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가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비밀번호가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706 |
[사회] 나는 뉴욕의 초보 검사입니다
이민규 | 생각정원 | 2019-08-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706 |
[사회] 나는 뉴욕의 초보 검사입니다
이민규 | 생각정원 | 2019-08-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
‘세상의 중심’, ‘탐욕의 최전선’ 뉴욕에서 일하는 한국인 검사의 정의 분투기
“오늘도 괴물이 되지 않으려 싸우는 중입니다”
300명의 직원으로부터 25억 원의 임금을 약탈한 ‘자수성가의 신화’, 사랑하는 남자에게 속아 팔려간 여자들, 매일 200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체…… 이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우리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뉴욕주 검찰청 ‘사회정의부’ 소속의 한국인 검사인 저자는, 상위 1%가 모인 세상의 중심인 이 도시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빚어낸 갖가지 사건을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법의 한계에 좌절하고 정의의 빈틈에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진짜’ 검사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검사인 ‘사람’이 되기 위해 고뇌한다. 그리고 결국 그 답과 희망이 ‘사람’에게 있음을 깨달으며 우리가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가져야 할 생각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뉴욕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실정과도 다른지 않은 범죄와 불의, 정의와 인간,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정의란 무엇인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뉴욕주 검찰청 ‘사회정의부’ 소속의 한국인 검사인 저자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빚어낸 갖가지 사건을 마주하며 때론 분노하고 때론 절망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진짜’ 검사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검사인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한다. 그는 장밋빛 도시 뒤 어두운 민낯을 마주하며 법의 한계에 좌절하고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결국 그 답과 희망이 ‘인간’에게 있음을 깨달으며 우리가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가져야 할 생각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저자의 미덕은 ‘경청’의 자세에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을 찾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공들여 듣는 것은 물론, 일하던 곳에서 일방적으로 쫓겨나 생계가 어려워진 할머니에겐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며 필요한 도움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아파하며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해당 사건과 관련된 서류들을 보관하는 마닐라 폴더들에 통상적으로 적는 피고인의 이름 대신 피해자의 이름을 적기도 한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속아 성매매를 시작한 피해자의 사연엔 깊은 분노를 느끼며 잠시 검사의 신분을 망각한 채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사실 피해자의 사연에 귀기울이는 태도는 저자 개인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미국 검사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배심(Grand Jury)제도로 인해, 미국에선 검사도 소송적 절차를 통해 대배심에 기소를 청구해야 한다. 대배심은 형사소송규칙상 16명에서 23명의 시민들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만약 이들 중 과반수가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기소 청구는 기각된다. 즉, 기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검찰의 역할은 표적을 정하는 것일 뿐이고, 정작 그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 결정하는 건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인 셈이다. 그렇기에 미국 검사들은 범죄 사실뿐 아니라 피해자나 제소자의 사정을 귀기울여 경청하며, 이를 토대로 법원과 대배심에 호소한다.
이렇듯 『나는 뉴욕의 초보 검사입니다』는 법복을 입고 정의를 외치기보다 사람들의 속사정을 듣기 위해 더 시간을 내는 책이다. 법의 여신 디케가 한국에서 눈을 가리고 저울추의 무게를 따진다면, 미국에의 법의 여신은 저울추에 누가 있는지 보지 않고, 오직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눈을 가린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초보 검사라는 자신의 지위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정의 구현이 화려하게 펼쳐지기보다 실망이나 낙담 속에서 안타까움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저자의 조심스러운 행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법 시스템의 흔적은 본문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국에서 현재 진행형인 이슈는 '사법 개혁'이다. 이 사법 개혁이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까? 공수처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어떤 조직이든 서로 상호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법정 시스템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미국의 검사 조직이 자신만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미국의 초보 검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300명의 직원으로부터 25억 원의 임금을 약탈한 ‘자수성가의 신화’,
사랑하는 남자에게 속아 팔려간 여자들,
매일 200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체……
이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우리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초보 검사가 마주한 법전 너머 현실, 그 추악한 단면들
그럼에도 세상을, 사람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뉴욕, 뉴욕, 뉴욕! 세상의 중심? 예전부터 뉴욕은 꿈과 희망과 기회의 땅이었다. 이곳에서 탄생한 성공 신화들은 이 도시가 뿜어내는 현란한 불빛만큼이나 화려하다. 탐욕의 최전선? 뉴욕은 늘 화려한 성공과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고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기형적으로 변해간다. 이런 욕망의 격전지에서 욕망이 탐욕으로 변질되는 건 한순간이다.
300명의 직원으로부터 25억 원의 임금을 약탈한 ‘자수성가의 신화’, 매일 200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체…… 초보 검사가 마주한 법전 너머 현실은 추악하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품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가난은 가난으로 대물림되며, 더 큰 죄로 되돌아와 리웨이 씨 같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리처드 씨 같은 혐오주의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약점을 파고들고, 새클러 가문처럼 모든 걸 넘치게 가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수십만의 생명을 농락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이라는 인생의 스포일러를 알면서도 계속 인생을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정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곳에 더 가까이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실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뉴욕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실정과도 다른지 않은 범죄와 불의, 정의와 인간,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정의란 무엇인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 책 속으로
하지만 돈이라는 욕망에 무너진 로버트슨 씨의 삶과, 사건들을 처리하며 점점 실적이나 성과라는 욕망에 집착하게 되는 스스로를 보며, 이 다짐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주관적인 욕심을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는다면,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시내의 인파 속에서 한 가지 목표만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너무나도 힘차게 고동치는 욕망의 맥박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다 결국에는 로버트슨 씨가 그랬던 것처럼,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비로소 나도 뉴욕이라는 이 거대한 욕망 덩어리의 일부가 되었음을.
-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한 남자〉 중에서
뉴욕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로 늘 웅성거리는 도시다. 이곳엔 과욕을 부리다 양심을 잃어버린 사업가도, 대박을 좇다가 추락해버린 젊은 부부도, 더 나은 삶을 찾다가 오히려 더 불행한 삶을 살게 된 이주 노동자들도 있다. 욕망과 몸부림 들이 한데 뒤엉켜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사연들은 그 거대한 웅성거림 속에 묻혀버려 명료하게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그 목소리들이 전해야 할 중요하고도 소중한 이야기들이 마치 필터 몇 장은 걸친 것처럼 가려지곤 한다.
그런데 검사실에 앉아 있으면 우리 사회가,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너무 바삐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놓치고 지나쳐버리는, 일상 곳곳에 존재하지만 가려진 이 이야기들을 매일 마주하게 된다. 무심결에 흘려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사정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법이 마련한 틀 안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것, 그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요지경과도 같은 이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터무니없는 월세를 내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내가 뉴욕에 아직 남아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늘 부족한 생활비에 허덕이고 과도한 업무량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내가 검사실에 계속 남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 〈내가 검사실을 지키고 싶은 이유〉 중에서
실제로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품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로버트슨 씨와 같은 고용주가 직원들의 땀과 노력을 훔쳐가는 세상이고, 인간의 가장 숭고하고도 취약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짓밟는 마커스 같은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가난은 가난으로 대물림되며, 그 죄는 결국 더 큰 죄로 되돌아와 리웨이 씨와 같은 사람들의 시간과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리처드 씨와 같은 혐오주의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약점을 파고들고, 새클러 가문과 같이 모든 걸 넘치게 가진 사람들이 더 베풀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수십만의 생명을 농락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선 우리 모두 부러지고 꺾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인생의 스포일러를 알면서도 계속 인생을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완전한 정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곳에 더 가까이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실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중략) ‘그래 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조치훈 9단의 말처럼, 그래 봤자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 봤자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사람을 위로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 이 자명한 윤리를, 이 단순 명료한 진실을,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잊지 않고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외치는 수밖에 없다. 세상의 중심인 우리 모두가 말이다.
그래 봤자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람이라고.
- 〈‘약의 제국’인가, ‘악의 제국’인가〉 중에서
아무튼 과한 엄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자의적인 온정주의가 판치는 사회 못지않게 많은 폐해가 존재한다. 정의의 여신이 자신이 가진 칼을 꺼내지 않고 칼집에만 보관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칼을 지나치게 자주 휘둘러도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칼’ 또는 ‘징벌’로만 이해하고 싶어한다. 더 단순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딘가 부족하고 망가진 사람들을 갱생시키고, 또 사회에 복귀할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보다 이들을 기계적으로 처벌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격리시키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고 쉽다. 별 저항도 받지 않는다. 격리되는 범죄자들 중 대다수는 좋은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법률적 도움을 받을 정도로 부유하지도 않으며, 그 때문에 사회적 또는 정치적 발언권 역시 미비한 탓이다. 결국 로버트 마틴슨이 ‘갱생을 위한 노력은 결론적으로 시간 낭비’라고 말한 이유는 이들의 갱생이 정말 불가능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비싸고 어렵기 때문이다.
- 〈타인의 삶: 정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중에서
|
705 |
[사회]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오찬호 | 동양북스 | 2018-08-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705 |
[사회]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오찬호 | 동양북스 | 2018-08-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세상이 이상한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이상한 세상에 적응이 안 되는 당신을 위한 사회학 특강 11년 동안의 대학 사회학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엮다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대한민국 20대를 파헤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한국 남성의 몸과 정신을 사회적으로 파헤친 책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로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사회학자 오찬호. 그가 이번에는 우리 마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학 입문서,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를 출간했다. 온라인 뉴스에 달린 부정적인 댓글들을 보면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의심 많은’ 사람들 천지인데 아직도 ‘당신은 속고 있다’고 주장하다니, 너무 뻔한 논리가 아닐까? 저자 오찬호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개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침을 튀기며 비판하지만, 자기 자신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외모, 학력, 직업, 집안, 인종 등에 대한 차별 의식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다. 또한 언제나 ‘우선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성공한 다음에’, ‘나중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프레임에 갇혀서 사고하기 때문에 각종 사회문제는 미해결된 채로 다른 사회문제를 양산한다. 그러니 사법 고시생이 판검사가 되고, 평사원이 CEO가 되고, 시간강사가 교수가 되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되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과거의 피해자가 현재의 가해자로 재탄생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군부독재 정권이 통치 수단으로 사용한 애국심 마케팅과 이순신 프로파간다, 정치 혐오와 엘리트주의를 부추기는 미디어, 경제지상주의, 비판 문화의 실종, 순종적인 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교육과 군대 문화, 남성?권력자?중앙 중심주의. 저자 오찬호는 이와 같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 문화, 경제적 환경들을 하나하나 해부하여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11년 동안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면서 ‘왜, 어떻게, 사회비판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수없이 경험한 그가 그동안 기록한 강의 노트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기도 한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이 책은 새로운 가치관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회학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이상한 사람과 사건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서 역할도 톡톡히 해낼 것이다. “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죠?” ‘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생존을 위한 사회학 강의 내 책을 읽고 독자가 ‘너무 우울해졌다’는 반응이 제일 기쁘다. _저자 【에피소드 1】 고등학교 교실 안, 사회 교사 김 모 씨는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다.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한다. “자기 권리를 위해서 싸우다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그러자 방금 전까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교사 김 모 씨는 싸늘하게 말한다. “그런 걱정은 네가 할 필요가 없어. 너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지. 일단 대학부터 가서 그런 고민을 해도 늦지 않아.” 【에피소드 2】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취준생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모 씨. 토익 점수, 자격증, 어학연수 등 나름대로 스펙을 갖췄건만 번번이 대기업 입사 시험에서 낙방한 그는 친구의 취업 소식에 우울감이 증폭되는 상태다.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자리에 앉은 그는 “한국 사회는 정말 썩었어!”라고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런다고 사회가 바뀌냐! 일단 취업부터 하고 나서 그때 뭘 바꾸든 하자.” 【에피소드 3】 입사 5년차의 박 대리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당연시하는 회사에 불만이 많다. 게다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상사인 최 부장의 프로젝트로 바뀌어버리자 일에 대한 의욕도 점점 사그라든다. 한숨이 늘어가는 박 대리는 답답한 마음에 동료인 윤 대리에게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답변을 듣게 된다. “회사란 게 원래 이런 건데 어쩌겠어. 조금만 참고 견뎌봐.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나중에 박 대리가 윗사람 되면 그때 이런 관행 바꾸면 되잖아.” 이상한 세상에 적응이 안 되는 당신을 위한 사회학 특강 11년 동안의 대학 사회학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엮다 “성공한 다음에 세상을 바꾸면 된다”, “일단 적응하고 나중에 바꾸면 된다”, “대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니까 일단 회사부터 살린 다음에 노동자의 권리를 외쳐라”, “대안이 없는 비판은 하지 마라”, “긍정 마인드가 성공을 부른다”.