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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권분립론
최용달 | 온이퍼브 | 2019-10-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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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권분립론
최용달 | 온이퍼브 | 2019-10-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자유, 평등의 사상이 통치조직에 표현되어서 삼권분립의 원리가 형성되었다. 즉 국민이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통치 작용을 분류하여 별개의 기관에서 나누어 속하도록 하며, 각각 독립적으로 그들 권리와 능력을 행사하도록 하며 상호 통제하여 권력의 남용을 방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처음으로 제창한 사람이 영국의 로크이다. 그는 입법권과 집행권의 분리를 주장하였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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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 화랑제도
김태준 | 온이퍼브 | 2019-10-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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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 화랑제도
김태준 | 온이퍼브 | 2019-10-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 민족의 본래 조선 혼(魂), 조선의 얼, 이 신라 문화에 나타나는 화랑도에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화랑(Hoa-lang)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남무(男巫)(남자 무당), 즉 격(覡)(박수)을 가리키는 말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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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
이성주 | 추수밭 | 2019-11-1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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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
이성주 | 추수밭 | 2019-11-1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KBS 특집 다큐멘터리 〈미스터리 추적 안중근의 총〉 방영!
110년 만에 되찾은 안중근의 총
M1900을 통해 밝혀낸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비밀!
10월 26일, 그날의 결전을 파헤치는 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
장면 1.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패장의 항복’을 의미한다
우리는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고 민족의 기상과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정확한 고증에 따르면 이순신 동상의 갑옷은 조선식 갑옷이 아니라 중국식 갑옷이다. 동상의 손에 들린 칼은 실제 이순신이 사용한 조선식 ‘쌍룡검’이 아니라 일본도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순신 동상의 칼을 쥐고 있는 손이 오른손이라는 사실이다. 오른손에 칼을 든 것은 명백한 ‘패장의 항복’을 의미한다. 이처럼 영웅의 ‘형상’만 바라보고 그가 사용한 ‘무기’에 대해 무지하다면 우리는 후대에게 심각한 역사적 오류를 가르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장면 2. 안중근을 다룬 일본만화의 잘못된 고증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로 유명한 다니구치 지로의 또 다른 작품 《도련님의 시대》는 메이지 시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안중근이 등장하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에는 심각한 고증의 오류가 있다. 안중근이 자동권총으로 일본 군대의 지도자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사살하려다 작동 불량으로 실패하고, 다른 일본인의 권유로 리볼버로 권총을 바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고증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실제로 안중근이 사용한 총은 정반대로 리볼버가 아니라 자동권총 M190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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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그의 총이 110년 만에 돌아온다!”
KBS 다큐멘터리로 공개되는 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장군이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안중근의 유해는 물론 그가 사용한 총도 찾아볼 수 없다. 국내외 어떤 기관에도 안중근이 실제로 사용한 총 ‘M1900’은 물론 동일한 기종의 복각품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수많은 작품들에서도 M1900은 등장하지 않는다. 안중근의 총은 왜 사라졌으며,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군사 분야 전문가이자 역사집필가인 이성주를 필두로 세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회사 ‘우라웍스’를 설립한 뒤 안중근이 사용한 총 모델 ‘M1900’을 들여와 하얼빈 의거 장면을 재현하고 총을 복각하여 전쟁기념관과 안중근 기념관에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프로젝트의 모든 진행 과정을 담아낸 KBS 특집 다큐멘터리 〈미스터리 추적 안중근의 총〉이 2019년 10월 26일 방영된다. 그리고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담는 것은 물론 총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숨은 역사까지 들려주며 우리가 몰랐던 안중근 장군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었고, 우리에게는 희망이었다”
안중근의 총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안중근이 사용한 총인 M1900의 행방을 찾아 탐구하며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얼빈 의거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정황과 역사를 파헤치는 것이다. 전자는 하얼빈 의거 상황을 재현함과 동시에 안중근 장군이 왜 M1900을 선택했고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후자는 하얼빈 의거 전후의 맥락을 촘촘하게 살펴봄으로써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제시하며 시대와 인물을 내다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해준다.
안중근의 ‘사라진 총’은 오랫동안 진행돼온 일본의 조직적인 ‘안중근 지우기’와 우리의 철저한 무관심이 합쳐진 결과였다. 일본과의 무역 마찰로 그 어느 때보다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는 요즘, ‘안중근의 총’은 우리의 역사적 성취를 알리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물증’이자 세계사적 의거의 상징으로서 복원되어야 한다.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기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 장군은 왜 M1900을 선택했는가?”
총을 통해 밝혀지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성공의 비밀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는 사실 나열을 넘어 의거 당시의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들려준다. 7미터 거리에서 단 6초 만에 7발을 발사하여 3발을 이토 히로부미에게 명중시켜 사살하고 4발을 각각 그를 따르는 수행원 4명에게 명중시킨 안중근 장군의 과업은 그의 뛰어난 사격 솜씨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총이 ‘M1900’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직접 미국 사격장으로 건너가 실험한 바에 따르면, M1900은 존 브라우닝이 만든 역사상 최초의 자동권총으로, 당시 흔하게 쓰였던 육혈포(리볼버)에 비해 파괴력은 약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여러 표적을 향해 저격할 수 있었다. 또한 리볼버보다 반동도 작아 한 손으로도 정확히 조준, 사격할 수 있었다.
안중근 장군이 선택한 ‘M1900’은 그의 저격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테러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의거였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탄창에 7발, 약실에 1발 총 8발을 장전할 수 있었던 M1900은 리볼버에 비해 장탄 수도 많았다. 그럼에도 안중근 장군은 목표한 이를 저격한 후 아직 1발이 남아 있던 총을 버린 뒤 “꼬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 ‘자살 테러’를 감행하지 않고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안중근은 법정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를 선언했다. M1900은 하얼빈 의거가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서 대한군인 대 일본군인으로 마주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전쟁’을 치른 것이었다는 안중근 장군의 주장을 입증해주는 것이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았다면?”
총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는 안중근과 그의 역사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사건을 만들어나간 인물들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비밀을 파헤친다. 하급 무사의 아들에서 근대 일본을 만든 최고의 권력자가 되기까지, 막연하게 ‘나쁜 놈’으로만 알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의 일대기를 소개하며 그가 죽지 않았다면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지에 대한 시나리오도 제시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정치인들 중 그나마 평화적인 외교를 추구한 사람이었고 안중근이 그를 죽인 것은 대단한 실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겉으로는 평화적이었지만 속사정은 똑같은 식민주의자였던 이토 히로부미의 특성을 더욱 세심히 짚으며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이야말로 한국사의 항쟁을 이끈 신호탄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또한 호쾌하고 대담한 사냥꾼이자 명사수였던 인간 안중근의 면모를 자세히 소개하며,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법정 투쟁을 벌이고 생애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동아시아의 미래를 고민했던 그의 사상가로서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나아가 후에 ‘친일파로 변절했다’고 알려진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의 안타까운 가족사를 소개하며, 한일 병합 이후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안준생의 상황이라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중하게 질문한다.
“‘총기 복각’은 시작에 불과했다”
‘잃어버린 총’을 넘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프로젝트
‘밀리터리 마니아’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추진된 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는 어떤 국가기관의 힘도 빌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역사적 의문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이른바 ‘총기 청정 국가’로 불리는 한국에 M1900을 들여오고, 미국으로 건너가 안중근의 저격을 실제로 재현하며, 일본 취재를 통해 ‘총번 262336’이 새겨진 M1900의 행방을 묻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온갖 시행착오를 그대로 담아내며 역사란 단순히 ‘아는 자’의 것이 아니라 ‘지켜내고’ ‘즐기는’ 자의 성취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은 총을 통해 인간 안중근과 항쟁의 역사,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교차하며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역사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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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이주희, EBS MEDIA | MID | 2019-06-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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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이주희, EBS MEDIA | MID | 2019-06-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김동연 前 부총리가 추천하는 역사책
강대국 사이에서 한반도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EBS 다큐프라임 6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사 오천년 - 생존의 길〉로 방영된 내용을 담은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는 역사책을 넘어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적 전략과 조언을 담은 책이다. 조정래 작가, 김동연 전 부총리 등이 호평했던 『강자의 조건』의 저자 이주희 EBS PD가 이젠 ‘서있는 자리’를 바꿔 약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살펴본다.
강자와 약자는 서로 가진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전략도 달라야 한다. 강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반면, 약자의 최우선 목표는 ‘살아남는 것, 그 자체’다. ‘생존’이 목표라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강자보다 더 절박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생존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 이상의 목표는 무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약자가 살아남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현실주의다.
