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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 역사의아침 | 2013-10-0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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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 역사의아침 | 2013-10-0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쇄신과 망국의 기로에 선
개항기 조선의 맨얼굴을 보다! 격동의 시기, 조선과 일본의 개항 풍경을 비교하다 1876년 개항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지 34년간의 조선은 어수선하고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좌충우돌했다. 망국을 향해 폭주하는 조선이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들은 마차를 끌던 마부라 기차를 어떻게 움직여가야 할지 몰랐다. 마부 수준의 기관사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조선을 압박하는 중국·일본·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고 혈안이었다. 그러다보니 기차는 더욱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과 일본의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을 시작했지만, 하급무사와 지식인이 결합해 구체제를 해체하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조선은 개항 이후 34년간 허송세월을 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저자는 조선이 개항기에 허송세월을 한 이유와 원인을 낱낱이 규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조선의 개항과 일본 개항의 차이를 밝히고, 나아가 조선은 국가개조에 왜 실패했고 일본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지도력의 차이가 개항기 조선과 일본의 명암을 가르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 대내외적 혼란과 무질서 속에 좌충우돌했다. 조선이란 기차를 자국에 유리하게 몰고 가기 위해 일본과 청나라가 전쟁으로 충돌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군대를 상주시키고 간섭의 수위를 높여가던 종주국 청나라를 몰아냈는데도 러시아?프랑스ㆍ독일의 삼국간섭으로 조선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자 1895년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853년 개항한 일본은 1867년에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한 대정봉환을 시작으로 판적봉환, 폐번치현, 폐도령과 질록처분 등의 봉건질서 해체 과정을 거쳐 기득권층인 무사들의 몰락, 1885년 내각제로 전환, 1889년 메이지 헌법 공포와 시행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개항 37년 만에 국체를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의 기득권을 빼앗아오는 일은 쉽지 않아, 일본도 개항 이후 40년은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었다. 막부파와 존왕양이파의 갈등이 심해 암살이 빈번했고, 메이지 천황의 왕정복고가 선언된 직후 메이지 정권과 막부 사이의 보신전쟁, 무사들의 칼 착용을 금지하는 폐도령에 반발한 게이신토의 난, 개화론자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세이난 전쟁 등의 내란 발생으로 인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는다. 개항기에 극심한 내부적 혼란과 사회적 동요를 겪은 것은 같지만 개항의 결과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과 동북아의 강국 부상한 일본으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일본은 어떻게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뚫고 개혁성과를 내게 된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어떻게 국민의 역량을 통합해서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내느냐의 문제, 즉 지도력의 차이에서 찾는다. 일본은 대체 어떤 지도력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또 지도력을 가진 인재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그런 인재들은 조선의 인재와 어떤 차별성이 있었을까? 그리고 수백 년 동안 누적된 사회·경제·문화적인 기반과 환경은 어떻게 인재를 성장시키고 지도력의 차이를 가져왔을까? 개화기 조선에는 일본 하급무사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개화파가 없었다 일본의 개화에는 하급무사 출신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구체제 해체의 주체로 지식인과 결합하여 무혈혁명으로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여 메이지 신정부를 40여 년간 운영한 하급무사들은 정치참여를 금지한 막부의 오랜 관행을 깨고 나왔고, 서양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는 양이론의 세계관도 깨고 나왔다. 그리고 역시 하급무사 출신인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지식인들이 내놓은 개화사상과 만나 중세적 질서의 일본을 근대적 국가로 변화시켰다. 끊임없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자신의 한계를 깨고 나온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설계자라 불리는 사카모토 료마도, 안중근의 손에 죽은 이토 히로부미도 하급무사 출신이다. 고종은 1863년에 즉위해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이 빌미가 돼 퇴위하기 전까지 43년이나 조선을 통치했다. 똑똑한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회수한 스물한 살의 고종이 과연 국정을 잘 운영했는가? 친정체제로 돌아선 고종이 한 일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펼친 국내 개혁정책을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개혁의 전면 부인이었다. 고종은 시기에 따라 친일파, 때론 친청파, 때론 친미파, 때론 친러파 대신들과 함께 행보했다. 개화적인 군주였다가 보수적 군주였고, 다시 개화적으로 변신했다가 또 다시 보수화됐다. 정책적 방향을 바꿀 때마다 그전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인재들의 씨를 말리곤 했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자 박영효의 형인 박영교와 홍영식은 바로 살해됐고, 고종은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에게는 대역부도죄인으로 능지처사를 선고했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당시 한성에서 개화에 관심이 있었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위 직후부터 1873년까지 대원군 집권 시절을 빼도 33년의 길고 긴 세월 동안 집권한 고종이 그 시기를 현명하게 통치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온 힘을 쏟았더라면 상황은 다소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일제 식민지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도 있었다. 식민지 시절이 짧았더라면 조선의 지식인들이 훼절하고 부역하는 일도 적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세월 동안 대체 고종은 무엇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 그리고 그를 둘러싼 조선의 인재들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을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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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선비, 귀신과 통하다
장윤선 | 이숲 | 2013-11-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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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선비, 귀신과 통하다
장윤선 | 이숲 | 2013-11-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귀신에 관한 담론을 담은 책. 조선시대에서부터 오늘날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등장하는 귀신담과 귀신론, 현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한다. 귀신이 인간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인간이 귀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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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 역사의아침 | 2012-06-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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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 역사의아침 | 2012-06-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무엇’을 가진 별난 조선 남자들
여기 가장 사람답게 산 사람들이 있다. 완고한 세상의 벽,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험한 세상을 씩씩하게 걸어간 조선 남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온갖 시련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기꺼이 선택한 진정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이 별난 조선 남자들의 독특한 삶의 무늬들을 그려낸 책이 출간되었다.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에는 시대의 벽에 부딪쳐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12명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이 세상에서 출세나 성공이라 부르는 탄탄대로의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가시밭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모든 사람들이 가는 안전한 길을 두고 홀로 외롭고도 험한 길에 자신의 인생을 던졌을까? 이들이 출세나 성공이나 안락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세상을 나답게, 내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가 선택한 삶, 진짜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불편과 고통과 좌절 앞에 뜻을 꺾고 무릎을 꿇지 않는 것, 자신이 생각한 신념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선택한 참다운 삶의 가치인 것이다. 타협이 때론 온화하고 융통성 있는 태도이며 이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비겁하게 타협하는 것이 과연 융통성 있는 태도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12명의 조선 선비들은 소신과 신념으로 가득 찬 천하의 고집쟁이들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이들을 융통성 없다고 나무랄 것인가? 이들은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다 간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또한 소신 하나로 세상을 상대한 별난 사람들이자, 자신을 아낄 줄 알았던 가장 멋진 사람들이었다. 이 책을 통해 평생을 관통해 그들의 삶과 정신을 받쳐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자.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완성한 아름다운 조선 선비 12인 이 책은 시대의 벽에 갇힌 조선의 아웃사이더 12인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은 소신 때문에 타인과 화합하지 못한 채 굴곡이 심한 인생 역정을 살았다. 그들의 소신이란 것이 시대적 대의를 품은 원대한 것도 있지만, 남들에게는 하찮게 보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신도 있다. 제약과 굴레가 덧씌워진 닫힌 세상은 이들의 소신을 위험천만한 약점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이들은 절대 피하지 않았다. 이들의 삶이 올바르고 바람직스럽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없는 특별함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색다른 감동을 주기도 한다. 때로 의미보다 감동이 삶에 더 큰 활력을 주는 법이니까.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고 굴곡이 심한 인생이었지만, 그들에겐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강한 줏대가 있었다. 그들은 험난한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데 절대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완성해가는 남자들을 역사 속에서 재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평생 자기 삶에 충실하며 ‘나답게’ 살다간 조선 선비들의 꼿꼿한 기개와 열정을 만나볼 수 있다.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으로 무장한 채 닫힌 세상과 마주한 12명 조선 남자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남자답게, 사람답게, 그리고 진정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줄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톨이, 그러나 삶의 진정성만은 누구보다 강했던 조선의 아웃사이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아웃사이더란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나와 있다. 우리가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으로 일정한 테두리를 만들어놓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 자, 즉 우리가 금 그어놓은 테두리 밖에 있는 자들을 흔히 아웃사이더라고 하는 것이다. 이 단어 자체도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려는 편가르기적 사고를 떨치지 못한 모순을 안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는 사상의 벽, 제도의 벽, 신분의 벽 등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벽들로 인간의 사고와 삶의 자유가 억압당했던 조선시대에 누구보다 자신의 생각과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을 조명해보고자 했다. 주류에 편입되기를 열망하는 대신 홀로 당당히 아웃사이더의 길을 자처한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들을 만나보았다. 시대적 잣대로 인해 그들의 인생 자체가 역사적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으로부터 비롯된 성과물인 이 책은 새로운 각도로 인물의 생애를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개인의 삶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새롭게 살펴보는 조선시대 아웃사이더들의 삶은 극심한 시대적 제약과 한계 속에서 이뤄낸 소신의 삶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큰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어제 한 말을 오늘 손쉽게 뒤집고, 소신과 줏대도 필요에 따라 바꾸며, 이익을 위해선 자신의 생각이나 자존심조차 쉽게 구겨버리는 세태 속에서 이 책 속의 인물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잠시나마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누구보다 자신의 생각과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 소신 하나로 진정 자기답게, 사람답게 살았던 조선 남자 12명의 이야기는 정체성 부재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색다른 사유의 장을 제공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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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킹메이커
박기현 | 역사의아침 | 2012-04-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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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킹메이커
박기현 | 역사의아침 | 2012-04-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을 주름잡은 8명의 킹메이커, 그들의 선택이 조선의 왕과 역사를 바꿨다!