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대한민국 20대를 파헤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한국 남성의 몸과 정신을 사회적으로 파헤친 책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로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사회학자 오찬호. 그가 이번에는 우리 마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학 입문서,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를 출간했다. 1인 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태어나자마자 속고’ 있다니 이 무슨 해묵은 논쟁일까? 온라인 뉴스에 달린 부정적인 댓글들을 보면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의심 많은’ 사람들 천지인데 아직도 ‘당신은 속고 있다’고 주장하다니, 너무 뻔한 논리가 아닐까? 저자 오찬호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개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침을 튀기며 비판하지만, 자기 자신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외모, 학력, 직업, 집안, 인종 등에 대한 차별 의식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다. 또한 언제나 ‘우선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성공한 다음에’, ‘나중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프레임에 갇혀서 사고하기 때문에 각종 사회문제는 미해결된 채로 다른 사회문제를 양산한다. 그러니 사법 고시생이 판검사가 되고, 평사원이 CEO가 되고, 시간강사가 교수가 되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되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과거의 피해자가 현재의 가해자로 재탄생할 뿐이다. 한국의 교육을 비판하면서도 자기 자식만은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에 올인하는 부모들, 자신이 부하 직원일 때는 상사를 욕하다가 막상 진급을 하게 되면 권위적으로 돌변하는 직장인들, 진상 고객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고객이 되면 갑질을 하는 사람들.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욕하면서 스스로도 부동산에 목을 매는 서민들. 이와 같은 모순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등장은 그들 개개인의 천성 탓이 아니다. 이는 분명 사회, 문화, 경제적인 산물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군부독재 정권이 통치 수단으로 사용한 애국심 마케팅과 이순신 프로파간다, 정치 혐오와 엘리트주의를 부추기는 미디어, 경제지상주의, 비판 문화의 실종, 순종적인 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교육과 군대 문화, 남성?권력자?중앙 중심주의. 저자 오찬호는 이와 같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 문화, 경제적 환경들을 하나하나 해부하여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11년 동안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면서 ‘왜, 어떻게, 사회비판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수없이 경험한 그가 그동안 기록한 강의 노트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기도 한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이 책은 새로운 가치관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회학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이상한 사람과 사건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서 역할도 톡톡히 해낼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다른 세계가 보인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꾸준한 저작 활동과 더불어 jtbc의 〈말하는대로〉, 〈차이나는 클라스〉, KBS의 〈서가식당〉, 채널A의 〈거인의 어깨〉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을 얻은 저자는 여태까지 우리가 받은 교육 이념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고해볼 것을 권한다. 이를테면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가치 중 하나인 ‘불평불만’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불씨와 같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꺼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애국, 도덕, 성실, 열정, 인내 등의 미덕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사고해보라고 조언한다. ‘다수결의 원칙’이나 ‘통계’, ‘명성과 권위를 갖고 있는 세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책을 읽고 독자가 ‘너무 우울해졌다’는 반응이 제일 기쁘다”고 말하는 저자는 사회라는 네모난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인문학의 첫걸음이자 성숙한 시민이 될 자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 오찬호 씨와 출간 전 인터뷰-7문 7답 “열정적으로 나의 열정을 비판하고, 성실하게 우리 사회의 성실성을 비판하라” Q1.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는 제목이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A. 개인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솔직하게 바라보자는 것이죠. 우리가 어떤 사회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사회가 바보 같으면 개인도 바보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사회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자신이 바보인 것도 모르는 채 살고 있다는 것이죠. Q2. 사람들이 속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셨는데, 사실 요즘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똑똑해진 거 아닌가요? A. 과거의 관행인 권위주의라든가 비민주적 요소 같은 것은 확실히 줄어들고 있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외모지상주의라든가 어떤 유행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더 급속도로 번지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리고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고 해서 우리가 현재 사회에 만족해야 하나요?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계속 좋아져야 하는 거죠. Q3. 이 책을 읽다 보면 성실하게 사는 것이 바보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성실하게 살아야 하나요? A. 그 딜레마를 메워가는 것이 바로 ‘공부’죠. 사회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다음 날부터 “나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내 마음대로 살 거야”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내 삶을 정말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되돌아봐야죠. 내가 오늘 어떤 말들을 내뱉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통렬하게 되돌아보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마치 벽돌 쌓듯이 변화해나가야 해요. Q4. 경제지상주의가 문제라고 하셨는데,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에 경제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A. 우리 삶에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죠. 거의 모든 기준과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죠. 이를테면 소설책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그거 읽는 게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되니?”라고 말해요. 이 말은 책을 사는 행위, 소설을 읽는 행위가 돈 버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고하면 우리가 얻는 정보의 양이 굉장히 협소해집니다. 인터넷이나 TV에 노출되는 정보만 습득하면 우리는 점점 더 편협한 사고를 하게 돼요. 지금 당장의 돈 문제에 집착하면 오히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 점을 경계하자는 말이죠. Q5. 비판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면서 살다가는 왕따가 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살다 보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A. 만약 그것 때문에 왕따가 된다면 그건 진짜 좋은 왕따죠. 필요한 왕따고요. 왕따가 되는 게 두려워서 어떤 진실, 정의,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 같은 것을 외면한다? 그리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산다? 그렇게 살면 결국은 내가 비겁한 사람이 되는 거죠. 나 스스로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왕따가 되는 것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왕따시키는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큰 도움을 주는 거예요. 그들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게 만든다면 말이에요. 왕따냐 왕따가 아니냐,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이 사회에 필요한 비판을 하느냐 그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만약 그것이 정말 필요한 비판이라면 그 비판을 해서 왕따가 될지라도 절대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6.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뭘 할 수 있을까요? A. 사회를 바꾸려면 정치를 바꿔야 하는데, 정치에 대해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거나, 혐오하거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요즘 숨 쉬기가 너무 힘든데, 왜 이렇게 환경이 오염되었지? 나한테 갑질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져보는 것에서 사회 변혁은 시작됩니다. 내가 불평불만을 가져야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여론이 되고, 여론이 형성되어야 제도가 바뀔 수 있으니까요. Q7. 본문에 나오는 말 중 ‘인간은 상황에 지배당한다’는 것이 과거 시절처럼 물리적인 폭력이나 억압적인 지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최대한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요? A. 오히려 물리적인 폭력은 쉽게 드러나죠. 하지만 정신이 지배당하는 것은 훨씬 더 무섭습니다. 자본에 대한 이해가 바로 그런 거죠. 돈이 최고야. 돈만 많이 벌면 최고지.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죠.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돈만 잘 벌면 도덕적으로 약간 흠결이 있어도 괜찮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약간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라는 사고방식에 매몰되어서 평생을 살게 되죠.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내 주변에 나를 ‘좋게’ 지배하는 상황들을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 나가야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미디어를 봐야 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아도 성숙한 시민이 돼요. 그래야 상황에 덜 지배당할 수 있습니다. |
704 |
[사회] 남자문제의 시대
다가 후토시 | 들녘 | 2018-01-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704 |
[사회] 남자문제의 시대
다가 후토시 | 들녘 | 2018-01-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페미니즘의 물결이 서점가를 휩쓴 지금,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은 여성이 우위인 시대이며,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남자’ 문제 제기는 페미니즘의 물결이 두 차례 거쳐갔던 서구에서 먼저 있었고, 실제로 호주에서는 (불리한) 남자에 초점을 맞춘 보상교육이 시행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 못지않게 ‘남성우위’의 사회로 평가되는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내용상 문장 속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국’으로 바꿔 읽어도 될 만큼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도 합당한 시사점과 논점을 던진다. 우리나라에서도 학업, 취업, 결혼 (그리고 군대문제) 등에서 남자가 ‘불리’하며 여자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남자의 괴로움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힘을 얻곤 한다. 그렇다면 정말 ‘여성우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남자는 피해를 보고 있기에, 지원이 필요한 대상일까? 저자는 첫 3장은 남성성의 사회이론을, 나머지 4장은 남자문제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교육현장에서의 젠더 교육을 중심으로 하여 젠더와 교육이라는 날실과 씨실로 남자문제의 실체를 직조해나간다.
남자가 역차별을 당하고 있고,
여성은 더 이상 불리하지 않으며
지금은 ‘남자문제의 시대’(=여성우위 시대)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있는가?
남성성 사회이론과 젠더 교육의 관점으로 남자문제의 실체를 규명한다
지금까지, 젠더 문제는 여자문제였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 대접받을 권리를 쟁취하려는 투쟁에 이어, 교육과 노동 등 사회적인 지위를 얻는 데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근거가 된 것은, 아직은 전반적으로 남성이 우위인 사회이며 여성이 교육받을 기회나 취업할 기회, 우월한 지위를 획득할 기회 등을 부당하게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른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무원 시험이나 상위학교 진학, 행정고시 합격률 등에서 여자가 남자를 앞서고 있다는 보도들이 이어진다. 마치 여성이 더 이상은 불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이렇게 일견, 여성이 더는 불리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은 현실에서 또 다른 주장들을 낳았다. 여성이 더 이상 불리하지 않은데, 왜 ‘여성부’ ‘생리휴가’ ‘총여학생회’ ‘여성전용주차장’ ‘여학생휴게실’ 등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이나 제도가 필요하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남성에게만 부여된 징병의 의무 탓에 한쪽 성(性)에만 혜택, 또는 기회가 유달리 기운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 이런 문제와 주장의 대립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자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권신장의 목소리가 더 크게, 더 일찍이 두드러졌던 서양 여러 나라에서 먼저 있었다. 이러한 남자문제는 ‘학력 경쟁’이 격화되며 두드러진 현상이다. 영국의 GCSE(중등교육자격시험), OECD 국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평가인 PISA, 미국의 대학교 학부과정 진학률, 독일의 김나지움 진학률 등에서 모두 여자의 성적이 남자보다 높거나 진학률이 높았던 것이다. 호주에서는 남자의 학업부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천만 달러의 교육예산을 의무교육 단계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남자문제의 원인을 찾는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문제를 부진한 남자 개인에게서 찾는 관점과, 가해자인 ‘여자’를 상정하는 관점이다. 전자의 관점으로 보면 남자는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가 되고, 후자의 관점으로 보면 남자는 여성이 우대받는 불리한 입장 탓에 패배한 ‘피해자’가 된다.
서양에서 학령기 남자의 문제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청년기 남자에 더 문제가 집중된다. 문제의 초점은, 취업과 결혼을 하여 사회의 남성 일원인 ‘어른’으로서 자리 잡지 못하는 남자에 맞춰진다. 앞에 말한 패배자/피해자 관점을 거칠게 대입해보자면, 결혼과 연애에 관심이 없는 남자들을 ‘초식남’으로 정의하거나 취업/연애/결혼을 포기한 ‘3포 세대’라 부를 때는 남자를 ‘패배자’로 상정하는 것이며, 공부를 잘하는 (혹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여자에게 밀려 취업에 실패한 남자는 ‘피해자’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문제는, 과연 남자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여성 우대와 ‘페미니즘’ 때문에 남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기에 생기는 문제일까?
확실히,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거나, 더 많이 버는 여성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고용 비율을 살펴보거나, 동일 시간 노동 대비 급여액을 살펴보면, 혹은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공무원, 기업 경영진의 여성 비율을 살펴보면, 여전히 압도적인 남성우위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남성집단과 여성집단 전체를 비교해봤을 때, 여성에 비해 남성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여성이 남성의 ‘몫’을 빼앗았기에 남성이 불리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이 각종 우대정책과 혜택으로 인해 유리한 입장에 섰고, 여성우위 사회가 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인 다가 후토시는, 이렇게 단언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섰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남성지배체제가 재편되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위는 유지되면서, 그러한 남성지배체제의 혜택을 누리는 입장으로부터 배제되는 남성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문제의 시대』, 38쪽)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격화된 경쟁은 우리를 극단적인 성과주의 싸움으로 몰아넣었다. 청년 남성들의 고용이 안정적이던 시대에는, (적어도 남성들의 경우) 학교를 졸업한 후 노동시장으로의 이행이 매끄러웠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가족을 부양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고용이 불안정해졌을 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높게 평가되는 능력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남성적 능력’, 즉 이성(理性), 과제 수행, 물건 제조, 근력노동 등이 높게 평가되었으나, 지금은 보다 ‘여성적인 능력’, 즉 대인 서비스, 케어노동, 인간관계 조정, 커뮤니케이션 등의 능력이 높게 평가된다. 능력 면에서도 남자가 더 이상 유리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근대사회의 노동시장에서 남성들은 더 높은 가치와 더 많은 수요를 가진 능력을 남성적 능력으로 간주하는 젠더화된 능력관과, 능력 발휘 경쟁에서 여성의 배제와 주변화라는 이중의 어드밴티지 덕분에, 성별 속성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할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더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많은 남성들의 안정된 고용과 수입은 고도경제성장에 따른 사회 전체의 고용 증대와 기업조직의 확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또한 이렇게 젠더화된 메리토크라시에 의해서도 지탱되어왔다.” (『남자문제의 시대』, 87쪽)
“말하자면 신자유주의하에서 재편되어가는 오늘날의 기업사회는 재정의된 ‘남자다움’을 성취한 일부 여성을 ‘명예 남성’으로 그 중심에 끌어들이는 한편, 그런 ‘남자다움’을 성취하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 곧 대부분의 여성과 점점 더 많은 남성을 주변화하면서 여전히 ‘진짜 남자’에 의한 ‘진짜 남자가 아닌 자’의 지배를 유지해간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해자로서의 남자’ 논자들의 주장과 달리 ‘어른’이 되지 못한 남성은 “여자에게 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업사회에서의 ‘남자다움’의 성취를 둘러싼 남성 간 경쟁에서 진 것이다. 그들의 몫이 줄어듦으로써 가장 혜택을 누리는 것은 여성들이 아니라 기업사회의 중심에 위치하는 다른 남성들이다. 일정한 비율의 남성들을 ‘진짜 남자’로부터 배제하고 사회에서 주변화시키는 것은 신자유주의하에서 진행되어온 남성지배체재의 재편 과정인 것이다.”(『남자문제의 시대』, 39쪽)
그렇다면 교육현장에서는 남자의 학업부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러면서 ‘젠더평등의 관점’에 어긋나지 않는 교육을 하려면?
남녀공학은 평등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여학교/남학교는 그렇지 않은가?
