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가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비밀번호가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82 |
[역사]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근호 | 청아출판사 | 2013-06-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82 |
[역사]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근호 | 청아출판사 | 2013-06-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왕조 500년의 인물과 사건을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책. 풍부한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여, 왕의 치세 때 일어난 핵심적인 사건들을 이야기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건의 배경, 사회적 현상, 당시 사람들의 관점 등을 자세하게 서술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책은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식'으로 정리하면서 50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왕조의 흐름에 따라 역사를 살펴보며, 조선의 역사를 현대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또한 고문서, 문화재, 유적지, 연표 등 다양한 자료를 함께 수록하였다. |
81 |
[역사] 일제하 수원지역의 민족운동
조성운 | 국학자료원 | 2011-06-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81 |
[역사] 일제하 수원지역의 민족운동
조성운 | 국학자료원 | 2011-06-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지역사를 모르고는 일제하 한국민족운동사의 전체상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은 같은 시기의 서울과 지역의 민족운동의 동향이 다르게 전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수원지역의 근대사 속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구성과에 각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운동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증적인 연구가 더해진다면 한국민족운동사의 연구가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한국민족운동사의 전체상이 보다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수원지역의 민족운동에 대해 알아보았다.
|
80 |
[역사] 잊혀진 혁명가 정이형
박환 | 국학자료원 | 2012-05-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80 |
[역사] 잊혀진 혁명가 정이형
박환 | 국학자료원 | 2012-05-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친일파 처벌법 제정의 선구자인 정이형의 생애와 활동을 연구한 책. 정이형은 식민지시대에는 무장투쟁과 좌우합작운동을, 해방공간에서는 친일파척결을 통한 민족정신의 회생을 꿈꾼 민족운동가였다. 이 책에서는 정이형의 식민지시대의 항일투쟁과 해방 이후의 정치활동을 검토하고 있다. 정이형 개인의 인생역정을 검토함과 더불어 중도파 민족주의자의 정치노선과 그 향방을 살펴본다.
|
79 |
[역사] 조선 여인의 향기
이수광 | 미루북스 | 2011-12-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79 |
[역사] 조선 여인의 향기
이수광 | 미루북스 | 2011-12-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6가지 향기를 간직한 사랑이야기, 애사
조선 시대의 여성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조선 여인의 향기》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말끔히 해결해줄 것이다. 이 책은 조선 여인들의 사랑과 삶을 통해 조선사회를 살피고 있다. 조선 시대를 관통해 온 지배 이데올로기는 ‘예(禮)’인데, 예를 중시하는 조선사회는 여인들에게 정절을 강요해왔다. 여인들은 철저하게 부모와 남성, 그리고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했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혼인을 한 뒤에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낳은 뒤에는 자식을 따르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철저하게 지켜야 했다. 많은 여성들이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때로는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답게 피고 때로는 찬 서리에 지는 단풍처럼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이처럼 조선 시대의 예는 여인들에게 씌워진 굴레였다. 저자 이수광은 조선의 여인들을 매난국죽(梅蘭菊竹)으로 표현하고 있다.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난초의 그윽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국화의 깨끗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대나무의 푸르른 향기를 간직한 여인을, 이 책의 4부로 구성해 다루었다. 왕비에서 천민 여성까지 조선여인 26인의 사랑과 한을 유려한 문체로 복원한 것이다. 글의 이해를 돕는 그림과 사진 등을 수록한 올 컬러 편집 팩션 역사서인 이 책은 조선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16컷의 삽화를 수록했다. 수채화의 색감을 풍부하게 살린 이도헌 화백이 이 책의 삽화를 그려 조선여인들의 향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역사의 책갈피 속에 묻혀 있던 여인들의 모습이 이 책의 삽화를 통해 생생히 다가올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사진 10컷을 수록했는데, 이 사진들은 저자가 직접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촬영한 것들이다. 저자가 이 작품에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성 위주의 신분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을 세상의 중심에 세우다! 조선 시대 여인들은 어떻게 사랑을 했고 어떻게 살았을까? 또한 그녀들의 삶에는 어떤 애환이 있었을까? 이 책은 철저한 남성 위주의 신분사회에서 가슴 절절한 사랑을 했던 조선의 여인들, 역사에 그다지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여인들의 이야기와 기록만을 취합해 조선 시대를 애(愛)와 애(哀)의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그동안 역사서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거나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인물들이다. 단 한 번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에 평생 동안 님을 그리워하면서 절개를 지킨 여인,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목숨까지 버려야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다. 조선 시대의 여인들이라고 하면 우리는 얼핏 기생이나 궁중 암투밖에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첩으로 불리는 많은 여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은 부귀를 이용해 15, 16세의 어린 소녀들을 첩으로 거느렸다. 가난 때문에 첩이 되어야 했던 여인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았을까? 천민들에게도 사랑과 애환이 있었다. 기근이 들어 함경도에서 충청도 단양까지 내려와 구걸행각을 하던 함흥의 한 여인이 남편이 전염병으로 죽자 충청도 단양에서 함흥까지 천릿길을 관을 이고 가서 장례를 지냈고, 강원도의 한 초부(樵夫, 나무꾼)가 갑자기 내린 눈으로 동사를 하게 되자 그의 아내가 찾아가서 저고리를 벗어 덮어주고 알몸으로 몸을 녹여주어 소생시키려다가 함께 동사한 이야기는 지극한 사랑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사회에서는 얼굴이 예쁜 것도 죄가 되었다. 숙종 시대에 예조판서를 지낸 오정창의 딸이자 한림 정한주의 부인인 오(吳) 씨는 얼굴이 너무 예쁘다고 해서 시집에서 구박을 받다가 아버지가 역모로 몰리자 결국 쫓겨났다. 아버지의 귀양길에 남편이 찾아오자 부둥켜안고 울던 오 씨는 적삼에 혈서를 써서 남편에게 주고 자결한다.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 책은 역사의 비주류였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
78 |
[역사] 조선 인물 청문회
윤용철 | 말글빛냄 | 2013-07-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78 |
[역사] 조선 인물 청문회
윤용철 | 말글빛냄 | 2013-07-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그들을 불러내어 역사 앞에 다시 세우다
조선을 움직인 23인의 사후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에 숨겨진 그들의 진실 이 책은 정확한 역사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졸기’를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다. 졸기는 한 인물이 사망했을 때 사관史官이 그에 대해 인적 사항, 출생과 죽음의 과정, 성장 과정, 학문의 정도, 벼슬살이의 과정, 인물의 됨됨이, 평생의 업적, 저서, 후손 등을 소상히 밝힌 기록물이다. 오늘날의 《추모록》이라 할 수 있다. 실록에 오른 기록인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대부분 높은 벼슬을 한 관리, 문인, 무인, 학자 등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의 유명인사 2,125명에 대한 졸기를 수록하고 있으며, 해당 인사에 대한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이 2,125명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조선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23인을 선정해 각 인물에 대한 사실을 추적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파헤쳤다. 이를 위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당 인사의 졸기를 원문 국역(국사편찬위원회 번역)으로 서두에 배치하고 그 다음에 졸기에 나타난 내용을 실록의 기록에서 구체적으로 검색하여 기술했다. 가급적 그 인물의 업적과 과오 그리고 사건에 대해 저자의 주관적인 입장을 개진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따라서 실록에 나타난 기록에 의거해 객관적 사실 전달에 주력하고자 했다. 실록의 기록에서 졸기만큼 중요한 것이 해당 인물에 대한 ‘탄핵 상소문’이다. 주요 인사들에 대한 탄핵 상소문은 그 개인의 삶과 인격, 나아가 그에 대한 당시의 여론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물론 탄핵 상소문이라는 것이 과過를 묻고자 하는 것일 뿐, 공功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상소문의 내용을 가지고 탄핵 당사자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책임졌던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공보다는 과에 대해 세밀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고, 그 과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함이기 때문에 탄핵 상소문에 나타난 내용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졸기와 탄핵 상소문을 바탕으로 한 인물에 대한 삶을 조명하고, 역사적 사실을 밝히며, 그것을 통해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엮었다.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은 고려 말의 이색에서부터 성리학의 거두 이황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으로 중요한 문신, 학자, 선비 등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성립 과정과 역사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주요 인물소개 “이 색” 독살인가, 자연사인가 고려 말의 문신, 학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이성계의 조선이 개국한 뒤 그의 요청을 물리치고 고려에의 충절을 지켰다. “이색은 변론하고 분석하며 절충하는데 저물도록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기억하고 외우기만 하는 습관과 공리功利의 학설이 점점 없어지고, 성리학이 다시 일어났다.” 이색은 국운이 다한 고려의 끝에서 나라의 걱정에 수심이 가득하여 애틋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시를 읊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이성계와 그의 추종 세력들에 의해 조선이 개국되면서 고려에 충절을 다하고자 했던 이색의 많은 친구와 제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조가 바뀌는 격변의 시기에도 살아남았음은 고려에서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까지 그 명성이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이색은 불사이군의 충절로 태조의 손을 뿌리치고 고향인 한산으로 돌아간다. 그는 한산 이씨의 시조이다.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성계가 어느 날 낙향해 있는 이색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나를 버리지 말아주게.” 친구의 이 말에 목은은 “나라 안에 내가 앉을 곳이 없잖소. 망국의 신하는 그저 낙향해 있다가 죽으면 해골을 가져다 고산에 묻을 뿐이오.” 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독야청청하고 대나무처럼 굳게 변함없는 절개를 지키며 살다가 이색은 여주 신륵사에 눈을 감았다. |
77 |
[역사]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식원, 황금희 | 미다스북스 | 2013-02-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77 |
[역사]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식원, 황금희 | 미다스북스 | 2013-02-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게, 화려하나 사치하지 말라!”
