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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book > 역사
[역사] 송건호 평전
김삼웅 | 책보세 | 2011-12-2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4-24)



제작형태 : epub
대출현황 :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
듣기기능(TTS)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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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는 12월 21일은 ‘언론인의 사표’로 존경받는 청암 송건호 서거 10주기다. 그가 생전에 주장하고 몸소 실천했던 언론인으로서의 ‘정신’과 ‘자세’는 그의 시대에도 절실했지만, 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난 오늘날에 더욱 절실하다. 청암의 전기이자 평전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한국현대언론사이자 한국현대정치사이기도 한 이 책은, ‘조심스런 언론인’이 어떻게 ‘역사의 사람’으로 되어 가는지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김삼웅의 한국근현대인물평전 열네 번째다.





    ‘역사의 사람’으로 살다간 ‘조심스런 언론인’ 송건호,

    ‘육당의 길’을 마다하고 ‘단재의 길’을 걷다!




    “(기성) 정치는 죽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 앞에서 제도정치권이 내지른 이 비명은 “니들(기성 정치인들)은 이제 다 죽었다!”는 유권자들의 선언으로도 환치된다. 어떤 영역이든 거기에 ‘전문’으로 복무하는 자들이 직무를 유기하면 대중은 언제고 그들을 ‘제외’시켜버림으로써 ‘대리인’ 자격을 회수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제도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자 마침내 시민들이 저마다 스스로 ‘언론’이 됨으로써 제도언론을 공론의 장에서 시나브로 ‘제외’시켜가고 있다. 그러나 사이비 언론(인)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늘날 이런 언론현실에서, ‘참 언론(인)’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 ‘참 언론인’의 표상이 바로 청암 송건호다. 청암 서거 10주기에 맞춰 나온 《송건호 평전》은 그의 정론정신을 기리는 헌사이자 현직 언론인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저자 김삼웅도 줄곧 정론직필의 길을 걸어온 언론인으로서 일찍이 청암을 사숙하여 곡필언론 연구의 일가를 이뤘다. 김삼웅은 이 평전을 쓰기 위해 청암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했다. 청암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이고 그가 남긴 중요한 글과 저서는 거의 모두 그 핵심을 짚어 논평했다.

    청암은 일제강점기 식민체제가 안착된 시기(1926년)에 충북 옥천(<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기도 하다) 산골에서 태어나 ‘황국신민화’ 교육을 받으며 자란 탓에 전쟁에서도 ‘우리나라’(일본)가 이기기를 바랐던 ‘제국의 국민’일 수밖에 없었다. 즉, 민족의식의 세례를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청암은 15세에 서울로 유학(한성상업학교)을 온 이후에야 헌책방을 순례하며 왕성한 독서를 통해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상처럼 이어진 그의 헌책방 독서는 한국현대사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청암은 정론직필을 선두에서 이끌었고 새로운 언론 창달을 주도한 언론계의 거목이기도 하려니와 한국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이자 대가이기도 하다. 8.15해방 이후 이승만의 백색독재, 박정희의 군부독재 아래서 친일파들이 득세하자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들이 현대사 연구를 기피하여 현대사 연구가 불모지로 남아 있을 때 언론인 송건호는 홀로 현대사 연구에 매진하여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그는 특히 ‘민족지성’ 문제(친일청산 문제)에 천착하여 민족의 양심을 바로세우고자 노심초사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의 역사 기술은 ‘과학으로서 역사’라기보다 ‘가치로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자기가 사는 시대의 연구와 서술에 대한 역사가들의 책무가 그 역사적 권능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금석”이라는 게르비누스의 주장은 ‘불행한’ 한국현대사를 끌어안고 고심참담하던 청암에게 절실한 울림이었다. 그는 평생을 그 ‘울림’에 충실했다.

