체가 그 증거다. 고종의 죽음에는 암살이라는 설과 자살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책은 자살과도 같은 암살로 고종의 마지막을 그린다. 오백 년 종사를 자신의 대에서 끝내게 됐다는 회환, 나라와 백성을 타국에 넘겼다는 죄책감이 그의 죽음을 각오하게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왕조’는 사라져도 ‘백성’은 남는다. 땅덩이나 ‘국가’라는 틀이 아닌 ‘사람’이 본위임을 깨달은 고종은, 일제가 보장하는 우리 안에서 여생을 안전히 보내기보다는 죽음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깨달음과 비전을 전하려 했다. 그리하여 고종의 시신을 능에 안장하는 노제(路祭)가 예정되어 있던 3월 3일을 이틀 앞둔 1919년 3월 1일, ‘민중이 황제의 메시지에 호응’하는 모습을 그리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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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 생각정원 | 2017-04-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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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 생각정원 | 2017-04-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얼마 전 외교부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부산의 지자체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독일에서 한일 양자회담이 열리기 불과 사흘 전의 일이었다. 회담 자리에서도 일본 측에게 공문 발송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는 한국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후 이듬해인 201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 민간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일제히 중단한 사실을 보도했다. 와중에 일본 고위층의 역사 부정 망언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이 달만 해도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고쳐 부르려 하고 자꾸 눈앞에서 치우려고 할까. 한국정부는 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만하고 지방정부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일본 눈치를 살피는 걸까. 한일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공언한 12?28 ‘위안부’ 합의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배 30년, 해방 후 70년…
강제동원 100년의 진실을 밝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라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의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군인·군속, 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범, 포로 등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에서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배상 등 여러 가지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군함도, 조세이 탄광, 하이난 섬, 파푸아뉴기니…
비극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다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군함도)는 면적 0.063제곱킬로미터(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이곳에 세웠다.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다. 마치 신분 계급을 상징하듯 방파제 끄트머리 가장 낮은 곳에 조선인·중국인 노동자의 숙소가, 그 위에 일본이 최초의 아파트라고 자랑하는 광부들의 주택이, 그 위에 관리인 아파트, 가장 높은 곳에 관리소장의 사택, 섬 꼭대기에는 신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故 서정우 씨는 16세에 하시마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가 인근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었다(책 65쪽에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가 찍은 높이 10미터의 방파제 위에 서 있는 서정우 씨의 사진이 실려 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시체 수거 작업에 동원되어 피폭되기도 했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2만 명의 조선인이 피폭을 당하고, 그중 절반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하시마 바로 옆에 있는 섬 다카시마에는 미쓰비시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거대한 동상과 석탄자료관이 자리하지만, 강제동원에 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한때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족히 100개는 넘게 들어 있었다는 납골당과 공양탑이 있다. 지금은 파괴되어 더는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책에는 원폭피해자 2, 3세와 시민단체 활동가로 꾸려진 평화기행단이 하시마와 다카시마를 직접 찾아가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의 처절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대만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이난 섬에는 ‘조선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1939년 하이난 섬을 점령한 일본은 이곳을 남방 진출의 거점으로 삼았다. 전황이 악화되어가던 1943년 조선총독부는 형무소에 있던 조선인 죄수들까지 동원해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섬에 보냈다. 일본은 하이난 섬의 토지와 가축, 각종 자원을 수탈하고, 군용시설을 짓기 위해 현지인과 아시아인을 강제노동시키고, 심지어 성노예로 삼고 학살했다. 1945년 당시 도로 건설에 동원되었던 푸아룽 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일본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조선인들을 두 사람씩 나무에 매달아 때렸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때리게 하면서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죽으면 다른 조선인에게 구덩이를 파서 묻게 했다.”
그해 8월 15일 패전한 일본군은 1,000여 명의 조선인에게 갱도를 파게하고 무기와 물자를 묻었다. 그리고 그 조선인들을 전부 살해해 한곳에 묻었다.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후 현지 주민들은 조선인이 묻힌 곳을 ‘천인갱’이라 부르고, 애도의 뜻을 담아 마을 이름을 ‘조선촌’으로 바꿔 불렀다.
하이난 섬의 이 같은 전쟁범죄는 기슈 광산을 운영했던 이시하라산업의 만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활동가, 연구자들이 모여 30차례에 걸쳐 하이난 섬 조선촌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수차례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2001년에는 한 달간 발굴 작업을 시도했는데, 땅을 파자마자 100여 구가 넘는 유골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 그리고 2004년 설치된 강제동원위원회에 차례로, 체계적인 유골 발굴, 관련 문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2006년 ‘기슈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은 일본인 고고학자, 발굴 전문가를 동반하고 독자적으로 발굴을 진행했다.