600년을 넘어 오늘에 이어지는 세종의 위대한 민본철학과 시대정신 경복궁에 담긴 조선의 정체성에 대한 최초의 전면적 스토리텔링 숭례문 복원으로 본 세종 시대 건축의 의미 - 국가를 알려면 그 국가가 관리하는 건축물을 먼저 보라 관리 소홀로 불타버린 숭례문 복원 완료 시기가 눈앞에 다가왔다. 사건 당시,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타버린 숭례문의 모습에 안타까워했던 사람도 무척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건물의 화재 발생 상황을 대비한 최초의 매뉴얼을 만든 사람이 세종대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예전의 숭례문 모습. 오는 4월 복원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된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소방기관은 세종 8년에 세워진 금화도감이다. 그런데 이 금화도감이 세워지기 3년 전에 만들어진 「금화조선」이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소방 매뉴얼이다. 여기에는 화재예방의 방법은 물론이고 화재 발생 시 전파 요령과 대처 요령, 인력 투입 등에 관해 상세히 적혀 있다. 심지어 근정전이나 숭례문 같은 높은 건물의 지붕에 화재가 날 경우를 대비하여 지붕에 신속하게 오를 수 있도록 건물에 쇠고리를 미리 비치해놓도록 하라는 세심한 지시까지 적혀 있어, 오늘날 숭례문의 모습을 보는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도 하고 있다. 이렇듯 조선 초기부터 건물의 화재예방에 신경을 기울였던 것은 당시 한양의 건축물들이 단순히 건물이 아닌, 일종의 상징물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복궁과 숭례문을 포함한 서울 도성의 건물들은 저마다 조선 왕조 초기 통치의 이상인 유교적 이상사회의 원리에 따라 계획적으로 지어졌다. 굳이 세종 시대에 금화도감을 설치하게 된 까닭도 분명하다. 건축물을 통한 이상 사회의 구현이라는 원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또 가장 많이 시도한 사람이 다름 아닌 세종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조선에 대해 알려면 경복궁을, 경복궁에 대해 알려면 세종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경복궁을 둘러보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곳의 주인인 세종의 시선으로 둘러보는 것이다. 이 책, 『조선의 정체성』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종대왕의 하루하루를 통해 조선의 정체성과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역사 스토리텔링서이자 궁궐안내서이다. 기존의 궁궐 관련 서적이 단순히 전각의 유래를 설명하거나 궁중 내 큰 사건을 나열하며 건축학적 해석을 곁들이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말 그대로 ‘세종의 입장이 되어’ 경복궁 건물을 산책하듯 거니는 구조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책이다. 기본적인 경복궁의 답사 코스인 근정전까지의 코스는 1장과 2장에서 서술하며, 각 장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풍부한 참고자료, 심지어는 드라마의 한 장면까지 인용하여 다채롭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글 창제의 고민을 따라 걷기’, ‘세종 르네상스로 불리는 찬란한 문화를 보며 걷기’, ‘세종이 이룬 세계최초의 업적을 찾아 걷기’ 등 테마에 맞춘 구성에 따라 책을 들고 경복궁을 천천히 거닐다보면 어느새 세종에 대해, 경복궁에 대해, 무엇보다 세종이 경복궁을 통해 구현하려 한 ‘조선의 정체성’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경복궁 건축에 숨은 세종의 꿈 - 세종이 확립한 것은 왕권만이 아니라 조선의 정체성이다 세종대왕은 민족의 성군이자, 위대한 학자, 예술가, 과학자, 정치가로서 그의 업적은 우리의 말인 한글부터, 천문학, 공학, 예술과 애민 사상이 숨어 있는 의료와 구휼 정책까지 말 그대로 광범위하다. 그의 업적만을 나열하는 데에도 한 권의 책이 아닌 한 질의 전집이 필요할 정도다. 그가 만든 최초의 업적 역시 적지 않아 이 책의 저자들은 그에 대해 한 챕터를 고스란히 할애해 놓고 있다. 이 책의 5장, 「세종이 만든 세계 최초와 함께 경복궁을 산책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들은(그리고 독자들은) 세종의 발걸음을 따라 걸으며 근정전에서 앞서 말했던 최초의 소방 매뉴얼을 발견해내고, 최초의 여론조사를 세종이 실시했음을 알게 된다. 수정전에서 최초의 독서휴가제도인 사가독서제를, 교태전에서 최초의 육아휴가제도와 남편출산휴가제도를 만난 후에는 오늘날의 회사에서도 흔치 않은 복지가 이미 세종 시대에 시작되었음을 알고 감동에 젖는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최초의 2단로켓 산화신기전, 최초의 고아원, 측우기와 수표로 알려져 있는 최초의 체계적 기상관측 기록도 있으며 산책의 마지막쯤에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경복궁 후원에서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익숙한 최초의 온실까지도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도 세종 르네상스로 표현되는 조선의 체계적 의학, 천문학과 주체성의 대표 주자인 전통음률 등 세종 시대의 많은 업적들을 책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많은 업적이지만 저자들은 세종의 가장 중요한 업적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해낸다. 세종의 위대함은 그가 일구어낸 수많은 발명품과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대통합을 일궈 이후 조선의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 소위 ‘조선의 정체성’을 확립한 데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책 속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세종의 업적들은 모두 그 정체성 아래서 거두어낸 열매인 셈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조선의 정체성은 ‘백성을 대하는 자세’와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 ‘과학적 사고방식’ 등이다. 헌신으로 표현되는 애민과 소통, 그리고 합리성을 내세운 리더십이 세종이 세운 조선의 정체성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유교적 이상사회의 원리에 따라 낡은 것은 폐하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세종의 능동적인 개혁으로 구현된다. 집현전. 지금은 수정전으로 이름이 바뀌어 이곳을 제대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건물 우측의 소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심어놓은 것이다. 조선이 개국되던 당시를 돌아보자. 조선 천지에 한바탕 광풍이 몰아치다가 잠잠해지더니 세종이 등장한다. 고려를 되살리겠다는 온건보수파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과격신진세력 간의 피가 튀는 난세에 백성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에 세종은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문화와 관습을 일신하는 등 전반적인 국가체계를 마련하며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럼으로써 혼미 속의 조선이 이후 지속할 수 있게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왕권을 확립하기보다 왕권이 장차 확고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정체성은 스스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정체성이 외부로부터 공인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들의 해설에 따르면 이러한 세종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세종 시기의 법궁이자 조선 왕조 유일의 법궁,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세종이 만들었다? - 이상적 리더십을 건축으로 구현한 경복궁의 진정한 주인, 세종 흔히 경복궁을 만든 사람을 태조 이성계로 꼽곤 하는데, 사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태조를 포함한 그 이후의 왕들은 경복궁을 만들기는 만들었으되, 가끔 들러 수리만을 꾸준히 했을 뿐 정작 법궁(모든 궁궐의 표준이 되는 정통 궁궐. 그 외의 궁을 이궁이라 부른다)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이렇듯 법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외면되어 오던 경복궁을 비로소 법궁답게 사용한 최초의 임금이 세종이다. 즉위식을 경복궁에서 올린 세종은 태종이 승하한 후 경복궁을 자신의 의도대로 바꾸어가기 시작한다. 광화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각 이름을 다시 지었으며, 동궁, 신무문, 보루각, 흠경각, 교태전 등을 새로 건설하고, 사정전, 경회루 중수, 광화문, 강년전을 개축하는 등 오늘날 경복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건물들이 세종의 시기에 새로 태어났다. 이는 당시 궁궐에는 단순히 ‘왕이 살고 정치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당대 정치의 이상을 구현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더욱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종 승하 이후 경복궁을 법궁답게 일신하며 세종은 그 안에 자신이 바라는 조선의 정체성, 혹은 유교적 이상사회의 통치원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던 것이다. 경복궁을 처음 만든 사람이 태조였다면 세종은 말 그대로 경복궁의 진정한 주인인 셈이다. 게다가 조선왕조 전체를 통틀어 경복궁이 사용된 시기는 길지 않지만, 그 시기는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기 중 가장 빛나는, 또 가장 최초의 시기가 바로 세종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이렇듯 세종이 일신한 경복궁 속에는 세종 자신과 신하들, 왕족들이 만들어낸 내밀한 이야기 역시 적지 않게 숨어 있다. 자경전을 짓는 일화를 보면 어머니 원경왕후에 대한 그의 효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세종이 생전에 의학과 약학의 정리에 힘을 쏟았던 원인 역시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왕비의 공간인 교태전의 설립이 늦어졌던 이유를 살피면 건국 초기의 어려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그 혼란한 시기 속에 장자도 아닌 셋째아들로 태어나 주목받지 못했던 세종이 우여곡절 속에 임금이 되어 수많은 사대부들과 논쟁하고 설득시키며 이루어낸 결과는 그 하나하나가 감동적인 드라마와 같다. 