현실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지금 이 현실을 그저 응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색다른 프레임, 뚜렷한 전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현가능하게 하는 힘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현실주의자의 면모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현실주의의 실현으로 만든 영광의 역사와 현실주의의 부재로 인한 굴욕의 역사를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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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언론과 사상의 자유
함대훈 | 온이퍼브 | 2019-06-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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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언론과 사상의 자유
함대훈 | 온이퍼브 | 2019-06-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언론이나 사상의 자유는 그것이 정당하게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폭력적으로 파괴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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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배한철 | 생각정거장 | 2020-06-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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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배한철 | 생각정거장 | 2020-06-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도서
? 개정증보판 기념 리커버 에디션
문화재 전문기자로 현장을 누비며
역사 길잡이로 활동해온 배한철의 베스트셀러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가
더욱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도판을 가득 담은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이토록 흥미롭고 깊이 있게, 초상화 이면에 깃든 역사를 설명해주는 책은 없었다! 초상화는 텍스트 위주의 우리 사학에서 역사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소중한 유물이다. 배한철은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왕이나 위인들의 초상화를 재료 삼아 그 뒤에 감춰진 배경지식과 인물들의 사생활 등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화재 기자로 현장을 누비며 좀 더 흥미롭게, 대중과 가까이에서 역사를 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 온 저자는 독자들을 위해 그림과 유물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생생한 캐릭터로 건져 올렸다. 자, 이제 책을 펼치고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초상화들 앞에 더 가까이, 더 바싹 다가앉아 낯설고도 생생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정치적 희생양일까, 살인 일삼던 사이코패스일까, 사도세자
? 조선의 양대 ‘공부의 신’ 집안, 연리광김
? 재혼도, 벼슬도 할 수 없던 부마(왕의 사위)의 일생
? 충청도의 수많은 별칭은 치욕의 역사일까
? 넘치는 용력으로 전쟁에서 활약했던 내시들
?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숨겨진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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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나라 명산 이야기100
편집부 | 온이퍼브 | 2018-01-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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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나라 명산 이야기100
편집부 | 온이퍼브 | 2018-01-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16), 도립공원(17), 군립공원(11) 지역에서 44개, 백두대간에 인접한 산 중에서 34개가 선정되었다. 또 대암산, 백운산, 점봉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과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는 울릉도 성인봉,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인 홍도 깃대봉 등도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 유엔 총회는 1998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2002년 『국제 산의 해 (IYM)』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2002년을 국제 산의 해(IYM)(International Year of Mountains)로 선언하고 IYM 2002의 목적은 '산지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산악 및 저지대 공동체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국제 산의 해는 산지와 저지대 공동체의 복지를 보장함으로써 산지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하는 것의 'IYM 사명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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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기의 한국사
정명섭 | 푸른들녘 | 2020-05-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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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기의 한국사
정명섭 | 푸른들녘 | 2020-05-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바다에서 밥상까지 우리 역사를 따라가는 가장 맛있는 여정, 조기로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랑받았던 조기와 함께 우리 바다의 생태, 역사, 산업, 문화를 살피고
우리나라 어부들의 조업 활동을 바탕 삼아 형성된 민속과 습속을 탐색하는 흥미로운 극미시사!!
음식에 얽힌 문화를 다루는 책은 많지만 작은 소재 하나에 천착하여 그 역사를 파고드는 저작은 흔하지 않다. 이른바 극미시사인데, 이것이 전문가 일부에게라면 모를까 대중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인 탓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하필 작은 생선 ‘조기’에 주목했다. 고래처럼 이슈를 몰고 다니는 어종도 아니고, 해외 수출용으로 인기가 많은 어종도 아니며, 은어처럼 생태계의 지표로 인식되는 어종도 아닌데 말이다. 이렇듯 “작고 사소하고 흔한 것”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넓고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어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점이야말로 이 책이 지니는 최고의 덕목 아닐까?
역사 마니아로서 인문학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집필에 매진하는 저자 정명섭은 조기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이유로 흥미진진한 ‘구전설화(口傳說話)’의 자극을 꼽는다. 고려 인종 때 무소부위의 권력을 자랑했던 이자겸이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된 뒤 임금에게 조기를 진상하면서 ‘굴비(屈非)’라 적어 보냈다는 이야기, 조기 설화의 정점인 한국판 스크루지 자린고비 등 많은 이야기에 두루 등장할 만큼 조기가 널리 사랑받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다. 두 번째는 고전 문헌에 언급되는 다양한 층위의 기록들 때문이다. 조선의 영조가 입맛을 잃었을 때 보리굴비를 쭉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는 기록, 근대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터전으로 한 조업활동의 역사와 문화사(조업도구와 시장의 형성을 포함하여), 그리고 임경업 장군이나 개양할미를 비롯해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민간신앙과 전설, 습속에 대한 사료들을 탐색하다 보니 자연스레 흥미가 일었다고 한다. 세 번째 이유로 그는 오랫동안 비판 의식 없이 수용되었던 ‘조기 파시(波市)’에 대한 정보들을 바로잡고 싶었다는 열망을 꼽는다. 조기 파시는 주로 일제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되어 ‘흥청망청’ ‘타락’ ‘유흥’이라는 단어들과 함께 수용되었다. 저자는 특히 이 부분에 주목한다. 과연 우리 바다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조기 파시에 그런 모습이 있었을까? 이 의문으로부터 시작해 우리나라의 유명한 파시들, 즉 연평도 파시, 위도 파시, 흑산도 파시를 거쳐 거의 마지막 장인 사월포 파시에 이르기까지 파시의 기원과 발전, 그 결과를 하나하나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규합총서(閨閤叢書)』 『도문대작(屠門大爵』 등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다양한 조기 요리법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마리 작은 생선이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대접 받는 사람에 따라 때로 소박하게 상식적으로,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조리되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기도 맛도 평범했던 조기가 위로는 왕의 사랑을, 아래로는 백성의 애정을 듬뿍 받게 되었던 진짜 이유를 밝히고, 바다 위에 장이 설 정도로 수확이 왕성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바다와 조기에 얽힌 생태, 역사, 문화를 둘러보는 흥미로운 저작이다. 또 한편으로는 조기의 탄생부터 회귀, 산란, 이동경로 변경 등 조기의 생존전략을 소개하는 동시에 사후 굴비로 변신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조기의 전 생애를 톺아보는 ‘조기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어로 활동에 썼던 다양한 도구들과 어로방법을 소개함은 물론이요, 각 지역의 특색과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QR코드로 제시하여 독자에게 입체적인 독서활동을 제공하는 것 또한 이 책의 특장이라 하겠다. 한국사를 사랑하는 역사 마니아는 물론 우리 바다와 음식문화, 그리고 고전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한다.
짭짤하고 담백한 ‘조기 로드’를 가다
조선시대에는 조기를 굴비로 가공하여 밥상에 올리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엄청 들어갔다. 상업활동이 미비했고 도로교통 조건 또한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기는 수백, 수천 리를 달려와 임금의 수라상과 양반의 제사상, 그리고 백성들의 밥상에 올랐다. 실크로드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가히 ‘조기로드’라고 불릴 만큼 먼 거리를 숱한 이야기와 함께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기는 우리 민족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문화가 되고, 산업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그 어떤 욕망이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심해의 조기를 뭍으로 불러낸 것일까? 조기의 맛은 과연 어떠하기에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밥상의 주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걸까? 대체 저 작고 노르스름한 조기 한 마리가 선택받고 살아남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조기와 함께 춤을
어떤 음식은 단순한 끼니 이상을 의미한다. 짜장면이 소울푸드가 된 데에 어린 시절 졸업식과 입학식 때에 먹던 음식이라는 점이 한몫했듯이 말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조기가 바로 그런 의미다. 한국인은 일평생을, 그리고 사후까지도 조기와 함께했다. 어린 소녀는 엄마 심부름을 다니며 조기와 친해졌고, 혼례상에 수줍게 놓인 굴비를 바라보며 어른이 되었으며, 어미가 되어서는 그 옛날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소금단지 안에 조기를 넣어두었다. 나이 들어 입맛이 없어지면 보리굴비와 물밥으로 식욕을 되찾았을 테고, 세상을 떠나서는 제사상에 놓인 잘생긴 굴비 한 마리를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띠었을 것이다. 이처럼 기억에 아로새겨진 유전자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가격이 훌쩍 오른 조기를 찾는다. 이것이 바로 내 몸에 살아 있는 우리의 역사이자 문화의 흔적 아닐까? 그 사소한 물성에 깃든 뜨거운 역사 탐험의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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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실 로맨스
박영규 | 옥당북스 | 2019-10-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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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실 로맨스
박영규 | 옥당북스 | 2019-10-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저자 박영규가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조선 왕 이야기, 그 두 번째
직진형 순정남, 읍소형 비운남, 전투형 뒤끝남, 결벽형 도도남 등 로맨스 스타일로 구분한 조선 왕들의 색다른 모습과 만난다
조선 왕들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고 익숙하다. 역사책에서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이들의 삶과 업적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 아닌 한 남자로서 이들이 해 온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낯설면서 새롭다. 왕실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는 드물었던 탓이다.
저자 박영규는 왕들의 새로운 모습에 주목했다. 그동안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전쟁실록》, 《조선붕당실록》, 《조선반역실록》, 《조선왕 시크릿 파일》등을 펴내며 조선시대의 다방면을 연구해온 그가 이번에는 조선 왕실의 사랑이야기를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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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직장인 열전
신동욱 | 국민출판 | 2019-11-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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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직장인 열전
신동욱 | 국민출판 | 2019-11-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 위인들의 삶을 통해서 배우는
직장에서 견디고, 버티고, 승리하는 비법!
500년 조선을 움직인 것은 한 국가를 책임졌던 왕과 그에게 고용된 여러 대신들이었다. 그들도 녹祿을 받는 직장인이었고, 조선이라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삶을 살았다.
역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위인의 삶도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그들 자신도 지우고 싶어 하는 실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을 위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실수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17명 위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뚝심으로 밀어붙인 일들로 인해 조선의 직장인이었던 위인들의 삶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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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제임스 S. 게일 | 책비 | 2019-03-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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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제임스 S. 게일 | 책비 | 2019-03-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박물관에서 표지만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우리 역사의 흔적, 드디어 우리말 정식 출간!
120년 전, 수십 년간 조선 땅에 살며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한 파란 눈의 한국학자가 쓴 우리가 잊고 지낸 역사의 기록
1888년, 스물다섯 살의 한 선교사가 조선 땅에 입국했다. ‘제임스 S. 게일’이란 이름을 가진 파란 눈의 그는 사십여 년간 조선 땅에서 조선인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정동에 모여 살면서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않던 대부분의 외국인과 달리, 게일은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선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조선인들과 어우러지며 깊이 교류하였다. 특히 그는 조선의 마지막 10년이라 할 수 있는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의 시간을 담은 책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하였는데, 해당 원서는 서방 세계에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소개한 최초의 저서이다. 이미 여러 권 소개된 바 있는 게일의 다른 기독교 서적과 달리 이 책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역사박물관’에 해당 원서의 초판이 전시되어 있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책이다.