하이난 섬에 강제동원되었다가 가석방되어 귀향한 한국인들을 찾아 새로운 증언을 듣기도 했다. 모두가 열대기후 속 열악한 환경과 일본군의 폭력 속에서 기아, 질병, 가혹한 노동에 쓰러져간 동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했다. 조선촌은 현재 대규모 개발과 토지 강제수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인이 매장된 땅 절반이 이미 토사로 뒤덮였고 그 위에 도자기 공장이 세워졌다. 현지인은 말한다. “한국정부가 조선인이 묻힌 장소를 어떻게 해줄 수 없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라”고.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원폭피해자, 재일조선인…
증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귀담아듣다
1947년 싱가포르의 창이형무소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조선 청년 조문상은 개성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였다. 그는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이 되었고 교수형을 당했다. 17세 때 위험이 덜 하고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속아서 포로감시원이 된 이학래도 전범재판에 올랐다. 그는 포로감시원이 되자마자 욕설과 구타, 마주보고 뺨 때리기 등의 가혹 행위를 훈련 받았다.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에 젖어 있던 그는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호주정부가 자국의 전쟁포로에게 포로감시원들의 사진을 보이며 용의자를 가려낸 결과였다. 포로들은 실질적인 책임자보다 눈앞에 있는 말단 감시원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학래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
이학래처럼 살아남은 조선인 전범들은 일본 스가모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뒤에도 이들을 석방하지 않았다.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남은 형기를 마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막상 석방되더라도 가석방 신세라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 중에는 삶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재일한국인 전범자들은 ‘동진회’를 결성해 일본 내각이 바뀔 때마다 청원서를 내고 법적투쟁을 벌여 왔다. 17세 소년 이학래는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2004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합국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포로가 혹독하게 당한 것은 사실이고,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형편없었다 해도 연합국에게 불평하지는 않겠다. 정말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일본정부다. 징용해서 써먹어 놓고 필요가 없어지니 다 쓴 걸레처럼 버리고 모른 척한다. 인간다운 말 한마디라도 왜 건네지 않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24개국 417만 명의 전쟁포로를 억류하고 소련의 전후복구사업에 강제동원했다. 일본군에 징병되어 만주?사할린?쿠릴열도 등에 배치되었던 조선인들도 60만 명의 일본군 포로에 포함되어 시베리아 각지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8월에 종전을 맞은 조선인들은 여름 군복 차림으로 시베리아 삭풍을 버텨야 했다. 혹한, 기아, 중노동, 장티푸스·이질 등의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땅이 얼어 바로 묻지 못했다. 소련군은 사망자의 옷을 벗기고 가마니에 말아서 창고에 쌓아두었다가 이듬해 봄 한꺼번에 포로들을 시켜 시체를 매장하게 했다.
전쟁의 막바지에 징집되어 입대 날 바로 소련과의 전쟁이 개시되는 불운을 겪은 이규철의 수기 기록 《시베리아 한의 노래》는 시베리아 억류 피해를 살피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몸조심하고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하는 가족들의 말을 가슴에 새겨 떠나는 아들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누구를 위해 전쟁터로 가야 하나. 일본을 위해서 죽고 싶지 않다. _이규철, 《시베리아 한의 노래》
하바로스크에서 화물선을 타고 귀국한 조선인 포로 중에서 북한을 거쳐 고향 남한으로 내려온 포로들은 기총 사격을 받거나 공작원이나 간첩으로 오해받아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적성국가 체류 경험이 있다고 하여 최전방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들은 그 전쟁에서 희생되거나, 생존하더라도 내내 감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0년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 결성한 ‘시베리아삭풍회’는 일본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전억협)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중앙공문서보관소로부터 노동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시베리아삭풍회와 전억협의 공동 투쟁은 한일 피해자 단체가 함께 싸운 보기 드문 사례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총 55명의 노동증명서를 발급받는 성과를 거뒀다. 시베리아삭풍회는 이후 재한군인군속재판 제2차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고, 기각되자 재차 항소했다. 일본 법원의 기각 사유는 일본정부의 말과 다름없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전쟁으로 우리가 왜 싸우는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낸다는 의미로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것으로, 1951년 9월 8일 조인되었고 이듬해 4월 28일 발효됐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은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전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향유할 수 없게 됐다. ‘한일협정’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을 조인하고 수교에 이른 일이다. 일본의 침략과 가해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죄가 선행되지 않았고, 청구권, 어업, 문화재반환 등에서 한국 측의 지나친 양보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협정은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거의 모든 싸움에서 일본에게는 일종의 알리바이가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법원 판결의 근거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배상문제는 모두 매듭지었다” “한일청구권협정 및 조치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다”는 말이 되돌아오곤 한다.
이는 때때로 일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해석·적용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한 조선인 전범들은 석방을 기대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형기를 마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산 일본군 ‘위안부’?근로정신대 소송은 일본의 지방재판소에서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일본정부가 미국에 로비하여 “전쟁배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2국 간 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을 끌어내면서 흐지부지되었다. 한일협정도 사사건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1967년 원폭피해자협회 회원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인 항의 시위에서, 그리고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 후지코시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일본은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답했다.
