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학문이란 실제로 백성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조선 실학자 정약전, 바다 끝 유배지 ‘흑산도’에서 어부 장창대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쓰다!
《자산어보》는 1801년(순조1) 신유박해 때 천주쟁이로 모함을 받아서 흑산도로 유배된 손암 정약전이, 절해고도 흑산도에서 섬 백성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우리 바다의 우리 물고기 226종’의 정보들을 4종(55류)으로 분류해서 3권으로 묶은 책이다. 1권은 ‘비늘이 있는 종류(鱗類 :민어,숭어,날치,상어 등)’, 2권은 ‘비늘이 없는 종류(無鱗類 :복어,오징어,해삼,고래 등)’와 ‘껍데기가 있는 종류(介類 :거북,게,조개,불가사리 등)’, 3권은 ‘기타 바다 생물(雜類 :지렁이,갈매기,물범,미역,톳,파래 등)’을 적었다. 본서는 번역문과 함께 뒷부분에 한자어 원문도 수록했다.
자산(玆山)어보란 곧 ‘흑산(黑山)도의 물고기 사전’이라는 뜻이다. ‘검을 흑(黑)’ 자에서 캄캄한 앞날이 연상될뿐더러 당시 흑산도는 살아 나오기 힘든 유배지로 악명이 높으니, 걱정할 가족들을 위해 편지에 ‘자(玆)’로 고쳐쓰면서 붙은 이름이다. 1814년 흑산도의 어부 장창대(이름은 덕순)와의 협업으로 완성되었으나 2년 후 손암이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는 바람에 원고가 유실될 뻔했는데, 형의 집필 작업을 편지로 꾸준히 응원해왔던 동생 다산 정약용이 급히 제자 이청을 보내서 원고들을 수습한 덕분에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결국 다산이 책으로 엮었는데, 이때 이청이 전체 글의 40%가 넘는 분량을 첨언했다. 요컨대 이 책은 정약전-정약용 형제간의 우애와 정약전-장창대 두 사람간의 우정에 제자 이청의 노력까지 더해진, 여러 인연들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오징어 먹물로 쓴 글자는, 흔적이 사라져도 바닷물에 담그면 또렷이 살아난다.”
“영남산 청어의 등골뼈는 74마디고, 호남산 청어의 등골뼈는 53마디다.”
“아귀는 입술의 낚싯대로 먹잇감을 잡아먹으니 조사어(낚싯줄 물고기)라 부르겠다.”
우리 바다의 우리 물고기 226종을 시시콜콜한 쓰임새까지 총망라해서 정리한 책
《자산어보》를 읽어 보면 조선 후기 ‘실학’이라는 것의 정체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약전은 ‘양반다움(예법)’만 주장하는 경직된 성리학 사회에서 과감히 ‘실생활에의 유용성’을 택한 실학자로서, 중국 서책 속에서 읽은 어류가 아니라 ‘우리 바다에서 우리 어부들이 잡는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후세인들이 보완하여 병을 치료하고 재화에 이롭게 활용하여’ 어떻게든 백성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애민정신이 책 전체에 가득하다.
중국 책을 본뜨지 않고 흑산도의 뱃사람들과 함께 물고기를 채집해서 관찰하고 그들의 상스러운 표현까지도 경청해 옮겨 적었기에, ‘한자’라는 한계만 조금 극복하면 무척 흥미진진한 책이다. 다행히 한국고전번역원 권경순 교수와, 한자한문연구소 및 한국과학기술원 김광년 교수의 번역 덕분에 이 책을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다. 오징어 먹물로 비밀편지를 쓸 수 있다거나 청어의 등뼈 개수가 영호남에 따라 다르다는 내용은 흡사 셜록 홈즈 같은 탐구정신이 연상되고, 짱뚱어와 말미잘의 이름 유래나 날치와 고등어 낚시법에서는 민간의 재기발랄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최상위 관직까지 올랐던 양반이 ‘살아 나가기 힘든 유배지’에 있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검푸른 파도와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지은이 손암 정약전 (1758~1816)
본관은 압해押海, 자는 천전天全, 호는 손암巽庵·연경재硏經齋·일성루一星樓·매심재每心齋다.