게일은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출간하였고,『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양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수많은 우리 고전과 조상들의 저서를 읽고 번역할 정도로 우리말에 능통하였다. 『구운몽』, 『심청전』, 『춘향전』 등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양에 소개하였고, 역으로 『텬로력뎡(천로역정)』을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하였다. 그는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겼는데, 단군 조선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역사를 집대성해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껏 우리에게 게일은 선교사로서 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위대한 한국학자이다. 그런 그가 서양 세계에 미지의 나라인 ‘조선’을 처음으로 알린 책이 바로 본서이다. 게일은 이 책에서 그간 우리가 역사책으로만 접해온 ‘아관파천’, ‘을미사변’, ‘명성왕후 시해’ 등 본인이 직접 겪은 역사의 현장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되는 이번 책은 잃어버렸던 우리 역사를 되찾은 듯한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조선인보다 더욱 조선을 사랑한 파란 눈의 이방인,
제임스 S. 게일은 누구인가?
제임스 S. 게일(James Scarth Gale)
한글명: 긔일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욱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해박했던 사람.
이 책은 역자 최재형이 우연한 기회로 발굴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역자가 이 위대한 한국학자의 존재와 그가 우리에 관해 쓴 너무나도 소중한 이 저서를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역자는 지난 2006년,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본문 중 ‘한국인에 대하여 게일만큼 잘 아는 이는 없다’라는 문구가 발단이 되었다. 언니가 그림을 그리고 동생이 글을 쓴 이 책의 원제는 『Old Korea』로, 1919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인 자매가 몇 달 동안 머물며 느낀 것을 그림과 글로 엮어 1946년 서양에서 출간되었다. 평소에도 우리 문화와 역사에 관해 관심이 많던 역자는 대체 게일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평을 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알게 된 사실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는데, 게일은 단순히 한국인과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삶에까지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게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었다.
사실 한영사전이 우리나라 말고 다른 곳에서 먼저 나왔을 리가 없으니 세계 최초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 최초의 한영사전은 연세대학교 설립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의 창립자인 언더우드가 1890년 출간하였는데, 이 책 서문에 공저자로서 게일과 헐버트를 밝히고 있다. 게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897년 지접 자신의 이름으로 한영사전(한영자전, 최초의 Korean-English Dictionary)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증보판은 1967년 사무엘 마틴이 새한영사전(New Korean-English Dictionary)을 출간할 때까지 무려 70년간이나 그 독보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게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문학을 번역 출간하였다.
1895년 그는 영국 작가 John Bunyan의 『The Pilgrim’s Progress(1678)』를 순 우리말로 번역 출간하였는데, 1888년 이 땅에 발을 처음 내디딘 지 불과 7년 만에 번역서를 출간할 정도로 그는 우리말에 통달하였다. 또한 그는 세계 최초로 우리 문학을 서양에 번역 출간하였다. 청파 이륙의 『청파극담(1512)』과 수촌 임방의 『천예록』에 전하는 이야기(야담)를 모아 『Korean Folk Tales』라는 이름으로 1913년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하였고, 서포 김만중이 1687년 쓴 『구운몽』을 『The Cloud Dream of Nine』이라는 제목으로 1922년 영국에서 출간하였다. 『심청전』과 『춘향전』도 번역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역한 『청파극담』이나 『천예록』 모두 한문본이고, 『구운몽』 또한 언문본(한글본)과 함께 한문본을 모두 참고해 번역할 만큼 그는 단순히 우리말(한글)에만 통달했던 것이 아니다.
또한 그는 정동에 모여 살던 다른 서양인들과 달리 서양인이 살지 않는 곳에서 조선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살며, 사랑방에 앉아 한학을 공부했다. 『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양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그야말로 수많은 고전과 우리 조상의 저서를 읽고 번역했다.
그는 구한말 역사의 현장에서 너무도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원군을 만났고, 대원군의 장손이자 고종의 조카인 이준용과도 알고 지냈다. 고종의 아들 의화군과 친구였고, 이범진, 박영효, 이상재 등 수많은 관리들과 밀접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미국 유학을 위해 추천장을 써주기도 했다. 청일전쟁의 현장에 있었다. 고종의 고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성왕후가 시해되던 날 고종을 알현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였다. 오늘 출간되고 있는 많은 우리 역사서에서도 명성왕후 시해와 관련한 역사적 해석이 명확하지 않은데, 본 서에서 그리고 다른 기록으로 저자는 명성왕후 시해 직후 흘린 고종의 눈물과 울분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는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였으며,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였다.
선교사이자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든, 누구보다 뛰어난 한국학자로서 그가 성경 번역에 깊이 관여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쉽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표현 자체이다. 여호와 혹은 신에 해당하는 호칭에 대해 천주, 상제를 주장하는 다른 선교사에 맞서 우리 문화와 언어에 더 깊은 이해가 있던 게일은 순 우리말이면서 기독교와 관계없이도, 이미 온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개념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던 ‘하나님’을 주장하였고, 관철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긴 그는 진정한 한국학자였다.
그의 이름 뒤에 ‘목사’라는 호칭이 붙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단순히 선교사 또는 목사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사십 권이 넘는 국영문 저서를 출간하고, 이 땅과 이 땅의 사람에 관한 수백 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남긴 대학자이다. 이미 1895년 『동국통감』을 번역하여 우리 역사를 서양에 소개했고, 단군 조선에서 삼국시대, 고려, 심지어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집대성하여 〈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였다. 그는 이 연구와 집필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우리 선조들의 역사서를 직접 읽었고, 현장을 답사했으며, 우리 역사와 관계있는 중국 역사는 물론 불교, 유교, 도교 등의 사상사까지 직접 연구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낯선 이 땅과 그 위의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사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가 우리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하여 출간한 최초의 저서이다.
1888-1897, 격동의 시간 속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역사책에서만 들어본 우리 역사 속에 제임스 S. 게일, 그가 있었다!”
●· 조선 사람들의 삶과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책
이 책의 저자 제임스 S. 게일은 1888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선교자의 신분으로 부산항을 통해 조선 땅에 도착했다. 이후 사십여 년간 조선인과 깊이 교류하며 조선인들의 삶과 문화, 사고방식을 면밀히 관찰하여 기록하였고,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간의 이야기를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1898년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출간하였다. 그때까지 조선은 서양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다.
지금까지 조선 사람들의 삶과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독특하고 예스러운 민족과 약 9년간의 친밀한 교제 후에 나는 이들에 대한 단상을 여기에 모았다. 이를 통해 이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를, 오랜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조선이라는 왕국에 사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인도할 수 있기를!
_ ‘머리말’
게일은 이 책에서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접한, 곳곳에 널려 있는 시체와 조선인들이 시체를 처리하고 장례 지내는 방식의 묘사, 밤새 통구이가 되어버릴 정도로 뜨겁게 아궁이를 지피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런 통 넓은 바지와 소매의 복장, 계란 한 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통 풀로만 가득한 밥상, 나라의 희망이자 전부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상놈’에 대한 상세한 소개 등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상세한 설명과 해학으로, 마치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의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접할 법한 조선 시대 이야기를, 그 시대에 진짜 존재했던, 누구보다 그 삶을 가까이 경험한 120년 전의 인물에게서 전해 듣는 것이다. ‘은자의 나라’라 불리던 미지 속의 조선을 최초로 서양 세계에 소개한 이 책은, 놀랍도록 세밀한 기록이기에 비록 최초 출간 당시의 주 독자층은 서양인들이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서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 조선 방방곡곡을 여행한 최초의 이방인
게일은 이 책에서 그 어떤 외국인도 조선에서 자신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진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서양인 중 누구도 압록강 동쪽 지역을 여행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는 부산으로 입국해 서울, 해주, 장연, 제물포, 개성, 평안, 의주를 거쳐 중국의 만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선 방방곡곡을 여행하였고, 이 책 곳곳에 그 시간 동안 겪은 이야기들을 적어놓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여행 기간 동안 그는 조선의 아름다운 자연과 혹독한 야생을 온몸으로 느꼈고, 신분을 막론한 여러 조선인들과 뜻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가 조선에 막 발을 들여놓은 직후부터 보고 듣고 느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조선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은, 어느덧 그에게 친근하고 따듯한 정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책이 중후반을 향해 갈수록, 조선과 조선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시각과 생각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또한 그는 조선이 일본에게 잠식되어 가는 그 과정과 순간들을 목격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가슴 아파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조선을 싫어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다. 나에게 조선이란 전 세계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나라인데, 좋은 날씨에, 점잖고 신의 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하며, 그네들의 말과 오랜 풍습은 아주 흥미로운 데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지천에 널려 있다.