2015년 12월 28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의 외교적 압승”이라고 평한다. 피해 당사자와 대다수 국민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1965년 한일협정을, 보상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크게 반발했던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연상시킨다. 지금 일본은 주한일본대사를 귀국시킨 후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서,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10억 엔의 보상금을 보냈다는 말과 “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말과 함께. 일본은 이제 뒤로 물러나 우리끼리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외교부가 지자체에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에 이어 노총이 추진해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건립도 외교부와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왜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리가,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가. 그토록 성급히 두 손을 부여잡고 ‘불가역’을 선언할 이유가 뭐였을까. 식민치하 30년, 해방 70년… 백 년을 하루 같이 싸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이 나라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장애물은 한국정부였다.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원고들은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정부의 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실 조회와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했지만 한국정부는 외교상의 문제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일본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한국정부와 법원의 태도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망각의 현장을 기억의 유산으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들은 잘못 꿰인 첫 단추로 ‘한일협정’을 꼽는다. 안보와 경제에 급급해 정치적 타결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작 먼저 해결해야 할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 청산과 극복 방안을 충분히 논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에 유리한 명분만 우리에게 족쇄로 남았다. 이것은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을 향해 취했던 전략과도 연관이 있다. 미국은 패전한 일본의 전후 개혁을 주도하면서 책임을 묻는 대신 재건을 도왔다.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를 위해 한일회담 타결을 재촉했고, 이 과정에서 과거청산이라는 숙제는 제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일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기는커녕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기에 이르렀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불행은 일본 경제부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은 전후보상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정부가 일본에게서 받은 청구권자금 대부분이 경제건설의 재원으로 쓰였다고 하니,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눈물과 지금의 경제성장을 맞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정부는 2005년에 와서야 한일협정문서를 전면 공개하고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새로 밝혔다. 피해자 구제를 방기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진상규명과 지원법을 제정해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결의가 없었다면, 일본 시민사회가 이에 호응해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조직적 시민운동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피해자와 유족, 한일 시민운동가들의 연대로, 길고긴 재판투쟁으로,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일본이 그토록 ‘근거 없음’이라고 부정하는 역사, 그러나 우리 곁에는 비록 하나둘 사라지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내온 역사의 산증인들이 계신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고, 그러나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걸 상기하고 싶다. 이 책과 함께 이전에는 다 알지 못했던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고, 그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섬세히 기록하고 영영히 유산으로 간직해야 한다.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써내야 한다.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길
나와 당신, 우리의 싸움으로
더불어 점점 더 우경화되는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돌아보자. 분노와 적대감, 반일감정만 높이는 것은 앞으로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각자 ‘책임질 몫을 다하기’ 위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피해자들이, 유족들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듯이, 이제 나와 당신도 무엇으로 각자의 책임을 다할지, 무엇으로 그들의 책임을 따져 물을지 결정할 때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더라도 잠시 이 말에 멈추어 서보길 권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들께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지만, 모든 일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피해자 할머니·할아버지를 도와 소송을 하는데, 좋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미워할 때는 자신이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차근차근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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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조선의 처녀다
다니엘 최 | 행복우물 | 2016-05-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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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조선의 처녀다
다니엘 최 | 행복우물 | 2016-05-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 책은 저자가 지난 5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광복70주년에 맞추어 완성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정신대 위안부 관련 도서들이 대개가 그런 고통을 당한 분들을 인터뷰하여 만들은 대담형색의 책자(위안부 보고서 류)이거나, 또는 전문연구서인 논문 류, 아니면 현장에서 일본군 병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에 치우쳐서 너무 단편적인 내용에 한정된 작품(소설류)이었다면, 다니엘 최는 이러한 차원을 뛰어넘어서 그 스토리를 폭넓게 잡아 장장 528쪽의 소설로 만들었다는 데에 이 책의 특징이 있다.
조선처녀들을 강제로 납치하거나 공출한 일제의 만행이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게 된 배경이나 원인을 제1부의 남경대학살이라는 테마를 통하여 자연스레 설명하였다. 특히 제2부와 제3부에서는 일제에 의하여 평화롭던 두 가정이 해체되는 비극을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으로 재미있게 꾸몄다.
우리의 할머니들이요, 어머니들이요, 누나들이었던 그분들의 아픈 과거를 흥미로운 소설로 쓴다는 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많은 독자들이 읽고 함께 분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정말 그분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분들을 지켜주지 못한 조선 남자의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쓴 작품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이틀, 또는 사흘 동안 만큼은 1930 ~ 40년대의 만주, 중국, 사이판으로 시간여행과 공간여행을 떠나는 행운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최대한 감동적인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그 당시에 사용하던 언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대표적인 단어들이 변소(화장실), 반공일(토요일), 월사금(수업료), 비율빈(필리핀), 여고보(여자고등학교) 등이다.
책의 전체적인 배경은 1930년대와 1940년대이지만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하여 2015년 8월 15일 주인공 수희의 양녀가 고별강연을 하는 형식을 빌려서 일제의 잔학상을 종합적으로 압축하여 고발한 대목과 같은 저자의 재치가 작품의 곳곳에 넘쳐흐른다.