그러나 세종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으로 나라를 다스렸는지, 대체 어떻게 그 많은 창조를 했는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경복궁을 조선의 법궁으로 자리매김하고 수많은 창조물을 탄생시킨 세종의 시각은 과연 남달랐을 것이지만, 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도 그리 자주 오진 않는다. 그러나 여기 세종대왕의 시각을 알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그의 시각으로 경복궁을 둘러보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이 나라를 어떻게 통치했겠는가? 궁궐을 알려면 주인인 왕이 되어야 한다 - 세종의 시선으로 경복궁을 걸어보자 답사의 열풍을 타고, 우리 궁궐 답사에 대한 열풍 역시 달아오르고 있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어 거리가 가깝다는 점 역시 이에 한몫하고 있다. 서점에 가보면 이에 대해 출판된 책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궁궐을 궁궐 그 자체로만 바라보며 서술했다는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건물에 대한 소개를 하고,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거나, 건축의 특색을 논하는 식의 정보전달식 책들만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궁궐은 건축 이전에 생활공간’이라는 기치를 걸고 쓴 책도 많지만 이 역시 학술적 건물 해설에 역사적 사건을 덧붙인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보다 궁궐, 특히 경복궁의 진정한 주인인 세종 단 한 사람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경복궁은 ‘세종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궐의 주인은 왕이기에 결국 주인인 왕의 시선으로 걸어보아야 그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콘셉트에 걸맞게 저자들은 경복궁 사이사이에서 세종의 철학, 세종의 고뇌가 섞인 일화들을 읽어낸다. 그리고 세종의 발걸음을 따라 거닐며 전각들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모아 경복궁 전체에서 세종이 만들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조선의 정체성’을 발견해내고 만다. 역사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얘기를 담은 본격 ‘경복궁 스토리텔링’이다. 중국도 일본도 미국도 아닌 -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정체성이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 경복궁을 돌아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보이게 된다. 흔히들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하며 그 크기에 위압되어 경복궁을 자금성의 짝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완공의 선후를 따지자면 경복궁은 자금성보다 25년이나 먼저 만들어졌다. 전각의 칸수에 있어서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자금성을 ‘위압적일 만큼 크다’고 생각하는 반면 경복궁은 ‘아담하고 작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각각의 궁궐에 사용된 건축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좌우대칭의 엄격함으로 웅장함을 강조하는 자금성의 설계방식과 달리 경복궁은 조화를 추구하는 짜임새를 강조한 설계방식으로 건축되었다. 건축물의 모양 역시 웅장함보다는 그 실용성과 상징성을 위주로 만들어졌다.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검이불루 화이불치’, 즉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하지 않게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설계 사상인 것이다. 이렇듯 두 궁궐의 설계 사상이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추구하는 정치의 이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유교적 통치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해도 조선과 중국의 방식은 다르며, 이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화두를 안고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찾아야 할 정체성은 무엇인가? - 지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해서 조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 때 노무현 정부가 개혁군주인 정조의 이미지를 앞에 내세워 이미지 혁신을 꾀했듯이,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치권에서는 새 정부를 대표할 인물상을 찾아 역사책을 뒤적이곤 한다. 그러나 이번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그 롤모델이 세종대왕이 될 거라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던 것 같다.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양자대결이던 지난 대선에서도 두 후보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경쟁하듯 대규모 유세를 벌였다. 심지어 박근혜 후보가 당선 확정 직후 제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도 세종대왕 동상 앞 특별무대였다. 어떤 이들은 박근혜 후보와 세종대왕과의 공통점을 애써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세종대왕과 박근혜 모두 쿠데타로 집권한 절대자(혹은 독재자)의 아들 혹은 딸이며, 정치 일선에서 소외되었던 긴 시간을 갖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이야 어찌되었건 2013년 대한민국에 세종의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에는 다들 이견이 없는 듯하다. 지금은 둘, 혹은 셋으로 갈라진 사회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나갈 대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니까. |
76 |
[역사] 최후의 결전
우영수 | 역사의아침 | 2013-10-0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76 |
[역사] 최후의 결전
우영수 | 역사의아침 | 2013-10-0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최후의 결전
천년의 역사를 바꾼 정지상과 김부식의 대결 권력을 지키려는 자 vs 운명을 바꾸려는 자 고려의 서경천도를 둘러싼 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고려사 최대 사건인 ‘묘청의 난’, 소설로 다시 재구성하다 《고려사》에 기록된 ‘묘청의 난’은 풍수지리설에 능통한 묘청이 백성들을 선동해 고려 왕권의 중심인 개경을 반역하고 서경으로 천도하려 했다고 기록할 만큼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후대로 넘어오면서 이 사건을 두고 사대파에 대항한 자주파의 저항, 복종과 굴욕에서 벗어나 민족정기를 세우고 옛 조선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항거 등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단재 신채호는 “조선 역사상 일천 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하며 이 사건의 승자가 바뀌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통탄하기도 했다. 만일 《고려사》의 기록이 진실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어떠할까. 저자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역사적 자료와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묘청의 난’을 둘러싼 고려사의 이면을 들춰내고 재구성한 팩션 형식의 소설을 완성했다. 이 소설은 고려 중기 15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인종을 둘러싼 문벌귀족과 신흥세력의 맞대결을 중심으로, ‘이자겸의 난’에서 시작된 두 파의 갈등이 ‘묘청의 난’에 이르러 어떻게 무력으로 충돌하게 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한다. 기존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사대주의와 유학사상을 고려에 고착시키려 했던 김부식, 학식과 글을 갖춘 재능 있는 충신이자 고조선 건국의 이념을 받들어 자주국으로의 이상을 꿈꾼 정지상과 묘청, 낭신들을 결집해 고구려 정신을 계승하려 했던 윤언이, 자신이 처한 현실과 갈등하며 서경천도를 추진하려다 마음을 돌린 인종 등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활약과 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권력을 위한 명분 vs 개혁을 위한 명분, 승자는 누구인가 모든 역사적 사건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승자의 ‘명분’이 등장한다.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세력이 갈등을 빚는 코드 역시 ‘명분’이며, 역사는 결국 승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러므로 사료에 남겨진 ‘명분’은 승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면을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후대 사람에게 마련해준다. 저자 또한 이러한 ‘명분’의 이면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김부식은 이자겸의 난을 제압하면서 불타버린 개경을 되살리기 위해 기존의 유학사상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을 인종에게 제안하는 반면, 정지상은 고구려 정통성을 계승해 자주적 민족사상을 새로 도입할 것을 권한다. 이후 그들의 사상적 차이는 각각 반대의 명분을 만들어내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인종은 서경으로 수도를 옮겨 옛 조선의 기강을 가져와 도입하는 새로운 국치를 꿈꿨지만 개경 중심으로 확고히 다져진 기존의 문벌귀족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묘청의 등장 이후 김부식 중심의 개경파와 정지상 중심의 서경파는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현실을 즉시하라”는 김부식의 말을 거부하지 못한 인종은 서경천도를 무산시키면서 묘청의 반란을 제공하는 원인이 된다. 소설이어서 가능한 상상, 소설이기에 필요한 해석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두 가상 인물의 등장과 활약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정지상의 정인이자 묘청과 정지상의 만남을 주선하는 조휘는 당찬 성격을 지닌 여인이다. 서경천도의 뜻에 동조하며 중요한 임무를 맡기도 한다. 