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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2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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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2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지명이 품은 한국사 두 번째 이야기』는 2010 올해의 청소년 도서에 선정 된 서울 경기도편에 이은 전국의 지명 유래 두 번째 권이다. 한국사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다양한 참고자료를 통해 쉽게 풀어냈다. 이제까지 전승되어 온 고유한 지명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전통 지명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지명에 얽힌 선조들의 생활상과 애환을 비롯하여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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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3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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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3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지명이 품은 한국사』 제3권 '서울 강원도 편'. 이 책은 서울시 지명위원으로 활동 중인 저자가 서울 지역과 강원도 지역의 지명 유래에 대해 담은 것이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용사들이 잠든 곳 '중구 장충동'부터 검은 바다에 새까맣게 물새가 몰려온 고장 '동해시 묵호동'까지 오랜 우리네의 삶 속에서 역사적, 지역적인 중요성과 각각의 의미를 밝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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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4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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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4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지명 유래 서울 경기도편『지명이 품은 한국사』네 번째 이야기. 이 책은 서울시 지명위원으로 활동 중인 저자가 서울 지역과 강원도 지역의 지명 유래에 대해 담은 것이다. 정조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 바친 촌로 변씨 '관악구 남태령'에서부터 배움의 정신이 이어지는 교육의 마을 '안양시 안양동'까지 오랜 우리네의 삶 속에서 역사적, 지역적인 중요성과 각각의 의미를 밝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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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5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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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명이 품은 한국사 5
이은식 | 타오름 | 2013-01-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명에 담긴 역사와 풍성한 이야기들
한 나라의 영토가 국민의 생활 무대라면 지명은 그 생활 무대에 붙여진 향토 문화유산의 종합체이며, 고유 지명만이 갖고 있는 향취와 멋이라고도 하겠다. 지명은 한 고장의 생활상을 나타내는 특징이나 지리적, 민속학적 특징에 의해 명명되어 왔기 때문에 오랜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또 지명을 통해 지질과 산업, 풍수에 이르기까지 지리학적 특성은 물론 유물이나 유적, 제도와 인물 등에 얽힌 전설도 함께 알게 된다. 이렇듯 지명에는 한 시대의 역사가 숨 쉬고 있으므로 사라진 풍속잉나 생활 습관까지도 엿볼 수 있다. 한 나라의 수도뿐만 아니라 각 지역은 역사의 과정을 통해 몸집이 비대해지게 마련으로, 쉽게 구별하고 파악하기 위해 정해진 이름과 별칭을 갖게 되었다. 또한 세월이 거듭됨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해 왔듯이 땅의 이름도 무수히 개명되어 왔다. 이 책의 저자는 지역의 이름이 단순히 지은 것이 아니라 오랜 우리네의 삶 속에서 역사적, 지역적인 중요성과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므로 소홀히 다룰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며 서울, 충청북도 지역 지명의 유래에 대해 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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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근현대편
최용범, 이우형 | 페이퍼로드 | 2013-04-2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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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근현대편
최용범, 이우형 | 페이퍼로드 | 2013-04-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시리즈,
근현대사 1백여 년에 대한 종합 보고서로 돌아왔다!” 109쇄 발행, 150주 연속 역사·문화 분야 베스트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의 후속작이 출간되었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 근현대편』의 출시로 마침내 시리즈가 완결된 것이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가 5000년 한국사를 두루 조망한 책이라면, 근현대편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가까운 역사에 포커스를 맞췄다. 오욕과 고난 속에서도 ‘다이내믹 코리아’의 기적을 창출한 지난 백년을 한눈에 파악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1백여 년에 대한 한 편의 종합 보고서’라 할 만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장점은 쉽고 재미있는 서술이라는 점이다. 압축적이고 개념적인 교과서의 서술방식, 어려운 용어와 개념이 난무하는 딱딱한 역사책의 방식을 탈피했다. 의견보다는 사실(fact)에, 일방의 주장 대신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는 가운데, 무엇보다 역사의 행위자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역사란 결국 사람의 의지와 행동이 이끌어간다는 진실 외에 이야기가 역사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흥미진진한 독서 속에서 독자들은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은 물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핵심사건, 논란거리 등에 대해 쉽고 빠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사 공부가 필요한 수험생, 식민지와 독재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청년층,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동력을 얻고자 하는 중·장년층 모두에게 유익한 근현대사 탐험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의 오늘을 밝혀주는 치명적인 거울, 한국의 근현대사 근현대사는 이제 막 유리판에 수은을 바르고 연단을 칠한 쨍쨍하게 맑은 거울이다. 그 앞에 서서 얼굴을 들여다보면 작은 주름과 기미, 모공까지 훤히 들여다보여서 오히려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현대식 거울이다. 그런 거울이 이제 막 세상에 나왔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의 후속작인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 근현대편』이 바로 그 책이다. 모든 시대는 흥망성쇠를 거치며 저마다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지만, 한국의 근현대는 유난히 아픔이 많았던 시기였다. 일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징집과 징용으로 숱한 한국인들이 죽어가기도 했다. 광복과 함께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더니,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끝에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다.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신원운동, 땅 반환 소송이 심심찮게 언론을 장식하고, 21세기인 오늘에도 남과 북의 스파이 사건은 끊이질 않는다. 한마디로 자랑스럽지도 않고 내세울 것도 없는 깊은 동굴 속의 어둠이다. 하물며 아직도 이해관계가 얽힌 개인과 집단마다 아전인수식으로 역사를 재단하려 하니 그 실상을 드러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못난 역사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싶은 건 모든 한국인들의 인지상정이 되고 말았다. 창호지를 뚫는 송곳처럼 근현대사의 핵심을 담아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럴수록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응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선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이 시기를 통해 잉태되고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이 시대의 모든 것은 곧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다. 저 고려 말의 이방원은 정몽주더러 “만수산의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이 칡넝쿨 같은 근현대사의 가닥을 풀고 그 핵심을 가려냄으로써 미래의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 이 거울이 치명적이라면 바로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대중적인 역사서를 지향하는 이 책은 재미와 함께 그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단 어려운 용어와 개념 해설로 짚어내는 의미가 아니라, 독자와의 호흡을 놓치지 않으며 함께 찾아내는 의미를 지향했다. 가장 흥미로운 소재거리인 역사적 인물들의 행위와 감정, 동기를 씨줄로 하고, 시대적 사건들을 날줄로 삼아 가능한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의 본질과 의미를 보다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엄선된 사건과 맞물려 근현대사의 핵심에 대한 일목요연하면서도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인물과 시대 배경, 과정과 결과까지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본문 중간에 삽입된 칼럼과 역사메모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는 칼럼은 사소한 디테일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적 진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역시 독자들의 읽는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또 매 꼭지 말미에 본문에서 실을 수 없었던 자투리 사실을 부기함으로써 자칫 잊히기 쉬웠던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재미도 맛볼 수 있게 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사료 인용과 사진 등의 풍부한 자료를 통해 지루한 역사책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평면 위에 그려진 입체화 같은 역사서를 지향함으로써 ‘복잡한 한국 근현대사를 이야기와 그림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는 취지를 구현했다. 유구한 역사의 물줄기 가운데서 현재와 가까운 시기인 근현대사를 기술하는 것은 난해한 일이다. 각계각층의 입장이 반영된 방대한 양의 사료들을 참고해야 하고,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이 첨예한 영역에 대해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진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 근현대편』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주변의 여건에 타협하지 않으며 재미와 진실이라는 요소를 놓치지 않았다. 근현대사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 충족과 진지한 탐색에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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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탄생의 비밀
박상하 | 경영자료사 | 2013-12-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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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탄생의 비밀
박상하 | 경영자료사 | 2013-12-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탄생의 비밀』은 한국의 장구한 역사가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유전자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보는 데서 출발을 한다. 오늘날 한국의 탄생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며 역사 속 한국인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그토록 장구한 시간이 걸려야 했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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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학생운동사
이재오 | 파라북스 | 2013-10-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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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학생운동사
이재오 | 파라북스 | 2013-10-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이재오의 민주화운동사 정리 (전 2권)
농촌운동가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했으나 1965년 한일협정 비준 반대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제적당하고 강제 징집되어 군으로 간 청년 이재오. 그는 이후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다섯 차례의 옥고와 모진 고문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꺾지 않았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던 민주수호 청년협의회의 2대 회장,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1990년 기층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창당한 민중당의 사무총장 등 민주화운동의 주역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가 1984년 ‘한국 학생운동사’와 ‘한일회담과 반대운동’을 정리한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들은 학자가 아닌 민주화운동가가 정리한 민주화운동사로서, 운동가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역동적이고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1년, 27년 만에 개정판을 내놓았다. 4선 국회의원이며 특임장관을 지낸 정치인 이재오, 민주운동가로 살아온 그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 이 책들은 당시 시대의 기록이자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유용한 사료가 될 것이다. ≪한국 학생운동사: 1945~1979년≫ 학생운동사를 정리한 ≪한국 학생운동사: 1945~1979년≫은 1945년 이후의 학생운동사를 학자가 아닌 민주화운동가가 집필한 최초의 서적이었다. 또 9쇄까지 발행할 정도로 당시 대학가에서는 필독서였고, 군사정부는 출간과 동시에 금서 딱지를 붙였다. 출간과 동시에 금서목록에 올랐다는 사실은 이 책이 당시 사회에 불러일으킨 반향을 짐작케 한다. 이 책이 출간되던 해로부터 27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 사회도 변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변해도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은 언제나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숙제다. 민주주의 가치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퇴보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성숙시키는 일이야말로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정권이 들어선 지도 어언 20여 년. 그동안 우리 학생운동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지금 대학캠퍼스에 최루탄 가스가 날리지는 않지만, “우리 젊은 학생들은 여전히 다양한 요구와 주장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또 과거에는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학생운동의 발전사를 들여다보고, 학생운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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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인물통찰
김종성 | 역사의아침 | 2012-07-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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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인물통찰
김종성 | 역사의아침 | 2012-07-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사에서 큰 활약상을 펼친 18명의 역사인물 뒤집어보기!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저술, 학술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 김종성이 『한국사 인물통찰』에서 교과서나 사서에 의해 형성된 고정관념을 뒤집는 도발적인 평가를 통해 18명의 역사인물을 재조명한다. 장수태왕은 중국에 조공하지 않았을까? 강감찬은 단지 고려 구국의 명장일까? 이성계는 한민족 출신일까? 정도전은 서민을 위해 개혁정치를 펼쳤을까? 흥선대원군은 꽉 막힌 강경 쇄국론자일까? 이 책은 실제와 상반되게 알려져 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거나, 관점을 달리할 경우에 전혀 색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는 역사인물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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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전쟁의 기술
한정주 | 다산초당 | 2013-04-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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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전쟁의 기술
한정주 | 다산초당 | 2013-04-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친근한 한국사에서 현실을 헤쳐 나갈 ‘전략의 지혜’를 찾다!