불평등에 뿌리를 둔 신자유주의 체제의 교육현장에는
어떠한 젠더상(像)이 필요한가
이 책의 후반부는, 교육현장에서의 젠더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칙상의 ‘남녀평등’이 제도나 법의 형태로,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중시하는 가치로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든 남자든, 한쪽이 차별당하는 교육방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 ‘평등’이라는 가치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개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동시에 추구하려면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 딜레마는 일본의 ‘남녀평등교육’ 연구실천 학교로 지정된 한 초등학교의 사례를 통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앞에서 서술한 2001년도 3학년생의 ‘공개수업’에서는 가방 색이 빨강과 검정에 편중되어 있는 반면 필통과 옷 등 다른 소지품의 색은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반드시 성별로 색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아동들이 깨닫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방 그림에 좋아하는 색을 칠해 자신만의 오리지널 가방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했다. 그런데 여자 5명으로 구성된 활동반에서는 모두가 가방을 빨간색으로 칠했다. 담임교사는 문제를 느끼면서도 당장은 그러한 아동의 ‘자신다운’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남자문제의 시대』, 144쪽)
이렇듯 교육현장에서 평등과 개성 존중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들이기 힘들다는 현실의 근저에는, 교사와 교육제도의 대처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다. 호주의 사회학자인 R. 코넬의 이론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남성지배의 사회구조를 알게 모르게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혹은 가정에서 남성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 유리한 성역할을 학습한다. 남성지배체제를 지탱하는 데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코넬의 설명은 이렇다.
코넬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가부장제의 정당화 문제에 대해 지배당하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을 구현화하여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보증하는(한다고 보이는) 젠더 실천의 형태”라 정의하고 있다. 즉, 복수(複數)의 남자 존재양태 중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지배적인 것을 통해 총체적인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라는 체제가 유지되고 정당화되는 측면을 파악하고자 의도한 개념이다. (『남자문제의 시대』, 55쪽)
이렇듯,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성취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박탈감을 수반하는 가운데, 보다 우위의 남성이 여성과 그 밖의 남성을 종속시키면서 전체로서의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남자문제의 시대』, 71쪽)
결국 모두가 진정으로 평등한 교육현장, 더 나아가 그런 사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젠더 관점을 교육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단지 ‘똑똑한 여자’와 ‘덜떨어진 남자’의 문제로 대비해서도, 불리한 한쪽 성(性)에 어떤 혜택이나 보상을 하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교육에서의 젠더문제에 대처하려면 여성성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남성성(그리고 그 외의 성)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그렇다면, 지금은 명백히 여성이 불리한 상황인데, 남성성이나 남자의 현실, 남자문제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여성보다 남성에 초점을 맞춰 남성 특유의 문제를 강조하는 ‘남자 연구’는 자칫 한 걸음만 떨어지면, 여자가 직면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떼어내어 마치 일반적으로 남자가 더 곤란을 겪고 있다는 듯한 오해를 줄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지 남녀의 평균적인 차이와 여자문제에 주목하는 것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젠더현상을 더 현실감 있게 파악하는 데 자연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남자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를 통해 얻은 지식내용을 종래의 페미니즘 · 젠더 연구의 지적 유산과 결합시켜가는 것이 교육에서의 젠더문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해결로 연결되지 않을까.” (『남자문제의 시대』, 225쪽)
|
703 |
[사회]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
나카자와 쇼고 | 자음과모음 | 2019-06-1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703 |
[사회]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
나카자와 쇼고 | 자음과모음 | 2019-06-1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
도쿄대 출신 전 기자가 들려주는 일본 노동 현장의 최전선 르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뉴스가 연일 화제다. 2017년에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하면서 비정규직 제로의 신호탄을 올렸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하고 2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공공 부문부터 민간 부문의 확산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에서는 계약직 고용이 많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도 법적인 변화보다는 기업의 자발적인 의사에 맡겨두고 있는 처지다. 이는 옆 나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의 저자 나카자와 쇼고는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마이니치 방송사에 입사해 아나운서, 기자로 근무했다. 그러다 가족의 간병을 계기로 퇴직한 뒤 계약직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에 가해지는 차별과 착취를 경험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 그는 수치적으로 보여주는 통계 자료나 어떤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등 학문적인 방법론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직접 그 현장에 뛰어들어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일어났던 일들, 그리고 동료가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
702 |
[사회]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위근우 | 시대의창 | 2019-08-2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702 |
[사회]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위근우 | 시대의창 | 2019-08-2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정치적올바름 #페미니즘 #한국남자 #공론장 #가짜논의 #프로불편러 #대중문화 #리플레이
대중문화와 한국사회를 아우르는 ‘괄호 안의 불의’에 대한
민감하고 성실하고 단호한 싸움의 기록
촛불로부터 지금까지의 2~3년이라는 시간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불의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괄호 안의’ 기본 값이 사실은 힘으로 유지되는 모순투성이의 것이었고 이제는 이를 더 이
|
701 |
[사회] 도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1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9-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701 |
[사회] 도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1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9-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조용필의 ‘꿈’의 가사 일부다. 한국의 산업화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수출주도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면서 50년 만에 이뤄냈다. 하지만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 산업화로 인해 농촌인구가 도시로 대규모 이동함으로써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농촌지역의 고령화와 공동화(空洞化),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으로 주거환경 악화나 수도권-비수도권간의 불균등한 지역개발 등의 문제를 지금까지 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살게 된 도시, 현역에서 물러나면 선택지가 여럿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계속 살 것인가 집을 팔고 지방 중소도시로 갈 것인가 도시의 삶을 청산하고 전원에서 살 것인가. 무엇하나 간단한 일이 없다. 이 일은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모든 걸 거는 일일 수도 있다. 특히 대다수 경제적인 여유 없이 노후를 보내게 될 산업화 세대에게는 이제부터 치러야할 전쟁이다. 그 어느 쪽이든 그곳에 가서 한 달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몇 달씩 살아보면서 결정을 해야 한다. 지금부터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와 직결될 수 있다. 도시에 남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있다.
|
700 |
[사회] 도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2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9-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700 |
[사회] 도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2
김집 | 책만드는토우 | 2018-09-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도시도 정들면 고향이다.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곳,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아파트의 평수가 커져갔던 곳, 아이들 다 장성해 한 숨 돌리자마자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도시, 애증이 교차하는 이 도시를 떠나 어디로 갈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온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녀보면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 많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고 덜컥 터를 잡으면 안 된다. 어쩌다 가서 보는 것과 직접 살아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가끔 가기엔 제주도만한 곳이 없기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곳에서 산다고 누구나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섬이라는 특성상 갇혀있다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든 터를 잡기 전에 어느 정도 살아보라는 것이다. 살아봐야 한다. 살아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도처에 있다. 실패나 실수는 더 이상 안 된다.
어딘가로 옮기기 전에 살아보고 터를 잡고 집을 짓고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취미든 문화생활이든 해야 한다. 도시를 떠나 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있다.
|
699 |
[사회] 드론 저널리즘
이재섭, 설민환, 곽영주 | 지식플랫폼 | 2018-05-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9 |
[사회] 드론 저널리즘
이재섭, 설민환, 곽영주 | 지식플랫폼 | 2018-05-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포인터재단 드론 저널리즘 스쿨에서 경험한 ‘취재’와 ‘드론’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드론은 마치 인터넷 기술의 확산과 같이 군에서 정찰과 공격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질풍과 같은 속도로 민간용으로 확산되고 있다. 언론분야에서도 취재활동에서 드론의 사용규정과 이에 대한 윤리, 제도 마련에 대한 규정이 시급하다. 드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에게 필요한 전문 교육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언론계의 요구에 부응하여 미국의 언론 연구기관인 포인터(Poynter) 언론재단에서는 지난 2017년 6월16일부터 18일까지 2박3일간 위스콘신 대학교 저널리즘 스쿨에서 ‘드론 저널리즘 스쿨 과정’을 개설하여 미국 드론법규인 Part 107에 대한 시험 준비와 취재에 필요한 드론운영에 대한 법규와 윤리에 대한 워크숍을 알차게 진행하였다.
전국에서 언론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이 워크숍에서 기조 연설을 한 알 톰킨슨(Al Tompkins) 포인터 언론연구원 교수는 “취재에 있어서 드론 활용의 필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드론 운영에 대한 법규와 윤리에 대한 이해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해 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워크숍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였다.
드론 저널리즘의 프로그램 운영의 권위자인 네브라스카 대학교의 매트 웨이트(Matt Waite)교수는 워크숍 참석자들에게 미국 연방항공청에서 주관하는 Part 107 시험에 대비한 여러 가지 이론적 원리와 드론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를 강의 하였다. 구글 뉴스랩의 샘 스튜워트(Sam Stewart)는 VR(Virtual Reality)을 비롯한 구글에서 제공하는 각종 영상 프로그램에 관한 실습과 구글의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워크숍에서는 드론 관련 이론적 내용 뿐만 아니라 직접 드론을 조종할 수 있는 실습시간을 통해서 드론의 작동의 원리와 기능적 특성에 대해서도 체험하는 시간이 있었다. 광활한 대지위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드론을 작동하면서 드론 촬영 기법에 관련한 여러 가지 테크닉을 습득하는 시간도 있었다. 드론 관련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인 DJI에서 파견한 전직 AP기자 출신인 존 레스닉(Jon Resnick)이 실습 강사로 참여하여 DJI 제품의 특성과 기술 개발의 트렌드에 관해서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드론 관련 언론 스타트업인 ‘Drone Nerds Inc.’의 사장인 렌스 노울스(Lance Knowles)가 360도 VR 영상에 대한 원리와 제작한 영상의 시연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워크숍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중점적으로 논의 되었다.
? 드론에 대한 이해 (The goals for drone journalism workshop)
? 드론관련 법규와 윤리의 이해 (Why we stress drone laws and ethics)
? 미국 FAA의 드론시험 107 시험 준비 (Learn FAA Part 48, Part 107 Subpart A & B)
? 복잡한 드론 법의 이해와 활용 (The complicated legal landscape for drone journalists)
? 드론 비행 실습 (The flight controls for the DJI fleet)
? 구글 어스 맵핑 실습 (Gets hands-on Google Earth Mapping)
? 드론과 몰입형 스토리텔링 실습 (Drones + Immersive Storytelling)
? 가상현실 저널리즘 (Journalism 360)
? 드론 저널리즘 윤리 사례 연구 (Drone journalism ethics)
? 드론 운영시 위기상황 대처법 (Emergency procedures, drugs, alcohol, fitness to fly)
? 드론 관리 방법 (Drone lab maintenance, inspection, logging)
? 드론 영상 촬영에 대한 이해 (What I know about great drone photography)
2박 3일간의 드론 워크숍은 언론에 있어서 구체적인 드론의 운영방안과 법규와 윤리에 대해서 접하는 이론적으로 배우고 실습하는 시간이었다. 드론 저널리즘 관련 원리와 규정이 하루빨리 한국 언론의 드론 규정에 응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민규 단장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저널리즘아카데미 커리큘럼 개발위원, 현 한국언론학회장
|
698 |
[사회]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김미중 | (주)메디치미디어 | 2018-12-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8 |
[사회]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김미중 | (주)메디치미디어 | 2018-12-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20년 경력의 아파트 관리소장,
이웃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묻다
한국의 보편적 주거공간 아파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파트 생활에 대한 오해와 현명한 갈등 해결 및 중재 방안은 무엇인가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올바른 아파트 문화를 모색하다
층간소음, 담배 연기 민원부터 주민 공동재산, 주차장, 편의시설 갈등과 해법까지
20년 경력의 아파트 관리소장, 각양각색의 주민들이 공동주택에서 한데 어울려
현명하게 지내는 방법과 조화로운 아파트 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국가지표체계’에 따르면 2018년 7월 기준 전국의 공동주택은 15,875단지, 세대수는 9,388,275개로 나타났다. 이는 주택법에 의한 의무관리단지만을 대상으로 작성된 자료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곳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한국은 공동주택,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아파트는 한국의 보편적인 주거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거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에 따라 아파트 전셋값 변동 추이는 늘 사람들의 관심거리다. 하지만 정작 이런 거대한 수요에 비해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보편적 주거공간이 된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파트 관리소장인 저자는 단지 내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도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 관리소 직원의 업무와 이들이 어떻게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갈등을 풀어나가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아파트 관리소 직원을 마치 아랫사람인 양 대하며 ‘갑질’ 하는 사람, 이웃에게서 받는 피해에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이 다른 세대에 피해를 주는 것에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 아파트에 살고는 있지만 공동주택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 사람 등의 이야기를 비롯해 누구나 한 번쯤은 관리소에 제기했을 법한 민원과 갈등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독자들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한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그려지는 주민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지 반성적으로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간섭은 싫지만 도움은 받고 싶은 사람들인가?
국내 최초로 아파트 관리소장이 말하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현명하게 따로, 또 같이 사는 방법, 공동주택의 가능성과 한계
아파트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공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삶을 희망한다. 하지만 이토록 간절한 욕망의 대상인 아파트이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남에게 간섭받지 않는 독립된 생활을 원하지만 층간소음, 주차 문제 등으로 이웃과 갈등을 겪으면서 그러한 바람은 깨지기 일쑤다. 한편으로는 아파트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고, 존중받고자 하는 욕망 또한 갖는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느껴지면 항의하고, 관리소에 불만 섞인 민원을 제기한다. 또한 자신의 고충을 이웃들이 공감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처럼 아파트 거주자들은 남의 간섭은 싫지만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오늘날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 그 안에 담긴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아파트는 주민들이 따로, 또 같이 사는 곳이다.
아파트 관리소 직원들은 주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한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상충하는 주민들의 의견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갈등을 중재하여 해결하고, 주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다시 말해 아파트 주민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구보다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동시에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20여 년간 일하면서 겪은 여러 아파트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극히 일부분의 사례일 뿐이지만 이 나라 어느 아파트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며 한국 아파트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독자들은 그 안에서 나타나는 주민들의 고충, 이기심, 배려 등에 공감하고, 그 안에 자신을 투영하고 반성적으로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독자 스스로 조화롭게 사는 아파트 문화가 무엇인지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더불어 단순히 아파트 단지 내의 갈등과 화해 과정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주택만이 갖고 있는 장점과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다.