김부식의 음모로 고조선의 건국 비밀이 담긴 서책이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녀는 자진해서 일본으로 건너가 김부식의 눈을 피해 서책을 되찾아온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정지상의 아이를 데리고 서경성을 탈출해 후대에 희망을 남기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또한 속세를 피해 산 속에 은둔하며 낭인의 삶을 보내던 허역은 윤언이와 함께 김부식 일파의 음모를 직접 적발하고 처단하면서 서경천도를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한편 저자는 이 책의〈에필로그〉에서 윤언이와 관승스님의 대화를 통해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의문을 던진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역사를 중국에 편입된 역사로 축소시킨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사대주의 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역사서라는 점은 이미 일반적인 평가이지만, 여기에 서경천도를 반대하면서 서경인들을 학살하고 멸절시키려 했던 역사적 과오를 숨기기 위한 대책이었다는 새로운 해설을 덧붙인다. 잔혹한 역사는 반복된다, 고로 다시 역사를 읽어야 한다 저자는 1980년에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혼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이 사건 역시 ‘묘청의 난’의 결말처럼 정권을 주도한 사람에 의해 죄 없는 무고한 시민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으며, 사건의 승자가 정국의 1인자로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 또한 시대적 변화와 함께 역사의 방향도 달라졌다. 잔혹한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까닭이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후대 사람들의 몫이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진실과 허구 저 너머를 살펴보려는 시도는 분명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려의 서경천도에 숨겨진 진실과 역사적 의의를 한 편의 이야기로 읽으면서 독자들은 진정한 역사의 승자는 누구인지,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75 |
[역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 페이퍼로드 | 2013-04-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75 |
[역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 페이퍼로드 | 2013-04-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오로지 우리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우리 역사의 치부가 일제와 군사정권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저자는 우리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금속활자를 철저히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여 '부끄러운 보물'이라고까지 말한다.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200여년 앞서 발명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나타내는 증거로 흔히 거론되는 금속활자가 왜 부끄럽다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최초'라는 딱지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구텐베르크는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금속활자와 함께 인쇄기를 발명하여 인쇄출판 체제를 정립했다. 그리고 인쇄술은 지식의 대량보급을 가능케 해 서양의 역사를 전변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고려의 활자는 '지식의 대중적 보급'이라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단지 소수의 지식층 소유물에 그치고 말았다. 저자는 '최초'라는 타이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유용하게 쓰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애정 어린 쓴소리를 한다. ‘우리 것이 무조건 최고다’라는 국수주의적 생각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저자의 예리한 시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갈 우리 세대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왕건의 <훈요 10조>! 뭐, 전라도 사람은 기용하지 말라고? 이 책은 시대별로 그 구분이 나누어져 있는 연대표를 각 장의 도입부마다 제시하여 그 시대의 결정적인 사건들의 흐름을 한눈에 제시한다. 그러나 본문에 이 연대표에 나와 있는 사건만이 나열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역사의 큰 사건들과 더불어 그동안 가려져왔던 사실들을 역사의 더께를 걷어내고 재조명한다. 전라도 사람을 절대 기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왕건의 <훈요 10조>는 오늘날 지역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조항을 왕건도, 그리고 후대 왕들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조항은 왜 만들어졌을까? 왕건이 후백제와 힘겨운 전투를 하다가 이긴 바가 있기에 후백제의 근거지인 전라도에 대해 차별정책을 취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왕건 자신조차 최측근에 전라도 사람을 둔 사실은, 아직도 <훈요 10조>를 들어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뜨끔할 이야기이다. 현대 한국보다도 강했던 고려의 여권 일부일처제가 주를 이루었던 고려시대, 재상 박유는 인구정책을 위해 첩을 들이자는 건의를 했다. 그러나 그의 건의는 묵살되고 말았다. 부녀자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박유는 이 건의로 인해 “첩을 두자고 건의한 거렁뱅이 같은 늙은이” 소리를 들으며 부녀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적 사건 한토막을 늘어놓으며 고려시대의 강력한 여권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여성들의 권리행사는 일부일처제를 반대하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산도 아들딸 구별 없이 상속받았다는 것, 그리고 여자도 집안을 대표하는 호주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 고려여성들은 가정생활이나 경제운영에 있어서 남성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저자는 이를 흥미로운 예로 쉽게 풀어내어 독자로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뭐, 광해군이 조선 최고의 외교정책가라고? 저자는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이 쿠데타세력의 역사왜곡 때문에 폭군으로 낙인찍혔다고 강조한다. 역사기록이란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서 서술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자시절 아버지 선조의 미움을 받은 까닭은 배성들의 광해군에 대한 인기가 선조를 능가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시절,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대군들의 집이 불탔던 반면 광해군의 저택만 온전했겠냐는 것이다. 강력한 후금과의 전쟁은 피해야겠기에 중립외교를 절묘하게 구사했던 광해군. 그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느꼈던 군주였다. 명과 청을 오가는 줄타기 외교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했던 것은 오로지 광해군의 공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특히 광해군을 권력에서 끌어내린 쿠데타세력도 결국 광해군의 정책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보면 그의 외교정책이 합리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교과서가 외면한 근현대사의 그늘 역사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근현대사 서술부분이다. 금기시 되는 주제가 많은 데다 쓰는 이의 관점에 따라 편향적인 내용으로 치우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는 금기와 편파라는 두 가지 장애물을 넘고 근현대사를 가장 중립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김일성 가짜설’에 대한 진실규명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저자의 균형적 시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일부 연구자들의 학문적 뒷받침까지 있었던 ‘김일성 가짜설’은, 그러나 진실이 아니었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 권위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진실을 규명한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김일성의 항일경력을 부정하고 싶어 ‘김일성 가짜설’을 유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남북한 중 한 세력을 옹호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북한의 ‘김일성 신화화’까지 언급해둔다. 한마디로 김일성 항일투쟁의 실상과 가짜논쟁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인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저자는 이 기사가 현대사 최대의 왜곡보도라고 전한다. 이 기사로 인해 국내에 반탁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반소정신이 자리 잡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소련은 신탁통치가 아닌 후견을 제시하였는데 동아일보가 이를 오보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익세력은 반소반탁의 민심을 얻고 좌익세력과 대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족통일 문제도, 친일파 청산문제도 도외시되었고, 결국 이 논란이 남북분단을 불러일으켰다고 저자는 탄식한다. 이처럼 한국사의 민감한 부분을 다루면서도 공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
74 |
[역사] 다시 보는 한국사
이성무, 이희진 | 청아출판사 | 2013-04-0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74 |
[역사] 다시 보는 한국사