온라인 연재시 조회수 10만을 기록한 최고 인기작 책으로 출간! 동서고금 최고의 병법서가 한국사를 만나다! 한민족의 역사에 대한 오래된 오해 중 하나는 한 번도 다른 민족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민족의 최초 국가로 생각되는 고조선 시절부터 중국 한나라와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으며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공민왕의 고구려 고토 회복 전쟁, 세종대왕의 대마도 정벌 등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공격적 전쟁이 있었다. 한반도는 고대부터 전쟁터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간의 전쟁은 물론 수나라, 당나라와 전쟁이 있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요나라, 원나라와의 전쟁,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일본, 청나라와의 전쟁이 있었다. 크고 작은 외침만 580여 회에 달하며 국가 안에서 일어난 반란의 전쟁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상식을 초월한다. 전쟁은 생사의 존망을 건 투쟁이기에 그 전략과 전술은 급박한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이는 인간사의 다양한 방면에 적용된다. 전쟁에서는 군사 전략이 정치에서는 정치 전략이 되고, 시장 경쟁에서는 경영 전략이 되며, 인간관계에서는 관계의 전략이 되고, 리더에게는 리더십의 전략이 되며, 조직에서는 조직 운영의 전략으로 무궁무진하게 활용되는 것이다. 이 책 《한국사 전쟁의 기술》은 《손자병법》의 36가지 전략에 따라 한민족의 전쟁사를 살펴본 책이다. 오늘날 우리가 던져진 현실은 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지구촌 정글이다. 고통 끝에 승리를 얻은 감격에 잠시라도 취해 있자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치는 숨 가쁜 현실 속에서 ‘전략’이 가지는 중요성은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시간적 ? 공간적 조건의 제약과 한계가 지도자나 전략가들이 전략적 안목과 능력을 충분히 습득할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다. 과거의 경험과 역사 속 사례를 통해 충분한 예행연습 혹은 예비 학습을 거친다면 현실적인 조건의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되고, ‘화석이 아닌 살아 약동하는 생명체’가 된다. 전쟁에서 인간관계까지, 기존의 역사에 대한 전혀 다른 전략적 해석! 이 책의 미덕은 비단 우리 역사에서 현실을 헤쳐 나갈 전략적 지혜를 찾았다는 데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익숙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의 조화, 또는 익숙한 것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여 새로운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강동 6주의 반환을 이끌어 낸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은 그동안 서희의 기개와 담력이 이루어 낸 결과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송나라와 요나라, 그리고 여진 등 당시 동아시아 민족들이 맺고 있던 복잡한 관계를 이용해 이로움과 해로움을 동시에 수반하는 양면 협상 전략을 쓴 덕분이었다. 협상의 이면에 치밀한 전략적 숙고와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외교적 승리였던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 흔히 삼국시대 최고의 전략가를 꼽는다면 김유신을 떠올리기 쉽다. 김유신이 요녀 금화를 보내 의자왕의 정치적 판단을 흐려 놓거나 황산벌 전투에서 화랑 관창과 반굴의 희생양 전술을 활용하는 등 지략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백제의 성충을 최고의 전략가로 꼽는다. 성충은 백제, 고구려, 신라, 당나라 4개국 간에 얽힌 군사 ? 외교적 이해관계를 통해 고구려 연개소문과 동맹을 맺고 신라의 사신으로 간 김춘추를 볼모로 잡는 데 성공한다. 또한 김유신에게 포섭된 백제 관리 임자의 모함으로 유배객의 신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현과 기벌포를 막으면 나당 연합군의 공세를 꺾을 수 있다는 마지막 전술적 판단을 놓지 않는다. 거시적인 정세 파악 능력과 세부적인 전술 활용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삼국 최고의 전략가는 바로 성충이었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조선사에만 치중되어 있었던 무늬만 한국사인 책들과는 달리 청야전술(淸野戰術)로 대표되는 고구려군의 지연술과 거란 침입 당시 빛을 발했던 고려군의 게릴라 전술, 왕좌를 되찾기 위해 분열 전술을 감행했던 고려 인종의 사례와 인정 때문에 김용의 반란을 막지 못했던 공민왕의 패착, 조선의 인삼 거상 임상옥의 속도 조절 전략과 일제하의 황금 대왕 최창학의 선점 전략, 세계 최강의 로마군을 깨뜨렸던 한니발의 포위 섬멸 전술 등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한국사부터 세계사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부터 정치와 외교, 경영과 인간관계의 영역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고전 연구가인 저자가 역사와 고전을 현대인들의 욕구에 맞도록 재구성하여 일반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는 굳은 결심 하에 수년간 천착해 온 결과물이다. 극기의 승부, 그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하여 저자는 《손자병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한국 전쟁사를 중심으로 한 전략의 역사를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놓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최선의 승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적을 온전히 두고서 승리하는 것’이 바로 최선의 승리라고 말한다. 후삼국 시대 천하 패권을 겨룬 왕건의 책략전과 견훤의 소모전이 이 교훈을 전해 주는 사례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이것은 《손자병법》 전반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전략의 철학이자 동서고금의 전쟁사가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전언(傳言)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의 구분마저 아득해진다. 전쟁터에서는 도저히 같이 가지 못할 적이라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감정적인 분노를 전략적으로 통제하면서 상대방을 가슴에 품어 안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과감함보다는 신중함에, 결단력보다는 인내력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나와 상대방이 동시에 승리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한국사 전쟁의 기술》을 읽다 보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의 사람들 역시 현재 우리와 비슷한 고민과 도전 앞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이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숨가빠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현실을 타개하고 미래로 향한 문을 열어젖힐 ‘전략의 지혜’를 선사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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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이근호, 박찬구 | 청아출판사 | 2013-10-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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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이근호, 박찬구 | 청아출판사 | 2013-10-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한국사의 숨겨진 맥락을 살펴본다!
고조선의 건국부터 6월 민주 항쟁까지『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이 책은 고조선부터 6월 민주 항쟁까지 면면히 이어진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 하나하나의 인과관계와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그 사건이 다른 사건과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삼국의 권력다툼, 살수대첩, 귀주대첩, 임진왜란 등 외세의 침입에 대항한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담고 있으며, 독자들이 생소하게 생각할 만부교 사건, 강조의 정변, 나선 정벌 등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건들의 이면을 밝히고 있다. 또한 고대, 고려, 조선뿐만 아니라, 8.15 광복이후에 벌어진 다양한 민주화 운동까지 연결시켜 보여줌으로써 각 사건의 역사적인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을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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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
신명호 | 다산초당 | 2013-04-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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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
신명호 | 다산초당 | 2013-04-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묻고, 생각하고, 답하는 새로운 역사 읽기의 시작!’