30대 초반에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인 여성 관리소장,
사회의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과 다양한 자격증 취득,
일곱 번의 이직을 통해 아파트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게 되다
저자는 1999년 남편의 권유로 관리소장 일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아파트 관리소장을 맡는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남성의 영역이라는 선입견이 컸고, 주택관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무자격자들이 넘쳐날 정도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관리소장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던 30대 초반의 새내기였던 탓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저자는 남들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작정 부딪쳐가며 전기시설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 전기기사 자격증, 여기에 더해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등 전문성을 갖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했다. 또한 육아휴직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탓에 몇 차례의 휴직과 일곱 번의 이직을 겪었으며, 그 결과 20여 년 동안 천안, 평택, 아산 등에서 8개 아파트 단지의 관리소장을 경험했다.
이처럼 저자의 이력은 관리소장은 남자의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한 결실이다. 또한 8개 아파트 단지에서의 근무 경험은 넓은 시선으로 아파트 민원을 해결하고 주민을 대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었다. 즉 저자는 주민과 가장 밀접한 관계이면서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중간자적 위치에 있으며,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가장 생생하게 소묘하는 동시에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적임자라 할 수 있다.
공용공간의 올바른 사용 방법, 주민 간의 배려와 존중, 개인의 양심,
아파트 정원의 대한 다양한 시각, 관리소장에 대한 궁금증 해소까지,
다섯 가지 테마로 보는 아파트 생활 길라잡이
1장 ‘혼자가 아닌 함께 사용하는 공간입니다’에서는 주차공간을 사적 소유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파트 단지 안에 택배 차가 진입하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상반된 여론, 단지 내 헬스장과 독서실 사용에 대한 갈등 등 아파트 공용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2장 ‘배려받고 싶으시면 존중해주시죠’에서는 층간소음, 담배 연기, 음식 냄새 등 아파트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상적인 갈등과 배려의 자세를 모색한다.
3장 ‘당신의 양심은 어디에 두셨나요’는 단지 내 쓰레기 무단투기, 오물 문제 등 양심과 관련된 일을, 4장 ‘아파트 정원에 대한 당신과 나의 동상이몽’은 아파트 정원 내 반려동물의 용변 처리 문제, 단지 내 나무 가지치기에 대한 다양한 시선, 가로등 설치 및 이전 문제 등을 다룬다.
5장 ‘아직도 관리소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신다면’은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아파트 단지의 문제들과 이를 관리소가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파트의 여러 문제와 함께 관리소장이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하는지 보여줌으로써 관리소 업무에 대한 이해를 돕고 편견을 해소한다.
◆ 책 속으로
책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웃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부디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함께 사는 타인의 사정, 다른 입장에 놓인 이들의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아파트가 ‘돈을 주고 사는 곳’이 아닌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건 1억이 오른 아파트 시세보다 분명 더 가치 있는 일일 테니까.
- 8~9p
삶에 무수한 선택지가 있듯,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지에 대한 선택권도 갖고 있다. 다행히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만족한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세상일이 어떻게 하나같이 다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막상 살아 보니 내게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면 방향을 바꿔보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특히 아파트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단독주택을 고려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집을 사는 게 부담스럽다면 당분간 임대해 살면서 자신에게 맞는 주거형태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한 템포 천천히 갈 때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73p
하지만 원래 아파트란 게 이렇게 피해를 받기도, 주기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나 다 장단점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주거형태를 선택해서 살아간다. 아파트를 택한 사람들은 이런 점도 염두에 두고 선택한 것이므로 서로 주고받는 피해를 이해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기본자세 아닐까.
- 80p
나는 아파트도 이런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일부러 나서지 않는 이상 옆집에 누가 사는지 영영 모른 채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 콘크리트 빌딩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말하자면 아파트에 사는 우리들은 따로 살지만, 동시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 혼자만의 연주를 할지, 여러 악기가 어울려 조화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합주를 할지는 오로지 그곳에 사는 주민 개개인만이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독주도 아름답고 의미 있지만 각자의 소리가 모여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독주에서는 느낄 수 없던 화려하고 총체적인 음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온기를 불어넣는다면 그 회색 건물도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우리가 가진 따뜻한 체온과 마음만큼 아름다운 아파트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79p
|
697 |
[사회] 또 하나의 가족
조용래 | 모던타임스 | 2017-03-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7 |
[사회] 또 하나의 가족
조용래 | 모던타임스 | 2017-03-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최순실 게이트. 10년 전 이미 이런 사태를 놀랍도록 정확히 예측한 ‘조순제 녹취록’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의 의붓오빠인 조순제다. 『또 하나의 가족』은 조순제의 아들 조용래가 아버지 조순제와, 장기간 박근혜의 집사 역할을 했던 어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최태민·임선이·박근혜의 68년 역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 조용래는 최순실 이전에 최 씨 일가의 돈을 관리한 임선이의 두 차례 결혼, 조순제가 최태민·박근혜가 벌인 각종 사업에 관여하게 된 이유, 박정희 사후 ‘통치자금’의 최 씨 일가 이전, 최태민·박근혜의 미스터리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최순실 게이트의 역사적 배경을 낱낱이 공개했다. 논란이 된 ‘조순제 녹취록’뿐 아니라 조순제가 죽기 전 직접 쓴 진정서 초안 전문도 부록으로 수록했다.
조순제는 누구인가?
1940년 생으로 최태민의 부인 임선이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다.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과는 같은 배에서 태어난 의붓 오빠다. 임선이가 최태민과 재혼할 때 데리고 간 조순영은 성을 바꿔 최태민 일가의 첫째 딸이 된 반면, 큰아버지 집에서 자란 조순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로 남았다.
1967년 이원우 공보부장관 비서로 일하다가 1975년 최태민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대한구국선교단을 비롯한 각종 어용 단체를 설립할 무렵 임선이의 요청으로 단체의 홍보실장과 사무처장 등 핵심 요직에서 일했다. 1980년부터 경남기업 임원으로 있다가 1984년 영남대학의 1인 주주였던 영남투자금융의 전무로 영남재단을 장악하고 재단 전횡을 실행했다. 당시 박근혜가 영남대학의 이사장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시 박근혜 후보가 자신을 모른다고 잡아떼자 진정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관련 증언을 담은 녹취록을 남겼고, 같은 해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에 사망했다.
‘조순제 녹취록’은 박근혜의 무능과 부도덕함에 대한 비판, 김재규와 박근혜·최태민의 악연, 10·26 이후 박정희 돈의 이동과 그에 따른 최태민 일가의 재산 축적, 박근혜와 최태민의 미스테리한 관계 등 최순실 국정농단을 10년 전에 정확히 내다봐 큰 주목을 받았다.
|
696 |
[사회] 버자이너
나오미 울프 | 사일런스북 | 2018-08-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6 |
[사회] 버자이너
나오미 울프 | 사일런스북 | 2018-08-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버자이너는 말초적 감각기관이 아니라 제2의 중추다
여성의 사고, 감정, 창의력… 즉 여성의 영혼과 신경 네트워크를 통해 강력히 연결되어 있는 신체 기관 버자이너의 모든 것. 현대의학도 그 어떤 성교육도 알려주지 않는 중대한 사실이 여기 있다.
당신이 버자이너를 소유한 여자라면 이 책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새로이 깨우칠 것이다. 당신이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거나 빠질 운명인 남자라면 그녀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지적 만족을 넘어서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 줄 책이다.
뇌와 버자이너는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고리에 이제까지 알려지지않은 더 많은 진실이 숨어 있는 게 분명하다. 버자이너는 여성 뇌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여성의 창의력, 자신감, 심지어 성격까지 형성한다. … 버자이너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버자이너가 뇌의 연장선일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는 걸 의미한다. … 버자이너가 구멍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이다.
베스트셀러 페미니스트 작가 나오미 울프가 21세기 새로운 성 모형을 제시한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신음해온 버자이너를 우리의 독서대 위에 올려놓는다. 작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이 작업은 마치 스스로 나신을 낱낱이 대중에 드러내 보이는 일이었다.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변절자 페미니스트’라는 지탄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포르노와 곁들인 바이브레이터와 하겐다즈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허전함은 다시금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남녀 관계의 단단한 구축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가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것은 버자이너에 대한 남녀 모두의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한다.여기 버자이너에 관한 모든 것이 있다. 생리·의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역사적 지식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한 성을 위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곁들였다.
|
695 |
[사회] 스토리텔링의 역사
이대영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8-02-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5 |
[사회] 스토리텔링의 역사
이대영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8-02-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대중매체의 발달은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바꾸어 왔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그에 걸맞은 이야기 방식이 등장했다. 구비전승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입과 귀가 전부였다. 연극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대형 극장이 지어지면서부터다. 금속활자가 등장하고 문맹률이 낮아지자 소설은 대중 예술의 꽃으로 등장한다. 20세기 전후에 등장한 영화는 연극과 소설의 장르적 결합이다. 이후 라디오, TV 등 전파 매체가 등장했고 현재는 컴퓨터의 발달로 게임이 등장했다. 가상현실 기술로 스토리텔링 기법은 또 다른 변이를 시작할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미래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그 역사와 변화 양상을 고찰하며 해답을 탐색해 본다.
|
694 |
[사회] 이것이 선거다
토미더글러스 | 루아크 | 2019-02-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4 |
[사회] 이것이 선거다
토미더글러스 | 루아크 | 2019-02-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65년 전 토미 더글러스의 연설이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이유! 이 책은 캐나다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1962년 의회에서 연설한 ‘마우스랜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은 것이다. 마우스랜드 이야기의 주인공은 생쥐와 고양이다. 고양이는 소수 기득권 세력을 상징하고, 생쥐는 다수 일반 서민을 대표한다. 마우스랜드에서도 우리처럼 5년마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데, 이상한 건 생쥐들이 검은 고양이들을 매번 지도자로 뽑아왔다는 점이다. 결국 고양이들의 횡포로 생쥐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견디다 못한 생쥐들은 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서 검은 고양이를 퇴출시키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흰 고양이를 뽑는다. 물론 그럼에도 생쥐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고양이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쳤고 생쥐는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생쥐들은 삶이 피폐해질 때마다 색깔만 다른 고양이들을 지도자로 갈아치우곤 했다. 생쥐를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런 위험한 생각을 내비치는 생쥐가 나타나자 그를 감옥에 처넣었다. 마우스랜드의 지도자로 생쥐를 뽑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가 그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생쥐들은 고양이들의 배를 불리는 식사거리로 전락하거나 이용당하고 만다. 토미 더글러스는 바로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이 우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더글러스는 투표를 해도 변하지 않는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의 고단하고 비참한 삶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비록 짧은 우화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가 처한 정치 시스템의 의미와 폐해를 함축적이면서도 명료하게 보여준다. 토미 더글러스는 국가권력이 노동자의 정당한 목소리를 탄압한 것에 항거하고,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노력한 북미 지역 최초의 민주사회주의 정부(캐나다 서스캐처원 주 지방정부) 주지사였다. 더글러스 같은 이들이 앞장서기 전까지 캐나다에서도 더 보수적인 정당과 그보다는 조금 덜 보수적인 정당이 정치권을 양분했다. 캐나다의 ‘생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 보수정당 중 어느 쪽이 더 생쥐 편을 드는지 입씨름하며 선거 때마다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옆 나라 미국에서 늘 별 차이도 없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차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캐나다는 미국하고 달랐다. 바로 ‘마우스랜드’의 원작자 토미 더글러스 같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정당, 그래서 그런 약자들이 억압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권력을 쥘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당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기득 권력이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은 지구 어느 나라든 똑같다. 합법을 가장한 선거는 왜곡되고, 변화를 갈망하는 세력은 매도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기득 권력은 그동안 ‘경제 살리기’라는 공약을 내세워 서민들에게 잘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걸 이용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쉽게 당선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공약은 진실했을까? 물론 진실했다. 부자에게는 말이다. 우화에서처럼 한국 사회의 ‘생쥐’들은 기득 권력이 모두 색깔만 다른 ‘고양이’임에도 ‘생쥐’를 뽑자는 외침을 무시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65년 전 토미 더글러스가 외쳤던 연설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까닭이다. 이 책을 통해 갑갑한 현실을 꿰뚫어보는 토미 더글러스의 놀라운 혜안을 접한다면 정치와 선거를 둘러싼 혼탁한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아울러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정치 교재가 될 것이다. 책 후반부에는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의원과 강상구 정의당 교육연수원 부원장, 에세이스트 김현진 씨의 ‘덧붙이는 글’을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
693 |
[사회]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구정우 | 북스톤 | 2019-07-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3 |
[사회]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구정우 | 북스톤 | 2019-07-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가 말하는 그것, 인권일까 차별일까?”
인권전문가 구정우 교수가 말하는
나의 인권과 당신의 인권이 웃으며 싸우는 방법
“한 씨는 정신병원 원장이다. 그는 최근 병원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넘겨달라는 경찰의 요청을 받았다. 지난 6개월간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운전자들에 의한 사고가 2배 이상 늘었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운전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교통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한 씨라면 경찰요청에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정부는 20××년까지 국가유전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모든 신생아들의 유전정보를 채취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종 질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DNA 분석을 통해 범죄자를 식별하겠다는 구상이다.”
범죄식별 및 질병연구에 큰 도움이 되므로 승인되어야 할까요?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철회되어야 할까요? 당신의 의견은?
- 〈인권감수성 테스트〉 문항 중
우리가 말하는 그것, 인권일까 차별일까?
