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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
[역사] 이명박 대통령실록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2015-09-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
202 |
[역사] 이명박 대통령실록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2015-09-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강추!〉“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출신도, 성격도, 성향도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_ 들어가는 말 중에서
역사서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킨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박영규가
제대로 풀어낸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
복잡하고 헷갈리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여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썼다는 평가를 받으며, 17년 동안 300만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일반인에게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역사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저자 박영규가 이번에는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을 통해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를 제대로 풀어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다. 반세기를 지나며 10명의 대통령이 재임했고, 어떤 이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사회적 향방이 크게 달라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통령의 권력 의지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대통령은 한 시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대통령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그 개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 시대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가 재임 시에 무슨 일을 했는지가 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는 의미다. 저자는 대통령 중심의 현대사가 현대사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대통령을 빼놓고 현대사를 논한다는 것 역시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대통령실록’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사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수많은 인물 중 왜 그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는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통령은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무엇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지켰으며, 무엇이 그 자리를 위태롭게 했는가.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각 대통령의 재임 기간의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의 서술에서 벗어나 출생부터 성장, 당선과 재임, 퇴임 후까지 한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서술을 시도한다. 또한 각 시대의 정치 ? 외교 ? 국방 ? 경제 ? 사회 ? 문화를 움직였던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주변 인물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인물과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거대한 힘들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왜 그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는가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10명의 대통령은 모두 그들이 이루고 싶은 나라가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욕망이기도 했지만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통령이 될 운’이 바로 이 지점에서 작용했다. 해방과 독립, 전쟁을 겪은 이승만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을 비롯해 김구와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 등 그 시기를 살았던 모든 지도자들이 국가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상징되는 이승만은 자신만이 국가를 안정시키고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우를 범했다. 윤보선과 장면 역시 국가의 혼란을 잠재우고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안정에 힘쓰기 위해 노력했고 국민들은 그들의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박정희는 지독한 가난에 지친 국민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정치는 경제발전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국민들을 설득했고, 국민들은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다. 독재는 점점 더 심해졌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 때문에 전두환은 정의구현사회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전두환의 폭압에 지친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노태우는 위대한 보통 사람을 주장하며 군부 권력과 선을 그으려 했다. 새로운 힘으로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던 김영삼, 민주주의와 평화를 정착시키고 타협의 정치를 실현한 김대중, 평화와 화합, 자주성의 회복을 기치로 내세우며 새로운 정치 실험을 감행한 노무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올라 경제지상주의를 천명한 이명박까지 모든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인물의 깊이 있는 이해와 시대에 관한 통찰
그 평가 기준부터 명확히 해야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이념 논쟁에 휩싸여 있다. 좌편향, 우편향이라는 말을 역사와 교육에 붙이며, 자기들끼리의 싸움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또한 국가기록원의 녹취록 누락 사건 역시 국민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정치계와 학자들이 젠체하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국민들이 정작 궁금한 것은 제대로 된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이다. 물론 역사에 해석이라는 것이 없을 수 없겠지만, 의도적인 왜곡을 하지 않는 현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저자 박영규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많은 자료와 정보들은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기술해야 할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선왕조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당시의 왕도정치와 법치국가적 통치입니다. 저는 대통령실록을 집필하면서 이런 기준을 세웠습니다. 우리 헌법 1장 1조를 기준으로 삼기로 말입니다.”
고구려에서부터 조선까지 방대한 기록을 한 권으로 엮어낸 저자는 이번에도 국내에 출간된 회고록과 평전, 주요 사건을 다룬 책, 관련 인물들의 책 등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를 비롯한 다양한 신문의 사건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등 사전의 기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같은 사안을 언론사마다 어떻게 다르게 다뤘는지도 비교 분석했다. 이렇듯 오랜 자료 수집과 6년여에 걸친 집필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현대사를 완성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꼭 알아야 할
500여 명의 인물과 사건들
조선왕조실록이 조선 왕들의 이야기만 담은 책이 아니듯 대통령실록 역시 대통령 개인의 이야기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종으로는 대통령의 생애, 즉 어린 시절, 성장 과정, 집권 전까지의 행보, 재임 기간, 퇴임 후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담았고, 횡으로는 각 시대의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 문화, 인물의 다양한 면면을 살핀다.
김구-이승만, 박정희-김대중 등 때로는 라이벌로, 때로는 협력자로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다양한 인물들은 물론, 관료를 대표하는 각 시대의 국무총리들을 살펴봄으로써 폭넓은 이해를 도왔다. 또한 박정희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앙정보부장, 그 시대가 내세운 최고의 가치인 경제성장을 주도한 경제기획원 수장 등 통수권자의 수족이 되었던 사람들도 짚었다. 그리고 각 시대별로 꼭 기억해야 할 사건들을 따로 정리해 시대의 방향, 권력의 흐름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을 통해 사건 중심의 역사, 회고록 중심의 야사를 넘어 수많은 현대사 책과 대통령 자서전이 알려주지 않은 새로운 관점의 대한민국史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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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
[역사] 이승만 대통령실록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2015-09-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
201 |
[역사] 이승만 대통령실록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2015-09-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강추!〉“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출신도, 성격도, 성향도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_ 들어가는 말 중에서
역사서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킨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박영규가
제대로 풀어낸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
복잡하고 헷갈리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여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썼다는 평가를 받으며, 17년 동안 300만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일반인에게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역사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저자 박영규가 이번에는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을 통해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를 제대로 풀어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다. 반세기를 지나며 10명의 대통령이 재임했고, 어떤 이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사회적 향방이 크게 달라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통령의 권력 의지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대통령은 한 시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대통령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그 개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 시대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가 재임 시에 무슨 일을 했는지가 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는 의미다. 저자는 대통령 중심의 현대사가 현대사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대통령을 빼놓고 현대사를 논한다는 것 역시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대통령실록’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사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수많은 인물 중 왜 그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는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통령은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무엇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지켰으며, 무엇이 그 자리를 위태롭게 했는가.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각 대통령의 재임 기간의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의 서술에서 벗어나 출생부터 성장, 당선과 재임, 퇴임 후까지 한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서술을 시도한다. 또한 각 시대의 정치 ? 외교 ? 국방 ? 경제 ? 사회 ? 문화를 움직였던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주변 인물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인물과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거대한 힘들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왜 그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는가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10명의 대통령은 모두 그들이 이루고 싶은 나라가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욕망이기도 했지만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통령이 될 운’이 바로 이 지점에서 작용했다. 해방과 독립, 전쟁을 겪은 이승만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을 비롯해 김구와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 등 그 시기를 살았던 모든 지도자들이 국가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상징되는 이승만은 자신만이 국가를 안정시키고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우를 범했다. 윤보선과 장면 역시 국가의 혼란을 잠재우고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안정에 힘쓰기 위해 노력했고 국민들은 그들의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박정희는 지독한 가난에 지친 국민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정치는 경제발전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국민들을 설득했고, 국민들은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다. 독재는 점점 더 심해졌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 때문에 전두환은 정의구현사회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전두환의 폭압에 지친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노태우는 위대한 보통 사람을 주장하며 군부 권력과 선을 그으려 했다. 새로운 힘으로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던 김영삼, 민주주의와 평화를 정착시키고 타협의 정치를 실현한 김대중, 평화와 화합, 자주성의 회복을 기치로 내세우며 새로운 정치 실험을 감행한 노무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올라 경제지상주의를 천명한 이명박까지 모든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인물의 깊이 있는 이해와 시대에 관한 통찰
그 평가 기준부터 명확히 해야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이념 논쟁에 휩싸여 있다. 좌편향, 우편향이라는 말을 역사와 교육에 붙이며, 자기들끼리의 싸움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또한 국가기록원의 녹취록 누락 사건 역시 국민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정치계와 학자들이 젠체하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국민들이 정작 궁금한 것은 제대로 된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이다. 물론 역사에 해석이라는 것이 없을 수 없겠지만, 의도적인 왜곡을 하지 않는 현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저자 박영규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많은 자료와 정보들은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기술해야 할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선왕조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당시의 왕도정치와 법치국가적 통치입니다. 저는 대통령실록을 집필하면서 이런 기준을 세웠습니다. 우리 헌법 1장 1조를 기준으로 삼기로 말입니다.”
고구려에서부터 조선까지 방대한 기록을 한 권으로 엮어낸 저자는 이번에도 국내에 출간된 회고록과 평전, 주요 사건을 다룬 책, 관련 인물들의 책 등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를 비롯한 다양한 신문의 사건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등 사전의 기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같은 사안을 언론사마다 어떻게 다르게 다뤘는지도 비교 분석했다. 이렇듯 오랜 자료 수집과 6년여에 걸친 집필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현대사를 완성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꼭 알아야 할
500여 명의 인물과 사건들
조선왕조실록이 조선 왕들의 이야기만 담은 책이 아니듯 대통령실록 역시 대통령 개인의 이야기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종으로는 대통령의 생애, 즉 어린 시절, 성장 과정, 집권 전까지의 행보, 재임 기간, 퇴임 후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담았고, 횡으로는 각 시대의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 문화, 인물의 다양한 면면을 살핀다.