12가지 쟁점 코드로 읽으면 한국사의 핵심이 보인다! 신문을 읽기 전에 반드시 기본 한국사부터 읽어라! 신문을 펼치면 이웃나라 일본, 중국과 겪고 있는 국제적 문제나 서양문화권과의 사회적 마찰에 대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신문 기사 내용들은 단지 오늘의 사실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터질 때마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하며, 한반도 앞바다의 제해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신경전 또한 이미 몇십, 몇백 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민감한 사안들이다. 그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서야 오늘의 국제사회 정세나 경제에 대해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다. 역사 읽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통찰력을 길러주는 중요한 가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과서 읽듯이 시간순만 좇아서는 역사와 현실을 잇지 못한다. 이천 년의 한반도 역사 속에서 그 수많은 사건들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관점에서 필요한 핵심만 가려내서 읽는 새로운 역사 읽기가 필요하다. 『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의 저자 신명호 교수는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했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신문의 한 페이지만 읽어도 비슷하거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과거의 사실들이 떠오른다고 한다.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쟁점이 되어 왔고, 우리의 현실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 요소들을 12가지로 선정하고 현재에서 시작해서 과거로 넘어가는 새로운 역사 집필을 시작했다. 그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다면 역사를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역사를 넘어 현재까지도 쟁점이 되고 있는 12가지 코드를 잡았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 시대의 문제와 마주했다.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그 시대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흥성했다. 반면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그 시대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쇠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냉전시대에 이념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양 진영의 최전선이었다. 한국전쟁 때 양 진영을 대표한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을 벌이기까지 했다. 현재 통일을 이루지도 못한 상태에서 탈냉전시대에 접어든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이념적, 군사적 충돌 위험에 더하여 탈냉전시대의 문명적, 문화적 충돌 위험에도 처하게 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 시대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박하기에 한국사의 통사적 반추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이 책에 선전된 주요 쟁점 12가지는 현재 한국사회가 대내외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1부 ‘세계 속의 한국사’에서는 6가지 코드(중국, 바다, 일본, 서구화, 종교, 유학)로 삼국시대, 고려, 조선이 주변국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살펴본다. ‘CODE1 중국’ 편에서는 21세기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다시금 떠오른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놓고 송과 금, 명과 청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던 고려와 조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살펴보았다. ‘CODE2 바다’ 편에서는 삼면이 해안으로 둘러싸인 지리적인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삶이 어떠하였는지 엿볼 수 있다. 그 외에 서구화의 과정에서 유입된 가톨릭교의 번성 과정과 선진문물을 배우려는 유학 열풍 등을 국제적 관계 속에서 살펴본다. 2부 ‘변천 속의 한국사’에서는 그 시대를 대변하기도 하고 또한 크게 영향을 미쳤던 6가지 코드(국호, 개혁세력, 최고 권력자, 헌법, 수도, 천재지변)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갔는지 알아본다. 이러한 쟁점들을 통사적으로 반추함으로써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통감(通鑑) 전통을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적합하게 계승하여 응용한 것이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새로운 역사 읽기가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는 중국의 손을 잡아야 하는가?” - CODE1 중국 “끊이지 않는 어장 침범, 한반도의 제해권 이대로 좋은가” - CODE2 바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 있는가?” - CODE3 일본 “진보개혁의 성공은 무엇이 좌우하는가?” - CODE8 개혁세력 “행정수도 이전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 CODE11 수도 위의 질문들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사상과 전통을 이해하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삼국시대 때부터 한반도를 노략질하고,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한반도에 식량난을 초래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조선은 이에 대한 방편으로 일본과 교린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때로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본격적인 비극이 시작된 것은 구한말 일본이 제국주의의 면모를 갖추면서였다. 그 이전에는 항구를 개항하여 대마도와 일본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통로를 여는 등, 함께 살기 위한 평화적인 방법이 실행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일본과 한국 사이의 비극의 실체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역사적인 충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역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통찰력을 안겨준다. 한국사의 주요 내용들이 어렵지 않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현실과 과거를 잇는 생각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대내외 쟁점들을 거시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보다 원숙하고 충실한 역사 읽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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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홀로앉아 금을 타고
이지양 | 샘터 | 2013-07-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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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홀로앉아 금을 타고
이지양 | 샘터 | 2013-07-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2-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이 책은 한문학자인 저자가 옛글 속에 담긴 우리 고전 음악과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인문 교양서이다. 옛 음악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주제, 양식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꼼꼼히 정리하고, 역사 속에 묻힌 우수한 예술가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 보여준다. 또, 그 이야기 속에서는 풍류를 즐기며 여유롭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생생한 삶과 문화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 고전 음악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더라도 흥미를 가지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에세이 형식으로 주제를 풀어 나간다. 예를 들어 ‘그녀와 놀고 싶은 봄날의 꿈, 춘면곡’을 보면, 좋아하는 연예인을 기다리느라 건물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당시로서는 연예인에 해당하는 기생을 기다리느라 앳된 서생이 도포를 멋지게 차려입고 부모 몰래 술집 앞에서 서성대며 지은 노래인 <춘면곡>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한시나 옛 노래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한 저자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노래나 연주, 음악가에 대해 의미 깊고 즐거운 탐색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조상들의 음악 문화와 미의식, 그리고 생활 속의 문화 향유 현장이 어떤가를 알리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데다,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옛 노래와 함께하는 ‘맑은 즐거움’ 옛글을 보면 우리 선인들이 즐거워 한 것은 대체로 돈 안 들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느긋하게 독서하는 것, 단정히 앉아 고요히 말없이 있는 것, 산수 자연 속을 한가로이 거니는 것, 평상에 앉아 거문고를 타는 것,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것, 꽃을 가꾸는 것, 차를 마시는 것 등이다. 저자는 이런 즐거움을 옛글에 빗대어 ‘맑은 즐거움’이라고 말하는데,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깊은 산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맑은 샘물에 가서 발을 씻고 노송에 기대어 시가를 읊으며, 마루 위에는 이름난 거문고와 오래 묵은 석경, 바둑 한 판,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두고, 마루 앞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화초와 나무, 그리고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돋우는 약초들을 심으며, 때로는 산의 승려나 선인들과 서로 왕래하고 돌아다니며 즐겨서, 세월이 오가는 것을 모르고 조야(朝野)의 치란(治亂)을 듣지 않는 것, 이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 한다.’ 옛사람들의 즐거움은 이처럼 ‘맑은 것’이었다. 이는 그 대상이 맑기 때문이 아니라,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의 마음 자체가 맑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리라. 그리고 옛사람들의 즐거움에는 노래와 거문고가 있었다. 연암 박지원에게도 음악과 함께한 그리운 추억이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선배인 담헌과 둘이서 처음 본 악기 줄을 고르고 음을 조절하고 있는데, 달빛을 타고 기약도 없이 또 다른 선배가 찾아왔고, 그 선배는 흥이 도도해지자 온다 간다 말없이 눈 갠 수표교로 교교한 겨울 달빛을 바라보러 가버려서, 그 선배를 찾아 나섰다가 결국 다 같이 수표교 위에서 악기 연주를 하고 겨울 산책을 하게 된 이야기. 굳이 말하자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연암은 그날의 일을 ‘다시는 그런 운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저자 이지양 선생은 그 이유를, “맑은 즐거움일수록 남들에게 말하려 해도 너무 싱거워서 말할 것이 없고, 말하지 않으려면 아련하게 그 맑은 기운이 추억으로 맴돌아서 몹시 그리워지기 때문이다”라고 풀어 놓는다. 옛 노래의 의미와 역사 이 책의 저자는, 무엇보다 이름만 알려졌을 뿐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어떤 내용의 곡들인지까지 알기 어려웠던 옛 음악들을 꼼꼼히 정리하여 해설한다. 피리 소리가 마치 바닷물 속의 용이 구불구불 즐겁게 헤엄치면서, 휘파람을 부는 소리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수룡음>이나, ‘황하가 천 년에 한 번 맑아진다’는 의미에서 나온 <황하청>, 볕이 아주 곱고 따사로운 늦은 봄을 뜻하는 <염양춘> 등 우리가 모르고 있거나 이름만 들었던 옛 노래들을 찬찬히 그 배경과 역사를 훑어가며 쉽고 자세하게 풀어준다. 