뉴스 보기 두려운 세상이다. 사회의 온갖 부정·부패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해 국민의 공분을 불러오는 가운데, 사회면에는 ‘인간이길 포기한’ 듯한 사람들이 저지른 흉악범죄 소식이 들려온다. 심란한 기사의 댓글창에는 기사 못지않게 거친 논조의 댓글이 오간다. 최근 사회적 화두가 된 성평등 이슈에는 서로를 ‘쿵쾅이들’과 ‘한남’이라 욕하며 기사와 상관없는 입씨름에 열을 올리고, 강력범죄 소식에는 한결같이 ‘내 혈세가 아깝다’며 ‘당장 사형시켜라’라고 입을 모은다. 가해자 인권 보장하느라 피해자들만 더 억울해지고, 병역거부자들의 양심 챙겨주느라 국방이 위험해지고, 난민 보호하느라 정작 국민들은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인권이 문제라고 성토한다.
혐오표현, 갑질과 괴롭힘, 페미니즘, 난민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의 상당수는 실제로 ‘인권’과 연결된다. 인권을 더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인권 타령하느라 나라가 나라답지 않게 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어쨌든 지금은 과거보다 인권교육이 강화되고, 인터넷 창만 열면 인권 이슈와 토론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인권에 관한 지식이 상식이 되어가고, 인권지식이 ‘교양인의 척도’가 되어가고 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보면 연민이 생기고, 그런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며 뿌듯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의 인권은 과연 좋아지고 있을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인터넷 댓글창의 수많은 비하와 혐오표현이 그것을 입증하고, 장애인 자녀가 다닐 학교를 지으려 무릎 꿇은 학부모들의 읍소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난민을 수용하자는 호소에 ‘잘사는 너희 집에서 거두라’는 비아냥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왜 이렇게 문제적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개인의 인권보다 사회적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인권을 중시한다는 사람들은 인권에 둔감한 사람을 ‘교양 없는 사람’이라며 차별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각자 자신에게 중요한 인권만 외치며 다른 이슈는 외면하는 차별을 행하기도 한다. 개인의 처지와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받기 위해 인권 개념이 생겨났건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인권을 둘러싼 크고 작은 차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의 인권과 당신의 인권이 웃으며 싸우는 법
인권이 실질적으로 우리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처럼 꼬여버린 매듭을 풀어내야 한다. 상대의 말과 처지에는 귀와 눈을 막은 채 자기 논리만 내세워서는 분열이 일어날 뿐이다. 지금은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주장하게 된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인권 관련 주제들을 골라 담았다. 범죄자 인권, 난민 문제, 젠더 전쟁 등 하나같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주제들이다. 인권사회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이들 이슈에 대한 주장과 반론을 담고, 서로의 입장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서로의 관점을 균형감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관련 연구와 해외사례를 소개해 각종 사안을 좀 더 깊고 넓게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개발한 인권감수성 테스트가 중요한 기반자료 역할을 한다. 2015년에 만든 인권감수성 테스트는 론칭 한 달 만에 2만 명이 참여해 화제를 낳았고,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과 성인들까지 4년간 약 6만 명이 테스트에 참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숫자로 보는 인권’을 만들어 인권자료와 정보를 일반인들과 공유하는 등, 연구실에 갇힌 인권이 현실과 만나게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요즘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인권을 높이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 중요하고, 내가 겪지 않은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중요하다. 허울 좋은 지식의 묶음이나 그럴싸한 국제적 규범으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어려운 사고와 선택을 통과해서 우리 일상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 숨 쉬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권감수성은 감성의 영역인 동시에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뜨거운 논쟁도 좋지만,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과 머리로 사회적 이슈를 대한다면 서로를 가로막는 오해와 편견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대립과 혐오를 피하고 서로 존중하며 타협점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과 함께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웃으며 싸우는 법’을 익힐 때, 비로소 인권이 우리 삶에 편안히 자리할 것이다.
책 속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2017년 11월 29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2월 3일 오후 1시부터 광화문 일대에서 가두행진과 집회를 개최한다는 집회시위 신고서를 접수했다. 종로경찰서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교통통행에 심각한 불편이 초래되고 안전사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행진 구간을 제한했다. 특히 대통령 관저로부터 100m 이내인 효자동 삼거리 통과구간에서는 행진과 옥외집회를 할 수 없다고 금지했다. 청와대 100m 근방에 대규모 시민들이 모일 경우 어떤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뒤는 우리도 잘 아는 이야기죠. 서울행정법원은 헌법 제21조제1항이 국민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경찰 처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사전신고제의 취지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는 점도 덧붙였죠. 법원은 비상국민행동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의 집회, 시위가 제한된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효자동 삼거리를 포함한 특정 구간의 행진에 대해서는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인근 주민들의 주거권과 통행권을 보장해야 하므로 일몰시각인 오후 5시 14분에 집회와 시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국민들은 법원의 결정을 환영했지만, 사실 이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청와대 100m 앞에서 집회가 열린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요 경호시설 100m 이내에서는 집회할 수 없게 한 현행법을 감안하면, 시위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거리이지요. 과거에는 경찰 차벽이 수시로 등장해 광화문 일대와 청와대 진입로를 막아서지 않았던가요.
다행히 국민들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평화롭게 행사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 앞에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와대 인근은 손팻말로 상징되는 1인 시위의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기자회견도 종종 열립니다. 인권 경찰로 변하리라 다짐한 경찰은 단속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입니다. ‘대통령 경호법’을 들어 규제로 일관했던 청와대 경호실도 한걸음 물러섰습니다.
당시 담당 판사는 분명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수많은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갔을 겁니다. 혹시 성난 군중이 청와대 진입을 시도해 대혼란이 야기되지 않을지, 일몰 이후에 자진 해산하지 않아 인근 주민들의 주거권이 침해되지 않을지, 만에 하나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반드시 청와대 앞 100m까지 진출해야 하는지.
선택은 어려웠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극대화되었고,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시민적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판사 한 명의 인권감수성이 우리 삶의 모습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죠. 집회와 시위의 ‘과잉사회’에 살고 있다고요. 아침 일찍부터 울려 퍼지는 구호와 노동가요에 아침잠을 반납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평온한 주거권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혹시 시위대의 인권이 또 다른 차별을 낳는 건 아닐까요?
- 1장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 많아지면 인권이 좋아질까?
난민 문제를 다룰 때에는 유독 인도주의적 관점, 인간의 보편적 정서 등 누구도 섣불리 반박하기 어려운 ‘좋은 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난민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인종차별주의나 혐오주의자여서 난민을 배척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막연한 인권이니 인도주의니 하는 것 때문에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법을 만드는 ‘높으신 분’들이 아니라 난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일반 국민이라는 점에서 반발이 더 큽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검토 없이 무작정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이상론적인 접근이라는 것입니다.
- 2장 그들에게 우리의 나라를 빼앗긴다면?
2018년 10월에 〈네이처〉 지에 실린 흥미로운 연구논문 한 편을 소개합니다. ‘생사를 다루는 선택 : 두 가지 악마 중 덜한 것 고르기’라는 주제입니다. 여기 ‘도덕적 기계(moral machine)’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계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뜻하는데요, 브레이크가 고장 나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수 없을 때 핸들을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핸들을 조작한다는 것은 곧 보행자 중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희생시킬지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훗날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려면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도덕적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앞서 소개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사고실험 사례와 비슷하죠.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마이클 샌델의 사고실험은 말 그대로 실험이지만, 이제는 자율주행 자동차에 실제로 이런 판단기준을 프로그래밍해서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알고리즘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는 실제로 누군가가 희생되겠죠.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섣불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윤리실험에 전 세계 230만 명이 참여해 13개의 문항에 답했습니다. 노인보다는 어린아이를 구하고, 무단횡단하는 이들을 희생시키고, 동물보다는 인간을 살리고… 대체로 한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국가에 따라 답변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 문화권의 차이를 들여다볼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항목이 있습니다. 개보다는 고양이가 희생양으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어떤 이유 때문일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고양이보다 더 많이 지목되는 희생양이 있었습니다. 바로 범죄자였습니다.
개와 고양이 간에 어떤 선택의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려동물과 범죄자를 가르는 선택기준은 오히려 쉽게 이해될 것도 같습니다. 범죄자는 인간도 아닌 존재, 아니 말 그대로 ‘금수禽獸만도 못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나 봅니다. 그리고 머잖아 AI가 얼굴만 보고도 범죄기록을 판별할 수 있다면, 범죄자는 개와 고양이보다 먼저 희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도덕적 판단기준’에 따른다면요.
- 3장 ‘금수만도 못한’ 자들에게 인권이란?
2018년 12월에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이런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YTN 의뢰로 전국 성인남녀 2509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29.4%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매우 비판적인 60대 남성 지지율 34.9%보다도 한참 낮을 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별 남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였습니다. 반면 20대 여성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63.5%로 문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인 40대 여성(61.2%)의 지지율보다도 높았습니다.
이 차이를 좀 더 도드라지게 말씀드려 볼까요? 60대 남녀의 지지율 격차는 2.6%p, 50대 남녀는 5.3%p, 40대 남녀는 0.8%p에 불과했습니다. 30대 남녀도 거의 차이가 없고요(0.3%p). 그런데 20대 남녀의 격차는 무려 28.6%p입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이례적인 통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격차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같은 시기에 실시된 페미니즘 지지도 관련 조사가 있었습니다. 역시 리얼미터가 조사했다고 합니다. 전국 성인 10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는 20대 여성은 64%에 달했던 데 반해 20대 남성은 14%에 그쳤습니다. 무려 50%p의 격차입니다. 30대 남녀의 격차가 11%p인 것과 비교되죠.
두 개의 자료를 들여다보니 답은 비교적 쉽게 나오는군요. 20대 남녀의 정부 지지도 차이의 원인은 이 세대의 젠더 갈등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평등과 젠더 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접근법에 많은 20대 남성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에 비하면 취업문제,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임금하락,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거부감 등은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요인에 불과합니다. 젠더 전쟁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통계자료입니다.
- 5장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함께 살아가려면
1988년 미국에서 중요한 판결이 있었는데요. 한 성인잡지사가 저명한 목사를 패러디한 것에 대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잡지사의 손을 들어준 사건으로(Hustler Magazine v. Falwell) 세상을 바꾼 판례의 하나로 꼽힙니다. 래리 플린트는 1970년대에 〈허슬러〉라는 남성 잡지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요. 당연하게도 성적 도덕성을 강조하는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급기야 1978년 3월 백인우월주의자가 그를 저격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죠.
래리 플린트는 유명한 기독교 원리주의 지도자였던 제리 폴웰 목사를 패러디의 타깃으로 삼습니다. 1983년 11월호 〈허슬러〉에 실린 패러디 광고는 폴웰 목사를 성적, 도덕적으로 철저히 모욕하고 있습니다. 이태리산 양주 캄파리 광고 인터뷰를 빗댄 것인데요. 캄파리의 첫 맛이 어땠냐고 묻는 질문을 잘못 이해한 폴웰 목사가 자신의 첫 성경험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추한 헛간에서 어머니와 성관계를 맺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그랬노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도덕주의자를 근친상간자로 묘사한 것이죠. 그 밖에도 설교를 하기 전에 늘 캄파리를 마신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물론 광고 하단에는 패러디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작게 쓰여 있긴 했습니다. 패러디이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죠. 이쯤이면 명백한 명예훼손 아닌가요? 이런 표현이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미국 연방대법원은 8대 0 만장일치로 래리 플린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패러디인 경우 표현이 과하더라도 공인에 관한 것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판결문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의 한 측면일 뿐 아니라, 진실의 추구와 사회 전체의 활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 목소리가 중요한 공적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공인에 관한 것인 경우 특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허슬러〉의 패러디 광고가 과하고 비윤리적이지만 미국 연방대법관들은 그보다는 폴웰 목사가 공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표현의 자유의 영역을 비교적 넓게 해석한 겁니다.
- 7장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일까?
블라인드 채용의 바탕에 깔린 인권의 정신, 즉 ‘평등과 차별금지’의 정신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그간 우리의 잘못된 관행들을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어민 영어강사를 구하면서 백인만 선호했던 관행이 하나의 예가 될 것입니다. 일부 학원가에서는 원어민 영어강사를 모집할 때 여전히 ‘white person only(백인만 가능)’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지요?
인종에 따라 영어 실력에 차이가 있을까요? 분명 아닐 겁니다. 이런 식의 차별을 ‘조선족’이나 동남아 출신 유학생들도 받고 있습니다. 평등과 공정성은 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차별과 편견에 바탕을 둔 공정성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 9장 공정한 채용을 위한 차별은 정당할까?
‘국가경쟁력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 국가들이 고용 및 해고가 쉬워지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다는 점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근로 형태를 인정하면서 산업과 직종에 따라 유연한 노동기준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유럽 선진국들은 고용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자의 각종 권익을 보장하는 데에도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노동관련 법규와 제도를 꾸준히 개선해 노동시장의 효율을 높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지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며, 이것이 글로벌 트렌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처럼 고용·해고가 경직돼 있던 독일은 130위에서 11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영국 역시 61위에서 6위로 탈바꿈했습니다.