김구-이승만, 박정희-김대중 등 때로는 라이벌로, 때로는 협력자로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다양한 인물들은 물론, 관료를 대표하는 각 시대의 국무총리들을 살펴봄으로써 폭넓은 이해를 도왔다. 또한 박정희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앙정보부장, 그 시대가 내세운 최고의 가치인 경제성장을 주도한 경제기획원 수장 등 통수권자의 수족이 되었던 사람들도 짚었다. 그리고 각 시대별로 꼭 기억해야 할 사건들을 따로 정리해 시대의 방향, 권력의 흐름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을 통해 사건 중심의 역사, 회고록 중심의 야사를 넘어 수많은 현대사 책과 대통령 자서전이 알려주지 않은 새로운 관점의 대한민국史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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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
[역사] 전두환 대통령실록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2015-09-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
200 |
[역사] 전두환 대통령실록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2015-09-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강추!〉“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출신도, 성격도, 성향도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_ 들어가는 말 중에서
역사서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킨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박영규가
제대로 풀어낸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
복잡하고 헷갈리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여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썼다는 평가를 받으며, 17년 동안 300만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일반인에게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역사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저자 박영규가 이번에는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을 통해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를 제대로 풀어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다. 반세기를 지나며 10명의 대통령이 재임했고, 어떤 이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사회적 향방이 크게 달라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통령의 권력 의지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대통령은 한 시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대통령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그 개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 시대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가 재임 시에 무슨 일을 했는지가 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는 의미다. 저자는 대통령 중심의 현대사가 현대사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대통령을 빼놓고 현대사를 논한다는 것 역시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대통령실록’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사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수많은 인물 중 왜 그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는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통령은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무엇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지켰으며, 무엇이 그 자리를 위태롭게 했는가.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각 대통령의 재임 기간의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의 서술에서 벗어나 출생부터 성장, 당선과 재임, 퇴임 후까지 한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서술을 시도한다. 또한 각 시대의 정치 ? 외교 ? 국방 ? 경제 ? 사회 ? 문화를 움직였던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주변 인물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인물과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거대한 힘들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왜 그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는가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10명의 대통령은 모두 그들이 이루고 싶은 나라가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욕망이기도 했지만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통령이 될 운’이 바로 이 지점에서 작용했다. 해방과 독립, 전쟁을 겪은 이승만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을 비롯해 김구와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 등 그 시기를 살았던 모든 지도자들이 국가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상징되는 이승만은 자신만이 국가를 안정시키고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우를 범했다. 윤보선과 장면 역시 국가의 혼란을 잠재우고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안정에 힘쓰기 위해 노력했고 국민들은 그들의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박정희는 지독한 가난에 지친 국민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정치는 경제발전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국민들을 설득했고, 국민들은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다. 독재는 점점 더 심해졌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 때문에 전두환은 정의구현사회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전두환의 폭압에 지친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노태우는 위대한 보통 사람을 주장하며 군부 권력과 선을 그으려 했다. 새로운 힘으로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던 김영삼, 민주주의와 평화를 정착시키고 타협의 정치를 실현한 김대중, 평화와 화합, 자주성의 회복을 기치로 내세우며 새로운 정치 실험을 감행한 노무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올라 경제지상주의를 천명한 이명박까지 모든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인물의 깊이 있는 이해와 시대에 관한 통찰
그 평가 기준부터 명확히 해야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이념 논쟁에 휩싸여 있다. 좌편향, 우편향이라는 말을 역사와 교육에 붙이며, 자기들끼리의 싸움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또한 국가기록원의 녹취록 누락 사건 역시 국민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정치계와 학자들이 젠체하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국민들이 정작 궁금한 것은 제대로 된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이다. 물론 역사에 해석이라는 것이 없을 수 없겠지만, 의도적인 왜곡을 하지 않는 현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저자 박영규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많은 자료와 정보들은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기술해야 할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선왕조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당시의 왕도정치와 법치국가적 통치입니다. 저는 대통령실록을 집필하면서 이런 기준을 세웠습니다. 우리 헌법 1장 1조를 기준으로 삼기로 말입니다.”
고구려에서부터 조선까지 방대한 기록을 한 권으로 엮어낸 저자는 이번에도 국내에 출간된 회고록과 평전, 주요 사건을 다룬 책, 관련 인물들의 책 등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를 비롯한 다양한 신문의 사건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등 사전의 기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같은 사안을 언론사마다 어떻게 다르게 다뤘는지도 비교 분석했다. 이렇듯 오랜 자료 수집과 6년여에 걸친 집필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현대사를 완성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꼭 알아야 할
500여 명의 인물과 사건들
조선왕조실록이 조선 왕들의 이야기만 담은 책이 아니듯 대통령실록 역시 대통령 개인의 이야기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종으로는 대통령의 생애, 즉 어린 시절, 성장 과정, 집권 전까지의 행보, 재임 기간, 퇴임 후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담았고, 횡으로는 각 시대의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 문화, 인물의 다양한 면면을 살핀다.
김구-이승만, 박정희-김대중 등 때로는 라이벌로, 때로는 협력자로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다양한 인물들은 물론, 관료를 대표하는 각 시대의 국무총리들을 살펴봄으로써 폭넓은 이해를 도왔다. 또한 박정희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앙정보부장, 그 시대가 내세운 최고의 가치인 경제성장을 주도한 경제기획원 수장 등 통수권자의 수족이 되었던 사람들도 짚었다. 그리고 각 시대별로 꼭 기억해야 할 사건들을 따로 정리해 시대의 방향, 권력의 흐름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을 통해 사건 중심의 역사, 회고록 중심의 야사를 넘어 수많은 현대사 책과 대통령 자서전이 알려주지 않은 새로운 관점의 대한민국史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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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
[역사] 조선을 구한 이순신
한국문화 편집국 | 이북스펍 | 2014-03-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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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을 구한 이순신
한국문화 편집국 | 이북스펍 | 2014-03-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1-28)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현대 사회인들에게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역사와 우리 나라의 위대한 위인들을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이책을 쓰게 되었다. 충무공 이순신은 한국에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시호는 조선시대 정2품이상의 관리중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다.그런 시호의 이름을 충무 내 몸이 위태로워도 위를 받드는 것을 ‘충무’ 쳐들어오는 적을 물리쳐 치욕을 막는 것을 ‘무’ 라 충하여 충무라 하였고 그것은 무관에게 가장 영예로운 시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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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
[역사] 경복궁이 불타다
홍순래 | 어문학사 | 2015-08-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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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경복궁이 불타다
홍순래 | 어문학사 | 2015-08-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모든 역사적인 사건 뒤에는 꿈이 숨겨져 있다!
“돼지꿈을 꾸고 로또에 당첨됐어요.”,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위험하다고 알려주셨어요.” 이처럼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종종 꿈과 연관시키곤 한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실제로 경험했고, 그런 사례들을 접하면서 현대에는 꿈의 예지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꿈에 대한 믿음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주 먼 옛날부터 꿈의 예지적 성격은 민간 속신에서 절대적이라 할 만큼 받아들여져 왔다. 여러 문헌에는 꿈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고전소설에서도 주인공의 태몽을 비롯하여 사건 전개에 있어 꿈이 주요한 제재로 등장하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선인들은 꿈의 예지를 믿고 있었고, 문헌에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 중에도 꿈으로 예지된 것들이 상당수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을 예지한 류성룡의 꿈 사례가 있다.
신묘년 겨울에 내가 우연히 하나의 꿈을 꾸니, 경복궁의 연추문(延秋門)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된 것이다. 내가 그 아래를 배회하고 있으니, 곁에 어떤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이 궁궐은 처음 자리를 정할 적에 지나치게 아래로 내려갔으니, 지금 만약 고쳐 짓는다면 마땅히 약간 높게 산 쪽에 가깝게 자리를 정해야 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내가 놀라 깨어나니 온몸에 땀이 흘렀는데,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말할 수 없었다.
이듬해 임진년 4월에 임금이 탄 수레가 왜적을 피해 경복궁을 떠나고, 세 궁궐인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이 모두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적병이 팔도에 가득히 찼으며, 여러 사람들이 나라의 회복이 가망 없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친하고 아는 사람에게 이 꿈이야기를 말하고는, 또 이르기를 “꿈속에서 이미 경복궁을 고쳐 지을 일을 의논하였으니, 이는 곧 나라가 회복될 징조이므로 왜적을 족히 두려워할 것이 못되오.”라고 하였다. 이윽고 왜적은 과연 패하여 물러갔으며, 임금의 행차는 도성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본문 105~106쪽-
또 나라를 건국하기 전, 꿈에 계시를 받았다는 사례도 있다.