이성무, 이희진 | 청아출판사 | 2013-04-0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고대, 고려, 조선, 근현대
각 시대별 지배 세력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정치 구조의 차이를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살펴보는 한국사 공정한 한국사를 위한 객관적인 역사서 이제까지 한국사는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지나치게 재미만을 서술하거나, 혹은 편파적인 사관에 의해 서술된 경우가 많았다. 또 오래전에 쓰여 새롭게 연구된 내용들이 반영되지 않고, 모든 분야를 망라하다 보니 책의 중심 자체가 흔들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지금 무엇보다 절실한 건 쉽고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한국사 개설서이다. 《다시 보는 한국사》는 제대로 된 한국사 개설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정치사를 통해 접근한다.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사는 정치사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므로 그 흐름을 체계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정치사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각 시대의 국가 지배 세력과 정치 형태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쓰였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를 도외시하지 않았다. 경제, 사회, 사상, 문화, 주요 인물들을 정치사와 유기적으로 풀어 낸 것이 특징이다. 단 책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런 분야들을 거대한 축인 정치를 중심으로 섞은 것이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특정한 사관을 편파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까지 역사 서술에 있어 과거에는 특정한 사관, 이를테면 실증사관, 민족사관, 유물사관, 민중사관 등에 의거하여 쓰인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역사적 흐름을 특정한 사관으로 편중하여 해석하지 않고, 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중립적으로 서술하려고 한 것이 특징이다. 지배층의 변화는 곧 역사의 변화 지배층의 변화는 단지 왕조 교체에 그치지 않는다. 지배층이 변하면 다른 모든 분야도 유기적으로 동시에 변한다. 때문에 역사는 지배층의 변화에 따른 국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배층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것은 인간이 통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사료이며, 우리는 사료를 연구함으로써 통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사료를 바탕으로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사를 중심축으로 하여 연구한 결과를 보기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였다. 다만 사료의 양과 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대와 고려는 조선과 근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료가 적은 반면, 조선의 경우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기록들이 무궁무진하다. 또한 근현대는 비공개 자료들과 함께 아직까지 연구가 진행 중인 것이 많으며, 따라서 연구가 미진한 부분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의 차이를 감안한 동시에,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구해 최대한 많은 자료를 통해 편중되지 않도록 연구한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다시 보는 한국사》에서는 지배층의 변화로 인한 국가의 변화, 사건에 대한 배경과 인과 관계를 핵심적인 정치 흐름을 따라 서술한다. 이 책에서 밝히는 각 시대별 특징은 고대는 ‘하늘의 자손’을 지칭한 지배 세력이 나타나 국가를 이루고 이끌어 갔다는 것이며, 고려는 호족과 권문세족이라는 특권 계급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또한 조선은 사대부, 훈신, 사림, 탕평, 외척 세도 정치로 대표할 수 있으며, 근대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겪은 특수성과 독립 운동으로 크게 살펴볼 수 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의 변화와 각 정권의 추이에 따라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크게 고대, 고려, 조선, 근현대 등 네 챕터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성무는 고려와 조선, 이희진은 고대와 근현대를 집필했다. 또한 세밀한 내용은 분야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여 오류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했다. |
73 |
[역사] 매향리에는 매화나무가 없다
이경직 | 이북스펍 | 2012-11-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73 |
[역사] 매향리에는 매화나무가 없다
이경직 | 이북스펍 | 2012-11-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논란 중 하나가 바로 한국전쟁(韓國戰爭)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논쟁이다. 그 논쟁의 주제와 내용, 그리고 입장은 다양하다. 지금도 한국전쟁에 대해 연구를 하는 많은 연구자가 있다는 것은 그 논쟁이 아직 유효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쟁은 주로 역사학적?사회학적?정치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는 해당 사건이 역사적 사실로써 연구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 있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 연구의 과정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전쟁이 종결된 역사적 사실(fact)이라는 것이다. 휴전(休戰)이라는 형식을 통해 종식되었지만, 이에 대한 많은 논란과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
72 |
[역사] 비운의 조선 프린스
이준호 | 역사의아침 | 2013-06-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72 |
[역사] 비운의 조선 프린스
이준호 | 역사의아침 | 2013-06-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정말 조선의 왕자들은 화려한 삶을 살았을까?
조선시대 비정한 권력과 정치를 말하다! 우리는 흔히 ‘왕자’라는 단어가 풍기는 화려한 이미지에 갇혀 조선 왕자들의 운명이 지닌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껏 그저 막연하게 ‘왕자들은 구름 위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며 동경과 선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정말 화려했을까. 폐위되기 전에는 수많은 이들의 아첨을 받는 동시에, 절대 권력인 아버지와 적장자가 되지 못한 형제들의 견제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또한 폐위되고 나서는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지 못해 불운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처럼 수많은 견제와 탄압 속에 지쳐 가던 조선 왕자들은 제2권력자로서의 권세 높은 삶보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꿈꾸고 있었다. 적장자들이 짊어져야 했던 운명의 실체를 밝힌다! 《비운의 조선 프린스》는 흔히 부귀영화ㆍ명예ㆍ권력을 모두 지녔으리라 생각되는 조선 왕실의 제2권력, 세자들의 실제 삶은 어떠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흔들렸는지, 그들의 희생이 가져다준 조선의 정치적 이익 등을 깊이 있게 살펴보는 데 집중했다. 조선왕조의 경우, 일찌감치 왕세자로 책봉된 왕자가 단명으로 생을 마감한 경우가 유난히 많았는데 여기에는 어려서부터 강요받았던 고달픈 생활이 끼친 영향도 분명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왕조 특유의 권력세습 형태인 ‘적서차별’과 ‘적장자계승’의 원칙이 어떻게 조선시대 왕자들의 삶을 무너뜨렸는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비극적인 사연을 살펴본다. 조선시대는 적서차별, 적장자 계승원칙에 따라 왕권이 이어지는 시대였지만 조선의 500년간 왕위를 계승한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적장자로서 임금이 된 왕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 일곱 명뿐이다. 세자로 책봉되고도 부왕보다 먼저 죽거나 폐세자가 된 여덟 명(태종의 양녕대군, 세조의 의경세자, 명종의 순회세자, 광해군의 세자, 인조의 소현세자, 순조의 효명세자)을 감안하더라도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라는 원칙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는 조선이 적장자 계승원칙을 공공연하게 표방했건만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그 자리를 둘러싼 권력쟁탈로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적장자계승 원칙은 조선왕조 성립 때 이방원이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다지기 위해 구축했던 조선 특유의 후계자 선정방식이었다. 일찌감치 후계자를 정해놓으면 정국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문제는 세자를 세상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왕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온갖 유혹과 아첨, 갖가지 청탁이 넘치는 사이에 정치세력화될 위험마저 배제할 수 없다. 이를 경계한다는 것은 왕자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가짓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의무만 있을 뿐 권한은 없었다. 이 책은 이방원에게서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궁 밖으로 내쫓긴 정종의 아들 불노, 정종에게 아들임을 부인당하다 결국 난언죄로 생을 마친 지운, 주변의 지나친 기대와 감시에 지쳐 결국 타락의 길에 들어선 양녕대군, 조정의 이권에 의해 성종과 운명이 뒤바뀐 월산대군과 잘산대군, 광해군이 이미 왕세자로 책봉되어 있는 상황에서 태어난 적장자 영창대군, 적국 청나라의 포로로까지 잡혀가 모진 수모를 다 겪었으나 아버지의 견제로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 등의 비극적인 삶을 고스란히 정리했다. 