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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에 고함
KBS역사스페셜 제작팀, 김종석, 최지원, 고은희, 정윤미 | 시루 | 2012-04-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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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에 고함
KBS역사스페셜 제작팀, 김종석, 최지원, 고은희, 정윤미 | 시루 | 2012-04-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국가 간의 전쟁 역시 우리가 이웃과 다투는 것과 같은 이유로 시작된다.” _프랑스 사상가 몽테뉴
21세기 정한론, 일본의 속셈을 예측하다! 일본의 도발은 언제쯤 끝이 날까?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문제로 떠들썩하더니 급기야 2011년 8월, 일본 의원 3명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입국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우리 정부에서는 입국 거부라는 초유의 강경책을 썼고, 3명의 의원은 김포공항에 도착한 지 9시간 만에 돌아갔다. 하지만 일본은 곧이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의 방위백서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벌써 7년 째 독도 영유권을 반복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 국제적으로 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진과 방사능 노출, 장기 집권당의 공백 등 내부적 위기를 맞아 탈출구로써, 19세기 정한론을 주장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한반도로 눈을 돌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대결 구도의 한일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일본에 고(告)함》은 가장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과의 2000년 역사를 ‘인연, 적대, 공존, 변화, 대결’이라는 5키워드로 집약해 다이카개신부터 국권 침탈까지 끊을 수 없는 한일 관계를 통해 현재와 다가올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제시해 준다. KBS 역사스페셜 장영주 책임 프로듀서는 이런 작업이 필요한 이유를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 반복되었던 일들의 패턴을 기억하고 있으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더 쉽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는 일본을 견제하고, 제대로 대응하려면 잘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반복되는 역사를 정리하고, 심층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과 일본, 소통의 역사 속에 답이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매우 복잡 미묘한 관계였다. 2000년 동안 전파와 수용, 대립과 갈등, 전쟁과 평화가 수없이 반복해왔다. 그리고 그 주기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원컨대 일본과의 화친을 끊지 마소서.”_신숙주 신숙주가 유언했던 것처럼 일본을 다스리는 방법은 그들과 계속 긴밀하게 교류하는 것이다. 무서운 적(敵)일수록 가까이 두어야 한다는 격언처럼 일본이야말로 잘 살피고, 견제해야 할 대상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내부의 정치, 경제적인 위기가 고조될수록 그 시선을 외부로 돌려왔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 초고속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일본은 현재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정치 또한 평균 임기 1년 이상 채운 총리가 없을 정도로 미래를 책임질 정치적인 리더가 공백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내놓은 것이 다름 아닌 21세기 정한론인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도발하는 진짜 속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한일 관계 2000년 역사적 경험에 담겨 있다.《일본에 고(告)함》은 고대 일본 문화의 근간이 된 야요이 문화에 영향을 준 도래인과의 인연부터 시작해 국권 침탈까지의 2000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인연에 대한 것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인이 고대 일본 정치의 일인자가 되고, 다이카개신이라는 사건을 추적함으로써 한반도와 왜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설명해준다. 2장에서는 원나라에서 일본 정벌을 시도하면서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략과 그 후유증에 대해 다룬다. 무쿠리고쿠리로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그들에 대한 공포는 컸으며 이후 일본은 고려, 즉 한반도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된다. 3장에서는 공존으로 왜구의 약탈과 침략을 근절시키기 위해 제포에 왜관을 설치하고 해적이 아닌 교역자로 변모하게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조선과 일본은 평화롭게 지냈다. 하지만 곧 평화는 다시 전쟁으로 바뀐다. 4장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이후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과 철저히 쇄국정책을 고수했던 조선을 조명했다. 마지막 5장에서는 대결로써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최초 번역 의학서인 《해체신서(解體新書)》와 조선 실학자 홍대용의 혼천의를 비교함으로써 문호 개방 여부가 이후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각 부마다 ‘역사돋보기’를 추가해 일본의 메이지유신만큼 중요한 개혁인 다이카개신(大化改新), 일본이 백제를 돕기 위해 원정군을 보냈던 백강 전쟁, 가미카제(神風)의 어원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한일사(韓日史)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나라, 일본 2011년 3월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일본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는 물론 물심양면 돕기 위해 애썼다. 이는 이웃의 도리로, 휴머니즘의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화해 제스처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 여전히 한일 강제 병합 원천 무효 선언, 강제 징병 및 징용, 종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이 외면하고 있지만 조속히 해결되어야 하는 핵심적인 사항들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소통하지 않고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가해자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만들어왔던 일본의 경우 지난 한 세기 동안 무력으로 얻은 승리가 영광이었을지 모르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역사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로 인해 여전히 일본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나라이다.일본과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이기만 했을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일사는 평화와 대결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신숙주의 유언대로 한반도의 해안선에 들끓던 왜구들을 근절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은 주효했다. 제포에 왜관을 설치하고 왜구들이 해적이 아닌 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이었다. 이때 제포, 염포, 부산포까지 삼포를 개항하고 자유롭게 교역했다. 그 결과 조선에는 저팬타운이 형성되고 일본인과 형제처럼 지낼 수 있었다. 일본과 소통하고, 서로 공생의 방법을 모색했기에 가능했던 평화였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적절히 대응하고,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에 긴밀한 유대와 협력을 꾸준히 이끌어내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다. 《일본에 고(告)함》에서는 조선이 척박하고 미개한 나라였던 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신숙주의 유언이 왜 의미가 있는지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미움과 멸시, 애증으로 얽혀 있지만 결코 교류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라는 것 역시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문화를 주고받던 이웃에서 국권을 강탈한 원수가 되기까지 소통과 대결의 역사를 밝힘으로써 우리에게는 ‘무조건 물러선다고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과 ‘독도 영유권 주장’ 같이 정신병처럼 주기적으로 발작 증세를 보이는 일본에는 소통의 역사를 통해서 두 나라가 화합을 이룰 수 있고, 발전적인 관계를 맺을 때 문화적,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질곡 많았던 한일 관계를 다시 되돌아보게 해주는 책이다.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 제작팀 격동의 역사 속에서 한일 관계의 메커니즘과 해법을 찾다! 증오하고 멸시하지만 결코 교류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나라 일본과의 관계는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흘러왔을까? 국권 침탈 100년을 맞아 KBS에서는 2010년 8월 한국과 일본의 2000년 관계사를 ‘인연(因緣)’, ‘적대(敵對)’, ‘공존(共存)’, ‘변화(變化)’, ‘대결(對決)’이란 5가지 키워드로 집약한 기념비적인 역사다큐멘터리 5부작을 제작했다. 기존 역사 관련 프로그램들이 강제 병합이나 적대 관계에만 단편적으로 주목했던 것과 달리 이 프로그램은 백제의 문물 전래, 여몽연합군, 임진왜란 등 전파와 서용, 대립과 갈등의 2000년 한일사(韓日史)를 기행 형식으로 쉽게 풀어냈다. 그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던 한일 관계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역사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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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읽기 쉬운 고려왕 이야기