이 책을 읽고서도 울분을 느끼지 못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에 의하면,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 말은 저자가 이 책에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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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 (주)메디치미디어 | 2015-05-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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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 (주)메디치미디어 | 2015-05-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사활이 걸린 한반도의 미래 전략을 짜는 필독서! _이어령
21세기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꿔놓은 임진왜란! 한국은 역사적으로 대륙이 아닌 해양 세력에 맞서면서 강성해졌다 해양과 대륙의 충돌로 해석하는 임진왜란은 한반도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이후 동아시아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이 책은 동아시아를 보는 일반적인 통념과 전혀 다른 결론을 보여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양과 대륙이라는 양대 세력이 다투면서 문명과 역사가 바뀌었다는 주장은 많았다. 다만 그 배경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이고,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이라는 해양 세력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는 것을 보면 생소함을 넘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도 말했듯이, 한국은 해양과 대륙 사이에 있는 반도 국가로서 그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21세기 한국에 걸맞은 역할이 필요하다. 대륙 일변의 역사에서 벗어나 해양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본다면, 당신은 오늘날까지 연속하는 해양과 대륙의 패권 대결을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해양 세력이 동아시아 500년 역사를 바꾸어놓았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화사상의 영향을 받아왔다. 조선시대까지 명?청과 조공관계를 맺으며 국제관을 형성했기에 ‘소중화(小中華)’의 시각에서도 벗어나기 어려웠다. 21세기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숙명처럼 여기며 기뻐하기도 한다. 저자는 대륙뿐 아니라 해양과도 접한 한반도를 주목한다면 이제 중심 시각을 해양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늙어서 과대망상’을 하는 바람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고 해도, 이 사건은 대륙, 한반도, 해양의 관계를 바꿔놓은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들어갔던 사람들(도래인)이 다시 대륙을 넘본 것이 당연할 수 있으나, 이전까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중앙집권화된 해양의 습격이었다. 한?중?일 삼국지적 관점을 넘어서-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을 포함한 열국지로 시야를 넓히다 임진왜란은 비단 조선과 일본만의 전쟁이었을까? 사실 해양의 부상과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를 바꿔버린 국제전쟁이었다. 조선과 명이 일본에 신경 쓰는 사이에 북방 만주인이 청을 세웠으며, 이는 명나라 멸망과 또 다른 동아시아 해양 중심지, 타이완의 탄생을 불러왔다. 여기에는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한 대항해시대의 유럽이 개입돼 있으며, 시베리아를 넘어온 러시아까지 동아시아와 접촉한다. 그러나 16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과거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짐에도 조선은 당대 굴지의 무역항 마카오가 어디에 있는지, ‘나선정벌’을 통해 군사적으로 부딪친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중국 대륙 너머의 세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대륙의 삼국(위·촉·오)으로 한정하고 비한인을 오랑캐로 보는 ≪삼국지연의≫적 세계관의 폐해다. 현재도 ‘한·미·일’, ‘한·미·중’ 등의 삼각 구도로 한정해서 보려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수많은 이해관계국이 얽혀 각축전을 벌이는 ≪열국지≫적 세계를 구상해야 한다. 고문서, 엽서, 팸플릿 등 180여 종의 시각자료를 담다 이 책은 각종 자료를 활용한 저자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중국, 일본, 러시아의 고문서를 비롯해 우표와 엽서, 사진, 팸플릿 등 여러 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가며, 새로운 해석과 상식을 덧붙여 흥미를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이를테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는 각각 불교와 가톨릭 신자였는데, 이들에게 임진왜란은 종교적 성전(聖戰)이었다. 일본인도 임진왜란에 대한 조선인의 복수를 두려워했고, 이 불안감을 연극과 소설로 표출했다. ‘인도는 한반도에는 악몽이었던 대동아공영권에 독립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등의 이야기는 낯설고 생소하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궁벽한 곳에서 애써 찾아낸 것이 아니다. 한국이 동아시아사를 대륙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놓치는 것들이다. 만주와 러시아, 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르는 더 넓은 지리적 범주와 다양한 이야깃거리 사이에서 해양 세력이 만들어낸 역사의 흐름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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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류성룡, 7년의 전쟁
이종수 | 생각정원 | 2015-03-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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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류성룡, 7년의 전쟁
이종수 | 생각정원 | 2015-03-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1. 류성룡,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말하다