각 장 마지막에는 왕자들의 가계도와 연표를 넣어 시대적 상황을 한눈에 추려볼 수 있도록 했다. 베일에 가려졌던 조선 왕자 생전의 모습을 생생히 담다! 조선 역사서 가운데 ‘왕’을 주제로 한 책은 많지만 ‘왕자’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날 조선시대 왕자를 주제로 하는 각종 드라마가 성행하고, 왕자에 대한 환상이 지금도 존재하는데 어째서 왕자를 연구하는 책은 보기 드문 것일까. 《비운의 조선 프린스》의 저자 이준호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출판한 역사책을 보면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내용 일색”이며 특히 왕자는 “왕자를 막연한 동경과 선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다보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아무리 조선시대 왕자라 해도 그들의 비극적인 사연 역시 상식에 비추어보았을 때 충분히 수긍할 만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집필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폐위된 조선 적장자들의 목소리는 정사ㆍ야사에도 기록이 한정되어 있어, 우리가 그들의 생각을 읽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저자는 피상적ㆍ상투적인 기존 책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자료 수집에 집중했고, 왕자들의 비극적인 기록이 담긴 사료의 행간을 읽으려 노력했다. 기록되지 않은 왕자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내야 하기에 집필부터 탈고까지, 장장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
71 |
[역사]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 하며
윤용철 | 말글빛냄 | 2013-06-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71 |
[역사]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 하며
윤용철 | 말글빛냄 | 2013-06-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조선의 사관들, 그들을 말하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졸기'를 근거로 조선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 시대의 중요한 인물이자 벼슬길에 올랐던 관인과 무인, 학자 중 23인을 골라 그들에 대한 졸기와 탄핵 상소문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과 사후 기록을 살핀다. 이 책에서는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황희 정승에서부터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 한명회, 허균, 정철, 김만중, 정도전, 이황에 이르기까지 이들에 대해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 함께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 잡아준다. 또한 이들을 통해 조선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
70 |
[역사]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
신봉승 | 청아출판사 | 2013-01-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70 |
[역사]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
신봉승 | 청아출판사 | 2013-01-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세종, 김굉필, 이동인, 채제공, 정약용, 박지원……
조선을 경영한 명현들, 21세기 대한민국을 경영하다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반되었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시시덕거리며 술과 여자에만 빠져 있습니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버둥거리며 뇌물을 받아 재산 모으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온 나라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 남명 조식, <단성소(丹城疏)> 명종 10년(1555), 남명 조식이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조식은 군왕의 실정과 높고 낮음을 막론한 벼슬아치들의 부정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조정에 출사하기를 거부한다. 이 상소문은 지금으로부터 400년도 더 과거의 글이지만, 글에서 꼬집고 있는 세태는 오늘날과 다름없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 우리들은 어느 때보다 후보자들의 자격과 자질이 궁금하다. 과연 우리는 어떤 가치에 기준을 두고 미래의 대통령을 뽑아야 할까? 작가 신봉승이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에서 밝힌 기준은 바로 인성, 사람됨이다. 비단 대통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국회의원, 장관, 기업인 모두에게 통용되는 기준이자 표준이다. 부정과 졸부의 시대, 양식을 가진 지식인이 필요하다 빈곤하고 가난했던 조선 왕조가 500년간 왕권을 유지한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저자 신봉승은 양식을 지닌 지식인이 나라를 경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천자문》과 《명심보감》, 《소학》 등을 몸에 배도록 외웠으며, 《통감》과 사서오경을 철저히 공부했다. 고전을 통해 인성을 갈고 닦는 동시에 역사 인식, 인문학(人文學)적 지식을 갖추고자 평생 노력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졌으니 조선이 오랜 기간 동안 예가 살아 있는 나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전문지식이라는 가치에 함몰되어 인성을 도외시하고 있다. 세계화만을 부르짖으며 역사 인식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는 예의와 도덕이 사라지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을 배려하는 대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고위층으로 가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경유착, 전관예우, 낙하산인사들의 병폐는 계속되고, 이러한 잘못을 인지하면서도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부패와 무능은 날이 갈수록 만연하니 이것은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모두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겐 개혁이 필요하다. 부패와 무능을 개혁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의지가 필요하다. 전문적인 지식보다 역사 인식을 몸에 간직하고 인문 지식을 두루 갖춘 지도자, 사람을 사람답게 쓸 수 있는 사람다운 지식인이 절실하다. 실무는 전문가들이 하면 된다. 하지만 전문가를 올바로 다스리는 것은 양식과 인성을 갖춘 지식인이다. 이런 지식인들이 대통령과 장관, 공무원으로 일해야 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 조선 왕조의 명현들이 무엇을 익히고, 어떻게 생활하고 정치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 대통령, 장관, 고위 공직자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될 것이며, 국민의 정치 인식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신봉승, 대한민국 정부를 구상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집행하는 사람이 무능하면 사상누각을 짓는 일에 불과하다. 역사를 교양으로 읽을 줄 알아야 식견이 확립되고, 표준이 정해지며, 윤리성이 살아난다. 그리하여 신봉승은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에서 식견과 표준을 갖춘 조선의 명현들을 21세기 대한민국의 내각으로 불러들인다. 선정 기준은 전문지식에 우선하는 사람됨이다. 과거 6조로 구성된 조선 정부와 15부로 구성된 대한민국 정부는 그 규모 면에서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나 다스리는 자, 곧 지도자의 기본은 사람됨이라는 저자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정부의 수장으로는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을, 국무총리로는 선조-광해군-인조 시기의 명신 오리 이원익을, 특임장관으로는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을 임명했다. 그 외에도 퇴계 이황, 면암 최익현, 중봉 조헌, 율곡 이이,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담헌 홍대용, 정암 조광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지식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신봉승이 꿈꾸는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 지식인이 솔선수범, 실천궁행하여 다스리는 이상적인 조직이다. 오늘 우리의 정부 지도자들이 역사 속 명현들의 행적처럼 법대로, 순리대로 다스린다면, 우리나라는 20-50클럽, G20, OECD 가입국의 위상에 걸맞은 모범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69 |
[역사] 아하 그렇군, 뜻밖의 조선 역사
이정근 | 책보세 | 2013-03-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69 |
[역사] 아하 그렇군, 뜻밖의 조선 역사
이정근 | 책보세 | 2013-03-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는 거창한 것만도 아니고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조금만 주의 깊게 둘러보면 역사는 우리 일상생활 공간 곳곳에 널려 있고,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흔적 하나하나가 역사 아닌 것이 없다. 그런 역사도 모르거나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만 스쳐 보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발끝에 차이는 깨진 기왓장 하나에도 수백 년 세월이 흐르고, 외딴집 문설주 하나에도 오만 사연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발로 쓴 역사 에세이다. 주로 서울?경기 일원에 소재한 역사 유적을 답사했으며, 조선시대 역사를 다뤘다. 요즘은 웬만하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가서 유적?유물 사진을 손수 찍었다. 주제별로 3부(사랑의 역사, 정치의 역사, 뜻밖의 역사)로 나누어 편집했으며, 각 꼭지마다 저자가 손수 찍은 역사 현장 사진을 곁들여 사실감과 흥미를 한층 살렸다.