“한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쓴 것이다.” 한 나라의 군주나 기업의 CEO 밑에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그 참모들을 거느리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군주나 CEO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수많은 참모들이 8부 능선에서 좌절하고 포기해버리기 일쑤인 데다 보스를 배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중에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닥치면 두려움에 떨거나, 명예와 부에 집착해 사사로운 욕심을 부리거나, 부딪쳐보지도 않고 사라져버리는 참모들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하게 군주나 윗사람을 보필하는 참모를 뛰어넘어 1인자를 만들어내거나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킹메이커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역사의아침에서 출간된 『조선의 킹메이커(8인8색 참모들의 리더십)』에서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 중 시대의 흐름을 읽는 빼어난 감각과 불변의 충성심, 탁월한 결단력으로 군주를 만들어내고 국정 전반을 훌륭하게 수행해낸 킹메이커 8명을 선별해 재조명했다. 군주와 함께, 때로는 군주를 리드하며 새로운 왕조를 연 정도전, 스스로 선택한 군주를 결코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군주의 의지를 잘 살펴 보좌한 하륜, 치밀하고 때로는 의심 많은 완벽주의자 세종을 잘 섬기며 완급을 잘 조절한 황희, 세조의 문화적이고 외교적인 왕재를 발견해 이를 성취하도록 만든 신숙주, 중종을 군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조광조, 투정이 심하고 겁도 많은 임금을 보필하며 처참한 난국을 극복해낸 유성룡,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 최명길,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어낸 정조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주고 군주를 위해 영의정 자리마저 초개처럼 내던진 채제공 등이 보여준 시대정신과 리더십을 통해 21세기형 킹메이커의 모습을 제시하고, 각 인물들의 지혜와 경륜, 처세술을 전해준다. 또한 군주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관계를 형성하고 갖은 견제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물론 그들의 마지막 모습 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았다. 군주와 나라를 위해 온몸을 던진 킹메이커들의 이야기 “나는 군주를 위해 용광로 속이라도 뛰어들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성격이 불같이 급하거나 혹은 섬세하고 예민하거나 나약하고 의심이 많았다. 성격과 품행, 정치철학과 사상도 다양한 군주를 섬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8명의 킹메이커들은 군주를 끝까지 보필하면서 자신을 버리는 유연한 사고를 갖추고 있었으며, 군주에게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도 실리는 챙겨내는 재능과 지혜를 보여주었다. 예컨대 정도전은 군주 이성계의 장자방으로, 그가 기획한 조선의 거푸집은 500년 동안 그 틀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뛰어났다. 또한 하륜은 결단력과 과감한 정책 의지, 개성과 위엄을 갖춘 강한 군주 아래서 참모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준 인물이다. 한편 황희는 열정 넘치는 개혁 군주의 완급을 잘 조절했으며, 자신도 군주의 덕성과 위업에 어울리는 청백리 참모의 명성을 얻었다. 신숙주는 세조와 함께함으로써 변절자라는 세간의 비판을 받았으나 군주의 오명을 참모의 겸손한 자세와 학문적이고 외교적인 치적으로 덮어버렸다. 그런가 하면 조광조는 다른 왕재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은 중종을 밤낮으로 섬기며 군주의 역량을 길러주었고 일관된 충성심을 선보였다. 그리고 유성룡은 선조의 견제와 질투를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수용해가며 나라를 안정시켰으며, 명나라의 정치적 월권과 외교적 압박을 슬기롭게 해결해냈다. 최명길 역시 ‘작은 절개보다 백성과 군주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그로 인해 망국의 조선을 간신히 살려낸 충성된 신하다. 마지막으로 채제공은 자신의 목숨과 정치적 명분까지 정조와 동일시했으며 군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조선 최고의 참모들이 제시하는 8가지 리더십! ① 정도전-상부상조의 리더십 정도전은 군주와 함께, 때로는 군주를 리드하며 새로운 왕조를 연 불세출의 참모다. 그는 자신을 견제하는 온갖 방해와 음모를 극복하며 태조 이성계와 ‘상부상조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② 하 륜-부창부수의 리더십 하륜은 스스로 이방원을 선택하여 군주로 섬겼다. 그가 보여준 참모상은 군주를 결코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군주의 의지를 잘 살펴 보좌하는 ‘부창부수의 리더십’의 전형이다. ③ 황 희-수용의 리더십 완벽주의자 세종 밑에서 황희는 치밀하고 때로는 의심 많은 임금을 잘 섬기며 열정 넘치는 개혁 군주의 완급을 잘 조절한 ‘수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④ 신숙주-열정의 리더십 한명회가 세조의 정치적 왕재를 발견해낸 인물이라면 신숙주는 세조의 문화적이고 외교적인 왕재를 발견해 이를 성취하도록 만든 ‘열정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⑤ 조광조-일편단심의 리더십 조광조는 중종을 군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선보인 ‘일편단심의 리더십’은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⑥ 유성룡-관용의 리더십 전 국토가 유린되던 임진왜란 초기, 유성룡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투정이 심하고 겁도 많은 선조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설득했고, 처참한 난국을 극복해냈다. ⑦ 최명길-뚝심의 리더십 최명길은 작은 절개보다는 백성과 군주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인조 대신 악역을 자처하며 청나라와의 교섭을 성사시키는 등 ‘뚝심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⑧ 채제공-동고동락의 리더십 채제공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어낸 정조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주었고, 군주를 위해 영의정 자리마저 초개처럼 내던진 ‘동고동락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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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전기 향화 수직 왜인 연구
한문종 | 국학자료원 | 2012-05-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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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전기 향화 수직 왜인 연구
한문종 | 국학자료원 | 2012-05-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전기의 향화ㆍ수직왜인을 연구한 책. 조선시대 왜인들의 향화와 수직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나아가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향화ㆍ수직왜인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조선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조선정부는 그들을 어떻게 수용하였으며 향화 이후 어떻게 대우하였는지, 그리고 조선시대 한일관계에서 향화왜인의 역할과 의의는 무엇인지, 그들의 후손들은 어떻게 살아갔는지 등을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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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참모실록
박기현 | 역사의아침 | 2012-06-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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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참모실록
박기현 | 역사의아침 | 2012-06-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 왕조를 지속시킨 결정적 주체는 참모였다!
“국란을 수습하고 국가시스템을 완비한 위대한 참모들의 리더십을 제시한다.” 조선 왕조는 군주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왕권주의 국가였다. 그렇다고 군주의 영민함이나 탁월한 리더십 덕분에 나라가 잘 운영되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군주가 주체이긴 하지만 스물일곱 명의 군왕들 가운데 세종과 정조 등 몇몇을 제외하면 똑똑하고 리더십이 뛰어나 국가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는 왕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국가경영 시스템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제도가 아무리 우수해도 사람이 잘못 운영해 실패한 경우를 너무나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 왕조 500년을 주도적으로 끌고 간 결정적 주체는 누구인가? 최근 역사의아침에서 출간된『조선참모실록(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에서는 조선은 군왕으로 대표되는 군주 중심의 체제였지만 사실상 국정을 운영하고 견인해간 주체는 참모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곧 군주의 경영철학을 잘 받들고 전국의 말단 조직에 이르기까지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여론의 향배를 제대로 살펴 나라를 온전하게 운영해간 참모들 덕분에 조선은 500년 동안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저자가 2년 전 집필한『조선의 킹메이커』가 나라를 세우고 틀을 만들어간 기획자적 영웅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에서는 국가의 전문경영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보여준 빼어난 리더십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주로 세우기보다 지킨 쪽이요, 새로 만들고 틀을 세운 기획자라기보다는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경영의 안정적 시스템을 이룩하는 데 성공한 참모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시대의 모범과 표준을 제시한 리더 중의 리더였다. 여덟 명의 참모들이 선보인 리더십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특유의 배짱으로 고난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그들이 보여준 투지와 열정은 위기에 쉽게 주저앉고 마는 현대인들이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 실패와 고통을 이겨내고 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참모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들 모두 가문 배경이나 선천적 재능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며 갖은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지도자로 우뚝 섰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배와 파면은 물론 장을 맞고 옥에 갇혀 국문을 당하는 등 쓰라린 고통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좌절과 고통을 이겨내고 임금과 조정, 동료와 백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냈던 것이다. 예컨대 일생을 온유하고 절제된 삶으로 자신을 낮추며 성군 세종을 곁에서 보필한 맹사성은 세종의 소프트웨어 부문을 책임지고 조선의 문화정치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준경은 사화로 인한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극한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 숱한 난제로 얽힌 국정을 타협과 중용으로 이끌며 안정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또한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예민했던 이황은 벼슬보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닦아 선비의 모범을 보여준 청빈한 리더였으며, 이원익은 몰락한 왕손의 후예였지만 자신의 힘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전쟁터를 돌며 왜적과 싸우고, 고통받는 백성과 군사를 위로하고 민심을 수습한 현장의 해결사였다. 그런가 하면 이항복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모시고 다니며 온갖 풍상을 겪었으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유배지에서조차 후학을 가르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 진정한 충신이었다. 왜란과 호란으로 난장판이 된 조선 정국을 경제 활성화로 수습한 김육은 조선의 부도를 막은 조선 최고의 경제 관료였으며, 최석정은 조부 최명길에 대한 사대부들의 비난과 모함으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지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출사해 숙종을 보좌하며 사화와 당쟁으로 얼룩진 조정을 원만하게 이끌어나갔다. 마지막으로 박규수는 대동강으로 들어온 미국 상선을 격침시키는 등 격동의 현장에 있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읽고 개화와 개국을 주장하는 등 변화를 적극 수용하며 과도기의 조선을 온몸으로 지켜낸 경세가였다. 『조선참모실록』은 이 같은 여덟 명의 참모들이 고난을 극복하며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이끌어간 시대정신을 재조명한 책이다. 고난을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겪은 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참모가 된 그들이 펼쳐낸 처세술과 리더십을 통해 이 시대가 진정으로 바라는 리더의 모습을 만나보자. 군주의 경영철학과 여론의 향배를 정확하게 살펴 국정을 슬기롭게 이끌어간 참모 8인의 리더십! ① 춸사성 -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온유의 리더십 맹사성은 군주를 모실 때와 상하 좌우의 신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결코 겸손과 온유, 절제와 조화를 잊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대인관계 소통방식은 윗사람에게는 정직하게 이야기하되 겸손을 지키고, 아랫사람에게는 정과 사랑을 담되,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이 원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② 이준경 - 시련을 통해 꽃피운 미래예측의 리더십 이준경은 명종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조선 조정의 외척 발호, 곧 명종의 외숙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의 발호를 종식시키고 사림 정치를 시작하게 했으며, 후사 없이 승하한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를 즉위케 함으로써 조정의 안위를 튼튼하게 세웠다. 또한 그는 뛰어난 통찰력과 예지력으로 당쟁과 전란의 피해를 정확하게 예견했다. ③ 이황 -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준 물러섬의 리더십 이황은 34세에 벼슬을 시작해 70세에 사망할 때까지 140여 직종에 임명되었지만 무려 일흔아홉 번이나 사퇴하는 물러남의 극한을 선보였다. 그의 사상과 철학을 두고 많은 학자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퇴계는 사상과 철학을 주장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워둠’, ‘내려놓음’이라는 보기 드문 행동으로 세상과 대화하려 했다. ④ 이원익 - 정적들도 감싸 안은 관용의 리더십 이원익은 놀림을 받을 정도로 왜소했으나 그가 남긴 업적은 너무도 크다. 그는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백성의 곤궁한 삶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했고, 성실·정직·근면·검소를 온몸으로 실천했으며, 속 좁은 신료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반대파들에게 끊임없이 비난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들을 관용으로 껴안았다. ⑤ 이항복 - 전란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달랜 해학의 리더십 이항복은 웃음과 충성으로 선조를 모셨고, 아래로는 전란의 고통을 겪고 있던 만백성을 사랑으로 껴안았다. 적지 않은 고초를 겪고 외로움을 많이 탔음에도 그는 자신만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조선의 철밥통 관료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그는 위기가 올 때마다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이라며 늘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했다. ⑥ 김육 - 한평생 대동법만 외친 집념의 리더십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하지만 김육은 그런 부류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되 결코 섞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조선 후기 민생경제 최후의 보루로 대동법 시행에 목숨을 건 경제 관료이자 학자였으며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다닌 현실주의자였다. ⑦ 최석정 - 비난을 이겨내고 터득한 실용주의 리더십 최석정은 초년 시절 주화론자인 할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명분론자들의 숱한 비난과 모욕을 받으며 살았다. 그는 이런 모진 마음고생을 잘 털어내고 한평생을 올곧은 공직자로서 탕평과 균등한 인재 선발,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한 진휼 정책의 실시, 조정의 혁신과 규제의 완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⑧ 박규수 - 시대 흐름을 읽어낸 변화수용의 리더십 박규수는 20년에 가까운 칩거와 고통의 세월을 이겨내고 개화와 실학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조선 지식인을 이끈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다. 혼란의 조선 말기, 박규수는 격변기를 정면으로 대응하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스스로 변화를 수용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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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책쾌 송신용