각 노래마다 한국 전통 문화속의 음악을 알리려는 저자의 애정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담은 자유로운 글쓰기로 펼쳐져 독자들에게 더욱 쉽게 다가간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십이 가사 중 하나인 <춘면곡>은 ‘선비가 따뜻한 봄날에 느지막이 잠을 깨어 옷을 차려입고, 야유원으로 놀러 가서 기생들에게 둘러싸여 놀고 싶어 하는 심정을 읊은 노래’라고 해설하며, 옛날의 기생을 현재 톱스타 연예인에 비유하며 독자를 위해 즐거운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이 책에서 때로 콧등이 시큰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저자 자신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쓰기 때문이다. 저자가 모친의 고향을 찾아가 “엄마 생전에 이곳에 모시고 와서 며칠 묵으며, 엄마의 유년기와 처녀시절 이야기도 듣고, 마을 옛이야기도 듣고 그렇게 돌아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후회하며, <회심곡> 한 곡조와 연결시키는 글은 음미할수록 맛이 나는 차를 마시는 듯하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전통 문화의 맛과 향이 진하게 담겨 있다. 옛글에서 우리 예술가를 만나다 우리나라에도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 <바이올린 플레이어>, <가면 속의 아리아>, <현 위의 인생> 등을 능가할 만한 음악가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저자는 우리 역사 속에 묻힌 우수한 예술가를 찾아 우리 선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먼저, 활을 만드는 장인바치로 일하던 관노가 거문고를 배워 장악원 악공으로 변신한 ‘김성기’라는 분이 있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삶은 여느 영화 속 이야기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높은 기개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보여 주는 목호룡과 관련한 일화나 말년에 집이 가난하여 작은 배를 사서 삿갓 도롱이에 낚싯대를 하나 쥐고 강물에 떠다니며 고기를 낚으며 살았다는 이야기는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해금 연주를 했다는 ‘해금의 독보’ 유우춘, 가야금 연주 때문에 장가를 못 간 민득량, 우리 식의 18세기 <가면 속의 아리아>로 여자 목소리를 잘 내는 남자 소리꾼 남학 등 천부적 재능을 타고나 재능을 완성시키느라 구도자처럼 살아간 사람들, 천형인 듯 고통을 안고 살아간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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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08가지 결정
함규진 | 페이퍼로드 | 2013-04-1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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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08가지 결정
함규진 | 페이퍼로드 | 2013-04-1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한국사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역사적 선택
만일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일본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은 한국사의 운명을 바꾼 선택에 관하여 정리한『108가지 결정』. 이 책은 2004년 1월「월간중앙」별책부록인 <역사탐험>에 게재됐던 역사적 결정 102개에 몇 가지를 더해 묶은 것으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105명이 선택한 역사적 흐름을 가르는 결정적 선택을 소개한다. 한국사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결정들을 순위와 함께 시대순으로 소개하고 일부분은 작은 주제로 묶어 비교했다. 신화시대 이후 한국사를 중점적으로 실증적 토대가 굳건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다루었으며, 역사에 대한 통찰과 해석의 가치, 결정을 내리는 주체와 반대 세력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함께 담았다. 때로는 사소한 결정도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며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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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강용자 | 지식공작소 | 2013-09-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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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강용자 | 지식공작소 | 2013-09-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이방자 회고록의 결정판
1984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세월이여 왕조여>를 기본 텍스트로 하고, 이후 황손 이구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2005년까지 조선 황실의 근황을 정리하여 보완했다. 또한 일반인에게 생소한 대한제국 황실을 이해하기 쉽도록 조선왕실 가계도와 당시 양국 궁궐 지도, 이방자 연표, 참고문헌 등을 꼼꼼히 정리했다. 대한제국 말기 황실을 증언하는 기록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데, 이 책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로서 고종과 순종 황제, 순명효황후(윤비) 등 역사의 회오리바람 속에 놓인 황실 인물을 직접 겪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조선의 마지막 황실 연구 자료로서 그간 나온 여러 가지 회고록의 오류를 바로잡고 인간 이방자의 생생한 고백을 통해 역사 속의 인간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풍부한 주석, 이방자 사후 조선 황실 이야기를 담다 내용 중 사실 관계가 부정확하거나 오늘날 읽기에 불편한 점은 바로잡고 주석으로 보충하여 당시의 증언을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풍부한 사진도 근현대사의 한복판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회고록이 끝나는 1984년부터 이방자 여사가 타계한 1989년, 황손 이구가 비극적 죽음을 맞은 2005년까지 조선 황실 후손들의 근황을 정리하여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7부로 1부 낙선재 조약돌에서 영왕 이은이 순종의 후계자가 되어 볼모로 일본에 끌려가는 망국의 시대상황을 다루고 2부에서는 일본 주도의 정략결혼 내막과 영왕 부부의 만남을 3,4부에서는 첫아들 이진의 죽음과 고종의 독립운동, 순종의 서거, 영왕의 해외 순방과 영왕의 약혼녀 민갑완 규수와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5부에서는 운현궁 이우공의 죽음과 영왕의 일본생활의 고뇌가 그려진다. 소극적이고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 받던 영왕의 행적이 소문과 달라 재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6부에서는 아들 이구와 부인 줄리아의 사연과 구황실재산의 행방, 이승만 대통령의 환국 거부, 박정희 의장과의 만남, 극심한 생활고와 조국의 냉대가 그려진다. 7부에서는 1970년 영왕 서거 후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을 돌보며 사회복지사업에 선구자로서 자활과 교육에 힘쓴 각고의 노력이 감동적으로 기록된다. 실제로 그녀는 1963년 63세에 환국하여 세상을 뜬 1989년까지 26년을 오직 조선왕실의 마지막 황태자비로, 낙선재의 주인으로, 장애인의 어머니로 봉사하며 살았다. 경향신문 연재를 마치고 난 강용자 논설위원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검소하고 소박한 말년의 이방자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1985년 이후 이구의 행적과 영왕 부부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명휘원의 활동, 구황실재산의 행방, 의친왕 계열 황실 후손들의 근황 등을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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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난세에 간신 춤춘다
최용범, 함규진 | 페이퍼로드 | 2013-04-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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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난세에 간신 춤춘다
최용범, 함규진 | 페이퍼로드 | 2013-04-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는 왜 간신을 연구해야하는가?
간신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조명한 한국사 속 간신 19人 옛 선비들의 말로는 어진 임금과 훌륭한 신하가 만날 때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만남, 용렬한 임금과 간사한 신하의 만남은 크나큰 불행을 가져온다. 따라서 충신을 세우고 간신을 내치는 일이 정치요, 요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간신은 겉보기로는 온화하고 청렴하며,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워 보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일단 임금의 총애를 얻은 그들은 차차 사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임금과 충신들을 해치고, 끝내는 국가와 민족마저 위험에 빠트린다. 이는 오늘날에도 명심해야 할 교훈을 준다. 지금은 임금도 신하도 없지만, 여전히 사람이 중요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정치사를 돌이켜보자. 아니 자신이 속한 조직을 생각해 보자.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윗사람에게 아부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 양가죽을 쓴 늑대가 진짜 인재를 모함하여 내쫓는 경우, 개혁을 빙자하여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다가 정치도 경제도 망쳐버린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과연 누가 간신인지, 그런 간신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를 숙지할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이 책은 한국사 속에 간신이라 칭해진 인물들을 다음 네 가지로 분류해 정리했다. 좁은 의미에서의 간신, ‘왕의 남자’가 된 간신들 임금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얻은 후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인 임금에게 이러한 신하는 어쩌면 당연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도 유독 간신이라고 낙인찍힌 이들이 있다. 그들은 총애를 받고 권력을 휘두른 것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안위까지 불안하게 만들어버렸기에 간신이라 칭해진다. 이런 부류의 간신으로 저자는 도림, 묘청, 김돈중, 김용, 홍국영 등을 꼽았다. 이 중 고구려 승려인 도림은 ‘간신술책’으로 백제의 개로왕에게 신임을 얻은 뒤 무리한 토목공사를 남발하게 해 백제의 쇠락을 가져왔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충신이지만, 그의 수법은 간신의 해악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자주당의 대표적 인물로 부각시킨 묘청이 간신으로 꼽힌 것에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묘청은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무리한 서경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해 고려의 체제 정비를 지체시킨 인물이었다. 묘청은 왕의 총애를 얻은 뒤 서경천도를 강행하다 실패에 직면했다. 무리한 공사로 백성들의 원성이 커진데다 화재로 신축한 서경의 대화궁이 불타기까지 했던 것.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묘청은 기름이 들어간 떡을 대동강에 던져 수면에 기름이 흘러 오색으로 빛나게 했다. 그리고는 왕에게 강물이 오색으로 빛나는 것은 용이 침을 토했기 때문이며 이는 상서로운 징조이므로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허황된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런 꼼수는 금방 들통났다. 궁지에 몰린 끝에 일으킨 것이 ‘칭제건원’과 ‘금국정벌’을 내세운 묘청의 난. 준비되지 않은 반란은 일시에 실패로 돌아갔다. 역사의 해프닝이었던 것.