    청암은 ‘길’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진정한 ‘지사’였고, 불의에 맞서서는 어떤 핍박도 마다하지 않았던 불굴의 ‘투사’였다. 시인 고은의 표현대로 “시대가 착실한 세대주, 조심스러운 언론인을 투사로 만들고 역사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송건호(宋建鎬)



    호는 청암靑巖. 1926년 9월 27일(음)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서울로 올라와 한성상업학교에 다니면서부터 헌책방 순례 취미를 갖게 되었으며,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1946년 경성법학전문학교(1948년 국립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편입)에 진학하여 다니다가 6.25전쟁으로 낙향했다. 1953년 복교(서울법대)한 그해 대한통신사 외신기자로 들어가 처음 언론과 인연을 맺었으며, 1954년 《조선일보》 외신부로 옮긴 때부터 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56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세계일보》《민국일보》《경향신문》 등 주요 일간지 기자 및 논설위원을 거쳐 1965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1966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196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 직후에 언론자유수호운동에 참여하여 일선 기자들과 함께 ‘10.24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1975년 사주가 자유언론실천 기자들을 대거 해고하자 편집국장을 사임하고 언론 현장을 떠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현대사 탐구와 왕성한 필력으로 《민족지성의 탐구》를 비롯하여 주요 저작들을 출간하기 시작했으며, 《씨?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인권위원, 3.1민주구국선언 등으로 현실참여의 폭을 넓혀갔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 의장에 선임되어 언론자유수호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말》지를 창간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대표이사에 선임되어 언론독립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93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회장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갔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1996년 애장도서 1만 5000여 권을 한겨레신문사에 기증하여 ‘청암문고’를 개설했다.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받고, ‘20세기 최고언론인’으로 선정(기자협회보)되었다.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21일 오전 8시 영면에 들어 사회장으로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 김삼웅(金三雄)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다.《민주전선》등 진보매체에서 활동했으며,《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로 있으면서 동호지필董狐之筆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필화사》《한국현대사 바로잡기》《을사늑약 1905년, 그 끝나지 않는 백년》《통일론수난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나》《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단재 신채호 평전》《백범 김구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안중근 평전》《약산 김원봉 평전》《장준하 평전》《죽산 조봉암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김대중 평전》《리영희 평전》《김상덕 평전》《이회영 평전》등이 있다.


  • 여는 글 - 푸른 이끼 덮인 큰 바위, 그 이름대로

    프롤로그 - 정론의 파수꾼 송건호의 ‘숙명’



    제1장 민족의 암흑기에 태어나 성장하다

    <향수>의 무대 옥천에서 태어나 자라다

    서울 유학 중 헌책방을 순례하며 민족의식에 눈뜨다

    해방공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니다



    제2장 ‘언론독립군’으로서 언론인 본연의 책무를 외치다

    외신기자로 언론계 생활을 시작하다

    이승만 정권의 전횡 아래 친일 언론들 부활하다

    논설위원·편집국장으로 독재와 싸우다

    민족지성의 반성을 촉구하고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다



    제3장 오로지 언론에 살고 언론에 죽는 ‘나는 언론인이다’

    언론인의 양심과 소신을 위해 자리를 버리다

    논설위원으로서 언론자유 수호선언에 앞장서다

    온몸으로 독재의 폭압에 저항하다



    제4장 고단하고 험난한 ‘단재의 길’을 가다

    자유언론수호 위해 ‘편집국장’마저 내던지다

    육당의 길을 마다하고 단재의 길을 가다

    언론 선비, 재야의 ‘투사’가 되다



    제5장 현대사를 연구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재야운동의 일선에서 유신 말기를 건너다

    지식인선언을 주도하다



    제6장 암흑천지 속에서 ‘민족’과 ‘통일’의 희망을 구하다

    세상은 다시 암흑천지로 변하다

    망가진 육신을 붙들고 활동을 재개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통일 언론인’으로 우뚝 서다



    제7장 ‘피투성이 희망’을 부여안고 광야로 나서다

    ‘송 의장’으로서 민주언론쟁취투쟁의 선봉에 서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 반드시 봄은 온다



    제8장 민주·민족·독립언론 창달의 밑거름이 되다

    ‘한겨레’의 염원을 모아 언론독립의 신기원을 열다

    혼신을 민주언론제단에 바친 ‘언론계의 별’이 지다



    닫는 글 -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그래서 위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