선진국의 ‘두 마리 토끼잡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추세를 보면 우리나라도 고용과 해고를 유연하게 하는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 있게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노동시장의 효율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는 사용자 측의 주장도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지금도 너무 많은 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유럽 선진국이 그러하니 우리도 해고를 더 쉽게 해야겠다고 말해야 할까요? 2018년 현재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33%가 이미 해고하기 쉬운 비정규직인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권이 여전히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선진국이 되기엔 갈 길이 먼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 10장 파업할 권리와 불편하지 않을 권리
|
692 |
[사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조던 피터슨 외 | 프시케의 숲 | 2019-07-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2 |
[사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조던 피터슨 외 | 프시케의 숲 | 2019-07-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세계 지성들의 치열한 찬반 토론
‘정치적 올바름’, 즉 PC를 둘러싼 4인 4색의 뜨거운 논쟁이 펼쳐진다. 정치적 올바름은 편견 없는 언어를 사용하자는 최초의 취지에서 점점 외연을 넓혀 각종 소수자 우대 정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억압적이며 역차별이라는 비판 또한 거세게 일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논제에 대한 찬반토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성별, 인종이 여러 이슈를 놓고 갈등하는 상황을 성찰한다.
베스트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 저자인 조던 피터슨과 영국의 유명 작가이자 배우인 스티븐 프라이가 반대 팀으로서, 정치적 올바름은 진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PC 운동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개인주의를 위협하는 집단적, 전체주의적 서사라는 것이다. 이에 맞서 여성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와 열정적인 흑인 사회학자 마이클 에릭 다이슨이 찬성 팀으로서, 정치적 올바름은 진보라는 입장을 옹호한다. 역사적인 불평등에서 비롯된 문화적인 편견과 비대칭적인 권력을 바로잡는 것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자연스러우며 당연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찬반 양측의 치열한 토론을 관전하며, 오늘날 한국에서도 성별, 난민 등을 이슈로 하여 뜨겁게 발화하고 있는 PC 논쟁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특히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데요.
정말 혐오스럽습니다.”_조던 피터슨
‘정치적 올바름’은 한국의 인터넷 공론장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단어다. 기본적으로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태동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글로벌한 세계의 현실에서, 더욱이 미국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점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장 인터넷 게시판의 설전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 근저에 ‘정치적 올바름’ 개념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정치적 올바름’이란 대체 무슨 뜻일까?
‘정치적 올바름’은 영어로 ‘Political Correctness’로서 소수자들을 차별, 배제하는 언어 사용 및 표현을 지양하자는 신념, 혹은 그에 기반한 사회운동을 말한다. 흔히 PC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불구자’ 대신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에스키모’ 대신 ‘이누피아크’, ‘후진국’ 대신 ‘개발도상국’,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 ‘결손가정’ 대신 ‘한부모 가족’ 등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현재 ‘정치적 올바름’은 단순한 언어순화 운동 차원을 넘어서, 영상이나 게임 등에서의 균등한 역할 배분, 혹은 진학이나 취업, 승진 등에서의 소수자 우대 정책 등으로 확장 적용되고 있다. 성별, 인종 등 여러 집단적 정체성이 합류하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이른바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 일체를 뜻한다.
“당신은 고약하고 화가 난 백인입니다.
확실히 지독하고 심술궂네요.”_마이클 에릭 다이슨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인류가 응당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이 책에서 각각 여성과 소수 인종을 대표하는 패널인 골드버그와 다이슨은 ‘정치적 올바름’이 거대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방편이며, 따라서 인류 진보의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두 패널은 현재 PC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의 분위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역사적, 사회적 특권층이 뻔뻔하게도 그들의 이기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반동이며,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필경 우스꽝스럽게 회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찬성 팀이 보기에, 이런 역사의 낙오자들은 ‘계몽’해서라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로 이끌고 가야 할 망아지들이나 다름없다.
반대 팀인 조던 피터슨과 스티븐 프라이가 단지 ‘이기심’을 드러내는 주장을 했다면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미는 반대 논거는 퍽 묵직한 대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표현의 자유 없이, 진정한 사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프라이는 SNS상의 침묵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검열당하는 듯한 느낌에 대해 토로한다. 이른바 ‘어떤 발언이 PC하지 않으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막는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그 토대부터 허물어뜨릴 수 있다.
아울러 피터슨은 ‘정치적 올바름’이 서구 문명의 위대한 산물인 개인주의를 위협한다고도 주장한다. PC 운동은 정체성 정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 정체성 정치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지우고 집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피터슨이 보기에, 이런 집단주의적 관점 아래에서는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 표현 등이 불행스럽게도 억압당하고 만다.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은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현실과 맞물려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PC는 표현의 자유, 열린 토론, 자유로운 사상 교환의 적일까? 아니면 소외된 집단을 배제시키는 지배적인 권력에 맞서 평등하고 정당한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누군가는 정치적 올바름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자유롭고 열린 토론을 옥죄며, 불필요하게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소외 집단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준을 만드는 것이 언론의 자유를 넓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첨예하게 맞서는 주장들 사이에서 독자들이 각자의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길 기대한다.
토론에 대하여
이 책은 2018년 5월 1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멍크 디베이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멍크 디베이트는 피터 멍크와 멜라니 멍크가 설립한 자선단체 오리아 재단의 프로젝트로, 반년마다 세계가 당면한 주요 공공정책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세계적인 포럼이다. 그간 패널로 스티븐 핑커, 토니 블레어, 헨리 키신저, 말콤 글래드웰, 니얼 퍼거슨, 알랭 드 보통, 폴 크루그먼 등 수많은 명사가 참여해왔다. 이번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토론 역시 현지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세계적으로 핫이슈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데다, 각각의 패널들 역시 쟁쟁했기 때문이다. 방청객 3,000명이 토론 현장을 빼곡하게 채웠으며, 미국과 캐나다에도 C-SPAN과 CPAC을 통해 방송되었다.
논평에 대하여
한국어판 부록으로 임명묵의 글 ‘왜 지금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인가’를 수록했다. 본 토론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논의 전개가 돋보인다. 토론 패널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에 집중했다면, 논평자는 해당 논쟁이 이루어지는 맥락을 다룬다. 포퓰리즘의 부상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PC 논쟁을 첨예하게 촉발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특히 논평자의 약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으로, 엄청난 독서력을 바탕으로 참신한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인터넷 뉴스 채널 〈슬로우 뉴스〉에 다양한 주제로 원고를 쓰고 있으며, 〈서울신문〉 ‘2030 세대’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PC를 둘러싼 문화 전쟁이 20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측면이 있는데, 해당 주제를 20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맞다, 그르다를 따지기 이전에 한국의 시민으로서 정치적 극화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 극화가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념 전쟁의 맥락에서 벌어진다면 더더욱 우려스럽다. 미국인이 아닐지라도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이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에 좌절했을 것이고, 만약 유럽연합이 시행하는 여성/소수자/다문화에 관한 진보적인 정책을 소개하는 트윗을 본다면 ‘좋아요’를 찍을 것이다. 반면 역시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이들은 유튜브에서 조던 피터슨이 페미니스트 앵커와 논쟁하는 영상을 보며 ‘좋아요’를 찍을 것이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항하는 다른 영미권 식자의 영상에 자막을 입혀 번역을 할지도 모른다. 이런 대립구도에서는 한국인 혹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내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
필자가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이유는 역사적 선례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이슬람 세계의 세속주의-이슬람주의 갈등이 이와 놀랍도록 유사한 구도로 전개되었다.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에 거주하는 진보적 고학력자들은, 다수의 의견과 상관없이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종교 교리의 사회 침투를 막는 세속주의 법안을 지지했다. 반면 고등교육에서 배제되어 온, 농촌이나 대도시 빈민가 사람들은 ‘보편 인권’을 보장하는 세속주의 법안이 스스로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출할 권리를 막는다고 느꼈다. 이들은 훗날 이슬람주의라는 정치 이념을 만들어내어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세속주의자들에 대항하기에 이르렀다(이란과 터키에서는 이 시도가 성공했다).
사회에서 종교의 위치를 놓고 둘러싼 이 갈등은 국경을 가로질러 초국적 정체성을 만들어냈고, 실질적으로 터키, 이란, 아랍의 세속주의자들은 자국의 이슬람주의자들보다 세속주의자들끼리 ‘서로’ 더 잘 공감했다. 이런 단층선은 1970년대 이래로 이슬람 세계의 국내 정치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자국 사회가 타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에 아주 민감해졌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1979년 이란의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자 터키와 아랍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대거 동요했으며, 세속주의 성향의 군부는 더욱 큰 탄압을 가했었다.
작금의 서구 사회가 물론 저발전 상태에 있는 중동 지역과 온전히 등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종의 유사성은 분명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국의 “빻은” 인간들보다 서구의 개명된 이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 혹은 자국의 “PC충”보다 조던 피터슨의 팬들에게 더 우애를 느끼는 사람들은 서구에서 벌어지는 가장 최신의 뉴스를 한국 웹으로 퍼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다. 작년에 있던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었는가? 이런 논쟁이 생산적 대립구도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국제적으로 연결된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진영의 극화만 계속해서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생산적 대립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최근에 서유럽과 북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의 마비와 기능부전이 우리에게도 다가올 가능성이 충분할지도 모른다.”_203~205쪽
책 속에서
16쪽 [스티븐 프라이] 좌파가 저지르는 커다란 오류 중 하나가 뭔 줄 아세요? 적의 명석함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일가는 우리가 지성의 기반으로 생각하는 신성한 인문서를 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트럼프 일가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죠. 역사가 보여줘요.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28쪽 [조던 피터슨] 우파가 극우로 치달을 수 있듯, 좌파 역시 극좌로 기울 수 있다는 것 또한 명백합니다. 그런데 좌파의 경우 극좌로 치달을 때, 그것이 매우 불분명하게 정의되는 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확실히 좌파가 너무 극좌로 가버렸다고 생각합니다.
32쪽 [조던 피터슨] 그러면 남녀 관계의 역사도 근본적으로 억압의 역사로 보겠군요. 이 논의도 아마 그런 식으로 풀려고 할 겁니다. 역사에 언제나 존재해왔던 근본적 재난으로부터 남성과 여성이 ‘협력’해서 벗어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하려고 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1895년 서구 세계의 평범한 사람은 오늘날 기준에서 볼 때 하루에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기준은 현재 UN이 지정한 극빈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니에요, 이 세상의 근본적 현실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다는 거예요”라고 말한 건가요?
51쪽 [마이클 에릭 다이슨] 흑인들은 인종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유색인들도 인종을 만들지 않은 건 마찬가지고요. 여성들 역시 젠더를 만들지 않았죠.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인간성을 빨아들이고 고갈시키는 호수인데, 인간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문제의 중심에 인종을 두는 걸까요?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 정말 미안하지만 대화의 중심에 인종을 둬야겠어요. 경찰이 거리에서 저를 계속 죽이려 들거든요.”
64쪽 [미셸 골드버그] ‘남자’가 직업을 잃는다, ‘남자’가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이런 것들은 아직까지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정말 새로운 현상이죠. 저는 거기에서 문화적 공포가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처벌받지 않는 문화가 이제는 끝났다는 공포요.
65쪽 [미셸 골드버그] 저는 사실 그보다 좀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음, 직장에서는 성기를 끄집어내지 않는 것부터요. 솔직히 저는 여성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하고 있는 정도죠. 실제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것과 몇몇 남자들이 요구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95쪽 [스티븐 프라이] 제가 PC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목표를 반드시 성취하고 싶지만 PC는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커다란 실패는 효과적인 것보다 올바른 것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PC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얼마나 옳은지에만 집착합니다.
98쪽 [미셸 골드버그] 대체 누가 검열을 하고 있는 거죠? 검열당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고, 트위터 패거리의 반대편에 서서 공격받는 입장이 된 게 어떤 기분인지도 이해합니다. 악성 댓글과 비난을 받는 것도 그렇고요. 기분 나쁘죠. 그러나 그것은 생산적이지 못한 책략이기는 하지만, 검열이 아닙니다.
101쪽 [조던 피터슨] 다양성, 포용성, 그리고 공평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그들은 여기서 특히 공평성에 대해서는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데요, 그건 정말 혐오스러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에 대해 안다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110쪽 [마이클 에릭 다이슨] 근사하게 은유적 표현을 하는 건 멋진 일이죠.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닙니다. 진짜 세상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먼저 말할 것은 사람들의 몸입니다. 사람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예요. 사람들이 폭행을 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섹슈얼리티와 인종 정체성 때문에 다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어요.
113쪽 [조던 피터슨] 개인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개인은 책임을 질 수 있어요. 개인이 권리를 갖는 부분적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은, 어떻게 집단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까? 집단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서구가 구축한 사법 체계는 본질적으로 집단이 아닌 개인을 전제로 형성되었습니다. ‘집단이 범한 죄’라는 개념이 정치와 사법 체계에서 기반을 얻을 수 있을 때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20세기를 통해 그걸 목격했는데, 그 결과는 단연코 재앙적이었습니다.
115쪽 [미셸 골드버그] 미국의 정치는 개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집단들이 서로 각축을 벌이는 투쟁의 장이었습니다. 사회를 그저 세분화된 개인으로 구성된 바다로 볼 경우, 이런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궁금합니다. 차별과 배타성을 바로잡기 위해 공통된 정체성을 근거로 사람들이 모이는 게 왜 치명적이죠?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모든 것, 가장 좋은 면 아닌가요? 진정한 진보란 바로 그런 거죠.
123쪽 [조던 피터슨] 내가 누린 백인이라는 특권이 내가 현재 이룬 성과에 얼마나 기여를 했다는 거죠? 5퍼센트? 15퍼센트? 25퍼센트? 아니면 75퍼센트가 되나요? 당신은 그 점에 대해 내가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세금 문제는요? 그 망할 놈의 특권을 누린 덕분에 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맞춰진 세금은요? 이미 비용을 지불하므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136쪽 [스티븐 프라이] 페미니스트들이 동독 사람 같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뭔가 비밀경찰이 엿듣고 있는 느낌이에요. “당신 조심하는 게 좋아. 그들이 듣고 있어”라고요. 이건 진짭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는데, 그런 감정이 든다는 게 진짜 걱정스럽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려는 것 이외에 다른 의도는 없어요.