- P.178~179
●· 아관파천, 청일전쟁, 갑신정변, 을미사변… 우리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
게일은 지금의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굵직굵직한 역사의 사건들 속에 생생히 자리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목도한 이야기들은 이 책 곳곳에 서술되어 있는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난다. 본인이 직접 평양에서 목격한 일본군과 중국군들, 청일전쟁의 흔적, 긴박했던 아관파천의 뒷이야기,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을 논하며 격앙된 어조로 일본을 비난하는 등, 게일은 파란 눈의 이방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조선에 스며들어 우리 조상들이 겪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이 책에 기록하였다. 120년 전 조선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부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큰 사건까지, 우리는 그 시대를 오롯이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죽은 역사가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책 속으로
이곳에 대한 여러 첫인상 중, 나가사키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배 위에서 조선 사람들의 흰 옷과 통 넓은 바지를 보고 경악했던 것이 떠오른다. 왜 저런 옷을? 그리고 저 상투는 또 뭐지? 잠깐 사이 내 머릿속에는 ‘아마 저들은 저 상투를 아주 중시하나 보다’, ‘그 통 넓은 바지 솔기마다 한 땀 한 땀 조상님들의 은덕을 새겼나?’, ‘아니면 유교식 예절이거나 오랜 전통인가?’, ‘바지통이 넓을수록 소원이 이뤄지는 걸까?’ 등등, 바지통이 저렇게 넓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 P.17
마침내 우리는 환상의 세계처럼 신비로움에 휩싸여 있는 그곳, 서울에 도착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서울은 동방에서 가장 그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사실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할 것투성이였다. 잔인한 인종이지는 않을까 하고 상상해오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사람들은 어진 품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 동방 전체에 만연한 소름 끼치는 관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처음 오는 사람들을 완전히 공포로 몰아넣는 것인데, 바로 온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예를 갖추어 시신을 매장하고, 고인의 부활과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한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시신을 자리에 둘둘 말아 그대로 익어 썩어가도록 햇볕 아래에다 방치한다.
- P.20~21
생전 본 적 없는 엄청난 수의 개와 벌거숭이 아이들. 아이들은 내가 다가가기 무섭게 달아났지만 개들은 아니었다. 목을 곧추세우고 눈을 부라리며 대문 앞에서 나를 위협하거나, 대나무 울 뒤에서 으르렁거리며 짖어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선말을 동원하여 이렇게 말했다.
“오, 이런! 안 씨, 도대체 이 수많은 개들을 왜 죽이지 않는 거죠?”
“아직 너무 일러요, 나중에 죽일 거예요.” 안 씨가 대답했다.
“아니, 나중에 말고 지금이요. 지금 개를 잡으면 바로 마을이 평화롭고 조용해지잖아요?”
“지금이라……. 아시다시피 봄에는 개고기가 별로 좋지 않아요. 여름까지 기다렸다 잡아야죠. 당신 나라에선 봄에 개고기를 먹어요?”
“으악, 아니요!”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언제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개를 먹는 죄악은 절대 저지르고 싶지 않아요.”
“아예 안 먹어요?” 그가 또 물었다.
“절대로요! 우리나라에선 절대.”
곧이어 안 씨의 얼굴에 참 덜 떨어진 족속이구나, 하고 우리를 생각하는 표정이 뒤따랐다.
- P.36~37
잠시 생각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내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잠자리를 봐놨다는 안 씨의 목소리를 듣고야 정신이 들었다. 방은 길이 4미터에 폭 2.4미터, 높이는 1.8미터 정도 되었는데, 마을에 묵을 수 있는 방이 얼마 없다며 안 씨는 자신과 친구 한둘이 같이 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친구? 누구요?”
“최 씨, 서 씨, 이 씨하고, 몇 명 더요.”
이 답답한 방에서 이렇게 많은 조선 사람들과 함께 자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연히 모셔 와야죠!”라고 대답할 수밖에.
방 한쪽 끝에 새로 짠 자리를 깔았는데 꽤 좋아 보였다. 자러 온 사람들이 일렬로 몸을 눕힐 때까지 나는 앉아서 기다렸고, 안 씨는 호랑이를 대비해 문과 창문을 철저히 단속했다.
자리에 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agungi(아궁이)에 불을 엄청나게 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방바닥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잠시 뒤 나는 안 씨를 흔들어 깨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회의를 시작했다.
“아니, 날이 이렇게 따뜻한데 불을 왜 이렇게 때는 거예요? 나 죽어서 통구이 되는 거 보려고 이래요?”
잠이 아직 덜 깼던 안 씨는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정신을 차리느라 몇 분 보내더니, 자기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도 이 집 안주인이 불을 땐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걱정 마세요, 내가 해결할 테니.”
안 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사람들을 다 깨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궁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윗목의 쌀가마니들 사이에 자리를 최대한 겹쳐 쌓아 내 잠자리를 봐준 다음, 조선 사람들은 이 정도는 뜨끈뜨끈해야 편하게 잘 잔다며 나머지 사람들을 다 뜨거운 아랫목으로 몰아넣었다.
다음 날 아침 어렴풋이 잠에서 깼는데 숨이 꽉 막히는 것이 질식할 것만 같았다. 머리는 터질 듯한 데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분간이 안 되었다. 나는 엄청 끙끙대며 한참을 고생한 후에야 겨우 일어나 앉았고, 그제야 대충 주변을 분간할 수 있었다.
- P.52~54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자신들의 풍습을 따르려는 상놈의 곧은 마음을 깨뜨릴 수는 없다. 이들은 돈이 편리함을 주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없으면 안 될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꼭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조건들이 만족스러우면 하겠다고 할 것이고, 어떤 때는 돈을 좀 더 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주면 또, 당신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은 절대로 순수하게 돈에 의해서만 종속되는 관계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일이 끝난 후 우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아주 약간의 성의 표시만 해주어도,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이들은 기꺼이 달려올 것이다. 순수하게 당신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만약 사이가 좀 틀어지게 되면 그는 돈을 더 달라고 할 것이고, 반대로 친분이 아주 돈독하면 적게 줘도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잘못되어 관계가 파탄이라도 난다면 당신이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절대 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온 마을 전체가 당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 P.85
저녁은 김치 냄새, 국 냄새와 함께 그것을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외국인이 보통 ‘개’라고 부를 길게 찢은 고기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왔다. 그것은 너무나 기다리던 냄새였기에 나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남 서방은 “진지 맛있게 드시라.” 하고는 물러갔다. 노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만약 내가 가진 재물에 어떠한 탐욕도 품지 않았다면 그는 진정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사람이었다. 보통 그런 상황에 있는 동양인들은 겉으로는 아첨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 조상님이 굽어 살펴주시는 나는 이렇게 굶주리고 있는데, 저 양놈 개새끼는 이 땅에서 제일 좋은 걸 처먹는다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프라이팬 방바닥 위에서 잠을 잤고, 거의 새까맣게 구워졌다. 그러고 보면 이 온돌바닥은 모든 조선 사람의 기쁨이었다. 우리가 이들의 잠자는 방식에 불만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조선 사람들도 서양식 잠자리를 뒤떨어진 미개인들의 형편없는 문화라고 여겼으므로 우리처럼 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P.145
조선 사람들의 방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대체 무슨 냄새일까 알아내려고 몇 달 동안이나 애를 썼다. 어딜 가든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마침내 냄새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그건 두 냄새가 합쳐진 것인데, 하나는 구석에서 타닥타닥 타고 있는 아주까리기름 냄새였고, 다른 하나는 일렬로 천장에 매달려 곰팡이를 피우고 있는 콩 덩어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겨우내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쓴 이 콩 덩어리111는 발효가 될 때까지 물에 담가놓았는데, 진액이 흘러나오면 끓여 간장을 만들었다.
- P.177
조선 사람들의 숫자 계산법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는데, 나는 장사치에게 한번 이렇게 물었던 생각이 난다.
“이 자리 얼마예요?”
“오백 푼이요.”
“좋아요, 스무 개 주세요.”
“말도 안 돼요!” 장사치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많은 양은 육백 푼 밑으로는 못 팔아요.”
이곳에선 산수라는 놈이 파멸하여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인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들의 나이 계산법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여서, 나이 먹는 걸 태양이나 달의 절기에 근거하여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설날 떡국을 몇 번 먹었느냐로 결정했다. 이런 식으로 나이를 더 먹는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아기가 만약 12월에 태어나서 설날에 차례를 드리기 위해 가족 모임에 참석했다면, 아기는 벌써 두 살이었다. 실제로는 태어난 지 오륙 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말이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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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수광 | 북오션 | 2019-02-0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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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시대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수광 | 북오션 | 2019-02-0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양반 권력층의 ‘갑질’에 유린당한 척박한 민중들의 삶
신분차별, 남녀차별 속에서도 질경이처럼 핀 삶과 사랑
‘갑질’은 21세기 한국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개?돼지처럼 천대와 차별 속에 살아야 했던 조선 민중들의 쓰리고 아픈 삶을 24개 이야기로 만난다!
조선의 500년 정사(正史)는 문자를 지배했던 왕조와 양반계급을 중심으로 쓰였다. 양반들 입장에서 ‘왕후장상의 씨’는 운명처럼 정해진 것일 뿐 감히 신분상승이나 이탈은 생각할 수 없는 금기이고 민중들의 삶은 관심조차 없었다. 이러한 유교적인 계급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폭력적인 차별과 억압을 가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평등에 대한 생각은 반역죄와 같이 취급했다. 이 책에서는 조선 양반들이 주도했던 체제에서 그 숱한 민초들의 스러져갔던 삶 가운데 역사의 한 줄, 한 마디로나마 언급됐던 24명의 다양한 민중들을 만날 수 있다. 사는 것이 지옥인 평민 임 여인, 단청장이에 피리의 대가였던 장천용, 양반 주인의 잔혹한 포락지형이라는 사형(私刑)을 받고도 겨우 사노에서 관노로 속공될 수 있었던 여종 효양의 고단한 삶, 18세기 검무를 유행시킨 밀양 기생 운심 등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조선 사회의 밑바닥 인생인 노비, 백정, 기생, 농민에서 예인, 공인, 역관, 아전 같은 중인까지 역사책에서는 흔히 만나볼 수 없었던 이 땅의 민중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되새겨야 할까. 재벌가, 상류층, 권력가들의 특권은 대물림하여 청탁과 부정부패로 철옹성처럼 유지되고 있고 공정한 기회와 사회 정의는 요원한 21세기 오늘에 말이다.