한국인물사연구원 | 타오름 | 2012-12-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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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읽기 쉬운 고려왕 이야기
한국인물사연구원 | 타오름 | 2012-12-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500여 년 동안 34명의 왕들이 지배했던 고려 왕실의 다채로운 모습을 만나다
『읽기 쉬운 고려왕 이야기』는 기존에 고대의 단순한 연대 나열식의 역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역사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선 본문은 고려의 태조 왕건에서부터 마지막 왕인 공양왕까지 34대 왕의 이야기를 따로 나눠 소개하면서 각 왕의 마지막 부분에는 해당 왕의 후비와 종실들의 일화와 가계도를 상세히 첨부하였다. 단순한 정보 전달의 효과뿐만 아니라 고려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왕실의 이야기를 흥미로우면서도 심도 있게 다룬 재미있는 역사 해설서로서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은 우리의 고려사에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새로운 고려 왕조의 역사! 이 책은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남겨진 고려 역사를 그 생성과 발전 과정, 소멸 과정에 대해 다양하고 풍부한 문헌 자료들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임금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숱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쓰며 500년 역사를 이어온 고려의 흥망. 이렇듯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문장으로 치밀하게 짜여 있어 한번 잡으면 쉬 놓지 못할 책이 『읽기 쉬운 고려왕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려 역사에 흥미가 있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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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임진왜란 산책
남천우 | 미다스북스 | 2011-03-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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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임진왜란 산책
남천우 | 미다스북스 | 2011-03-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이순신의 죽음과 거북선의 진실을 파헤치다!
명량해전의 날, 임하도 서쪽 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왜 이순신은 배 위에서 ‘전사’를 택해야만 했는가? 명장 이순신과 거북선의 진실을 누가 왜곡시키는가? 우리 민족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순신! 특히 21세기에 들어오면서 TV와 영화, 책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이순신의 거둔 불후의 전투 승과와 그의 영웅적 성품이 더욱 널리 알려져서 한국인이라면 초등학생에서부터 누구나 명장 이순신의 인간적 예지와 참된 애국심을 높이 기리고 예찬한다. 이 책 <임진왜란 산책>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 기록에 중대한 한 가지 질문을 던지는 데서 출발한다. 과연 <이분李芬의 행록行錄>에 적힌 것처럼 이순신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배 위에서 전사했는가? 이 역사적 기록물은 과연 사실인가? 이에 대해 저자인 전서울대교수 남천우 선생은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라는 놀라운 주장을 펼치면서 <난중일기>를 비롯하여 이순신과 관련된 모든 역사적 기록물들에서 그 증거를 제시한다. 또 ‘명량해전’으로 알려진 이순신 최고의 해전의 장소 역시 명량이 아니라 ‘임하도’였으며 지금 현재 복원되고 있는 거북선 역시 잘못된 엉터리임을 밝히고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1971년 ‘역사학보’에 <거북선구조에 대한 재검토> 논문 발표를 시작으로 이순신에 관련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반평생을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온 저자의 주장이 학계 내지 행정기관에서 어느 정도로 수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기록된 역사가 반드시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점에서 이 책은 이미 굳어진 역사적 진실에 대해 가능한 모든 질문을 던지고 그 사실 관계를 추론하면서 새로운 통찰로 역사를 재수용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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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
조광권 | 여성신문사 | 2012-06-0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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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
조광권 | 여성신문사 | 2012-06-0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과거와 현재의 청계천을 통해 미래의 청계천을 조망해보고자 한 책이다. 2004년 6월에 발표한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 <조선왕조 준천과정에 나타난 위민담론 분석>의 내용을 재구성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청계천 복원 사업의 과정을 함께 담아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왕조의 각종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의 시대별 준천 과정을 살펴본다. 사료를 통해 드러난 준천의 논의와 그 실천 과정에서 지배 세력이 민을 파악하는 정치, 행정 방식과 준천 사업의 정당화를 위해 동원했던 위민 담론의 시대별 변화를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현재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처음 태동되었던 순간부터 청계천 살리기의 과정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각 과정에 대한 신문 기사를 함께 실어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뿐만 아니라 당시의 여론 방향도 함께 살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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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수의 한국사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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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풍수의 한국사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풍수지리학으로 풀어보는 한국사
산, 강 그리고 땅의 형세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정한다는 게 풍수지리학의 설명이다. 풍수지리학은 예로부터 한국사에 중요한 역할을 끼쳐 왔다. 도읍을 정할 때 어김없이 동원되는 논리가 풍수지리학이었다. 따라서 풍수지리학을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한다면 한국사의 제대로 된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풍수의 한국사』는 풍수에 얽힌 한국사의 비화들을 소개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저자는 풍수지리학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풍수지리학이 단순한 미신이 아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선현들의 지혜임을 밝힌다. 제2부에서는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지게 된 배경과 수도 서울과 관련한 풍수에 관한 이야기가 다뤄진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에서 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며 장소에 얽힌 비화를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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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1
황영희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8-1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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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1