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모든 수를 쓴 묘청은 ‘왕의 남자’형 간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무신의 난을 가져온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 공민왕을 끝까지 현혹한 김용, 정조의 즉위를 위해 목숨을 다해 충성했지만, 비대해진 권력 탓에 정조의 측근에서 축출된 홍국영 등은 권력에 지나치게 밀착된 측근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왕의 남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 왕권까지 넘본 세력가 흔히 간신이라고 하면 손바닥 비비기에 능숙한 아첨꾼 2인자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첨꾼은 ‘간신’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부류 중 하나에 속할 뿐이다. 역사에 나타나는 간신들 중에는 아첨꾼의 수준을 넘어서 왕권까지 유명무실하게 만든 ‘대단한’ 간신들도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윤원형. 조선 전기의 정치가였던 윤원형은 왕실의 외척으로 처음 권력에 발을 들여놓는다. 누이인 문정왕후를 배후에 두고 반대파와 치열하게 권력다툼을 벌이던 윤원형은 언론3사를 포섭하고 궁녀를 매수하며 점차 세를 확장시켰다. 그러다 문정왕후 소생의 명종이 왕위를 잇자 최고의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는 권력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단행했다. 자신의 심복을 시켜 정적들을 살해한 후 자신의 심복과 형, 그리고 자신의 아들까지 제거한다. 결국 조정에는 ‘윤원형의 개들’만이 발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외척이자 우의정으로 완벽한 권력을 손에 쥔 윤원형은 대놓고 뇌물을 받기 시작했다. 관리의 임용이 모두 윤원형에게 달려있으니 당연히 전국에서 뇌물이 쇄도하였다. 윤원형은 수군의 군선을 ‘뇌물배’로 만들고 이를 군졸이 호위하게 하는가하면 국가에 납품하는 물건도 멋대로 빼돌려 팔아먹었다. 10채가 넘는 저택에서 금은으로 만든 밥그릇으로 매끼 1만전씩 들어가는 식사를 했다는 사료를 보면 윤원형의 사치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부패와 패륜이 얼마나 도를 지나쳤던지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들조차 ‘개만도 못하다’, ‘벌레나 다름없다’고 막말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임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못 본 체 해야 했다. 윤원형의 세가 왕권으로 누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날고 긴다는 윤원형의 세력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문정왕후가 죽자 윤원형의 권력은 급격하게 무너졌고, 결국 그는 고향으로 떠나 비참한 생을 자살로 마무리하게 된다. 저자는 다른 간신들을 다시 뜯어보면 긍정적 일면이 보이지만 윤원형만은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또 인간적 관점으로 보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악행만 저지른 괴물같은 간신이라 말한다. 똑같이 왕권을 넘봤던 한명회는 그래도 실력이 출중했고 실질적 공로도 많았지만 윤원형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 빼고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오로지 사익만을 생각한 윤원형. 그는 악랄한 간신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이 밖에도 누대에 걸쳐 왕실과 외척관계를 맺은 뒤 왕의 후견인으로 기능하다 어느새 왕권을 능멸했던 인물들로 이자겸, 한명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진정한 간신인가, 역사의 희생자인가 - 간신의 누명을 쓴 사람들 『난세에 간신 춤춘다 - 한국사 간신열전』의 성과 중 하나는 간신을 기존의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현대의 시각으로 재조명해 인물들의 객관적인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온 역사 상식 중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저자에 따르면 남곤의 ‘주초위왕’사건은 날조된 것이고, 한명회는 살생부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유자광이 남이의 시를 고쳐 모함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구체적인 사건들의 진위를 파헤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사건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각 인물들의 실제 상황과 모습까지 판단한다. 그리고 역사에는 간신으로 남았지만, 간신으로만 불리기엔 아까운 사람들을 대변해 그들의 속사정을 공개한다. 임사홍은 연산군에게 어미의 피 묻은 금삼을 건네 조선에 피바람을 부추긴 악랄한 간신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진실일까? 저자는 그가 간신으로 남은 이유를 집권 초기부터 따지고 들어간다. 소신이 뚜렷하고 바른말 잘 한다는 평가를 받던 임사홍은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로 귀양까지 가게 된다. 흙비가 내리니 금주를 하자는 요청이 있다고 왕이 말하자 “약간의 흙비가 곧 천변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다였다. 그러나 신료들은 하늘의 꾸지람을 모르고 임금에게 사치향락을 권하는 임사홍을 처벌하라고 난리였다. 그 과정에서 임금이 임사홍의 악행을 묻자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고 한다. 악행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을 벌이지도 않은 임사홍은, 그러나 조정 대신들의 강력한 성토로 인해 간신으로 몰려 귀양을 가게 된다. 그렇게 이유도 확실치 않은 억울한 귀양살이를 22년간이나 계속한 임사홍은 연산군 대에 이르러 연산군과 친한 아들의 힘을 빌어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피 묻은 금삼’ 사건, 즉 갑자사화가 벌어진다. 역사는 임사홍이 아무것도 모르던 연산군에게 비밀을 누설하며 선동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에 의문을 던진다. 실제로 연산군은 즉위 초부터 폐비의 일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연산군은 생모 윤씨가 충분히 죽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믿고 있었다. 그 때 임사홍은 그 점에서 발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임사홍은 죄도 없는데 억울하게 공격받아 죄인이 된 자신의 일화를 폐비 윤씨에게 빗대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 상황을 못마땅해 하던 연산군이 임사홍의 이야기를 명분삼아 갑자사화를 일으켰으리라 보고 있다고 한다. 임사홍이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연산군을 부추겼다고 보기에는 희생자의 부류가 일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사홍을 두둔해온 편이었던 어세겸이나 홍귀달 등도 갑자사화의 희생자가 된 것을 보면 이것이 임사홍의 복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임사홍이 최고 권력을 누리며 연산군의 악행을 부추겼다는 이야기도 낭설이라고 한다. 임사홍은 끝까지 권력의 주변부에서 맴돌았을 뿐이며 자신의 아들을 연산군에게 잃기까지 했다. 그런 임사홍이 최고 권력을 누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는 단지 사회가 뒤집어쓰고 있던 위선의 껍질을 벗기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선함을 지향하는 척 하면서 그 뒤로는 악에 봉사하는 제도. 자신을 22년이나 썩게 만든 위선적이며 모순투성이인 제도. 임사홍은 사회 제도 자체에 염증을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버렸다. 임사홍은 연산군 시대의 모든 악행의 주모자로 전락했다. 그는 명신이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간신으로 기록되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얼마나 합리적인지, 얼마나 도덕적인지를 묻는 저자의 말은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이밖에도 역사의 승자가 간신으로 전락시킨 인물로 신돈, 남곤, 원균, 이이첨 등이 거론되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방향을 바꾼 철새파 - ‘대세’를 따른 소인배들 대부분의 정치가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이는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어서, 선비들은 신념에 따라 파를 나누고 신념을 관철하려다 죽음을 맞기도 했다. 물론 국제 정세 등의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사상을 바꾸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상과 함께 자신의 신념과 인간성, 그리고 가까운 사람까지 하루아침에 져버리며 부화뇌동 하는 모습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역사는 일정한 노선을 견지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하며 나라의 미래보다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인물을 간신이라고 불렀다.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간신은 아마도 이완용일 것이다. 이름 앞에 호(號)처럼 붙는 ‘매국노’라는 단어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라를 팔아먹은 일제 앞잡이 이완용. 그는 철새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완용을 친일파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친일파이기 이전에 친청파, 친미파, 친러파로 여러 번 자신의 노선을 바꿨다. 이렇게 많은 변신을 한 그가 친일파의 대명사로 기억되게 된 것은 을사조약 이후였다. 을사조약 당시 매국에 앞장선다는 비난이 두려워 눈치만 보던 외부대신 박제순을 대신하여 이완용이 ‘조약을 수용하되 내정간섭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총대를 맨 것이다. 고종은 이렇게 비겁하게 남들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밝히는 이완용을 신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완용이 냉정하고 똑똑하며 대세에 순응하는 인물임을 간파했다. 이후 이완용은 독립을 바라는 고종과 식민지화를 바라는 일본 사이의 불화를 무마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은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정리되었다. 이완용은 대세에 철저히 순응하는 인간이었고, 당시 일본이 대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완용이 매국뿐만이 아니라 왕을 암살하기까지 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한다. 고종이 암살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설은 아직 확정적인 역사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완용이 고종을 암살했다는 설과 그렇지 않다는 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당시 이완용은 독립운동을 바라는 고종과 자신을 신임하는 총독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독립운동을 도모하는 고종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완용이 일본이라는 대세를 따르기 위해 결국 고종 암살에 한몫했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섬기던 임금까지 져버린 것이다. 일제는 이 매국노를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둘도 없는 악당으로 떠오른 이완용이라는 카드를 쓰면, 유력자와 결탁하여 일제를 치려는 민심을 분열시켜 민중 세력의 확장을 막을 수 있었다. 일제는 이완용을 여러모로 철저히 이용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완용의 모습은 모범생 그 자체였다. 그는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고 주색에 빠지지도 않았다. 이완용이 시대를 잘 만났으면 이른바 처세의 능신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맞서 싸워야할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영혼을 놓아버렸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역사적으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고 오로지 물결 따라 부유하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 역사의 대의에 관계치 않고 오로지 사욕을 위해 대세에 추종했던 인물로 송유인, 유자광, 김자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변신에 능했다는 것,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 이런 인물이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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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똑바로 살아라
신정일 | 다산초당 | 2013-04-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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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똑바로 살아라
신정일 | 다산초당 | 2013-04-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죽음 앞에서도 똑바로 살아라!