- 《징비록》이 말하는 또 하나의 뼈아픈 전쟁사, 임진왜란 《징비록》은 류성룡이 1592년부터 7년에 걸쳐 진행된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기록한 전란사다.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라면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을 비롯해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당대 문집들에 실린 기록 등 여럿이 존재한다. 그중 징비록은 몇 가지 큰 가치를 담고 있다. 첫째, 《징비록》의 기록 범위가 대단히 폭넓다. 류성룡은 영의정이자 도체찰사로서 전란의 급박한 사정과 실체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했다. 당시 조정 내부의 움직임은 물론 이산해, 정철, 이덕형, 이항복, 이순신, 원균, 이일, 신립, 김성일 등 주요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인물평까지, 나아가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의 외교전과 일반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생활상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국내는 물론 국외 정세까지, 기록문학으로 《징비록》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둘째, 극적 구성력이다. 미술사가이자 《류성룡, 7년의 전쟁》의 저자 이종수는 ‘침략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으로 시작해서 국가적 ‘영웅’이자 ‘헌신’의 대명사인 이순신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구성을 높이 평가한다. 이 시작과 끝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려는 위정자들의 위선과 혹독한 전란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곤궁을 또렷하게 서술했다. 무엇보다 《징비록》이 의미있는 것은 이 책의 집필 의도에 있다. 《징비록》은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말하는 책이다. 조선의 수상인 류성룡은 전란의 책임을 지고 지난 일을 반성함과 동시에 후세들에게 다시는 이렇게 처참한 전쟁을 물려주지 않고자 임진왜란이라는 뼈아픈 전쟁사를 기록했다. ‘징비懲毖’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대비하라’는 뜻으로, 《시경》의 말을 인용하여 류성룡의 집필 의도를 담고 있다. 류성룡은 집필 과정은 물론 참혹한 전란 과정에서 국가의 수상으로 ‘책임’있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왔다. 전쟁이 시작되기 한 해 전인 1591년, 좌의정 류성룡은 진관제 복구, 이일의 경상병사 파견 등 전란에 대비할 것을 건의했으며,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했다. 전란 후, 임금인 선조와 도승지 이항복이 명나라로 건너가고자 할 때, 류성룡은 ‘어가가 한 걸음이라도 조선 땅을 벗어난다면, 이미 조선은 조선의 것이 아니다’라며 임금의 내부를 막아냈다. 이 와중에서도 류성룡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에게 찾아가 서울로 진군할 것을 독촉하며, 무릎을 꿇고 눈문을 흘리기도 했다. 더불어 전쟁으로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 나라의 살림을 돌보기 위해 작미법을 건의했고, 새로운 군 조직을 만들기 위해 공을 세운 자는 면천과 면역을 통해 노비에게도 양민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건의했다. 《류성룡, 7년의 전쟁》은 혹독한 전쟁 앞에서 온몸으로 국가와 백성을 책임지려 했던 류성룡의 평전이다. 실록과 류성룡이 남긴 《징비록》, 그리고 문집들을 중심으로 저자 이종수는 임진년부터 무술년까지, 7년간의 전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또 하나의 임진왜란사다. 혹독한 전쟁과 죽음을 온몸으로 방어한 한 인간의 고뇌와 결단을 비장하게 담았다. 2. 미술사가 이종수가 주목한 ‘조금 느슨한’ 류성룡 평전 - 《징비록》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류성룡을 읽다 미술사가 이종수는 역사 속 인물의 내적 고뇌와 미학적 승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다. 그에게 류성룡은 퇴계 이황의 큰 제자이자 당파 간 다툼이 예사롭지 않았던 선조 대에 남인南人의 영수로 거론되는 고위 관료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저자는 《그림문답》을 집필할 때도 「독서당계회도」 내용을 구상하며 류성룡을 업급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징비록》 앞에서 그만 생각이 흔들렸다고 고백한다. 가장 매력을 느꼈던 지점은 류성룡의 작가적 기획력이었다. 사료적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을 시작으로 이순신의 죽음에서 마무리한 탁월한 구성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징비록》을 반복해 읽으며 다시 감탄한 것은 목격자로서의 냉철하고 치열한 증언이었다. 그는 영의정이자 도체찰사로서 전란의 책임을 지고 전국을 누빈 7년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란 후에 다시 시간을 거슬러 비극을 되새기며 오롯이 혼자서 뼈아픈 전쟁을 더 아프게, 더 구체적으로 한 자 한 자 기록해냈다. 저자 이종수는 임진왜란과 자신의 전쟁을 견뎌낸 류성룡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사료에 기대되 그 사이 사이에 숨은 류성룡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조금 느슨한’ 평전을 기록하고자 했다. 《징비록》을 집필했던 안동의 옥연정사를 방문해 그의 시선과 마음이 머물렀던 자리를 더듬었고,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 속에서 그의 진심을 읽으려 애썼다. 이종수는 류성룡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전 생애가 아닌, 그를 ‘류성룡’으로 기억하게 해준 임진왜란에 집중했다. 선조를 대할 때마다 가슴 아파했던 마음의 거리, 당파가 달랐지만 이덕형을 향한 깊은 신뢰, ‘그의 바다’를 지킨 이순신을 향한 마음, 무엇보다 전란을 가장 고통스럽게 견디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 《류성룡, 7년의 전쟁》은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의 전쟁을 따라간 기록이다. 역사 속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혹 열망하는 까닭은 이 가난한 시대의 무기력함 때문일 것이다. 전쟁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 않는 오늘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그 7년의 전쟁을 치러낸 누군가를, 종사와 백성을 지키고자 오직 제자리에 충실했던 누군가를, 그리고 책임진 자로서의 부끄러움까지 솔직하게 고백했던 누군가를 떠올려본다. (…)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지난 일을 돌아보며 앞일을 헤아리라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덜하지 않은 울림이다. - 서문 중에서 3. 국가와 백성을 온몸으로 지키려 했던 류성룡의 ‘책임’ - 류성룡의 주요 기록 장면1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 전쟁을 대비하는 류성룡 (본문 제1장 〈첫 장계〉 38쪽) 일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던, 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591년. 좌의정 류성룡은 진관제 복구, 이일의 경상병사 파견 등 전란에 대비할 것을 건의한다. 이 가운데서도 그의 ‘안목’이 빛을 발한 순간은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성사시킨 일이다. 이후 전쟁의 흐름을 생각해볼 때, 이야말로 조선의 운명을 좌우했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장면2 선조의 내부를 막아서는 류성룡 (본문 제3장 〈도강〉 73쪽.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1일 참조) 파천을 단행한 선조는 동파에 이르러 장차 자신이 어디로 피난해야하겠는가, 대신들에게 묻는다. 속마음은 이미 명나라로 망명하고자 했던 것. 이에 도승지 이항복은 의주로 올라가, 만약의 경우에 명나라로 건너가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내자, 류성룡은 그에 대한 강한 반대로 맞서게 된다. 조급해진 선조는 명나라에 내부를 청하는 것이 자신의 본래 뜻이었음을 밝히게 되지만, 류성룡은 ‘어가가 한 걸음이라도 이 땅을 벗어난다면, 이미 조선은 조선의 것이 아니다’라며 임금의 내부를 막아낸다. 