황영희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8-1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과학적 증거로 찾아낸 한국사 통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THE HAN HISTORY DISCOVERED FROM THE SCIENTIFIC EVIDENCES)는 분자생물학·고고학·언어학·천문학 등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재해석한 한국사 통사다. 과학적 증거는 왜곡이 어렵다는 특성상,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가치가 아니라,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과학적 증거가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삼국시대의 일식기록은 중국의 일식기록과 대부분 일치한다. 오기가 분명한, 일어나지 않은 일식까지 같은 날 관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식관측지가 중국대륙인 한국 역대 왕조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한 쪽이 베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은 누구나 관측 가능한 일식기록 말고도 전문가만이 관측할 수 있는 오행성결집, 태백주현 등도 독자기록으로 남겼고, 게다가 중국의 일식기록이 비정상적이라는, 절대 실측이 아니라는 증거는 수두룩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한국은 중국대륙에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중국대륙에도 있었다.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의 진실성은 한단고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 일식기록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조선시대의 일식기록 역시 중국대륙에서 관측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765년 2월 10일 일식이 문헌에 기원전 765년 4월로 기록된 것은 이 당시의 연초가 오늘날의 10월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왜곡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랑케도 실증사학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랑케의 실증사학은 엄밀히 말해 ‘실증’이 아니며, 일본의 예에서 보듯 역사왜곡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역사왜곡을 끝낸 일본은 수십만 권의 한국 역사책을 분서한 뒤 “사실(史實)의 고증자료 없이는 한 줄의 역사도 기술할 수 없다”며 독일인 사학자까지 동원하여 실증사학 운운했다. 랑케는 먼저 역사왜곡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진정한 실증사학이라면, 과학적 방법만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역사기록을 검증해야 한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의 가치는 과학적 증거를 분석한 데 있다. 과학적 증거는 여타 문헌기록과 등가의 가치를 가지거나 하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과학적 증거에 위배되는 문헌기록은 거짓이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제목에서 보듯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문헌해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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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2
황영희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8-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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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2
황영희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8-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과학적 증거로 찾아낸 한국사 통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THE HAN HISTORY DISCOVERED FROM THE SCIENTIFIC EVIDENCES)는 분자생물학·고고학·언어학·천문학 등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재해석한 한국사 통사다. 과학적 증거는 왜곡이 어렵다는 특성상,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가치가 아니라,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과학적 증거가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삼국시대의 일식기록은 중국의 일식기록과 대부분 일치한다. 오기가 분명한, 일어나지 않은 일식까지 같은 날 관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식관측지가 중국대륙인 한국 역대 왕조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한 쪽이 베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은 누구나 관측 가능한 일식기록 말고도 전문가만이 관측할 수 있는 오행성결집, 태백주현 등도 독자기록으로 남겼고, 게다가 중국의 일식기록이 비정상적이라는, 절대 실측이 아니라는 증거는 수두룩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한국은 중국대륙에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중국대륙에도 있었다.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의 진실성은 한단고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 일식기록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조선시대의 일식기록 역시 중국대륙에서 관측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765년 2월 10일 일식이 문헌에 기원전 765년 4월로 기록된 것은 이 당시의 연초가 오늘날의 10월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왜곡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랑케도 실증사학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랑케의 실증사학은 엄밀히 말해 ‘실증’이 아니며, 일본의 예에서 보듯 역사왜곡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역사왜곡을 끝낸 일본은 수십만 권의 한국 역사책을 분서한 뒤 “사실(史實)의 고증자료 없이는 한 줄의 역사도 기술할 수 없다”며 독일인 사학자까지 동원하여 실증사학 운운했다. 랑케는 먼저 역사왜곡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진정한 실증사학이라면, 과학적 방법만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역사기록을 검증해야 한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의 가치는 과학적 증거를 분석한 데 있다. 과학적 증거는 여타 문헌기록과 등가의 가치를 가지거나 하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과학적 증거에 위배되는 문헌기록은 거짓이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제목에서 보듯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문헌해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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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3 (완결)
황영희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8-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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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3 (완결)
황영희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8-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과학적 증거로 찾아낸 한국사 통사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THE HAN HISTORY DISCOVERED FROM THE SCIENTIFIC EVIDENCES)는 분자생물학·고고학·언어학·천문학 등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재해석한 한국사 통사다. 과학적 증거는 왜곡이 어렵다는 특성상,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가치가 아니라,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과학적 증거가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삼국시대의 일식기록은 중국의 일식기록과 대부분 일치한다. 오기가 분명한, 일어나지 않은 일식까지 같은 날 관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식관측지가 중국대륙인 한국 역대 왕조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한 쪽이 베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은 누구나 관측 가능한 일식기록 말고도 전문가만이 관측할 수 있는 오행성결집, 태백주현 등도 독자기록으로 남겼고, 게다가 중국의 일식기록이 비정상적이라는, 절대 실측이 아니라는 증거는 수두룩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한국은 중국대륙에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중국대륙에도 있었다.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의 진실성은 한단고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 일식기록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조선시대의 일식기록 역시 중국대륙에서 관측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765년 2월 10일 일식이 문헌에 기원전 765년 4월로 기록된 것은 이 당시의 연초가 오늘날의 10월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왜곡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랑케도 실증사학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랑케의 실증사학은 엄밀히 말해 ‘실증’이 아니며, 일본의 예에서 보듯 역사왜곡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역사왜곡을 끝낸 일본은 수십만 권의 한국 역사책을 분서한 뒤 “사실(史實)의 고증자료 없이는 한 줄의 역사도 기술할 수 없다”며 독일인 사학자까지 동원하여 실증사학 운운했다. 랑케는 먼저 역사왜곡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진정한 실증사학이라면, 과학적 방법만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역사기록을 검증해야 한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의 가치는 과학적 증거를 분석한 데 있다. 과학적 증거는 여타 문헌기록과 등가의 가치를 가지거나 하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과학적 증거에 위배되는 문헌기록은 거짓이다. 과학기록으로 찾은 한국사. 제목에서 보듯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문헌해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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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뜻밖의 음식사
김경훈 | 오늘의책 | 2011-08-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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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뜻밖의 음식사
김경훈 | 오늘의책 | 2011-08-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흔한 재료지만 흔치 않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뜻밖의 음식사>.