조선의 선배들이 대한민국 후배들에게 띄우는 뜨거운 편지~ 『똑바로 살아라: 신정일이 쓴 조선의 진보주의자들』. 조선의 진보주의자 12인의 삶과 사상을 담은 책. 문화사학자 신정일이 쓴 이 책은 시대의 어둠에 도전했던 조선의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정도전, 조광조, 황진이, 허균, 박지원, 정약용, 최제우과 같은 열 두 명의 인물들을 다뤄본다. 저자가 선정한 인물들은 당대의 통념과 편견에 저항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한 이들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담고 있으며 혼돈스러운 지금 시기에 적용해도 좋다. 이 책의 특징은 여느 책들과 달리 미화하지 않고 그들의 치부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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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만약에 한국사
김연철, 함규진, 최용범, 최성진 | 페이퍼로드 | 2013-04-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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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만약에 한국사
김연철, 함규진, 최용범, 최성진 | 페이퍼로드 | 2013-04-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만약에 한국사』는 지난 백 년 동안 한국사의 흐름을 바꾼 순간들에 도발적인 ‘만약에’를 대입한다. 34개의 흥미진진한 가정을 통해 한국사의 결정적인 기로에 섰던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탐험한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갔던 길’의 역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되묻는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선택을 위한 신선한 교훈들을 던져준다.
‘만약에’로 뒤집어 본 한국사 깊이 읽기 역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만약에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쏘지 않았다면?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분,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반도의 현대사를 요동치게 만든 총탄들 가운데 그 충격과 울림이 가장 컸던 운명의 한 발이었다. 만약에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향했던 그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면, 과연 유신체제는 박정희가 자연사할 때까지 존속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박정희는 여전히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만약에 한국사』는 이런 가정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사건의 전후와 경과를 면밀히 분석한다. 10.26은 충성경쟁에서 밀려난 김재규가 차지철에 대해 품었던 앙심이나 개인적인 권력욕 때문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역사를 복기하다 바둑기사들은 치열한 대국이 끝나도 복기에 공을 들인다. 승패와 상관없이 서로가 두었던 수백의 착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악수나 패착을 찾아내고, 그 대목에서 최선의 수는 무엇이었을까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들은 이런 복기를 통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될 뿐더러 실력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때로는 대국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만약에’와 ‘그렇다면’을 반복하며 ‘그게 최선입니까?’를 묻는 것이다. 『만약에 한국사』의 저자들이 가진 문제의식도 이 언저리에 있다. ‘만약에’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본 현대사의 파노라마 『만약에 한국사』에는 대중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사실에서 출발한 가정들도 있다. 이를테면, 20세기 초 러시아와 일본이 39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사실이다. 1945년의 분단보다 거의 반세기나 앞서 우리의 운명이 남의 손에 의해 분단될 뻔했다는 것이다. 상당히 성사 가능성이 높았던 이 방안은 결국 일본의 과욕 때문에 결렬되었고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만약에 한국사』는 1903년 당시 이 논의가 실제 현실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으로 책의 서두를 연다. 결론을 말하자면,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이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미국과 맞서기보다 협력하여 소련을 견제했으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미군과 일본 황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39도선을 넘어 소련군을 몰아내고,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압록강변에 휘날렸을지도 모른다는 드라마틱한 장면까지 상상한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 바로 옆에 다른 길도 있었다! 한반도는 격동의 백 년을 살아왔다. 빛나는 성취만큼이나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 굴곡이 깊고 그늘도 짙다. 그러므로 그 역사의 행간에는 가정하고 싶은 사건이나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해방정국에서 좌우가 연대해서 분단을 피했다면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우리가 겪은 냉전은 그렇게 가혹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 양김이 단일화했다면, 최소한 민주화 인사들의 야합과 변절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라는 가정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길을 알면 헤맬 필요가 없다. 타락의 길을 꼭 가봐야 아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독자들이 한반도의 현대사를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 지난 백 년 동안 다른 길도 있었음을, 그래서 더 나은 미래가 가능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백 년을 성찰함으로써 우리가 살아야 할 앞으로의 백 년을 그려보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역사는 숙명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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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김용희 | 다산초당 | 2013-04-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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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김용희 | 다산초당 | 2013-04-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신라 천년의 최대 비밀 선덕여왕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여성 팩션 역사서!
"한국사 최초의 여왕 선덕은 왜 왕좌에서 쫓겨났는가?" 『상처 입은 봉황, 선덕여왕 | 탄생부터 죽음까지 안개 속에 가려진 신라 천년의 비밀』. 한국사 최초의 여왕, 선덕을 그려낸 역사서. 천년의 역사를 안고 있는 신라에서 여왕이 되었던 선덕. 그녀는 어떻게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선덕여왕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김부식은 선덕여왕의 통치를 암탉이 우는 것에 비유했고 당 태종 이세민 역시 선덕 여왕 대신 자신의 친족을 신라의 왕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롱했을 정도. 그러나 이 책은 그 동안 왜곡되어 왔던 여성 군주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특히 선덕여왕이 반대 세력의 쿠데타에 의해 실각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주역으로 김유신과 김춘추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역사적 추론을 통해 선덕 여왕의 일대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선덕여왕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여성 특유의 포용의 정치와 문화의 정치를 폈던 그녀의 업적을 재평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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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이한 | 청아출판사 | 2013-03-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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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이한 | 청아출판사 | 2013-03-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서얼의 탄생, 누구의 탓인가?
그들은 세상과 싸우거나 혹은 세상에 무릎 꿇었다. 서얼은 시대의 개혁가인가 아니면 운명에 순응한 자인가? 태어나면서부터 하자가 있던 결격품. 서얼은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을까? 무엇을 서얼이라 부르는가? 신분제도의 굴레에 갇힌 채 갖은 제약을 받았던 조선의 어두운 그늘 서얼. 그들은 항상 피해자였으며, 사회를 일그러뜨리는 비틀린 존재였다. 승자의 기록, 양반의 기록 조선 시대 역사의 대부분은 양반을 위한 것, 혹은 양반이 남긴 것이다. 당대의 위대한 역사적 위인들은 모두 양반이었으며, 우리는 이들의 기록을 보며 양반과 왕족의 잘잘못만을 보아 왔다. 그렇다면 역사는 항상 계급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의 것일까? 양반이 아닌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것을 남겼을까? 뛰어나고 고귀한 이들에 대한 기록은 많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뛰어나고 고귀한 자들에게 열광하며, 그 관심을 곧 기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들과 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 서얼, 중인, 천민, 잡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양반들이 남긴 문집이나 야담집, 민담집에 가끔 등장하지만, 글로 풀기에는 턱없이 사료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서얼들의 역사, 글과 일화들을 망라한 책이 있다. 바로 조선 철종 때 간행된 《규사(葵史)》이다. 《규사》의 첫 장에 실린, 서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에서 선조는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는 것은 본가지든 곁가지든 가리지 않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는 것이 어찌 적자여야만 하겠는가”라는 답을 내린다. 여기에서 서얼의 역사를 ‘해바라기 역사’, 즉 규사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의 저자 이한은 이 책을 비롯하여, 역사에서 소외된 이들의 아주 작은 조각들을 찾아내 ‘그들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 책이 바로 그 결실이다. 서얼들의 이야기 여기에 실린 여러 서얼들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잘 알지 못했던 그림자의 기록이다. 이 나라에는 많은 서얼들이 살았다. 한때 나라의 반을 차지할 정도였던 그들은 신분제도의 사슬에 얽매여 있었고, 차별과 천대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끈질기게 왕에게 끊임없이 청원하고 도전했다. 그들의 대부분이 좌절하고 사그라졌으며, 완전한 신분해방은 조선이 멸망하고 모두가 편견을 잊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얼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모든 것을 바쳤다. 앞 세대의 서얼이 지치고 죽으면, 새로운 서얼들이 이를 이어받았다. 그렇게 이어진 조선왕조 절반의 역사를 이제부터 만나보자. 서얼로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여러 임금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갈아타기의 귀재 유자광, 자신의 처지를 학구열로 풀어낸 이덕무, 서얼의 세상을 만들고자 반란을 일으켰던 이들,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위조와 위증까지 일삼았던 사람들, 그리고 서얼녀로 유일하게 정경부인에까지 올라 유일하게 기록에 남은 정난정 등이 그 주인공이다. 조선 시대에 나름의 족적을 남긴 서얼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비록 아픔과 좌절로 점철된 역사라도 조선의 절반을 이룬 그들이니까. 지금 이 세상에도 부유하고 고귀한 혈통의 영웅보다는 이 책에 실린 서자들처럼 흠이 있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많이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실패와 좌절, 혹은 희망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거나, 혹은 이미 그들과 같은 바람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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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의 투쟁