장면3 동파에 머물며 이여송의 참전을 독촉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는 류성룡 (본문 제6장 〈진퇴〉 186쪽) 벽제관 전투의 패배로 후퇴, 평양에서 시간만 끌며 전쟁을 방기하는 명군 제독 이여송. 류성룡은 동파의 임진강 전선을 지키며, 끊임없이 이여송에게 서울로 진군할 것을 독촉한다. 서울 주변의 조선군들의 진영을 살피고, 동파로 모여든 조선 난민들을 보살피는 등 서울 수복을 위해 전선에서 ‘도체찰사’로서의 책임에 온 힘을 쏟는다. 장면4 전쟁을 견뎌내고 백성의 삶을 회복시킬 방안을 고민하는 류성룡 (본문 제8장 〈재조〉 240쪽, 260쪽) 훗날 대동법으로 시행된 ‘작미법’은 류성룡의 생각과 실천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으로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 나라의 살림을 돌아본 조치였다. 전쟁 중 현장의 생생한 실정을 알고 있던 영의정으로서 누구보다도 나라와 백성의 ‘삶’을 고민했던 그였기에 개혁적인 조치를 건의하고 실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함께 훈련도감과 진관제 복구를 건의하여 새로운 군 조직으로 자주적인 군사력 확보를 실행하고자 했다.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으로, 공에 따라서 면천과 면역을 통해 노비에게도 양민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건의하였다. ‘사노비 또한 조선의 백성이다’는 주장으로 노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4. 류성룡, 그는 누구인가? - 《징비록》의 저자 서애 류성룡를 말하다 류성룡은 1542년 10월 1일, 부친 류중영柳仲?과 모친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4세 때 글을 읽을 줄 알았고 6세에 《대학》을, 8세에 《맹자》를 읽었다. 13세 때 서울의 동학東學에서 《중용》 《대학》을 강독했으며, 17세에 전주 이씨를 배필로 맞았다. 1561년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춘추》를 읽고, 21세에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몇 달 간 《근사록》 등을 수업했다. 가르침의 기간은 길지 않았으나 스승의 칭찬을 받는 큰 제자로서, 이후 퇴계학파의 한 줄기를 이루었다. 1566년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르고, 28세에는 성절사聖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을 다녀왔다. 29세에 경연 검토관으로 경연에 들어가 제일의 강관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으며, 같은 해 가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이후 대사간?대사헌을 비롯해 대제학과 판서에 오르는 등 청요직을 두루 겸했으나 당파 간의 갈등으로 여러 차례 사직을 청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머물기도 했다. 좌의정 재임 중인 임진년(1592) 전쟁이 일어났다. 1593년 10월에 영의정에 임명돼 전쟁이 끝나가는 1598년 10월까지 도체찰사를 겸하면서 정치와 군사의 최고책임자로서 전쟁을 지휘하고 국난을 수습하는 데 온힘을 다했다. 1598년 10월, 주화오국主和誤國의 죄인이라는 북인들의 탄핵으로 영의정에서 체임된 후 11월 19일 파직과 함께 낙향, 12월 6일 삭탈관작을 당했다. 1600년 직첩을 돌려받고 1602년에는 청백리로 뽑히는 등 이름이 회복됐다. 하지만 거듭된 소명에 모두 응하지 않고 칩거한 채 《징비록》 등의 집필과 학문에 전념했다. 1607년 5월 6일, 66세로 졸했다.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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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선조들의 사생활
이선학 | 휘닉스드림 | 2011-11-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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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선조들의 사생활
이선학 | 휘닉스드림 | 2011-11-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선조들의 사랑과 절개는 꽃보다 아름다웠다”
우리 선조들이 외세의 침입에도 5천 년 역사를 지켜올 수 있었던 힘이 민족의 단결의식, 사람 사이의 정, 그리고 정신력이었음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식의 순간적인 가치에 의미를 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선조들이 전해주는 뿌리 깊은 인간에 대한 존중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신토불이의 지혜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반만 년 역사 속에서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설화를 통해 드러나고,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진 재미있는 후일담은 또다른 즐거움을 전해줄 것이다. 또 생생하게 손에 잡히는 영웅들의 활약을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에도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이 책에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배우면서도 조금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위인들이 바로 우리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은 단순히 스쳐가는 한 토막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인물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 수 있는 친절한 이야기꾼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우리와는 다른 뛰어난 인물이라고 알았던 영웅들이 때로는 사소한 일에 아파하고, 고민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는, 사람 냄새 팍팍 나는 똑같은 인간적 약점을 가진 것을 볼 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 책상 위의 친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단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바로 나와 피가 통하고 뿌리가 같은 선조들이라는 사실은 정서적 동질감을 듬뿍 느끼게 하고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 때문에 선조들의 이야기들은 오래오래 끓인 설렁탕처럼 구수하고, 진한 맛을 가진 지식의 영양분이고, 미래를 향한 훌륭한 나침반 구실도 하며, 때로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많은 상황들에 대한 판단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올 수 있는 비결을 담고 있다. 우리가 겪는 인생의 고비마다 선조들이 세상을 살아갔던 임기응변의 재치와 삶의 여유를 배워야 한다. 이제 독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인생 백년의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선조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도 ‘다빈치 코드’ 같은 비밀 코드가 존재한다! - 당나라 태종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 그림’의 비밀 당나라 태종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하나 보냈다. 그 그림은 삼색 모란꽃이 활짝 피어있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하는 말, “이 꽃은 향기가 나지 않겠구나!” 