우리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재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낸 책이다.수천 년 동안 우리가 먹어온 음식소재들을 블루, 레드, 옐로우, 화이트&블랙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고전 및 역사, 민속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날마다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는 친근한 재료들이 품고 있는 풍부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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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왕조야록
손영목 | 도서출판오늘 | 2010-08-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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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왕조야록
손영목 | 도서출판오늘 | 2010-08-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 책은 중견 작가 손영목 씨가 편저한 삼국왕조야록으로 삼국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야사 부분을 간추려 정리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조선왕조야록]을 비롯하여 [고려왕조야록]과 함께 도서출판 오늘이 97년부터 3년 여에 걸쳐 기획한 것으로 우리 나라 역사 속의 중요한 야사를 정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확한 것과 완벽한 것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삶에 우리 역사를 한 발 비켜서서 바라보는 여유와 그 속에 있는 진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 속에 오히려 우리 민족의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편저자 손영목 씨는 머리말에서, '역사에서 정사가 뼈대라면 야사는 살과 같다. 정사가 정권 담당자 입장에서 자기본위적으로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면, 야사는 그 정사의 행간에서 제외되거나 누락된 이야기를 객관화한, 훨씬 인간의 냄새와 감칠맛이 풍부한 기록이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해석은 정사를 기본으로 하되 그와 관련된 야사를 함께 비교 분석하는 노력에서 가능해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한 재미있는 야담 차원을 넘어, 역사의 중요 단락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면서 흥미진진한 사건이나 일화를 시대순으로 배열함으로써 역사의 딱딱한 문을 열어젖히고 독자들을 끌어들여 역사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한 단계 높여 주는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은 1. 건국의 장엄한 서사시, 2. 대륙을 향한 웅지, 3. 서라벌의 혼, 4. 삼국시대의 사랑과 낭만 5. 한을 극복하는 지혜 등 5장으로 나눠져 있으며 '하늘의 아들 동명왕', '소서노 부인과 온조 형제','고구려 남아의 기상 해명태자', '사연도 기구한 미천왕', '연개소문의 청소년 시절', '복수의 화신 명원부인', '박제상의 숭고한 충절', '최치원과 당나라 여인', '도화와 진지왕' 등 24가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청소년에게는 우리 역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기성세대에게는 자칫 잊어버릴 수 있는 우리 민족의 혼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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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선덕여왕을 클릭하면 큰 지혜가 보인다
박순정 | 도서출판오늘 | 2010-08-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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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선덕여왕을 클릭하면 큰 지혜가 보인다
박순정 | 도서출판오늘 | 2010-08-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선덕여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신라 제27대)이며 16년 재위 기간 동안에 많은 치적을 쌓은 왕으로, 이 책은 선덕여왕대에 있었던 문화, 예술, 업적 등에 대한 연구서이며 특히 선덕여왕의 심성과 슬기, 지혜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제1장에는 최초의 여왕 선덕에 대해, 제2장에는 찬란한 문화유산들, 제3장에는 외침을 몰아내다, 제4장에는 뛰어난 혜안의 인재등용, 제5장에는 일화 속의 선덕여왕에 대해 쓰고 있다. 선덕여왕은 모란에 대한 일화에서부터 그가 몇 살에 여왕이 되었는지, 또는 결혼을 과연 하지 않았는지 등등 많은 이야기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향기로운 황제의 사찰 ― 분황사', '신라의 우물, 겨레의 우물 ― 석정', '우주로 향하는 마음으로 돌을 쌓다 ― 첨성대', '공덕가의 고향 ― 영묘사터'. '선덕여왕을 모시는 사찰 ― 부인사', '용이 나온 궁궐을 사찰로 바꾸다 ― 황룡사터', '호국정신의 금자탑 ― 황룡사 9층 목탑' 등 저자가 발로 뛰어다니며 힘들여 써낸 글들을 비롯하여 '여왕을 짝사랑하다', '선덕여왕은 결혼을 했을까, 안 했을까', '선덕여왕은 50살에 여왕이 되었다?', '깨끗함과 더러움은 둘이 아니다', '신라의 가장 천진한 미소'. '탁월한 인재등용', '외교전문가 김춘추', '군사전문가 김유신', '제 아들을 죽여주십시오', '여왕에 대한 모독', '선덕여왕은 왜 도리천에 묻히고 싶어했을까' 등의 흥미 있는 글들이 쓰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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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유길만 | 경향미디어 | 2009-08-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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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유길만 | 경향미디어 | 2009-08-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박정희 시대에 ‘이순신 성웅화’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원래 성웅이라는 말은 없는데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성웅은 성인과 영웅을 합한 말로 공자, 석가, 예수와 같은 성인이면서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그 말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좀 지나친 단어라는 감도 든다.