아울러 삼국유사에 보이는 신라의 문희·보희 매몽 설화 및 신라의 거타지 설화가 그대로 원용되어, 진의와 작제건을 신성시하고 하늘의 뜻에 의한 것으로 고려 건국을 정당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제건이 용왕의 부탁으로 늙은 여우를 죽인 후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용왕의 말에 동쪽 삼한 땅의 임금이 되기를 원하자, 용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자손이 건(建) 자를 삼대까지 물려간 후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오. 다른 소원을 말하시오.”라고 했다. 이에 용녀에게 장가 들었다. 용녀는 후일 고려 건국후 원창왕후로 추존되었다.
원창왕후는 네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맏아들은 용건이라 불렀는데, 그가 바로 고려 세조였다. 용건은 체격이 장대하고 아름다운 수염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도량이 넓었으며 일찍부터 삼한 통일의 큰 뜻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한 미인을 만나 백년 언약을 맺는 꿈을 꾼 일이 있었다. 후에 송악에서 영안성으로 가는 길가에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모습이 꿈속에서 본 여자와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 여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몽부인(夢夫人)이라 불렀다.
혹은 그가 삼한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에 그 성을 한씨(韓氏)라 하였다고 하는데, 이 몽부인이 바로 훗날의 위숙왕후인 것이다. 그 후 도선의 도움으로 도선이 일러주는 곳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위숙왕후에게 태기가 있어 왕건을 낳았다.”
용건이 꿈속에서 만난 여인과 인연을 맺어 왕건을 낳게 되었다는 꿈이야기를 통하여, 왕건의 출생에 천명에 의한 신성성을 부여하고 고려 건국이 하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본문 370쪽-
이 책에서는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국가적·사회적 변란이나 사건·사고 뒤에 감추어진 꿈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과 실제로 일어난 사실에 대하여, 전개 양상별로 분류하여 시대 순으로 해설을 덧붙여 살펴보고 있다.
제Ⅰ장에서는 꿈에 대한 이해와 해설을 담았으며, 제Ⅱ장에서는 실제 역사적 꿈의 사례를 1. 사실적인 미래 예지 2. 계시적 예지 3. 국가적·사회적 변란 예지 4. 죽음·질병 예지 5. 태몽 6. 왕·황후 등극 및 귀한 신분 예지 7. 과거 급제·관직·관운 예지 8. 부임지·유배지 예지 9. 연분 맺음 예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제Ⅲ장에서는 기타 꿈의 역사적 사례를 1. 심리 표출(불안, 초조감, 소망) 및 기타 꿈 2. 창의적 사유활동·일깨움의 꿈 3. 지어낸 거짓 꿈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제Ⅳ장에서는 특징별 꿈이야기를 1. 개국 관련 꿈(고려, 조선) 2. 매몽 3. 파자 해몽(破字解夢) 4. 성행위 꿈 5. 변란 및 일상의 체험 꿈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실제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과 꿈을 접목한 이 책이 우리 역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오래도록 가치 있는 책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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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대사와 나
문병준 | 좋은땅 | 2014-04-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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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대사와 나
문병준 | 좋은땅 | 2014-04-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붉은악마’라는 우리 축구응원팀은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걸개를 걸었습니다.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응원문구를 기획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는 ‘근대사’가 오늘 나와 관계 맺는 경우네요. ‘고대사’는 관계가 덜 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대사도 근·현대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는 시간을 연결하는 통로거든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우리 상고사를 잘라먹고, 처음부터 중국 식민지로 기술합니다. 5,000년 단군조선을 놔두고는, 2,600년 일본역사로서 조선을 강점하고 내선일체를 주장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현재 중국은 요하문명이 발견되면서 고대사부터 다시 쓰고 있습니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상도 세웠습니다. 중국이 웅녀를? 우리 역사 왜곡과 장차 나타날 한·중 관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고대사나 현대사나 바로 현재의 나와 연결되지요? 본서는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고대사 문제를 살펴봅니다. 고대사도 현대사와 마찬가지로 오늘에 끼친 영향은 같습니다. 모두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때로 중요한 역사서 원문을 주절주절 해석했습니다. 고대사의 몇 구절은 외워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 선조들의 ‘혼의 울림’이니까요. 나아가 주변국의 역사왜곡과 더불어 우리 스스로 왜곡도 함께 경계해야 합니다. 바른 역사를 고민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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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조선, 사라진 역사
성삼제 | 동아일보사 | 2015-03-0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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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조선, 사라진 역사
성삼제 | 동아일보사 | 2015-03-0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우리 역사 연구에서 가장 시급한 분야가 고조선이다.
일본의 보수 우익을 대변하는 학자들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미화하고, 이웃 나라를 경시하는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고대사 왜곡에 있으며, 그 뿌리에 고조선 역사의 왜곡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배운 역사를 의심하라 ‘명도전은 고대 연나라의 화폐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명도전 출토 지역의 분포가 옛 고조선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만주사의 기초를 닦았다는 중국 길림대 역사학과의 장보촨(張博泉) 교수는 어떤 연유로 2004년 중국 학회지에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일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발표했을까?(《고조선 사라진 역사》 6장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148~156쪽) 고조선 역사를 파고들면 들수록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책은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을 9가지 쟁점별로 살펴보았다. 저자는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책반(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실무반장으로 활약하면서, 한국 정부나 국민들의 분노만으로 일본의 ‘위험한 교과서’와 일본 우익단체의 공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본적인 대책은 일본이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깨닫는 것이며, 또 다른 대책은 일본에게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4년 후인 2005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업무수첩에 기록해온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비망록’을 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들이 좀더 다양하고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이 책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저자의 딸을 위해 썼다. 서문에서 저자는 “내 딸과 그 또래 청소년들이 편견 없이 우리 고조선 역사의 쟁점들을 봐주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나처럼 학창시절 일그러진 고조선 역사를 배운 어른들도 함께 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적고 있다. [책의 내용]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 역사 1장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한다.’(6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7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건국되었다’라는 수동태 문장이 ‘건국하였다’로 바뀌었지만 ‘····라고 한다’에서처럼 남의 입의 빌려 건국 사실을 기록한 교과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22~23쪽) 왜 우리는 고조선 건국을 믿지 못하는가.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과, 단군의 건국은 신화일 뿐이며 신화를 그대로 믿으면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치는 수업시간. 헷갈리는 국사, 누구의 잘못인가? 2장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시작 시기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전 4000년까지 편차가 매우 크다. 청동기 시대 상한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고조선 건국을 史實로 보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55쪽)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시작되므로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史實이 아니라는 주장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발굴되고 있는 한반도의 청동기 유물·유적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결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의 시작 연도는 기원전 10세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장 고인돌에 새겨진 역사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 국내 학계는 고인돌이 고조선의 유적이며 청동기시대 유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고인돌의 연대 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4000대 후반부터 기원전 2000년대 전반기까지 성행했던 건축물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에서도 고인돌의 건축 연대는 기원전 2500~2000년 사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남한 학자들은 이러한 연대 측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고인돌이 기원전 20세기 이전의 건축물이라면 그보다 앞서 고조선이 존재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70~71쪽) 4장 단군릉과 단군 뼈의 진실 1993년 10월 북한의 단군릉 발굴 발표. 이에 남측 학자들은 “북한이 주체 사상을 앞세워 학자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유골의 연대 측정을 위해 북한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대신 전자상자성공명법을 사용한 데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단군릉에서 발굴했다는 유골을 50회 측정해서 얻은 5011±267년(상대오차 5.4퍼센트)이라는 연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조작된 결과인가, 잘못된 실험인가. (91쪽) 5장 고조선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나 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영역)에 대해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대동강 중심설, 요동 중심설, 요서 중심설, 요동지역에서 대동강유역으로 중심지 이동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을 분석해 패수가 오늘날 대동강이나 청천강이 아니며, 왕험성(혹은 왕검성)이 평양성이 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했다.(106~112쪽) 6장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명도전은 전국시대 때 연나라에서 만든 청동제 화폐’라는 통설을 깨는 새로운 주장. 연나라 화폐라고 하는 명도전이 왜 고조선 영토에서 대량 발굴되고 있을까? 반대로 고조선 땅에서는 왜 고조선 화폐가 한 개도 발굴된 적이 없을까?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임이 분명하다면 고조선은 왜 전쟁 상대인 국가의 화폐를 대량 사용했을까? 중국의 학자는 어떤 근거로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을까?