미처 몰랐던 줄밖의 역사를 읽는 재미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데도 무심코 지나치고 말 역사 유적에 얽힌 얘기를 엄밀하게 고증된 문헌을 바탕으로 간명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기 쉬운 ‘뜻밖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은 자못 흥미롭다. 제1부 ‘사로잡힌 영혼, 그 은밀한 사랑의 역사’에서는 조선시대 ‘대표적’ 여인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치마끈을 풀듯’ 은근하게 풀어낸다. 혜원의 그림을 통해 조선시대 남녀의 애정행각을 들여다보고, 임금을 둘러싼 궁중 여인들의 사랑싸움과 애환을 풀어낸다. 남성 중심의 양반사회를 조롱한 황진이의 사랑,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펼쳐지는 양녕대군의 사랑 이야기는 압권이다. 제2부 ‘생사를 건 암투, 그 슬픈 정치의 역사’에서는 정치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암투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내고 있다. ‘상갓집의 개’ 흥선대원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안동 김씨 권문, 무지렁이 농사꾼 강화도령이 임금이 된 사연, 왕의 형님으로 살아가야 하는 대군들의 애환, 반정과 좌절당한 개혁 그리고 새 왕조 건설 과정에 얽힌 비사가 펼쳐진다. 제3부에서는 부제목 그대로 ‘놀라운 뜻밖의 역사’를 ‘아하, 그렇군’ 하고 무릎을 치도록 풀어내고 있다. 왕릉에 얽힌 복잡한 정치적 함의, 원조 한류 스타 추사와 청계천에서 만나는 정조 임금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이 책은 한마디로 발로 쓴 역사 에세이, 사진과 함께 읽는 살아있는 역사 산책서이다. |
68 |
[역사] 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
도현신 | 타임스퀘어 | 2012-05-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68 |
[역사] 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
도현신 | 타임스퀘어 | 2012-05-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전쟁의 포연 속에 감춰진 민중의 고통과 눈물”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풍경이다. 과연 옛사람들에게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 민중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 그들은 전쟁을 대비하다가 목숨을 걸고 참전하고, 전쟁이 끝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복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권력층, 군수산업체 관계자, 군수 상인들은 전쟁으로 혜택을 받는 존재였다. 이들이 벌인 전쟁은 언제나 민중의 이해와는 상관없었으나 그 고통은 백성의 몫이었다. 21세기 현대의 전쟁은 속전속결로 끝나지만, 전쟁의 포연 속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전쟁은 수많은 재앙을 일으키며 고통을 초래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완전히 없애거나 피할 수만은 없다. 자유를 위한 전쟁 역시 지금 이 시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왜 일어나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전쟁인 임진왜란은 일본이 갑자기 침공한 일방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100년 넘게 내전을 치르면서 과대할 정도로 팽창한 군사력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군인들이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면, 범죄나 폭력을 일삼아 일본 본국의 치안이 불안해질 우려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한 또 다른 이유에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나눠줄 영지를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일본의 최고 통치자 지위에 오른 사람으로서 부하들에게 상급으로 나눠줄 영지가 없으면 그들의 충성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선 침공으로 영지를 확보하고, 전쟁으로 생기는 각종 전리품을 기대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은 내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조선과 일본의 민중에게 엄청난 고통만 안겨주고 말았다. “전쟁이 휩쓸고 간 뒷자리, 변화하는 사회풍조” 조선시대에 16세 이상의 성인 남자는 60세까지 군역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60세까지라면 거의 평생을 군역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군역의 부담 때문에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하는 ‘아르바이트 군인’인 대립 제도나, 일정량의 군포를 납부하고 그해의 군역을 면제받는 방군수포제도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수탈당하던 조선시대 백성은 고향을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거나, 자해를 해서라도 군역을 면제받으려는 극한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 정약용이 쓴 〈애절양〉이라는 시를 보면 자식을 낳아 무거운 군포 부담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성기를 식칼로 절단하는 끔찍한 일을 벌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벌어지자 많은 조선 백성이 포로가 되어 일본과 청나라로 끌려갔다. 전쟁은 특히 여성에게 끔찍한 고통과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적군의 성노리개가 되어 팔리기도 하고, 노예로 팔린 여성들은 온갖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청나라에서 몸값을 지불하고 조선으로 돌아온 ‘환향녀’는 잘못된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 내몰려 정절을 지키지 못한 음란한 여인들로 규정되어,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화냥녀’ 또는 ‘화냥년’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전쟁이 휩쓸고 간 뒷자리에는 잘못된 폐단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한국인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동안 몇몇 기업은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우리 기술로 만든 핸드폰, 반도체, LNG선 등이 세계로 수출되는 현실을 보면 이제 전쟁의 우려는 사라진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일 뿐이다. 한국은 아직도 기초 기술 분야에서는 약소국이며, 한국이 자랑하는 핸드폰과 반도체도 그 속을 뜯어보면 핵심 부품과 원천기술은 전부 외국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가적 기술혁신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지만, 이윤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생리 때문에 기술의 진보가 군수산업과 깊이 결합하는 폐단도 발생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은 세계 패권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막대한 석유자원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세계의 식량 사정은 계속 불안해지고 있는데, 국제 곡물 시장을 소수의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식량 부족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한다면, 이런 기업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분명하다. 식량이 곧 핵폭탄 이상의 무기가 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다가올 식량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바라보며 어떻게 이 위험을 타개해 나갈 것인지 옛사람들에게 교훈을 얻어야 할 때가 아닐까? |
67 |
[역사] 오사카 아리랑
김현 | 이담Books | 2013-05-0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67 |
[역사] 오사카 아리랑
김현 | 이담Books | 2013-05-0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오사카 아리랑』은 다문화 연구자인 저자가 최근 5년간 진행한 재일코리안의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쉽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여행기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의 삶의 모습과, 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서로가 한 발짝씩 다가서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66 |
[역사] 왜 우리는 역사에 빠져드는가
이수광 | 소울메이트 | 2012-03-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66 |
[역사] 왜 우리는 역사에 빠져드는가
이수광 | 소울메이트 | 2012-03-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오늘, 역사를 읽는 것은 미래의 비전을 위해서다!
한국인들처럼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로 이루어진 드라마나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팩션형 역사서의 대가인 저자는 그간 대중역사서와 역사소설을 쓰면서 나름대로 ‘역사란 무엇이며 왜 읽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20여 년 전부터 삼국시대부터 발해, 고려, 그리고 조선의 뒷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나름대로 주관을 갖고 역사를 살피게 되었다. 저자는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오늘, 역사를 읽는 것은 미래의 비전을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 역사를 읽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읽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읽거나 쓰는 것이 즐겁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역사에 빠져드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역사를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사를 해석하는 자기만의 눈, 즉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는 뜻밖에 왜곡되고, 편향되고, 기술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다. 우리는 진실하지 않은 역사, 위선의 역사, 왜곡된 역사를 종종 읽게 된다. 권력자들은 불리한 기록을 은폐하려 했고, 진실을 남기려면 많은 희생이 따랐다. 이처럼 역사는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해석된다. 서술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조명되고,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니 역사를 서술할 때는 자기만의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러한 통찰이 더해질 때 역사를 읽는 재미는 더욱 배가된다. 그간 모르던 역사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 기존의 평가에 대한 나만의 시각과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평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역사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생각을 담은 대중역사서인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역사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한계에서 벗어나 역사를 보는 자기만의 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을 알면 내일의 길이 보인다! 이 책은 1장 역사란 무엇인가, 2장 역사는 진실인가, 3장 역사는 진보하는가, 4장 개인의 역사, 이렇게 크게 나누어 저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서술했다. 1장의 질문은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말하고는 한다. 그런데도 역사를 읽고, 논하는 것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1장에서는 역사의 기원부터 역사의 이상향, 그리고 혁명가들에 대해 논한다. 2장의 질문은 '역사는 진실인가'이다. 역사는 뜻밖에 왜곡되고, 편향되고, 기술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다. 우리는 진실하지 않은 역사, 위선의 역사, 왜곡된 역사를 종종 읽게 된다.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남기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리 감추고 은폐하려 해도 감추어지지 않고, 언로를 통제하면 수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된다. 2장에서는 승자가 쓴 역사, 위서라 불리는 역사, 편향된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3장의 질문은 '역사는 진보하는가'이다. 문명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확실히 역사는 진보한 측면이 있다. 왕이 다스리던 군주제 봉건시대에서 국민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시대로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하다. 이상적인 사회로 진보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3장에서는 역사의 희생자, 투사자, 목격자, 추동자, 면책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지막 4장의 질문은 '개인의 역사도 역사인가'이다. 개인의 역사는 하나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역사로 기록될 수 있다는 점을 서술했다. 개인의 일기, 서간, 그림은 개인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은 것 같지만 당대의 사회사를 살필 수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서 전쟁 상황을 살필 수 있고 김려의 『감담일기』를 통해 양반들이 유배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김홍도의 풍속도들을 통해서는 당시 조선 사람들의 생활을 살필 수 있다. |