박정희 시대는 한국의 번영을 이루게 한 시기로 그 시대의 정신적 유물은 오늘날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성웅 이순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히려 성웅의 옷을 벗겨 알몸이 되게 하여 인간 이순신을 보여주려 하는 사람은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경스런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박정희 시대 이순신 성웅화 작업은 대단한 것이었다. 십여 년에 걸친 현충사 성역화 사업, 난중일기 국보지정, 홍보책자 발간, 이순신 이야기 교과서 등재, 글짓기 대회, 각종 기념행사, 현충사 성역화와 국민 참배, 수학 여행 의무화, 탄신일 기념일 지정, 국가 제사 이순신 동상 건립, 영화제작과 단체 관람... 그러하였으니, 이순신이 이렇듯 국민영웅이 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순신 연구는 서가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이루어져서 더 이상 연구 할 것이 없게도 보인다. 이제 연구한다면 그의 인간적인 면을 밝히는 것이 남아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서에서 그를 서술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오해 없기 바란다. 이순신은 성웅, 신인(神人)은 아닐지라도 나라를 구한 위인이라는 데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이순신 연구가 영웅적인면에만 너무 치중되었기에 필자가 인간적인 면을 집중 연구하게 된 것일 뿐이다. 본서에서는 이순신은 성웅의 옷이 벗겨져 우리 같은 인간이 된다. 그 대신 한 국가의 영웅이 아니라 세계의 영웅이 된다. 독자들은 여기서 위인의 연구는 정치 이데올로기적으로, 관(官)중심적으로 해서는 안되며 개인차원에서 순수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인을 신격화 성웅화하여 왜곡시키는 사람들은 그 위인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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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제시기 참정권 문제와 조선인
마츠다 도시히코 | 국학자료원 | 2012-05-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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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제시기 참정권 문제와 조선인
마츠다 도시히코 | 국학자료원 | 2012-05-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일제시기 조선인에 대한 참정권문제 연구서. 조선반도와 일본 본토 지역에 대한 일본제국의 참정권제도의 실태와 그 구조 속에 사람들의 활동상 등을 중점적으로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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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가 연구
김인덕 | 국학자료원 | 2011-06-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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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가 연구
김인덕 | 국학자료원 | 2011-06-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김천해, 김두용, 정남국, 김용규, 김복진, 차금봉 등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가들의 생애를 통해 1920년대 재일조선인 운동, 식민지시대 재일조선인운동, 1920년대 후반 재일제주인의 민족해방운동 등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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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은 뇌물천하였다
정구선 | 팬덤북스 | 2012-03-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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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은 뇌물천하였다
정구선 | 팬덤북스 | 2012-03-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시대 관료들의 뇌물수수는 임금 세종도 막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뇌물 세태를 통해 현 정치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 왕조가 바뀌어도 뇌물 풍조는 계속되었다 - 대신들의 뇌물수수는 임금 세종도 막지 못했다 - 중앙 요직에 앉아서도 마음은 뇌물 밭에 …… - 노비마저도 상전에게서 배운 것은 뇌물수수였다 조선시대의 뇌물 세태를 통해 현 정치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현재 대한민국은 공직사회를 비롯하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뇌물수수 및 공여 등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근래에 발생한 부산 저축은행 사태, 대통령 친인측의 청탁비리,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스포츠계의 승부조작 등은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사실 이런 뇌물수수와 청탁비리 등으로 인한 정치사회의 부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만큼 부정한 청탁과 뇌물수수 및 뇌물제공이 공공연하게 만연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뇌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임금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 특히 조선 초기(태조~성종)에 만연했던 뇌물수수 사건들을 통해서,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에도 변함없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뇌물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지금도 청탁이나 뇌물 제공 등으로 부정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들이 이 책을 읽고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책의 집필 의도가 어느 정도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중앙 권력자부터 노비까지 뿌리박힌 뇌물수수 관행 우리가 집중적으로 조명할 조선 초기(태조~성종)에는 뇌물이 공공연했다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뇌물 풍조가 만연하였다. 위로는 중앙의 권력자들인 정승 · 판서 · 참판으로부터 아래로는 내시와 아전에 이르기까지 뇌물을 받아 챙겼다. 심지어는 노비조차도 뇌물을 받았다. 또한 지방에서는 관찰사나 수령들이 집중적으로 뇌물을 받았다. 관찰사는 수령들에게서 뇌물을 받았고, 수령들은 상인이나 백성들에게서 뇌물을 거둬들였다. 문관만이 아니라 무관들도 뇌물을 받았고, 중국에 파견되는 사신들이 상인들에게 뇌물을 요구했으며, 후궁이나 임금의 유모 중에도 이것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범죄자를 다스리는 포졸과 곤장을 치는 나장들까지도 뇌물을 받는 실정이었다. 중앙과 지방의 최하급관리라고 할 수 있는 아전들은 선상노비選上奴婢 선정, 공물 수납, 부역 부과 등과 관련하여 뇌물을 챙겼다. 그밖에 조선에 파견된 중국의 사신들이 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많다 보니 이와 관련된 무고나 탄핵이 난무하여 깨끗한 사람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이 뇌물을 바쳤을까? 당시에는 지방의 관찰사나 수령들이 집중적으로 뇌물을 바쳤다. 관찰사들은 중앙의 권세가들에게 줄을 대어 출셋길을 마련하기 위해 뇌물을 주었고, 수령들도 권세가들에게 뇌물을 주어 중앙으로 진출하려고 하였으며, 자신들의 고과성적을 매기는 관찰사들에게도 뇌물을 바쳤다. 그 밖에도 죄수 · 상인 등이 뇌물을 제공했고, 특히 외교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본인들과 귀순하려는 여진족이 조선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도 있었다. 사회 전반이 이렇다 보니 당시에는 특이하게도 뇌물을 전달하는 뇌물 브로커나 소송이나 고소를 업으로 삼는 자들까지도 있었다. 그들은 왜 뇌물을 주었을까? 우선 인사청탁을 위해서 이조 판서나 재상 등에게 뇌물을 바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요즈음처럼 군대 징집을 면제받으려고 하거나, 세금 감면, 형벌 감형, 재판 승소 등을 위해서 뇌물을 제공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뇌물의 액수에 따라 뇌물을 받은 본인은 최고 사형, 중노동을 시키는 도형徒刑, 곤장으로 볼기를 치던 장형杖刑, 작은 매로 볼기를 치는 태형笞刑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죄인의 얼굴이나 팔뚝에 살을 따고 홈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자자형刺字刑을 가할 수도 있었다. 