(137쪽) 저자는 원점에서 명도전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7장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 《삼국유사》 판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 중종 임신본. 임신본이라 불리는 이 책의 영인본에서 일본이 의도적으로 글자를 고쳤다면? 저자는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 시절 최남선 선생이 일본 역사학자 이마니시의 소행이라며 울분을 터뜨린 변조설을 파고들었다. 대부분의 《삼국유사》가 고조선 편에서 석유환인昔有桓因(옛날에 환인이 있었다)이라고 표기하나, 변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석유환국昔有桓國(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이 올바른 표기라고 말한다. 《삼국유사》임신본 변조설의 전모. 누가, 언제, 왜 고쳤을까?(168~169쪽. 글자 위에 덧칠한 흔적이 역력한 《삼국유사》영인본 사진). 8장 위서 논쟁 속에 묻혀버린 고조선 《규원사화》와 같은 책들이 영광스러운 고대사를 만들기 위해 조작했다는 식으로 단정 지을 게 아니라, 먼저 성경의 위서 판정 연구기법을 도입해서 위서 논란이 있는 사서들에 대해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감정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장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현상 위서로 분류되는 《환단고기》에 그 어떤 역사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 적시돼 있다면? 1923년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의 묘지(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행적 등을 새긴 글)가 발굴되면서 아버지 연개소문(개금), 할아버지 태조, 증조부 자유의 이름이 밝혀졌다. 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내용이 《환단고기》에 실려있기 때문에 이 책은 남생의 묘지가 발굴된 1923년 이후 쓰인 위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환단고기》에는 남생의 묘지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 기록돼 있다. 즉 남생의 고조부이며, 연개소문의 증조부인 ‘광’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다.(226쪽) 《환단고기》는 남생의 묘지를 베낀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저자는 박창범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가 쓴 논문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과학적 검증’이 발표되면서 《환단고기》 재평가 움직임이 있었던 점을 환기시키며 이제 《환단고기》를 포함한 재야사서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0장 고조선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직적인 한국 고대사 왜곡으로 인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고조선 논쟁을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고구려, 부여, 고조선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미 시작됐다. 이제 고조선 역사 논쟁은 단지 학설 논쟁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손으로 조선총독부가 왜곡하고 말살한 역사를 원형 그대로 되돌려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함께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과 중국에게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으로써 고조선 연구가 계속돼야 할 것이다.(247쪽) [저자와의 일문일답] Q1 국사 교과서의 저작권자인 교육인적자원부의 공무원이 우리 역사 관련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1 그것에 답하려면 2001년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뿐 아니라, 일본 우익이 우리 국사 교과서를 공격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 측에 수정을 요구할 부분을 점검하는 것과 아울러, 방어적 차원에서 우리의 근·현대사, 중세사, 고대사를 쭉 점검하다가 고조선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이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역사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예를 들어 한사군 문제. 고등학교 시절 한사군의 명칭과 설치 지역을 암기했던 기억이 났다. 4지선다형 문제를 출제하기 좋은 4군의 위치와 설치지역을 연계하는 문제는 초보적인 수준이었고, 심화 단계에서는 낙랑군이 멸망한 서기 313년에 서양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묻는 문제가 나오곤 했다. 서기 313년은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해다. 이 문제는 모의고사나 예비고사에서 출제 빈도가 높아 특히 주의를 기울여 암기했던 부분이다. 이처럼 지금의 40~50대는 고조선을 400년 동안 한나라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왜소하고 초라한 왕국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내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2005년 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고 지배했다’고 되어 있다. 고조선의 일부 지역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고조선의 영토는 어디까지였는지 알 수 없는 매우 애매한 표현이다. 20여년 동안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의문이 생겼고 그것을 하나하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 특히 고대사 부분에서 상당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대책반 실무반장을 맡을 때는 보고서 하나 만들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이 일에 점점 빠져들어 결국 나의 개인 비망록은 계속 늘어났고 5년 동안 정리한 내용을 이번에 책으로 펴내게 됐다. Q2《고조선 사라진 역사》는 학계의 통설에 도전하는 내용이 많다. 그 동안 재야 학계에서 비슷한 주장을 많이 했으나 ‘비과학적이며 과잉된 민족주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다소 위험한 시도가 아닌가. A2 대책반 업무를 할 때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말자는 원칙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외국 학자들의 의견까지 가감 없이, 편견 없이 수렴하려고 노력했다. 일본 정부에 수정을 요구하려면 반대로 우리 역사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들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조선 사의 쟁점들을 9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시각과 대한제국 이후의 시각, 오늘날 국사 교과서 등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공무원들이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비교표를 만들어 장단점 또는 차이점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더니 내가 1970년대 고교시절에 배운 역사는 총독부가 왜곡해 놓은 것과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오늘날의 교과서는 민감한 부분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애매한 방식으로 기술한 것이 많다. 이 또한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역사 교과서가 논술 교과서도 아닌데 논쟁 자체를 가르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고조선 논쟁을 해보고자 했다. 물론 이 책을 내기 전에 공무원이 학자들 논쟁에 끼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최고의 사료로 꼽히며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예문관 소속 관리들이 맡아 적은 것인데 요즘으로 치면 공무원에 해당한다. 대한제국이 이어졌다면 역사실록은 예문관 같은 오늘날 교육부 공무원들이 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조선시대 사관과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Q3 그러나 역사 논쟁은 학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지 않은가. 아마추어의 설익은 논리는 곧바로 반박을 받을 수도 있다. A3 고조선 역사가 인위적 조작 없이 전해졌다면 이 논쟁은 온전히 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왜곡했다면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왜곡 사실 자체를 밝힌 다음 학술 논쟁을 벌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다지 공정한 논쟁을 벌여왔다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청동기 문명의 전파에 대해 우리는 서방 기원설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1900년대 초만 해도 청동기 문명이 아시아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전파됐다는 학설이 유력했다. 당시 유럽의 여러 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했으나 우리 학계에는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은 공정한 논쟁이 아니라고 본다. 영국 유학시절 스톤헨지에 갔을 때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우리나라 고인돌 비슷한 유적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그것을 유적이라고도 보지 않는데, 내 눈에는 분명 고인돌이었다. 그때 저 고인들이 이쪽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진 걸까,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이쪽으로 전해진 걸까라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실제 한반도의 고인돌이 유럽 쪽으로 전파됐다는 주장을 한 학자가 있음을 알게 됐다. 아쉽게도 학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책에는 이런 이론들을 많이 소개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을 계기로 다양한 반론이 나오면서 논쟁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바다. Q4 《고조선 사라진 역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이 6장 명도전이다.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라는 의문문으로 시작했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연나라 화폐가 아니라 고조선 화폐라는 주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A4 지난 5년간 관련 자료를 1000권 쯤 본 것 같다. 그런데 명도전에 대해 어떤 선입관도 갖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것까지 모두 원점에서 놓고 다시 검토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국사 교과서는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라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연나라 화폐여야 할 근거가 없었다. 반면 명도전의 출토 지역 분포도가 러시아 학자 부찐이 그린 고조선 영역 지도와 절묘하게 일치했다. 고조선 영토에서 발견되는 화폐를 굳이 연나라 화폐라고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명도전을 조사하던 중 중국 만주족 출신 역사학자가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라고 주장한 논문을 발견했다. 2004년에 학술지에 실린 것이니까 최신 연구결과다. 그 분을 찾아가서 어떻게 그런 연구를 하게 됐는지 자세히 알고자했는데 2000년에 작고했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이런 논문이 국내에도 알려져서 우리 시각에서 다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5 재야학자들의 주장까지도 편견 없이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이미 위서로 판정받은 《규원사화》나 《환단고기》까지도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A5 위서논쟁과 관련해 나는 색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 기독교 신자로서 성경의 위서논쟁을 깊이 있게 공부했고 교회 주일학교에서 이와 관련해 몇 차례 강의를 한 적도 있다. 기독교에서 위서논쟁은 논쟁의 당사자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였지만, 그 과정에서 기독교 교리가 더욱 발전하고 학문적으로도 상당한 진보를 가져왔다. 당장 위경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문체와 필체 감정기술이 발달하기도 했다. 《규원사화》 《환단고기》를 둘러싼 위서논쟁이 성경의 위서논쟁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책을 위서라고 판정하는 그 자체보다 위서냐 아니냐 논쟁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나는 교육부 감사관실에서 민원 업무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공무원은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고 공평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항상 두 가지 관점을 갖는다. 우선 민원인의 주장이 맞다는 쪽에서 모든 증거 자료를 모은다. 다른 하나는 민원인의 주장이 틀리다는 관점에서 주장의 허점을 찾아낸다. 허점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그 주장은 틀린 것이고, 반대로 민원인의 주장이 수미일관하며 현장조사에서 증거가 나오면 민원은 받아들인다. 