이민희 | 역사의아침 | 2012-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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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책쾌 송신용
이민희 | 역사의아침 | 2012-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가 외면한 과거, 새로운 의미 찾기의 여정
그리고 그 여정의 즐거움! 지금의 우리가 읽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임과 동시에 누군가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흔적이다. 그렇게 ‘의미 부여’에서 소외된 과거의 사실은 단지 ‘기록’으로만 남아 후세에 전한다. 이에 <틈새 한국사>는 그 동안 ‘의미 부여’에서 소외된 과거의 기록들을 찾고자 한다. 그 기록들은 ‘인물’일 수 있으며, ‘문화’나 ‘사회’의 모습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간과한 과거의 기록들이 이 시리즈에서 의미를 가진 또 하나의 역사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각 권 국판변형(128*188), 본문 2도, 9,000원 발행 예정 도서 『최고의 목민관을 찾아라』l 이선희 『조수삼의 여행 이야기』l 김영죽 『외교전문가 하세국의 비극적 인생』l 계승범 『대한제국 기담』l 이승원 『고려인의 사랑』l 권순형 『선비의 아내』l 류정월 『죽음 앞에서』l 정우봉 마지막 서적 중개상, 송신용의 삶 복원 서적 중개상을 일컫는 ‘책쾌’는 도서의 제작과 출간, 유통이 제한된 환경으로 인해 대부분의 것이 일부 계층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향유된 근대 이전 지식문화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문화의 혼란기 모습을 조선의 마지막 서적 중개상으로 불러도 좋을 ‘송신용’의 일생을 통해 살핀다. 그런 의미에서 책쾌 송신용은 시대를 볼 수 있는 창이며, 문화를 읽는 코드로 이야기할 수 있다. 송신용의 삶을 통해 그가 활동한 시대의 지식문화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 지금은 어디쯤 와 있는지 저울질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 문화유산을 보존한 재야학자 1884년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등으로 조선의 정국이 요동치던 구한말 혼란기에 태어난 송신용은 일제 식민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 격동기 동안 유실되기 쉬웠던 수많은 우리 서적과 문서 등을 보존하고 또한 필요한 이들에게 공급한 이 시대 마지막 서적 중개상이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서적 중개상의 길을 걷기 시작한 송신용의 삶을 가람 이병기가 평생 동안 기록한 『가람일기』 등의 자료와 유족들의 증언 등을 통해 복원한 저자는 이 책에서 송신용의 활동은 “여느 서적 중개상과는 사뭇 달랐다”고 정의한다. 전국에 산재한 고서의 발굴과 유통에 국한하지 않고, 잡지 등의 기고를 통해 자신이 발굴한 수많은 고적을 소개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것을 직접 교주하고 해재와 발문을 쓰기도 한 그의 모습은 “전통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노력한 재야학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더불어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노력한 송신용의 모습이, 그가 젊었을 때 수학한 휘문의숙의 민족주의 학풍의 영향이었으며,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헌신하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신념의 발현임을 이야기한다. 구한말 이후 서적 중개상의 모습 복원 이 책은 마지막 서적 중개상이라 할 수 있는 송신용의 삶과 함께 구한말 이후 서적 유통 현장의 모습을 함께 이야기한다. 구한말 이후 우후죽순처럼 세워진 민간서점 등의 영향으로 과거와 같은 서적 중개상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도 한국전쟁 이후까지 소수의 특정 고객을 직접 찾아다니며 흥정하고 매매하던 서적 중개상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복원을 시도하고 있는 송신용의 활동 모습은 구한말 이후 조선에서의 서적 유통의 한 단면과 사라져 가던 서적 중개상들의 활동상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 된다. 서적 중개상의 활동 재조명 이 책은 송신용이 활동했던 시대의 서적 중개상을 단순히 재리를 좇는 경제 활동가들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한다. 구한말과 일제 식민시대, 그리고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사회 혼란기 속에서 이루어진 도서의 유통과 출판, 보급과 소비는 이익 창출을 위한 경제활동이나 개인의 욕구 충족이라는 목적만이 아닌 문화적 혹은 어떤 일정한 가치 내지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투쟁적 활동의 결과였다. 따라서 책쾌, 즉 서적 중개상은 그저 책을 파는 것으로 그들의 활동이 종결되는 것이 아닌 책의 보급과 유통으로 사회와 문화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던 ‘문화 활동가’였다. 이 책은 더불어 그들의 모습 속에서 당대의 열악한 서적 유통을 극복하고자 자생적으로 생겨나 활동한 사회적·문화적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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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철의 제국 가야
김종성 | 역사의아침 | 2012-06-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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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철의 제국 가야
김종성 | 역사의아침 | 2012-06-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동아시아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가야, 그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를 추적한다.
금관가야의 실체를 유물로 확인한 1990년 김해 대성동 고분군의 발굴 이후 가야의 재조명이 급물살을 탔다. 가야는 이제 ‘잃어버린 왕국’에서 삼국보다 앞선 문명을 가진 강력한 ‘제4의 제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현재 MBC에서 가야를 다룬 대하사극 「김수로」를 방영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가야의 연구와 관심이 활발한 이때, 충실한 고증을 통해 가야의 역사를 다룬 책이 출간되었다. 선진 철기문명과 해양무역을 통해 독자적인 경제발전과 문화를 이루었던 가야를 재조명한『철의 제국 가야』는 가야 역사의 주역이었던 김수로를 중심으로, 삼국의 역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철의 제국 가야’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복원해냈다. 당시의 국제정세와 역사적인 정황들을 살펴보면서 점차 범위를 좁혀 가야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은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를 추적하여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8가지 주제로 파헤친 잊혀진 왕국 가야의 실체 가야는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고 일본에 분국까지 설치한 동아시아의 놀라운 문명국이었다? 중국 문명의 기초는 김수로왕의 조상이 만들었다?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왕은 흉노족이다?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 커플은 김수로와 인도 여인 허황옥이다?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가야의 후손이 오늘날 전 인구의 10퍼센트나 되는 이유는? ― 이 책에는 우리가 궁금해하던 수수께끼 왕국 가야에 관한 흥미로운 키워드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야는 여전히 많은 부분 고대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가야에 대한 역사 기록이 거의 없는 것과, 가야가 존재했던 시대를 아직까지도 삼국시대라 부르고 있는 학계의 편견이 아직까지도 가야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철의 제국 가야』에서는 우리가 ‘삼국’이라는 편견을 버리게 될 만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삼국보다 앞선 철기문명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며 강력한 연맹국가로 성장했던 가야의 실체를 8가지 주제로 접근해 날카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가야 토착 집단, 김수로 집단, 석탈해 집단, 허황옥 집단이 가야 문명의 건설에 참여한 과정을 중심으로 가야의 건국에서 멸망까지 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또한 철의 강국, 해상무역 대국, 다양한 문화를 융합한 선진 문명국으로서의 가야의 역사적 의의를 새롭게 조명했다. 이 책은 한국사 편향이 아닌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그리고 역사학 편향이 아닌 문사철(文史哲)의 통합적 시각에서 가야사를 전면적으로 해부했다. 이 책에는 중국사를 위협하고 한국사를 위협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사를 위협할 정도의 역사적 사실들이 담겨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가야사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한국사가 실제로는 얼마나 스케일이 큰 역사였는지 이 책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가야사와 한국사 그리고 동아시아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고대사를 뿌리째 흔든 가야사의 놀라운 위력 - 가야사에는 중국사의 근간을 밑바닥에서부터 파괴할 만한 ‘어뢰’들이 숨겨져 있다. 중국 문명의 기초인 한나라 역사의 상당 부분이 김수로의 조상들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 역사가 결국 김수로의 조상들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등이 알려진다면 아마 한국인들보다도 중국인들이 더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한나라에 패해 포로가 되었다가 한무제의 신임을 얻어 곽거병 가문과 함께 대제국의 경영에 참여한 흉노족 김일제와 그 후손들. 기원전 66년부터는 곽거병 가문을 제압하고 단독으로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김일제의 후손들. 그들은 바로 김수로의 조상이었다. 또 서기 8년에 한나라 황실의 명맥을 끊고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 역시 왕씨가 아니라 김일제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왕망도 실제로는 김수로의 조상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 문명의 기초인 한나라 문명의 상당 부분은 한족이 극히 경멸하는 북방 흉노족 출신인 김일제 가문에 의해 경영되었다. 한족 외에는 죄다 야만족으로 치부하는 주류 중국인들이 이런 사실을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한민족이 중국 문명의 수혜자라는 중국인들의 관념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나라 문명을 경영했던 김일제 가문이 가야 문명의 건설에 참여했고, 가야 문명이 신라와 고려와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에까지 계승되고 있다면, 동아시아 문명의 주역이라고 자부하는 중국인들의 자긍심은 냉정한 현실 앞에서 굴절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 가야사에는 퇇국인들의 민족관념을 송두리째 파괴할 만한 폭탄들이 내장되어 있다. 한민족은 결코 단일민족이 아니다. 여러 민족이 융합되어 한민족이라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 점은 다른 한민족 왕조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민족의 고대왕국들은 하나같이 토착세력과 외래세력의 결합으로 건국되었다. 각 왕조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종족 혹은 민족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민족이 정말로 하나의 혈통으로만 이루어졌다면, 다민족적 측면이 특히 강했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앞으로 한국사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가야라는 나라가 토착세력과 북방 흉노족, 남방 인도인들의 결합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 알래스카가 마주보이는 캄차카 반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석탈해 집단까지 가야에 머물다 신라로 넘어갔다는 사실, 유라시아 대륙의 곳곳에서 몰려든 세력들이 가야 문명의 건설에 참여했거나 혹은 참여하려 했다는 사실 등을 통해 우리는 가야라는 나라가 비록 영토는 넓지 않았지만 세계 문명을 가슴에 품은 ‘작은 거인’이었다는 경외심을 품게 될 것이다. 가야는 혈통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다민족 국가였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야 외의 다른 왕국들 역시 그러했다. 조선 역시 고려인과 여진족의 연합 속에 건국되지 않았는가. 가야사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계기로, 한국 고대사가 수많은 민족들의 무대였다는 점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가야를 평가한다 - 유라시아 문명의 용광로 문명의 건설에 참여한 세력들의 이동 범위가 매우 광범위했다. 유라시아 대륙 최동단에 있었던 가야 토착세력,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 있었던 흉노족 일파, 유라시아 대륙 남부에 있었던 인도인 집단이 일련의 이동 과정을 거쳐 가야 문명 건설에 참여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가야의 건설자들이 자신들의 본거지로부터 가야 땅까지 도달한 거리는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에 해당했다. 가야에서 쫓겨난, 캄차카 반도 출신으로 추정되는 석탈해 집단까지 합할 경우, 그 거리는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이 점은 가야 문명이 유라시아 문명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야라는 나라는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단기간에 다양한 문명을 한데 융합한 문명의 용광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가야가 문화적 다양성을 품고 출발한 나라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최초·최후의 현해탄 중심 국가 이제까지 현해탄에 인접한 국가들 중에서 가야처럼 현해탄 양쪽의 자원과 역량을 통합적으로 동원하여 자국의 대륙 정책을 수행한 제국은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대륙과 일본 열도가 그처럼 순조롭게 연결된 시기는 가야시대밖에 없었다. 둘째, 가야의 멸망이 한·일 갈등의 출발점이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만성적인 대립관계로 악화된 데는 두 지역의 평화로운 매개자였던 가야의 멸망이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가야 유민들에게 탈출구를 제공했다. 가야 멸망 후에 유민들이 일본 열도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가야가 현해탄 중심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유라시아적 융합을 통해 형성된 가야 문명은 현해탄 중심 국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열도에 자신의 문화적 분신을 남길 수 있었다. - 죽고 나서 더 질긴 가야의 혼 가야는 무려 520여 년간 존속한 나라다. 562년에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고는 하지만,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볼 때 가야의 생명력은 그 후로도 단절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망국 가야의 후손들은 점령국 신라에서 신속히 기반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왕권까지 장악했다. 둘째, 오늘날 한국인의 10분의 1은 김수로의 후손인 김해 김씨다. 이미 1500년 전에 왕통이 끊긴 김수로의 후손들이 한국의 최대 혈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의 후손이 세계 10대 무역국인 대한민국 인구의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유라시아적 융합에서 상징되는 가야의 다양성과 포용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가야라는 나라는 비록 1500년 전에 멸망했지만, 가야의 혼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철의 제국 가야는 살았을 때 못지않게 죽고 나서도 더욱 강하고 질긴 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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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7대 불가사의