146쪽 [스티븐 프라이] 그러니까 리 모두는 일종의 여론 조작용 재판 같은 것을 봐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사과를 해요. “성 정치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다음에 변호사에게 서명을 하죠. 그러면 우리는 그런 장면을 보고 그 사람 이름에 줄을 긋고 지워버리고요.
152쪽 [마이클 에릭 다이슨] 저는 정치적 올바름이 골칫거리가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제 오른쪽에 앉아 있는 두 신사 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두 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힘을 사용하고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이 그들만의 특별한 경우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캐나다와 미국의 자유로운 시민인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존중할 방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들 개인의 존재, 어떤 특정 집단이 번영하는 것을 방해해온 장애물이 거둬졌다는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정치적 올바름입니다.
155쪽 [미셸 골드버그] 저는 문화가 좀더 자유분방해지기 바랍니다. 좌파가 이런 현상을 종식시키게 만들 수는 없어요. 그 이유는 지금의 문화는 위에서 강제적으로 힘을 행사해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무리를 이루는 현상인 면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돌파해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말하기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게 거품을 터뜨릴 유일한 방법이에요. 불안을 종식시키기 어렵다면 최소한 분산시킬 방법인 거죠.
|
691 |
[사회] 주 4일 근무시대
피에르 라루튀르, 도미니크 메다 | 율리시즈 | 2018-04-1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1 |
[사회] 주 4일 근무시대
피에르 라루튀르, 도미니크 메다 | 율리시즈 | 2018-04-1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진보정당을 창당하고 대표직을 수행해온 경제학자 피에르 라루튀르와 사회학 교수이자 노동법과 빈부격차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도미니크 메다가 함께 쓴 『주 4일 근무시대』는 노동시간 단축이야말로 대량실업과 저성장의 탈출구이자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책의 서문에서 대공황 시절의 아인슈타인과 헨리 포드의 행적을 주목한다.
|
690 |
[사회]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정희진, 서민, 손아람, 한채윤, 권김현영, 손희정, 홍성수 | 교유서가 | 2018-05-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90 |
[사회]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정희진, 서민, 손아람, 한채윤, 권김현영, 손희정, 홍성수 | 교유서가 | 2018-05-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어째서 젠더는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페미니즘이 던지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고통을 회피하는 사회는 더 고통을 치른다"
우리 시대 페미니즘의 최전선을 말한다!
책으로 만나는 페미니스트 7인의 인기강연
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메갈리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등 2015년 이후 더욱 높아진 여성혐오 이슈, "좌우"와 영역을 가리지 않은 채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최근의 "미투" 운동 등 젠더 관련 이슈가 최근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한편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적폐청산"을 내건 정치인이 당선되는 데 여성들의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다(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전의 탄핵 국면에서 광장은 거대한 적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는 장이기도 했다. 보수에 대항하는 목소리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 않는다. 이제는 젠더 이슈에 대해 여성/성소수자들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지 않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 역시 넓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정적" 순간에 젠더 이슈는 "사소한 것" 혹은 "나중에" 처리해야 할 문제로 치부된다. 특히 그것이 "정치적" 상황일 때 그렇다. 흔히 적폐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힘 있는 혹은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뿐 아니라 "진보"진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조나 진보정당 내의 젠더문제 역시 "대의"의 뒤로 밀려나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된다.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를 휩쓸며 어떤 곳도 젠더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젠더문제가 얼마나 이 사회의 핵심적 병폐인지가 드러나는 와중에도 언론에서 "미투" 운동을 부각시키면 다른 더 "중요한" 병폐를 의도적으로 묻어버리기 위한 게 아니냐는 공격을 "진보"세력으로부터 받는다. 좌우 막론하고 젠더는 "아킬레스건"이며, 비정치적 영역으로 쉽게 환원되며, 이성애중심주의와 남성연대는 강력하게 작동한다. 성 적폐야말로 진영에 관계없는 가장 강력한 적폐인 셈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무엇이 정치이며, 젠더권력은 어째서 늘 현실정치에서 사소화되며,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왜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냐고. 이명박·박근혜 시대라는 명백한 거악의 시절을 견디며 광장에서 저항했던 것은 분명 "모두"였는데, 왜 "결정적 순간"에는 그 모두 안에 여성과 성소수자는 사라지고 젠더문제는 사소한 일이 되는 것이냐고. 어째서 "합리적 시민"의 얼굴은 대체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진보의 아킬레스, 젠더
대선 당시 방송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답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단체를 방문해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편 자신의 저서에서 여성혐오 및 성차별적 시각을 보인 탁현민씨는 현재 청와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진보" 정치인에 대한 "미투"는 진보진영에 대한 "공작"으로 취급받는다. 더구나 현정권에 비판을 제기하는 순간,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현정권 지지자들에게 집중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은 지금 여기의 정치와 페미니즘을 논한다. 이 책의 바탕이 된 강연은 명백한 "거악"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의 2017년, "진보의 집권"이라는 한 축과 식지 않고 있는 페미니즘의 목소리라는 한 축이 만나기 시작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한국사회 전반에 깔린 강력한 남성연대와 여성혐오, 이성애중심주의와 젠더감수성 부재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던 시점이며, 보수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지닌 진보의 아킬레스건이 결국 젠더라는 것이 드러났던 결정적 시점이다. 이는 "미투" 국면을 지나고 있는 2018년 현재 다시 한번 강력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 여기의 젠더 이슈를 활발히 발화하고 있는 7명의 저자들은 이 책에서 최근 한국사회 전반의 젠더문제를 다루면서 특히 최근 10년, 명백한 "보수" 정권이 지나가고 ("팬덤"으로도 표현되는) 강력한 지지층을 등에 업은 "진보" 정권이 집권한 지금을 중심으로 여성/성소수자가 어떻게 배제되며 젠더문제가 사소화되는지를 여러 주제를 통해 다룬다.
"나중에" 말고 지금!: 좋은 정부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
사적인 영역,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는 남녀관계와 젠더문제야말로 권력관계의 문제이고 가장 정치적인 문제라는 점을 역설하는 1강(정희진)을 시작으로, 2강(서민)에서는 특히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남성들의 여성혐오의 실태를 개괄하며, 3강(손아람)은 문화생산자의 입장에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 속에서의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동학 속에서 드러낸다. 4강(한채윤)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유착되어 종교가 정치화되고 정치가 종교화되는 정치현실 속에서 성소수자가 어떻게 배제되고 혐오화되는지, 대의에 뒤따르는 "나중에" 정치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5강(권김현영)에서는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복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지를 살피며, 이 과정에서 강력한 남성연대가 "좌우 진영"을 넘어 얼마나 강력한지를 드러낸다. 6강(손희정)에서는 현재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강력한 키워드인 음모론과, 역시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강력한 남성동성사회, 남성연대가 어떻게 결합해 작동하는지를 "검사영화"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7강(홍성수)은 젠더/소수자 이슈의 핵심적 개념으로 유통되는 "혐오"와 혐오로 뒤덮인 지금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이론적 팁과 분석을 제공한다. 그리고 마지막 8강(정희진)에서는 적폐청산을 내건 "진보"로 지칭되는 현정부의 젠더 인식을 비판적으로 짚는다. 동시에 대통령을 둘러싼 강력한 "팬덤"과 관련해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시민"으로서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사랑이라는 주제로 짚어본다.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왜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정희진의 질문(8강)은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상해야 할 것은 정권의 교체, 좋은 나라 만들기를 넘어 더 많은 민주주의이며, 페미니즘과 젠더에 대한 고민은 "대의"에 뒤따르는 사소한 문제, 우선순위의 나중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에서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어째서 젠더는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페미니즘이 던지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고통을 회피하는 사회는 더 고통을 치른다”
우리 시대 페미니즘의 최전선을 말한다!
책으로 만나는 페미니스트 7인의 인기강연
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메갈리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등 2015년 이후 더욱 높아진 여성혐오 이슈, ‘좌우’와 영역을 가리지 않은 채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최근의 ‘미투’ 운동 등 젠더 관련 이슈가 최근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한편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적폐청산’을 내건 정치인이 당선되는 데 여성들의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다(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전의 탄핵 국면에서 광장은 거대한 적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는 장이기도 했다. 보수에 대항하는 목소리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 않는다. 이제는 젠더 이슈에 대해 여성/성소수자들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지 않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 역시 넓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정적’ 순간에 젠더 이슈는 ‘사소한 것’ 혹은 ‘나중에’ 처리해야 할 문제로 치부된다. 특히 그것이 ‘정치적’ 상황일 때 그렇다. 흔히 적폐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힘 있는 혹은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뿐 아니라 ‘진보’진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조나 진보정당 내의 젠더문제 역시 ‘대의’의 뒤로 밀려나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된다.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를 휩쓸며 어떤 곳도 젠더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젠더문제가 얼마나 이 사회의 핵심적 병폐인지가 드러나는 와중에도 언론에서 ‘미투’ 운동을 부각시키면 다른 더 ‘중요한’ 병폐를 의도적으로 묻어버리기 위한 게 아니냐는 공격을 ‘진보’세력으로부터 받는다. 좌우 막론하고 젠더는 ‘아킬레스건’이며, 비정치적 영역으로 쉽게 환원되며, 이성애중심주의와 남성연대는 강력하게 작동한다. 성 적폐야말로 진영에 관계없는 가장 강력한 적폐인 셈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무엇이 정치이며, 젠더권력은 어째서 늘 현실정치에서 사소화되며,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왜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냐고. 이명박·박근혜 시대라는 명백한 거악의 시절을 견디며 광장에서 저항했던 것은 분명 ‘모두’였는데, 왜 ‘결정적 순간’에는 그 모두 안에 여성과 성소수자는 사라지고 젠더문제는 사소한 일이 되는 것이냐고. 어째서 ‘합리적 시민’의 얼굴은 대체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진보의 아킬레스, 젠더
대선 당시 방송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답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단체를 방문해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편 자신의 저서에서 여성혐오 및 성차별적 시각을 보인 탁현민씨는 현재 청와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진보’ 정치인에 대한 ‘미투’는 진보진영에 대한 ‘공작’으로 취급받는다. 더구나 현정권에 비판을 제기하는 순간,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현정권 지지자들에게 집중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은 지금 여기의 정치와 페미니즘을 논한다. 이 책의 바탕이 된 강연은 명백한 ‘거악’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의 2017년, ‘진보의 집권’이라는 한 축과 식지 않고 있는 페미니즘의 목소리라는 한 축이 만나기 시작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한국사회 전반에 깔린 강력한 남성연대와 여성혐오, 이성애중심주의와 젠더감수성 부재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던 시점이며, 보수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지닌 진보의 아킬레스건이 결국 젠더라는 것이 드러났던 결정적 시점이다. 이는 ‘미투’ 국면을 지나고 있는 2018년 현재 다시 한번 강력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 여기의 젠더 이슈를 활발히 발화하고 있는 7명의 저자들은 이 책에서 최근 한국사회 전반의 젠더문제를 다루면서 특히 최근 10년, 명백한 ‘보수’ 정권이 지나가고 (‘팬덤’으로도 표현되는) 강력한 지지층을 등에 업은 ‘진보’ 정권이 집권한 지금을 중심으로 여성/성소수자가 어떻게 배제되며 젠더문제가 사소화되는지를 여러 주제를 통해 다룬다.