인고의 삶, 그러나 반전은 있다! 아들 83명으로 부농을 일군 김생, 일개 아전으로 판서의 바둑판을 뒤엎고 왕명을 거부한 김수팽, 장애를 초월한 악기연주가 김운란…한국 팩션의 대가 이수광 작가가 부활시킨 조선민중 이야기
민중의 삶은 아무리 짓밟아도 풀처럼 일어난다.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수많은 씨앗을 뿌리고 모진 삶을 이어가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전국을 떠돌며 아들만 83명을 둔 정력가 김생, 책 읽어주는 남자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기수 이업복, 하급 공무원인 아전의 신분으로도 당당하고 기개 넘치는 삶을 살았던 김수팽, 귀신도 울고 갈만큼 연주의 달인이 되었던 장애인 악공 김운란, 묵묵히 평생 짚신만 삼은 유군업, 못난이 소리를 들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산 바보 안선원, 화, 욕심, 재산이 없이 병자를 치료한 심의 안경창…. 이들은 대부분 중인 이하의 신분으로 출세의 길이 막혀 좌절한 천재들도 있었고 시대와 불화하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거나, 광인이 되어 부평초로 떠돌다 거리에서 죽었다. 학문을 하고 글을 익혔어도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아까운 재능을 썩히고 사라진 이인(異人)이 된 것이다.
이 책은 역사의 주역으로 크게 대우받지는 못했지만 가난과 신분의 억압 속에서 한 맺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민초들의 서글픔과 애환이 절절히 그려진다. 저자의 탁월한 구성과 복원력으로 되살린 이야기들이 분노와 애달픔으로 현실의 우리에게 전달된다.
책 속에서
“소인이 세상을 산 지 어언 반 백 년이 넘었습니다. 복이 없어서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했으나 횡액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윤질이 휩쓸어도 식구가 무탈했고, 전쟁이 났어도 가족이 죽지 않고 집이 불타지 않았습니다.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만 저희는 배를 주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인이 어찌 세상을 원망하겠습니까?”
_p.67 못난이로 한 평생 살아가기_바보, 안선원
영조시대에 책을 읽어주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는 목소리가 여자처럼 곱고 얼굴과 살결이 희었다. 게다가 그는 여자들의 언문 필체도 잘 썼다.
어느 날 그는 얼굴에 분을 바르고 여자 옷으로 바꾸어 입은 뒤에 사대부 집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부녀자들은 그가 여자인 줄 알고 내실까지 기꺼이 들어오게 한 뒤에 책을 읽어달라고 청했다. 그가 여자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외를 할 필요가 없었다.
_p.88 책 읽어주는 남자_전기수, 이업복
이튿날 아침, 김수팽은 판서가 호조에 등청하자 사직서를 써서 제출했다.
“이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 사직하지 말고 직분을 다하라.”
판서는 손을 내저으면서 김수팽의 사직서를 도로 내주었다. 김수팽이 판서의 바둑판을 쓸어버린 일은 경아전들에게 바람처럼 퍼졌다. 각 부서에 소속되어 있는 경아전들은 김수팽이 서리의 자존심을 세웠다고 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크게 다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_p.107 왕명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남자_아전, 김수팽
스님은 병자가 있는 곳이면 조선 팔도 어디든지 찾아갔다.
안경창은 스님과 함께 병자를 치료하러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스님은 병을 치료해주고 돈을 받지 않았다. 병자의 집에서 주는 밥 한 그릇과 하룻밤의 잠자리로 만족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누더기를 입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스님을 따라다니는 안경창도 해지고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_p.131 세 가지가 없던_심의, 안경창
장천용이 무산구곡을 퉁소로 불자, 맑고 시원한 한 줄기의 청풍이 불어왔다. 사람들은 오장육부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한 청량감이 들었다.
장천용이 무산구곡의 두 번째 곡을 연주하자 사방에서 채운(彩雲)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혼이 달아난 듯 넋을 잃고 장천용의 퉁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천용이 세 번째 곡을 연주하자 어디선가 백학 한 쌍이 날아와 창천에서 춤을 추고, 공작새들이 쌍쌍이 날아오고, 뭇새들이 날아들어 지저귀며 장천용의 아름다운 퉁소 소리에 화답했다.
_p.160 떠돌이 예술가, 세상을 방랑하다_퉁소 장인, 장천용
성종은 지혜로운 군주여서 효양뿐 아니라 그녀의 일가족 모두를 속공하게 하여 사노에서 관노로 만들었다. 이는 포학한 유효손에게서 학대를 받지 않게는 했으나 여전히 노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유효손에게는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사헌부 관리들 뿐 아니라 형조에서도 속공은 불가하다고 여러 차례 아뢰었다. 효양 사건이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들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 한 것이다.
_p.235 관노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산_여종, 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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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보물 이야기
유자후 | 온이퍼브 | 2019-06-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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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보물 이야기
유자후 | 온이퍼브 | 2019-06-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나라의 보물과 보화의 화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 책은 저자인 한한자 유자후 선생의 조선 화폐(보화)에 관해 간략히 정리한 글로, 상고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등장했던 일종의 ‘화폐’를 개괄적으로 일부 소개한 글이다.
왕건 태조는 전보(錢寶)의 사용을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발해를 짓밟고 배반한 신의가 없는 거란이 전폐(錢幣)를 사용하므로 제도를 같이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금견(錦絹)과 은그릇 등 화폐(貨幣)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성계 때에 고려의 은병폐(銀甁幣)를 그대로 사용하는 동시에 조선통보(朝鮮通寶)를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태종은 대형조선통화(大形朝鮮通貨)와 고려의 저화제도(楮貨制度)를 부활하여 이 저화(楮貨)는 현대의 태환제도(兌換制度)로 현종 때까지 통화로 사용하였다.
세종도 조선통화를 개량 다시 주조하여 만들었고 세조는 전폐(箭幣)라고 하는 것을 발행하여 군사 경제에 두 가지를 이룰 목적으로 하는 화폐로 삼았다.〈본문 중에서〉
화폐의 근원에 따라 현재까지 잊히고 사라진 역사의 연구라고도 할 수 있는 화폐 연구의 좋은 자료이며, 고대에서 현재까지 일부 조선 화폐의 근간을 총론으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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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이 버린 천재들
이덕일 | 옥당북스 | 2019-03-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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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이 버린 천재들
이덕일 | 옥당북스 | 2019-03-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되살아난 22명의 혁명가들
역사학자 이덕일이 한국사 인물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던진다. 바로 ‘시대의 질서와 이념에 도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대에는 이단아로 배척받았거나 멸문지화를 당했으나 이 시대에도 유효한 의미를 던져주는 역사의 선각자들이자 시대를 앞서 간 천재들이다. 저자는 시대의 벽을 넘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22명 혁명가들을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 앞에 불러내 시대를 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들 혁명가들을 천재라 칭한 이유에 대해 “천재란 많은 것을 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천재란 대다수 사람이 상식이라고 믿는 개념과 구조에 반기를 들고 싸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반기가 나중에는 주류의 깃발이 된 것이 인류 발전의 역사였다. 지동설이 그랬고 상대성의 원리가 그랬고,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랬다.”라며 그 시대의 논리에 도전하며 앞서 간 선각자야말로 진정한 천재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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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통제된 시간과 공간
유승희 | 세창미디어 | 2018-09-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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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통제된 시간과 공간
유승희 | 세창미디어 | 2018-09-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시대 야간통행금지
이제는 사라진 야간통행금지가 조선시대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통행금지에 막힌 ‘밤문화’를 어떻게 즐겼을까? 통행금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했을까?
매일 밤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사이렌 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시행된 ‘야간통행금지’는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던가요? 조선시대 야금정책에 의한 강제적인 억압은 밤 시간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밤의 특권층이 되고자 야간통행증이 위조되기도 하였습니다.
24시간 술집과 카페가 운영되고, 밤 활동이 자유로운 지금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이처럼 조선시대 통제된 밤 시간과 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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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멜표류기
헨드릭 하멜 | 스타북스 | 2020-02-0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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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멜표류기
헨드릭 하멜 | 스타북스 | 2020-02-0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네덜란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조선의 실상들
최초로 조선을 서양에 알린 13년 28일의 기록
다시 새롭고 간결하게 정리한 오리지널 에디션!!