이종호 | 역사의아침 | 2013-05-1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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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7대 불가사의
이종호 | 역사의아침 | 2013-05-1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천문학, 누금세공 기술, 청동기 문명, 철기 문명, 인쇄술, 함포 전술, 문자 등
역사의 지평을 넓힌 유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확인한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우리 선조들이 천문을 관측했음을 보여주는 고인돌 별자리, 금 알갱이와 옥으로 상감한 동아시아의 유일무이한 유물인 신라의 황금 보검, 지름 21센티미터의 청동 거울로 그 안에 0.3밀리미터 간격으로 13,000개의 가는 선을 새겨 넣은 다뉴세문경, 말과 기사 모두 철갑으로 무장시킨 고구려의 개마무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 최초로 화포를 선박에 장착한 고려 수군의 함포, 전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문자 체계로 인정받는 훈민정음 등 당시의 지식과 기술 수준으로는 제작이 불가능했을 7가지 유산에 대해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그 진면목을 밝혀냄으로써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인류의 영원한 미스터리 ‘세계 7대 불가사의’ 기원전 3세기경에 필론은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 로도스 섬의 헬리오스 거상,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로스 등대를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았다. 이중에서 피라미드를 제외하고는 전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들이 지금도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고대인들에게 꿈과 희망, 환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이들 7개 명단을 새로 업데이트하려는 노력이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스위스의 베른하르트 베버가 ‘N7W(New 7 Wonders) 재단’을 설립하여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신 7대 불가사의 프로젝트New 7 Wonders Project’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는 2007년 1월, 21개의 후보 명단을 발표했다. 이들 명단에 오른 아크로폴리스, 콜로세움, 고대 도시 페트라, 앙코르와트, 알람브라 궁전, 에펠탑, 기자의 피라미드, 기요미즈 사원, 타지마할, 노이슈반슈타인성, 자유의 여신상, 만리장성, 성 소피아 사원, 스톤헨지, 치첸이차 피라미드, 팀북투, 크렘린궁, 그리스도상, 이스터섬의 석상, 마추픽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중에서 최종적으로 선정되는 ‘신 7대 불가사의’는 2007년 7월 7일 07시 07분에 발표된다. 이중에 한국의 유산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문화유산 중에는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불가사의한 것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한국 7대 불가사의』는 바로 이러한 유산 중에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견주어 손색없는 우리 유산 7가지에 대해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그 진면목을 밝히는 책이다. 한민족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 『한국 7대 불가사의』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우리 선조들이 천문을 관측했음을 보여주는 고인돌 별자리, 금 알갱이와 옥으로 상감한 동아시아의 유일무이한 유물인 신라의 황금 보검, 지름 21센티미터의 청동 거울로 그 안에 0.3밀리미터 간격으로 13,000개의 가는 선을 새겨 넣은 다뉴세문경, 말과 기사 모두 철갑으로 무장시킨 고구려의 개마무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 최초로 화포를 선박에 장착한 고려 수군의 함포, 전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문자 체계로 인정받는 훈민정음 등 당시의 지식과 기술 수준으로는 제작이 불가능했을 7가지 유산을 역사적, 과학적, 문헌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타 민족의 문화유산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우리 선조의 과학 기술과 과학 정신은 오랜 세월 축적, 계승되어 우리 민족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은 한국인의 교육열을 비롯하여 유교 사상으로 무장한 국가관과 도덕성,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근면성, 그리고 5,000년 역사를 토대로 한 독창성과 창의력이 뒷받침되는 과학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변국인 중국은 동북공정을, 일본은 역사 교과서 왜곡을 통해 자국의 입맛에 맞게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으려 하는데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유산과 역사마저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한국 7대 불가사의』에서 선정한 7개 유산은 한민족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천문학, 누금세공 기술, 청동기 문명, 철기 문명, 인쇄술, 함포 전술, 문자 등 역사의 지평을 넓힌 유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확인한다! 고인돌 별자리는 평범한 돌에 아무렇게나 구멍을 뚫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 과학자들도 놀랄 정도로 별자리 위치가 정확하다. 세계 최초의 석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고구려 고분벽화로 이어지는 고대 천문학의 발달 과정을 통해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어진 우리 선조의 천문 관측과 기록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황금 보검은 금 알갱이와 옥으로 상감한 정교하고 화려한 보검으로 동아시아의 유일무이한 유물이다. 이 유물을 통해 약 7천 킬로미터 떨어진 트라키아 지방에서 만든 보검이 어떤 경로로 경주의 대릉원에 묻힌 사람에게 전해졌는지, 당시에 동유럽과 신라는 어떤 관계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뉴세문경은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든 지름 21센티미터의 청동 거울로 그 안에 0.3밀리미터 간격으로 13,000개의 가는 선을 기하학적인 규칙성을 고려해 화려하게 새겨 넣었다. 확대경과 정밀한 제도 기구를 갖춘 현대의 주조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다뉴세문경을 통해 우리나라 청동기 문명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말과 기사 모두 강철로 된 갑옷으로 무장한 채 적진을 돌파하여 적의 대형을 파괴했다. 고구려가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한민족 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영유할 수 있게 한 당시 철기 문명 수준과 이를 가능케 한 고구려의 경제력을 확인할 수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판목 전체에 글자를 새기고 종이를 얹어 인쇄한 본격적인 의미의 목판 인쇄물이며 조각 기술 또한 매우 정교하다. 목판 인쇄술에 이어 세계 최초로 목활자,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 선조는 어떤 방식으로 인쇄 기술을 축적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수군의 함포는 화포를 선박에 장착해 왜구를 상대로 진포해전과 대마도 정벌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진포해전은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으로 서양에서 근대 함포 해전의 효시로 보는 레판토 해전보다 무려 190년이나 앞선 기록이다.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 무기와 뛰어난 함포 전술이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훈민정음은 창제자와 창제일, 창제 동기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문자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세종대왕은 그토록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28개의 문자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한단고기』에 전하는 가림토와 일본의 신대문자가 훈민정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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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 역사의아침 | 2012-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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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 역사의아침 | 2012-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 시대 대표적 역사학자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고조선과 한사군 문제다. 고조선과 한사군의 강역문제가 중심이 된다. 둘째는『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이다.『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을 처음 제창한 인물은 일제 식민사학자인 쓰다 소우키치인데 그의 이론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근본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지 않고 부분적 수정만 거친 채 한국 사학계의 주류 이론이 되었다. 셋째는 조선 후기사를 노론사관에 의해 서술하는 문제다.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조작해내고, 효종의 북벌에 시종일관 발목을 잡은 송시열이 북벌의 화신인 것처럼 서술하고, 실학의 이용후생학파, 곧 중상학파를 노론이 주도한 것처럼 서술하고, 세도정치를 정조의 책임으로 돌 기술들의 실체를 살펴보고 과연 그것이 옳은가를 검증했다. 넷째는 독립운동사를 말살한 부분이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역사학자는 현대사를 연구하면 안 된다”는 기상천외한 논리로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사를 말살시켰다. 과연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는지, 존재했다면 왜 말살되었는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하루 빨리 우리 사회의 담론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현상의 문제에 집착한 반면 현상을 발생시키는 본질은 상대적으로 무시되어왔다.『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은 바로 그런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우리의 2세들이 앞으로도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으로 왜곡된 역사를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포함하는 식민사관은 침략사관이고 노론사관은 상대에게 닫힌 폐쇄사관으로 두 사관이 가진 침략적, 폐쇄적 성격은 현재 동북아의 화해와 평화 체제 구축에도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 체제 구축의 선구가 되려면 그 시발점은 일제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의 극복에 두는 것이 옳다.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존재했는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식민통치기구 한사군. 고조선과 한나라 간의 전쟁은 한 무제가 사신 섭하涉何를 보내 회유했으나 고조선의 우거왕이 거부한 데서 비롯되었다.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갈 수 없던 섭하는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인 패수에서 자신을 배웅한 고조선의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죽이고 한나라로 도주했다. 한 무제는 섭하를 처벌하는 대신 요동 동부도위遼東東部都尉라는 벼슬을 내려 표창했다. 그러자 우거왕은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공격해 섭하를 죽였고 한 무제는 죄수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해 고조선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인 패수에 대해 일제 식민사학자인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의 주장대로 압록강으로 보거나 이병도의 시각대로 평안북도와 평안남도 사이를 흐르는 청천강이라고 보는 것이 한국 역사학계의 시각이다. 그러나 패수의 위치가 현재의 압록강이나 청천강이라면 고조선과 한나라는 전쟁 자체를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그간 고조선상은 두 가지 사관에 의해 왜곡되어왔다. 바로 중화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이다. 이 두 가지 사관으로 가려진 베일을 걷어내야 진정한 고조선상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사기』,『수경』,『한서』,『삼국사기』,『삼국지』등 1차 사료는 물론, 한반도에서 출토된 중국계 유적과 유물을 정밀하게 분석해 현재 한국 주류 사학계의 고조선사에 관한 정설이 일제 식민사학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원原 고조선상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삼국사기』초기기록은 조작되었는가? 이른바 ‘『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이란 것이 있다. 서기 3~4세기까지의『삼국사기』초기기록은 김부식이 조작한 가짜라는 것으로 현재 주류 사학계의 정설이다. 이 이론의 창안자 역시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우키치다. 쓰다 소우키치의 한국 고대사관은 간단하다. 1910년대 남만주철도회사의 위촉을 받아 쓴『조선역사지리』등의 저서에서 쓰다는 고대 한반도 북부에는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이 있었고 한강 남쪽에는 삼한三韓이라고 불린 78개의 소국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고 서술했다. 그래야 한반도 남부에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를 존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삼국사기』는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에 삼한이 아니라 신라와 백제라는 강력한 고대 국가가 존재했다고 서술할 뿐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서술하지 않았다. 그래서 쓰다는『삼국사기』초기기록이 조작되었다는 ‘『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을 만들어낸 것이다.