‘나중에’ 말고 지금!: 좋은 정부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
사적인 영역,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는 남녀관계와 젠더문제야말로 권력관계의 문제이고 가장 정치적인 문제라는 점을 역설하는 1강(정희진)을 시작으로, 2강(서민)에서는 특히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남성들의 여성혐오의 실태를 개괄하며, 3강(손아람)은 문화생산자의 입장에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 속에서의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동학 속에서 드러낸다. 4강(한채윤)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유착되어 종교가 정치화되고 정치가 종교화되는 정치현실 속에서 성소수자가 어떻게 배제되고 혐오화되는지, 대의에 뒤따르는 ‘나중에’ 정치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5강(권김현영)에서는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복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지를 살피며, 이 과정에서 강력한 남성연대가 ‘좌우 진영’을 넘어 얼마나 강력한지를 드러낸다. 6강(손희정)에서는 현재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강력한 키워드인 음모론과, 역시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강력한 남성동성사회, 남성연대가 어떻게 결합해 작동하는지를 ‘검사영화’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7강(홍성수)은 젠더/소수자 이슈의 핵심적 개념으로 유통되는 ‘혐오’와 혐오로 뒤덮인 지금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이론적 팁과 분석을 제공한다. 그리고 마지막 8강(정희진)에서는 적폐청산을 내건 ‘진보’로 지칭되는 현정부의 젠더 인식을 비판적으로 짚는다. 동시에 대통령을 둘러싼 강력한 ‘팬덤’과 관련해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시민’으로서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사랑이라는 주제로 짚어본다.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왜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정희진의 질문(8강)은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상해야 할 것은 정권의 교체, 좋은 나라 만들기를 넘어 더 많은 민주주의이며, 페미니즘과 젠더에 대한 고민은 ‘대의’에 뒤따르는 사소한 문제, 우선순위의 나중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에서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책 속으로
‘진보끼리는 비판하면 안 된다’는 진영논리, ‘우리 편을 비판하면 적’이라는 패거리주의로 ‘기사단’의 활동은 든든한 뒷배를 얻었습니다. 이 ‘합리적 시민’은 대체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소수자시민의 모멸감은 이 국면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_들어가는 말에서
톰과 제리는 섹스를 하지 않아요. ‘재벌’하고 ‘알바’는 섹스를 안 해요. 그런데 남성과 여성은 적대적 모순관계인데, 섹스를 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애제도죠. 그 때문에 섹스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겁니다. ‘적과의 동침’ 때문에, 남녀가 가족을 만들고 가족은 사소한 문제, 비정치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겁니다. _1강에서
자본주의 혹은 현실정치에서의 여당과 야당의 관계, 대개 이런 걸 정치라고 하잖아요.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거듭 말하지만,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전제는 가부장제예요. 젠더시스템이에요. _1강에서
저는 여성혐오의 가장 큰 목적이 ‘침묵하지 않는 여성들의 입을 닥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성차별을 해도, 성추행을 해도 그냥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다는 게 남자의 실제 속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추행도 자유롭게 하고, 여자들이 지나가면 품평회도 하는 세상을 남자들이 즐겨왔는데, 이제 여자들이 거기에 반발을 하니까 화가 나는 거죠. 이것이 여성혐오의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_2강에서
남성인물에게 문제를 발생시켰을 때는 거기 부딪히고, 해결을 시도하고, 문제를 극복하거나 좌절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자 작품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인물에게 주어진 상황은 그저 전시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_3강에서
저는 사실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예나 지금이나 뭐가 문제인지 알고 있었어요. 제가 경험한 건 ‘관대한 환경에서 인간이 얼마나 느슨해질 수 있는지’였습니다. 다른 창작자들도 제가 느끼는 압력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창작자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를 바꿨듯이. _3강에서
5월 대선은 일단 성적소수자 인권에 손사래 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결과를 남겼습니다. 2012년 대선후보일 때만 해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분이 이제는 그 법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중에 정치’가 탄생했습니다. _4강에서
정치가 종교화되면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구원자’로 신봉됩니다. 종교가 정치화되면 종교인은 약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배후를 자처합니다. 정치와 종교가 서로 호환되기 쉽다는 것은 그 사회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관심이 있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내는 혐오정치가 횡행합니다. 이때 동성애에 집중해서, 동성애가 정말 옳은지 그른지에 집중하면 ‘저쪽’ 프레임에 말려드는 겁니다. (…) 민주시민으로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고민할 때, 뚜렷하게 싸움의 대상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 싸움의 대상이 한국 근대사에서 뿌리 깊어진 정교유착이라고 생각합니다. _4강에서
1980년대 남자 운동권들과 1990년대 문화운동판에 있던 남자들이 만나, 40대 서울 남성들은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목소리 뒤에 지금까지 쌓아올린 한국사회의 다른 목소리가 급속도로 지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에 시작된 광장의 새로운 여성단체의 가능성은 역사화되지 않았고, 2015년부터 2년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성혐오 이슈는 정치의 공론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룸살롱 남성연대가 스크럼을 짜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다른 사람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는 사회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획과 다른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이지, 형, 아우, 형수님의 안온한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_5강에서
한국사회는 정치적 지형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상상력에서도 거대한 두 개의 남성?동성사회가 싸우고 있다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폐’니 ‘빨갱이’니 하면서 삿대질을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 둘 모두 거대한 ‘성性적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죠. _6강에서
강간이라는 실제행위도 중요하지만, 실제행위가 가능해지고 필요하다고 상상되는 그 ‘상상력’이 여성에 대한 배제 및 차별, 폭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배제 위에 만들어지는 남성공동체란 또 한편으로는 이성애중심적이고, 비장애인중심적이며, 원주민중심적이죠.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내각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상력의 문제 역시 이해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정치적으로 합당한 대응을 했어야죠. 왜냐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돌려서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그것이 남성다움을 형성한다는 그 상상력이 지금과 같은 배제적인 정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탁현민의 문제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탁현민이 싫어서가 아니라, 혹은 문재인 정권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교환가치로 삼아버리는 남성중심적인 정치를 깨기 위해서 이는 꼭 해결해야 할 매우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였던 거죠. _6강에서
위험의 징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동성애 찬반을 묻는 장면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문제가 정치도구화된 순간이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주자나 소수종교 등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는 정치세력들이 많죠. 한국에서도 이제 성소수자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여,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소수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득표에 활용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치는 결국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게임이고, 소수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아주 달콤한 유혹이죠. 한국정치도 지역감정을 그런 식으로 활용해왔지만, 이제 소수자를 도구화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다음 대선 때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슬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국인범죄에 대한 단속 강화를 찬성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정치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_7강에서
문재인이라는 캐릭터가 신자유주의라는 구조를 메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격과 스킨십으로는 한계가 있지요. 문제는 시민입니다. 구조를 직시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지, 팬덤으로 위로받으려고 하면 공도동망共倒同亡입니다. 다 망합니다. _8강에서
이들에게 ‘유일한 약점’은 젠더입니다. 젠더는 시공간을 초월해 어느 사회에서나 모든 남성의 정치적 문제지만, 이들에게는 도덕적 우월감이 있어요. 문제는 그것입니다. 도덕적 우월감과 자부심 때문에 ‘다른 정치’,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아요. 이것이 운동권, 좌파, 진보세력의 적폐가 될 것입니다. 진보나 보수나 여성문제, 성소수자문제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죠. “나중에!” 여성문제는 나중에. 선후를 자기들이 정한 겁니다. 예전에는 ‘부차적 문제’, ‘사소한 문제’였는데 요즘엔 ‘나중에’죠. 젠더 스캔들은 계속 터질 것입니다. 이미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저항이 완강한 데다 지금 젊은 세대, 여성들은 참지 않아요. _8강에서
|
689 |
[사회] 지금, 한국을 읽다
배영 | 글담 | 2019-01-0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89 |
[사회] 지금, 한국을 읽다
배영 | 글담 | 2019-01-0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빅데이터로 본 우리 마음의 궤적
우리를 뒤흔든 감정부터 한국 사회를 움직인 이슈까지
빅데이터로 읽는 대한민국 지형도
빅데이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SNS와 검색어, 언론 기사로 보는 한국인의 속마음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문자메시지 등 오늘날처럼 사회 구성원이 나누는 모든 대화가 디지털화되어 데이터로 쌓이는 시대에는 빅데이터 과학이 사회 변화의 흐름과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일찍이 그 가능성을 내다본 학자들은 많았지만 이를 사회 전반에 적용해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흐름을 읽어낸 연구자는 없었다. 몇몇 이슈와 관련해 국지적으로 연구가 시행되긴 했지만 빅데이터를 통해 일정 기간 사회 전체의 흐름을 짚어보는 시도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을 읽다》 출간의 의미가 깊다.
국정농단 사태부터 정권 교체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다시 한 번 커다란 굴곡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의 SNS에서, 블로그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무엇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을까? 어떤 사건과 이슈에 분노하거나 감탄했을까? 어떤 논의가 공론장에 오르내렸으며 어떤 기사를 읽으며 웃고 울었을까? 그리고 이들은 다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 변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까? 데이터 분석 전문가이자 사회학자인 배영 교수가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열아홉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최첨단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한국 사회의 민낯을 예리하고 섬세하게 파헤친다.
|
688 |
[사회] 차별의 언어
장한업 | 글담 | 2019-01-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88 |
[사회] 차별의 언어
장한업 | 글담 | 2019-01-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우리나라, 국민 여동생, 조선족, 다문화가정, 쌀국수……
무심코 사용하는 일상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을 살펴보다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교수 추천
상호문학철학회 회장 주광순 교수 추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박경태 교수 추천
‘우리나라’ ‘조선족’ ‘다문화가정’ ‘쌀국수’ ‘국민여동생’ 등은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쓰는 단어들이다. 국내 만연한 차별의 시선을 고치고자 노력해 온 장한업 교수는 『차별의 언어』에서 ‘왜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과도하게 사용할까?’ ‘왜 이탈리아 국수는 ‘스파게티’라고 부르면서 베트남 국수는 ‘쌀국수’라고 부를까?’ ‘왜 ‘다문화’와 ‘타문화’를 동의어처럼 사용할까?’라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 단어들 속에 담겨 있는 단일민족의 허상과 그에 따른 차별 의식을 다루고 있다. 그는 ‘우리’라는 말이 그에 해당하는 집단을 울타리처럼 보호하면서도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을 배척하는 단어라고 밝히고, ‘국민000’ ‘000여왕’이라는 호칭의 과도한 사용에서는 집단주의와 국군주의의 냄새를 읽는다. 또 같은 재외동포인 조선족은 재중동포라고 부르지 않는다거나 한국인 결혼이주여성을 ‘베트남신부’ ‘캄보디아신부’ 식으로 출신국을 강조해서 부르는 차별적인 행태라고 꼬집는다.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이들과 더불어 더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가 녹아 있다.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차별을 넘어 상생으로, 단일민족 신화를 넘어 다문화사회로, 한국 사회가 가야 할 미래의 지향을 제시하면서, 다문화시대에 필요한 정책과제와 문화다양성 교육까지 제언한 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독자들이 인식 전환의 첫 걸음을 딛고, 통렬하고 비판적인 자기 성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687 |
[사회] 최고임금
샘 피지개티 | 루아크 | 2019-02-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
687 |
[사회] 최고임금
샘 피지개티 | 루아크 | 2019-02-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12)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최고임금, 곧 ‘소득 상한선’은
거대한 ‘부의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건드릴까? ‘부의 양극화’ 문제, 정확히 말해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한 양극화 문제는 현대사회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수많은 정치인과 경제?사회 학자가 그 해결 방안을 모색했지만 그 누구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세계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회 극빈층의 소득은 이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최상위층의 소득은 그보다 더욱 빠르게 치솟아 이제는 세계 상위 1퍼센트 부자가 전 세계 부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극빈층의 사정이 나아졌으니 상위 1퍼센트의 소득과 재산이 과도하게 많아져도 상관할 필요가 없는 걸까? 수많은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소득이 최상위층에 심하게 집중된 주에서는 인당 탄소 배출량이 더 많았으며 시민들이 환경보호에 소극적이었다. 또한 그런 주에서는 증오 범죄가 훨씬 많이 일어났고, 시민들의 삶 만족감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비도덕적 행위에 가담하려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다른 연구에서는 불평등한 국가의 국민이 평등한 국가의 국민보다 비만이 되거나 살해당할 확률, 타인을 불신하거나 10대 딸이 임신할 확률, 약물중독 신세가 되거나 감옥에 갇힐 확률이 2배에서 10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그뿐이 아니다.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건강과 관련한 아이들의 사회적 보장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으며,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적인 통치 방식이 약화되었다. 한때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뜬다”라는 격언은 이제 무색해지고 말았다. 불평등이 용인될 때 세계가 치르는 대가가 혹독한 탓이다. 그렇다면 기존 방식과는 차별화된 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안은 있는 걸까? 샘 피지개티는 이 책 《최고임금》에서 우리에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첫째는 최하위층의 소득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 둘째는 최상위층의 소득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 셋째는 둘 다 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경제체제의 맨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이들은 그동안 첫째 방안을 고집했다고 말한다. 한동안 그 논리가 전 세계를 지배했지만, 그 결과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불평등해졌다. 나머지 모든 사람의 희생으로 부자들이 혜택을 받는 경제가 되어서다. 결국 그 어느 나라도 부의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주장하는 방안은 셋째 방안, 곧 ‘최고임금’을 도입해 ‘최저임금’과 연동시키자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이론상으로는 모든 노동자가 빈곤을 면하고 약간의 경제적 안정과 존엄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을 보장하는 임금이다. 하지만 오늘날 최저임금은 거의 모든 곳에서 그 숭고한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최저임금을 주는 직장에 종사하며 풀타임으로,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여전히 빈곤에 허덕인다. 지은이 샘 피지개티는 이처럼 엄청나게 불평등한 경제체제에 ‘최고임금’을 도입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최고임금을 최저임금과 연동시킨다면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을 착취하려는 특권층의 강한 동기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최저임금을 낮고 부적절하게 유지하려는 권력자들의 압박이 끊이지 않겠지만,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이 연동된 사회에서는 극빈층의 소득이 먼저 증가해야만 최고 부유층도 자신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결국 그런 사회에서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킨 뒤에야 개인의 기득권을 누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최고임금’은 과연 태평한 정치적 몽상 이상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지은이는 최고임금에 대한 다양한 회의적인 질문에 답한다. 이를테면 ‘최고임금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소득이 과하다는 것의 기준은 어디서부터일까?’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몇 배수로 정할 것인가’ ‘가파른 누진 소득세나 피케티의 글로벌부유세 같은 방안으로는 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걸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슈퍼리치 없이 경제가 굴러갈까?’ ‘결국 최고임금이라는 개념은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 아닌가?’ ‘기득권층의 만만찮은 정치적 방해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지은이 샘 피지개티는 ‘최고임금’의 도입은 결코 몽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한다. 아울러 정치?경제적으로 이 제도를 실현해나가고 있는 여러 움직임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월가개혁및소비자보호법에 CEO와 직원 간 급여비율을 공개하는 조항을 넣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2014년 로드아일랜드 주에서는 CEO와 직원 간 급여비율 차이가 작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부 사업 계약 입찰에서 특혜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스페인의 몬드라곤 같은 기업은 CEO와 직원 간 급여 차이를 6배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직원들의 열정과 참여를 끌어올렸다. 이런 도전은 스위스, 이집트, 프랑스, 영국 등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책을 마치며 지은이는 더 공평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된 최저임금 투쟁이 몇 세대를 거쳐 왔음에도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는 최고임금, 곧 사회 최저 소득의 배수로 정한 의미 있는 최고 소득에 관한 법 제정을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다양한 전선에서 그 목표를 향해 지혜롭게 성큼성큼 걸어가야 한다. 우리 앞에는 나아갈 길이 있고, 우리는 그 길을 택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