태풍으로 조선에 표착한 하멜과 그 일행의 억류생활을 기록한 책
『하멜표류기』는 ‘난선제주도난파기’라고도 한다. 조선에 관한 서양인 최초의 저술로서 당시 동양에 관한 호기심과 함께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
1653년(효종4년)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르베르(Sperwer)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의 연변에 상륙했다. 그들은 체포되어 13년 28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8명이 탈출해 귀국했는데, 하멜이 그 일행과 함께 한국에서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하멜은 조선의 여러 곳에 강제 이송되는 과정에서 정치제도와 민초들의 생활상을 서양인의 눈으로 예리하고 세밀하게 관찰했고 조선의 실상을 비교적 정확하고 충실하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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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
이덕일 | 만권당 | 2019-02-2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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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
이덕일 | 만권당 | 2019-02-2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왜 지금 다시
한국 독립전쟁사에 주목해야 하는가?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는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독일, 이탈리아와 달리 일본은 전범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들은 전후 일본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부활했다. 전범들이 형식적 처벌 이후 일본 우익의 주요 축을 형성한 결과, 침략전쟁이 올바른 것이었다는 군국주의 세력의 역사관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형성과 전파에 종사했던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해방 이후에도 한국 사학계를 장악해 일본의 식민사관이 한국사의 주류 이론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지난 세기의 한국 독립전쟁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 독립전쟁사에 대한 재조명일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는 물론,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현 상황에 대한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최고의 역사학자인 이덕일의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은 일본의 전후 전범 세력이 재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동아시아 상황을 재점검하고, 한국 독립전쟁사의 여러 장면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전후 일본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부활한 전범 세력,
그리고 한국 사회의 주류 사학이 된 식민사관
일본에서 전범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극우파가 재부상하게 된 것은 전후 동아시아의 정치 질서가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당초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 정책의 주축은 장개석과 중국 국민당의 승리를 기정사실로 삼아서 중국을 동아시아 반소(反蘇)·반공의 보루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공내전이 예상과 달리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중국을 동아시아 반공의 보루로 삼으려는 미국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동아시아 정책을 바꾸었고, 이에 따라 대일본 정책도 바뀌었다. 미국은 한반도 남쪽에서 친미 반공 정권을 수립시키는 것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중국을 대신할 반공의 보루로 일본을 선택했고, 그렇게 일본 전범 세력은 전후 부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중 특히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기시 노부스케와 쇼리키 마쓰타로를 들 수 있다. 기시 노부스케는 도조 히데키 등의 처형 다음 날인 1948년 12월 24일 석방되면서 공직에서 추방되었는데, 이후 일본재건연맹을 설립해 회장으로 취임했고, 일본민주당 간사장, 내각 총리대신, 자민당 총재 등을 역임했다. 1960년 내각 총리대신을 사퇴한 후에도 막후에서 일본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한일 국교 정상화에도 가세했다. 쇼리키 마쓰타로는 도쿄제대 법대를 나와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한 후 경시청 경무부 형사과장 등 경찰 요직을 거쳤다. 그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1923년 9월의 관동대지진 때였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을 경찰 조직을 통해 조직적으로 유포해 조선인 대학살을 불러온 인물이 쇼리키였다. 그는 민중들의 분노를 조선인들에게 돌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 내 사회주의 세력에 대해 무차별적 테러를 가했다.
이들을 비롯해 전후 철저하게 청산되었어야 할 군국주의 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일본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한국 재점령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일본이 과거의 침략사를 거듭 부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역사 도발이 지속적·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일본 극우파들은 자신들의 과거 침략 행위에 대한 반성의 마음이 없다. 전범 출신들은 사사카와 재단 같은 극우 재단을 만들어 ‘남경 대학살은 없었다’,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 ‘독도는 일본 땅이다’ 같은 망언들을 학술의 이름으로 조직적으로 유포했다. 그리고 한국인 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막대한 자금으로 친일 한국인 역사학자군(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가야는 임나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5세기경 일본인들이 건너와서 만든 것이다’ 따위의 일제 패망과 함께 폐기되었던 제국주의 역사학이 한국 학계에 다시 등장한 배경이 일본 극우파들의 이런 의도적 행위의 결과임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한 세기 전처럼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하는 일본 우익들을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더 근본적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었다. 남한은 일본과 중국의 역사 침략에 가장 강하게 저항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형성과 전파에 종사했던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해방 이후에도 한국 사학계를 장악했고, 그 결과 일제 황국사관이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의 주류 이론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전 생애를 걸고 독립운동에 나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그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에서는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들과 한국 독립전쟁사에 큰 의미를 갖는 몇몇 장면들을 소개한다.
먼저 명망가 집안에서 태어나 개인의 자유와 개인 사이의 절대적 평등을 주창하는 아나키스트가 된 우당 이회영, 그리고 양명학의 토대 위에서 서양 정치사상을 받아들이고 군주제 대신 공화제를 주창한 석주 이상룡을 통해 아나키즘 독립전쟁사를 고찰한다.
평생 동지였던 이상설의 사상과 만주 망명 후 횡도촌에 집결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이회영의 아나키즘 수용 이전의 사상을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양명학과 아나키즘의 유사성도 살펴본다. 또한 정통 유학의 학통을 이었음에도, 성리학을 추종하던 당시의 유학자들이나 대한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던 복벽주의자들과는 달리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군주제를 전면 부인하고 공화제를 주창했던 이상룡의 사상 형성 과정도 살펴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공화제를 주창한 것에는 이상룡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의 사상에는 만민 평등을 주장하는 평등주의와 자치주의의 요소가 많이 드러나 있다. 그가 비록 아나키즘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의 사상이나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이끌 당시, 그리고 서간도에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실천에 옮겼던 사상과 조직했던 단체들에는 아나키즘적 요소가 적지 않다.
또한 계속되는 외세 의존과 편의주의적 정치 행태로 망국 군주로 남은 고종, 그리고 그를 망명시킴으로써 한국 독립의 물꼬를 터보려 했던 ‘고종 망명 계획’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우당 이회영이 고종을 망명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고종 망명 계획에 가담했던 인사들은 기독교, 천도교, 유림, 불교계가 모두 망라되었고, 이후 이들 중 일부는 조선의 청년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한 축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고종 망명 계획에 가담했던 인물들의 면면과 노선이 이후 한국 독립운동의 노선이 되는 셈이다.
여러 민족종교와 민족주의, 사회주의자를 망라했던 이들이 고종 망명 계획에 뜻을 같이했던 것은 고종의 정치 행위를 높게 평가해서가 아니었다. 고종의 정치 행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모순된 것이었다. 개화를 추진한다면서 친청 수구파를 중용하고, 자주국을 수립한다면서 외국 군대를 끌어들이는 고종의 모순된 정치 행태에 대한 실망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상반된 두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고종의 정치 행태는 현실 정치에서 성공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고종이 서세동점과 일본의 굴기 및 한국 점령 야욕으로 대표되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일왕 메이지가 그런 것처럼 입헌군주제를 실시해 시대적 변화에 동참하고, 국내의 개혁적 인재들을 대거 등용해 난국을 타개하는 것뿐이었지만, 고종은 그러지 못했다.
이회영의 다음 발언이 고종 망명 계획의 핵심을 잘 말해준다.
또 일부 사람들의 말과 같이 내가 존왕파였다면 물론 180도의 사상 전환이라 하겠지만, 과거 한말 당시로부터 기미(己未: 3·1 운동) 직전까지 내가 고종을 앞세우려고 한 것은 복벽적 봉건사상에서가 아니라 한국 독립을 촉성시키려면 그 문제를 세계적인 정치 문제로 제기하여야 하겠는데 그러자면 누구보다도 대내외적으로 영향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고종을 내세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데서 취해진 하나의 방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동단의 전협 씨가 의친왕 이강을 상해로 모셔 가려던 생각과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한국 독립전쟁을 전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기 위해 고종 망명 계획을 수립했지만, 미리 정보를 입수한 일제 당국과 친일 매국노들에 의해 고종이 독살당함으로써 이 계획은 미수에 그치게 된다.
한국 독립전쟁사를 통해 전망해보는 우리의 미래
현재 동아시아 평화는 큰 위협에 처해 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추종하는 극우파 역사관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고, 중국은 과거 자신들을 침략했던 논리였던 일제 식민사관을 거꾸로 역사 침략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중국 수상 주은래(周恩來)가 북한의 학술대표단 앞에서 “요동은 조선 민족의 강역”이었다고 말한 것과는 아주 다른 패권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위협받는 동아시아의 평화 체제를 되살리는 길은 안중근, 이회영, 신채호의 사상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안중근, 이회영, 신채호는 동양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한 확고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한국, 중국 등을 강점한 후 서양에 맞서는 것을 동양 평화라고 주장했지만, 안중근, 이회영, 신채호는 모든 민족이 독립된 상태에서 주권을 가지고 서로 평등하게 지내는 것이 동양 평화라고 생각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무력으로 억압한 상태에서는 평화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일제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세 선열은 모든 개인, 국가, 민족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내는 것이 진정한 평화 상태라는 평화사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이런 사상적 기반 위에서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구축해야 할 때다.
일본 극우파의 재등장을 보는 심사는 착잡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압도적 무력과 식민사관이라는 두 무기를 들고 과거 한국을 점령했던 그림자가 언뜻언뜻 내비친다. 그래서 이 거대한 무력과 식민사관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을 되새기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아울러 왜 조선은 멸망했는지에 대한 성찰도 함께 할 때 역사는 여전히 한 개인 및 한 사회를 각성시키는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
모든 현상은 음과 양이 있듯이 침략과 저항으로 점철되었던 지난 20세기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로 변질된 일본이 대만과 한국 강점을 필두로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끼쳤던 해악은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의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미국이 당초의 전후 아시아 재편 구상처럼 일본을 철저하게 민주적으로 개편했다면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동아시아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을 꺾고 승리하면서 미국은 당초의 구상을 포기했다. 즉 전범의 철저한 배제를 통한 일본 사회의 민주적 대개조라는 정책 목표를 수정해 전범 출신들이 다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부활을 허용했다. 이로써 전범 세력들이 다시 일본 사회의 중추로 등장했고, 이는 동아시아 사회가 화해와 협력을 통해 지역 공동체로 나아가는 데 큰 장애 요소가 되었다. - 서문 중에서
이들이 전 생애를 걸고 독립전쟁에 나서게 된 사상적 배경이 있었다. 우선 이들이 지향한 정치사상은 공화주의였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공화주의가 망명 후에 형성된 사상이 아니라 망명 전 대한제국 시절 이미 갖고 있던 사상이라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공화주의 사상이 서구 정치사상의 유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양의 전통 사상과 서구 정치사상의 접맥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상설, 이상룡, 이회영 등의 주요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주자학이 아니라 양명학을 받아들였다. 양명학의 사해동포주의 사상에서 공화주의의 근거를 찾았고, 이런 사상으로 경학사, 부민단 등을 운영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던 것은 이런 사상이 결실은 맺은 것이었다. 또한 삼한갑족 출신의 이회영이 아나키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로 서구 사상의 일방적 유입이 아니라 양명학에 그 토대를 둔 것이었다. - 서문 중에서
쓰다 소키치는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임나일본부를 살리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 전부를 허구로 모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창작해냈다. 이 허구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 현재까지도 남한 강단사학계의 정설로 행세하고 있는 것은 세계 사학사(史學史)상의 미스터리다. 프랑스를 비롯해 나치나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지배를 받은 국가들이 아직껏 나치나 파시스트당의 역사관을 하나뿐인 정설로 떠받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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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에게 고함
이승헌 | 한문화 | 2020-01-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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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에게 고함
이승헌 | 한문화 | 2020-01-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000년 〈힐링 소사이어티〉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던 이승헌 박사의 국학론. 그는 이 책을 통해 과연 어떻게 해야 인간의 의식을 경쟁과 지배, 상극과 파괴에서 조화와 화합, 상생과 평화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이 단순한 통치 이념이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홍익인간 정신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 신과 인간의 합일을 추구하는 상생의 정신이며, 민족을 넘어 모든 지구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철학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9년 한국사회를 달구었던 통일기원 국조단군상 건립운동의 주역이기도 하다. '나는 왜 단군상을 세웠는가?'라는 주제 아래 통일기원 국조단군상 건립운동의 배경과 취지를 설명하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는 단군상 훼손 사태가 왜 부당한지를 말한다.