뇌물을 주거나 받은 본인만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도 연좌제를 적용하여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고, 요직으로 나갈 수 없도록 막았다. 또한 뇌물을 받은 자와 함께 뇌물을 준 자도 아울러 처벌하게 되어 있었고, 뇌물을 주거나 받은 자를 천거한 사람도 벌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뇌물과 관련된 범죄에 대하여 엄중한 처벌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임금의 총애를 받는 대신이나 중신들의 경우 불문에 부쳐지거나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처벌이 미온적이다 보니 뇌물비리가 만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조선을 뒤흔든 뇌물 사건들 - 임금이 지시한 뇌물금지 및 처벌법을 우습게 안 대신들 세종 6년(1424) 7월에 임금은 대신이나 조정 관리 중에 뇌물을 받는 자가 많아 이를 엄하게 금지하는 법과 뇌물을 받은 자와 준 자를 처벌하는 법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영의정 유정현은 “나 같은 늙은 자가 음식물을 받는 것이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겠소.”라고 했으며, 대제학 변계량과 이조 판서 허조도 이에 동조하여 “먹는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하필 금할 것이 있겠소.(《세종실록》권25, 6년 7월 14일 정해)”라고 말했다. 이렇듯 당시에도 대신들은 뇌물에 대한 인식이 아주 흐릿했다. - 임금 세종의 조말생 뇌물 무마 사건 장원급제자로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받은 대제학 조말생. 하지만 그의 뇌물 연류는 조선 천하가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병조판서를 재직할 때에는 뇌물을 받고 소송 판결을 지연했고, 토지를 받고 관등을 올려준 부당한 인사 사건 등을 저질렀다. 충신들은 그를 죽어도 그의 죄가 남을 법하다며 상소를 올렸으나, 임금 세종은 그를 선왕 태종이 총애했던 인물로 공로가 있다하여 귀양을 보는 걸로 뇌물 사건을 무마했다. - 신숙주의 아들 신정, 뇌물 대가로 사약을 받은 사건 세조의 공신 훈구파의 신숙주. 그의 아들 신정은 탐욕스럽기가 끝이 없었다 한다. 신숙주는 입버릇처럼 “우리 집을 패망시킬 자는 반드시 이 자식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과거시험에서도 친구 양수사의 답안을 베껴 썼다. 하지만 세조는 그가 신숙주의 아들임을 알고 합격시켰다. 결국 그는 성종 13년(1482) 4월에 뇌물을 받고 관인을 위조하여 임금을 속인 죄로 사약을 마시고 비운을 맞게 된다. - 후궁의 부친이 뇌물을 받고 권력을 휘두르다 조선 초기 태종의 후궁인 숙공궁주의 아버지 김점은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직접 자기 침실 안으로 드나들게 하여 뇌물을 받았으며, 벼슬을 돈을 받고 팔기도 하고 옥사도 봐주기도 했다. 심지어 죄수들까지 뇌물로 석방시키는 일이 허다했다. 그가 평안도 관찰사를 관둘 때, 뇌물을 운반하기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관직에서 물러나도 받은 뇌물은 변함없이 남아 있는 법이다. 예나지금이나 공직자는 뇌물로 퇴임 후를 준비한다. - 뇌물로 군역도 면제받다 장수나 만호 등 무관들의 뇌물수수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태조 7년(1398) 2월 경기도 관찰사 박경의 보고에 의하면, 각 도의 여러 진에 배치된 무관인 만호와 천호 들이 자기가 관할하는 수군들 가운데 부유한 자에게는 뇌물을 받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따라서 정작 국경을 지킨 자들은 가난한 사람과 아이, 그리고 늙은이들뿐이었다고 한다. - 암행어사 출두도 미리 알려 피하게 했다 성종 20년(1489) 11월 사간원 헌납 윤긍 등이 암행어사를 보내어 수령들을 규찰할 것을 임금에게 청했다. 하지만 어사는 어느 지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앞질러 소식이 전파되어 고을 수령에게 알려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사가 데리고 다니는 서리(아전)들이 암행어사의 위엄을 빌어 권세를 빙자하여 고을 수령을 위협하여 뇌물을 낚아채는 대신, 암행어사의 출두 시점을 미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요즘 경찰의 업소 단속 세태와 비슷하지 않은가! - 뇌물이 통하지 않았던 사람들 30여 년 동안 정승으로 있으면서 한결같이 청렴하기만 했던 정창손. 그는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을 고변한 김질의 장인으로서 세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성종 18년(1487) 1월 향년 86세로 정창손이 세상을 떠나자, 임금은 청빈한 재상이니 부의 물품을 넉넉히 주도록 명했다. 그의 시호가 충정忠貞인데, 그가 도를 곱게 지키고 굽히지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성종 때 이조와 병조 판서 등을 역임한 이숭원도 뇌물이 통하지 않았던 청백리였다. 그는 예조 참판 이보의 아들로서 문관에 장원급제하여, 사제감 주부에 임명되고, 바로 사간원 정언으로 전직되었다. 그후 사헌부 지평, 이조 정랑, 장례원 판결사, 좌승지, 평안도 관찰사, 이조 판서 등을 거쳤지만, 집안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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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승부사들
서신혜 | 역사의아침 | 2012-06-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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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승부사들
서신혜 | 역사의아침 | 2012-06-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세상은 그들을 외면했으나
그들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섰다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런 시대에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열정과 집념으로 운명을 돌파해내고 당당히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선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승부사들이다. 그들은 한때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지라도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계속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인생 승리를 이루어냈다. 최근 역사의아침에서 출간된 『조선의 승부사들』에서는 과학기술자 장영실, 상례喪禮전문가 유희경, 역관 홍순언, 의원 허준, 비파연주가 송경운, 박물학자 황윤석, 천문학자 김영, 목민관 김홍도, 국수國手 정운창, 출판전문가 장혼 등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변함없는 노력과 시대를 읽는 안목,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 우직하고도 진실한 인간성으로 각 분야에서 조선 최고의 전문가가 된 인물들을 선별해 재조명했다. 이들 10인의 삶을 통해,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자기 삶을 가꾸어간다면 누구나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내고 오늘과 다른 내일을 일구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끊임없는 열정과 집념으로 세상의 벽을 뛰어넘은 조선 최고의 전문가 10인의 인생 승리 이야기! 1. 관비 출신 혼혈아로 정3품에 오른 과학기술자 장영실 인생 승리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장영실은 중국인 아버지와 관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물건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태종 때 궁궐의 공인工人이 되었고, 세종 때 천문기구인 혼천의를 만들어 노비에서 면천된 이후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 간의대, 규표 등 각종 과학기구를 만들어 그 공으로 승차(승진)를 거듭했다. 그 외에도 세종의 명으로 사사로운 온갖 일들까지 했는데 금은제련기술을 익히거나 연철을 채굴했고 엽전(우리나라 화폐의 시작)을 주조하기도 했다. 그를 시기하는 양반도 많았으나 그의 능력을 알아본 세종의 배려로 조선 초기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이름은 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부산장영실과학고등학교, IR52장영실상(산업기술상), 장영실전형(성균관대과학인재전형), (주)장영실, 장영실서점 등으로 빛나고 있다. 2. 천민으로 태어나 한성부판윤(현 서울시장)이 된 상례喪禮전문가 유희경 13세 때 아버지를 잃고 시묘살이를 하던 유희경은 당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은 남언경의 눈에 띄어 그에게서 예학을 배우게 되고 곧 상례에 정통한 전문가가 된다. 