이것이 공무원의 민원조사 기법이다. 이 기법을 동원해 위서논쟁을 살펴보았다. 이 책들이 위서라는 시각에서 조사를 하면 할수록 위서가 아니라는 근거가 더 많이 나왔다. 그렇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9장 《환단고기》편에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의 묘지(墓誌: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행적, 자손의 이름, 생일과 죽은 날, 묘지의 주소 등을 돌에 새긴 글)를 근거로 이 책이 위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폈다. 1923년 발굴된 남생의 묘지에서 증조부 ‘자유’, 할아버지 ‘태조’의 이름이 나왔는데,《환단고기》에는 덧붙여 남생의 고조부 ‘광’의 이름까지 등장한다. 바로 이것이 《환단고기》가 1920년대 발굴된 남생 묘지의 내용을 베꼈으니 위서라고 하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근거다. 남생 묘지를 보고 베낀 게 아니라면 《환단고기》가 참고한 또 다른 사료가 있었을 것이다. 또 남생의 묘지에는 ‘요동군 평양성’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평양의 요동을 명문으로 한 것은 이 묘지가 최초일 것이다. 남생의 묘지 내용은 일본인 학자가 쓴 《조선금석고》에 나온다. 지금도 의지만 있다면 서울대 도서관에서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어쨌든 일본 학자들은 남생 묘지에 평양 요동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을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고 비밀에 부쳤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것이 알려지면 일제 강점기 일본학자들이 주장한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고 그곳에 한사군이 설치됐다는 학설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Q6 《삼국유사》중종 임신본의 변조 논란으로 넘어가져 현재 출간되는 대부분의 《삼국유사》가 석유환인昔有桓因(옛날에 환인이 있었다)이라는 표기를 따르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석유환국昔有桓國(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은 오기로 판명된 것 아닌가? A6 그 문제에 관해서는 답답함을 느낀다. 변조했다는 주장을 하면 재야에서나 하는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일단 고려대와 서울대에 보관돼 있는 《삼국유사》 중종 임신본을 본 다음 논쟁을 해주기 바란다. 독자들이 눈으로 보고 판단하라는 뜻에서 덧칠된 《삼국유사》영인본 자료를 넣었다. 나는 일본이 강점기에 유독 한국에만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했다. 역사 왜곡이 식민 통치의 한 방법이라면 대만사편수회도 있어야 하고 만주사편수회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영국이 오랫동안 인도를 점령했지만 계획적으로 역사왜곡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왜 조선총독부는 그렇게 많은 돈과 인력을 동원해 조선사에 손을 댔을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임나일본부를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강점기에 글자 몇 줄 변조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관심 자체를 말살해버렸다. 그것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라고 본다. Q7 이 책은 정답을 가르쳐주기보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보인다. 즉 일방적인 목소리만 내지 말고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으로 재검토 해보자는 식이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아는데····. A7 앞서도 말했듯이 《삼국유사》 중종 임신본의 변조 논쟁은 일단 문화재청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실물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또 한반도 청동기 문명의 중요 유적으로 꼽히는 고인돌은 문화재청이 주관이 되어 실태파악부터 하고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는 일이 시급하다. 위서라고 불리는 책들은 전문 감정 기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이 책들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가필되고 윤색됐다면 어느 대목이 그러한지 밝혀내는 것도 전문가들의 몫이다. 고조선 영역과 중심지처럼 여러 가지 학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경우, 독일과 폴란드 정부가 마련한 ‘역사 교과서 편찬을 위한 권고안’을 참고로 할 것을 제시했다. 독일과 폴란드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연구해서 고대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를 기술할 때는 여러 가지 가설을 여과 없이 소개하도록 양국 정부와 교과서 관계자들에게 권고한 바 있다.(126쪽) Q8 동북아역사재단의 출범을 앞둔 가운데 《고조선 사라진 역사》의 발간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8 이 책을 출간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덧붙인 원고가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해야 할 연구사업의 첫머리에 고조선과 동북아시아 청동기 문명 연구가 자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본과 중국에게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2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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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되었나
이희진, 은예린 | 아름다운날 | 2014-03-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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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되었나
이희진, 은예린 | 아름다운날 | 2014-03-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자신과 역사의 운명을 가른 12가지 선택『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되었나』. 이 책은 역사적 인물들과 그들의 선택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다시 판단하게 하여 그들의 경험을 오늘에 되살려 자신에게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악녀로 일컬어지는 여인 장희빈, 미색에 눈이 멀어 가정사를 국가적 스캔들로 만든 우유부단한 왕의 전형 숙종, 피비린내 내는 골육상잔을 벌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태종과 세조 등 결정적 선택으로 역사와 자신의 운명을 바꾼 24명의 주인공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혜와 처세의 교훈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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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이성주 | 애플북스 | 2015-06-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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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이성주 | 애플북스 | 2015-06-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세종, 정조, 광해군, 연산군 등 조선을 뒤흔들었던 왕들의 이야기가 연일 TV와 영화, 책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궁중 비화뿐만이 아니다. 특이한 제도, 유행한 문화, 색다른 직업 등 아직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숨겨진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가령, 역사 드라마 <화정>의 주인공 광해군은 정말 폭군이었을까? 조선 시대에도 컨닝이 있었다던데 진짜일까? 만석꾼 재벌 노비가 실제로 있었을까? 이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건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에 걸친 472년간의 기록 《조선왕조실록》이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조선의 기록 《조선왕조실록》 곳곳에는 백성들이 사는 거리의 풍경에서부터 외교관계, 그리고 왕의 사생활까지 낱낱이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그 기록들을 샅샅이 파헤쳐 분석하다 보면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과 같은 굵직한 사건부터 태조, 영조, 정조, 정도전, 정약용, 안용복 등 인물들의 새로운 면모를 하나하나 재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은 자칫하면 스쳐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사건과 장면들을 기록에서 찾아내 조선왕조 500년을 이끈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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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 역사 속에 숨은 이야기 - 김동인의 야담편
플레이북 편집부 | 플레이북 | 2014-02-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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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 역사 속에 숨은 이야기 - 김동인의 야담편
플레이북 편집부 | 플레이북 | 2014-02-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 책은 우리나라의 위대한 소설가 김동인이 일제강점기에 야담이라는 잡지의 책임자로 있을 때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김동인이 창작하였다기보다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 우리나라의 역사서 중에서 재미있는 내용들을 뽑아 연재했던 내용들이다.
주로 우리 역사 속의 숨어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발굴하여 김동인 자신이 좀 더 재미있게 가공하고 정리한 글들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역사의 상식들을 저절로 알게 되며 역사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해줄 수 있는 내용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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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도 몰랐던 한국사 비밀 32가지
이수광 | 북오션 | 2014-07-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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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도 몰랐던 한국사 비밀 32가지
이수광 | 북오션 | 2014-07-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역사는 기록되었으나 기록되지 못한 행간에 많은 의혹과 미스터리를 숨기고 있다. 우리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접하지만, 실제 사건과 기록된 역사 사이에는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런 의문을 품는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5천 년이라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숱한 일들이 일어났겠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사건 32가지를 뽑아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간’을 읽으며, 지나간 역사뿐 아니라 오늘을 되새겨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찾는 도민준 혹은 UFO 팩트와 픽션 사이 2014년,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광해군일기〉에서는 1609년 전국 여러 곳에서 발견된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정말로 도민준 같은 외계인이 UFO를 타고 와 전국 팔도를 누비고 다니지는 않았을까? 사실을 알 길은 없다. 다만 혜성 혹은 비행물체에 대한 기록은 〈광해군일기〉가 아닌 다른 곳에도 등장한다. 《우리도 몰랐던 한국사 비밀 32가지》의 저자 이수광은 태종 13년(1413년) 7월 22일의 기록을 언급한다. “초저녁에 패성이 북방에 나타나서 선회하고 유전하다가 한참 만에 자취가 없어졌다. 그 크기는 주발만 하고 청적색이었다.” 주발은 뚜껑이 있는 놋그릇을 말하는데 비행접시와 비슷한 모양이다. 물론 ‘비행접시와 비슷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상상력과 추측을 더한 것이다. 이렇듯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진실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역사 읽기의 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는 바로 그러한 독법을 바탕으로 역사 속의 결정적 장면 32가지를 풀어놓는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행간을 읽다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바 있다. 또한 데이비드 로웬덜은 《과거는 낯선 나라다》에서 ‘과거는 항상 현재에 의해 재해석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역사란 기록물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의 우리가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행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팩션’의 대가 이수광의 이번 저작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탁월한 식견으로 역사의 행간을 해석해낸다. 