함규진 | 페이퍼로드 | 2013-04-1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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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의 투쟁
함규진 | 페이퍼로드 | 2013-04-1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17)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세종, 권력위임과 프로젝트형 업무관리로 신하를 사로잡다
세종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왕은 없을 것이다. 가장 큰 과업으로 여겨지는 한글창제를 비롯해서 과학발전과 문치주의 확립, 그리고 새 나라에 대한 국가 홍보까지, 세종은 그의 생애 동안 내내 ‘조선’이라는 집을 제대로 짓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신하들에게 ‘넌 이거 하고 넌 저거 하고…’ 하는 식으로 말했다가는 일이 제대로 진행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경험 많고 나이도 지긋한 매서운 신료들에게 점잖은 말로 호되게 ‘깨질’ 수도 있다. 세종은 어떻게 이 난관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걸핏하면 별것도 아닌 일로 ‘이는 천부당만부당’하다며 엇나가는 관료들을 다스리고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세종이 취한 방법은 행정업무 위임과 혁신업무 추진이었다. 그는 위임할 수 있는 행정업무는 곁에서 오래 보아 신임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황희 등의 재상에게 위임하고, 위임으로 생긴 여유를 ‘혁신 업무’에 투자했다. 그는 혁신 업무의 실무자를 선발할 때도 능력만 보고 발탁하는 ‘파격’을 보였는데, 그가 아니었다면 기생 아들인 장영실, 까칠한 성품의 김문, 그저 그런 관료였던 박연이 그렇게 대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종의 문화대국 프로젝트는 그렇게 빛을 보았다. 그러나 성군 세종에게도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세종의 소극적인 외교정책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어린 시절부터 책만 들이팠기 때문일까? 그는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안전주의와 사대주의를 유지하는 소극적 모습을 보인다. 2차 대마도 정벌로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음에도 세종은 왜구의 침입을 걱정하며 형식적 종주권 인정에 만족한다. 북방개척에서는 파저강 토벌이라는 대규모 정벌 후 진을 설치하고 관리하려는 의지 없이 곧바로 회군한 것이 미련으로 남는다. 물론 세종의 다른 업적에 비하면 작은 오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외교부분을 빼고는 어떤 지도자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정치력을 보인 세종이지만 말년에는 그도 점차 지쳐갔다. 형인 양녕은 대놓고 난동을 부리며 세종을 힘들게 했고, 조선에서 둘도 없는 절절한 부부애를 보여주던 소헌왕후까지 승하하고 만다. 세종은 그 상실감을 불교로 달래려 했지만 신료들은 억불숭유를 들먹이며 세종의 내불당 건설을 반대한다. 결국 대립은 갈수록 험악해져 “착한 임금이라면야 너희 말을 따르겠지만, 나는 나쁜 임금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 “전하와 같은 성군께서도 이처럼 고집하시는 일이 있으실 줄 몰랐습니다” 라는 악담까지 나온다. 신하들이 임금의 이 ‘이상한 모습’에 못 참고 연대 총파업을 하자 세종 또한 단식투쟁에 ‘가출’까지 불사했고 그 줄다리기 끝에 결국 내불당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미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말년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세종 시대를 전설의 시대로 부르는 것에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 세종은 조선의 정점이었고 그 이후로 다시는 세종을 능가하는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천재로 소문난 정조마저도 세종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대왕’이라는 호칭이 더없이 어울리는 세종. 복수의 피바람이 불지 않고도 왕권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을, 권력의 위임으로도 왕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조선사의 귀중한 예이다. 연산군, 언론 따위 조지면 된다? 연산군은 폭군의 대명사다. 똑같이 폐위당한 왕이지만 광해군은 현대에 와서 재평가가 되고 있는 반면 연산군은 그런 기미도 없다. 과거나 현재나 똑같이 폭군이요, 절대권력에 취해 이리저리 칼부림을 한 난폭자로 평가될 뿐이다. 그런데 연산군은 왜 그렇게 폭정을 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생모인 폐비 윤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피 묻은 금삼’을 보고 피가 솟구쳐 사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물론 ‘피 묻은 금삼’ 이야기가 허구이며, 그 이전부터 연산군이 생모의 폐비 사건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일은 연산의 가슴에 남아 폭정의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을까. 저자는 조심스레 성종대에 확대된 언론권력과 연산군 호전적인 기질의 합작으로 빚어진 언론전쟁이 그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처음에는 연산군도 열심히 일하려는 모습을 보인 ‘모범 청년’이었다. 그러나 ‘깜도 안 되는’ 문제, 예를 들어 왕의 유모에게 선물을 줘도 되냐 안 되냐 등으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고, 왕의 언행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언론의 모습에 연산군은 차츰 반감이 생겼고 급기야는 언론과 밀고당기는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서로 ‘버릇을 들이겠다’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선 왕과 언론의 전쟁은 ‘엽기 어록’까지 낳는다. 새로 임용한 감사가 술을 많이 마시므로 적당치 않다고 딴지를 거는 언론에게 “그럼 물만 마시는 사람으로 뽑을까?”라고 말하거나 눈병이 나서 경연은 안 한다고 했으면서 왜 연회는 하냐는 질문에는 “너는 눈으로 먹느냐?”라고 대답했던 게 그것이다. 왕의 행동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는 언론과 정치적 미숙함으로 인해 오기만을 부리며 직설적으로 대응했던 연산군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계기는 무오사화였다. 우연히 발견된 김일손의 ‘볼손한’ 사초 때문에 벌어진 무오사화의 불똥은 어쩌다보니 언론3사에까지 튀게 되었고 결국 언관들이 ‘역모죄’의 이름을 쓰고 굴비 두름처럼 엮여 사형되거나 유배되었다. 연산군이 작정하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 일은 연산에게 교훈을 주었다. 언론 따위는 조지면 된다는 것이다. 시끄럽던 언론들이 역적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조지니 조용해지고 벌벌 떨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연산은 무오사화라는 양들의 침묵을 통해 폭군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조정은 한동안 피바람에 휩싸이게 된다. 무차별하게 형벌을 남용하고 잔인하게 신하들을 다스리던 연산군의 절대권력은 결국 중종반정으로 끝이 났다. 그는 아마도 왕권을 극도로 제약하고 시시콜콜한 논쟁만 거듭하던 신료들, 그리고 위선의 가면을 쓰도록 강요했던 체제의 모순을 뜯어고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의 개혁은 너무나 미숙하고 조급하게 대안 없는 도발만 거듭했다. 그것은 그의 방향성 없던 개혁과 공포정치의 한계였다. 광해군은 왜 피와 살이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친국에 열을 올렸나 광해군은 과거와 현재의 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왕이다. 조선조 내내 폭군으로 찍혀 연산군과 함께 반면교사로 활용되던 그가 현대에 들어서는 국난을 극복한 실용주의 외교의 달인으로 재탄생했다.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평이 가능할까. 저자는 광해군을 이해하려면 겉으로 드러난 그의 들쑥날쑥한 실적보다는 그의 인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단 한마디로 압축한 그의 인성은 ‘안전제일주의’. 광해군은 안전에 대한 집착으로 재위기간 내내 신료와 친인척 모두를 의심했으며 자신의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을 제거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된다. 시작은 눈부셨다. 임진왜란을 맞아 피신한 선조 대신 조선에 남아 몸을 사리지 않고 활동하여 온 나라의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저자는 이를 상해임시정부에 맞먹는 ‘광해임시정부’라 비유하며 성공적인 그의 분조활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로 인해 선조의 눈 밖에 난다. 신하들 역시 ‘현재’ 왕위를 지키고 있는 선조의 편에 섰기에 광해군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만 갔다.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물려받은 광해군의 왕위는 처음부터 외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으로 무너져 내린 국가재건을 위해 대동법, 호패법, 양전 사업 등의 개혁조치를 단행한 광해군이지만 그의 개혁은 불완전했으며 그나마도 재위 5년, 즉 계축옥사 이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왜 광해군의 개혁은 도중에 실종되고 만 것일까? 저자는 대신들의 ‘사표 쓰기 경쟁’때문이라 잘라 말한다. 예전에 선조가 자신의 왕위를 확고히 하고자 썼던 방법을 이제 신하들이 써먹게 된 것이다. 걸핏하면 사직하여 몸값을 높이고 책임을 회피하던 신료들 때문에 업무는 마비되어갔다. 여기에 점점 심해지는 당쟁도 한 몫을 했다. 광해군은 당파싸움과 사표 경쟁 사이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다 불안의 싹으로 여겨지는 친형 임해군을 죽이고 어머니 인목대비를 폐하고 만다. 그의 안전제일주의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광해군은 죄인을 추국하는 친국을 무려 210회나 단행했다. 조선 왕 중 최고의 수치이다. 피와 살이 튀는 고문의 현장에 왜 집착한 이유도 광해군의 안전제일주의로 통한다. 백성들의 경범죄마저도 혹여 자신을 폐하려는 역모사건의 단초가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광해군. 직접 죄인들을 추국하며 사주한 자를 밝히라고 닦달했던 광해군. 결국 없던 역모도 만들어내어 줄줄이 역모죄를 뒤집어씌웠던 광해군.