그림만 보고 그 꽃의 향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는 선덕여왕의 이 말에 주위의 신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중에 실제로 당나라 태종이 보내온 꽃씨로 모란꽃이 피고 나서 정말 향기가 나지 않았다. “여왕님, 이 꽃에 향기가 나지 않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신하들과 나인들은 선덕여왕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 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닮은 꼴 역사 속으로!’ - 진정한 리더는 국민이 ‘NO’라고 해도 행진한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쯤에 온조왕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사람의 신하와 많은 백성들과 더불어 나라를 세우고 백제라 일컬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고, 더구나 새로 나라의 기틀을 잡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를 온조왕은 깊이 깨달아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게 된다. 온후하고 너그럽고 다정한 자기 인품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을 거느리자면 때로는 눈물과 인정을 버려야 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가혹하다고 할 만한 일을 시켜야 할 경우도 있고, 죄를 지은 자에겐 가차 없는 벌을 내려 법도를 세워야 하기도 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선조들의 ‘숨겨진 2%’ 이야기 - 김유신은 부모의 연애 스타일을 물려받았다(?) 신라 진골의 명문인 김서현의 부친은 유명한 장군으로서 백제와 싸웠는데, 그는 장수 1 명을 사로잡고, 군사 1만여 명을 몰살시킨 큰 공을 세웠다. 김서현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쟁의 공로가 많았다. 서현은 젊은 시절에 유명한 연애사건을 일으켰는데, 갈문왕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의 사랑이었다. 서현은 만명을 사모하는 여러 귀공자들을 물리치고 사랑의 승리자가 된 행운아였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정열이 지나친 서현과 만명은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 전에 몸을 허락하는 깊은 관계에 빠졌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불장난은 용서 못한다.” 그들의 집안에서는 다 같이 그들의 방종한 연애를 야합이라고 분개하며 용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집을 뛰쳐나와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채 완전한 부부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김유신을 잉태하게 된다. 특이하게도 20달 동안 애써서 낳은 김유신은 유명한 기생 천관에게 마음을 뺏기고, 자기 부모가 허락 없이 부부가 된 연애사건을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연애문제에 대해 관대한 처사를 보일 것을 막연히 기대하다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된서리를 맞았다. 선조들의 절개를 가진 사랑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 7살 때 만난 사랑을 26살에 회포를 풀다 조선의 영조 시절, 이광덕은 벼슬이 대제학까지 이르렀던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거지복색을 하고 함경도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수령들을 감시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암행어사라는 것이 소문이 다 나버린 사연이 있었다. 아기 기생인 가련이가 퍼뜨린 것이다. 이광덕은 물었다. “내가 암행어사로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저희 집이 함흥거리에 있사온데, 어느 날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까 두 걸인이 나란히 앉아 있더군요. 그런데 한 걸인은 행색이 다른 걸인과 다름없었지만, 두 손은 옥 같이 희었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정말 걸인일 것 같으면 손이 저렇게 옥 같이 흴 수가 없을 것인데 하고 의심하고 있을 즈음에 또 그 걸인이 옷을 벗고 이를 잡았어요. 이를 다 잡았는지 다시 옷을 입으려 하니까 곁에 있던 걸인이 공손하게 거들어 입혀주더군요. 저는 이것을 보고 그들이 보통 걸인과 걸인 사이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흰 손의 주인을 암행어사로 확신하고 집안 사람에게 말했더니 집안 사람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해서 함흥 읍내가 모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가련이 이와 같이 차근차근 대답하자 이광덕은 놀라면서 가련을 몹시 칭찬했다. “너 정말 신통하다! 정말 영리하고 총명하도다.” 결국 이 만남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두 사람의 ‘지독한 사랑’의 전주곡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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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
이종호 | 포북 | 2017-03-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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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
이종호 | 포북 | 2017-03-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인문 교양과 역사 지식이 가득 담긴 ‘힐링 한국사’
역사학을 전공한 현직 언론인이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이야기 한국사.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우리 역사를 7가지 주제로 나눠 설명함으로써 우리 역사에 대한 맥락을 잡아 주고, 동시에 자부심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를 맞아 지구촌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우리 역사의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시하고 무관심했던 우리 역사의 많은 장면들이 세계인들도 놀라워하는 위대한 역사의 일부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시험을 위해 교실 안에서 배우는 역사가 아니라, 혼돈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역사와 대화하고 소통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사를 바로 세우는 ‘긍정의 한국사’
우리 역사에 대한 불편한 진실
몇 년 전, 지은이는 국내 한 공기업의 의뢰를 받아 입사시험 문제 출제 및 평가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1차 합격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2차 논술시험이었는데, 그때 출제한 문제는 ‘세계인이 놀랄만한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였다. 지은이는 답안지를 채점하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응시자의 3분의 1 정도가 김연아 선수와 박태환 선수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어진 답안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신사임당과 이율곡, 유관순, 박정희, 그리고 6.25 전쟁 등이었다.