예를 들어 이방원과 정도전의 일화를 보자. 정도전이 표전문 사건과 요동 정벌론으로 명나라와 대립각을 세우던 때의 일이다. 명나라의 황제는 정도전을 소환함과 아울러 조선의 왕자 역시 명나라로 입조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이때 나선 것이 이방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방원이 명 황제를 만나고 온 후, 명나라에서는 더 이상 정도전 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방원이) 명나라에 이르러 황제에게 아뢴 것이 황제의 뜻에 맞았으므로, 황제가 예로 우대하여 돌려보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자는 둘 사이에서 ‘정도전 제거’에 대한 묵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방원이 돌아온 후,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정도전은 제거됐다. 하지만 저자는 정도전과 이방원의 관계를 대립의 측면으로만 해석하지는 않는다. 정도전이 형식상으로는 고종 때에 이르러 신원되었지만, 그가 제안한 《조선경국전》과 행정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숭유억불 정책을 실시한 내막으로 볼 때 사실상 태종 이방원 시대에 이미 신원되었다는 것이다. 5천 년 역사의 숨겨진 미스터리 이 책은 고조선시대 백수광부의 이야기부터 구한말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5천 년에 이르는 역사 속의 대표적인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는 고려시대의 무신정변과 조선시대의 양녕대군 폐위와 같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고구려가 대륙을 버리고 평양으로 천도한 진짜 이유’와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있으며, 함경도 종성에 살았던 야생 인간 이야기와 같은 민중사도 있다. 5천 년이라는 시간을 관통하고, 지배층부터 서민층까지 계층을 망라하며 역사 속 미스터리를 파헤친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5천 년 역사에는 수많은 의문과 미스터리가 남아 있으나 대표적인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독자들과 함께 탄식하게 되었다. 역사는 비극이고, 비극은 탄식이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것은 잘못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고 탄식하는 것은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이다.” 저자는 역사를 ‘비극’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역사의 행간에는 미처 기록되지 못한 사연과 슬픔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행간을 읽고 탄식하며 ‘반성’하자고 주문한다. 역사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읽지 않고 ‘해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과거의 역사를 오늘에 비춰 미래에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한 ‘탄식’과 ‘반성’은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너무 무거워지지는 말라. 이 책에 담긴 32가지 이야기는 저자 특유의 명쾌하고 속도감 있는 필체로 무척 흥미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마치 TV 역사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노련한 진행자 같은 솜씨로,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맡에서 옛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 같은 느낌으로 독자들을 이끌 것이다. 독자들이 해야 할 일은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5천 년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저자와 함께 탄식하고 반성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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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을 위하여 - 역사는 왜 이순신을 선택했을까
단재 신채호 | 몬스터 | 2014-06-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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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을 위하여 - 역사는 왜 이순신을 선택했을까
단재 신채호 | 몬스터 | 2014-06-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도적의 기세는 바다에 가득하고
군사와 백성은 기운과 마음이 흙같이 무너졌으니, 영웅의 눈에 눈물이 스스로 흐르는도다. 7년의 전쟁, 그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단 한 명의 영웅! 역사는 왜 이순신을 선택했을까 《이순신을 위하여》는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이 1908년에 쓴 역사 전기물이다. 신채호 선생은 장지연이 사장으로 있던 ‘황성신문’ 논설기자로 언론인 활동을 하는 한편, 우리 민족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편의 위인전을 쓰게 된다. 《을지문덕》(1908년), 《동국 거걸(巨傑) 최도통(崔都統)》(1909~1910년) 등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연작들을 발표한다. 외적을 물리치고 국가의 위기를 구하는 민족 영웅이 당시대로서는 무엇보다 중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기초로 작성된 《이순신을 위하여》는 심화되는 일본의 조선 침략, 친일파의 집권, 서구열강의 무관심 내지는 일본과의 밀약, 자주독립과 국권확립의 불안정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당시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책의 마지막에 보이는 신사씨(新史氏)의 논평이 보이는데, 이는 단재 신채호 자신이며, 그러한 논평 방식은 사마천의 사기열전 방식과 유사하다. 동양 전통 교육을 받은 영향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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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건국지 - 혁명의 설계자 정도전의 꿈과 좌절
이정근 | 책보세 | 2014-04-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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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건국지 - 혁명의 설계자 정도전의 꿈과 좌절
이정근 | 책보세 | 2014-04-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강추!!! 천하가 걸린 건곤일척의 혈전, ‘백성의 나라’ vs ‘임금의 나라’
역사 드라마(소설)를 역사 사실과 종종 동일시한 시청자(독자)들이 ‘역사 왜곡’이 심하다며 비판의 목청을 높인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역사가들마저 그런 비판에 가세한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특정 역사 인물을 선조로 둔 일부 문중(門中)의 몰지각한 행태다. 역사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국에, 역사소설을 펴낸 출판사에 항의를 넘어 협박까지 일삼는 일이 드물지 않다. 문제는 그 항의 내용이 얼토당토않다는 것이다. 해당 문중에서 그 문제의 인물을 역사 사실에 반하여 지나치게 미화하여 숭상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차라리 몇 줄짜리 사료에 근거하여 전체 스토리를 몽땅 허구로 꾸민 판타지 성격의 역사 드라마(소설)는 그런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에 비해 구체적인 사료를 토대로 역사의 큰 굽이(큰 전란이나 국가의 멸망 또는 건국)를 다룬 드라마(소설)에서는 어김없이 그런 논란과 항의와 협박이 따른다. 방영 중인 드라마 〈정도전〉도 그 한 예다. 초반부의 주요 인물이 우왕 즉위와 함께 정권을 장악한 이인임(성주이씨)이다. 그런데 이인임을 가히 성인(聖人)으로 떠받드는 성주이씨 문중에서 압력을 넣어 이인임에 대한 묘사가 사뭇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조선건국지》 원고를 작가로부터 넘겨받았을 때 ‘이인임’이 ‘이임인’으로 뒤집어져 있었다. 작가에게 문의했더니, 해당 문중의 성화(成火)가 염려되었다고 했다. ‘후문’이 헛소문만은 아닌 성싶었다. 물론 드라마나 소설이라도 실재인물을 사실(史實)과 다르게 ‘근거 없이’ 폄훼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문제다.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역사 사실을 토대로 한 상상력을 작품에서 형상화하는 것조차 간섭 받는다면 드라마나 문학이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사실(史實)이라고 해서 다 사실(事實)은 아니다. 사료는 편찬 과정에서 왜곡이나 오류가 적잖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백로가〉다. 1876년 박효관?안민영이 엮은《가곡원류(歌曲源流)》에는 정몽주의 어머니가 이 시조를 읊으며, 이성계 집으로 향하는 아들의 발길을 붙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정몽주가 이미 오래 전에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렀다는 사실로 보아 맞지 않다. 그래서 〈백로가〉는 여전히 작자미상이다. 그런데도 이 엄연한 오류가 사실로 회자되고 있고, 포은의 후손과 어머니 영천이씨의 후손인 양 문중에서는 ‘포은 선생 자당’을 작자로 하여 시비까지 세워놓고 있다. ‘역사’에 기댄 것들 하기의 어려움이 이렇다. 《조선건국지》는 이런 번다한 것들에 붙들리지 않고, 나라는 과연 백성에게 무엇인지를 묻는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이 그 중 가장 가볍다”고 한 맹자의 일갈을 정도전을 통해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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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룻밤에 읽는 징비록
서애 류성룡 | 아인북스 | 2015-07-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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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룻밤에 읽는 징비록
서애 류성룡 | 아인북스 | 2015-07-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경위와 전황에 대한 충실한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에서 급박하게 펼쳐지는 외교전을 비롯하여, 전란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생활상, 전란 당시에 활약한 중요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인물평까지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대한 입체적인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지러운 난리를 겪을 때 책임을 맡아서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 잡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들지도 못하였다."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류성룡의 모습은 당시의 백성들에게 때늦은 후회로밖에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날의 근심거리를 그치게 한다.'는 <시경>의 구절로 자신의 책제목을 대신한 류성룡의 마음가짐만큼은 수백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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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에 감동하다
원유상 | 좋은날들 | 2015-05-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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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에 감동하다
원유상 | 좋은날들 | 2015-05-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0-05)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우리 역사에 다시 한번 감동하다!
시련이 많았기에 더욱 자랑스러운 한국사 이야기
한국사의 고비마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감동스러운 역사가 있었다. 세계적 수준의 문화유산 이면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염원이 일궈낸 감동이, 위인들의 업적 속에는 역경의 삶이 자리하고 있어 더더욱 감동을 자아낸다. 저자는 그 같은 감동의 한국사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왔음을, 그 역사를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한국인의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세계에 자랑해도 좋을 문화유산과 숱한 고난에도 감동의 삶을 살아낸 위인들을 조명한다. 아파트 30층 높이의 황룡사 9층목탑, 전 세계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한반도의 고인돌 등의 문화유산을 비롯하여 독립을 위해 6형제 중 5명이 순국한 이회영 일가, 일본 성리학의 뿌리를 내려준 강항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여기에 어느 한때, 우연히 만들어진 문화유산 혹은 위인들의 업적이란 없다. 시련이 많았기에 더욱 자랑스러운 문화유산과 위인들의 삶, 우리는 우리 역사에 다시금 감동하게 된다.
찬란한 문화유산부터 감동의 삶을 살아낸 위인까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다시 보다!!