1758년(영조 34) 경기도 광주 마현(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정재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남은 정약현, 삼남은 정약종, 사남은 정약용). 어릴 때 고향 근처의 남한강에서 동생들과 낚시를 즐겨서, 장성한 후에도 동생 약용과 함께 성균관을 몰래 빠져나와 낚시를 갈 정도로 호기심 많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이익의 학문을 이어받았고, 권철신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1783년(26세)에 진사가 된 무렵 이벽과 교유하면서 서학과 천주교를 접하고 관심을 가졌다. 1790년 규장각 초계문신이 되고 1797년 병조좌랑까지 오르지만, 한때 서학에 몸담았다는 사실 때문에 모함을 받으며 벼슬길이 좌절되었다. 정조가 갑자기 서거하자 이듬해인 1801년 신유사옥으로 동생 정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참수되고 정약전과 동생 정약용은 각각 신지도와 장기로 유배되었다. 그런데 그해 9월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형제는 다시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정약전은 유배 초기 6년을 소흑산도(우이도)에서 보냈는데, 감시가 너무 심해서 환멸을 느껴서 흑산도 사미촌(신안군 흑산면 사리)으로 옮겼고, 이후 아우 약용이 유배에서 풀릴 듯하다는 소식에 조금이라도 뭍과 가까운 곳에 있고자 다시 소흑산도(우이도)로 넘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생을 다시 보지 못하고 1816년 6월 6일 우이도에서 59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자산어보》, 《표해시말》, 《송정사의》 등이 있다
지은이 청전 이청 (1792~1861)
본관은 경주, 자는 금초琴招, 호는 청전靑田이다.
다산 정약용이 신유사옥과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1806년 가을부터 1808년 초봄까지 이청의 집에 거처했다. 십대 시절에 정약용에게서 학문을 익히고 차차 그의 저술을 도왔는데, 특히 경전과 역사 방면의 문헌 대조와 비교 및 검토에 능했다. 하지만 70세까지 과거에 응시해도 번번이 낙방하고 말았다. 정약용이 《여유당전서》를 저술할 때 중요한 조력자였고, 정약전의 초고인 《자산어보》를 수습하고 문헌 고증 및 일부 어종을 추가한 공저자다.
옮긴이 권경순
고려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고전번역원 대외협력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옥수기玉樹記〉와 〈옥루몽玉樓夢〉」의 재자가인소설才子佳人小說적 면모」, 「북한의 한문고전 번역 현황」, 「〈옥수기〉의 남녀결연담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옮긴이 김광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 한국과학기술원 겸직교수로 재직 중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 산문 연구」, 「조선 후기 과시科試 연구와 〈승정원일기〉의 활용」, 「신익성申翊聖의 금강산 유기遊記를 통해 본 조선 후기 유기의 문체적 다변화」 등의 논문이 있다.
서문
《자산어보》 서
《자산어보》 원문
권1 : 비늘이 있는 종류(鱗類)
석수어石首魚(민어과) │치어?魚(숭엇과) │노어?魚(농엇과) │강항어强項魚(도밋과) │시어?魚(준칫과) │벽문어碧紋魚(고등엇과) │청어靑魚(청어과) │사어?魚(상엇과) │검어黔魚(양볼락과) │접어?魚(넙칫과) │소구어小口魚(망상어) │망어?魚(삼치) │청익어靑翼魚(전갱잇과) │비어飛魚(청어과) │이어耳魚(쥐노래밋과) │전어箭魚(전어) │편어扁魚(병엇과) │추어?魚(멸칫과) │대두어大頭魚(대구과)
권2 : 비늘이 없는 종류(無鱗類)
분어?魚(가오릿과) │해만리海鰻?(뱀장어과) │해점어海鮎魚(메깃과) │돈어?魚(복어과) │오적어烏賊魚(오징엇과) │해돈어海豚魚(상괭이) │인어人魚 │사방어四方魚(육각복) │우어牛魚(새치) │회잔어?殘魚(뱅엇과) │침어?魚(학꽁칫과) │천족섬千足蟾(삼천발이) │해타海?(해파리) │경어鯨魚(고래) │해하海鰕(보리새웃과) │해삼海蔘(해삼) │굴명충屈明蟲(군소) │충淫蟲
권2 : 껍데기가 있는 종류(介類)
해귀海龜(바다거북) │해蟹(게) │복鰒(전복) │합蛤(조개) │감?(새고막) │정?(맛조개) │담채淡菜(홍합) │호?(굴) │라螺(소라) │율구합栗毬蛤(성게) │귀배충龜背蟲(군부) │풍엽어楓葉魚(불가사리)
권3 : 기타 바다 생물(雜類)
해충海蟲(벌레 :지렁이 등) │해금海禽(바닷새 :가마우지,갈매기 등) │해수海獸(바다짐승 :물범 등) │해초海草(바다풀 :미역,톳,파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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