이는 그 당시의 사회 ? 문화적 현실의 반영인 탓도 있겠지만, 스포츠 스타나 TV 드라마, 영화에서 만난 역사가 우리 역사의 전부인 것으로 아는 요즘 젊은이들의 역사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지은이는 성인부터 자라나는 젊은 세대까지 우리 역사에 대해 무엇인가 자랑스러운 것을 하나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 중·고등학생들,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과 안목을 갖춘 사람들을 뽑으려 하는 기업체 입사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한국사 이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때
“한국 사람들 도무지 질서를 몰라. 역사가 그 모양이니까 그렇지.”
“모이기만 하면 싸운다니까. 엽전들은 어쩔 수 없어.”
“천 날 만 날 당파 싸움만 해댔으니 나라꼴이 그 모양이었지.”
“약자에겐 군림하고 강자에게 굽실거리던 사대주의 근성이 어딜 가겠어?”
우리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우리 역사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툭하면 내뱉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일제 식민사관의 폐해이다. 지금도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속상해 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일본이 한반도 통치를 위해 교묘히 짜 맞춰 놓은 역사관을 떨치지 못한 채 답습하고 되풀이하고 있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역사에도 안타깝고 속상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다. 세계 어느 나라 역사를 보든지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과거를 너무 미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낮춰 보는 것도 피해야 한다. 긍정이 지나치면 국수주의로 흐르고, 부정이 과하면 자기비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것은 우리 주변에는 자식, 손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이야기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왕이면 긍정의 우리 역사를 알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집필되었다.
한국인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이 책에서 다룬 7장면은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비교적 적은 근대 이전 시대에서 주로 뽑았다. 물론 특별한 기준을 두고 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은이가 오랫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오면서 한국인이라면 이 정도는 꼭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항목들을 뽑은 것이다.
각 장면은 단순 나열보다는 우리 역사의 앞뒤 맥락을 짚어 가면서 왜 그것이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인지 그 시대적 의미를 찾아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남다른 역할을 감당한 인물이나 사건은 별도의 박스로 정리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그리고 전체 우리 역사의 흐름을 먼저 알았으면 하는 이들을 위해 전체 한국사를 개괄한 ‘한국사 10분 정리’를 부록으로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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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
신정일 | 루이앤휴잇 | 2015-01-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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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
신정일 | 루이앤휴잇 | 2015-01-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불의, 부조리에 대해서 말하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통해 오늘 우리 사회의 병폐와 구폐를 파헤치고, 해답을 구하다 “조선 건국 이래 6백 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 권력을 단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고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고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들은 혹은 그런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하고, 패가망신해야 했습니다. 이에 6백 년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며, 외면했습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밥이나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백 년의 역사. … (중략) … 이제 우리는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때야만 비로소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의 일부로 정의와 상식이 살아 숨 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일성에 다름 아니었다. 그만큼 조선 이후 한국 사회는 부정부패와 불의, 부조리, 모순된 이념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어떠한가? 정의가 살아 있고, 부조리가 없으며, 부정부패가 없는 평등한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2014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단어는 ‘슬픔’과 ‘분노’였다. 이는 수많은 어린생명을 앗아갔던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치권의 소통 부재와 과거 회귀, 재벌과 있는 자들의 모럴헤저드(갑질), 비상식과 모순, 부조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국민은 분노했고, 슬퍼했으며, 절망에 빠졌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모순과 불평등이 판치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시대 실패할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슬픈 서사시 한 시대가 부패하고 불의할수록 개혁과 변혁에 대한 의지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또 그런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변혁에의 꿈을 다질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자신이 주인공은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앞장서서 변혁의 기치를 올리기를 바란다. 조선 5백 년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 중에는 백 년, 아니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도 있었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 조선 건국을 주도했던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 개혁주의로 이상 정치를 추구했던 조선 선비의 사표 조광조, 대동사상을 꿈꾸었던 조선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 역모사건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한 조선의 아웃사이더 허균, 조선의 자주와 근대화를 꿈꿨던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선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는 불평등하고, 불의하며,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실패할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안타깝고 슬픈 삶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들은 상식이 통하며,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꿨다. 이에 앞장서서 몸을 던졌다. 하지만 국왕을 위시한 유교 국가 조선에서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고, 개혁을 말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것과도 같았다. 그 결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긴 하지만 패배자 혹은 낙오자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과연 역사는 진일보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책 비상식과 모순, 부조리가 만들어낸 위기의 한국 사회 국민은 분노했고, 슬퍼했으며, 절망에 빠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분노와 함께 슬픈 자각이 밀려들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의 현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자각, 나아가 세월이 격동 치며 흘러갔지만, 이 땅의 민초들을 옥죄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문제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서 오는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이 어지러운 세상,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으랴.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 모순, 불평등을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라.” 역사는 늘 승자의 입장에서만 기록되고 보존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진실된 영웅이었다고 하더라도 싸움에서 패하는 순간, 그는 혹세무민하고 나라를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역적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어떠한가? 정의가 살아 있고, 부조리가 없으며, 부정부패가 없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진일보하는가? 라는 물음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