역사의 진실은 겉으로 드러난 업적에 가려진 경우가 많아서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역사 인물뿐 아니라 잘 알려진 문화유산에도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사실 이면에는 그 깊이를 달리 하는 역사적 진실과 감동이 숨어있다. 그런 이유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 특히 위대한 역사 인물들의 업적에 가려진 감동적인 삶에 주목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역사 교과서 등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고, 우리 또한 눈여겨보지 않았던 역사의 감동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의 문화유산과 위인들이 왜 위대하고 칭송되어야 마땅한지 그 감동의 세월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고인돌과 온돌 문화 이야기를 비롯해 16년에 걸쳐 제작되고 8백년 동안 보존된 팔만대장경, 기록문화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조선왕조실록 같은 문화유산 그리고 장보고, 최무선, 파미르 고원을 넘어 대원정에 나선 고선지 장군,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 박병선 박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 난봉꾼이라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은 독립운동가 김용환 같은 역사 인물들의 삶을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문화유산의 가치를 오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마주보는 세계사> 칼럼을 부연한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인데, 물론 우리 역사라서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차원이 아니다. 예컨대 저자는 고려청자에 대해 영국의 도자기 전문가인 윌리엄 허니의 평을 이렇게 덧붙인다.
“최상급의 한국 도자기는 세계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우아하고 진실하다. 도자기가 가지는 모든 장점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행복한 민족의 소산임을 첫눈에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감동적인 삶을 되새기다
: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위인들의 삶 이야기
고인돌과 석굴암, 조선 왕릉, 해인사장경판전처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 외에도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온돌 문화와 천문과학의 우수성, 고려청자와 직지심체요절, 한글 등이 그러한데, 이처럼 널리 알려진 문화유산이라도 우리가 그 깊이와 역사적 진실을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놓치기 쉽고, 평소 보지 않았던 문화유산의 가치와 역사적 배경 설명을 통해 그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욱이 이 같은 접근은 역사 인물의 삶을 소개하는 장에서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팔만대장경을 소실의 위기에서 구해낸 김영환 대령, 죽음을 앞두고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편지를 남겨야 했던 윤봉길, 가문의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고 6형제 중 5명이 순국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회영 일가 그리고 국난에 맞서 헌신했으되 이름조차 생소한 의병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감동적인 삶을 되새기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책 말미에서 저자는 지금의 우리 또한 그 감동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당부한다.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시련과 고통이 있었을지언정 한 번도 퇴보하지 않고 발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역사는 그렇게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의 후손도 그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한국사에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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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건국신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화들
이경덕 | 21세기북스 | 2013-07-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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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건국신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화들
이경덕 | 21세기북스 | 2013-07-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이경덕의 <세계 신화 라이브러리> 시리즈
한국 1 : 창세가와 천지왕본풀이 대한민국 최고의 신화학자 이경덕이 집필한 세계의 정통 신화를 쉽고 재미있게 읽어보자. <신화 라이브러리>는 시리즈 각 권마다 해당 신에 대한 개별적인 에피소드를 담고 있어 우리가 알고 싶은 신화에 대한 모든 것을 섭렵할 수 있다. 또한 원하는 주제를 골라 읽을 수 있어 짧은 이동 시간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풍부한 고전 명화와 현대적인 일러스트도 신화를 만나는 재미를 한껏 더해준다. 다양한 신화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보는 넓은 시각을 가졌음을 뜻한다. 세상 모든 신화를 담은 <신화 라이브러리>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상과 만나보자. 한국 신화의 특징 한국 신화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삶과 죽음의 의미와 믿음 등을 이야기로 풀어 놓은 것이다. 신화는 우리말로 하면 본풀이가 된다. 본풀이는 본 또는 근본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본풀이의 표면적인 의미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내력을 풀어낸다는 뜻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신화가 담고 있는 모든 것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한국 신화는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매우 친숙한 느낌이지만, 낯익은 이미지라서 더 깊고 진하게 공감할 수 있고, 진정한 의미의 신화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우리 신화는 우리의 끝나지 않는 삶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건국 신화의 의미 여기서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신화가 아니라 기록된 신화들, 특히 고려의 국사였던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화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신화들은 주로 건국 시조들의 이야기이다. 건국 신화는 대부분 국가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다른 신화와 차이가 나지만, 그 이면에 당시의 생활상이나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한편 지금도 건국 신화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나 기업과 같은 큰 공동체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이때 신화의 겉모습, 즉 줄거리는 각각 다르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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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이상각 | 들녘 | 2014-05-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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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이상각 | 들녘 | 2014-05-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불굴의 민족혼을 떨쳐 일으키다
저자는 고려와 원 제국의 관계에 주목한다. 약소국 고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원 제국의 강대한 무력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오랜 항쟁과 타협, 조정 과정을 거쳐 백여 년 동안의 평화를 구가했다는 것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그늘 아래 안주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원 제국과 고려의 밀월 관계가 가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릇 난세에 평화를 향유하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희생을 침소봉대하여 더 큰 가치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받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민족은 동서냉전의 여파로 분단된 남과 북의 불화, 북쪽의 교조주의와 일방주의, 남쪽의 보수와 진보의 대결, 지역 간 갈등을 비롯한 각종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고려인들이 보여주었던 민족 통합 정책과 자주 정신, 민활한 외교정책, 외적에 대한 끈질긴 투쟁의지 등은 우리들에게 최상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국가 고려는 잦은 외세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끈질긴 항쟁을 통해 국체를 보존했던 열정과 자존의 제국이었다. 하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관련 사료가 드물거니와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은 후대의 기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사료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저간의 오류가 많이 시정되었다. 이상각의 『고려사』는 기존의 자료에 연구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역동적인 고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고려의 건국과 국가 체제의 정비 병산전투는 그동안 후백제에 밀리던 고려가 통일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은 계기가 되었다. 후백제군이 물러나자 태조는 김선필의 주선으로 서라벌에 가서 신라의 경순왕과 신하들을 위로했다. 그와 같은 왕건의 신라에 대한 배려는 왕족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고려에 적대적이었던 호족들까지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궁예의 축출 이후 태조에 반기를 들었던 강릉의 김순식, 의성의 홍술, 포천의 성달 등이 고려에 귀순하고 울산과 주변 110여 성까지 항복해 왔다.(p.44)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가 점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신라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각지에서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고 마침내 고려, 후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후삼국 시대가 정립되었다. 당시 신라는 이미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후백제와 고려는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상황이었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삼한일통을 이뤘다. 이는 단순히 무력에만 의지한 결과가 아니었다. 왕건이 통합과 안정을 희구하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태조 왕건에 관련된 설화를 비롯하여 혼인정책, 사성정책 등 다양한 사실을 통해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 주목한다. 연합체적인 성격으로 시작한 고려의 초기 과제는 호족들을 통합하여 중앙집권체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광종대를 거쳐 성종대에 이르면서 고려의 정치체제는 비로소 안정되었다. 그리고 실리외교를 추구함으로써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은 가급적 피하였다. 성종이 고려의 체제 정비와 문화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동안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985년 요가 여진을 정벌하고 발해의 후신인 정안국까지 점령하자 북송은 사신 한국화를 고려에 보내 요를 양면에서 협공하자고 제안했다. 요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북송은 전쟁 중에 노획한 포로나 재화, 병기 등을 모두 고려에게 넘겨주겠다고 유혹했지만 성종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출병하지 않았다.(p.107) 그 무렵 요와 고려는 뜨뜻미지근한 형식적 사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려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된 사실을 알게 된 요는 더 이상 침략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문종은 요가 강제 점유하고 있는 압록강 동쪽 영토를 되찾고자 했다. 당시 요에서는 흥종 사망 이후 도종 야율홍기(耶律洪基)가 즉위하면서 황실의 내분이 벌어져 문종의 요구에 즉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문종은 새로운 황제의 즉위축하사절단에 항의문을 함께 보내는 등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1057년에는 중서성을 통해 궁구문 바깥에 있는 우정을 없애고 송령 동북지대에 토지 개간사업을 하는 자들과 이미 설치한 암자들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같은 문종의 강수는 요와 일전을 겨루어도 꿀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문화강국 북송에 대하여 문종은 매우 친밀하게 대했다. 요의 압력으로 인해 양국은 오래전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지만 문종은 북송 상인들의 국내 출입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선진문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 무렵 왕안석의 신법을 통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북송에서는 매년 주조하는 동전과 철전이 600만 관을 넘었고 남양, 인도양, 아프리카 동해안의 등지에서도 사용되었다.(p.164∼165) 열정과 자존의 불꽃이 지다 요와 금이 등장하자 동아시아의 정세는 급변했다. 이에 고려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군사력을 강화했고 그들의 발전된 문화를 수용하는 등 민첩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갈등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려는 초기에 문벌귀족사회를 형성했고 권력에서 배제된 무신들은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넘쳐나는 무신들의 불만은 결국 무신정변으로 표출되었고 그 후 100여 년동안 무신집권체제가 유지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는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민중의 사회의식은 성장해 나갔다. 만적은 보잘것없는 벼슬아치였던 주인 최충헌이 정변을 통해 당대의 최고 권력자가 된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자신도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거사에 한번 성공하면 권좌에 오를 수 있다는 망상을 품게 되었다. “정중부와 김보당 이래 고관 중에 천출이 한둘이 아니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p.272) 본래 고려는 사족과 서인을 구별하는 사서제(士庶制)와 양인과 천민을 구별하는 양천제(良賤制)를 두 축으로 유학자 중심의 귀족사회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신정권시대와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평민과 노비의 신분 상승에 따라 사서제 기능이 상실되었고, 양천제도 원의 영향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돈의 노비개혁정책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졌지만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제도의 벽과 수구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p.448) 원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 고려는 과감한 개혁정치를 시도한다. 특히 공민왕대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개혁이 이루어졌고 더불어 사회체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정방의 폐지나 토지, 노비에 관한 개혁정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고려의 역사는 이성계의 등장과 함께 종말을 고한다. 당시 이성계는 요동 정벌 당시 4불가론을 내세우며 정벌의 부당성을 설파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옳지 않다. 셋째, 왜구들에게 빈틈을 보이게 된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에 입힌 아교가 풀어지고 전염병이 번질 우려가 있다.(p.478)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고 쿠데타는 성공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조민수 등 군부 세력은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보위에 올렸다. 개혁파의 독주에 제동을 건 이색, 정몽주 등은 고려의 국체를 보존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정몽주의 죽음과 함께 반 이성계파의 모든 저항은 끝났고 고려도 함께 멸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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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조선의 총구다