이 책은 한국을 이끌 지도자의 다섯 가지 조건으로 도덕성, 역사의식, 철학, 비전, 통일론을 꼽으며, 이어 남북의 평화적 통일과 세계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을 아우르는 민족공동체 사상으로서 '홍익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홍익철학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이른바 홍익민주주의, 홍익대통령이 바로 이 책이 한국인에게 고하는 내일의 비전이다.
2001년에 출간된 초판의 개정증보판이다. 4부로 구성되었던 초판에 그의 국학론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을 덧붙여 5부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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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글 맞춤법 통일안
조선어학회 | 온이퍼브 | 2019-04-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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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글 맞춤법 통일안
조선어학회 | 온이퍼브 | 2019-04-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8-1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본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처음 제정 공포한 원문 내용이다.
‘본회는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야 이에 일반 사회에 발표한다. 1930년 12월 13일 본회 총회의 결의로 한글 마춤법의 통일안을 제정하기로 되어, 처음에 위원 12인(권덕규權悳奎, 김윤경金允經, 박현식朴顯植, 신명균申明均, 이극로李克魯, 이병기李秉岐, 이윤재李允宰, 이희승李熙昇, 장지영張志暎, 정열모鄭烈模, 정인섭鄭寅燮, 최현배崔鉉培)으로써 2개년간 심의(審議)를 거듭하야 1932년 12월에 이르러 마춤법 원안(原案)의 작성을 마치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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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 박태균 | (주)메디치미디어 | 2019-07-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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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 박태균 | (주)메디치미디어 | 2019-07-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1945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40가지 역사적 논쟁!
역사와 논쟁은 결코 종결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연장선에서 또 다른 논쟁에 참여하며 살아갈 뿐이다
광복과 분단,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 신자유주의와 시민운동…
역사의 분수령에서 우리는 어떤 논쟁을 벌였고, 어떤 역사를 선택했는가?
이 책은 사회학자 김호기 교수와 역사학자 박태균 교수가 194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논쟁들을 조명하고 평가한 것이다. 논쟁을 선정한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는 사회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과 담론에 대한 논쟁이다. 둘째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이뤄진 논쟁이다. 셋째는 현재적 의미가 큰 논쟁이다. 이 책에서 다룬 한국 현대사와 논쟁들은 결코 과거로서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영향 아래에서 살고 있고,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책의 제1부에서는 광복, 정부 수립, 분단 체제의 형성과 연관된 논쟁들을 살펴봄으로써 현대 한국의 시공간이 만들어진 계기를 추적한다. 제2부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논쟁들을 돌아보고,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당시 정치·외교·문화·경제의 틀을 되짚어본다. 제3부에선 민주화 시대의 개막과 진전을 알리는 논쟁들을 살펴본다. 광주항쟁의 진실 공방에서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을 둘러싼 논쟁까지를 분석한다. 제4부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논쟁들을 주목한다. 제4부를 이루는 논쟁들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이루는 이슈들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격하게 공감하거나 정반대의 입장에서 논점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70여 년의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고난의 시기도 있었고 영광의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고난과 영광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늘 논쟁을 통해 쟁점을 분명히 하고, 더 나은 해법을 찾아왔다. 이제 우리 사회 앞에는 새로운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 도전들은 우리 국민을 ‘논쟁의 광장’으로 초대할 것이다. 논쟁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가 ‘걸어온 길’을 성찰한 이 책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모색하는 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이며, 따라서 모든 역사적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적 논쟁 속에서 살고 있는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가 남긴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그 역사에서 행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동시에 이룩한 성취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개인이든 사회든 역사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다. 역사적인 논쟁만큼 건강한 사회를 위한 자양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진행된 논쟁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룬 광복 이후 40개의 논쟁들은 우리 사회가 지나온 길을 성찰하게 하고,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게 하며, 나아갈 방향을 숙고하게 한다.
제1부는 1945년 광복에서부터 1960년 4·19혁명까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 우리가 어떤 국가와 사회를 만들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매우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를 겪어야 했는지 살펴본다. 남북 분단, 정부 수립, 한국전쟁은 우리 현대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온 역사적 사건들이며, 이를 둘러싼 논쟁들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제2부는 1961년 5·16군사정변과 유신 체제의 시기 동안 한국사회를 뒤흔든 논쟁들을 다루고 있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지금도 뜨거운 쟁점을 이루고 있는 이슈다. 이 점을 주목해 이 책은 박정희 정부가 정치·경제·교육 정책을 어떻게 추진했고 이 정책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다. 제2부를 읽고 나면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가 어째서 현재까지 길고 짙게 드리워져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980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사회를 조명해보는 제3부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운 나날들이었던 민주화시대를 다루고 있다. 광주항쟁, 사회구성체론, 민주화 이행, 북방정책, 신세대,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그리고 분단체제론 등은 민주화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건과 개념 그리고 담론을 둘러싸고 진행된 논쟁들을 살펴보는 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민주화시대를 이해하는 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제4부는 1997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사회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논쟁들을 다루고 있다. 햇볕정책에서 수저계급론까지,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논쟁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게 될 것이다. 특히 제4부는 지금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 자신이 논쟁의 당사자들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한 성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금기시되었던 논쟁들과 정치적인 이유로 변질되어버린 논쟁들:
‘남남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세 가지 흥미로운 논쟁들을 다루고 있다. 첫째는 한때 논쟁거리로 삼는 일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논쟁이고, 둘째는 과거에 종결된 듯 보였던 논쟁이며, 셋째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는 알고도 외면했던 논쟁이다.
먼저 주목할 것은 논쟁으로 삼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던 논쟁이다. 이에 관해선 더글라스 맥아더에 관한 ‘8장 맥아더 재평가 논쟁’이 눈에 띈다. 이 책은 미국 합동참모본부사가 발간한 《한국전쟁》 등의 자료를 통해 ‘중공군의 참전을 부른 섣부른 북진 전략에 맥아더의 책임은 없는가’, ‘전세 판단 착오는 어떻게 향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대외 군사·외교 전략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었는가’와 같은 이슈들을 살펴본다.
과거에 종결된 듯 보였던 논쟁으로는 ‘18장 유신 체제 논쟁’이 있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와 유신 체제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와 시장 왜곡은 어떠한 경로를 거쳐 1980년대 초반 한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는가’, ‘경제개발계획의 독재정권(1962~1986)보다 민주화 이후(1987~) 정부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쟁점들을 소개한다.
한편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결국에는 논쟁 자체가 변질된 역사적 논쟁도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5장 친일파 논쟁’, ‘14장 한일 국교정상화 청구권 자금 논쟁’, ‘37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쟁’을 꼽을 수 있다. 친일파 논쟁의 한 축을 제공했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을 둘러싸고 친일 세력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 사회의 주류가 비주류에 의한 청산 작업을 다시금 청산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논쟁들은 읽는 이의 머리를 뜨겁게 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관해서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엇박자를 낸 이유를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미국 정부의 세계 군사 전략을 조명해본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국정운영과 정부정책에 관한 역사적 논쟁들: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과 복지정책의 문제점과 우리가 나아갈 길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국정운영과 정책에 관한 역사적 논쟁들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저자들은 이와 관련된 여러 논쟁을 제시한 후, 우리 사회가 양분되고 극단적으로 대치함으로써 사회발전이 지체되고 대외적으로 고립되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6장 북방정책 논쟁’과 ‘33장 햇볕정책 논쟁’에서는 국가의 중대한 정책 중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했다가 좌초되어버린 국정운영과 그 쟁점들을 다뤄본다. 특히 ‘26장 북방정책’에서는 북한과 NLL 합의를 이뤘던 남북 선언문이 어째서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지 못하고 결국 국회 비준에 실패했는지를 살펴본다. ‘33장 햇볕정책 논쟁’에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 대북사업과 정책의 투명성 실종 등에 얽힌 한국사회 내부의 갈등과 그에 따른 여러 이슈들을 검토한다.