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 새어머니, 동생, 신료, 명나라 눈치를 살피던 광해군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정조, 천재적 카리스마와 회전문 인사로 절대왕권을 꿈꾸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왕좌에 오르자마자 한 이 말 한마디는 신하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정조는 곧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을 방조한 일당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연산군처럼 홧김에 마구잡이로? 아니, 정조는 연산이 아니었다. 그는 신료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반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연산군이나 광해군과는 다르게 강경책과 유화책을 병행하여 죄인을 살려두되 ‘살아남은 죄인’들을 여봐란 듯이 방치하는 수법을 썼다. 조정의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잊지 않도록 365일 비상을 걸어둔 것이다. 정조는 재위기간 내내 왕권의 강화를 위해 힘썼다. 그리고 그의 천재적인 재능과 카리스마는 그의 왕권강화를 돕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우선, 천부적 재능으로 어린 나이에 학문에 능통한 그는 신하와의 학문 경연에서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호학군주였던 세종도 초기에는 신하에게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었건만 정조는 이미 학문과 무예에 완벽히 통달했기에 거꾸로 신하들을 가르치는 일이 많았다. 저자는 그가 마치 ‘빨간펜 선생님’처럼 언론이 올린 상소문의 잘못된 표현이나 부적절한 문구를 지적하여 돌려보내곤 했다고 말한다. 또한 정조는 언론에서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면 “네 말이 맞다. 그러나 내가 잘못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잘못이었다. 어찌하여 내 잘못을 전부 말하지 않느냐. 언관의 책임을 소홀히 한 너를 파직한다”라고 대응했다. 정조 때 언론의 활동이 저조했던 것은 아마 이런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에 고개가 끄덕여질만 하다. 그가 신하의 목을 죄는 또 다른 방법은 인사권이었다. 실제로 정조는 조정의 인사 책임을 맡고 있는 중요직인 이조판서를 150번이나 갈아치우는 대단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른 왕들이 10~20번 내외로 바꿨던 것에 비하면 과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만에 파직하는 일도 많았다. 아침에는 노론이 앉았던 자리를 저녁에는 다시 소론이 앉는 식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직책을 맡을 만한 인원은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정조는 파직했던 관리를 다시 불러왔다가 다시 파직시켰다가 하는 식의 회전문 인사를 단행했다. 그 결과 신권의 결속이 어려워졌으니 왕권 강화를 노린 정조의 계획이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행정의 안정성이 떨어져 일이 늦어지는 폐단이 있었지만. 초기에 측근정치로 실패한 정조는 확고한 왕권을 위해 고독을 택했다. 여러 파로 갈라져 왕권을 위협하는 신하들에게 영조의 탕평책을 변형하여 사용함으로 왕권의 약화를 막았던 것이다. 진정한 ‘측근’이 전혀 없는 정치, 그리하여 어느 한 당파가 세력을 장악하는 일이 없는 정치, 그것이 그의 ‘탕평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독한 절대권력의 자리를 지키려 하면 할수록 정조는 인간적인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유배되어있는 동생을 만나러 ‘007작전’을 방불케 할 한밤의 탈주극을 벌인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정조의 목마른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측근이 없는 정치는 정치체제 자체로는 완벽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에서 항상 시달려야 하는 왕 개인에게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인간적으로는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그것은 그 자신이 방조한 일이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눈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정조는 울분을 억누르고 살아남아 다음 대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특유의 천재적 카리스마와 명분 있는 복수정치로 신하들을 쥐락펴락 했다. 그러나 그가 꿈꾼 절대왕권은 신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왕의 비교분석으로 알아보는 권력 이행 스타일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왕들을 객관적 지표로 비교하고 거기에서 유의미한 분석을 이끌어내는 2부에 있다. 저자는 크게 신권이 왕에게 요구했던 내용과 왕이 신권을 견제하기 위해 활용했던 방침으로 나누어 살핀다. 우선 경연 참석, 취미생활 자제, 비빈 멀리하기는 신권이 왕에게 요구했던 내용이다. 경연으로 보았을 때 신하들이 성군이라 칭송할 만한 왕은 역시 세종이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무려 1,928회의 경연을 개최했는데 연산군 512회, 광해군 13회, 정조 395회에 비하면 경이롭게까지 보이는 숫자이다. 세종이 호학군주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연산군은 경연을 싫어했지만 그래도 광해군보다는 많이 벌였다. 광해군의 13회는 대인기피증까지 의심되는 숫자이다. 재미있는 건 경연은 13회밖에 벌이지 않은 광해군이 친국에는 210회나 나갔다는 점이다. 그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신료들은 ‘인간’인 왕에게 ‘인간 이상’을 요구했지만 왕은 ‘인간’이었기에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신료들은 그런 왕을 비난했고, 왕은 그들의 ‘명분 있는 비난’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신권이 강한 조선의 왕이라는 자리가 가진 속성이기도 했다. 신료들은 평소에도 ‘사욕을 버려야 한다, 개인적 즐거움은 뒤로 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중해야 한다’ 등의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니 당연히 왕은 취미생활을 은밀히(?) 행할 수밖에 없었다.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까지도 시를 짓는 취미를 지적당하자 “그게 무슨 시냐? 그냥 몇 글자 끼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황급히 오리발을 내밀정도다. 개인적인 취미로 타지마할, 베르사유 궁전같은 건축물을 여러 채나 세우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외국의 왕에 비하면 조선의 왕은 시 한 수도 맘대로 짓지 못하고 비밀리에 하나 지었다가 들통나자 “이게 사실은 시가 아니거든요?”하는 식으로 변명이나 하다니, 참 가엽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무리 약한 왕권이라고 해도 왕권은 왕권이다. 조선의 왕이 마냥 허수아비처럼 이리 당기고 이리 끌리면서 재위기간을 마쳤던 것도 아니었다. 왕들은 각각의 개성과 그 시대의 성격에 맞추어 조금씩 다른 방법을 썼지만, 정국 주도권을 손에 넣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의지만은 한결같았다. 저자는 그러한 왕들의 주도적 모습을 인사권의 활용, 형벌권의 활용, 성과물의 제시로 짚어낸다. 인사권과 형벌권은 왕의 고유권한이며 무력으로 리더십을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대로 신권이 강세였던 조선에서 왕의 인사권과 형벌권은 관료사회를 통제하고 견제하는 최후의 수단이기도 했다. 인사권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임금은 역시 정조다. 이조판서를 150번 갈아치우고 대사헌의 평균 임기가 단 15일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 과연 ‘인사의 제왕’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대사헌을 오전에 임명했다가 오후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무려 27회나 되고 하루 만에 교체한 경우는 61회에 달한 정조. 천재 군주 정조의 회전문 인사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언론기관을 약화시키고 탕평을 위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행정적으로는 만행에 가까운 인사라는 비판을 외면할 수 없다. 형벌 분야의 1위 타이틀은 연산군에게 돌아간다. 등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연산군이 가장 많은 형벌을 주었으며 그것도 심한 형벌을 가했다. 세종은 관대한 편이었고 정조는 앞서 말했던 파직을 즐겨했다. 광해군은 신료들보다 일반 백성이나 천민을 처벌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물론 전제군주에게 형벌은 무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반발을 불러오고 모자라면 깔보일 수 있다. 경직되지 않은 조정을 만들기 위해 형벌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지만 아무런 형벌 없이 나라를 이끌 수는 없다는 얘기다.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이 네 사람은 이렇게 양면을 가진 형벌이라는 ‘양날의 검’을 각각의 성격에 맞게 휘둘렀고, 그로 인해 각기 다른 다양한 결말을 맞았다. 현대에도 계속되는 왕의 투쟁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누구나 코흘리개 시절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본 이름들일 것이다. 그 중 두 사람은 대표적인 위인으로, 나머지 둘은 대표적인 악인으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재평가의 대상으로. 그들의 일대기는 교과서에서 익힌 것도 모자라 TV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면 왜 또 다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그만큼 했는데도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네 임금의 생애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며, 그동안 상식처럼 통하던 주장들을 낱낱이 파고든다. 그리하여 “세종의 북벌은 정말 영광스러운 업적이었을까?” “광해군과 대북파는 한마음으로 중립외교를 펼쳤을까?” “정조는 오회연교를 통해 노론세력에 선전포고를 했을까?” 등의 의문에 하나씩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 그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이야기, 우리 리더십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방식과 지금의 방식은 같지 않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를 얻느냐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크게 달라지는 점은 다름이 없다. 지도자의 자리에 선 사람이 어떻게 주어진 환경에 한편 적응하고 다른 한편 극복하며, 경쟁자들을 제어하고, 협력자들을 찾아내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든 이들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지, 그에 필요한 원칙과 기법도 별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보통 사극을 통하여 세종이나 정조를 본다. 그리하여 화려한 의상과 예스러운 무대에 매혹되고, 현대화되고 단순화된 스토리에 울고 웃는다. 그렇게 해서 한때의 엔터테인먼트로 이 네 왕을, 나아가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 대해 호기심과 함께 아쉬움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희망과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극의 틀을 넘어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사극이 놓치거나 왜곡해 버린 그들의 실상을 찾아내고, 꼼꼼한 비교를 통하여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그럼으로써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손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