조선은 관혼상제, 특히 ‘상례’를 중시하여 상례전문가인 유희경은 어디서든 대우를 받았으며, 당시 예학파 학자들조차 상례에 관한 내용을 그에게 물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각종 공로를 세워 다섯 차례나 벼슬을 받았으며, 한결같이 겸손한 자세로 사람을 대해 천민 출신임에도 양반들에게 존경받았다. 3. 외교 난제를 해결하고 공신록에 오른 역관 홍순언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역관 홍순언은 중국 창가의 여인을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조선의 국가적 난제인 ‘종계변무’를 해결하고 그 공으로 2등공신이 된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노련한 통역과 외교술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일조하고,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도 유연하게 풀어나간다. 홍순언은 조선 최고의 중국통이자 뛰어난 인품과 일처리 능력으로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높이 평가받았다. 4. 서출로 태어나 어의가 된 의원 허준 서녀인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천민이 된 허준은 그의 실력을 알아본 유희춘의 천거로 처음 내의원에 출사한 뒤 여러 병을 고치고 이전의 의학서를 교정, 개편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높여나갔다. 왕자인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한 공으로 당상관에 제수된 뒤 양반들의 시기와 질투로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틈틈이 의학연구에 매진했으며 귀양지에서도 의서 편찬에 몰두해 15년 만에 우리나라를 넘어 동아시아를 평정할 만한 최고의 한의학서 『동의보감』(전25권)을 펴냈다. 5. 비파 하나로 만인에게 인정받은 비파연주가 송경운 양반집 하인으로 자란 송경운은 9세 때 처음 비파를 배웠는데 그 솜씨가 널리 알려져 어떤 일을 잘했을 때 “송경운의 비파만 해?” 할 정도로 조선팔도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결과 하인명부에서 이름을 빼내어 평민이 되고 정6품 무관직 군공사과軍功司果가 된다. 정묘호란 때 전주(완산주)에 정착한 그는 20년을 한결같이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청중이 만족할 때까지 정성껏 비파연주를 들려주어 만인에게 칭송받았으며, 인품 또한 훌륭하여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완산주 전체 사람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6. 삼정승 육판서가 두루 찾은 박물학자 황윤석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황윤석은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소 한 마리를 선뜻 내다 파는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란 덕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29세 때 진사시에 합격한 후 38세 때 첫 벼슬을 한 그는 21년 동안 14개 관직을 거쳤는데, 그는 이 기간 동안 온갖 것을 학문의 대상으로 보고 공부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 결과 나라의 고위 학자들조차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황윤석을 찾게 되었고 임금에게도 인정받았다. 그는 매 순간 주어진 직책에 충실하며 늘 책을 가까이하고 기록에 열중해 실명할 위기까지 겪었으나 ‘하늘’이나 ‘땅’과 동일한 ‘인간’으로서 세상의 모든 이치와 물질들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54년간 57권 분량의 일기를 써서 『이재난고』를 남겼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일기 가운데 기록 기간이나 분량 면에서 최고이며, 그 내용 또한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을 정도여서 오늘날 18세기 조선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7. 조선의 천문역상天文曆象 역사를 새로 쓴 천문학자 김영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의지할 곳 없이 떠돌다 한양에 온 김영은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기하원본』을 읽다 그 세계에 빠져 그 책만 본 끝에 뜻을 깨우쳐 역상학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러다 41세 때, 현륭원(사도세자의 무덤) 이장 당시 천문상의 문제를 해결한 공으로 과거 시험을 치르지 않고 관상감의 역관으로 채용된다. 김영은 당시 조선이 중국 중심의 천문학을 그대로 따르던 것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독특하고도 정확한 천문지리서를 편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당시의 천문학 발전 정도를 고려할 때 김영의 학문 수준은 매우 혁신적이었으며, 역상법에 정통해 나라에서 최고라는 칭송을 받았다. 8. 그림만큼이나 인간다웠던 목민관 김홍도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홍도는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 후기에 정조의 어진(초상화)을 훌륭하게 그린 공으로 관직을 받는다. 그는 부임한 고을에 가뭄이 들자 기우제를 지낼 암자를 찾아가 자신의 녹봉으로 시주를 하고 불화佛畵를 조성하고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내어주기도 했다. 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홍도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출중한 실력뿐만 아니라 선비다운 인품과 성실함까지 갖추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다. 9. 10년간 두문불출하며 바둑에만 집중한 국수 정운창 어린 시절 병약했던 정운창은 사촌 형의 권유로 바둑을 처음 배웠는데 10여 년 동안 집밖에도 나가지 않고 바둑에만 열중하더니 홀연히 바둑의 묘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 후 당대 바둑으로 이름난 정박과 대국해 이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고, 계속해서 국수로 이름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실력을 겨루어 최고의 고수로 인정받았다. 정운창은 당시 국수인 김종기를 꺾은 뒤에도 그의 명성을 지켜주기 위해 배려했으며, 최고가 된 후 20년간이나 바둑계를 제패했다. 10. 신체장애에 좌절하지 않은 출판전문가 장혼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장혼은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고 꼼꼼하며 일하는 속도도 빨라 각종 문집이나 책의 교정에 재주가 있다 하여 오재순의 추천으로 32세 때 규장각 소속 감인소의 사준이 된다. 그는 책을 출판하는 일이 쉽지 않던 시기에 감인소에서 25년간 성실히 일하며 이이의 『율곡전서』, 정조의 『홍재전서』 등 각종 문집을 펴내는 한편, 스스로 활자를 만들고 위항인들의 작품을 모아 책을 펴냈으며, 각종 아동교육서를 펴내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불린다. 일찍이 책과 기록, 아동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장혼은 책의 교정, 편집, 제작에 남다른 재주를 가진 출판전문가이자 위항문학의 선도자, 아동교육가로서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위항인들, 그리고 아이들이 인생의 새 꿈을 꾸며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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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암행어사
김영진 | 도서출판 큰방 | 2012-01-0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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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암행어사
김영진 | 도서출판 큰방 | 2012-01-0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6-29)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우리나라의 야담과 전설의 진면목을 담은 이야기책. 야담과 전설, 해학 등이 골고루 어우러진 재미있고 구수한 이야기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는 선조들의 재치와 지혜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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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왕 세종
이수광 | 샘터 | 2010-08-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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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왕 세종
이수광 | 샘터 | 2010-08-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마에스트로, 대왕 세종