65 |
[역사]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김운회 | 역사의아침 | 2012-05-0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65 |
[역사]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김운회 | 역사의아침 | 2012-05-0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정사(正史)를 기반으로 한 문헌 고증을 통해
새로 쓴 고조선의 역사, 그리고 후예들의 이야기 고조선의 후예들은 어떤 방식으로 분화하고 또 어떻게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는가? 우리는 고조선을 우리 역사의 여명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고조선이라는 국가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 같은 사료와 자료의 부족으로 고조선 연구는 극단적인 소중화 사상이나 국수주의적 관점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많았다. 그 결과 무엇으로도 고조선의 실체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이 책은 현존하는 역사 기록들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확인하고 분석함으로써 고조선의 실체 규명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고조선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고대 선조들이 어떤 모습으로 세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분화하고 어떻게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는지를 설명한다. 춘추전국시대의 강국, 고조선 고조선의 역사는 길다. 은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숙신, 북방의 맥·동호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고조선은 기원전 7세기에는 발조선으로 불리며 중국의 춘추 5패국 같은 제후국 형태로 유지됐다.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보다 독자적인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고 당시 전국 7웅 중 하나인 인근의 연나라와 경쟁하며 성장했다. 한때 연나라의 침공으로 요하 동쪽까지 밀리기도 했지만 연나라의 멸망 후에는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와 국경을 맞대며 화평을 유지했다. 기원전 2세기는 한나라와 흉노의 세력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번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흉노의 세력이 약화되던 기원전 2세기 말 한나라의 침공에 오랜 역사의 막을 내렸다. 중국 대륙에서 왕조를 건설한 고조선의 후예들! 흉노와 함께 만리장성을 이북을 지배했던 고조선이지만, 기원전 108년 결국 제대로 된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역사에서 사라졌다. 고조선의 멸망은 이후 거대한 유민의 파도를 일으켰다. 하나의 갈래는 고조선 옛터에 남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여에서 유입된 세력들과 함께 고구려 건국의 중추가 되었다. 다른 한 갈래는 고조선의 북부에서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선비나 오환 등으로 불리며 할거했다. 4세기, 고조선의 후예들은 선비족에서 분화된 모용씨 이후 중국 지배를 본격화하면서 중국 대륙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중국 대륙의 대부분의 비(非) 한족 왕조는 이들이 건설했다. 하지만 중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뿌리인 고조선의 고유성을 대부분 상실했다. 고조선의 고유성은 고구려와 고구려의 뒤를 이은 고려, 그리고 선비와 오환의 후예인 거란(요), 금나라, 청나라 등에 의해 미약하지만 유지됐다. ‘동이(東夷)’의 다른 이름, ‘동호(東胡)’ 일반적으로 ‘동호’와 ‘동이’는 별개의 민족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사기』에 기록된 ‘연나라 장수 진개’ 관련 기사, 예맥의 대표적인 나라인 고구려와 고조선의 중심지가 동호의 중심 지역과 일치하는 점, 고조선의 주요 유물이나 유적과 한반도의 주거시설인 온돌의 기원이 동호 지역인 점, 청동 유물의 분포가 예맥과 동호 지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 동호의 호라는 말이 예맥을 지칭하는 고구려나 고조선을 나타내는 말로 혼용하여 사용되는 점, 예맥이라는 말이 사라지면서 동호의 후예로 알려진 오환과 선비가 이를 대체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동호와 동이, 예맥과 동호(오환과 선비) 등은 서로 다른 말이라기보다는 시기적으로 달리 나타난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나아가 관련 기록들이 동호와 고조선(또는 예맥)을 서로 혼용하고 있어 동호는 곧 고조선임을 알 수 있다. |
64 |
[역사] 조선 노비들 - 천하지만 특별한
김종성 | 역사의아침 | 2013-06-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64 |
[역사] 조선 노비들 - 천하지만 특별한
김종성 | 역사의아침 | 2013-06-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노비, 조선을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그 내밀한 역사의 새로운 탐닉! 열여덟 개의 키워드로 읽는 조선 노비, 그리고 노비제도! 이 책은 조선시대 노비 열여덟 명의 삶을 소개하고, 각각의 노비와 관련된 개별 쟁점, 즉 노비의 개념, 기원, 결혼, 직업, 사회적 지위, 유형, 의무, 법률관계, 재산, 자녀, 면천, 저항 등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또한 사료 속에만 존재하던 인물들을 사료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동안 사극이나 문학 작품 등에서 ‘하나의 면’만이 부각된 노비들의 본모습과 함께, 그들의 모습을 통해 조선을 지탱했던 기둥 중 하나였던 ‘노비제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사료 밖으로 나온 노비, 조선 서민의 일상을 복원하다! 조선 사회에서 노비는 사극 등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수많은 양인들 가운데 어쩌다 한 번 등장할 정도로 희소한 존재가 아닌,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학계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 노비의 수는 전체 인구 중 최소 3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에 저자는 조선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노비의 모습이 곧 조선 서민의 여러 모습 중 하나임을 강조한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이 소개하는 열여덟 명의 노비 모두는, 조선 노비의 삶과 함께 조선 노비제도를 살피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또한 조선 서민의 일상을 복원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사농공상의 벽을 허문 노비, 선비들의 존경을 받다! 조선은 아예 법으로 “노비는 벼슬길에 나갈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농업·공업·상업·병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노비가 벼슬길에 나가는 것은 아예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도외시한 채 학문 활동만 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박인수는 중추부지사를 지낸 신발의 노비였지만 학문 활동으로 많은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중종 대의 문신으로 공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낸 반석평 역시 태생은 박인수와 마찬가지로 미천한 노비였다. 비록 벼슬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시문에 능해 선비들의 인정을 받은 노비들의 사례 역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16세기 조선 문단을 풍미했던 백대붕은 선박을 제조·관리하고 물자를 수송하는 전함사의 관노였고, 유희경은 “주인을 충심으로 섬기는” 사노였다. 노비의 재산 보유, 낯설지 않은 조선의 풍경! 신분의 구속, 무거운 의무 등으로 대부분의 노비는 먹고살기만으로도 바쁜 일생을 보냈을 터다. 하지만 일부 노비들 중에는 재산을 축적하여 부자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이 있었다. 조선 태종 대에 의흥삼군부의 좌군에 속한 공노비였던 불정은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부자 노비’였으며, 선조 대의 성명 미상인 공노비는 그 당시 한성 최고 기생이었던 ‘성산월’을 차지했을 정도로 “재산이 거만(鉅萬)”이었다. 분명한 점은 부유한 노비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부유한 노비는 전체 노비의 일부에 불과했다. 노비는 주인이나 일반 양인에 비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63 |
[역사]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김종성 | 지식의숲 | 2013-06-1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
63 |
[역사]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김종성 | 지식의숲 | 2013-06-1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7-23)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신숙주의 배신이 조선을 살렸다?
최숙빈은 중상모략도 서슴지 않았다? 장희빈의 죽음이 정약용을 몰락시켰다?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임진왜란을 일으키다? 칭다오 맥주가 조선 멸망을 앞당겼다? 순간의 선택, 그 반전이 조선의 역사를 바꿨다! 과거의 역사가 있기에 지금의 현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반전’을 키워드로 역사의 숨겨진 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의 새로운 모습을 알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사 이해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또 그 반전이 없었다면 벌어졌을 가상의 상황을 보여 주면서 '반전'이 주는 역사적 의미도 되새겨보고자 한다. ‘반전’을 통해 바뀐 역사와 인물의 이야기에서 기지와 재치, 전략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역사 속 숨은 진실을 파헤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승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그것이 온전한 진실이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 안에는 패자에게 불리하거나 승자에게 유리하게 서술된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해 역사를 뒤집어봄으로써 역사 속 숨은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통해 이미 벌어진 역사와 그 반대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현재의 상황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다면 보다 냉철하게 이해하고 미래를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30가지 사건, 조선을 바꾸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에 발생한 서른 가지의 사건을 놓고 각각의 사건이 전혀 다른 결론으로 종결됐다면 역사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추리한다. 지도자의 순간의 선택, 갑작스레 발생한 지도자의 사망,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의 개성과 특성 등이 역사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준다. 변절의 대명사로 알려진 신숙주가 사실은 조선 전기의 태평성대를 이룬 인물이라는 것, 수양대군이 아니었어도 단종은 결국 어린 나이에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 장희빈의 죽음이 훗날 정약용을 몰락의 길로 가게 했다는 것까지. 놀라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역사적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