『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과 임나일본부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임에도 해방 후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는 부인하면서도『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은 그대로 존속시켜 정설로 만들었다. 이렇듯 이 책에서 저자는『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이 만들어진 배경은 물론 이 이론이 우리나라 현행『국사 교과서』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 연구기관의 실태를 샅샅이 파헤쳤다. 노론사관은 어떻게 조선 후기사를 왜곡시켰는가?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에 뿌리를 두고 있는 노론은 장희빈의 왕비 책봉을 계기로 숙종 때 잠시 남인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경종의 왕권을 무력화하려다 소론에게 잠시 정권을 빼앗긴 것을 제외하고는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정권을 장악했다. 정조 때 소론과 남인들이 일시 정계에 진출했으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노론 우위는 계속되었다. 노론의 사상적 배경은 극단적 친명 사대주의와 성리학 유일사상 주의였다.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모든 개방을 거부하고, 사회적으로는 신분제의 완화 내지 폐지를 요구하는 사회 흐름에 역행해 신분제를 강고히 했으며 적서차별과 남녀차별을 극대화했다. 주자학과 다르면 같은 유학이라도 사문난적으로 공격했고, 천주교를 비롯한 다른 사상을 극단적으로 억압했으며 사회변화를 거부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노론의 사관이 조선 후기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것처럼 조작하고, 효종의 북벌정책에 가장 크게 반대했던 송시열을 북벌의 화신처럼 서술하고, 노론 당론과는 상극일 수밖에 없는 실학의 이용후생학파(중상학파)를 노론이 주도한 것처럼 서술하고, 최근에는 정조독살의 혐의를 받는 노론 벽파가 정조의 우당友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모두 조선 후기사를 노론의 시각으로 본 결과물들이다. 이렇듯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고대사 인식체계가 일본 식민사관에 깊게 경도되어 있다면 조선 후기사 인식은 노론사관에 깊게 경도되어 있는 것이다.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는가? 한 나라가 숱한 고초 끝에 독립을 쟁취하고 새 정부를 수립하면 그 직후부터 독립운동사 연구가 붐처럼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은 1980년대 독립운동사와 사회주의사 연구가 붐처럼 일어나 현대사 연구 금지 원칙을 무력화시키기까지 독립운동사는 소수의 연구자들을 제외하고는 전문적으로 연구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껏『국사 교과서』는 무장투쟁보다 식민지 체제 내의 애국계몽운동이나 실력양성운동 등을 위주로 서술해왔으며, 무장투쟁사는 마지못해 이름 정도 적어주는 선이었다. 예를 들어 현행 고등학교『국사 교과서』에는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 조직인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등의 삼부에 대한 내용이 거의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삼부는 이렇게 축소 서술해야 하는 조직이 아니다. 삼부 중 참의부(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 주만참의부)는 1924년 결성 당시 5개 중대에 600여 명의 무장병력을 갖춘 행정·군사 조직으로, 일제 기관에서 발표한 것만으로도 교전 78회, 주재소 습격 56회, 면사무소와 영림서 소각 20개소, 일제 군경 사살 95명의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1924년에는 함경도 혜산을 순시하고 압록강을 따라 신의주로 내려오던 조선총독부의 사이토 마고토[齋藤實] 총독의 배에 수백 발의 총탄을 퍼부어 혼비백산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의부와 신민부 역시 여러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펴가며 항일 무장투쟁운동을 벌였으나『국사 교과서』에서는 이런 사실은 일체 침묵한 채 1940년 임정 산하에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다고만 서술했다. 한국광복군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서기 전 일제가 패망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1920년의 청산리·봉오동 전투 외에는 별다른 무장투쟁 없이 연합국 승전의 부산물로 해방된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과연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이 이렇게까지 축소된 배경에는 어떠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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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새로 보기
신복룡 | 풀빛 | 2013-09-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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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새로 보기
신복룡 | 풀빛 | 2013-09-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사와 관련한 책은 수없이 많다. 이 책도 한국사 책이다.
이 책은 기존의 한국사 책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출간의 의의를 갖는다. 저자 신복룡 씨는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교수로서 한국 정치사를 전공해 왔다. 한국 정치사 연구의 첫 걸음이 우리역사 연구여야 함은 당연한 일. 1950년대 말 우연히 친구의 집에서 조우하게 된 이가 한국 현대사의 전설적인 인물인 박창화 옹이었는데 박옹은 일본 궁내부 도서관의 촉탁으로 10여 년 동안 동경에서 생활하면서 일본이 약탈해 간 자료를 읽으며 식민지 사학으로 왜곡된 역사의 이면을 소상하게 밝혔던 인물이다. 박옹은 1999년에 사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화랑세기花郞世紀]의 원(元) 소장자였다. 그에게서 강렬한 영향을 받으며 신복룡 교수는 제도권 사학과 기성 사학의 오만과 아집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한국사학사를 멍들게 한 것이 일차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지사학이었지만, 지금의 싯점에서 더 무서운 것은 내부식민지사학으로 우리의 역사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또 삼국시대를 조명하면서 신라 중심으로만 보려는 시각에 동의하지 못했으며, 왜 발해를 가르치지 않는지, 왜 백제는 저주받은 땅처럼 기술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교수는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역사가를 배출하지 못한 계급은 그 공적에 관계없이 역사의 주제가 되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이 묘청(妙淸)이든, 신숙주(申叔舟)든, 김성일(金誠一)이든, 원균(元均)이든, 아니면 힘없는 소작농이든 간에,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변론을 해주는 것이 배운 값을 하는 것이라 믿었고, 저들을 옹변(擁辯)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이러한 입장은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그에게 힘든 싸움이었다. 이 모두는 결국 '잘못 배운 한국사'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잘못 배운 한국사'를 교수의 처지에서 가르치기가 더 어려워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 갈등 끝에 쓰기 시작한 책이 이 [한국사 새로 보기]이다. 이 책에는 예민한 대목들이 많다. '한국인은 단일혈통이 아니다' '최만리는 한글창제를 반대하지 않았다' '명성황후의 초상은 없다 ' '전봉준은 동학교도도 접주도 아니었다' '기미년 3월 1일에 있었던 일' 등의 대목이 바로 그러하다. 이 글들은 동아일보에 "신복룡의 한국사 새로 보기" 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어 우리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았으나, 이런 신교수의 역사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나 독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입장은 단호하며 구체적인 전거를 들어 다만 학자로서 사실만을 말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사학계에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풍토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 학계의 현실이고 보면 이 노 교수의 주장은 매우 용기있고 신선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부분이, 사실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책이 바로 이 [한국사 새로 보기]이다. 이 책에는 신문사와의 입장 차이로 게재되지 못했던 10편을 추가 수록하였고 연재시 반론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도 함께 실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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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일회담과 반대운동
이재오 | 파라북스 | 2013-10-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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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일회담과 반대운동
이재오 | 파라북스 | 2013-10-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이재오의 민주화운동사 정리 (전 2권)
농촌운동가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했으나 1965년 한일협정 비준 반대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제적당하고 강제 징집되어 군으로 간 청년 이재오. 그는 이후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다섯 차례의 옥고와 모진 고문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꺾지 않았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던 민주수호 청년협의회의 2대 회장,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1990년 기층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창당한 민중당의 사무총장 등 민주화운동의 주역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가 1984년 ‘한국 학생운동사’와 ‘한일회담과 반대운동’을 정리한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들은 학자가 아닌 민주화운동가가 정리한 민주화운동사로서, 운동가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역동적이고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1년, 27년 만에 개정판을 내놓았다. 4선 국회의원이며 특임장관을 지낸 정치인 이재오, 민주운동가로 살아온 그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 이 책들은 당시 시대의 기록이자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유용한 사료가 될 것이다. ≪한일회담과 반대운동:1951~1965년≫ ≪한일회담과 반대운동:1951~1965년≫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은 받아 한일회담의 배경과 과정, 의제, 경제적 배경과 영향까지 낱낱이 분석하고 당시 거셌던 반대운동까지 다룬 책으로, 한일회담을 둘러싼 당시 시대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기록한 도서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독도문제는 우리에게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일본은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와 더불어 독도문제에 관련해 계속해서 도발적인 행위를 해오고 있다. 한일관계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인식이 매우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일회담은 구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한반도에 다시 진출하는 계기였다. 또 비밀협상을 통해 당시 양국이 팽팽히 맞선 쟁점을 해결한 졸속외교의 산물이었으며,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연장을 목적으로 강행한 굴욕외교의 결과였다. 한일회담의 굴욕적 타결은 이후 한일관계의 실상을 대변한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 미국의 주선으로 시작된 한일회담이 14년이 흐른 1965년 정식 조인되기까지의 과정과 1964~1965년 2년 동안 처절했던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다시 조명하는 일은 한일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출발이고, 그 과정에 대한 반성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민족의 자존적 기개를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는 “우리 젊은이들로부터 점점 잊혀져가는 한일회담과 그 반대운동의 실상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라고 말하면서, “우리 현대사 공부의 한 사료적 가치로 사용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동집필한 이 책을 대표저자로 출간하게 된 경위를 밝히면서, 이 책의 “판매인세 전액을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피해당한 분들에게 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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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
김병모 | 역사의아침 | 2012-06-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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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
김병모 | 역사의아침 | 2012-06-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3-06)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김수로왕비가 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혼인길과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쌍어신앙을 추적하는 흥미진진한 고고학 탐사! 김해의 수로왕릉에 그려진 물고기 한 쌍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수로왕비가 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어떤 경로로 한국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고고학자 김병모의 쌍어신앙 연구는 허황옥의 고향과 쌍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인도와 중국을 비롯해 네팔ㆍ파키스탄ㆍ영국ㆍ독일ㆍ미국ㆍ이란 등을 답사하면서 40여 년간 이어진다. 쌍어신앙을 믿은 사람들은 지중해에서부터 한반도까지 넓은 지역에 살았으며, 기원전 7세기경부터 서기 1세기경까지 육로를 통해 접촉했다. 아시리아ㆍ바빌로니아ㆍ페르시아ㆍ스키타이ㆍ간다라ㆍ마가다ㆍ운남ㆍ사천ㆍ가락국ㆍ야마다이고쿠 등지에 걸치는 광범한 내륙 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쌍어는 만물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었다. 이 책의 여정을 따라 저자의 고고학 탐사 대장정에 동참함으로써 유라시아 지역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쌍어신앙의 역사적ㆍ종교적ㆍ문화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허황옥의 고향 보주普州를 찾아서 1961년 여름, 대학생이던 저자는 자신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을 방문했다가 왕릉 대문에 그려진 물고기 한 쌍을 보고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신어神魚라고 부르는 이 물고기는 인도식 탑과 비슷한 물체를 마주 보고 있었는데 이런 종류의 그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로왕릉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왕비의 무덤 앞 능비에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고 과연 지금부터 2천여 년 전에 인도 여인이 머나먼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해졌다. 