이상국 | 세창미디어 | 2014-07-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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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조선의 총구다
이상국 | 세창미디어 | 2014-07-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신채호, 이봉창 열사와 함께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은 여성운동가 남자현. 이 책은 남자현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 행적과 삶의 의미를 기리고자 했다. 겨레의 기억 속에 잊히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그녀의 자취와 기억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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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1 - 삼국열전과 대륙의 격랑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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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1 - 삼국열전과 대륙의 격랑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우리 역사 바로 알기
구한말 서양 열강과 일제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가운데 자강(自彊)에 실패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식민지가 되었던 많은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였다. 우리도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으나 주체적으로 일제를 몰아내지 못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결국 1948년 두 개의 국가가 탄생했다. 반면 서양 열강과 일제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병든 돼지’로 경멸받던 중국은 공산당 집권 이후 강대국으로 인정받았고 일본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경제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성공하였다. 구한말 러시아, 청, 일본, 미국 등 4대 열강에 둘러싸였던 국제정세는 오늘날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하지만 구한말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군 1개 연대조차 당해내지 못할 수준의 국력을 가졌던 대한제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비록 주변 4대 강국에 비해 현격한 약세를 보이고는 있어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력이 미약해 전혀 외교 교섭 상대가 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중요한 외교 파트너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국가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교섭한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가 현재의 국제정세와 더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오호십육국으로 불리는 북방 유목민족이 중국으로 남하함에 따라 동아시아 세계는 격랑에 휩쓸렸고, 이에 맞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국의 실정에 맞추어 주체적으로 대응하여 성장해나갔다. 6세기 말 통일된 중국이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려고 대외 침략 전쟁을 남발하자 고구려는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대응을 적절히 병행하며 이에 철저히 맞섰다. 돌궐과의 연합, 거란?말갈 등 여러 종족을 회유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켜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져 당에 복속되었던 돌궐, 거란 등 여러 민족이 자립하였고, 고구려 유민도 국가 재건에 성공하니 그것이 발해였다.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응한 삼국시대 한민족의 분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잘 살려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또 삼국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술하였을 뿐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 역사 틀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적잖이 기존의 학설과 다르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백제 개로왕의 부왕인 비유왕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둘째, 을지문덕은 조상이 중국에서 고구려로 귀화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연개소문의 관직인 막리지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다. 셋째, 원효대사의 조상은 신라 소지 마립간이다. 넷째,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패배는 안시성 함락 실패로 인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구려의 전략에 말렸기 때문이다. 다섯째, 당이 줄기차게 고구려를 침략한 이유는 도교의 기원과 관계가 있다. 여섯째, 백제의 요서 경략설은 부여인의 활동이 와전된 것이다. 일곱째, 신라 진흥왕과 진평왕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나중의 일이다. 여덟째, 장보고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5년이 빠르다.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절대 부족하여 상세한 내용을 연구할 수 없어 많은 제약이 따른데,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중국 사료를 좀더 폭넓게 이용하여 관련 내용을 해석하고 입체적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전에 나왔던 연구서들 대부분이 고대 한국을 간략하게 서술한 여러 중국 역사서의 <동이전(東夷傳)> 부문만 활용해 단편적인 내용만 전했다면, 이 책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晉書》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사서 전체를 꼼꼼히 참조하고 비교하였다. 또 우리의 삼국시대뿐 아니라 한족과 유목민족의 왕조 가계도, 동아시아 각국 나라의 세력을 지도로 나타내는 것은 물론, 주요 전쟁 등도 여러 연구서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정리하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한국사는 ‘올바른 역사상’과 심각한 괴리를 초래하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현재에 있어서도 한국사의 좌표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이 책은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삼국시대를 바로 보는 역사적 시각은 물론 오늘날 우리의 미래 지향적이고 열린 사회의식을 함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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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2 - 고구려와 수ㆍ당의 전쟁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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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삼국사 2 - 고구려와 수ㆍ당의 전쟁
이윤섭 | 책보세 | 2014-0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우리 역사 바로 알기
구한말 서양 열강과 일제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가운데 자강(自彊)에 실패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식민지가 되었던 많은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였다. 우리도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으나 주체적으로 일제를 몰아내지 못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결국 1948년 두 개의 국가가 탄생했다. 반면 서양 열강과 일제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병든 돼지’로 경멸받던 중국은 공산당 집권 이후 강대국으로 인정받았고 일본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경제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성공하였다. 구한말 러시아, 청, 일본, 미국 등 4대 열강에 둘러싸였던 국제정세는 오늘날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하지만 구한말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군 1개 연대조차 당해내지 못할 수준의 국력을 가졌던 대한제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비록 주변 4대 강국에 비해 현격한 약세를 보이고는 있어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력이 미약해 전혀 외교 교섭 상대가 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히 중요한 외교 파트너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국가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교섭한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가 현재의 국제정세와 더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오호십육국으로 불리는 북방 유목민족이 중국으로 남하함에 따라 동아시아 세계는 격랑에 휩쓸렸고, 이에 맞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국의 실정에 맞추어 주체적으로 대응하여 성장해나갔다. 6세기 말 통일된 중국이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려고 대외 침략 전쟁을 남발하자 고구려는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대응을 적절히 병행하며 이에 철저히 맞섰다. 돌궐과의 연합, 거란?말갈 등 여러 종족을 회유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켜 일원적 천하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져 당에 복속되었던 돌궐, 거란 등 여러 민족이 자립하였고, 고구려 유민도 국가 재건에 성공하니 그것이 발해였다.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응한 삼국시대 한민족의 분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잘 살려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또 삼국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술하였을 뿐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 역사 틀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적잖이 기존의 학설과 다르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백제 개로왕의 부왕인 비유왕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둘째, 을지문덕은 조상이 중국에서 고구려로 귀화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연개소문의 관직인 막리지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다. 셋째, 원효대사의 조상은 신라 소지 마립간이다. 넷째,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패배는 안시성 함락 실패로 인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구려의 전략에 말렸기 때문이다. 다섯째, 당이 줄기차게 고구려를 침략한 이유는 도교의 기원과 관계가 있다. 여섯째, 백제의 요서 경략설은 부여인의 활동이 와전된 것이다. 일곱째, 신라 진흥왕과 진평왕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나중의 일이다. 여덟째, 장보고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보다 5년이 빠르다.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절대 부족하여 상세한 내용을 연구할 수 없어 많은 제약이 따른데,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중국 사료를 좀더 폭넓게 이용하여 관련 내용을 해석하고 입체적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전에 나왔던 연구서들 대부분이 고대 한국을 간략하게 서술한 여러 중국 역사서의 <동이전(東夷傳)> 부문만 활용해 단편적인 내용만 전했다면, 이 책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晉書》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사서 전체를 꼼꼼히 참조하고 비교하였다. 또 우리의 삼국시대뿐 아니라 한족과 유목민족의 왕조 가계도, 동아시아 각국 나라의 세력을 지도로 나타내는 것은 물론, 주요 전쟁 등도 여러 연구서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정리하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한국사는 ‘올바른 역사상’과 심각한 괴리를 초래하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현재에 있어서도 한국사의 좌표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이 책은 닫힌 역사에서 열린 역사로 삼국시대를 바로 보는 역사적 시각은 물론 오늘날 우리의 미래 지향적이고 열린 사회의식을 함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