이 책은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세종대왕의 어린 시절부터 승하하기까지의 일대기와 그를 둘러싼 세종대의 명성 높은 신료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하여 학문의 요람이 되게 하고, 이천과 장영실을 중용하여 과학발전을 이루고, 박연과 함께 음악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세종이 더욱 높이 평가되는 것은 이 모든 업적이 병마와 싸우면서 일구어낸 업적이라는 사실이다. 후대의 문사들이 장영실과 박연을 일컬어 세종의 이름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하늘이 낸 인재들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세종은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든 마에스트로 같은 존재였다. 이 책은 이렇게 세종과 신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세종의 업적들을 되짚어 보며, 세종의 성격과 리더십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수광은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등을 집필하며, 역사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저자는 큰 지도자를 바라는 국민적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적 자존감을 공고히 할 리더, 그런 리더의 전형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냈다. 그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의 강력한 리더십과 그의 흥미진진한 일대기를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맛깔진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더해져 독자들에게 학문적 성과와 재미를 동시에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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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뜻밖의 한국사
김경훈 | 오늘의책 | 2011-08-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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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뜻밖의 한국사
김경훈 | 오늘의책 | 2011-08-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란?
역사란 무얼까? 혹자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 즉 현재의 시점에 서서 과거 사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백년, 천년이 넘어가는 2000년대를 겪게 된 시점에서 우리는 할말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할까?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까? 저자는 ‘자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그 역사는 오천 년이 아니라 일만 년이 넘어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무 힘이 되지 못하는 죽은 역사’라는 깨달음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 그는 한국인에게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되새겨 오늘의 힘으로 사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을 찾게 된 것이다. 어디에? 지금까지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곳에서다. 예를 들면, ‘선비의 아내들은 남편의 바람기에 어떻게 복수를 했을까’와 ‘과거 역사상 장남들은 임금이 되기 어려웠다’와 같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 역사가 재미있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암기가 필요없는 역사에 대해 생각해본 저자는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우리의 상상력을 맘껏 자극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고 주장한다.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는 뜻밖의 역사 ‘연지곤지는 생리중이라는 표시였을까, 조선시대 노비가 양민이 되려면 돈이 얼마가 필요했고, 영의정의 월급은 얼마나 됐을까, 신라시대에도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고려시대엔 오누이간에도 혼인을 했다, 조선시대에도 그린벨트가 있었다, 조선시대엔 가발로 머리를 꾸미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많았다’ 등 여기 실린 글들은 모두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단순히 흥밋거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선시대 때 돈이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하면 나라에서 혼인 보조금을 대주었다는 대목에선 성군들의 뜨거운 애민정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고여 있는 우물물이 썩지 않는 비밀을 다룬 대목에선 사소한 일상에 숨겨진 선인들의 깊은 지혜를 확인하게 된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둔 내용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9백여년간이나 계속된 경신수야라는 축제다. 육십갑자로 날을 따져서 경신일에 해당하는 날(60일에 한번씩 옴)에는 온 국민이 왕에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밤을 새워 먹고 마시며 잠을 자지 않았던 축제였다. 또 아주 먼 옛날, 불교가 막 전래되어 뿌리를 내리던 신라시대에 이땅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밤새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경신수야에서 자신에게 유전된 자연스런 밤샌 전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구황작물 고구마를 이땅에 정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선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거리를 재는 기리고차’에서는 선조들의 과학정신과 삶의 지혜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오늘날 엘리트와 비교되는 옛날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과정이나 과거 정승들이 음독자살한 배경을 살펴보면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다른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실 속의 정치쟁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 흐름도 역사 속의 뿌리와 일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상식, 그리고 기상천외한 사실들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를 아우르며 우리가 잘 몰랐거나 놓쳤던 문화와 역사가 한눈에 보일 것이다. 『뜻밖의 한국사』제목처럼 하나 둘 뜻밖의 내용을 접하다보면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게 다가오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것 역시 뜻밖의 기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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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인
김병훈 | 반디 | 2011-10-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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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인
김병훈 | 반디 | 2011-10-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5-0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부끄러운 역사를 모른 체하는 우리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책. 저자는 중국과 일본만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사교과서도 그들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앞부분에서는 고대를 중심으로 일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들추었고, 뒷부분에서는 과대포장한 단일 민족의 역사와 균형감각을 상실한 현대사 서술들을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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