이러한 궁금증은 그로 하여금 46년에 걸쳐 가까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인도ㆍ네팔ㆍ파키스탄ㆍ영국ㆍ독일ㆍ미국ㆍ이란 등을 구석구석 답사하며 쌍어신앙을 연구하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아유타국이 기원전 7세기경 아리아족이 세운 인도 코살국의 중심 도시 아요디아이고, 중국에서 일어난 한나라와 흉노의 대립에 영향을 받아 아요디아의 지배계급과 지식인들이 동쪽으로 이주해 지금의 중국 사천성 안악현(보주)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허황옥이 서기 47년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가락국으로 왔음을 밝혀냈다. 또한 허황옥의 이름 앞에 보주태후라는 칭호가 붙은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안악현 내에 보주 허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서운향과 민주향을 방문하게 되고, 허씨의 종산宗山 암벽에 새겨진 「신정神井」에서 ‘허황옥’이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이로써 아득한 옛날의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알려진 허황옥의 혼인 여행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인도와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전파된 쌍어신앙 쌍어신앙은 신석기시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했으며, 쌍어는 기원전 12세기에 그 지역에서 아시리아 문화가 꽃피기 시작할 때 만물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그 후 아시리아의 사제들은 인간과 인간의 생활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물고기 모양의 사제복을 입고 의식을 집행했으며 그런 물증들이 인장印章으로 나타나 있다. 쌍어신앙은 바빌로니아 시대에도 계속되어 왕권의 상징처럼 쌍어문이 유행한다. 그것이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던 민족들의 이동으로 서쪽으로는 지중해로,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로마의 탄압을 받던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쌍어신앙은 물고기 아이콘으로 서로 기독교인임을 확인했고, 지하교회인 카타콤에 오병이어(떡 다섯 개가 가운데 있고 물고기 한 쌍이 양쪽에서 떡을 보호하는 그림)를 그려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요한복음의 내용을 전한다. 한편 쌍어신앙은 흑해를 근거지로 일어난 기마민족인 스키타이를 통해 중앙아시아 전역과 알타이 산악지대의 유목민들에게 퍼졌다. 이런 과정에서 쌍어신앙은 각 지역의 토착 신앙의 내용들과 섞여서 인도 대륙에 흡수되었고, 그것이 힌두교와 불교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기원전 8세기부터 3세기 사이에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스키타이족들은 타고 다니던 말의 이마에 쌍어문을 부적으로 달고 다녔고, 말안장도 쌍어문으로 장식했다. 그 전통은 오늘날 파키스탄 간다라 지방을 운행하는 자동차에 그려진 쌍어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쌍어신앙이 인도인의 이민으로 중국의 운남, 사천 지방의 주민들에게도 퍼져나갔고, 북쪽으로는 라마교를 통해 몽골의 초원 민족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이렇게 하여 쌍어신앙은 사천 지방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허황옥 일행에 의하여 가락국에 퍼졌고, 그것은 다시 가락국 출신들의 일본 이민으로 일본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만물의 수호신 쌍어 불가에서는 물고기가 석가모니를 보호하는 동물로 되어 있으며, 몽골의 풍속에는 물고기가 사람보다 눈이 좋아서 물속에서도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지 또는 위험에 처했는지 살피며 밤이나 낮이나 자지 않고 사람을 보호하는 신적神的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또한 몽골의 전통 종교인 라마교에서는 물고기를 팔보八寶 중 하나로 여기며, 그래서 몽골인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물고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나 꽃, 신관神官이나 신물 등을 보호하기도 한다. 수로왕릉의 쌍어는 가운데 탑을 보호하고 있으며, 김해의 은하사에 있는 쌍어는 가운데 꽃을 보호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화를 보여주는 페르가몬 박물관의 한 방에는 높이가 사람 키만 한 커다란 수조水槽 바깥벽에 특이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데 어피복魚皮服을 입은 사제가 넘쳐흐르는 물병을 손에 든 수신水神 오아네스를 호위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물고기 상징의 복장을 한 사제는 초자연적 능력을 갖춘 물고기, 곧 신어神魚를 의미한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약을 생산하는 커다란 나무의 뿌리를 보호하는 물고기 두 마리 이야기를 통해 물고기가 인류를 모든 질병에서 구해준다는 믿음에서 신년축제 때 금붕어를 사며, 일본에서는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는 의미로 ‘고이노보리’ 민속축제 때 종이로 물고기를 만들어 장대에 매단다. 이처럼 쌍어는 사원의 대문에서 군왕이나 신을 지켰고, 신령스러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막이나 물속에서 버텨 서 있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달리는 말의 이마나 안장에도 쌍어는 수호신으로 매달려 있었고, 자동차나 인력거에도 수호신으로 장식되었다. 중국에서는 여행자들의 숙소나 식당, 돈을 지키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한국에서는 왕릉의 대문과 부처님을 모시는 수미단에 장식되었고, 왜국에서는 여왕의 옷을 장식하는 무늬로, 후세에는 재물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神社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쌍어는 한국 민속에도 오래 남아서 가게나 식당의 입구 안쪽에 매달린 북어 두 마리로 끈질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는 물고기가 무언가를 보호하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들어왔고, 이 사상을 전파한 사람들의 이동 흔적이 세계 곳곳에 쌍어문으로 남아 있음을 수십 년간의 추적으로 밝혀냈다. 생생한 현장기록으로 유라시아 역사의 주요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힌두교와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문화권까지 널리 퍼져 있는 쌍어신앙의 역사적ㆍ종교적ㆍ문화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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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존과 화해의 한국현대사
김인호 | 국학자료원 | 2013-11-0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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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존과 화해의 한국현대사
김인호 | 국학자료원 | 2013-11-0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공존과 화해의 한국현대사』는 과거의 축적에 겸손한 학문으로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공존’의 의미를 강조한 한국 현대사 책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을 중심으로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다는 방식을 취했으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작가 개인의 역사적 사색을 수록했다. 권말에는 우리 현대사의 몇몇 사건들과 관련 사료를 실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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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를 말하다
이덕일 | 역사의아침 | 2012-09-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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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를 말하다
이덕일 | 역사의아침 | 2012-09-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 시대의 역사학자 이덕일,
잃어버린 근대, 100년을 날카롭게 해부하다! 우리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 근대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근대는 왠지 낯설고 불편하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고대와 중세보다도 더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라를 빼앗긴 채 온갖 핍박과 오욕으로 얼룩진 암흑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종 때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식민지 체제에 들어가면서 강제로 근대에 편입된 게 우리의 역사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를 만든 씨앗이 근대의 역사 속에 있다. 시대와 인물을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저술에 힘쓰고 있는 저자 이덕일이 고대사, 조선사에 이어 이번에는 근대사 조명에 도전했다. 특히 그는 한국 근대사, 그중에서도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이 책은 남다른 애착과 열정을 쏟아부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번 책은 우리 역사에서 유독 외면당했던 근대를 통찰함으로써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한국 사회의 갈등 치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그동안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독립운동’과 ‘친일’ 두 개였다. 독립운동도 임시정부 중심의 우파 부분만 얘기돼왔다. 하지만 이 안에는 사회주의도, 아나키즘도 있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것은 모두 독립운동사에서 시작된 것이고 현대사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사는 지금까지 관심 밖이었고 무시해온 측면마저 있다. 당시 존재하던 다양한 세력들을 두루 살펴야 우리의 근대사를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친일도 획일적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시대 구분이 필요하고, 또한 중층 구조로 설명할 필요도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는 ‘전체’가 아닌 ‘부분’이다. 이제는 협소한 프레임을 넓혀야 한다. 이 책은 당시 존재하던 다양한 세력과 양상들을 주어진 ‘팩트’를 통해 두루 조망함으로써 근대를 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한다. 망국에서 독립운동까지! 아픈 역사, 100년의 시간 속으로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53가지 ‘근대’의 풍경 근대를 사유하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오늘에 이를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까? 이 책 『근대를 말하다』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차별화된 역사의식을 선보이고 있는 이덕일이 현재 <중앙 SUNDAY>에 연재하고 있는 인기 코너 ‘이덕일의 事思史-근대를 말하다’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망국의 풍경으로부터 시작되는 한국 근대의 역사를 53가지 키워드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에서부터 일제의 잔인한 식민 통치, 식민지 시대의 다양한 풍경들, 독립운동의 씨앗과 발전 과정, 망명정부와 만주의 삼부 통합 운동까지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 특히 현장과 인물, 자료 사진을 100여 장 수록하여 근대를 좀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동시대의 지식인들도 제대로 알기 어려웠던 것이 지난 100년의 사건들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 팩트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역사 읽기란 일정한 방향이 있는 수많은 팩트 읽기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객관적인 팩트를 통해 지난 100년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제공한다. 근대를 구성하고 있는 팩트를 접하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상당 부분들이 지난 세기에 이미 벌어졌던 일들의 재현이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난 세기의 어떤 사건들은 흡사 현재를 읽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저자는 다양한 팩트를 제시함으로써 과거사를 단순하고 획일적으로 보던 시각에서 탈피해야 함을 역설한다. 예컨대 항일무장투쟁도 1920년대 초반이 절정기였다. 만주에 자리 잡은 참의부ㆍ정의부ㆍ신민부 등 항일무장 조직은 압록강을 넘어 파출소를 타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100번 넘게 펼쳤다. 또 일본 총독이 탄 배에 수백 발의 총탄을 퍼붓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들이 다 묻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가 특히 1차 사료의 근거를 제시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 이유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역사 해석권을 주고, 당파적ㆍ식민사학적 관점을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팩트 읽기를 통해 ‘근대’의 또다른 맨얼굴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망국의 징후를 외면하지 마라! 얼룩진 근대 풍경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한국 민족에게 근대라는 말처럼 압도적인 무게를 안겨주는 용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지난 100년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고 어두운 터널이었다. 그만큼 어두운 미로여서일까? 이 시기처럼 많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아는 것이 극히 적은 시기도 드물다. 역사의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조선이 먹이로 전락한 뿌리는 1623년의 인조반정 체제에 있고,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데 있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과 그 후예인 노론은 조선을 시대착오적인 사회로 끌고 갔다. 대한제국 멸망이 더욱 비극적이었던 것은 인조반정 이래 300여 년간을 집권했던 노론이 국망(國亡)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일제에 협력해 집단적으로 매국에 나섰다는 점이다. 76명에 달하는 왕족과 지배층이 일제에서 주는 합방공로작과 은사금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 한쪽에서는 북풍이 휘몰아치는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듯 나라의 패망 시기에 엇갈린 판단으로 자신의 길을 찾았던 이들의 행보를 통해 우리는 역사가 주는 냉정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망국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이제는 진지하게 우리를 한번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냉철한 사고로 잘못된 과거를 심판하고 현재를 바로세워야 한다. 외면하고 싶었던 ‘아픈 근대’를 이젠 정면으로 마주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근대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이 책은 그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역사 속에 길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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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를 산책하다
김종록 | 다산초당 | 2013-04-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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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를 산책하다
김종록 | 다산초당 | 2013-04-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장소’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공간인 그 장소들은 찾는 이로 하여금 문화적 정체성을 느끼고 의식적인 애착을 갖게 한다. 우리가 수용한 근대의 원형이 있는 그 장소들에서 나는 다채로운 근대의 스펙트럼을 보았고 숱한 역사 인물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때로는 흥분을, 때로는 아쉬움을, 때로는 울분을 느꼈고 격세지감에 빠지기도 했다.”