저자들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과 사회적 논쟁을 재조명한 후, 정책이 정권에 따라 완전히 바뀌고 심지어 한 정부 아래에서도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대북정책은 지지도와 그 평가가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에서 양극단을 오가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과거 대북정책의 공과 과를 명확히 짚어보고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 정부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추진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첨예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복지정책과 균형발전이다. ‘32장 생산적 복지 논쟁’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서유럽의 ‘제3의 길’ 노선을 수용한 과정을 분석한 다음, 외환위기 이후 한국 복지정책을 두고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이다’라는 주장과 ‘국가책임주의를 강화한 정책이다’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 이유를 살펴본다. 또한 유럽 국가들의 복지모델과 성패 여부를 돌아보고, 복지국가로서 한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덧붙여 ‘36장 지역균형발전 논쟁’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불균형발전을 주목하여 정권적 과제를 넘어선 국가적 과제로서의 균형발전을 강조한다.
현대 한국을 관통하는 ‘세대론’과 ‘문화’의 논쟁들:
청년문화에 대한 엇갈린 해석과 세대갈등의 해결책
한편 이 책은 역사의 물꼬를 바꿨던 사건들뿐 아니라 그 역사의 주체를 이뤘던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들도 담고 있다. 광복 이후 진행된 ‘세대 논쟁’은 그 기원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10장 전후 문학 세대 논쟁’은 문학계 신·구세대의 대표격인 김동리와 이어령이 벌였던 세대논쟁과 그 의의를 다룬다. 또한 ‘19장 청년문화 논쟁’은 1970년대 청년문화가 ‘탈권위 대항문화였다’는 주장과 ‘퇴폐문화에 불과했다’는 상반된 주장을 살펴본다. ‘27장 신세대 논쟁’은 개인주의·탈권위주의·감성주의·소비주의라는 관점에서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신세대가 우리 현대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였다고 파악한다.
이 책은 역사적 사건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과 답을 찾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역사 발전이 도전과 응전으로 이뤄지듯, 문화적 성숙은 기성세대의 관성과 이에 맞서는 젊은 세대의 도전을 통해 성취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나아가 바람직한 세대 논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포위되고 속박된 젊음을 기성세대가 먼저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 본문 읽기
논쟁이 중요한 것은 논쟁을 통해 쟁점을 분명히 하고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0여 년 동안 진행된 논쟁들이 광복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듯, 생산적인 논쟁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를 향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두고 앞으로 논쟁들이 더욱 활기차게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_‘프롤로그’ 중에서
전쟁범죄자들이 제대로 처리됐던 지역과 그러지 못했던 지역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범들이 처리된 지역에는 극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극우가 없으면 극좌도 공존이 불가능하다. 좌와 우, 중도만이 있다. 그러나 전범이 부활한 지역에서는 극우와 극좌가 적대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진정한 좌우나 중도가 힘을 얻기 어려운 구도다.
_‘1장 분단 원인 논쟁’ 중에서
문학 논쟁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의 건설이라는 정치 과정과 긴밀히 결합될 수밖에 없었다. 광복 직후 문학 논쟁에 대한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남긴 국문학자 김윤식이 날카롭게 지적했듯 해방 공간은 ‘역사를 선택할 수 있는 참으로 희귀한 공간’이었고, 이러한 시대적 특징은 문학의 이념적 대결을 격화시킨 셈이었다.
_‘3장 좌우파 문학 논쟁’ 중에서
친일 세력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 사회의 주류는 비주류에 의한 청산작업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과거사 문제가 정치적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남남갈등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됐다.
_‘5장 친일파 논쟁’ 중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 어느 나라건 역사 해석에서 하나의 시각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의 복원과 평가 또한 고정돼 있지 않다. 요컨대, 역사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기억의 복원으로 재구성되며 재해석된다.
_‘6장 해방전후사 해석 논쟁’ 중에서
박명림의 연구는 전쟁의 구조적 기원과 행위적 원인을 포괄적이며 미세하게 추적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마땅하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2〉는 한국전쟁의 국제 논쟁에서 우리 학계의 자존심을 세워준 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_‘9장 한국전쟁 해석 논쟁’ 중에서
4·19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100년 후의 역사학자들이 지금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어쩌면 5·18과 6·10,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광우병 파동, 세월호 사건을 거쳐 지금도 4·19 혁명이 계속되고 있다고 서술할지도 모른다.
_‘11장 4·19 평가 논쟁’ 중에서
그러나 혁명적 목표를 제시했다고 해서 쿠데타가 ‘혁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도 세력이 추구했던 이념, 주도 세력의 구성 그리고 쿠데타 이후에 실시된 정책과 결과가 ‘혁명’적 성격을 갖고 있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_‘12장 5·16 성격 논쟁’ 중에서
조약 해석에 대한 한·일 정부 사이의 논쟁에서 기가 막힌 묘수가 나왔다. 양국 정부가 각각 자신의 의견대로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 그래서 일본은 배상금 대신 독립축하금을 주었고, 한국은 ‘청구권 자금’이라고 명명하면서 배상금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 그러나 눈앞의 긴급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작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논쟁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50년이 지난 최근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도달해 있고 후유증도 계속되고 있다.
_‘14장 한일 국교정상화 청구권 자금 논쟁’ 중에서
베트남 파병에 대한 논의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베트남 파병을 결정했던 원래의 목적, 즉 한·미동맹과 안보를 위한 목적은 달성됐는가? (…) 전쟁특수와 유신 선포, 고엽제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쟁특수가 그렇게 컸다면 왜 196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부실기업 위기가 발생했을까? (…) 한국에서는 참전군인과 고엽제 환자들에 대한 조사와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_‘15장 베트남 파병 논쟁’ 중에서
그러나 중등교육 평준화가 실시된 시점이 왜 1960년대 말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1968년은 한반도 안보위기의 정점에 있었던 시기였고, 1969년은 3선개헌이 있었던 해였다. 평준화 정책은 1968년 11월에 발표된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시행됐다. 모든 사람들이 평준화된 교육을 통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헌신할 국민이 돼야 했기 때문이었는가?
_‘16장 교육 평준화 논쟁’ 중에서
경제 성장과 개발독재라는 차원에서 유신 체제가 필요했는가의 문제였다. 필요했다는 주장은 1960년대의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구조 개편이 필요한 상황과 주한미군 감축과 데탕트로 인한 위협이라는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 반면 필요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유신은 개인적 장기집권욕에 의해 만들어진 체제였으며, 만약 민주주의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이뤄졌다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대부분의 역사학자들과 진보적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
_‘18장 유신 체제 논쟁’ 중에서
그렇다고 모든 논란이 해명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광주에서 발포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 최근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에 의해 광주항쟁의 진실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있었다. (…) 이러한 주장들이 근거가 없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이슈가 됐던 점을 감안한다면, 광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_‘22장 광주항쟁 논쟁’ 중에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특정 지역의 정서였다. 운동권의 계파 내에서도 후보와 지역에 따라 헤쳐 모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 단일화를 통한 이벤트를 통해 선거에서 이기려 하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 것이 1987년 대통령선거가 주는 진정한 교훈이 아닐까.
_‘25장 대선 후보 단일 논쟁’ 중에서
박 총장 발언 파동이 갖는 의미는 주사파 존재 여부가 아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의 발언이 여론을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었다. 이후 진보 인사들을 북한 추종세력으로 모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했다.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보수 언론들은 박 총장 방식의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한국 사회에서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증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친북 좌파’, ‘좌빨(좌익 빨갱이)’, ‘종북(북한 추종)’이란 용어가 남발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상식’이 사라졌다.
_‘29장 주사파 발언 논쟁’ 중에서
2015년 시점에서 돌아보면 지난 민주화시대에 우리 사회에선 1987년의 ‘민주화의 시간’과 1997년의 ‘세계화의 시간’이라는 두 개의 시간이 동시에 흘러왔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화라는 새로운 변화를 갈망해 왔지만 그 변화는 어느덧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나 세계화라는 타율적 변화를 강제해 왔다. 민주화의 시간을 특징지어 온 사회개혁의 구심력이 세계화의 시간을 특징지어 온 구조적 강제라는 원심력에 의해 서서히 압도된 것이 1997년 이후 우리 사회의 풍경이었다.
_‘31장 87년 체제냐 97년 체제냐 논쟁’ 중에서
현재 상황에서 더 큰 문제는 대북정책이 정권에 따라 조령모개(朝令暮改)한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는 한 정부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바뀐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기에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 또한 대북정책에는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햇볕정책이 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_‘33장 햇볕정책 논쟁’ 중에서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다시 한번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을 통해 주한미군의 감축 및 신속기동군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 그리고 이는 2000년대 중반 한국군에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요구보다 빠른 2009년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하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_‘37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쟁’ 중에서
무상급식 논쟁에 담긴 중요한 정책적 함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할 복지국가 구축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지에 있었다. 어떤 복지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선 국가 발전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강제와 경로의존성을 고려한 상태에서 정부의 전략적 선택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에서 재정정책과 복지정책 간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복지정책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_‘38장 무상급식 논쟁’ 중에서
‘안철수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지만 ‘2011~2012년 안철수 현상’은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은 안철수 개인의 취약했던 정치적 역량과 기성 정치사회가 갖는 구심력이 안철수 현상의 정치적 세력화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주목할 것은 안철수 현상이 쇠퇴했다고 해서 국가와 시장을 개혁하려는 시민사회의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_‘39장 안철수 현상 논쟁’ 중에서
세대사회학의 관점에서 기성세대의 ‘노력’과 청년세대의 ‘노오력’ 간 인식의 거리는 한국 사회의 세대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계급이동의 사다리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점증하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고 선진국에 도달하기 어렵다.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은 이미 제시돼 왔다.
_‘40장 수저계급론 논쟁’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뭉크가 한국 사례를 다룬다는 점이다. 뭉크는 한국이 촛불집회를 통해 권위주의로의 후퇴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평가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지도자를 거부하고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사수하려는 게 촛불집회의 원동력이었다.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아시아의 민주화를 선도했던 한국은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_‘에필로그: 촛불시민혁명과 한국 민주주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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