(머리말 중에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장소에 근대의 역사가 살아 있다 문화유산 36곳을 통해 한국의 근대사를 엿보다 우리 주변의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 150년을 돌아보는 『근대를 산책하다』는 방대한 문헌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를 해온 인문학자 김종록이「중앙SUNDAY」의 인기 칼럼 ‘사색이 머무는 공간’에 2010년부터 2011년까지 2년 가까이 연재한 취재기사를 보완하여 묶은 것이다. 저자는 교과서에 나오는, 그러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장소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를 감행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공간 36곳을 통해 근대 역사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 근현대사의 창 서울역, 이상의「날개」에 나오는 보랏빛 스펙트럼 신세계백화점, 개화기 신문로의 통로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웨스틴조선호텔, 인권 신장과 민주화를 이끈 한국의 바티칸 명동대성당, 대학민국 의료의 표준이 세워진 서울대학병원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해온 장소들을 테마별로 소개한다. 각 장소들에 새겨진 역사적 사실과 숨은 에피소드가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어우러져 학생과 교사,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뭐든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아무리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라도 그곳의 의미를 모른다면 스쳐지나가는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다. 서울을 비롯해 우리 주변에는 옛 기억을 간직한 수많은 장소가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의 현장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당연하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 이 자리에 없으니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 장소의 기억들을 찾아내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근대를 산책하다』는 일상을 산책하듯 근현대사의 주요 장소를 둘러보며 그 속에 담긴 역사를 찾아내는 책이다. 저자가 안내하는 친숙한 장소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제와 오늘이 자연스럽게 포개지고 보이지 않던 숨은 의미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서울역, 신세계 백화점, 웨스틴조선호텔, 이화학당, 서울대학병원… 문화에서 교육, 생활상까지 한국 근대사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다 “20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을 맞이했다. 1910년 경술년 8월 29일, 역사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왔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 꼭 100년이 된 것이다. 치욕의 역사는 뒤로한 채 오늘날 대한민국은 눈부신 산업화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고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머리말 중에서) 『근대를 산책하다』 는 근대의 현장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끄러운 근대사를 감추거나 외면하고 우리 식으로 자위하거나 미화해왔다.”하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우리의 근대를 되돌아보고 우리 식의 미래를 설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러한 의문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2년여 동안 사료를 모으고 틈틈이 근대 현장을 답사한 결과, 『근대를 산책하다』의 원고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이 책을 따라 읽는 시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역사 속 인물의 숨결과 사건의 자취를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근현대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쉽도록 교육?문화, 종교, 정치?외교?금융, 시설, 생활 등으로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1장에서는 역사 속 전인교육의 다양한 현장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전야의 풍경을 더듬어볼 수 있는 ‘정동 배재학당’, 한국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이자 여성 지도자의 산실 ‘이화학당’, 율곡?다산?추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조선왕조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기혼자라는 이유로 이화학당의 입학을 거부당한 하란사가 “내 삶이 이렇게 어둡습니다. 제발, 밝은 학문의 빛을 열어주세요.”라고 말한 대목은 당시 이화학당에서 벌어졌던 한 편의 드라마로 전해진다(31쪽). 최초의 서점 회동서관의 맥을 잇는 도심 속 지식의 오아시스 ‘교보문고’와 우리 문화 콘텐츠의 자산을 쌓아온 ‘한국고전번역원’, 일제와 맞선 1만 3천부의 힘 ‘매일신보사 터’, 대한민국의 지식수도 ‘국립중앙도서관’, 우리나라 방송의 현대화 출발점인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을 통해서 근대사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한눈에 보여준다. 2장에서는 근현대사의 아이콘인 종교적 장소들을 소개한다. 이 장에서 언급되는 역사의 현장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푸른 눈의 이방인들이 잠들어 있다”(109쪽). ‘양화진과 절두산 성지’,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승동교회’, 인권 신장과 민주화를 이끈 한국의 바티칸 ‘명동대성당’, 신문화운동의 요람인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 일제 불교 세속화에 맞서 한국 근대 불교의 새벽을 연 ‘대각사’, 조화와 중용을 말해주는 강화도 ‘성공회 강화성당’ 등이 바로 그곳이다. 3장에서는 정치, 외교, 금융의 중요한 온상지들을 소개한다. ‘정동 옛 러시아 공사관’과 근현대 120년 격동의 역사를 목격한 ‘용산공원’, 일제 만행을 증언하는 ‘서대문 독립공원’, 경제 정채의 산실 ‘문화체육관광부 옛 청사’와 한미 교류사의 핵심 ‘미국대사관’이 사건의 현장들이다. 특히 한국경제를 이끈 금융심장 ‘한국은행과 화폐금융박물관’에서는 대한민국 화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온통 돈 천지인 화폐금융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돈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 구원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행복은 돈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240쪽). 그리고 한국의 심장 ‘청와대’를 통해 아로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창덕궁과 이왕직 청사 터’와 ‘강화도 외규장각’ 등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풍광을 만나볼 수 있다. 4장에서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의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들을 소개한다. 인천에 상륙한 근대의 대표적인 풍경인 ‘제물포 개항장’은 답사 코스로 인기가 높은데 서울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도 바로 이곳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에도 100년의 역사가 있는데, 이 등대는 이방인 선박들의 충실한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291쪽). 한국 근현대사의 창 ‘서울역’, 수도권 2300만 명이 마시는 생명수의 원천 ‘팔당댐, 팔당호, 수도박물관’, 관세주권의 수호자 ‘서울본부세관’, 미래 블루오션의 전진 기지 ‘서울 기상관측소’, 돈과 권력이 모이는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 여의도공원’ 등도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다. 5장에서는 근대적 공간으로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치는 곳을 이야기한다. 흔히 욕망의 환기구로 통하는 백화점은 “우리 근대 문화사의 보랏빛 스펙트럼”이다. 식민지 시절, 우리는 일본 자본에 의해 세워진 백화점의 화려한 불빛에 도취되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바로 그 미쓰코시백화점의 원형을 잇는 곳이다. 미쓰코시백화점은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에서 주인공이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외친 바로 그곳이다. 오늘날 이곳에서 쇼핑을 하면서 이상의 날개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웨스틴조선호텔’, 600년 역사를 담은 ‘재동 백송’, 대한민국 의료표준이 세워진 ‘서울대학교병원’과 ‘연세대학교 의료원’, 지은 지 82년이나 된 ‘충정아파트’에서도 근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근대의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보인다. 이 책에 소개되는 근대 현장들은 “때로는 흥분을, 때로는 아쉬움을, 때로는 울분을 느끼고 격세지감”에 빠지게 만든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장을 덮었다면 이제 책에서 소개한 장소들을 직접 찾아나서도 좋겠다. 지도를 펼쳐놓고 순서를 정해도 좋고 가까운 곳부터 찾아도 좋다. 어느 바람 좋은 날 혼자서 떠나도 좋고, 친구나 연인과 함께 길을 나서도 좋겠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곳곳에 담긴 사연들을 멋스럽게 덧붙이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전통과 현대, 자연과 문명이 잘 조화된 도시 서울. 정동과 명동성당에서 인천의 팔미도 등대까지,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한 장소들에서 150년이라는 시간의 깊은 향과 숨결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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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불온한 선비다
이종호 | 역사의아침 | 2012-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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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불온한 선비다
이종호 | 역사의아침 | 2012-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가 외면한 과거, 새로운 의미 찾기의 여정
그리고 그 여정의 즐거움! 지금의 우리가 읽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임과 동시에 누군가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흔적이다. 그렇게 ‘의미 부여’에서 소외된 과거의 사실은 단지 ‘기록’으로만 남아 후세에 전한다. 이에 <틈새 한국사>는 그 동안 ‘의미 부여’에서 소외된 과거의 기록들을 찾고자 한다. 그 기록들은 ‘인물’일 수 있으며, ‘문화’나 ‘사회’의 모습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간과한 과거의 기록들이 이 시리즈에서 의미를 가진 또 하나의 역사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대의 주류와 다른 삶을 산 조선의 문제적 인물, 9인을 말하다 이 책은, 조선을 지배한 사상적·정치적 경향과는 다소 비켜서 있는, 그래서 동시대를 함께한 ‘주류’와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며 ‘세상과 다른 꿈을 꾼’ 아홉 명의 사상가를 이야기한다. ‘광인’ 김시습, ‘비범한 보통인’ 서경덕, ‘반주자학자’ 박세당, ‘양명학자’ 정제두, ‘시골 서생’ 이익, ‘과학사상가’ 홍대용, ‘천주교인’ 이벽, ‘역사에서 사라진’ 유수원, ‘경험주의자’ 최한기가 바로 그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들의 남다른 일생과 사상, 그리고 사회인식 등을 조망함과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살다 간 당대의 조선을 살피고자 한다. 더불어 그들의 삶과 사상이 현대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함께 생각한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개혁 요구 오랜 동안 고착된 제도(혹은 관념 등)들 중에는 시대가 지나면서 보완할 필요가 있거나, 혹은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맞게 아예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까닭에 사회 구성원들의 다수가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지만 그것을 개혁하거나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불편한 ‘지금의 현실’, 그리고 고착되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이 작용하는 제도 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개인과 사회의 노력은, 형태나 방법 그리고 결과는 다르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역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국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유수원, 이익, 홍대용 등은 서로 다른 시대(이익과 유수원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공통적으로 현실의 폐단을 비판하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 개혁과 사회의 보편적 인식 변화 등을 요구한다. 때로는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이들의 관념과 주장 등을 통해 저자는 당시 조선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함께 파악하고자 노력한다. 성리학 중심의 관념에 도전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탱한 두 기둥은 국왕과 양반 중심의 신분제와, 사상 및 철학의 근간이 된 성리학이었다. 특히 성리학은 학문이기 이전에 구성원들의 보편적 인식은 물론 그들의 사고와 행동 등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 규범이자 철학이며 종교적 도그마였던 까닭에, 신분제와는 달리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또한 조선의 기득권을 유지한 양반들에게 성리학의 부정은 곧 자신들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성리학에 대한 논의는 학문적인 관점, 철학적인 관점에서만 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대부들이 성리학만을 절대지표로 삼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반주자학의 길을 간 박세당이나, 성리학과 다른 양명학을 공부하고 교육시킨 정제두, 그리고 유학 자체를 부정하고 그 자리를 천주교로 대체하려 한 이벽 등의 삶과 사상 등을 통해 성리학이 거의 모든 것이었던 시대에 성리학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것을 모색한 조선 지식인의 한 부류를 살핀다. 완벽할 수 없는 그들의 사상과 삶 시대의 주류에서 다소 비켜 서 있는 아홉 명의 인물을 소개하는 이 책은 그들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미화하거나 혹은 그들을 순교자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대의 주류와 분명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사상이나 주장 속에서 보이는 한계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유수원은 양반에게 과세, 신분 차별이 없는 과거제도 실시 등을 주장했지만 서얼 차별 금지와 같은 신분제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으며 놀고먹는 양반들의 농업 종사와 노비제 폐지, 과거제 개선을 주장한 이익은 입신이 쉽지 않은 몰락한 남인가(家)의 인물임을 환기시킨다. 또한 평생을 주유천하하며 지낸 김시습이나 개경의 화담가에서 제자들을 기르며 생활한 서경덕의 경우 그들이 ‘관직’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출사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독자들은 역사 속에 정형화되고 박제가 된 모습이 아닌 조금은 인간다운 그들의 실체에 좀더 내밀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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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 역사의아침 | 2012-04-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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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 역사의아침 | 2012-04-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주자학朱子學을 유일사상으로 받들어 양명학陽明學을 이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신분제를 강요해 백성을 노예로 만든 노론. 그들의 권력은 지금까지도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한다. 300년 전 노론사관이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으로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학문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론 후예 학자들이 해방 이후 학문 권력을 틀어쥔 채 역사 왜곡을 일삼는 현실과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모순적 연구 풍토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에 대한 논쟁이 왜 노론사관의 뿌리 깊은 독선과 매도, 날조와 조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냉철한 시선으로 비판한다. 모든 권력은 역사를 통제하고 조작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도 지배한다. 노론은 주자학朱子學을 유일사상으로 보는 닫힌 세계관 때문에 주자학과 다른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했다. 양명학陽明學을 이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신분제를 강요해 노예로 만들었다. 그 결과 조선 후기 사회는 ‘노론 천국, 백성 지옥’이 된다. 뿐만 아니라 노론은 나라를 팔아먹는 데 조직적으로 가담한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수작자受爵者를 분석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최고위직인 후작을 받은 이완용李完用과 이재완李載完, 이재각李載覺, 이해창李海昌, 이해승李海昇 등 왕실 인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수작자는 사실상 ‘노론당인 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노론 일색이다. 76명 중 80퍼센트에 가까운 57명이 노론이다. 300년 전 노론사관은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독점하고 있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해방 이후 학문 권력을 틀어쥔 채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으며, 스승과 기존 학계의 논리를 비판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풍토 때문에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책은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에서 시작하여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모순적인 연구 풍토를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에 대한 논쟁을 통해 노론사관의 뿌리 깊은 독선과 매도, 날조와 조작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기존 역사학계의 권위주의, 보수성, 학벌 카르텔에서부터 통섭을 거부하는 편협한 학자들까지 문제 많은 한국 역사학계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사도세자의 고백』과 『한중록』에 담긴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 2010년 12월 이른바 ‘대한민국 특급 인문학자’ 3명 중 한 사람으로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정병설 교수가 인터넷 강좌 ‘우리 시대의 명강의’ 「권력과 인간」 온라인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첫 회인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에서 정병설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덕일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역사비평』 봄호 「길 잃은 역사 대중화」에 이덕일과 『사도세자의 고백』비판 전문을 게재했다. 이어서 2011년 여름 정병설은 EBS 에서 같은 내용을 강의했다. 정병설은 왜 이덕일을 공격하는가? 정병설의 책 『한중록』의 사도세자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의 사도세자는 왜 전혀 다른 인물로 그려지는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사도세자는 왜 지금도 노론의 희생양으로 공격받고 있는가?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정병설과 이덕일의 상반된 관점에서 시작하여 2009년 2월 발견된 정조 어찰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덕일과 유봉학, 안대회의 논쟁, 십만양병설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 이덕일과 오항녕의 논쟁 등을 통해 노론 후예 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 집요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역사학계에 뜨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덕일이 왜 노론과 식민사관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은 또 어떻게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석주 이상룡,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겸 민족사학자와 조선총독부 사이의 대립 이후 노론 이데올로기와 식민주의 학문 체계는 해방 후 단 한 번도 해체 과정을 밟지 않고 학문 권력을 틀어쥐었다. 해방 직후의 식민사학 청산 움직임은 반민특위의 좌절과 함께 무너졌고, 이때부터 식민사학계는 절대 학문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과 다른 논리, 곧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재야 사학으로 매도해 배척했다. 그 후에도 전선은 계속 대치하고 있었으나 식민사학은 너무 강고했고 민족사학은 너무 미약했다. 이들의 뿌리가 식민사학뿐 아니라 노론에 있기에 그토록 강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일본인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역사를 공부했다. 그들이 배운 역사는 다름 아닌 한국사 매도다. 2011년 출간된 역사학계 원로 김용섭 선생의 회고록(『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과 사회학계 원로 최재석 선생의 회고록(『역경의 행운-파란 많은 고난을 헤쳐 나온 한 노학자의 회고록』)은 식민사학자들의 모순된 논리와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김용섭 선생이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겪은 일화(『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279~283쪽)는 조선총독부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역사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금기가 많다. 왜 금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학문 권력이 자신의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생생한 증언과 사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식민사학과 노론의 사진死眞을 찢고 사진寫眞을 찍다! 역사 논쟁은 가장 치열한 사상 논쟁이다. 역사적 팩트에 기초해서 치밀한 논증과 추론을 구성하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겸허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런데 노론 후예 학자들은 희한한 궤변을 만들어 노론의 가치를 비판하는 상대를 매장하고 거세한다. 역사 연구의 기초인 사료 비판을 배제한 채 닫힌 사고에 갇혀 학문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움켜쥐고 있는 노론은 자신들과 다른 이론을 내세우거나 연구하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조선 후기부터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고 유지해온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을 철폐하는 일이 한국사의 원형과 진실을 바로잡는 일이며, 한국 사회를 혁신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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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한제국아 망해라
윤효정 | 다산북스 | 2013-04-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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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한제국아 망해라
윤효정 | 다산북스 | 2013-04-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은 스스로 붕괴되고 있었다! 백성들의 시선으로 본 망국사의 진실!
- 고종의 숙부 흥인군은 곳간에서 꿩고기와 동태가 썩어나갈 정도로 백성들을 수탈했다. - 대원군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며느리의 시신이 없는데도 국상을 반포했다. - 대원군이 머물던 운현궁에서는 폭약 테러 등 암살 기도가 이어졌다. - 익산군수의 폭정에 분노한 농민들은 그 어머니의 생식기를 볏짚으로 세탁했다. - 고종 시대에는 매관매직이 너무 심해 심지어 개에게까지 벼슬을 팔았다. - 보은현감 이규백의 부인은 단발령에 항거하여 스스로 자결했다. -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백성들은 민비가 정치를 잘못한 탓이라며 그녀를 조롱했다. - 친일 내각의 수장 김홍집이 처형되자 백성들은 그의 살을 베어 먹었다. - 친러파 김홍륙은 커피에 아편을 넣어 고종과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 - 친일파 대신 어윤중은 신변 안전을 꾀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다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 - 무장 김재풍은 비명에 간 국모의 복수를 꾀하다 계획이 발각되어 끝내 처형되고 말았다. 백성들의 시선으로 본 반성의 역사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우리 민족은 역사상 유래 없는 치욕의 날을 맞았다. 경술국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성들의 마음이 살아 숨 쉬는 역사서는 찾아보기 드물다. 이 책은 조선의 마지막 지사 윤효정(1858~1939)이 백성들의 피와 눈물과 웃음을 담아 쓴 살아 있는 구한말사이다. 윤효정은 갑오개혁 후 탁지부주사로 있었으며 1898년 황태자 대리청정 기도 사건이 발각되자 일본으로 망명, 그 곳에 피신해 있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관련자 우범선을 고영근을 시켜 죽이게 하고 귀국했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망국의 현장을 지켜보는 백성들의 마음을 똑똑히 기록함으로써 훗날의 경계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단순히 일본의 침략에 의해 조선이 멸망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권력층이 썩었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백성들의 시선으로 본 반성의 역사이다. 지배층에 대한 조롱에서부터 국모 복수 사건까지 진실의 조각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 <헌종부터 고종까지 망국의 역사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2부 <파란의 세월을 살다간 대원군과 민비>, 3부 <정변과 전쟁, 그리고 요동치는 백성들의 마음>, 4부 <망국을 주도한 역적들과 민중들의 희망 독립협회>이다. 1부에서 저자는 탐관오리 어머니의 생식기를 세탁한 민중들의 봉기, 돌팔매질로 외국 군함을 물리친 민초들의 분투, ‘윤장작·이도끼·장풀무’로 불린 비리 재상들에 대한 조롱 등 기존의 망국사 뒤에 숨겨진 생생한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2부의 주인공은 대원군과 민비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대원군과 민비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조선의 국모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것으로 알려진 민비는 벼슬자리를 판 돈으로 연회를 즐기고 자기 소생의 원자를 세자로 책봉시키기 위해 정치 전략을 세운다. 대원군 역시 정치권력을 위해서라면 친형이라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3부에서는 김홍집 친일 내각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 황태자 대리청정 모의 미수 사건 등 역사의 틈새에 가려져 있는 이야기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4부에서는 이완용, 송병준, 어윤중 등 거물급 인사들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와 함께 민중들의 희망이었던 독립협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또 어떻게 투쟁했는지가 자세하게 묘사된다. 여기에서도 고종 독살 미수 사건, 국모 복수 의거 사건 등 굵직한 비사들이 소개됨은 물론이다. 민초들의 혼이 담겨 있는 역사라야 진정한 역사다! 민초들의 혼과 숨결이 담겨 있는 역사라야 진정한 역사이다.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갑신정변이니 을사보호조약이니 하는 박제된 단어들로 대한제국기를 재단했다. 이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우리 역사는 텅 빈 공백지대로 남게 되었다. 이 책에서 윤효정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면서, 혼란과 격동의 사건들 속에서 돌을 던지고 야유를 퍼붓고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던 민초들의 감정을 되살려 낸다. 망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지금 나라의 장래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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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와 인류의 미래
김대선, 카르멜텐스 | 도서출판 수선재 | 2013-05-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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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와 인류의 미래
김대선, 카르멜텐스 | 도서출판 수선재 | 2013-05-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인의 시원인 동이족(東夷族)의 실체를 우주적 시각에서 파헤친 책. 이집트, 수메르, 마야 등 고대문명의 수수께끼는 오늘날의 고정관념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이들 놀라운 문명들은 우주인들의 직간접 지원을 받은 결과이다. 동이족의 문명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한 개입이 있었는바, 우주에서 가장 영성이 높은 인격체인 ‘선인(仙人)’이라는 분들이 지상에 개입하여 만든 인종이 바로 동이족이다. 그 동이족의 숨겨진 역사가 밝혀진다!
환인 선인의 동이족 문명 건설 프로젝트, 만주의 홍산문명은 환웅 선인의 배달국 문명이었다는 진실, 환단고기에 일부 오류가 발생한 이유, 중국이 동북공정을 단행하는 숨겨진 이유, 일본이 한반도에 품은 1,000여년의 원한, 지구의 차원 상승과 동이족의 사명 등 숨겨진 진실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